그러나, 나가 보기에, 사람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분명히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되는 다른 이유가 있다.
저 눈... 저 눈!!!!!
지금이야 크게 상관읎는 이야기가 뒤얐지만, 나 소시적에 해조하면 참새였다. 내 소시적까지도 아직 쌀이 그렇게 넉넉지 않었던 시기였구, 참새가 곡물에 해를 끼친다는 것은 못된동동지께서도 공인하셨던 바니까. 그랴서, 참새라믄 모두가 쫓아낼라 캤지만, 지금의 비둘기처럼 참새가 혐오스러운 동물로 여겨지지는 않었었다. 분명히 참새는 해조인데, 딱히 해조도 아닌 비둘기는 왜?
방금 안건디, 나는 참새눈이 개들처럼 완전히 새까만줄 알었는디, 지금 보니까 참새도 안구와 동공의 색이 다르구먼. 글구 당연하다믄 당연헌거다만, 개의 눈도 안구와 동공의 색은 다르다. 다만, 갈색안구에 흑색동공이니 이렇게 자세히 보지 않으믄 구부너기 힘등께 몰랐어두 이상할 긋두 읎구, 글의 논지에도 영향이 읎다.
한편으로
흰비둘기는 이렇다.
그렇다. 저 안구가 사람들의 혐오감을 자극하는 것이다. 하필이면 우리 주위에 흔헌 집비둘기는 안구가 붉은색이라서, 그 자체로도 굉장히 시각에 불쾌한 자극을 주는디, 거기에 새까만 눈동자가 동그랗게 떠 있어서, 일반적인 사람의 미적감각에 또한 불쾌함을 선사허는 사백안인 것이다. 사백안에 붉은안구라니, 당신은 미움받기 위해 태어난 새람~
일반적으로 동물과 사람의 눈의 가장 큰 차이는 대부분의 동물이 안구와 동공의 색이 크게 구분되지 않아, 동공이 두드러지지 않는데 비해, 사람은 거의 절대적으로 대부분이 흰색의 안구와 파란색이든 갈색이든 검은색이든 등등의 동공으로 그 둘이 크게 구분된다. 그런데, 집비둘기는 그게 너무나도 뚜렷이 구분뒤야뿌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강력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불쾌한 골짜기로서 작용하고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분명히 해조인 참새보다, 그렇게 해조가 아닌 비둘기가 일반적인 혐오의 대상이 될 이유가 뚜렷해지가 않다. 물론, 새 주제에 날지도 않고 뒤뚱거리고 걸어다니믄서 사람인 양 굴어서 밉.... 사람인 양 굴어... 사람인 양... 그렇다. 비둘기가 동물처럼 굴지 않아서 밉다고 하는 일반적인 이유는 비둘기의 눈이 동물의 눈같지 않다는 저 점과 같은 맥락에서 작용하면서 분명히 상승작용을 유발한다고 볼 여지가 노무노무 분명한 것이다. 아니 내가 보기엔, 뭔가 괜히 비둘기란 새가 불쾌한데, 그 불쾌한 이유로 땅에 기어다니고 어쩌고 하는걸 갖다 붙인게 더 맞다고 본다. 눈 모양때문에 양이 악마의 상징이 된 것처럼, 인간은 눈이 9백냥이고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느낀다. 그 눈의 차이라는 것은 무의식중에 엄청나게 영향을 준다고 볼 맥락적 증거는
고양이의 경우도, 동공이 상황에 따라 변하는데, 고양이에 대해 섬뜩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비율로 있는 이유도 분명히 이것이리라 본다. 그런 사람들도 좀 어두워서 풀 사이즈로 동공이 커진 고양이는 그렇게까지 싫지 않을 것이다. 환한 곳에서 완전히 한 줄로 줄어든 고양이 눈빝이 혐오감을 자극하는 것이지.
이를 느낀건 오늘 낮에 자전거를 타러 나갔는디... 나는 자전거를 탈 띠 적당히 탔다 싶으믄 근처으 편의점을 반환점 삼구 거서 주전부리와 제로똥물(제로콜라인디 콜라를 똥물로 부르는 이유는, 나가 대핵교댕길때는 아직도 운동권이 학생회 주류였는디, 그 운동권으 주류는 또 주사파 엔엘 따라지들인기라, 야들이 미제를 혐오하는건 바로 윗짤과도 같은 것인디, 야들이 미제의 상징 그 자체인 콜라를 곱게 불러줄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한 전차로 갸들 사이에 콜라의 명칭은 미제의 똥물이었다. 나야 당연히 엔엘은 커녕 운동권도 아니고, 그나마 피디는 덜 싫었지만 엔엘은 진짜 싫어혔는디, 이 글에도 줄창 쓰이는 노무노무마냥, 극도의 반감에서 사람은 적대적 상대를 어떻게든 희화화허려 들구, 그 희화화에 대한 열정에서 나오는 표현이 또 기가맥힌 맛이 나오는 경우가 많은기라, 미제의 똥물도 나으 그 배덕감 감성을 자극혔기에, 나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콜라를 똥물이라 부르구, 그 표현을 내 주위으 운동권 맛을 못 본 사람들에게도 많이 전파혔다. 아름다운 우리문화의 수호자가 아닌가? ㅎ 말이 길었는디
각설하고)
을 한사발 들이키구 오는디, 아무 생각읎이 앉아있다봉께, 어느틈엔가 저 집비둘기들이 서성거리고 있는기 아닌가? 요즘 한동안 죽을거 같이 우울하고 적적하다가, 어제 오늘 좀 살거 같을 정도로 나아진 상태여서 아직 우울감이 남아있는디, 혼자서 쓸쓸히 처 먹고 있는 내 주위에 좋다고 얼쩡거리는게 괜히 밉지가 않었더라. 그랴서 묵고 있던 쏘시지 쬐끔 뗘 줬더니 당연히 개... 아니 비둘기같이 몰려들었다. 쏘시지를 뜻하지 않게 비둘기가 묵기엔 쫌 크게 뗘서 줬는디, 한 놈이 잽싸게 물지만 삼키질 못하고 물고 도리도리하다 놓치믄 옆에 있던 놈이 또 물고 도리도리하다 놓치믄 옆에 놈이 물고 무현반복하길래 웃겨서 계속 보고 있자니, 바로 저 눈... 저 눈!!! 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아 사람들이 비둘기를 혐오하는건 저 눈 때문이구나...
전혀 과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여러 문화적 표현이나 인식들을 볼 때, 비둘기의 저 눈은 사람들의 혐오의 강력한 바탕이 되고 있는건 틀림읎다구 단언헌다. 깃털도 그나마 이쁘고 눈도 저 해태타이거즈 원정유니폼 색이 아닌 흰색 집비둘기가 주류였다믄, 작금의 비둘기 혐오 정서는 없었을 것이다. 내 손 모두와 내 돈모가지를 걸 수 있다.
글구 오늘 혼자 쓸쓸히 앉아있다 비둘기에게 쏘시지 줘 보니까, 적적한 노인들이 주지 말래는데도 왜 자꾸 새우깡 뿌리구 그러는지 이해가 가더라... 이제 난 죽을날만 기다리는 쓸쓸한 노인네가 되어버린걸까... 요즘들어 이래저래 심란허다. 그랴두 오늘은 그 쓸쓸험이 학계에 남을 대 발견을 나았으니 하루는 봐 주기루 허자
일본민주당 하니 망한당이 떠오르고 망했습니다, 하니 고갤이 아름다웠던 시절의 저 드립이 떠 올랐다. 이제와서는 어떤 맥락에서 나온건지 설명하기도 힘들어진 드립이지만, 그렇습니다... 우리는 망했습니다... 그러니 같이 저 세상으로 떠납시다...
망한건 민주당하고 나 뿐이었고~
각설하고,
사실 짤에서도 등장혔지만, 일민당의 흥망성쇠는 상당부분 저 오자와 이치로로 설명이 된다. 다만, 오자와 이치로도 당세의 영걸 今다나카 카쿠에이 인지라, 경모해 마지 않는 걸물이기에, 그 이야기는 나중에. 마, 잘 써보겠다고 나중에 제대로 써 보겠다고 각잡은 소재치고 글을 쓴 적이 없다만. 결코 실패하면 안되는 소재를 잘못 다뤄 실패하지 않는 체고에 방법은 그것을 다루려는 시도를 않는 것이니까.
각설하고,
가급적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도 배려하려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긴 허다만, 기본적으로 다루는 소재 자체가 상당히 디테일 한 면이 있고, 자기의 의식의 흐름에 기반해 글을 쓰는 곳인 이상, 내 블로그으 글들은 대체로 요구하는 배경지식이 상당히 많은 편에 가깝다.
그러나, 그래도 일본 민주당 이야기를 허는디, 2009년 총선에서 압승혀서 55년체제 이후 체초에 진정한 정권교체를 이뤘다가, 당선 직후부터 망허기 시작허더니, 2011년 동일본대지진 직격을 맞고 망한 당, 이라는 정도는 설명이 없어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라고 해놓고 설명혔네.
민주당의 멸망에 대해 이야기헌다구 헐 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혀야 헐지를 정하는 것은 꽤 재량을 발휘헐 수 있는 영역이다. 시작점을 체고로 멀게 밀어부자믄 오자와 이치로가 자민당에서 뛰쳐나올때까정도 둘 수 있고, 마지막점은 그냥 지금까지 깨속! 이라고 혀도 될 정도... 무난하게 범위를 잡자믄, 민주당 자신의 원인은 아니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일본내각총리대신으로서 짧게 잡아도 근 20여년만에 일가실각 당하지 않은채 물러난 시점부터 시작혀서 구 민진당이 몰락하고 입헌민주당이 이를 대체한 2017년 총선까지 대충 10여년이 대상이 되는게 타당허지 싶다. 다만, 그 이야기를 쓸라카믄 만만찮게 대하정치소설이 뒤아야 허는지라, 그냥 이 글에서는 민주당 집권기 동안 벌어진 사건 크게 네가지만 짚어볼라구 헌다.
1. 후텐마기지 이전
대외문제에서 대체로 친미성향이 강하고 근린제국에 대해서는 마찰을 감수하는 경향이 있는 자민당과 달리 민주당은 미국에 대해서는 할 말은 하고 근린제국에 대해서는 우호적으로 접근하려 혔다. 특히, 민주당 정권의 초대 내각총리대신이 된 하토야마 유키오는 우애외교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믄서 무려 탈구입아 같은 과감한 구호를 내세우기도 혔다. 사실, 내정의 난맥과 내분도 원인이지만, 나가 보기에 민주당 정권의 몰락의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외교인디, 지금 다룰 4대주제에서도 두 가지가 외교문제이다.
