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은 워낙 유명하고 인지도도 있는 사람이고, 그 죽음에 대해서는 앞으로 한동안은 수 많은 이야기와 논란들이 오고갈테고, 일단 나 자신 지금 그냥 멍 한지라 뭐라 말을 못하겠기도 하니 굳이 말할 것은 없는 거 같다. 진현기의 죽음도 그 바닥 - 인터넷 방송 바닥에서는 이미 한참 시끄럽고 뒤에 남은 원한도 깊은지라, 사건 자체로 보면 오히려 더 오래갈 일이다. 박원순의 경우는 가해자(일 것이 매우 유력한 사람)가 죽은 것이지만 진현기의 경우는 피해자가 죽었고 가해자는 뻔뻔하게 발뺌하고 있는지라.
사실 지난 이틀동안 진현기의 죽음 때문에 꽤 우울했다. 따지고 보면 박원순이 지금 죽었지만, 나란 작자가 처한 꼬라지로 보자면 박원순의 업적과 명성에는 감히 비할바가 못되고 이 사회의 놈팽이 쓰레기라는 점에서 오히려 진현기가 나하고 비교가 될 처지니까. 아니, 쓰레기 짓이기라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뭐라도 했다는 점에서는 나는 진현기하고도 비할바가 못되긴 하겠다만, 그랴도 박원순보다는 좀 더 이입이 된달까나, 뭐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지. 사실 진현기와 나는 다른 점이 상당히 많다.
나가 진현기보다 나은 점이라믄 나는 적어도 도덕적으로 공개적인 문제가 될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마 클리어하게 살아온 것 만은 아니긴 하다만. 학식이나 사고력도 내 쪽이 훨씬 높다. 정신적으로도 크게 안정되어 있고. 내 노력의 성과는 아니지만, 알량한 재산도 물려받아 갖고 있고 사실 놈팽이짓도 그걸로 하고 있는거지. 세입자들의 노력의 산물을 아무것도 안하는 주제에 빨아먹는 놈팽이짓. 그래도 이건 불법도 편법도 아니고 윤리적으로도 바람직하진 않지만 일단 현 사회에서는 비난받을 일은 아니니 나은점이라고 치자.
그런데, 만약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동생가족이 유고라도 당한다고 할 경우 내가 죽는다면 내 장례식을 치뤄줄 사람이 있나? 지인이 없는건 아니지만, 진짜로 한 손으로 꼽을 정도의 지인밖에 남지 않았는데, 물론 그 양반들이 애도를 해 줄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장례식까지 치뤄주겠느냐 하면... 음... 지인들이 이 블로그에 오는데, 나 죽으면 장례식 좀 치뤄달라는 말로 보이겠군.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지인님들. 박원순은 갔지만 서울시에서 무연고 사망자 가는 길 잘 배웅해주니 서울시가 해 줄거에요. 여러분들은 애도만 해 주시길. 물론 생물학적으로 내가 더 오래 살 가능성이 높지만 ㅋㅋㅋ
나는 오늘 날이 밝으면 진현기의 빈소에 갈 것이다. 장소는 성남의 성모장례식장이라고 한다. 8일날 작고했지만, 일단 3일장이 관행이니 오늘까지 하겠지? 사실 9일에 가려고 했는데, 아침에 똥차가 와서 정화조 치우느라 잠을 설쳤고, 운동가는 날이기도 한지라 뭔가 결단이 안 서서... 이틀동안 우울해하면서 진현기의 죽음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해서 그런지, 우울함이 오늘 오후부터는 가시기도 한지라, 가야지... 싶은데 가야하나? 싶기도 했다. 박원순 때문에 저물어가던 우울함이 다시 몰려와서 가기로 마음먹긴 했지만. 그 장례식은 로봉순이라는, 진현기 생전의 지인이 차려준 것이라고 한다. 가족이 워낙 형편이 어렵고 진현기 본인이 80년생 41세인지라 부모님의 연세도 상당한 고령일 것인지라 그럴 여력이 없어서 장례식 없이 끝내려는 것을 그의 지인들이 챙겨준 것이라고 한다. 로봉순 외에 부천에서 그를 아들처럼 돌봐주던 체육용품점 사장님도 분향소를 가게에 차렸다고도 한다.
하여튼 진현기보다 내가 못한점은 결국 사람과 어울리는 능력이다. 그의 온갖 파행과 수감으로 인한 3년여간의 공백에도 그는 최근에도 지인들을 졸라 벌금 3백만원을 모아낼 정도로 하여튼 주위사람들의 돌봄을 받았다. 위에 말한 부천의 체육용품점 사장님은 어떻게든 멀쩡한 생활을 시켜보겠다고 채용해서 일도 시켜줬다. 진현기 본인의 불성실함으로 얼마 못갔지만. 요즘... 뿐 아니라 사실은 내가 사람과 관계하기 시작한 근 40년전부터 생각하는거지만, 결국 사람은 어울려야 사람사이 - 인간이다. 어울리지 못하는 건 인간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나는 지식과 윤리를 갖춘 고깃덩어리일 뿐이고, 진현기는 지식과 윤리는 없지만 인간이다. 민폐를 안 끼치지만 난 인간이 아니고 민폐덩어리지만 진현기는 인간이다. 아니 이었다.
