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재삼 재사 말하지만, 나는 일본의 침략행위는 잔악한 범죄이며, 그에 대하여 반성하지 않는 현재의 일본의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태도를 강하게 규탄한다. 정치적으로 나는 현실적 평화주의자(군사적 행동을 반대하고 군비축소를 지향하지만 부득이하게 군비를 갖출 필요는 있음)를 자처하며, 국제문제는 최대한 평화적으로 협력적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렇기에, 대놓고 침략을 했고 그 과거를 미화하는 일본의 작태를 곱게 볼 리가 없다.


계속 말한 이야기지만 이번 화에 또 이것을 강조하는 것은... 이번 화의 이야기는 요시다 쇼인으로 시작해 요시다 쇼인으로 끝나기 때문이며, 그 중간에 무려, 한민족 입장에서 최악의 악인으로 첫 손에 꼽는데 이론의 여지가 벨루 읎을 이토 히로부미의 이야기도 나오기 때문이다. 첫 목적지부터 이렇게 빡쎄대서야 원...


하기라는 곳은 역사도시이다. 그리고, 그 역사의 축은 에도시대의 모리가문의 본거지였다는 점과 메이지 유신 당시의 중심급 인물들이 성장한 곳이 이 곳 하기라는 점 이 두 가지이다. 앞서도 얼핏 말혔지만, 스토리도 (일본인 입장에서)극적이다. 모리 가문은 동의 도쿠가와에 맞서는 서의 구심점이었다. 그러나, 전쟁에서 패해 광대한 영지를 잃고 감시받고 경계당하는 일개 지방세력으로 전락해버렸고, 그 굴욕감을 품은 채 에도막부 250년을 지내야 혔다. 그랬던 모리가에서 서세동점의 와중에 흐름을 잘 타서 모리번은 강력한 경제 군사력을 지닌 웅번으로 성장하고 번 내에서는 여러 (일본 입장에서)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수 많은 신진기예들이 자라나, 마침내 도쿠가와가를 물리치고, 조슈번 출신의 인사들이 일본의 대세를 장악해, 유신으로부터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강력한 세력을 떨치게 되는, 역전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이야기 자체로서는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극적인 성공스토리인 것이다.


그리고 요시다 쇼인은 그러한 신진기예들에게 강한 영감을 주어, 그들이 일본의 새 시대를 이끄는 인물이 되게 한 스승이고, 이토 히로부미는 그 신진기예들의 말석에 존재했던 인물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하기라는 곳이 사실상 오늘날 번영하다가 퇴락하고 있는 일본의 자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내가 이 곳에서 보려는 것은 그 극적인 이야기의 현장과 모습들이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범죄과 악행을 잊을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그러나, 일이 벌어진 자체는 벌어진 것이다. 나가 여행 갔다오고 틈틈이 드립처럼 쓰는 표현이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는 유신의 심장이 따듯한 진정한 일본인이 될 수 있는 기회였다'


라는 것인데... 이거 참 한국에서는 처 맞아도 싼 드립이다만, 저 드립의 기원은 사실 철저한 조롱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D%BC%EB%B3%B8%EC%9D%98_%EB%A7%88%EC%9D%8C%EC%9D%84_%EC%86%8C%EC%A4%91%ED%9E%88_%ED%95%98%EB%8A%94_%EB%8B%B9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라는 것은 이 당의 이름에서 따 왔다. 나가 진짜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혀서냐? 그건 아니구... 일본 정치는 수준이 낮은 것으로 유명허다. 일부 일뽕들은 일본 정치가 한국보다 낫다고 말하는 데 그런 놈들은 그냥 정치에 대해 아닥혔으면 좋겠다.


각설하고

수준이 낮은 정치이다보니 정당들도 해괴망측한 것들이 많은 데... 저 당은 이름부터가 해괴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이름이 우스꽝스러워서 일본 정치를 이야기할 때는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해야죠~ 식으로 드립을 치는데에 저 당의 이름을 요긴히 써 먹는다.


유신의 심장은 당연히


장군님... 그립습니다...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셨던 그 분에게 바치는 오마쥬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이 짤 보고 몇 분을 웃었는지 기억도 안난다. 웃다 뒤지는 줄 알았다. 이 짤에 하도 감명을 받아, 감동이 뭉클히 올라오면 아 나으 유신의 심장이 또 따듯해지네... 라고 말하곤 헌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진정한 일본인임을 자칭하는 데 있어서,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는 유신의 심장이 따듯한 진정한 일본인


이란 자기 소개는 배덕의 미학의 정점을 찍는다, 라고 나는 생각헌다.

솔까 왜놈들이 과거사 반성 안하는 게 짜증나는 이유가, 일본 갖고 칠 수 있는 수 많은 드립들이 있는데... 이 놈들이 반성을 안하고 스스로 악마화를 자초하다봉께 그거 갖고 드립을 칠 수가 없다. 깔끔히 반성하면 진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데... 하긴 그러면 왜놈이 아니긴 하지. 물론 반대로 생각해보면... 나쁜놈이 아니게 될 경우 그 나쁜놈 갖고 드립치는 게 지금처럼 재미가 있을까? 허는 생각이 들긴 헌다. 나는 아직도 개구쟁이 코찔찔이의 심정이 강한지라 그게 배덕의 쾌락을 추구하는 큰 근원이 된다. 나쁜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라는 말을 들으면 더 하고 싶어진달까... 그런 상황에서 나쁜 놈 끝판왕인 일본놀이를 하는 것은 배덕감을 극대화하는 것... 어찌 이 쾌감을 놓칠 수 있으리.


다만 쾌감은 쾌감이고 비판은 비판임을 철저히 구분할 뿐이다.


그리고, 일본인들의 악행은 악행인데, 그 악행의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이룬 성취 그리고 그 성취에 대한 자부심은 일본인들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것 그 뿐이다. 그리고, 이해한 이후에는 응 니네 쓰레기야~ 라고 돌아오는 것이고. 물론 주화입마의 위험이 없다고는 못허는디, 이러고 논지 5년이 넘었다. 그럴 걱정은 없다고 단언헌다.


그니까, 맘 편하게 일뽕 코스프레하면서 놀겠다, 는 이야기... 인데 역시 쉽게 되진 않겠지. 끊임없이 일본 개새끼를 외치며 일뽕에 취하는 수 밖에.


다시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는 나로 돌아가서... 상기한 스토오리가 있기에, 유신과 그 성공은 일본인에겐 정말 놀라울 정도의 짜릿함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현재의 일본의 꼬라지를 보면서 탄식을... 오늘 새벽에 피지ㄹ... 아니 피지알


https://pgr21.com/pb/pb.php?id=freedom&no=76379


이런 글을 썼다. 따로 포스팅 하는 게 좋겠다만 그냥 왠지 귀찮아서. 하튼 이제 "무시무시한 군국주의 일본" 은 한국보다도 군사비가 적은 나라가 되기 직전이다. 아! 너무 무섭다!!! 게다가 계속 생각하는 거지만, 극우파는 오히려 일본의 암이다. 그런 의고적 태도를 버리지 못하면 더더욱 일본은 과거의 영광에 얽메여 현실의 문제를 더 악화시키게 될 뿐이다. 일본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극우파는 정리해야 하는건데... 일본인들의 현실도피성향은 그런 것을 못하게 만들고 있달까나. 아베가 저러면 저럴수록 일본은 더더욱 위축될 뿐이고, 작금의 남북미정상회담 정국에서 그런 면모는 더더욱 두드러지지 않는가.