그 하나가 이 오키나와의 후텐마기지 이전문제인디, 후텐마기지라는게 뭐길래 그렇게까지 인화성 있는 소재가 뒤얐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그냥 기지의 모습 자체를 보믄 된다. 사실, 대부분으 공항이 그렇듯이, 후텐마기지도 처음부터 저렇게 시가지 한 복판에 있었던 기 아니다. 그러나, 아직 도시가 덜 발달혔던, 대부분의 아시아는 물론 구미의 근대도시에서, 공항은 도시내에 있으믄 안되지만, 도시에서 노무 멀어도 안되는 위치였던지라, 적당히 거리있는 곳에 자리잡게 마련이라는 점 + 공항은 당연히 주변에 이착륙에 방해가 되는 지형물이 벨루 읎는 곳에 위치혀야 허는디, 이거 평지아녀? 도시 개발하기에도 완전히 좋은 위치인 것이다. 그렇기에, 대부분도 아니고 거의 모든, 대도시의 공항들은 위으 사진과 같은 숙명에 처허게 되곤 허는디, 마 그게 민간공항이라믄 문제가 덜 허지만, 군공항이라믄, 것두 자국군도 아닌 외국군의 공항이라믄 저게 문제가 커지는기라... 그랴서, 당초 자민당 집권기에는 저 후텐마기지를 현내의 헤노코 해안을 매립하여 거기에 이전한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그런디, 여기서 오키나와토인들의 반감이 비등헌 것. 오키나와는 말할긋두 없이 일본 전체 면적의 1%도 안되는 손바닥만한 동네인디, 이 오키나와에는 주일미군의 70%이상의 병력과 시설이 밀집혀있다. 마, 이거야 미군이 대동아전쟁에서 이긴 후 1972년까지 오키나와를 점유혔었기 떄문이기두 허지만... 안 그래도 본토와의 경제수준 차이, 정치적 박대등등 상실감이 큰 오키나와 사람들이 이 참에 기지를 현밖으로 옮기는, 후텐마기지 현외이전을 내세웠다. 때 마침 추락사고가 빈발헌다는 오스프리 수송기 이슈 같은 것도 거들었는디, 그거까지 알거는 읎구. 그러나, 기지를 현외로 이전헌다믄 어디에? 다른 동네에서 받아준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니 현 밖으로 뺀다 = 사실상 국외이전이 되는 것이다. 그랴서 이 기지를 괌으로 옮기느니 어쩌느니 허는 이야기가 나왔는디... 이 후텐마기지의 전략적 의의상, 이 기지의 위치를 오키나와에서 뒤로 물른다는 것은 미국의 아시아전략상, 특히 점점 대두하는 중국의 압력(마 이 시기까지는 중국의 위협이 아직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마지막 항목에 설명할 1년 뒤에 상황이 전혀 달라지지만...)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이 위치에서 물러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구체적인 이유가 아니라도, 이 문제는 일미협력, 일미간의 전략적 관계설정이란 점 자체를 흔드는 이슈가 뒤야부럿던 것이다. 대개는 아시겠지만 일본의 전후 외교전략은 정치와 군사는 기본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자위대의 구성이란 점에서든 일미동맹의 성격이나 내용이란 점에서든. 근디, 하토야마 정권에서는 그런 점에 대한 진지한 고려가 충분혔다구 하기 힘든 상황에서, 현지의 여론과 현민의 그 동안의 희생같은 굉장히 '시시한' 이유, 혹은 앞으로는 우애외교를 통해 우애롭게 지낼 것이라는 등의 굉장히 '낭만적인' 이유 등으로 이 문제를 접근했다는 것이다. 마, 나도 평화 협력 우애 좋아헌다만, 그렇다고 군비를 국력이외의 이유(한국의 병역자원 감소 같은)로 줄이는 것에 기본적으로 찬성하지 않는 편이다. 정치는 협력과 대결이 교직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혀두 대결상황은 일정이하로 그 비중을 줄일 수 없는 보다 시리어스한 부분이니끼니. 꽤 리버럴이라는 내 입장도 이럴진디, 민주주의가 제도상으로 돌아가는 나라중 가장 보수적일 것이 거으 학실한 일본에서라면 말 다했다. 이 문제가 상당한 정치스캔들이 뒤야버린 것. 결국 하토야마는 등극 9개월후 사임허는디, 그 사임의 가장 큰 이유는 이 후텐마기지 현외이전 문제였다. 후일담으로 지금은 그냥 헤노코 앞바다 매립하고 기지 공사허구 있다. 다만, 논란 자체가 무시할 정도로 작은 이슈는 아니었던지라, 지금도 원활히 추진은 못허구 계속 갈등이 있다만, 적어도 현외이전 같은 이야기는 쑥 들어간 상태.
2. 관료개혁의 문제
사실 이 부분은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는 지라 간략히만 이야기허구 가겠다. 그러나, 나가 보기에 이 또한 꽤나 시리어스헌 문제.
일본이 관료천국이라는 점은 일본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믄 대충은 아는 일일게다. 일본으 경우 오히려, 관료들의 경우는 대신이 경우가 거으 없는기, 한국에서 부처 내부의 관료가 승진하여 장관이 되는 것이 훈훈한 이야기로 여겨지는 것과는 다른 분위기이다. 이는 일종의 일본식 민주적 자제인 면이 있는디, 일단 내각제인지라, 의원이 대신이 되는게 기본이라서 그렇기두 허다만, 어차피 성청의 일은 관료가 주도적으로 하고 의원출신 대신은 그냥 도장만 찍어주시믄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디(사실 관료의 정치인 길들이기라는 점은 한국도 썩 자유롭지 못허긴 허다만...) 그만큼 관료의 장악력이 확실한 이상, 오히려 관료가 일정이상은 나아가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는 부분이 있다. 그랴서, 일본 관료들은 커리어를 끝까지 밟을 경우 사무차관이 끝이다. 아예 정계로 진출할 사람들은 중간에 그만두고 선거에 나간다만. 한국에서 비슷한 느낌을 보려면 검찰을 보믄 되겠다. 정치할 검사는 적당한 직급에서 물러나 자기가 활동할 당에 들어간다. 정치할 생각이 없이 계속 검사할 사람은 검찰총장하고 끝이고. 사실 말 나온김의 이야기지만 그런 점에서 윤석열의 정계진출 시도는 굉장히 언어도단이라고 생각한다만... 요즘 한국정치는 생각만해도 신물이 나올 거 같으니,
각설하고,
일본 관료계가 민주적 통제가 부족하다는 부분은 꽤나 전부터 지적되어 온 부분이고, 민주당은 이를 손보겠다고 집권전부터 벼르고 있었다. 구체적인 조치야, 나가 일본신문을 보는 게 아니니 자세히까정은 모른다만, 의사결정과정에 있어서 관료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방향으로의 조치를 시행하는 한편으로, 관료의 자율성을 줄이고 정치인의 장악력을 높이는 조치들이 잇달았다고 안다. 근데, 이게 당대에 하나의 부작용, 후대에 하나의 부작용을 유발허는디, 당대의 부작용은 그 동안 관료들이 다 해처먹는다! 라고 불만이 비등허긴 혔다만, 그 말은 뒤집어보믄 관료가 일을 다 해왔던지라, 그 관료의 영향력을 줄인다는 것은 그 들이 처리하던 그 업무영역을 어디선가는 메꿔야 헌다는 말이 되는데... 일본정도로까지 관료의 우위가 강하지 않은 한국에서도 사실 관료들의 협조 없이는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지를 않는디(기억할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것다만, 박근혜 시절 해양수산부문의 전문가였던 윤진숙 전 장관조차도 관료가 써주는거 대독하기만 하는걸루 조롱거리가 된 일이 있었다. 윤진숙은 일 제대로 못하다가 물러났는디, 오히려 이게 본인에겐 전화위복이 된게, 그가 물러나고 2개월 뒤 세월호 사건이 터져부럿다...) 일본에서는 오죽하랴. 그랴서 행정난맥상이 상당혔다구 헌다. 안 그래도, 자민당과 노선이 달라 개혁한다고 제도와 지침은 자꾸 바꾸는데, 그걸 실제로 집행해야 하는 관료들이 반은 민주당 정권에 억눌려서, 반은 니들 하고 싶은대로 해 봐라~ 하고 손 놓으믄서 개판이 뒤야부럿던 것.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은 이런 데에서 나온다, 랄까나...
다 써놓고 복기허다봉께, 후대의 부작용을 빼 묵었네잉... 원래 강력한 독자성을 지니던 관료집단에, 민주당시기의 개혁... 이겠지...? 하여튼 개혁으로 정치권의 개입이 상당부분 가능해졌는디, 이걸 정작 잘 써먹은건 아베정권이 뒤얐다. 모리토모 가케 사건을 비롯해, 관료집단이 총리관저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눈치를 보고 손타쿠를 한다는 이야기는 꽤나 파다하다. 그리고, 그 실무를 스가 요시히데가 혔었다고도 허구. 원래 의도대로 관료의 폭주를 억제하는게 아니라, 관료가 정당히 견제해야 할 일조차 못하게 뒤야버렸다는 것. 뭐야 역시 민주당의 실패 맞잖아 쑺
3. 민주당의 내분
오자와 상은 크고 높아서 함부로 다루지 않고 싶지만, 오자와 이치로라는 존재의 민주당에서의 존재감 땀시 안 다룰수는 없는 것. 오자와 라는 인물의 특징을 간단히 두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유능하다
(2) 썩었다
사실 나가 보기에 오자와의 썩음은 좀 과대평가 된 부분이 있다구 본다. 이를 방증하는 부분이 민주당 집권기에 있었던 오자와 기소와 관련된 여러 해프닝이다. 정확히 무슨 혐의였는지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은 양해를. 이 또한 이해하기 쉽게 간단히만 말허자믄, 오자와에게 비리혐의가 제기 되었다. 그런데, 이걸 검찰이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어느 나라나 검찰은 철저하고 꼼꼼허지만, 민족성의 근저에서부터 꼼꼼함이 깔려있는 일본 검찰이 무려 불기소처분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에는 검찰심사회라는 것이 있어서, 검찰의 기소처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대충 검찰의 기소에 대한 배심원판정? 그런 느낌이라구 보믄 되는디... 이 검찰심사회에서 불기소처분을 무효화하고 기소할 것을 요구해서 기소가 되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론 무죄판결... 즉, 제도적으로 오자와는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받았는데, 대중들이 그걸 못 받아들였다, 라고 보믄 된다. 오자와라는 인물은 킹무갓키에도 나오고 위에도 썼지만 今다나카 가쿠에이라 칭할 수 있는 정치의 고수다. 다만, 그 정치의 방법도 다나카 가쿠에이 같다는 게 문제... 일본이 잘 안 변하는 사회라고 허지만, 아무리 그랴두 70년대 정치수법이 지금 시대에도 고스란히 통할 정도로 안 변하는 사회는 아니다. 전임 오히라 마사요시 내각총리대신의 급사로 인해, 내각총리대신 자리를 엉겁결에 받은 스즈키 젠코 원 내각총리대신이 남긴 유명한 말이
"아마 돈 안쓰고 총리가 된건 나 뿐일 거 같다"
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79년처럼 저렇게 총리해보겠다고 돈 뿌렸다가는 난리나는 세상이다. 오자와는 지금 시대에, 저 시대의 정서에 기반한 정치를 해대고 있는지라, 본인의 강력함과 유능함과 별개로 구시대 정치인, 썩은 정치인이라는 이미지에서 당췌 자유롭지가 못허다. 어찌보믄 진짜로 문제가 있는게 맞는데, 본인이 수완이 좋아서 법에만 안 걸리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만, 70년대에도 그러다가 잡혀간 정치인 많고, 검찰의 수사기법은 그 때보다 발달한 세상이라, 법적으로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은 그리 가벼이 볼 일은 아닌건 분명허긴 허다만서두. 민주당의 2009년 총선에서의 압승이 오자와의 리더쉽이 결정적으로 작용혔던지라, 당내에서는 오자와의 세력이 상당히 강했으나, 그 오자와의 정치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은 상당혔던 것. 이것이 그가 총리가 되지 못한 근본적 배경이기두 허구, 저 맨~ 위에 에다노 상과의 사이가 좋지 않다고 혔는디, 에다노 상 본인이 그러한 오자와 정치에 대한 반대를 강력히 표방하는 인물이어서 그렇기두 허다.
하튼 그런 전차로, 오자와와 반 오자와로 민주당은 집권 내내 날을 샜고, 안 그래도 이미지 좋지 않은 오자와가 이끄는데, 그 오자와가 주축이 되어 내분을 해싸대믄서, 국정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니 민심이 남아나겠는가? 전반적으로 보자믄 민주당 정권의 지지기반이 허물어진 덜 구체적이믄서도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이것이라고 볼 수 있다.
4. 첨각열도
바로 위에 덜 구체적인 원인이 내분이라구 혔는디, 구체적인 원인이 무엇이냐, 하나를 꼽는다믄 이거다.
아마 한국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희토류라는 것을 처음, 혹은 제대로 알게 된 사건이기도 할 이 사건은 2010년 9월에 발생혔는디... 동중국해 한 가운데 떠 있는 이 섬은 아시다시피 일본과 중국 사이의 영토분쟁 대상이 되는 지역이다. 마, 이렇게 말허믄 일본입장에선 싫어허겠지만, 하여튼 이걸 갖고 갈등이 있다는 자체는 사실이니께. 한국의 독도도 그렇듯이. 첨각열도는 일본이 실효지배허구,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허는 곳인디, 2010년 9월에 중국 어부가 일본의 영해내에서 불법조업하다가 체포되는 일이 벌어졌다. 중국입장서는 당연히 격앙혔구, 대중시위가 좀체 허용되지 않는 중국에서 대규모의 반일 시위가 용인될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중국이 시행한게, 희토류의 전면 수출금지였다. 희토류가 뭔지야 대충들 알것지만 간단히 설명허자믄, 첨단산업부품 - 반도체, 휴대전화, 태양광발전 등등에 많이는 아니지만, 없으면 안되는 위치를 차지하는 원료들이고, 이것의 전세계 생산량의 3분의 2를 중국이 차지허구 있었는디, 이것의 수출을 전면금지해버렸다. 그러자, 일본정부는 몇일 버티지도 못 허구, 바로 중국어부를 석방해버리는,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대 굴욕을 당해버렸다.