장단점을 더하고 빼보니 어째 진현기와 나는 인간 유형론으로 보자면 겹치는 부분이 하나도 없는 거 같다. 정말로 극과 극인 인간이랄까나. 그런데, 왜 나는 진현기에 이입하는 것일까. 일단은 내 인생이 막장이고 그의 인생도 막장이니 막장인생으로서의 동질감 같은게 분명히 있다. 둘 다 이 사회의 존재로서 모종의 한계에 맞닥뜨려 있는데, 나는 별 다른 대응없이 서서히 침몰해가는 존재이고, 진현기는 어떻게든 그 상황에서 이대로 죽을순 읎따!!! 라믄서 발악을 하는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것 만으로 동질감을 느낄수는 없는데... 사실 동질감이라기보다는 동정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거 같은데, 결론부터 말하자믄 진현기는 가해자형 인간이 아니다. 피해자형 인간이지. 애초에 죽음 자체가 유영기에게 미필적 고의에 가까운 살해를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고... 무엇보다 그 전의 그의 막장인생의 모습들도 상당부분은 사회적 약자로서 구걸이나 호소에 가까운 면이 크다. 인방러들이 뭐 안 그런 사람이 있나 싶긴 하겠다만 철구니 밴쯔니 하는 인간들하고 비교하면 그건 분명하지 싶다. 일단 심리적으로 그는 자기가 취약하다는 것을 강하게 인지하고 그에 대해 과도한 방어기제를 행사한 사람에 가깝다. 킹무갓키의 그에 대한 서술에서는 그는 약강강약이라고 하는데, 물론 그가 더 큰 사회적 지위를 가졌다면 어쨌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처음 뜨는 것부터 남을 망가뜨리는 게 아니라, 자기를 망가뜨리면서 떴고 그 뒤에 저지른 성범죄들도, 강간등의 능동형보다는 노출이나 음행사진 보여주기등 수동형인게 많다. 당연히 수동형이니 죄가 덜하다는 게 아니고(뭐 형량면에서 강간이 노출보다는 높으니 덜한 것도 맞긴 하다만), 정확히는 덜어지는 게 아니다 라고 할까. 하튼 덜어지는 게 아니지만 행태상으로 수동형 방어형 인간이며 그로 인해 피해자형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라는 점이 내가 그에 대해 갖는 생각이며, 그런 점 때문에 흔하디 흔한 말인
"그도 결국 피해자"
라는 생각을 그에 대해 갖게 된 면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도 결국 피해자, 라는 표현에 가장 적합한 인간이 진현기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할 수 있고. 그 정점을 찍은게 사실상 살해당한 그의 최후라는 점이 더더욱 가슴을 아프게 했다고 하면 대충 말이 되는 거 같다. 워낙 쓰레기로 이름 높은 인간이다보니 동정하는 이유 설명하기도 참 힘드네 거. 간단히 말해 가해자인 유영기 - 유신은 사회가 따뜻해져도 아마 형편없는 삶을 살 것이다. 그러나 진현기는 아마 사회가 좀 더 따듯했다면, 그렇게 막장의 삶을 살지 않아도 되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물론 주위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든 갱생시켜 보려 했지만, 그걸 내팽개친 게 사실이긴 하다만, 그를 갱생시켜 보려는 사람들은 그의 방송을 통해 그를 접한 사람들이고, 그런 방송을 시작한 시점에서 진현기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내가 참 불만이 많은 영화가 드주나 센세의 말씀마따나 와킨 피닉스가 주연한 영화 조커인데, 많은 사람들은 그 조커를 보고 동정을 한다. 영화가 잘 만들어진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 게, 조커란 캐릭터의 악도 잘 느껴지게 만들었으면서, 그 조커를 수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동정할 수 있게 만들어지기도 했다는 점이지 싶다. 물론 영화는 보지 않았다만.
그래서 내가 치는 드립이 비슷한 시기에 수십명의 사상자를 낸 안인득이다. 지인들과 이야기할 때는 난 그 영화를 야유의 의미를 한껏 담아 안인득이라고 부른다. 조귀를 호평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입체적이고 "현실적" 인 캐릭터라고들 하는데... 현실에서 그런 사람은 남을 해치면 안인득, 남을 안(덜) 해치면 진현기일 뿐이다. 현실에 윤리적 부담을 느끼지 않고 마음껏 동정만 할 수 있는 그럴싸한 피해자 같은 건 없다.
진짜 현실주의자인 하ㅈ... 아니 구고신 선생 말마따나.
막장이라는 개념도 뭐랄까...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여겨지지만 현실로 존재하는 것을 끄집어내서 어떻게든 드러내서 그걸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난 내 스스로 막장이라고 하니, 나를 욕하지마, 라고 하는 방어기제라는 면이 있달까나, 그렇게 본다. 상처받아 있지만 상처받기는 싫으니까. 이러한 막장론에 대해서는 역시 언젠가 따로 글을 쓰겠다고 10년전부터 생각중이다. 10년뒤에도 생각중이기만 하겠지. 진현기는 그런 상처받은 영혼들 중에서... 이런 표현이 문제가 있긴 하지만, "선" 을 넘지 않은 어떤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 선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구구하게 지금까지 글을 써 온건데, 여전히 부족하고 여전히 옹색하다고 생각하긴 한다만... 그래도 굳이 우호적으로 봐 주자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는 느낌이 오는 분도 있을 것이다. 인간을 크게 남을 해치는(면이 큰) 인간과 남을 해치지 않는(면이 큰) 인간으로 보는 관점이 강한 나로서는 그런 부분이 진현기에게서 묘하게 안스럽게 느껴진 부분이었고 그래서 나는 그의 비참한 최후가 안타까워 견디기가 힘든 것이다.