각설하고

하튼 작금의 일본의 꼬라지를 보면 일본인들은 우째 이런일이... 라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고, 그러다보니 놀랍고도 기적과도 같은 성공을 이어갔던 유신시절의 자국의 과거사에 대해 향수를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잘 나간다면 지금의 번영의 근원이라서, 못 나가더라도 그 때 우리는 빛났는디... 하면서 말이다. 여담인데, 하기에서 열린 유신 기념식의 분위기는 100주년 기념식과 150주년 기념식이 크게 다를 것이다. 일본이 엄청나게 잘 나가던 1968년의 100주년 기념식에서는 희망찬 분위기였고 앞으로"도" 잘하자 였는디, 올해 열릴 150주년 기념식에서는 아무래도 좀 찝찝한 분위기에 앞으로"는" 잘하자 가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일본이 잘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놈은 일부 어쭙잖게 일본에 대해 얄팍하게 아는 우익 지식인들 뿐이니까.


하튼 하기는 바로 그런 곳이다. 그렇기에, 이 곳은,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는 유신의 심장이 따듯한 일본인이라면 가보지 않을 수 없는 곳이 되는거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식의 자기변호를 혀야 할 일이 몇번 더 있긴 할게다. 시모노세키에선 신공황후 문제가 또 걸리는지라... 어쩌겠나. 한국인으로서 일본에 대해 깊은 애착과 격한 증오를 동시에 지니게 된 내 자신을 탓혀야지. 깔끔하게 증오만 하면윤서인처럼 애착만 가지면 문제는 편하겠다만, 나의 장점인 상대의 입장에 잘 이입하는 것과 나으 단점인 자기으 주체성이 모호한 부분땀시 그게 그렇게 되지가 안헌다. 판단과 통찰이란 점에선 분명 장점이라고 생각허기에 이렇게



자기과시 헌다만.


지난화에서의 여행분이다. 이번 화에서는 장거리 이동이 없을 것인지라, 이 지도는 올리지 않게 될 것이다.

대신



하기 시내 여행도를 올려야겠지. 하기의 위치가 어디인지는 윗 지도를 클릭하믄 확대되니 확인허시구.

앞서의 5화에서도 말 혔듯이, 실로 천혜의 땅이랄 수 있다. 좌상단이 지난 화에서 말혔던 시즈키산, 그 산 기슭에 하기성, 성 앞에 해자 하나, 해자 밖에 하기번의 사무라이들의 거소, 그 밖에 또 해자하나, 해자 밖에 성아랫마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둘러싸고 있는 아부강과 하시모토강. 아부강의 삼각주지대에 실로 절묘한 위치에 자리잡은 요새도시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육로로는 산음도의 길의 요충에 자리허구 바다로는 동해(일본해)의 수운의 가운데에 위치하니 물러서면 지키기쉽고 나서면 뻗어나가기 좋... 까지는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좋은 위치의 마을이라 헐 수 있긋다.


산음본선 철길은 역사유적지인 마을 한 가운데를 피하기 위해서인지 죠카마치(성아랫마을)를 크게 빙 돌아서 지나간다.지도상의 뻘건 선이 산음본선 철길. 지도의 좌측에서 진입하여 아래의 하기역(하기역 위치 표시가 잘못뒤얐다...저 바로 아래다. 그림판 다루는 실력이 구려 수정할 엄두가...)을 지나 우상단의 히가시하기역에서 종착혔다.


노오란 별들이 여행 포인트, 핑크색선은 하기에서 나가 돌아다닌 보행로이다. 화살표모양으로 진행방향을 표시혔는디 역시 그림판질이라 퀄이... 마을 자체로만 보면 작은 마을이다만, 전체를 완죤히 타통하려다보니 이 날 걸은 거리는 대략 14킬로미터... 문제는 관부연락선내에서 잠을 제대로 못 이루는 바람에 수면 시간이 2시간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 피로가 제대로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저렇게 돌아다니느라 증말 뒈지는 줄 알았다. 거기에, 역시 앞서 말혔지만, 다른 마을들에서는 10~11시에 일정이 시작되는디, 여기는 열차시간이 맞지 않는 바람에 13시에 일정이 시작되는지라, 시간이 부족해서 조급한 마음에 더 빨리 돌아다니느라... 원래는 이 여행도에 표시된 것보다 대략 대 여섯곳 정도는 더 돌아볼 계획이었는디 촉박헌 시간, 떨어진 체력으로 인해, 저 만큼 밖에 보지 못했다... 이번 여행에서 제일 발목을 잡은 것은 체력이었달까나. 물론, 나가 지도만 보고 계획을 세우는 바람에 감당하기 힘든 무리한 계획을 세운 면이 더 크긴 하겠다만, 대체로 다른 날들은 목적들을 거으 대부분 달성혔던지라... 가장 의욕적으로 계획을 세웠던 하기가 계획달성률은 제일 낮은 게 아이러니.


게다가 이것도 지난 화에서 이야기헌건디 이 날, 2월 3일은 날이 흐렸다. 날이 흐리구나, 하고 생각하고 별 생각없이 마쳤는데... 다음 날부터 날이 쾌청하니 풍경의 때깔이 전혀 달라지는 게 아닌가. 다음 날의 이와쿠니에서 돌아다니믄서 느낀게, '아 하기에서는 날씨가 좋지 않아 풍경이 그렇게 좋지 않게 느껴진거구나...' 라는 것을 절감혔다. 이래저래 첫 날에 신고식을 혹독히 헌 셈. 사스가 갓본으 8백만신은 이방인에게 호락호락허지 않으시다...


마 어쨌거나 열심히 뽈뽈거리고 돌아다녔고, 썰도 구구하게 장황허게 풀었응께 인자부터는 여행모습을 들여다 보기루 허자.


히가시하기 역의 모습. 최신식은 아무리 봐두 아닌디 뭔가 전통식이라기두 애매헌... 절충의 나쁜 사례같은 느낌? 물론 건물 자체로만 보믄 깔끔허니 잘 짓긴 혔다.


방장경략등장버스 답게 운수회사 이름도 방장버스. 이 야마구치현이 주방 장문 두 옛 지명을 합쳐서 된 지역이고 주방 - 장문 에서 한 글자씩 따서 방장 - 보초라는 약칭으로 불리운다는 것은 지난번에 이야기허긴 혔지만, 연재가 지지부진한지라 기억 못하실 분들도 많을 듯하여 또다시 설명충질.


되게 고풍스러운 건물이 나오는데 아무런 역사적인 뭣도 아닌 일반 가옥이다. 마 앞으론 이런 모습 지겹게 볼 거니까. 열차에서 내려서 처음으로 본 일본가옥이기에 찍어올림.


해수면으로부터 내 키만큼 높이도 안된다는 이야기... 동해(일본해)에서 쓰나미가 몰려오면 꼼짝도 못할 듯.