이 사건은 여러모로 입체적으로 민주당 정권에 엄청난 타격을 준 것을 넘어, 일본인의 대중인식의 방향 자체도 결정지어버린 부분이 있다. 앞서도 말혔듯이 하토야마 유키오는 한국 중국등과 친하게 지내는 우애외교를 내세웠고, 미국에 대해서는 그동안의 일방적인 결속이 아닌 '정상적인' 관계를 갖겠다는 노선을 표방혔다. 그러나, 대동아전쟁이후 근 70년간 일본은 미국과의 결속... 이라 쓰고 보호아래서 안전을 보장받아 왔는디, 이 보장을 내팽개치려는 거냐는 불안감이 앞서 후텐마 기지 사건을 크게 만들었다고 설명혔다. 마, 탈구입아혀서 아세아 제국과 친하게 지내믄 되지. 쟌넨! 잠궈라 희토류 였습니다! 가 된 게 이 사건인 것. 즉, 단순히 일본이 중국에 굴욕을 당하고 끝인게 아니라, 하토야마를 위시한 민주당 외교가 총체적 붕괴되어 버린 사건이 이 사건인 것이다. 잘 지내던 미국과의 관계는 파탄내버리고, 잘 지내보려던 아세아제국에게는 싸대기 맞고, 일본은 국제고아가 되어버리는 거 아니냐? 라는것이, 막연한 의혹에서 구체적인 공포로 떠오른 게 이 사건인 것. 추가허자믄, 다음다음해에는 한국에서 이명박으 독도방문 사건 + 천황사과요구 발언등으로 인해, 한국에게도 싸대기를 맞음으로서, 그만 둬! 이미 우애외교의 HP는 제로야! 이던 상황에서 끗끗내 마이나스를 찍게 만들어부럿다...
의미심장하게도, 2010년은 1971년 이래 40년간 세계 GDP 2위(집계방법의 차이에 따라서는 쏘오련이 2위인 집계도 있으나, PPAP가 아닌 노미널로는 아무래도 일본이 계속 우위였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를 굳게 지켜온 일본이 마참내 중국에 따라잡혀 3위로 내려앉은 그 해이기도 혔다. 일본은 침몰하고 중국이 그 자리를 빼앗는 것이 여러모로 오버랩이 되어버린 해 였던 것. 앞서의 국제미아가 될 우려에 대한 공포가 이제 더 이상 중국에게 우위가 아니라는 점에서 미국에겐 버려지고 중국에겐 잡아먹힐지 모른다는 구체적인 양상으로 승화뒤야부럿고, 이 후 일본에서의 반중정서는 급격히 고양되었다. 그리고, 그 스토오리 라인을 그냥 깔아제낀거나 마찬가지인 민주당은 스스로 화덕으로 기어들어가 불을 지펴버린 꼴이 된 것이고... 일본인들이 민주당이라믄 경기를 일으키는 가장 구체적이고 강력한 이유가 이 것이라는 점은 내가 보기엔 틀림읎다.
이상의 4인방이 민주당을 문화혁명해버린 원흉되겠다. 첨각열도가 강청이겠지? ㅎ
많은 사람들이 동일본대진재로 인해 일본민주당이 망혔다구 생각허는디, 그건 본질이 아니다. 그 것은 단지 이미 망해있던 민주당에게 어떻게든 반격을! 해 보겠다는 모든 의지를 상실하게 만든 사건에 지나지 않는 것... 2009년부터 2010년 사이에 민주당은 이미 망해있었다. 마, 동일본 대진재가 읎었다믄 지금보다 상황이 나았을지 어땠을지는 모르겠다만... 어쩌면 지금 입헌민주당의 굳건한 당주인 에다노 유키오상이, 대중적으로 인지도를 얻고 스타가 된 것이 동일본대진재 당시 관방장관으로서의 맹활약이었다는 점을 생각혀보믄, 그나마 희망의 기둥인 에다노마저도 뜨지 못했을지도?
일본 양심세력을 강하게 지지하고, 어떻게든 우경화를 되돌리기를 바라는 것이 내 입장이지만, 솔직히 민주당집권 4년은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좋게 볼 구석이 단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재앙 그 자체였다... 심정적인 면을 빼고, 냉정히 저들에게 다시 정권을 쥐어줄 수 있겠느냐고 하면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는 4년이었다. 다시 기회가 온다믄 그래도 저 때보다는 낫겠지. 그러나 다시 기회가 올까? 얼마전의 재보궐 선거에서 야권공투가 3개 선거구에서 모두 승리하는 일이 벌어지긴 혔다. 그러나, 여전히 차기총리로 누가 적절하냐고 하는 여론조사에 에다노 유키오란 이름은 저~~~ 아래, 4%밖에 못 받은 스가 요시히데보다도 밑에 있을 뿐이다... 심지어
이딴게 여론조사에서 1위다. 솔까 한국정치가 엉망이라고 하지만, 일본정치를 들여다 볼작시면, 한국 정치는 고오급 첨단정치다...
민주당이 살아날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는 개뿔. 지금 같아서는 택도 없는 소리. 단지, 93년 이전의 1.5당체제 정도로라도 회복했으믄 좋것는디, 그것조차 참 만만치가 않다... 아베의 평판이 뚝 떨어지고, 스가가 엄청난 혹평을 받고 있고, 차기 주자라는게 저런 꼴이니, 그랴두 다음 중원선은 이전보다는 나을거라고 기대해보긴 헌다만...
이 영상을 쓸 날이 올 줄이야. 예술을 정치선전에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공산주의 국가답게(사실 자본주의 국가라고 안 그런가 하면 이래저래 드는 생각이 있지만) 중국에 여러 선전예술물이 있는데, 이 영상은 대표적인 선전가요인
沒有共產黨就沒有新中國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다
라는 노래의 영상인데, 보시다시피 흑인이 부른 영상이다. 나이지리아의 가수인 브라더 하오라는 양반이 이 노래를 듣고 꽂혀서 부른 영상이라는데, 들어보시믄 알겠지만 목소리가 청아허니 썩 괜찮게 불렀다. 일대일로로 아프리카를 정복해나가는 신제국주의 국가 중국의 선전영상으로서도 딱 이지 싶고, 저 노래를 부르다보니 중국을 진짜 좋아허게 된 친중인사인지라
바이두백과에 항목도 충실하게 되어 있는 등, 중국과 나이지리아를 비롯한 아프리카간의 중아 우호의 상징? 같은 캐릭터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이다. 브라더 하오의 청아한 목소리가 돋보이는 영상이니, 중국을 싫어하는 당신이라도 한번 들어보자.
각설하고,
보시다시피 노래의 제목 몰유공산당취몰유신중국 은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다, 라는 뜻이다. 이 노래를 소개하려고 이 글을 쓰게 된 거는 아니고 지난번 티토와 프라뇨 투지만을 다룬 글에 달린 이 댓글
"스탈린, 드 골, 티토가 함께했던 시대라니 중화의 큰 인물 모택동이 떠오르는군요. 킹무갓키에 따르면 진운陳雲이 이런 말을 했다죠.
"만약 모주석이 1956년(대약진 운동 이전)에 서거했다면 그는 틀림없이 중국 인민의 위대한 지도자로 남았을 겁니다. 그가 1966년(문화대혁명 이전)에만 서거했어도 뛰어난 공이 조금 퇴색될지언정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는 1976년에 서거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에 대한 반론아닌 반론을 하려고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사실 이 블로그야 내 지인들 말고는 어쩌다 얻어걸린 방랑자나, 아마 대부분은 GDP랭킹 때문에 오게 된 사람이 대부분일 것인지라, 댓글 다는 사람은 99%지인들이고, 저 댓글을 단 양반도 지인이기에, 이미 이야기는 대충 된 부분이지만, 미묘하게 사람들의 인식의 헛점사이에 오묘하게 존재하는 관념에 대한 이야기가 되는지라, 굳이 포스팅을 남기게 뒤얐다.
못된동이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이러니 저러니 혀두 진한진수당송원명청에 이은 제 10대 중화제국의 태조 아닌가. 마, 공산국가를 군주국으로 폄하하는 논리를 극히 싫어하긴 헌다만, 중국이라는 나라의 제국으로서의 역사가 주는 압도적인 느낌을 생각허믄 비유로서는 그만한 것도 없다는 점은 분명하지 싶어서, 이 비유의 매력을 저버릴 수는 없기에 나도 쓰곤 헌다. 10대제국 중국의 태조 못된동. 그가 대단한 이유는 10대제국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의 저 댓글처럼 10대제국은 못된동이 없었으면 존재할 수 없었을까?
최근 인터넷상에서 주로 반중국성향 혐중성향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장개석 재평가론이 활발하고, 넷 상에서 혐중정서는 압도적인데 반해, 굳이 한국에서 공산중국을 옹호하려는 세력은, 저 혐중세력이 민주당지지자들을 친중파로 몰아붙이려는 것과는 전~~~혀 달리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친 민주당 성향 커뮤를 가봐도 혐중정서는 정도만 다르지 마찬가지이다. 민주당 지도자들이 중국에 대해 대립을 피하는 건 어디까지나, 한국경제의 압도적인 중국의존 때문이지, 중국에 나라 팔아먹으려 하기 때문이 아닌데, 혐오감에 사로잡힌 사람이 과연 이성적 판단을 할 수나 있겠나?) 이제는 대충 넷상에서는 주류담론이 된 거 같긴 허다. 물론 나는 이러한 재평가를 혐중성향에서 나온, 결론 정해놓고 갖다붙이기라고 보는 입장이다. 패자가 패자인데는 이유가 다 있는 법. 물론, 그가 그 동안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병신취급만 받아온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장개석은 대단한 지도자인데 별 능력도 없는 주제에 사악하기는 드럽게 사악한 못된동한테 졌다, 라는 담론은 지나치게 일차원적이지 않은가? 정치에서 과정을 중시해야 하는 것과 별개로, 평가는 결과갖고 하는거다. 진데는 진 이유가 다 있는 것. 그냥 장개석이 못된동보다 병신이라 진거다. 훨씬 거대한 세력과 월등히 유리한 외교적 상황, 압도적으로 높은 위신을 갖고 있음에도 졌는데 뭔 말이 많나?
그런데, 지금 이 주제 -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다, 에 있어서는 이러한 상호관계가 좀 미묘해지는 부분이 있다. 즉, 역사에서는 어째서 하늘은 장개석을 낳고 또 못된동을 낳으셨는가! 라서 장개석이 결국 패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승자가 된 공산당은 못된동이 영도하는 공산당이 존재하기에 비로소 신중국이 성립할 수 있었고, 그렇기에 못된동은 위대한 지도자다, 라는 논리를 설파해 왔으며, 상기의 저 지인은 친중성향이 아님에도 그러한 전제 자체는 부인하지 않고 있다.
굳이 반박하려는 의도가 아니더라도, 반대방향에서 접근해보자. 논리학을 공부했다면 역이대우 뭐 이런거로 이야기해보겠는데, 나는 내 사고의 틀을 기술적으로 바꾸는? 라고 해야할 지 모르것는디, 그런거에 엄청 피곤함을 느낀느지라, 늘상 의식의 흐름으로만 생각을 허는지라...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이 없다, 의 반대명제라면 장개석만 있으면 신중국은 없다, 정도일까나? 만약 역사에서 공산당의 저항을 어떤 식으로든 받지 않았다면 장개석은 무난히, 현실에서처럼 대만섬으로 쫓겨났고, 이제 본성인들 등쌀에 존립조차 위태로워진 중화민국이 아닌, 중화를 통일한 중화민국을 수립했을 것이다. 그럼 그것도 신중국 아닌가? 신중국이라는 개념에 대한 중화인들 사이에서의 논의가 어떤지 정확히는 모른다만, 아마 공산중국에서는 공산당이 세운 중국에 한정해서 말하려 들 것은 안 봐도 바이두일 것이지만, 공산당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대만이나 그래도 일상에선 궁시렁 거릴 수 있는 홍콩, 중화문화권이믄서 따로 나와사는 싱가포르 같은 곳에서 저러한 정의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외세의 침략의 와중에 전통중국이 형해화된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고 새로이 근대세계에 독자적 국가로서 설 수 있는 중국이라는 폭넓은 의미의 단어로 신중국이 쓰일 것이고, 공산당이 세운 신중국은 그것이 현실에서 실현된 형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걸로 받아들여질 것. 뭐, 공산당을 혐오하는 사람은 신중국도 못된다고 할 지 모르겠다만.