어째 제목은 낚시가 되어버렸다. 박원순의 죽음이 진현기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다시 불러일으켜 글을 쓰게 된 동기로 작용한 것은 맞긴 하다만, 박원순에 대한 이야기는 없으니. 박원순은 워낙 어처구니 없는 일이 되어놔서 뭐라고 말을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도. 아마 말 안하고 한동안 피지랄... 아니 피지알은 스포츠 연예게시판만 갈 듯. 하긴 뭐 지금도 거의 그런다만...
진현기는 큰 부와 화려한 명성을 원했다. 저승이란 게 있다고 생각은 않는다만, 진현기가 저승을 믿었다면 저승에서 그런 존재가 되길 바란다.
특별히 큰 임팩트 있는 삶은 아니었을테1지만 뭐니뭐니혀두 정원식 원 내각총리대신으 가장 임팩트 있는 장면은
밀가루 사건일테지. 생각혀보니 저거 맞은 게 외대인디, 경기동부연합 골수아입니꺼 골수 들이 외대출신들이 많은 거 보믄 저 때도 엔엘판이었나부네. 저 사건 임팩트가 상당혀서 오죽허믄 일부러 가서 도발해서 맞아서 정국전환을 꾀했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
저 사건이 벌어진 기 1991년이니 나가 15살때인디, 딱 신문이란 것을 스스로 보고 시사를 깨치기 시작허던 시점이라 저 사건의 기억이 유난히 선명한 거 같음.
딱히 좋아할 일도 읎구 그렇다구 싫어허는 사람두 아니다만 한 시대를 풍미허구 90넘게 천수를 누리고 떠난 사람이니...
갠적으로 사후세계는 없다, 라고 생각허는지라 저승에서의 복을 바라는 명복을 빈다, 는 말을 그리 쓰구싶진 않은디, 이성과 감성은 역시 따로 가는 거 같다. 우째 요즘 들어 나이가 들어 중늙은이가 되어가는데두 감성은 더 풍부혀져서 괜시리 눈물날 때도 많고, 정원식 원 내각총리대신 갔다니 또 왠지 짠혀지네.
나는 원래 죽음에 관심이 많다. 진칸이란 존재으 가장 본질적 특징중 하나는 미래를 염두에 두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존재의 미래의 끝에는 소멸이 있고, 진칸에게 소멸은 죽음이다. 그 어떤 미래에 대한 생각조차 결국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살 것인가이므로 종국에는 죽음으로 수렴한다 할 수 밖에 없다.
글쎄다.
일단 나는 40넘게 처 먹은 주제에 아직도 은근 귀신이 무섭다. 작년 2월 야마구치 여행때 하기에서 묵은 첫날밤, 뇌리를 사로잡은 정체불명으 공포는 아직도 선명허다. 본격적으로, 8백만 귀신의 나라 일본에 온 첫날밤이라, 일종의 통과의례를 겪은 것일런지? 그 다음날인 이와쿠니에서부터는 잘 잤고, 그 뒤로도 잘 잤다만. 오히려, 귀신이란 존재를 꺼려하던 마음이 바로 그 하기의 첫날밤 이후로 정말 놀랍도록 사라졌다. 물론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기에, 밤에는 킹무갓키으 미스터리 항목을 보는 것은 삼가하고는 있다만 이젠 밤에 혼자 잔다고 움찔, 하고 그럴 일은 없을게다. 마, 그렇다고 이제는 사라진 곤지암 정신병원같은데서 혼자 밤새라고 하면 할 수 있을 거 같지는 않다만서두.
이건 결국 죽음을 두려워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전부터 해 왔다. 진칸이란게 의식이 생생할 때와 의식이 또렷치 못할 때 - 무의식일 때가 다르게 마련이고, 상당부분 의식이란건 무의식의 표출인 면이 있으니까. 그러나, 이를테면, 지금 악마가 내 눈앞에 나타나서
라고 한다면? 글쎄 딱히 두려울 거 같지 않은디. 삶에 미련도 없고. 물론 죽어야 할 이유도 없으니까 굳이 죽지는 않는다만, 죽는다고 해도, 적어도 의식이 또렷한 지금은 100% 완전히는 아니지만 거의 완전히 전혀 두렵진 않을 거 같다. 아, 물론 아픈건 싫다. 죽어도 안 아프게 죽어야제. 그런데, 이건 고통이 두려운거지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니까 다른 이야기.