군대가 인기 드릅게 없는 나라에, 인구도 5만도 안되고 그나마 대부분 노인인 동네에서 뭔 군인을 모으겠다고... 마 유신의 심장의 그 동네이니 유신지사 같은 사람이 많기를 바라는 걸지도?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걸어 건넌 철길건널목. 협궤가 좁긴 좁다...


하도 연재를 질질끌다봉께 말 혔는지 안 혔는지 스스로도 아리까리헌디, 일본은 생태레벨이 한국보다 한 레벨 이상 높다. 한국에서 비둘기의 위치는 까마귀가 차지하고 있고 까마귀의 위치는 매인지 독수리인지 황조롱이인지 잘 모르긋는디, 하튼 이놈이 차지허구 있다. 사진 비율을 보시믄 알긋지만, 저 간지포풍의 새들이 바로 머리위를 날아다닌다. 원래 동물을 좋아허지만, 한국에서는 정말 쉽게 보기 힘든 이런 상위포식자 고오급 생물들을 코앞에서 마주허니 감동이 쓰나미처럼 몰려와서 열심히 찍었다.


첫 목적지인 쇼카손주쿠 - 송하촌숙으로 가는 길. 주요 역사여행지 답게 깰끔히 정비된 모습.


이제 한국에선 보기 힘들게 된 정글짐. 옛 추억이 떠올라 볼 때마다 찍곤 혔다. 지금 내 몸뚱아리로 저기 기어들어갔다간 껴서 나오지도 몬헐 듯.


기찻간에서 볼 때도 훌륭혔지만, 역시 내 발로 걸으믄서 코앞에 보니 느낌이... 이런 집들이 그냥 보통의 개돼지들 집이란게 참 놀라운 일이다.


일본의 자전거 문화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보편화되어 있다. 이것도 상당한 장점. 안전을 중시허는 꼬꼬마들도 헬맷을 열심히 착용허구 다니는디, 그게 무슨 경찰이나 공사장 하이바 같아서 묘한 위화감이~ 아키라에 보면 나오는 전공투들이 쓰고 다니는 하이바하고 기본적으로 비슷허다.


조슈번이 막부를 때려잡는데 맨 손으로 되는 것은 아닌 법. 당연히 공업을 발달시키고 무기를 만들어 막부보다 한 테크위의 군비로 딸리는 물량을 뒤집었다. 이러한 조병창에 제철시설, 조선시설등 여러가지 시설이 하기의 근대산업유산으로 남아 있는데, 나으 주 관심사는 아닌지라 지나가는 길에 보인 이런 것만 찍었다. 사실, 이 손바닥만한 마을에 하루를 풀로 할당혔는데두, 보지 못한게 노무 많은지라... 만약 다시 간다면 이런 것들두 둘러볼 겸 하기에만 3일은 할당할 거 같다. 산과 바다와 강도 많아서 풍광도 엄청 수려하거든. 식문화도 제대로 못 체험혔구.


쇼카손주쿠에 도착. 와시가 쇼카손주쿠주쿠죠 요시다 쇼인 데아르!


이 분도 참 훌륭한 장군님이시지...


일본의 역사마을을 돌아다니면 가장 인상깊은 것이 저 검은 기와가 얹힌 흰벽이다. 실로 白壁 - 시로카베의 민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랄까나... 한국은 백의민족 일본은 백벽민족.


쇼인신사의 정문. 쇼인이 위인으로 숭상받은 역사가 그리 오래된 게 아닌지라, 신사 자체가 근본있는 신사라긴 어렵다. 사실 애초에 일본전국 8~60만개의 신사중 거으 대부분이 메이지 다이쇼 이후에 제대로 숭상되기 시작헌 거긴 허다만...


경내는 차분한 공원삘이다.


센 리큐와 그의 제자 후루타 시게나리의 다도이야기를 다룬 효게모노를 엄청 재밌게 본 지라, 일본의 차 문화에도 관심이 있다. 이 건물은 이번 여행에서 처음 본 일본식 다실이라기에 찍음. 하기번 7대번주 모리 시게나리가 1776년 호후에 지었던 것을 쇼와 34년, 그니까 1959년에 여기로 옮겨 보관중이다, 라고 써 있는거 같다. 지어진 해가 미국이 독립선언한 해이구먼.


일본 서브컬처에 보믄 저 시메나와가 또 독특한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시메나와는 액을 막는 금줄인디, 그게 처져 있다는 것은 나같은 부정한 것을 퇴치혀야하는 중요한 곳이라는 의미일 터.


아니나 다를까, 요시다 쇼인이 유폐되어있던 집을 지키는 금줄이었던 것이다.


여태까지 봤던 집들이 현대식으로 어레인지된 전통가옥이라믄, 이 집은 명실상부 에도시대에 지어진 정진정명 진품 일본식 가옥이다. 솔까 쇼인이란 인물의 역사성을 제껴놓고 가옥으로봐도 충분히 아름답다. 중요사적이라 들어가보지 못하는 것은 아쉽.


드디어 쇼인신사에 도착.

안에 신관님은 오늘은 또 어떤 싸무라이들을 용기병으로 만들고 있으실런지


신사참배를 하기 전엔 여기서 손과 입을 씻고 가는 것이 참배의 작법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신사참배를 했다고 내가 일제에 혼을 판거 아니다. 문화체험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황국에 충성하는 것도 아니니 그런거 문제삼진 말도록 허자. 일본 여행동안 들른 신사에는 거으 대부분 참배를 혔다. 종교라는 것에 대해서는 기독이든 이슬람이든 불교든 가리지 않고 흘러간 과거의 찌꺼기 이상으로 취급은 하지 않는다. 다만, 수많은 사람들의 열망을 담은 문화의 결정체라는 점에서 그 자체는 상당히 흥미로운 대상으로 간주함. 한국 개신교단을 극히 싫어하지만, 개신교 교회의 건물들 자체는 사람들이 쌓아올린 욕망의 복마전이라고 보아 오모시로이하게 여긴다. 신사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 아직도 원시시대의 애니미즘적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본의 토인들이 자기들이 쌓아올린 허상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는 미몽의 현장으로 여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복마전의 개독이든 신사의 왜인이든 결국 내 눈앞에 살아있는 그들이, 삶의 근원이라 믿고 그것을 숭배한다는 것. 그들의 문화를 겪어보는 것은 그 만큼, 이 세계를 이해하는 경험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히 있다.


오옷 나무 도리이~ 확실히 격이 있는 신사는 나무 도리이를 쓰는구먼. 쇼인은 신으로 모셔진 위인중에서도 격이 아주 높은 인물이라 대우도 좋은 거 같다. 물론 모든 위인의 신사가 나무 도리이를 쓰는 건 아닐 것이기에 내 취향을 멋대로 갖다붙인 설명에 가깝다만.


너 사실 나치를 좋아하는 거 아니야? 물론 하켄크로이츠는 이 역방향이다만. 그려서 동양권에선 逆만자라고 부르긴 허지.

쫌금 흔들렸는디, 신사내전의 제단까지 찍어봤다. 근데 이거 찍어도 되는거겠지? 일단은 토인들에겐 신성한 곳인데 혹시 찍으면 안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일단 아무도 없어서 말리는 사람은 당연히 읎었다만.