사실 현실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논자가 1946년까지만해도 장개석이 이끄는 중화민국이 당연히 신중국을 세울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공산당과 타협을 하든 공산당을 쳐부숴서든. 심지어 가장 위대한 지도자 스탈린 동지께서도 다르게 보지 않았을 거라 여겨지는 여러 정황이 있다. 그러나, 국공내전의 전황이 1947년에 들어 급격히 공산당에게 유리하게 기울믄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가능할거라 생각지 않았고, 심지어 상당수의 공산당 구성원조차도 되었으면 좋을 꿈인데 그게 될까? 라고 생각혔을 게 틀림읎는 공산중국이 현실에 나타나버린 것일 뿐. 만약 공산당의 기적과도 같은 승리가 아니었다면, 장개석의 중화민국은 1940년대 하반기에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정부로서 무난히 출범했을 것이다. 물론, 앞서 진한진수당송원명청의 9대 통일왕조라고 혔지만, 실질적으로 기능한 통일왕조는 한당송원명청 6대왕조이고 나머지 셋은 과도왕조에 지나지 않았긴 하다.(그렇다고 해서 삼국지를 끝낸 진나라를 뺄 수는 없잖아! 관우 아세요?) 장개석의 남경국민정부도 그랬을거다 라고 볼 수도 있긴 허다. 장개석의 국정운영능력이 영 좋지 않았던 것도 있고, 불과 10여년전만해도 허구헌날 장개석에 맞서 반장전쟁을 일으키던 산서제국 황제 신중국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염석산 동지를 비롯한 수많은 효웅들도 있었지 않은가. 그러나, 이는 대동아전쟁을 거치믄서 전혀 달라진 장개석의 위상을 고려해 볼 때, 그 전처럼 염석산 동지가 풍옥상이나 장작림... 은 뒤졌고 장학량... 은 좆됐는데 하여튼 이런 놈들과 손잡고 반장전쟁나부랭이를 일으키기에는 너무 격차가 커져버렸다. 물론 여전히 군벌들의 영향력이 없지는 않으나, 무려 카이로회담에서 루스벨트 처칠(이 시점에선 둘 다 일가실각한 상태긴 하지만)과 3대지도자로 까지 자리했던 사람을 그 밑의 군벌이래봤자 쫌 큰 토호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 뒤집는다? 언어도단이다. 정치 지도자로서의 국내외적 위상 명성을 대체할 인물 같은 것은 없다. 엄청난 실정, 이를테믄 1947년의 하이퍼 인플레이션 같은 것으로 나라가 무너질 수도? 랄 수도 있지만, 그런 일이 국공내전이 없는 상황에서 일어났다면, 엄청나게 큰 정치스캔들이 되기야 혔겠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든 어쩌든 혀서 어떻게든 수습하고, 그냥 계속 다스렸을 것이다. 애초에, 정치적으로 대체할 구심점이 없다. 염석산은 산서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지만 전 중화스케일의 인물이 아니고, 이종인은 나라가 무너지는 상황에서야 간신히 대리총통이나 했을 인물인데, 누가 대체한단 말인가?
오직 못된동이 이끄는 공산당이라는, 다른 존재와 비교를 불허하는 압도적인 원심력이 있었기에, 저러한 실패들을, 국민당이 주도하는 질서... 그것은 거부할 수 없어... 가 아니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대안이 없다면, 그저 그런 나라일망정 그럭저럭 계속 굴러 갈 수 밖에 없는 것. 단지, 산서나 운남같은 변방지역에 대한 간섭여력이 좀 줄어들었을 수는 있겠다만. 중화민국이 이끄는 신중국을 굳이 역대 중국왕조에 비교혀보자믄 온전한 군현제가 실시되지 못한채 지역왕들의 권력을 인정한 한나라 정도? 아마 장개석이 신중국을 세웠다믄, 실질적 성격에서든 다른 그 무엇과도 비교할 바 없는 압도적인 상징성에서든 한나라 초창기의 정국을 참조하고 빨통^^의 행적을 벤치마킹했을 것이다. 영포는 염석산이고 한신은 이종인인가?
이런 신중국도 신중국이다. 공산당이 없어도 신중국은 있다. 못된동이 아편전쟁이래 100년의 동란을 끝내고 새로운 중국을 실제로 출범시킨 사람인 것은 맞다만, 그가 아니었다면 동란이 끝나지 않고 혼란이 계속되었을 거라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그러나 그렇다해서 못된동이 엄청난 인물이 아니게 되는 것은 또한 아닌 긋도 맞다. 앞서도 말혔듯이 누구도 해낼거라 상상하기 힘들었던, 공산당이 주도하는 질서... 그것은 거부할 수 없어... 를 실현시켰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엄청난 일이다. 오히려, 신중국 출범이라는 정치적 구호에 오용되는 바람에 못된동의 승리는 역설적으로 희석된 것이라 봐도 될 정도로 못된동의 승리는 현실적으로 가능할 거 같아 보이지 않았던 엄청난 정치적 승리다. 뭐 여텨까지 봐 왔으믄 알것지만, 나는 못된동이라 부를 정도로 신중화천자를 극히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좋은 인물이 아니다. 단지, 역사를 뒤져보믄 그다지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다른 능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디, 정치투쟁에서 이겨내는 능력, 권력을 쟁취해내는 능력하나는 기가 막힌 인물 이상으로 보지 않는다. 단지, 그 업계에선 공전절후의 비교를 불허하는 압도적인 성과를 낸 인물일 뿐. 그런 면에서 보면 오히려 못된동은 서태후와 비슷한 인물인 면이 있다. 다른거 다 드럽게 못하는데,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능력하나는 기가맥혔다는 점에서.
칭찬을 하는건지, 까는건지 좀 혼란스러운 이야기가 뒤야부럿는디, 사실 못된동이라는 인물과 그의 승리 자체가 갖는 성격이 상당히 혼란스럽기 때문에 으짤 수 읎는 면이 있다. 못된동이 논란의 여지없이 대단한 인물인 부분은, 오히려 공산당 내의 권력장악과정에서 드러나는 면이 있다. 쏘오련의 노선을 맹종하던 모험주의자들과 달리, 그는 중국의 현실이 쏘오련과 다르다는 점을 정확히 간파했고, 그가 이끌던 동안에는 그럭저럭 돌아가던 강서해방구가 쏘오련의 권위를 빈 자들이 이끌자마자 패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허다.(물론 다분히 혐중적인 논자들에게 선호되는, 5차초공은 다르다 5차초공은! 같은 주장도 있긴 허다만, 마찬가지로 못된동은 다르다 못된동은! 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 중공당사에서 대장정이 금과옥조가 되는 것도, 그 와중에 못된동이 당을 완전히 장악허는데 성공혔기 때문이기두 허구. 강서소비에트의 수립부터, 연안으로의 도피과정은 못된동이란 인물의 정치역정에서 가장 압도적인 성공의 기간이라혀두 과언이 아니라구 본다. 어떤 면에서는 국공내전에서의 극적인 대역전보다도 더. 이러한 점을 볼 때, 그의 능력이 탁월하다는 자체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만, 이러한 정치투쟁에서의 기가맥힌 감을 "적들" 에게만 썼다믄 다행인디, 자국민에게도 사용한 문화혁명 같은 짓을 혀댔으니 문제인거지... 정치적 상황을 읽고 거기서 이겨내는 데는 천재적인데, 이를 통해 확보한 권력을, 국태민안에 사용하는 능력은 ??? 이니 그 인물을 단정적으로 규정내리기 힘들어지는 것... 게다가, 대개는 그 둘이 갈리지 않거나, 갈려도 저렇게까지 갈리지는 않는다. 못된동은 그 둘이 갈린 점에서도, 앞서 말한 것과 같은 공전절후의 인물일 수 밖에 없는 것... 여전히 공산중국이 극도로 민감한 정치적 주제이고, 그 공산중국의 정치적 존재감과 상징성은 거의... 도 아니고 그냥 전적으로 못된동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이 인물이 객관적으로 논의될 여건이 아니라 그렇지, 이만큼 입체적이고 재밌는 인물도 흔치 않다. 언젠가 미중갈등이 정리되고 중국이 온전하게 국제질서를 보호하는 한 축이 되든, 패배하여 주저앉든 못된동으로부터 시작된 질서가 끝나고 나면 호사가적 관점에서는 이만큼 재밌게 논할 수 있는 인물도 흔치 않을거라는 이야기. 물론 중공이 승리한 미래와 패배한 미래에서 그에 대한 논의는 전혀 달라지겠지만, 애초에 못된동이란 인물은 내 관점에서는 "역사적" 인물이 아니다. 무슨 의미냐믄 역사의 자연스러운 흐름과 별개로 존재하는 인물이라는 것. 아 이거 참... 원래는 가볍게 쓰고 넘어갈라 그렸는디, 지난 글두 그렇구 역시 펜... 아니 키보드만 잡으믄 생각이 이것저것 글믄서 글이 무거워지네... 사실 원래 좀 가볍게 생각허구 시작허긴 혔는디, 못된동이란 인물에 대해 글을 쓰고 그에 대해 생각을 해 보니, 이거 생각혔던거부다 훨씬 대단헌디? 라는 것을 자각한 면이 있달까? 랄까나...
하튼 못된동에 대해서는
각설하고
결론은 그거다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다 X
공산당이 없으면 공산신중국도 없다 O
라는 것. 마 원래는 못된동이 없으면 공산신중국도 없다, 라고 쓰려구 혔는디, 라임과 플로우를 맞추는 건 중요헌 거니께
그리고, 공산신중국이 아닌, 국민신중국이었더라도, 중국은 지금같은 대국이 되었을 것이다. 다른 자리에서 계속 이야기혀왔지만, 동아시아의 급격한 발전은 한자문화권의 힘인거니께.
언젠가는 안 그랬던 적도 있었던 거 같지만, 잠깐잠깐을 빼면 언제나 인생은 환멸으로 가득찬 것이라, 한동안 글 쓰는 것두 집어쳤는디, 그랴두 버려두다 시피 헌 블로그에 간간이 댓글이 있곤 허는거 보니 참 신기허기두 허구, 나란 인간이 그랴두 할 수 있는거라고는 글 쓰는 거 뿐인지라, 그 동안 생각해 온 간단한 생각 짧게 남겨둬볼 으욕이 생겨부럿다. 말 나온김으 이야긴디, 나으 글쓰기는 지나치게 번잡하고 간결함이 떨어지는지라, 그런 부분을 좀 유의혀야 것다구 생각은 혀 왔는디, 이번에 함 그런 관점에서 써 보자.
각설하고
위 사진이 요시프 브로즈 인 것이야 알 사람은 알테지만, 대부분은 티토라고 해도 모르것제. 이제는 티토슨상님도 잊혀진 사람이라... 인물은 오지만 언젠가 가는 것이구 역사는 흘러 그를 기억에서 지우는디, 오늘 글은 그와 관련하여 비범함과 범속함의 미묘한 관계에 대해 든 생각을 써 볼라 칸다.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위으 사진은 두 위대함의 만남인디, 발칸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티토동지야 발칸에서 가장 위대한 동지고... 솔까 저 시대가 미쳐 돌아가는 시대라 가장 위대한 지도자 스탈린 동지, 두 번째로 위대한 지도자 드 골 동지만 아니었어두, 발칸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라는 칭호에서 '발칸에서' 는 떼고도 남을 위대한 지도자가 티토동지이시다. 그에 대해서두 이래저래 할 말이 많지만, 오늘의 컨셉은
간 결 함
이니까. 시작부터 틀려먹은거 같긴 허다만 ㅋ. 티토동지께서는 본인 스스로의 위대한 정치지도력뿐 아니라, 굉장히 선진적이시게도 언플과 이미지의 중요성을 잘 알고 활용허신 분인디, 발칸 산속에서 겔릴라 투쟁을 하는 와중에도 서방언론을 통해 언플을 끊임읎이 혔구(이 과정에서 알려진 유명한 프로파간다가, 티토의 겔릴라가 발칸에서 독일군 30만을 붙잡아두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는 7만이었고, 가장 위대한 지도자 답게 스탈린 동지께서는 실제 수치를 알고 계셨다) 심지어 어느 자리인지 기억은 안 나는디, 서방대표와 접견하는 자리에서 파격적이게도 빽구두에 올빽양복을 입고 나가는 미친쏀쓰를 통해 서방오피니언리더들에게 신선한 썈크를 줬던 일이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형성한 이미지는 대동아전쟁 유럽전역기간 내내 잘 써묵기두 혔구, 대전후 유고가 서방과 스탈린 동지 사이에서 줄타기 허는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잘 써먹기두 혔구. 단지 이게 정치적 이미지 뿐만이 아니라, 본인 자체가 상당한 호사가이믄서 세상의 좋은 것을 즐길줄 아는 사람이었고 꾸미고 멋내는데도 관심이 많았다구 헌다. 빽구두에 빽양복같은 미친쏀쓰는 아무나 생각하는게 아니다. 그런 점에서도 위대한 지도자 이 전에 위대한 인간이라 저 양반을 극호한다. 내가 한 사람의 삶을 골라서 살 수 있다믄 외모문제를 빼고 본다면 당연히 티토 아닐까. 물론 티토의 외모도 출중허긴 허다만 내 타입은 아니니께 ㅎ
유서프 카쉬라는 또한 위대한 인물사진가가 있다. 앞의 글에서도 소개헌 적이 있는거 같은디
이 사진으로 유명한.