전에 김종필이 죽었을 때도 조문을 갔었고, 본의는 아니지만 노회찬이 죽었을 때도 조문을 갔고, 슨상님 돌아가셨을때는 물론이며 아빠 와 할머니 할아버지 말고는 제일 비통했던 노짱 죽었을 때는 조문만 5~6군데를 갔다.(5백만 조문객이 허수인 이유 ㅋ) 심지어 박지원 the 개눈깔 장군님 부인이 별세했을 때도 조문갔다. 박지원 장군님의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지?' 하는 의아해하던 의안광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거야 뭐 한국인뿐 아니라 어느 나라든 일반적인 장례문화지만,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기일마다 산소에 가고, 설 추석에도 가며, 가급적이면 한식날도 산소에 가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기리는 사람이 많지만, 위대함에 비해 기리는 사람이 적은 김재규 장군님 묘소에도 대국절과 기일(1980년 5월 24일)마다 찾아모시곤 한다. 죽음을 기억하라, 라고 한다면 종교인들을 제외하믄, 아니 솔까 내가 지켜본 바, 상당부분의 종교인 - 그나마 철저한 교육을 통해 양성된 엘리트 요원인 캐쏠릭 신부 같은 경우를 포함해도 대부분은 성직관료, 혹은 자영업자더라. 닳고 닳아서 원래의 신심이란게 있긴 한지 의심스러운 사람이 많은디, 상당수의 종교인을 포함혀두 나만큼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거라고 자부헐 수 있다.
삶에 의미가 있다면 그건 죽음때문이다. 아니라고 하는 것들은 삶알못이다. 여기서 의미가 있다, 라는 것은 중의적이다. 죽음앞에 한정된 삶이기 때문에, 삶은 그 자체가 가치가 있다, 라고 하는 일반적인 의미가 있겠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마침이 없다면, 삶은 무한한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가치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사전적인 의미도 있을 것이다. 철학적인 의미라고 혀야허나. 나는 기본적으로 전자으 입장은 인정허지 않는다. 그건 가치편향적이거든. 사태의 가급적 본래 그 자체의 의미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삶과 죽음을 존재와 소멸 혹은 부재라고 한다혀두 마찬거지. 그러나 앞서 "기본적으로" 라고 말헌 이유는 저런 대비쌍에서 어느 한 쪽이 우위가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한다믄
이해와 몰이해
에서는 왜 이해가 우위라는 태도를 취하는거냐? 라는 반론에 뭐라고 답혀야헐지 아직 모르긋기 때문이다. 왜냐믄 이해라는 것을 긍정하려 한다면, 그것은 결국 "삶을 더 향상시키는 것" 이기 때문인지라. 그런 점에선 학실히 나는 주지주의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지성주의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어쨌거나 나으 본질은 호사가, 힙찔이이고 그 방법론은 편향되지 않음을 넘어 어떤 특정 태도에 구애되지 않구 사태를 보다 높은 차원에서 바라보고 이해헌다, 라는 것에서 구허구 있기 땀시,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지성주의적 태도를 취허지 않을 수 읎다.
사실, 이것도 좀 오모시로이해지는기, 저러한, 구애되지 않음으 태도는 현실에서는 니힐리즘, 허무주의적인 존재들에게서 더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나 자신 허무주으적 태도가 읎다고는 몬허긋다. 삶에 가치가 있지 않다고 하는게 안 허무주의인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허무주으라고는 생각지 않는 이유는 일반적인 허무주의가 삶을 무의미화하며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기 때문인디, 나가 세상에서 제일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아무 쓸모도 없고 제일 꼴값이라고 생각허는기 냉소이기 때문이다. 의미를 비웃는 자들. 그러나, 나는 의미를 비웃지 않는다. 삶에 의미가 없다고 하면서 의미를 비웃지 않는다니?
오히려 나는 의미라는 것은 생물학적인 생명, 삶에 기반하지 않는다고 보는 쪽에 가깝다. 사실 그런 점에서 보면 종교인들하고도 통하는 면도 있다. 종교인들은 의미를 삶의 피안에서 구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 점에서 의외로 종교들을 보면 상당히 지성주의적인 면도 많다. 히브리즘 계통으 종교에서 지성주의적 신학과 신비주의적 신학으 끝없는 갈등은 그 자욱일진저. 그럼에도 역시 이들과도 다르다. 그들의, 삶의 피안에 대한 희구는 결국 우리가 겪고 있는 삶으 연장선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왜 신이 인간을 닮아야하지? 그건 너가 인간이고 상상력이 인간수준을 못 벗어나기 때문이다. 허무한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삶의 입장에서 볼 때 무의미의 영역에까지 삶의 양상을 갖다 붙이려하는 꼬락서니가 역시 꼴값이라고 생각해서 종교를 경멸해 마지 않는 것.
요와 가케히키도 네마와시
가 아니고 냉소가 되었든 종교가 되었든 의미와 무의미의 준거를 삶에 두고 있다는 것, 여기서 지적인 한계가 드러난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 되겠다. 사실, 이런 걸 정말 나만 생각했을거 같진 않구... 삶을 상대화하거나 하나의 대상으로서만 생각한 사유가 있을 거 같긴 헌디, 이런건 깨나 고급 사유일 것인지라 나가 접해보진 못혔구... 하튼 나는 독자연구로 삶이란 것에 대해 대충 이러한 태도를 갖구 있다, 라는 것이다. 삶은 앎의 대상일 뿐이다. 랄까나. 왜 삶보다 앎이 더 위에 있느냐?
삶이, 존재가 사라지면 앎도 같이 사라진다. 그렇기에 부재시에 둘은 동격이다.