일본도 공부문화가 발달한 나라라, 공부의 신으로 숭상되는 신들이 여럿 있다. 쇼인이 길러낸 제자들이 이룩한 일을 볼 때, 공부의 신 업계에서 그의 위상이 어느정도일지 설명이 必要韓紙?


어쨌건 여기도 전통신앙미신의 전당인지라, 길흉화복을 논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근데... 1977년생은 올해가 대액년이라는데? 나 올해 좆되는 건가? 몸 사리고 조심조심 지내야겠다.


캬~ 아무리 일뽕맞은 센징이 해봐야, 정품 일본토인이 야마토 다마시를 담아서 하는 것과 비할수는 읎제~ 정품 신사참배를 토인들이 하기에, 뒤에서 몰래 찍어봤다. 말 나온김의 이야기인디 저 야마토 다마시 - 大和魂 이라는 일본정신을 강조한 사람이 바로 요시다 쇼인이다.


용품창고 같은디, 장소가 장소다 봉께, 스타일을 신경써서 지은거 같다. 괜히 맘에 들어 찰캌


이 신사는 쇼인신사 좌측의 송문신사, 그니까 쇼인 문하생들을 합사한 신사이다. 송문에는 유명인사들도 많지만, 기억해주는 이 없는 스쳐지나간 사람들도 당연히 많고... 왠지 잊혀진 사람들이 쓸쓸해 보여서 찍어봤다. 물론 애초에 신사가 지어질 정도의 사람 자체가 그냥 잊혀진 사람들인건 당연히 아니지만.


쇼인신사 본당을 옆에서 찍은 모습. 앞에서 볼 때는 알 수 없는 나름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신사건축양식 자체가 이렇다. 앞에서 보면 평범한 기와집인디, 그 뒤로 통로 같은 게 지어져있고, 제단을 모신 진짜 본당은 저 뒤에 반발짝쯤 높게 지어져있는 구조이다.


물론 그거야 모셔져 있는 신의 위격이 높은 고오급 신사의 이야기고, 이런 약식으 소소한 신사들이 훨 많다. 개인적으론 이런 게 더 좋다. 위엄찬 신사들이 뭔가 비일상적인 느낌이라믄, 이런 작은 신앙의 장소들이야말로 보다 생활화된, 개개인이 체득한 문화라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지. 쇼인 신사답게 권학당이라는 팻말이 붙어져 있다.

무... 무녀님이다...

무녀님이 주신 경단의 맛 잊지 않겠습니다...

난 이 드립을 치기 위해 일본에 왔는지도 몰라...

항봉무녀는 고갤이 인정한 4대명작이니 야겜러들은 꼭 해보세요.


ㅋ~ 포켓몬뽕에 취한다... 신사경내에서 포켓몬 고 를 플레이하지 마세요 라고 쓰여있다. 근데 저 시점엔 이미 포켓몬 고 인기는 뽕이 다 빠진 뒤이긴 허다만... 전성기에는 쇼인신사까지 와서들 극성이었단 것을 알려주는 역사자료이다.


사스가 쇼카손주쿠...


보시믄 아시긋지만 굉장히 작은 건물이다. 원래는 제자들을 거으 독대하다시피 가르쳤다는디, 그 명성이 높아지믄서 저 좁은 방에서 복작복작 몰려서 가르침을 주고 받았다고 헌다. 현대 일본이 이 작은 부옥에서 태어난 셈이니, 일본인에게는 작지만 큰 집일테지.


강의실의 모습과 요시다 쇼인의 초상. 깐깐허니 잘 가르치게 생긴 거 같긴 허다.


쇼인과 그의 제자 내가 멋대로 이름붙인쇼인12철의 모습. 다카스기 신사쿠, 기도 다카요시, 쿠사카 겐즈이처럼 일본토인들은 잘 알지만 한국인은 잘 모르는 얼굴들 틈에 교과서에서 뻔질나게들 보았을 그 분의 모습이 우중단에 보인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국가적 위인의 地인지라 천황과 황태자내외도 왔다갔다. 연호가 헤이세이인 것으로 보아 금상 아키히토 천황과 황태자 나루히토 친왕이 왔다가 남긴 비석인 듯.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아키히토와 나루히토는 극우와는 거리가 먼 정도를 떠나 아예 상극인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도 당연히 일본인인지라, 쇼인은 위인으로서 존숭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이 곳이야말로 명치유신 태동의 땅


사실 그것보다는 이 비석을 남긴 사람때문에 이 사진을 올린 것. 원 내각총리대신 사토 에이사쿠가 쓴 글을 비석으로 남긴 것이다. 아마 그가 재임중에 이 곳을 정비하면서 남긴 게 아닌가 싶음. 사토 에이사쿠는 허구헌 날 내각총리대신이 바뀌는 일본에서 무려 7년 8개월이나 내각총리대신으로 재임해 역대 2위의 재임기간을 자랑한다. 1위는 3차에 걸쳐 7년 11개월을 재임한 가쓰라 타로. 정작 사토 에이사쿠는 그렇게 카리스마나 지도력이 강한 인물도 아니었음에도 오래 집권했다는게 특색이랄까. 비핵 3원칙으로 뜬금없이 노벨 평화상을 타서 그런지도? 군인 출신인 가쓰라 타로를 빼고 순수 문민중에는 최장기 집권 내각총리대신인디, 그런 점에서 괜히 좋아허는 인물.


불행히도 아베 신조가 작년 총선에서 압승하믄서 사토 에이사쿠의 기록을 월등히 넘을(1기 내각 합치면 10년도 넘을 수 있다)뻔혔는디 요즘 모리토모다 북핵문제다 점점 똥되는 분위기가 역력해져서 다행이지 시프요. 물론, 정치는 모르는거라 이런 위기를 넘기고 10년집권을 달성할지도 모르긴 허다만... 아베 같은애는 빨리 낙마혀야지.


쇼인신사와 쇼카손주쿠를 다 보고 나와서 마주친 선거 포~스타


요즘은 이야기가 뜸한데, 일본에서는 한국에선 사이비종교라고 뭉뚱그려지는 신종교, 신흥종교들의 세가 굉장허다. 그 신종교교단중 가장 세력이 강한 곳중 하나가 불교 일련종계열의 창가학회이고 이 창가학회는 세력을 바탕으로 정계에도 세력이 있는데, 그 정당이 바로 이 공명당. 나가 여행중이던 동안에 야마구치는 선거기간이었는디, 그랴서인지 정치포스타들이 많이 붙어있었다.


안내도인디... 좀 뜬금읎는건 한글패치가 잘 되어 있다는 것. 물론 일본은 자이니치가 지배하는 나라답게 한글패치가 음청 잘 뒤야있다... 만... 요시다 쇼인이나 이토 히로부미를 보러 한국 사람들이 올 일이 을매나 있겠나 싶은... 나같은 놈 말고 올 사람이 딱히 있기나 할런지. 잠시 뒤 이토 고택에 들르는 데 이 땀시 거기서 재밌는 에피소드가 벌어진다.