그의 사진은 인물의 본질의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을 잘 드러내기로 정평이 나 있는디, 맨 우으 사진도 카쉬가 찍은 것이다. 원래도 명성높은 사진가였지만(애초에 그러니까, 처칠의 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인 사진을 찍을 사진가로 발탁이 뒤얐었겠지?) 처칠의 저 사진을 찍은 이후로 전 세계적 명성을 읃게 뒤얐고, 호사에 환장한 티토동지께서는 그러한 카쉬를 초청해다가 맨 위으 저 사진 말고도 자신의 인물사진을 여러장 찍게 하셨다. 유서프 카쉬 티토로 검색하믄 다른 사진들도 볼 수 있다. 갠적으로는 맨 위으 사진을 좋아혀서 저 걸 이미지 샷으로 박았다만. 위대한 인물은 위대한 인물을 알아보고 어울린다, 라는 면에서 윗 사진은 위대함과 위대함의 만남이랄까나. 처칠같은 개밥의 도토리는 좀 거슬린다만 ㅋ
각설하고,
사실 티토동지의 위대함에서부터 오늘 글의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발칸, 특히 남슬라브인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구구하게 말할거 없이 그냥 개판이다. 수 많은 나라와 부족으로 갈라져 지리멸렬허다가, 오스만제국한테 수백년간 지배받으믄서 종교적으로도 뿔뿔이 흩어졌고, 근대에 들어 민족주의의 폭풍이 몰아닥쳤을 때, 당연히 이 갈라진 부족 나뉘어진 종교는 고스란히 아이덴티티간으 갈등으로 이어졌고, 그 와중에 오스트레일리아 황태자가 암살당하고 전쟁이 나고 전쟁(1차대전)의 결과로 억지로 한 나라로 만들어졌다가, 다음 전쟁(대동아전쟁 유럽전역)와중에 또 쪼개져서 서로 수십만씩 학살하고 난리가 나 부런 역사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유고내전이란 이름으로 또 수십만명씩 서로 죽이고 학살하고 난리가 나 부럿다가, 이제와서야 싸우다 지쳐 평화가 찾아와 그럭저럭 살고 있는 동네가 남슬라브인의 땅 유고슬라비이다.
슬라브인은 러시아로 대변되는 동슬라브인, 체코 폴란드로 대표되는 서슬라브인이 이름이 있구, 오스트레일리아 남부 그리스 북부의 지역에 모여살던 남슬라브인이란 분파는 좀 이름값이 읎다. 그나마, 세계적 제국이 된 동슬라브인, 뚜렷한 민족적 정체성을 수립허구 들으면 이름을 아는 나라인 체코 폴란드 등으로 발전한 서슬라브인과 달리,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몬테네그로,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등 이름을 월드컵 4강때문에 좀 이름이 있을 크로아티아 말고는 사회과부도족 이외에는 들어도 못 봤을, 그나마도 크지도 않은 나라인 한국의 1개 도 만도 못한 크기와 인구의 나라들로 갈갈이 쪼개지는 바람에 안 그래도 존재감이 없는게, 남슬라브인의 안타까운 현실이라 허것다.
간단히 말허려구 혔는디, 워낙 역사가 구구허다봉께 말이 길어지네. 남슬라브인으 아이덴티티는 좀 복합적으로 미묘한 면이 있다. 남슬라브인이라는 큰 아이덴티티가 읎는건 아닌디,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세르비아 인헌티 니들은 같은 민족이야~ 허믄 나가 저놈들하고 같은 민족이라고라? 허믄서 붕쯔붕쯔하는 부분도 있다는거. 그리고, 그로 인해 크게 두 번의 상호간의 대 학살전을 치렀는디, 한번은 2차대전 시기의 상호학살이고, 다른 한 번은 유고내전 시기의 대학살이다.
그리고 그 중간에, 그 동네가 평화로웠던 시절이 바로 티토동지가 영도하던 시기이다.
티토본인은 크로에이셔인 애비(웃긴게 애비이름은 그의 성과를 엎은 프라뇨이다 ㅋㅋ)와 슬로베니아인 애미 사이에 태어났는디, 한국어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자료(킹무갓키...)로서는 그의 아이덴티티가 무엇이었는지 뚜렷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아마 크로에이셔에 가깝지 않았을까. 슬로베니아는 마치 저 북방의 에스토니아가 발트인의 혈통이믄서도 우리는 노르딕이랑께요~ 하는거랑 비슷허게, 우리는 캐쏠릭 서유럽이오~ 하는 느낌이 있어서 아이덴티티가 좀 흐린지라.
티토의 영웅적 겔릴라 활동기야 화려한 총알이 나의 좆까는 시기긴 허다만 이 글으 주제는 아니니 알어서들 찾아보시구, 그렇게 허여 승리한 티토는 개별부족주의를 지양하고 남슬라브인이라는 큰 정체성을 세우는데 주력혔다. 물론, 바로 전까지 서로 수십만명씩 죽여대던 크로아티아인과 세르비아인은 물론이고, 아예 종교가 다른 보스니아인이나 슬로베니아인, 한술 더 떠 혈통조차 다른 불가리아계(오늘날의 마케도니아인)까지 그게 쉽게 될 일이 아니었다만, 철저하고도 정교한 민족평등정책, 민족간 화합정책으로 티토 유고슬라비아 시기의 유고는 민족간 문제가 '거의' 불거지지 않았고, 서로간에 잘 어울려서 잘 지냈으며, 쏘오련의 위성국도 아니어서 유연한 외교 정치적 입지로 나라 자체가 상당히 살만혔다. 티토 본인이 기린아라, 소시적부터 지도자활동을 혔구, 1945년에 집권하고서도 아직 젊었던지라, 그 뒤로 35년을 더 살믄서 1980년까지 티토의 영도하에 안정된 시기를 보낼 수 있었고, 티토가 죽고서도 10년간은 그 체제는 안정적으로 돌아갔다.
위에 '거의' 라고 표현헌 이유는 완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마참내 등장허는게, 글의 제목인 프라뇨 투지만이다.
티토의 민족정책은 안 그래도 바로 그 민족주의적 충동의 과잉이 세계를 불태웠던 2차대전 직후의 분위기에서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고, 그래서 제대로 먹혀들어갈 수 있었지만, 애초에 그러한 과잉이 어디서 오겠는가? 민족주의 자체가 강렬한 정서적 충동에 기반하기 때문인기라. 그리고, 대~~ 주의 이런 것도 안 먹히는 구호는 아니다만, 애초에 민족주의는 기본적으로 순수성 배제성을 빼고는 이야기헐 수가 없는기다. 거기에, 앞서도 말혔듯이, 애초부터 상호학살의 두 축인, 캐솔릭을 믿는 크로에이셔인과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인이 같은 민족이라구 허믄 ??? 이 나올 수 밖에. 심지어 아예 머슬림인 보스니아인까지 나오믄 말 다했다.
그런고로 티토집권기간에도 중반기부터는 슬슬 저러한 소민족주의들이 대두허기 시작혔구, 그 와중에 가장 두드러지는 인물중 하나가 크로아티아 소 민족주의의 주도자인 프라뇨 투지만이다. 당연히 티토의 정치노선이 남슬라브인의 통합을 강조허는 것인디, 그에 대놓고 반항하는 자는 당연히 정치범이었고, 티토시기 투지만은 상당한 탄압을 받어야 혔다. 그리고, 그런 티토가 죽었다. 남슬라브인의 통합이라는 이상은 존재하기는 허지만, 막연한 것이었고, 현실의 유고슬라비아에서 그 통합의 명백한 구심점이자 근원은 티토의 리더쉽이었는데, 그게 사라진 것. 티토 사후에도, 연방을 이루는 6개공화국은 연방대통령을 순회배출하여 연방을 유지허믄서 각 공화국의 독자성과 자치는 존중하는 형태로 큰 탈없이 이어져나갈수는 있었다. 그러나, 이제 대놓고 투지만이나, 세르비아의 밀로셰비치 같은 인간을 억누를 존재는 없어졌고, 이제 유고연방에서는 슬슬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공산권 붕괴로 인해 당연히 유고에서도 공산정권은 무너졌고, 그를 대체할 정치적 리더쉽을 둘러싸고 본격적인 갈등이 벌어지기 시작혔다. 구 유고의 지도를 보믄 알겠지만 여러 나라가 있는데 그 중에서 비교적 큰 나라는 서북의 크로아티아, 중부의 보스니아, 동남의 세르비아 세 나라이다. 이 중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강국이었고, 독자적 국가로서의 역사도 제일 탄탄한 것은 수도인 베오그라드가 있는 세르비아이고, 헝가리 오스트레일리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상당부분 서방화된 크로아티아, 오스만 지배시기 무슬림화된 보스니아가 그 뒤를 따른다. 위치로 보나 종교로 보나 유고내전 시기에 가장 큰 전장이 되고 가장 큰 피해를 보스니아가 볼 수 밖에 없었달까나.
이 세 나라를 이끄는 세 사람 - 크로아티아의 프라뇨 투지만, 보스니아의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유고내전의 주역(+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 반군의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인데, 이 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이름이 난 것은 보스니아전쟁의 핵심인물이자, 보스니아에서의 학살의 책임도 가장 큰 밀로셰비치(사실 좀 억을은 헌기,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의 수장인 라도반 카라지치가 진짜 당사자이며 그나마 밀로셰비치는 작작 좀 하라는 입장이었다. 카라지치가 안 들어먹고, 밀로셰비치도 결국 그럼에도 지원을 이어가는 바람에 전범혐의를 벗어날 수는 읎었지만)이긴 허다만, 일찍부터 민족주의의 폭풍을 예견하고 예언한 '선지자'는 프라뇨 투지만이었다. 이 양반은 티토밑에서 겔릴라 활동을 하고 군인으로서의 커리어가 가장 크긴 허다만, 대전후 역사학을 박사학위를 딸 때까지 공부(부럽다!)혔구, 그런 학술활동중에, 크로에이셔 민족주의에 경도된 사람이기에, 이론적 인식적 기반이 가장 강했다고 헐 수 있것다. 역사연구란기 민족성과 떨어질 수 있는게 아니고 그에 대한 이해가 가장 깊을 수 밖에 없는 영역인지라, 역사 혔다는 사람이 민족에 경도되기루 맘 먹었다믄 누가 막을 수 있는기 아니다. 물론 대개는 학술활동을 거치믄서 객관화 훈련을 받는지라, 거리를 두게 되지만, 그러다가 흑화되믄 못 막는다는 이야기. 투지만도 그렇고 떡사마(이덕일)도 그렇고... 유고내전도 직접적 계기는 크로아티아의 유고연방에서의 탈퇴시도였기두 헌지라, 시발점이 된 것은 맞다만, 그것이 참혹한 내전과 끔찍한 학살로 이어진건 탈퇴시도 자체때문은 아니기두 헌지라, 유고내전의 아사리판에 이 사람의 책임이 크다고는 하지만, 그의 행동이 문제는 있었어도 범죄가 되진 않았기에,(물론 크로아티아도 보스니아에서 여러 비인도적 행위를 벌였고 그 책임은 분명히 투지만에게 닿는다. 다만 그게 국제정치문제로 비화되진 않았다는 이야기) 이 양반은 신생 크로아티아의 지도자가 되어 '독립전쟁' 도 이끌어 성공시키고 독립국가의 지도자도 허믄서 전쟁범죄자가 되어 빵에서 뒈진 밀로셰비치와 달리,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었다.