그런데 삶이 존재가 이어지는 동안에는, 존재시에 더 좋은 삶과 존재를 위해서는 앎은 필수적이다. 심지어 개돼지도 더 똑똑한 놈이 더 좋은 삶을 산다. 하물며 인간임에야.
대충 말 되지 않냐? 이렇기에 앎은 삶보다 더 우위있고 가취있는 행태인 것이다. 살아보니까 더 알고 더 이해하고 그런거 말고 가치있는게 없더라고. 빠구리나 뛰며 닥치는대로 사는 삶이라고? 더 잘 싸고 더 잘 박히기 위해서는 알아야 하지 않냐? 먹고 놀고 살거라고? 먹을거에 대해 놂에 대해 더 잘 알지 못하면 잘 먹지도 놀지도 몬한다. 롯데리아나 애슐리 따위를 맛있다고 먹으러 다니는 삶의 가치가 타드샘플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의 삶만큼 가취있을수는 없는 것. 사실 그런 의미에서 지성의 부재를 취향이라고 변명하는 행태는 내가 제일 꼴사나워 하는 것이기두 허구.
하튼 인간이 뭔가를 한다, 라고 할 때 앎과 무관한 건 없다. 성취와 업적을 남기는 것은 말할긋두 읎구, 막살고 놀려고 해도 알지 못하면 "잘" 막살지도 못하고 "잘" 놈팽이짓하지도 못한다. 조양은 따위가 호아킨 구스만의 삶에 비할 수가 있는가?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스스로의 생각을 많이 정리허게 되었는디, 왜 나는 호사가인가? 라는 점이 많이 설명된 거 같다. 그리고, 중승근 강홍 같은, 한국인의 입장에선 쓰레기같은 정치인을 왜 위대한 지도자라고 칭하며 흠숭하고 있는가 같은 것도 마찬가쥐. 그는 더 잘 안 사람이고, 그 앎으로 나쁜 짓을 한 것과 무관하게, 그 앎은 더 높은 경지로서 그의 삶을 높였기에 가치가 있는 것. 사실, 그렇기에 나가 진짜로 주지주의 일변도였다면 개쓰레기였을 것이다. 주지주의, 앎의 크기라는 관점에 대해 나가 스스로 겨누는 도덕적 견제장치나 기준들이 있다. 근디, 그걸 쓸라믄 글이 하염없이 길어질테니, 그건 나중에 생각허구, 하튼 나는 충분히 이 사회에 지속가능한 형태로 지성주의 일변도로 흐르는 것은 스스로 조절허구 있다. 이건 내 지인들은 인정할 수 있는 것.
죽음에 관심이 많다, 라는 문장에서 시작해 헷바닥이 길어졌다. 죽음을 생각한다, 라는 것은 사실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믄 죽음은 산 존재로서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 죽음전까지의 삶을 생각하는 것, 그리구 죽음 이후에 남은 존재들의 존속을 생각하는 것 이외에 산 존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산 존재로서 본질적으로 이해하기는 커녕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죽음! 주지주의의 입장에선 엄청나게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초~ 카와이한... 이 아니고 초 예외적인 존재 아니겠는가? 알 수 없지만 있기는 한 것에 대해 느끼는 밑도 끝도 없는 호기심, 이란건데, 어찌보면 이는 알 수 없지만 있기는 한 것에 대해 느끼는 밑도 끝도 없는 공포와 방향만 다른게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느끼는 공포만큼이나 나는 그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고 있는 걸까. 그래서 자꾸 죽음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죽은 자의 묘소에 찾아가보고 그러는 걸까. 정말 그런지는 단정은 못하겠지만, 그렇게 써 놓고 보니 뭔가 내 안에서 무언가 풀린다는 느낌이 들면서 마음이 편해진 것은 사실이다.
원래는 중승근 강홍 원 나이가쿠소리다이진 사마의 삶에 대해 글을 써 볼라구 혔는디, 죽음 두 글자를 접하는 순간 감흥이 크게 일어 다른 쪽으로 글이 뽑혀나왔다. 하타 쓰토무 원 내각총리대신의 사거때는 그러지 않었는디, 그건 그 당시 나가 정신적으로 피폐해 있었기 때문이기두 허구 지금보다 미숙허기두 혔기 때문이겠지만 무엇보다도... 역시 죽은 사람이 나에게 어떤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가 라는 점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지 싶다. 중승근 강홍 원 내각총리대신은 나가 메우 흥미롭게 생각하고 좋아혔던 인물이기 땀시, 더 많은 감정과 상념을 불러 일으켰달까나.
내일은 지인과 일본대사관에 가 볼 생각이다. 혹시 빈소가 있을까 혀서. 지인이 점점 사회적 명사가 되어가믄서, 이미지관리를 하기 땀시, 이런 쓰레기같은 짓! 에 동참하기 곤란한 처지긴 하기에 밝힐 순 읎지만 ㅋㅋ
나카소네 야스히로 선생님. 그 동안 선생님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앞으로는 더 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선생님으로 인해 즐거웠던 기억들은 잊지 않겠습니다.
귀찮아서 쓸까 말까 했는데, 역시 쓰는게 좋을거 같아, 그리고 피지알에서 그 양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조문갔다 올 사람이라곤 저 밖에 없을 거 같아 굳이 남겨봅네다.