마을길 호젓허다... 유명 역사여행지이기 이 전에 평범한 시골마을이다.


일본 가옥들 모습. 靑田國男이믄 아마 아오다 쿠니오라고 읽겠지? 이 양반댁은 뭣 땀시 시메나와를 쳐 놨는지 몰것다.


앞서 말한 선거기간임을 더 잘 보여주는 포~스타. 앞서같은 포~스타는 통상의 정치선전 포~스타인 경우도 있는디, 이건 대놓고 선거 포~스타임. 야마구치현 지사선거를, 무려 이 다음날 치른다는 이야기다. 일본은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을 못허게 뒤야있어서 둘 다 무소속이다. 한국도 한때는 그랬지. 대신 어느 정당 추천인지를 밝혀서 소속을 알리는 식이다.


기호 1번인 쿠마노 유즈루 상은 사민당, 신사회당, 일본공산당 추천. 빨갱이새끼야! 선거 구호가 인상깊은게, 시민과 야당이 함께 야마구치를 아베현이 되지 않게 한다 라는 임팩트 넘치는 구호를 보여주고 계신다. 선거 이기고 싶은 당이 할 구호같지는 않다만...

기호 2번인 무라오카 츠구마사 상은 현직으로서 재선에 도전. 당연히 자민당 추천.


선거는 다음날 치뤄졌고... 야마구치를 아베현이 되지 못하게 하겠다고 사자후를 토하시던 쿠마노상은 7만표를 득표했다. 새 시대에의 돌파력을 역설하시던 무라오카 현 지사는 30만표...-- 이와쿠니의 호텔에서 NHK늬우쓰를 통해 봤음. 이 시기는 아직 아베가 압승한 작년 중의원선거의 여파가 강할때인데다, 모리토모 문제가 은근슬쩍 묻히는 분위기였던지라... 그게 아니라도, 지역구가 시모노세키인 아베의 홈 스테이트에서 자민당 후보가 질 리도 없고... 보수세력의 역사적 근원이라는 점에서 보자믄 야마구치는 한국으로 치믄 구미같은 곳이다. 물론 요즘 같은 정세에서 혔다믄 표차는 줄었겠지만, 승부가 뒤집힐 일은 없었을 것.


한국 사람들이 제일 얼굴을 잘 아는 일본인중 하나일 그 분의 상. 근데 뭔가 묘하게 싸구려틱해보인다...-- 이 양반도 일본에서는 위인이라믄 위인인데, 신사를 받진 못혔다. 요시다 쇼인같은 사람이야 당연히 받는거고, 그 제자이자 유신 3걸의 1인인 기도 다카요시도 받았는데, 이토 히로부미는 묘하게 그 격에 못 낀다는 것일까?


초대내각총리대신 이토히로부미 별저

라고 쓰여있다.


천황가의 사람들이야 전전에는 대놓고 신이었고, 전후에는 쉬쉬하며 신인지라 오가는 곳마다 비가 서 있는거야 뭐... 하물며 이것은 다이쇼 15년에 세워진 것. 다이쇼 시기에 황태자였다면 바로 그 분, 쇼와 - 히로히토를 말하는 것. 다이쇼 15년 - 1926년이니 천황으로 등극하는 그 해에 이 곳을 다녀갔다는 이야기가 된다. 조선 침략의 첨병의 집에, 일본 제국주의가 가장 극심했던 시기의 천황이 왔다 간 비이니... 역사의 때가 가장 짙게 농축되어 있는 유적이라고나 할까.


하튼 집에 들어서 본다. 다다미라는 게 참 맘에 드는 바닥재이지 시프요. 물론 관리하기가 개 빡친다고는 하더라만...--


이런 미니어처들도 있다. 사진은 기헤이타이 - 奇병대라고 메이지유신 당시 다카스기 신사쿠가 조직한 의용병대. 에도막부군을 물리치는 데 큰 역할을 혔다.


군산을 비롯한 한국에도 각지에 일본식 가옥이 남아있다만 이것은 정품 of 정품. 게다가 거주한 사람도 정품 of 정품 일본인이니 품격의 차이가...


계단은 언제나 상상력을 자극한다. 저길 오르면 무엇이 있을까.


크어... 다다미방!


크흐... 복도!


실로 일본일본함 그 자체다. 어둠의 그 것이긴 하지만 역사으 아우라가 얹혀있다보니 더더욱 일본스런 맛이 진하게 느껴지는 느낌이다.


소박하고 아담하게 꾸며진 정원으 모습.


어쨌건 일본에선 위인이다보니 위인전도 많다. 맨 아래으 책은 철저대연구 일본의 역사인물 이토 히로부미라는 정진정명 일본스러운 제목의 책.


요시다 쇼인이 일본 입장에서 위대한 사상가라믄 이토 히로부미는 많은 일을 하긴 혔지만 어쨌거나 실무자 실권자일 뿐인지라... 열심히 요시다 쇼인을 묻히고 있는 모습


이런 장면 효게모노에서 많이 봤지. 차 한잔 마시고 싶어진다.


일본을 많이 다닌 것은 아니다만, 보믄 청일전쟁의 종전협상인 일청강화회담에 대해서는 많이 다루는디... 성과면에서는 훨씬 컸다고 봐야 헐 일러전쟁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잘 안 다룬다. 대충 이유를 짐작해보자믄 청일전쟁은 일본의 압도적이고 일방적 승리로, 강화회담에서도 우리 일본 하고 싶은거 다해! 한 자리인데 비해 러일전쟁에서는 미국으 중재로 일본이 제발 이거도 주고 저거도 주세여~~ 하고 졸랐는 데, 로시아가 아니 안 줄거야, 우리가 피곤해서 전쟁 끝낼 뿐인거니 대충 먹고 떨어지셈 ㅋㅋ 하고 마무리헌지라, 그렇게까지 영광된 마무리가 아니었던 점이 크지 않은가 싶고... 거기에,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신 일본을 건설한 이후 최초로 대대적인 대외전쟁에서 승리헌게 청일전쟁이라는 점 등등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토 별저 탐방은 여기까지. 불편한 거 보시느라 수고들 많으셨셈.