남슬라브인이라는 존재의 역사속에서 통합과 분열의 흐름은 부침을 거듭혔다. 아마 여러 역사 정치적 이유로, 앞으로는 이러한 형태으 민족적 갈등이 큰 동란을 불러올 가능성은, 어느정도 안정화된 사회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구, 남슬라브인들도 이제는 산하 소민족들 각자가 자신의 길을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평화롭게 갈라선 체코와 슬로바키아도 다시 합칠일은 읎어보이는디, 서로 저런 끔찍한 꼴을 보고 갈라진 그들이 다시 합치려는 시도를 할 일은 더더욱 읎을 것이다. 결국 대 남슬라브주의(라고 일단 이름 붙인다믄)와 소 남슬라브주의의 수백... 이라긴 좀 그렇고 백수십년간의 갈등은 소 남슬라브주의의 역사적 승리로 끝났다고 봐야할까? 그렇게 본다믄 요시프 브로즈 티토는 역사의 패배자이고, 프라뇨 투지만은 역사의 승자인 것일까? 이상과 현실의 갈등이란 형태로 단순화 도식화하는거 좋아허지는 않는다만, 서로간의 차이를 넘어 화합하자, 라는 건 아무래도 이상에 가까울 것이고 너와 나는 다르니 각자 갈길 가자, 라는 쪽은 아무래도 현실에 가까다고 할 수는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남슬라브주의에 있어서 이건 좀 맥락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남슬라브주의의 시작은 어디까지나 세르비아의 패권주의였기 때문이다. 상술한 바, 슬로베니아나 크로아티아는 일찌기 오스트레일리아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 꽤 서방화 되었고, 그 아래쪽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거의 4백년이나 받었는디, 19세기에 들어 민족주의의 폭풍이 불믄서 남슬라브 여러 나라가 독자적으로 독립하믄서, 원래 가장 강했고, 오스만제국과의 코소보 전투에서 장렬하게 패배하여 멸망했던 기억이 있는 세르비아가 가장 강하게 민족국가로서 발전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각자 다른 역사적 경로가, 상술한대로 남슬라브라는 정체성과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세르비아 등등으 개별정체성이 혼재되는 미묘한 상황을 만들었고, 대개 이런 경우 가장 쎈놈은 패권주의를, 상대적으로 약한쪽은 분열주의... 라고 허믄 왠지 비난 같으니 개별주의를 주창하게 마련이다. 그러한 세르비아 패권주의가 관철된 것도, 세르비아 자신의 성공때문이라기보다는 1차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격동의 과정에서 이뤄진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면이 크다. 그러나 어쨌든 남슬라브주으으 플랫폼으로서 유고슬라비아가 성립은 혔는디, 그 구성원간에 서로 쳐죽여댄다(2차대전)믄 그 상황에서 남슬라브주의를 버릴 것인가, 개별 민족주의를 버릴 것인가? 라는 질문이, 남슬라브인 혹은 슬로베니아인 크로아티아인 보스니아인 세르비아인 몬테네그로인 헤르체고비나인에게 주어진 역사철학적 질문이랄 수 있겠다. 티토가 이 질문을 얼마나 고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위대함을 볼 때 그 양반은 분명히 꽤나 이 문제를 깊이 생각했으리라 확신헌다. 그렇지 않고서야, 유고슬라비아연방의 안정된 정치적 분위기가 단지 그의 강권만으로 이뤄졌을리는 없을테니까. 그러나, 그의 죽음과 그에 이어진 동란속에 남슬라브주의는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졌고, 남슬라브주의라는 낡은 표대를 역사의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것은 프라뇨 투지만+이다. 역사에서의 영웅주의에 대해 미리 이야기를 혀 놓았으믄 좋을텐디, 위대한 지도자 어쩌구 하는 걸 좋아허는 내 스타일상 영웅적 인물에 대한 고평가경향이 있는건 분명허다. 다만 영웅주의 자체는 전혀 긍정하지 않는다. 위대한 인물은 결과적으로 형성되는 것이지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만큼 정치도 다분히 결과로 평가받지 않을 수 없다. 위대한 인물인 티토와 결과를 낸 투지만... 이는 범속한 인물인 투지만이 위대한 인물인 티토를 저버린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위대한 지도자의 성과가 범속한 인물에게 짓밟힌 모양새로 끝난다는 것이 속상해서 끝끝내 이런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부정은 못하긋다. 티토의 뜻을 이을 위대한 지도자가 있었다믄 가능했을까? 그렇다기엔,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라도, 나치독일에 맞서 해방투쟁을 이끈 성과같은 것은 평시에는 내지 못했을거 같긴 하다. 티토가 그 정도의 카리스마가 있으니까, 가능했던 것이라고 헌다믄, 티토 본인의 위대함이 어쨌건간에, 결국 그 또한 역사의 산물인 것... 역사란 게 이래서 참 어렵다...
사실 이 글을 쓰믄서 계속 든, 유사허믄서도 다른 결과를 낸 사례들이 떠 올랐다. 인근의 루마니아라던가, 저 멀리 아프리카의 르완다라던가... 그러나, 그 이야기까지 허자믄 이미 간결함 따위 박살나버린 글 더 산만해지니, 그건 다음의 이야기로 미뤄두기로 허구, 오늘은 티토동지를 기리믄서 여기까지 허기루 허자.
실로 통한스럽기 그지없게, 이번에도 간발의 차이로 카나다를 제끼지 못하여 9위 달성에 실패하였다. 원화가 생각보다 강세흐름을 타지 못하는 바람에, 돌라의 약세로 전 세계가 확대되는 흐름속에서 치고 나가지 못허구, 카나다에게 7백억돌라로 무릎을 꿇고 만 것... 9위 진입할 절호의 기회였는디... 그랴두 성장률 전망 환율 전망이 당분간은 나쁘지 않은지라, 언제고 9위 진입은 노려볼 수 있는 상황. 다른 기관 발표에서는 1인당 소득에서 이태리를 제꼈다고 허는디, IMF 발표에서는 못 제낀지라, 그런 부분이 반영뒤얐으믄 카나다를 제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건 못 넘은건 못 넘은 것... 올해 중반기에 환율버프를 좀 받아서 10월 발표에서는 9위 한번 찍어 봤으믄 좋것다.
세계적으로 돌라 약세로 인해 대부분의 나라가 버프를 받았지만, 중국은 생각보다 버프를 덜 받는 분위기. 애초에, 작년에 코로스 타격을 덜 받았기에, 작년 하반기가 상대적으로 중국이 최상일 상황이었던지라, 기저효과가 있어서기두 헌데다, 최근 흐름을 봉께, 코로스 리바운드로 인해 경기흐름이 나쁘지 않은 지금 시점에 미뤄뒀던 구조조정을 당 중앙에서 하려는 느낌이 있다. 조선업도 그렇고 철강업도 그렇고 그 동안 투자과잉이 두드러졌던 영역들의 사업이 조정을 받고 있는거 보니.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여력으로 세계적 화제인 반도체산업을 살 려는 모양인디, 이건 아직 가시적 성과가 나오고 있지 않응께, 당장 GDP에서 쁘라스는 되기 힘든 부분이 있고. 그럼에도 미국대비 %에서는 작년 10월보다 상승하였다는 점은 중국입장에서는 고무적인 부분. 다만, 미국이 사실상 MMT를 시행하고 있는 상황이고, 그로 인해 미친듯이 뻥튀기가 되고 있는지라, 명목에서 중국이 따라잡는건 작년 전망에서의 긍정적인 흐름과 달리, 당분간은 힘들게 된 부분도 있지 싶다.
요즘 세상사가 허무하고 무기력헌지라, 이것도 쓸까 말까 하다가 간신히 쓰는 것잉께, 그 외으 코멘트는 생략. 10월에는 한국 9위 가즈아.
글 들어가기 전에 1억 조회수에 빛나는 트럼프 슨상님의 명곡 한 번들 듣고 시작허시라. 저런 류의, 특정인물의 통상적 발언을 따다가 꽁트를 만들거나 음악을 만드는 것은 한국에서도 심영물 과 어둠의 노사모 들에 의한 노무현 합성 등으로 유명하...긴 한가...? 둘 다 컬트적 집단에서만 유통되는거니... 합필갤 시절부터 이명박 합성같은 것도 있고 그랬긴 헌디, 그것두 역시 아는 사람만 아는 물건들일테구, 심영물 르네상스 시절에도 개별 영상은 조회수 100만 찍은 것두 거의 읎는걸루 아는디, 그래도 수십만 조회수가 어디냐 허믄 유명하다믄 유명허달수도 있긴 허것다. 그랴두 우리 트럼프 슨상님은 세계 대통령인데다가 구로바루 스타 답게 조휘수가 1억 2500만을 넘으시어, 곧 내지의 인구를 넘을 지경이다. 애초에 워낙 본인이 자신을 드러내기를 좋아허구, 공개발언도 엄청나게 많은지라, 합성에 쓰일 쏘오쓰가 음청시리 풍성혀서 작품성이 더 좋아지기두 혔다만. 제작자인 Maestro Ziikos 장군님이 또 워낙 능력자셔서 발표한 작품도 많구, 아바나 만큼이나 좋은 트럼프 쏭들이 많은디, 다른 것들은 1천만이 넘는 긋두 거으 읎다. 갠적으로는 푸틴 선생님의 피아노 도우미가 돋보이는 세뇨리타(www.youtube.com/watch?v=QoKAEiGMVPw) 라던가 영원한 트럼프의 도우미 오바마 슨상님과의 케미가 돋보이는 바비걸 (www.youtube.com/watch?v=hLNy6T3KkEc) 을 더 좋아헌다만, 저 둘은 조회수가 많이 밀린다. 어찌보믄 이 또한 지난번 글에서 언급혔던 우연의 요소와 관련이 크지 않을까. 관심이란 것은 언제나 희소한 자원이고, 그 관심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혔던 것이 트럼프의 성공시대의 결정적 요소였다구 생각헌다믄 더더욱 그럴지도
각설하고
앞서으 글에서 사회문제에 있어서 구조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지만, 구조적 접근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물론 이것은 현단계의 인류가 아직 미숙해서 그러는 것일수 있구 많은 학자들이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노오력하고 있다만, 그런 노오력은 마르크스이래로 사회학 2백년간 계속 이뤄지고 있으나, 아직 요원하다. 마 늘 말하듯이 2천년 2만년뒤에는 어떨지 모르는 긋이고 그렇기에 노오력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긋다만, 나가 바라봐온 바 20여년간 그렇게 눈에 띄는 진전이 있었으냐? 면 그건 좀... 애초에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상황이 그걸 방증허기두 허구 ㅎㅎ) 우연적 요소가 많다구 혔다. 그러나, 학술적 과학적 접근을 포기헌다믄, 모든 분석은 기술記述에 그칠 수 밖에 없고, 벌어진 일을 따르는 일 밖에는 헐 수 없으니 그런 시도 자체는 계속 이뤄지고 있구 성과가 없는 것만두 아니긴 허다만... 트럼프를 둘러 싼 상황은 나로서는 그에 대한 회의와 야유가 좀 더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 지난 4년간의 오래 된 생각이구, 트럼프의 퇴장을 맞아서 이 글을 쓰게 된 것이기두 허구.
트럼프라는 존재의 부상에 대해서 많이 유통되는 설명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견해는
미국 사회의 문화적 양극화에서 소외감을 느낀 수 많은 대중들이 지니고 있던 어떠헌 불만이 유발한 미국 사회의 근본적 변화의 반영이다, 라는 것
이었다. 그리고 이런 분석들은 대체로 당연히 정치학자나 사회학자들의 견해를 기반으로 허는 것이겠지. 그런데 말이다... 아 여기서 또 나으 즈질 검색능력이 한계를 빚는디, 무려 2015년까지만혀두, 미국 정치에서 민주당의 구조적 우위는 확고한 것으로 여기는 분석들도 많았다는 거. 점점 줄어들어가는 백인의 비중과 늘어가는 마이너 인종집단으로 인해, 마이너 그룹에서으 지지는 확고허구, 백인집단내에서도 그렇게 크게 밀리지 않는 민주당이 백악관은 앞으로 맡아놓고 묵을 것이며 공화당은 가난한 중부지방의 인구는 적지만 많은 수의 주들을 기반으로 상원(아시는 분은 아시긋지만, 인구가 아무리 많건 적건 하나의 주에서는 상원으원은 무족권 2명을 선출헌다)에서나 버티는 집단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 라는 분석들이 유의미하게 대두허구 있었는디... 이런 내용을 서술한 아티클들을 지금으 나로선 찾지를 못하긋다. 당연허다믄 당연헐 수도 있는기, 2016년 3대선거를 몽창 날려먹은 상황에서 저런 분석이 을매나 부질없어 보였긋는가.