김종필이란 인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고 한다면 그 또한 이래저래 말이 많을 이야기입니다.
제가 그 양반을, 저 자신 한국현실에서 꽤나 진보적인 입장에 있음에도 싫어하지 않는다, 라고 한다면 두 가지 측면에서 이유가 있습니다.
정치내적으로는 그 처세술의 문제입니다. 처세술이란 것이 그렇게 바람직한 가치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까딱하면 천길낭떠러지로
떨어지기 십상인 정치판에서 살아남는다 라는 것은 그 자체가 일종의 퍼포먼스인 것이지요. 정치인으로서의 수완이 있으니까 가능하다,
라는 것. 저는 기본적으로 실력있는 사람을 좋아하는지라. 김종필의 처세술에 대해서라면 한국정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토달 사람은
없을테지요.
정치외적으로는 교양인으로서의 면모 때문입니다. 시서화에 능했고, 여러 잡기에도 능했으며 능글능글한듯 하면서도 뼈가 있는 그의
언행들은 그가 다분히 문과적인 깊이가 있는 인물이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고, 저 자신 문과로서 그런 점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달까나요.
과도 많고 비판할 부분도 많지만, 가는 날에 그런 이야기하는 것도 야박한 일이니 일단은 덮어두는 것으로.
오는 6월 28일이 제 할머니 기일인데, 25일날 가고시마여행을 가는지라, 산소에 미리 갔다오기로 마음먹은 날이었습니다. 아침에
같이 가기로 한 양반과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그 양반이 갑자기 김종필이 죽었다고 말을 하더군요. 뉴우쓰를 확인해보니 오늘
아침에 사망했다는 소식들이 타전되던... 정치적으로 그 양반과 같은 편에 섰던 적은 없고, 역사에 큰 죄를 지은 인물이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그 양반이 아니었더라면 김대중이 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할 수도 없었던 일이기도 하기에, 그걸로
군사반란에 대한 죄를 참작해주기로 한다면, 위에 말씀드린 이유로 나름대로 의미있는 인물이라고 보았던지라, 기분이 착잡해지더군요.
어쨌거나 저는 소위 3김(물론 저도 김종필이 감히 양김에 비할바라고 보진 않습니다만, 양김이 구시대와 맞닿는 고리역할을 꽤나 크게
했던 자체는 사실이니)시대라 일컬어지는 시대 거의 내내 정치를 봐 왔고, 그 한 축이면서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양반이 떠났다
하니... 가는 사람에 대한 예의라는 측면과 어쨌건 한 시대가 끝나는 역사의 현장을 지킨다, 라는 생각하에, 산소에 갔다 오는
길에 빈소에 들르기로 마음먹고 길을 나섰십니다. 하루종일 간 사람들 보러 오가는 날이 된 꼴인...^^
산소는 충북음성이라 강변터미널에서 버스타고 갔다와야 허는디, 빈소가 마침 거기서 다리 하나 건너면 있는 아산병원이라 하니 코스가 딱
잡히더군요. 산소갔다 오는 길에, 걸어서 잠실철교를 건너 병원에 들러 조문하는 것으로. 산소를 갔다오니 저녁 6시쯤이 되었고,
뙤약볕도 많이 저문지라 선선한 강바람 맞으면서 건너갔습니다.
전에 김대중이 사망했을 때, 세브란스 병원의 빈소에도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빈소를 찾았고 줄을
서서 조문을 해야했기에 한참 기다렸었는데... 김종필이 이름있는 사람이라곤 하지만, 김대중처럼 확고한 지지기반과 수 많은 존경하는
사람들을 지닌 것도 아니고 만년의 정치적 영향력이나 위신도 비할바는 아니었기에, 그 정도는 아니겠거니, 하긴 했는데... 가
보니까, 일반인 조문은 저 말고는 거의 없는 거 같습디다. 제 앞에 줄 서 있던 사람도 한 세 팀정도? 식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만, 보아허니 대개 아는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느라 오래 있는 각이었고.
빈소는 장례식장 3층이었는데, 장례식장 입구에 KBS와 MBC등의 차량이 와 있더군요. 그리고 3층으로 올라가려니 2층부터
줄지어서 수십명의 기자들이 앉아있고. 아마 빈소를 방문하는 유명인사들 취재하는 게 주 목적중 하나였던지,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누가 지나가나 고개를 들어 보기에 기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영광을... 후후~ 내심, 유명한 정치인들 실물로 볼 기회도 있지
않을까, 생각혔는디, 아쉽게도 제가 조문다녀간 그 시간대엔 그런 사람은 없더군요.