앞서 말헌 재밌는 에피소오드를 풀 차례인디... 나는 딱 봐도 똥송하게 생긴 똥양인이다. 체격도 크고 험상궂은 놈이 머리도 빡빡깎고 혼자서 이 여행을 다녔다. 이 곳 또한 역사유적인지라 관리하는 사람이 있었고, 아담한 체구으 선량해보이는 일본 아지매였는디... 저런 똥양인이 혼자서 이 곳을 들어오니 이 분이 꽤나 의아하게 생각혔던 것 같다. 일단 딱 봐도 일본인은 아니다. 그리고 딱 봐도 동아시아 인이다. 전혀 동남아같이 생기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동아시아래봐야 중국 한국이 다 아닌가. 대만이나 몽골은 을마 읎응께. 근디 중국과 한국인들이 이토 히로부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이 집을 관리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잘 알 것이다. 그니까, 그 곳 사람들이 올 이유가 없는 곳인데 이 사람은 도대체 어디서 온 사람일까... 이게 그 아지매는 음청 궁금혔던 모양이다. 나가 관람을 마치고 나갈라 카는데, 이 아지매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혔는지 영어로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서... 차이니즈? 아메리칸? 이렇게 말허더라. 이 때 느꼈다. 아 이 아줌마 내가 한국 사람인거 눈치 챘구나. 한국인이라면 이토 히로부미는 철천지 원수라 이렇게 유심히 보러 들어올리는 없는데도 왔다는 게 지나치게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일본인 답게 대놓고 물어보진 못하고 에둘러 물어본 것이다. 그랴서 당당하게 코리언도 아니고 강고꾸진데스~ 라고 해 주고 왔다. 아줌마의 그 호기심이 풀어지는 표정에 괜시리 나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 다 들더라. 어찌보믄 이번 여행에서 가장 배덕감이 넘치는 순간이었달까나 ㅋㅋ. 일본어를 쫌금이라도 할 줄 알았다믄 왜 왔는지 이야기해줘도 뒤얐을텐디... 아마 그 아지매도 한국인인데 이 곳에 온 이유가 무엇인지 무진장 궁금혀서 더 물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다만, 여행기 내내 보시믄 아시다시피 나 자신, 왜 그딴 걸 보러감? 이라고 물어보믄 에... 또... 하믄서 말이 길어지는지라 깔끔히 설명허기는 쉽지가 않아서... 짧은 일본어로는 그냥 오셨어요~ 네 왔십니더~ 하고 헤어지는 정도였을 듯.



다음 목적지인 요시다 쇼인의 생몰지를 가 보기로 허자. 가는 길에도 일본 가옥들 퍼레이드는 여전히 화려허다. 저 나무로 높게 올린 구조의 부옥이 또 일본 가옥의 특징적 모습중 하나. 앞에 잘 다듬어진 조경수또한 극히 일본적. 저런 소박한 집 마당에 저렇게 다듬어진 나무라는 게 참 놀랍다.


일본식 정원조경수는 기본이고 고오급 스러운 시로카베로 둘러친 집. 이 집 주인은 확실히 재력이 좀 될 것 같다. 시로카베란게 돌아다니다보니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흔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역사유적이 아닌 집인데 이렇게 치고 산다는 것은 만만찮은 재력의 소유자라는 말일 터.


이 높게 솟은 나무로 된 건물은 진짜 꼭 한번 들어가보고 싶다. 지인이 일본에 진출할 예정인디, 이 양반한테 나중에 일본에서 돈 벌어 집사면 꼭 저런 집 사라고 혀서 들어가 봐야지.


하기 전반부에 봤던 가옥중 가장 맘에 든 집


벽돌로 쌓은 벽은 쫌금 아쉽다만... 기와지붕 얹고 기름먹인 나무로 벽을 둘러친 집이 이시가키... 아니 축대위에 올라가 있다.


거기에 담장밖으로 수줍은 듯이 빼꼼히 내다보는 한 떨기 꽃송이...


집 문까지 굉장히 완성도 높은 일본식 가옥의 구색을 증말 잘 갖추고 있다. 진짜 집 구경만 해도 질리지를 않는다.


이 것은 요시다 쇼인의 숙부 타마키 분노신의 구택. 타마키 분노신은 요시다 쇼인에게 물적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된 양반이다.


일본식 초가집 지붕. 이 지붕이 또 맘에 들더라구.


내부는 평범한 다다미방. 8첩이나 되는 널찍한 방이 줄줄이 이어져 있다.


중간에 사진이 좀 없는데... 라기보다는 사실 나가 지나치게 사진의 밀도가 높긴 하다만... 하여튼 중간에 언덕길을 오른데다, 6일간의 일정중 유일하게 비가 내린지라(4일차엔 눈) 비를 피하며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사진이 좀 없다. 대략 언덕길을 수십분 올라서 도착한, 요시다 쇼인의 묘역. 메이지 유신 150주년임을 알리는 표지들이 자기과시 하고 있다.


요시다 쇼인 여기 잠들다.


쇼인의 묘 인근은 그의 관계자들의 묘로 채워져 있다. 다카스기 신사쿠 말고는 다 잘 모르는 사람이라 중요헌건 아닌디... 맨 오른쪽 다카스기 신사쿠의 호칭은 쇼인 문하생 쌍벽의 1인이고 맨 왼쪽 요시다 토시마로는 쇼인문하생 사천왕의 1인 이라고 뒤야 있는디... 일본인들은 이런 칭호 너무 좋아한다. 쌍벽 삼인중 사천왕 등등. 전국시대로 가면 사명신 오대로 오색비 칠본창 24장 삼대장 등등 이런 게 증말증말 많음. 이런 중2스러움이 또 일본으 매력이긴 허지. 저런 칭호들 전부 한번 정리한다한다 벼르고 있는데 귀찮아서 참 안해진다.


요시다 쇼인이 태어난 곳은 터 밖에 남아있지 않다. 터를 보아허니 유복한 집은 아무래도 아니었던 듯.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네~


이 곳의 진짜 의의는 이 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기의 전망이 잘 보이는 곳이었다. 그리 많이 올라오지 않는데 비해 전망의 가성비가 상당허더라. 보다시피 날이 흐렸기 망정이지 쾌청했다믄 정말 노올라운 뷰를 보여줬지 시프요.


이제 다음 목표는 저 지월산을 향하는 것이다.


6화에서는 이 만큼을 이동혔다.

얼마 못 갔잖아...--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격조혔다. 지난주 수요일에 쓰고 이번주 목요일이니 1주일도 넘어만이네... 그 동안 약속이 많기두 혔구, 꼐임에 빠지기두 혔지만 역시 글을 몰아쓰다보니 왠지 구찮아져서... 그랴두 써야제. 멋보다 6월말에는 가고시마에 다시 여행갈 계획인디, 이 스피이드로 쓰다간 가고시마 가기전까지 야마구치 여행기도 다 못 쓸거 같아서... 진짜 앞으로는 가급적 매일, 최소한 2일에 한번은 써야긋다... 라고 하면 2일에 한번, 최소한 3일에 한번은 쓰겠지? ㅎㅎ


각설하고

본격적으로 여행이 시작뒤얐다. 이 말 몇번 하는거냐... 하지만 이젠 진짜 시작인 걸. 지난회까지가 일단 여행세팅단계에서의 겸사겸사 여행이었다믄, 이번부터가 본격출발. 그러니까 지도부터 보자


흔한 야마구치 지도다. 클릭하면 커지는 거 모르는 흑우들 없제? 6천제곱킬로미터의 광활한 대지에 140만명의 막대한 인구가 살고 있는 대국 야마구치... 거대한 야마구치를 돌아다니는데는 치밀한 계획이 필요허다.


설명허긴 혔지만 아무리 주둥아리로 설명해대봐야 지도에다 금 좍좍 긋어서 보여주는 것허구는 비교가 안되제. 그랴서 대충 금을 긋어봤다. 출발점은 좌하단으 시모노세키다. 첫날은 지난회에서 썼듯이 스치듯 안녕이다. 7시 45분에 국제여객타~미나루에 내려서 10시에 출발하는 열차를 탔으니. 어차피 4일차와 6일차는 시모노세키에서 물빨핥이니 그 때 보믄 된다. 색색깔로 화~려하게 금을 긋어놨는데, 각각의 일차별로 구분해 놓은거다. 한 색으로 그으려니 전혀 구분이 안되더라고.