여담을 미리 말혀두자믄, 나는 개인적으로 저 견해에 기본적 동조는 헌다만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사실 마이너그룹이 민주당을 지지허는 이유는 민주당이 이민문제에 유화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에 들어와야허는, 들어온 사람들 입장에서 이 문제는 미국 시민으로서으 존재으 문제니까. 그런데 그 문제 이외의 것들 - 특히 문화적인 부문에서 성소수자 문제 종교문제 에서도 그들이 민주당과 견해를 같이 하느냐, 라믄 그것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허구 있었구, 그런 부분또한 이번 대선에서 마이너 그룹에서 트럼프의 득표율 상승으로 상당부분 드러났지 않느냐? 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즉, 정치라는 것에서 이슈는 늘 변허는 것이구(애초에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은 서로 진보 보수의 위치 자체를 바꿔먹은 역사가 있응께) 공화당이 언젠가 부질없는 저항을 포기허구, 이민문제에서 완고함을 버리게 된다믄, 마이너그룹(그 때믄 비백인이 메이저일지도? ㅋ)들이 이민문제떄문에 민주당을 지지허던 입장을 바꿀 수 있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혔었기 때문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트럼프 현상등으로 인해, 이민문제에서 공화당의 유연화는 안 그래도 당분간은 무리였는디, 더 당분간 바뀌지 않게 되긴 허겠다만, 장기적으로 보믄 말이다. 마, 위의 민주당 우위론 자체가 장기적이라기보다는 중기적인 분석인 면이 있기에, 내 의문은 핵심적이라기보다는 보충적인 것에 그치긴 허것다만.
하튼 마, 같은 학자가 입장을 바꿨다! 이런 증거는 갖고 있지 않다만, 검색과 탐색할 근성만 있다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같은 미국정치를 대상으로 2015년, 아니 2016년 초까지도 유력해 보이던 분석이, 2016년 가을의 "그 날"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은 역시 구조적 분석에 기반한 학술적 접근이 한계를 빚는 부분이라고나 할까?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맞은 분석을 한 사람은 항상 있기야 혔것다만, 2016년대선은 압도적으로 "틀린 분석가" 가 많았기 때문에 부질읎다.
사실 나는 기본적으로 학술을 존중허는 입장이기에, 구조적 분석이 무의미허거나 틀리기만 허다는 것은 아니다만, 2016년처럼 지나치게 크게 틀리는 경우라믄(맞춘 사람들이 간혹 있긴 헌디, 정규재 이춘근 윤서인처럼 성향이 확고한 사람들이 자기 희망을 말한게 맞아떨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당파로만 가도 트럼프 당선을 맞춘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 틀림읎다) 역시 틀리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홉스봄의 멘트를 빌려써 보자믄 그것은 6글자로 설명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사실 홉스봄의 저 드립(2차대전의 원인은 6글자 아돌프 히틀러 원문에선 two words 였긋제 라고 그의 책에서 썼다)에 원래는 불만이 많었다. 아닌데... 허믄서. 근데 지금 이 주제에 임해 생각혀보니 도널드 히틀러가 등장할 상황이 있는 것과 아돌프 트럼프가 치세를 이어가는 문제는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역시 저 드립이 맞는 거 같다. 2차대전이 일어날 수많은 원인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아돌프 히틀러라는 6글자가 없었다믄 그것은 나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정도으 으미에서. 홉스봄 센세... 돌아가시고서야 봄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위에 2015년까지으 학자들의 분석을 인용혔는디(인용문은 읎다만) 트럼프 당선이후 화급하게 그들이 다른 설명들을 제공하믄서 낭패감들이야 컸겠다만, 트럼프의 골수 지지자가 아닌 사람들 입장에선 대부분 이해한다, 는 입장이긴 혔겠지 싶다. 그게 진짜 될 줄 알았겠냐, 허믄서. 학자들이 디테일하게 수 많은 분석들을 헌다고는 허지만, 그들 또한 기본적으로 세계화의 수혜자라는 점을 간과헐 수 읎기두 허구, 당연히 수 많은 자료들을 본다헌들, '간혹 보이는 이상징조' 보다는 더 크게 보이는 사안들을 중심으로 둘 수 밖에 읎으니 나오는 한계기두 헐테구. 물론 학자니까 틀린데 대해 도의적 책임은 느껴야 허겠다만 말이다. 사실 애초에 두 해석이 제공하는 상황 - 민주당이 백악관은 따놓은 당상이랑께, 허는 입장이 있다구 혀서 세계화에서 소외되고 PC충에 불만을 갖는 수 많은 개돼지들이 붕쯔붕쯔하고 있다는 것은 당연히 실시간으로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후자의 목소리가 전자에 비해 작아보였다는 거지. 어찌보믄 이것은 민주주의 때문에 나온 결과이긴 허다. 강력한 권력을 지닌 소수는 사회적 캠페인이나 영향력으로 자기들의 의견을 관철시키지만, 그에 불만을 가진 권력은 없지만 많은 수의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서 엎은거니까. 그리고 그런 가능성 - 패배가능성이 없다믄
라고 일갈할 수 있긴 하겠다만, 민주주의의 가능성이 자기파괴적이라는 것도 이런 부분에서 나오는 측면이 있다는 것 또한 입증이 되는 것이기두 허다. 트럼프가 먼 고향 독일식 파시즘의 아류라는 주장에 개인적으로 많이 부정적이다만, 이런 식의 유사점들이 종종 눈에 띄곤허니, 그렇게 생각허는 사람이 나오는 것두 인지상정이라구 생각허긴 헌다만.
트럼프라는 인물이 구체적으로 해낸 일이 무엇이냐, 라고 헌다믄 그 실마리는 이번 대선에서 바이든은 사상 최고득표로 당선이 되었다는 점과 트럼프는 낙선했으나, 여태까지의 그 어떤 후보 - 승자보다도! - 많은 득표를 혔다는 점이다. 다 찾아본 건 아니다만, 바이든은 사상 최초로 8천만표를 득표헌 후보가 뒤얐고, 트럼프는 사상 최초로 7천만표를 득표한 후보... 는 아니구나. 바이든이 먼저 넘었으니. 하튼 사상 두번째로 7천만표를 득표한 후보가 되었다는 점이다.
지난번에 클린턴은 패자였으나, 무려 2004년의 당선자 부시보다도 많은 득표를 혔다. 마 12년동안 미국 인구가 꽤 는 덕을 보기두 혔지만. 선거인단의 맹점으로 지긴 혔다만, 하튼 분명헌건 많은 득표를 혔으나, 지난번엔 트럼프가 허점을 잘 찌름 + 운이 좋음으로 이겼다믄, 이번에는 어마어마한 표를 얻었으나, 상대가 더 어마어마한 표를 얻어서 졌다는 점이 포인트다.
즉, 새로운 정치시장을 창출혔다 = 투표를 하지 않던 수 많은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이끌어내는 데 성공혔다는 점을 말하며, 이것이 지니는 함의를 드라이허게 내용만 서술혀보자믄 그 동안 정치가 자신의 견해를 대변해주지 못헌다고 생각혔던 수 많은 사람들이, 저 사람은 나를 대변해준다! 라고 생각허구 투표장으로 향했다는 것이다. 2016년 대선은 최근 선거에서 이례적으로 투표율이 낮은 선거였는디, 클린턴 캠프는 캠페인 자체도 드럽게 못혔구, 클린턴 본인도 함량미달의 형편없는 인물이라 이전 당선자들에 비해 투표를 이끌어내는데 실패했고, 트럼프는 추문으로만 보면야 훨씬 더 한 인물이다보니 오히려 득표수로는 클린턴보다도 3백만표나 적은 결과를 받는데 그쳤다. 특히, 제도권의 점잖은 공화당원들의 투표공백이 상당히 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공백을, 드라이하게 내용만 서술허자믄 정치가 나를 대변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혀서 투표를 하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들을 오히려 자기 골수 지지자로 만들어내믄서 투표장으로 이끌었다고 내는데 성공혀서 이겼다고 헐 수 있다. 2016년 선거에서 트럼프와 클린턴의 득표는 무려 12년전이고 그 12년 사이에 인구가 3천만이나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2004년의 케리와 부시간의 선거보다도 더 적다. 그만큼 클린턴은 얻을 표를 못 얻었고, 트럼프는 잃은표 이상으로 새로운 표를 이끌어냈다고 헐 수 있는 것.
그리고, 트럼프는 4년 사이에 그에게 냉소적이던 공화당 주류들마저도 상당부분 제압하고 당을 장악헌다음, 이전 선거에 비해 1500만표를 더 얻어내는데 성공혔다. 여태까지 그 어떤 당선자도 돌파하지 못혔던 7천만표를 넘으믄서. 이젠 트럼프를 절대로 용인해선 안된다는 반대쪽 사람들이 싸그리 몰려나오게 만들어서 지긴 혔지만. 사실 이것도 깔끔하게, 트럼프가 기존 공화당 후보보다 득표수가 단순히 많기만 허믄, 그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혔다! 라는 독트린을 간단히 주장헐 수 있는디, 지난 선거에선 기존보다 적다보니 이거저거 구차한 설명이 많이 붙네 ㅋ~
사실 이 문제도 지난 번 대선이 끝나고 개인적으로는 발언허곤 혔던 부분인디, 트럼프는 공화당으로 당선되긴 혔으나, 공화당 주류와는 크게 다르기 땀시, 앞으로 미국 정치는 공화당 민주당 트럼프의 삼국지로 흘러갈 것이다, 라고 말허믄서, 다만, 결국 공화당사람들에게 트럼프는 거슬릴 뿐이지만, 민주당은 적이기 때문에 선거에선 손을 잡을 것이다, 라구 말허기두 혔었다. 이는 내년 1월 5일에 있을, 그루지아주 상원의원 결선투표에서 고스런히 드러나구 있기두 허구. 트럼프라는 인물이 기존 공화당으로서는 얻을 수 없는 수 많은 사람들의 득표를 얻어냈다는 것을 공화당의 기존 인사들도 부정하지는 못한다는 것.
그리고, 그 새로이 투표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창출해 냈다는 것은 역으로 바로 그 부분에서
트럼프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일
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믄 테드 크루즈같으믄 그는 극우주의를 대변허지두 않거니와, 대변허려 헌다혀두, 트럼프같은 동원력을 발휘한다는것은 상상할 수 읎다. 뢈니가 중도층에서 가져올 수 있었던 표보다도 적지 않을까? 극우적 차별주의를 원하는 집단은 이제 공식석상에서 존재헐 수 없으나, 데릭 쇼빈(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눌러 죽인 경찰관. 사실 여기서도 드립을 치고 싶은디, 아무리 막나가는 보는 사람 읎는 블로그라도 이거 갖고는 드립 못 치긋다)을 필두로 그런 욕구를 지닌 수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자체는 변허지 않는다. 어찌보믄 그렇기에, 그들의 정치사회적 욕구는 더더욱 억압되어 있구, 트럼프라는, 그런 욕구를 충족시켜 줄 인물의 등장에 더더욱 미친듯이 열광혔을 수 밖에 읎다는 것. 트럼프라는 인물이 그들에게 제공한 것은 성적 오르가즘보다도 어찌보믄 훨씬 더 귀한 것일 게다. 이젠 영원히 포기하다시피 헌 그 욕구가 충족되는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다니! 그들에겐 그것이 원더러스함 그 자체였을 것. 지난 번 대선에서 클린턴은 르브론 제임스등의 스타를 동원해 유세장을 콘서트로 만들고서도 유세에 4만명을 간신히 동원혔다구 허는디, 트럼프는 그냥 자기가 최고으 스타가 되어, 무대에서 자기 대신 돋보일 사람따위 올리지 않고도 4만명은 간단히 동원혔다구 허는 원동력은 여기서 나온 것일게다.