장례식장이란게 구경하러 가는 곳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장례식장에 볼 거리라면 화환의 행렬들일테죠. 생전에 어떤 사람들과 얼마나 폭
넓게 인연을 맺고 살았나, 하는. 아마 제 장례식장에는 화환 하나도 오지 않을...-- 마, 당연히 한국정계 최고 거물중
하나였던 사람의 장례식장이니 화환이 즐비했죠. 기업회장, 정치인, 사회유력인사, 일본쪽 화환도 있었고. 기억에 남는 화환이라면
이명박화환이 어쨌거나 전직대통령이라고 장례식장 제일 안쪽 빈소 바로 옆에 놓여 있었다는 거하고, 어쨌거나 충청도가 낳은
인물이다보니, 신격호나 정몽구 화환 틈에 있을 계제는 아닌거 같지만, 아직 당선자에 지나지 않는 충남도지사 당선자 양승조 이름의
화환이 생각보다 높은 서열로 있었다는 것과 전국적 지명도는 거의 없을 게 확실한 충남지방지 중도일보에서 온 화환이 또 꽤 높은
서열로 있었다는 정도... 좀 더 찬찬히 구경하고 싶었는데, 장례식장에서 그것도 고인과 실질적인 관계도 없는 찌질이가 돌아다닐
일은 아니지 싶어서 제대로 못 본게 좀 아쉬웠네요. 박근혜 화환은 왔나 찾아보고 싶었는디.
빈소앞에 서니 예의 착잡한 기분이 깊어지더군요.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앞에 섰다는 것에서부터, 시대를 풍미한 사람의 지난 날이 -
내가 죽는 것도 아닌데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기분이었달까나. 깊은 숨을 쉬고 두번 큰절 한번 반절하고 상주들하고 맞절 한번 하고
나왔습니다. 밥 먹고 가라 그러는데, 역시 얻어먹을 계제는 아닌 거 같고 끼어봐야 개밥에 도토리 신세인데 뭘 얻어먹냐, 하는
심뽀에 그냥 나왔네요. 전에 삼성병원 장례식장 밥은 맛있었기에, 아산병원 밥은 어떤지 궁금하기는 혔습니다만.
아산병원에서 성내역까지 걸어가는 길이 좀 됩니다. 그 길을 걸으면서 오자니 또 이 생각 저 생각 들더군요. 그 길을 걷다보면 바로
앞에 선명히 잘 보이는게 롯데타워입니다. 그걸 보니 또 신격호 화환도 생각이 나더군요. 산 송장이기야 이 양반이 훨씬 더 한데
어쨌거나 명줄이야 이어지고 있다고 화환을 보낸거 보면 산 사람들 일 같지가 않다는 느낌도 들었달까나. 글구보니 이건희 화환도
못본. 현재 '그' 바닥에선 가장 유명인일텐데 말이죠. 아직 먼 일이기야 하겠습니다만, 노무현 보냈고 김대중 보냈고 김종필 보냈고
신격호 보낼거고 이건희 보낼거고 문재인도 언젠가는 보낼거고 아직은 꼬꼬마같은 김경수도 보낼거고 그렇게 보내고 보내다 보면 내가 갈
차례도 올테고. 결국 죽은 사람 빈소에 가는건 그 날을 위해서 가는 거라는 건 뻔한 생각이지만, 이렇게 직접 맞닥뜨릴 때마다
싱숭생숭해지는게 또 인지상정일테죠. 지금이야 멀었으니 죽는거 두렵지 않다 하지만, 죽음앞에 두고 어떨지는 또 모르는거고. 제가
죽은 사람 빈소 잘 찾아다니고, 신문(그 악독하다는 한겨레 봅니다)볼때도 부고란은 꼭 챙겨보는 이유도 그 기분이 뭔가 탐탁치는
않지만, 외면해서는 안될거 같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그 기분을 딱히 싫어하는 것도 아니어서 그렇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착잡함과 역사의 착잡함이 착종되는 묘한 기분이 드는 하루였습니다. 유력인사가 날이면 날마다 가는게 아니기에, 이런 날의
기분은 그 자체로 독특한 경험이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다음엔 어떤 유력자가 갈 지 모르겠지만, 그 때도 어지간하면 참배하러 갈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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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원 내각총리대신으 조문을 갔다 오믄서 피지라... 아니 피지알에 쓸까 블로그에 쓸 까 고민혔었다.물론 그 이전에 쓸까말까가 더 실존적인 고민이었지만 블로그에 쓰믄 슨상드립부터 나으 평소스런 막나가는 글을 쓸 수 있응께. 근디, 갔다와서 피지라... 아니 피지알을 보니 김종필에 대해 좀 거시기한 이야기들이 횡행하는 것이 아닌가. 참교육... 까정은 아니고, 그랴도 좀 소프트하게 봤음 하는 면도 있지 시프서 피지알에 씀. 나으 개드립 본능을 억제해야 하는 것은 슬프지만, 세상은 언제나 선택과 방황.
근데 웃긴게, 댓글은 거으 안 달리는디 추천은 꽤 된다. 아니 뭐 참 잘했어요~ 도장을 싫어하는 국민학생이야 읎긴 헌디, 이게 그리 칭찬받을 글인가? 해서 좀 의아. 왜 칭찬받는지 잘 이해가 안 갔는디, 대충 세 번째 댓글을 단 양반으 말을 들어보고 아, 그래서 칭찬하는건가? 하는 생각은 들었음. 물론, 나으 음흉하고 시커먼 속내는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다만, 그런걸루 치믄 김종필이 몇십배는 더 하지 않가서? 낄낄~
그런 것두 있지만, 아마두 죽은 사람이 모멸당하는 것이 좀 안타까웠는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으 심정을 대변해 줄 수 있는 글이 뒤야서 추천이 쫌 붙은거 아닌가 싶기두 허다. 모두가 다 싫어할리는 없잖은가? 물론 전두환같은 인간쓰레기는 모두가 싫어해야 하지만, 김종필은 그런 인물은 절대 아니니까. 그런 양반들이 대놓고 뭐라 하기는 그렇고 동조해주기도 껄쩍지근하지만, 속내를 풀어준 것에 대해 참 잘했어요, 해 준 면이 크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든다.