1일차는 분홍색선이다. 시모노세키에서 10시 21분에 출발해 산음본선을 마루마루노 하나시 열차를 타고 달려 12시 50분에 히가시하기역에 도착헌다. 사실, 하기가 에도막부초기부터 말기까지 2백년 이상 모리가의 거성으로서 조슈번의 번청이 있던 곳인지라 볼 게 음청시리 많다. 근디, 교통편때문에, 여행시작시간은 제일 늦음. 자세한 설명은 어차피 이번 화에서도 하기에 도착도 못하고 산음본선상으 사진들만 올릴거니까 하기에서 하기구경한 이야기는 하기편에서 하기로 하기. 낄낄~ 하튼 하기 구경하고 하기에서 잔다


2일차는 녹색선이다. 이 날 철도여행이 일본으 배배꼬인 로컬교통편을 제일 잘 보여주는 날임. 상기 여행도상에서 맨 위의 노오란 네모가 하기이고, 맨 오른쪽의 노오란 네모가 이와쿠니인데 이 두 지역간을 이동하려니 도로는 그지같고 철도는 줄창 갈아타야 함은, 앞서 0화에서 설명한 바 있다. 그것을 실행하는 날인데... 녹색선을 짚으며 잘 따라오시라. 하기의 히가시하기역을 7시 7분에 출발한다. 산음본선을 따라 지도상에서 왼쪽으로 쫌금 가면 나가토라는 동네가 있다. 여기서 7시 46분에 내림. 그리고 부랴부랴 7시 52분에 오는 열차를 탄다. 간격이 촉박혀서 약간이라도 연착했다믄 놓치는 판인지라, 승강장 확인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무사히 환승에 성공허구 이번엔 남쪽으로 미네선을 따라 달린다. 9시 1분에 아사역에서 내린다. 여기선 쫌금 오래 기달려야 하는게 신간선을 타야허는지라. 이런 시골동네에 신간선이 오믄 을매나 오겠나. 아사역이 있는 산요오노다시는 인구가 6만이다. 사스가 토건족의 국가... 뭐, 인구 3만도 안되는 구례에 KTX가 서는 한국이 할 말은 아닌듯도 하지만... 그나마 구례역 위치가 구례도 아니고 순천시 행정구역이란게 함정이지만.


각설하고

9시 46분에 후쿠오카에서 오카야마로 가는 신간선 고다마 열차를 탄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그럴싸한 구간이랄까나. 고다마는 신간선중에서 최약체라는 것은 젖혀두고서... 그랴두 어쨌건 신간선인지라 휙휙 달려서 10시 33분에 신이와쿠니에 도착. 기존역과 신역이 동떨어지긴 일본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은지라, 신간선역인 신 이와쿠니와 기존역인 산양본선상의 이와쿠니역은 직선거리로 7킬로미터. 그렇게 멀지도 않네~ 이와쿠니의 인구는 13만이다... 구 울산역인 태화강역과 KTX역인 현 울산역 사이가 19킬로미터로 아마 한국에서 제일 멀텐데 울산시 인구는 110만이기라도 하지... 그리고 시골동네라 당연히 직선코스 같은건 없다. 빙빙 돌아야. 그리고 숙소는 당연히 구 이와쿠니역 근처... 어쩌겟소요. 줄창 걸어야지. 그렇게 이와쿠니까지 꾸역꾸역 가서 꾸역꾸역 구경하고 거기서 잔다.


3일차는 갈색선이다. 3일차가 이동이 두 번째로 적다. 아예 지도에 표시하지도 않은 6일차는 어디 안 가고 시모노세키 시내에서만 돌아다니는지라. 패스 유효기간이 5일인지라, 6일차에 어디 가려면 일본으 살인적인 교통요금을 감수해야함... 그래서 코스를 이렇게 짠거다. 이와쿠니의 숙소에서 스오오시마정의 야시로섬으로 갔다오는 코오스. 산양본선 이와쿠니역에서 출발해 역시 산양본선상의 오바타케역에서 내려, 걸어서 섬에 들어가 섬을 구경하고 다시 걸어서 나와 오바타케역에서 전일 묵었던 숙소로 돌아오는 코오스다. 그런고로 선은 하나지만 왕복임. 이와쿠니에서 오바타케는 각역정차로도 25분밖에 안 걸려서 특기할 것은 없음. 제돈내고 타면 요금이 5천원인건 못본걸로 하자... 대충 서울역에서 금정역까지 전철타고 가면 저 거리다. 요금은 1천650원. 설명이 必要韓地?


4일차는 고올~든 색이다. 거리는 상당히 멀지만 여정은 단순한 게, 이와쿠니역에서 산양본선 열차를 타고 주우욱~ 가면 된다. 시모노세키 역에서 내리면 깔끔하겠지만, 시모노세키 일정으 첫 날인 4일차에는 시모노세키의 원 시가지랄 수 있는 초후지역을 돌아볼 예정인지라, 시모노세키에서 4정거장 앞인 초후역에서 내린다. 이와쿠니에서 8시 19분에 출발해 초후에 11시 4분에 도착. 그리고, 초후 모리마을을 돌아보고... 원래는 간몬해저보도를 건너 북구주시에 있는 모지성터에 가서 구주에서 본 하관의 야경을 찍어올 예정이었는데... 여러 이유로 포기혔다. 자세한 것은 언젠가... 언젠가는 쓰게 될 4일차 여행기에서. 그리고 시모노세키 역전으, 지난 회에 올렸던 그 호텔에서 투숙


5일차는 짙은 하늘색선이다. 시모노세키에서 야마구치까지 열차를 타고 가서 구경하고 다시 시모노세키로 돌아오는, 기본적으로 3일차와 유사한 구성이다. 당초 여행을 계획헐때는 아예 한 곳에 숙소잡고 계속 머무르믄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도 모색을 혀 봤는디... 이런 시골동네으 교통상황으로 참치삼치꽁치인 구상인 것이다... 그런 것은 동경이나 오사카 같은 곳에서나 할 수 있는 것... 그러나, 베이스캠프를 잡고 인근을 헤집고 다니는 것은 로망인지라, 3일차나 5일차 같은 일정을 넣게 된 것. 8시 11분에 하관역을 출발해, 신야마구치에서 야마구치 선으로 갈아탄 다음 10시 2분에 야마구치역에 도착. 이후 줄창 돌아다니믄서 구경하다가... 이미 4일차부터 체력이 오링나기 시작한지라, 목적한 곳을 다 보지는 못허구, 17시께에 다시 하관으로 돌아왔다. 이 날도 3일차와 마찬가지로 같은 코스 왕복. 상술한 바 파스가 5일짜리인지라, 이 날이 이번 여행에서 열차를 마지막으로 탄 날. 마지막 열차 보내믄서 코끝이 살짝 찡~ 했달까나~


6일차는 앞서 말한대로 지도에 없다. 시모노세키 시내에서 요기조기 구경다니다가 밤에 배타고 한국으로 출항. 따지고 보믄 이 날이 "관" 에서 "부" 로 가는 날이니 진짜 관부연락선은 이건데... 숙박은 배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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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사진보다 보조설명이 더 많은 신세는 언제 벗어나려나... 아마 이게 진짜 마지막일 거 같다. 물론 하기 이와쿠니 스오오시마 야마구치 등지에서도 설명충 짓을 피할수는 읎을거 같긴 허다만... 이 정도로까지 투머치토크를 하진 않을 것.