극우주의 대두라는 구조에 기반한 분석이 지난 대선과 그 이후 4년을 전혀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걸로 간단히 입증된다고 주장한다 나는. 극우주의라는 구조는 트럼프가 없었어도 계속 존재혔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치적 파워로 발휘되는 것은 트럼프가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건이 아무리 성숙하더라도, 그것이 발현하는 것은 그것의 계기가 될 어떤 형태로든지의 요소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물론 그 요소중에 역시 구조적 조건이나 상황에 의해 발생 형성되는 무엇인가가 있을 수 있고, 인간의 능력이란 요소에 대해 고전적인 양육 VS 본성논쟁같은 논란지점이 있다고는 하고 나 자신은 양육편을 가급적 들어주고 싶어하는 편이지만, 나가 아무리 노오력한다고 혀두 10년뒤에 160키로메다...는 커녕 140의 포심조차두 던질 수는 없는 것처럼,130은 될지도... 라기엔 이젠 노무 늙었다... 10년뒤믄 50대중반이디... 한 개인의 능력이란 요소는 타고난다, 라는 우연적 요소가 상당함을 부인할 수가 읎다. 지난 글에서 나가, 집단대 집단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또이또이를 전제한다, 라구 혔지만, 그것을 깨는 요소로서 판단을 내리는 지도자라는 존재를 이야기헌 것두 이런 부분이구. 근대정치 3대장의 예를 들긴 혔지만, 나 개인적으로, 한 개인의 결단이나 영향력에 의해 사건이 결정적인 변화를 맞았던 사건과 인물이라면 로시아 혁명으 레닌이 그런 결정적 인물 이었다구 본다. 레닌이 없으면 조국도 없다. 스케일은 작고 방향성은 (딱히 반공주의자가 아니라믄)훨씬 형편없었더라도, 2016년, 세계화의 피로감이 급등허구, PC라는 인간의 정신적 요소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드는 행동양태가 강력히 대두하는 시점에서, 인간의 본능에 충실할 것을 핵심적 교리로 삼는, 기존 정치인과 대비되면서 엔터테인먼트 능력도 강한 인물이, 바로 그러한 ism들의 화신과도 같은 클린턴이라는 상대와 만나는 상황같은게 구조적으로 설명이 가능한가? 설명이 가능하지 않으니까, 앞서 말헌 것 처럼 2016년 초까지도 민주당의 구조적 우세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나왔것제 심지어 그런 요소가 결정적으로 작용했음에도, 극히 극적인 차이로 결과가 갈린 상황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클린턴이 몇 %정도 덜 역겨워서, 민주당 지지층이 수천 수만명만 더 나갔어도 선거가 뒤집혔을 주가 세 개다. 트럼프의 영향력은 %로 갈린 게 아니다. 오직 예스까 노까! 가 아니고, 당선이냐 아니냐 만으로 갈린 것이다. 내가 사석에서 누누이 말하는 부분이지만, 지금이 아니라, 4년전에 바이든이기만 혔어두 그런 어처구니 읎는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을 거라는거다. 나 개인적으로는 역겨워허구 혐오해마지 않지만, 클린턴이 아예 장점이 없는 인물은 아니었을게다. 그러나, 트럼프와의 상성이 노무 나뻤다. 입으로는 페미니즘이 어쩌구혔지만, 그냥 성별만 여성인 교과서적인 제도권 엘리트에 야심가였던 클린턴은 개소리는 많이 하지만 그래도 솔직하다, 라는 이미지의 트럼프에게 당하는 카운터가 노무쎴다. PC나 페미로서의 그를 말허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런 것 조차도 야심가 클린턴에겐 이용거리 뜀틀에 지나지 않을 정도루 그는 '위선'에 메타위선이 겹쳐진 내추럴 본 위선자였다. PC 페미만으로도 위선이라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디, 심지어 그를 다루는 태도조차 위선이었던것. 물론 이걸 나 말구 주목한 사람이 있는진 모르것다만. 트럼프의 개소리를 태양이 비치면 황금빛으로 변하는 다리털...로 역카운터칠수 있는, 헛소리는 많이 하지만 사람좋고 수더분한 이웃집 아조시같은 이미지였던 바이든이 상대였다믄, 트럼프의, 위선의 대변자의 화신과도 같은 클린턴과으 대결에서 발휘뒤얐던, 강력한 상성우위는 크게 상쇄되었을 거라는 것이 나으 주장이다. 구조적 접근이 아무리, 디테일보다는 본질과 핵심적인 점에서 접근하고 그런 점에서 강점이 있다곤 허지만, 이런 디테일이란 꼬리가 몸통을 흔들 지경으루 커진 상황에서 그런 부분이 묵살될 수 있는 것일까? 그런 점에서 보면 극우주의의 대두도 아니다. 극우주의는 이 전부터 지속적으로 있어왔다 앞서도 말혔던 것처럼. 그것이 클린턴 VS 트럼프라는 2016년 대선의 상황을 맞이해 극적으로 정치적 폭발력을 발휘하게 뒤얐을 뿐이다. 트럼프라는 인물이 이 시점에 등장하는 것은 전혀 필연적이지 않다. 그 또한, 우사usa... 에서 1946년부터 존재해왔을지라도, 그는 단지 그렇게 태어나고 살아왔을 뿐, 2016년 대선에 극우주의의 정치적 승리를 위해 준비된 존재인건 전혀 아니니까. 단지,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였을지는 모르지만.
이러한 트럼프란 인물이 하필이믄 그 타이밍에, 그 정도로 성장한 채 존재하지를 않었다믄, 극우주의... 사실 이 네이밍도 맘에 안드는게 그냥 그 새끼들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인디, 그런 것들은 여전히 증오스러운 민주당과 한심하기 짝이없는 공화당을 보면서 정치를 비웃으며 냉소하고만 지냈을 것이다. 사실 그런 부분에서 나는 그들에게 "인간적으로는" 연민을 느낀다. 어쨌건 사람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믄서 살아가야 허는 존재인디, 그들의 그 욕구는 충족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게 충족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혔을 때 그들이 얼마나 환희에 가득찼을지도 이해가 간다. 이해는 간다는 것이다. 용인될 수는 없지만.
사실 이러한 극적인 성격이 더더욱 커진 것은 미국이 취하고 있는 대통령제의 특성 혹은 한계때문에 더 두드러지는 면도 있긴 허다. 다이토료제라는 것은 애초에 선거로 왕을 뽑는데서 출발혔구, 그 뒤로 수많은 민주적 견제장치와 정교한 제도들이 추가되었음에도 여전히 다이토료는 선거로 뽑는 왕이다. 보수적인 사람들에겐 더더욱 그럴 듯 싶구. 정치에 있어서 구조적으로 지도자의 존재가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하는데, 트럼프라는 존재는 존재감 그 자체, 존재감의 화신과도 같은 존재이니... 물론, 만만치 않게 강력한 존재감과, 현실제도적 안정감을 겸비한 개사기캐릭터인 오바마시절에는 쩌리가 되어버리기두 혔지만... 오바마 센세... 새삼 그립습니다... 바이든을 카게무샤로 내세워 출범시킨 3기정권 잘 하시길 응원헙니다... 하튼 이렇게 정치라는 것이 갖는 실제 운영상에서의 루우~즈 함과, 지도자에게 과하게 높은 위상이 부여되어 그의 개성의 영향이 강하게 발휘될 여지가 많은 상황이 언밸런스하게 결합되어 있던, 다이토료제(특히 미국식)라는 함정이 트럼프라는 그 함정을 공략하기 최적화된 캐릭터와 결합되어 이런 극적인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 근데, 이건 역시 사후약방문적 구조적 설명이긴 헌가? ㅋ~
그럼에두 윗문단을 왜 이야기혔냐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 세계화의 부작용으로 인해 사회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으믄서 그에 반발허는 극우파들이 현실정치에 대두허고 있는 유우럽과 비교해보믄 시사하는 바가 또 있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2010년대 유우럽에서도 트럼프를 지지한 것과 비슷한 심리를 가진 사람들이 대거 제도정치권에 진출혔다.
되길의 대안당, 프랑스의 구 국민전선 - 현 국민연합(여기는 극우색을 좀 뺐다곤 헌다만), 네덜란드의 자유당, 오스트레일리아 자유당, 폴란드 법과 정의당, 지금은 해산뒤얐지만 이름간지는 끝내주는 그리스의 황금새벽당 등등...
이런 정당들 중에 집권에 이른 정당은 거으 읎다. 오스트레일리아 자유당이 오스트레일리아 국민당과 연정에 참여혔던 정도? 지난 번 글과 이 글을 잇는 키워드는 지도자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 관점에서 유우럽 정치를 보자믄, 유우럽 대부분 나라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허구 있다. 의원내각제라고 지도자가 중요허지 않은 것은 아니긴 허다만, 여긴 제도적으로 정치적 행위의 중심이 정당이 되게 되어 있다. 그렇기에, 유우럽 정치는 기본적으로 지도자의 정당이 아니라 정당의 지도자가 되는 경향이 크다. 물론 이건 선진국이라믄 대부분 그렇긴 허다만, 그런 성격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면이 더 크다는 것.
아이러니컬허게두, 그런 점이, 소수의 득표를 얻어 봉쇄조항등의 제도적 장벽만 넘으믄 제도정치에 참여하는 자체는 더 쉽게 만들긴 혔다. 트럼프가 소수정당을 만들어 미국에서 유의미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허는게 가능했겠나? 물론, 7400만표를 얻은 지금은 가능혔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통령이 되었던 후광효과이다. 그나마도, 공화당 후보를 물먹이는 영향력외에 현실적인 힘을 행사헐지는 의문이구. 그렇게 제도권에서 점점 극우정당이 약진허믄서 중도정치로 2차대전 이후 내내 굴러오다시피혔던 유우럽 정치에서 우려으 목소리가 커졌으나... 참여가 쉽다는 것은 퇴출도 쉽다는 것. 점점 그들의 위상은 오히려 약해지고 있는 흐름에 가깝다. 마린 르펜의 국민연합의 세는 만만치 않은데, 야는 이젠 나 극우 아니에염 뿌우~ 허믄서 탈코를 허구 있는면이 커서. 어차피 다음 대선에선 그랴두 기존 우파인 공화당헌테 밀릴거라구 본다만.
그들에겐 지도자가 없었나? 없었던 면도 있지 싶다. 트럼프같은 개강력한 지도자는 서유럽에선 거으 읎다. 엄청난 정치력과 지도력, 거기에 잘생긴 외모와 큰 키와 말도 안되는 젊음(첫 내각총리대신 등극시 28세)을 가진 제바스티안 쿠르츠가 있지만, 오스트레일리아의 영향력 자체가 작은데다, 앞서 말혔듯이 이 양반은 강경우파긴 허지만 극우파는 아니어서...
그들이 실패한 현실적 이유는 수권능력의 부재라고 봐야헌다. 자극적인 주장을 내세워 사람들의 관심과 일부의 극성적인 지지를 얻어 원내입성까지는 성공혔지만, 현실정치란게 만만치 않다봉께, 원내에선 조작과 날조로 승부가 안되다봉께, 자극적인 발언으로 선동하는 수법이 통할리가 읎구, 그러다보니 점점 입지가 좁아지게 뒤야뿐 것. 재밌는게, 덴마크 인민당으 경우인디, 야들은 외국인 문제에서는 굉장히 자극적이고 강경한 주장을 헌다. 그러나 그 외의 문제는 그냥 유우럽으 흔한 사민당이다. 즉, 덴마크 사회의 빈부격차를 줄이고 복지를 강화해야 헌다, 다만 외국인은 받지 말고. 그러다봉께, 공감대를 얻을 여지가 많은거구, 유우럽극우정당 - 사실 이쯤되믄 그냥 반이민정당이기만 헌건디, 그런 노선을 따르는 정당도 꽤 된다구 헌다. 트럼프의 경우도 수권능력이 부재함을 여실히 드러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치의 극장적 성격이 강한데, 다들 정치인인데 혼자 딴따라인 이 양반이 그 무대와 워낙 궁합이 맞다봉께, 형편없는 수권능력에도 엄청난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것. 그 와중에 죽어나는건 로버트 파우치나 아크시즈 오브 어덜트 같은 기존 제도권 인사 관료들이고
이 글을 보시라. 요즘은 안쓰는 오늘의 닮은 꼴 포스팅이긴 헌디, 인물이 인물이다봉께, 정치드립이 가득헌 글이다.
이런 점에서 보믄 이래저래 미국 정치의 한계가 드러난 면도 크다고 볼 수 있지 싶다. 정당을 중심으로 허는 심심한 유우럽 정치가 제도적으로 파천황적 인물이 용약맹진허는 것을 걸러낼 수 있었따믄, 미국 정치는 그게 불가능혔던 거니까. 트럼프를 유우럽에 던져놓았다믄, 기존 유우럽 극우정당 지도자들에 비해 어떤 결과를 냈을 지 궁금허긴 허다. 그러한 장벽을 뚫고 카리스마를 발휘혔을까? 아니믄 역시 제도의 벽에 맥혀서 주목받지 못혔을까? 중부유우럽처럼 1만달러 후진국에서는 안제이 두다, 카친스키 브라더스, 오르반 빅토르 같은 스타 극우정치인이 나오기두 혔다만, 거긴 후진사회니까(지역차별적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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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많이 늦어졌다. 갠적으로 엄청시리 멘붕할 일이 있었던지라. 어제부터 신기할 정도로 그 멘붕이 수습이 되어서 오늘 글을 쓰는 것. 물론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일절유심조인 것인가??? 이런건 역시 트럼프가 개깽판을 치믄서 언론에서 반기문을 헐 때... 아니 우려를 허곤 헐 때에 썼어야 더 먹혔을 글인디, 타이밍을 놓친건 아쉽다. 어쩌겠누 인생은 타이밍인 상황에서 인간이 아닌 존재는 항상 놓칠 수 밖에 없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