또 드는 생각이 세번째 댓글 양반 말 보고 드는건디, 확실히 사람들이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는구나, 라는 생각. 나야 이 세상에 살아있다는 실감 자체가 잘 안 드는 사람이다봉께, 죽음을 이야기하는데 거리낌이 없는디, 반대로 과문허지만 나가 아는 한 한국 사람들은 세계에서도 가장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사람들이라... 죽음과는 거리를 두고 사는 사람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천연덕스레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 느낌도 있지 싶기두 허구 그렇다. 어쨌거나 한국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죽음과 거리를 두고 살기에, 그 속에서 사는 나는 그들이 그러는 것을 어느정도는 이해하고 있지만, 그 사람들은 죽음을 자연스레 인식하는 것이 생경하다믄 생경할 수 있을텡게.
물론 죽음이란 것을 자연스레 인식헌다, 라고 당당히 말할 정도로 이해나 생각이 깊은 것은 절대 아니긴 허다만 일단 지금의 이 글을 둘러싼 이야기들에서 보이는 것은 상대적일 지언정 뭔가 차이가 있긴 있다는 이야기니까.
사이타마의 도부동물원에서 케모노 프렌즈와의 콜라보로 여러 프렌즈 패널을 설치했는디 그 중에 펭귄 프렌즈인 후루루쨩과 훔볼트 펭귄인 그레이프군사실 인간으로 치면 초고령이라 옹이 더 적절이 사랑에 빠진 일이 있었다.그레이프군의 짝사랑이지만 서로 사랑에 빠진걸로 해 주자. 불쌍하잖아 내 신세 크흨...
인용한 기사에서는 철거해서 낙담했다지만, 태풍때문에 일시적으로 철거한 것이고, 원래 콜라보 예정기한이 9월 말이었는데, 저작권에 심각하게 깐깐한 일본에서도 그레이프군이 인기를 끌자 연장해준데다, 무려 연장방송을 후루루쨩의 성우가 장내방송으로 해 주기까지 해서 훈훈한 모습을 보인 일이 있었다
그 그레이프군이 어제 사거하셨다... 넘나 슬픈것...ㅠㅠ 천수를 누리고 갔으니 어쩔 수 없긴 하다만... 누구인들 안 그렇겠냐만 부고소식만 들으면 안타까운 마음을 가누기가 참 힘들다... 물론 쌭처같은 쓰레기가 뒈졌을 때는 기쁘긴 혔다만, 악하지 않은 인물동물의 부고는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 글이 화제가 되었었다. 자세한건 링크가서 읽어보시고... 중차대한 해외출장을 가야하는데, 그 몇일 전에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한밤중에 붙잡고 당신 외국가면 좆되니 가지 말라, 라고 한 섬뜩한 무속적 경험이다. 섬뜩하다, 라고 썼는데, 사실 무속을 믿지 않으면 섬뜩할 이유가 없다. 실없는 사람 다 있네, 라고 하면 그만. 근데 섬뜩하다, 는 느낌이 드는걸보면 나는 무속이란걸 전혀 안 믿는건 확실히 아닌거 같다. 뭐 믿냐면 그것도 아니다. 링크의 댓글에서 딱히 믿는것도 아닌 무속을 실드치는 바람에 적잖이 키배를 당했는데 거기서 써 놓은 대로... 일종의 전통문화의 연장선상 이하로는 보지 않고 이 상으로는 쪼오끔 보는 정도다. 호기심 자극하는 흥밋거리, 라는게 기본 입장인데, 사람의 운명과 미래가 결부된 것 + 오랜 문화로서 나 자신 그 세례를 받은 사람이다보니 아주 약간은 진지하달까나.
뜬금없이 이 이야기를 한 것은 사후세계라는 것 때문이다. 그레이프군의 사거를 안타까이 여기며 명복을 빈다, 라고 하려 혔는디 명복이란게 사후세계에서의 복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명백히, 논리적 이성적으로는 사후세계는 없다. 정확히는 사후세계같은 것을 전제혀야 할 어떠한 사고상의 근거도 없다. 그러나, 애초에 지적생명체로서으 인류 자체가 물리적으로는 불의 사용으로부터, 정신적으로는 죽음에 대한 인지로부터 발생했고, 그 죽음이라는 아득한 단절을 받아들일 수 있는 형식으로 해소하는데에서 인류의 정신사가 출발했다. 그 죽음 너머라는 것에서 어찌 그리 쉽게 자유로워질 수 있단 말인가.
전제할 필요 없다는 명제가 미래로 나아갈 길이라면 그것을 전제하고 이어져온 것이 지금의 우리인 것이다. 나는 이 딜레마를 칼 가르듯이 나누기엔 현 단계의 인류가 아직 많이 미숙허다고 생각헌다.
그래서 일단 그레이프 군의 사거에는 명복을 빌기로 한다. 내세에서는 후루루쨩하고 손잡고 남극바다를 마음껏 헤엄치시길...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