이제부터 진짜! 여행기다...


이전에 또 구구하게 토크 하나... 이게 참... 산음본선은 바닷가를 지난다. "그 바닷가" 를... 이게 나의 일뽕컨셉상으로는 그 바다를 일본해라고 부르고 싶은디... 이 글을 쓰는 나는 한국인이고 한국어를 쓰고 한국어를 쓰는 한국인들이 이 글을 볼 것이란 말이지?얼마 보지는 않지만 그런 상황에서 일본해라고 쓰는거... 이거 참... 감당 될 일인가 싶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태도를 강하게 비판하며 일본 극우를 반대하며 아베가 날아갈 판이 된게 참 꼬시다고 생각한다. 근데, 바로 그, 잘못된 행위 비도덕적 행위를 한다, 라는 배덕감이 주는 쾌감을 워낙 즐기는지라... 배덕감이 없이는 안되는 몸이 되어버렷! 그런 의미에서 방금전까지 고민을 혔는디... 역시 일상에서 쓰이지 않는 힙찔한 표현이 주는 매력이 추가되는 면이 있는지라


동해(일본해) 로 병기명칭을 쓰기루 혔다.

재기발랄하지 않나?괴기지랄해

배덕감을 유희차원에서 즐기려면 그 전제는 "죽을죄는 아닐 것" 이어야 할 게다. 일본해라고 하는건 죄이긴 하지만 죽을죄는 아니지 않은가? 죽을죄라고? 그럼 하라키리를 할테니 가이샤쿠를...


하튼 이제부터 펼쳐질 동해(일본해)의 절경을 감상하시라. 물론 찍새가 구려서 그렇게 믓지게까지 나오진 않았다만... 누누이 말하지만 나가 보는 그 느낌을 그대로 담을 수 있는 그런 기술이 있음 좋것다.


특색은 없지만 마루마루노 하나시가 출발한 이래 찍은 첫 사진이라 투고. 일본에서 아파트는 기본적으로 서민주거수단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독주택에 살지 공동주거를 하지 않음. 한국과는 크게 다르다. 이 아파트를 찍은 게 자세히 보믄 쓰레기가 쌓여있고 문짝이 떨어져 있고 하튼 폐허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또 인상깊어서. 일본의 빈집문제는 점점 심각함을 더하고 있다. 한국도 아직은 평균수명의 증가가 인구증가를 떠받치고 있기에 빈집문제가 주변적 의제지만... 이건 서울같은 대도시에서나의 일이지 시골 다녀보면 장난 아니다. 힙찔이근성에 충실하게, 한국내 여행을 다닐때도 시골동네 위주로 다니는데, 버려진 폐가 허물어진 담장은 쉽게 볼 수 있다. 시청이나 군청 소재지에서도. 시모노세키는 인구가 26만이니까 절대수로는 군산시 정도, 인구비례로는 구미시 정도하고 비교할 수 있을텐디, 지역경제상황따라 다르지만 아직 한국은 그렇게까지 심하진 않음. 구미야 경제가 망가졌으니 그렇다치고 진주나 원주같은 도시에서 저런 빈집이 빈발하기 시작하믄 한국에서도 이게 진지한 문제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할게다.


일본스러운 언덕마을. 언덕도 좋고 마을도 좋지만, 그것보다 좋은 것은 언덕마을이야!



이 사진에 제목을 붙이라면 메멘토 모리 정도? 일본문화에서 죽음이란 요소는 굉장히 중요하다. 이 떡밥도 이야기하자믄 길어지는디... 간단히 투 스몰토킹을 혀 보자믄, 대개 싸울아비... 아니 싸무라이의 죽음의 문화에서 그것을 인지하는 분들이 많을텐디, 그건 부차적인 것이다. 보다 정확히는 일본이 죽음의 문화가 워낙 공고하기 땀시 지배층인 싸무라이 문화도 그렇게 뒤얐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어째 이번화는 껄끄러운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디... 일본의 문화를 들여다보믄서 가장 나으 시선을 붙잡은 것은 신사였다. 아마 계속 이야기해야 할텐데, 난 일본의 침략과 우익행위를 증오해 마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신사가 한국인들에게 아픔을 준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의 문화를 이해하려면 신사빼고 이야기가 안된다. 일본의 악행과 일본의 문화가 큰 관련이 있고 상호작용 헌 것도 맞다만... 악이라고 매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악은 악 자체의 흥미로운 요소가 있는 것이고, 나는 신사와 신토라는 것에서 그걸 느끼는 것. 그래서 비판하는 태도를 결코 잃지 않는 베이스에서 일본의 신토문화를 나름대로는 진지하고 깊게 들여다보려 한다. 신사참배도 많이 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거 못 참겠으면 보지 마라. 솔까,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짜증난다. 사실 아무도 뭐라 안하는데아무도 안 보니까 제 발 저려서 이러는 거 같기도 하다만... 대놓고 일뽕짓하다가 태클 들어오면 그 때부터 반응하는걸로 할까... 뭔가 이렇게 제 발 저리는 거 스스로 보기에도 꼴불견 같기두 허니깐.


각설하고

일본의 정신문화의 두 축은 불교와 신토이다. 신불습합 같은 이야기도 있으니. 나는 아직 이 둘의 관계와 의의를 정확히 이해하진 못헌다. 사실 정확히 이해한다고는 은가이 공부 많이 한 사람이라도 함부로 말할 수 있는건 아니지만... 위으 사진으 경우는 기본적으로 불교문화에 바탕헌다. 일본인들은 죽으믄 집근처 절에 가서 스님 모셔다가 불공드리고 화장하고 가족묘에 분봉헌다. 그랴서 저런 비석들 보면 ~~家之墓라고 쓰여있다. 도쿠가와네라면 德川家之墓 이렇게 쓰여있다는 것. 그리고 보시다시피 바로 집근처에 그런 묘들이 떼로 모여있는 절들이 동네 골목골목마다 있다. 기억할 사람이 을매나 될 지 모르긋는디, 지금 서초구 원지동에 가면 서울 추모공원이 있다. 까놓고 말해 화장장 납골당이다. 이거 들어올 때 반대 을매나 심했냐. 게다가 지금도 화장시설은 크게 부족하고, 화장시설이 있는 지역은 니네는 니네가 만들어 쓰셈, 하고 없는 지역은 아 그거 놓을라니 반발하고 거세하는 사람 많아 안되니 그냥 쓰겠심 하고 좀 싸워대나. 화장실에서 신문보며 똥싸는 아빠한테 가서 아빠 집 옆에 화장장 생긴대요 라고 말해봐라. 당장 똥 끊고 나와서 피켓들고 시위하러 가실거다. 그런 모습과 비교하면 완전 딴판인 거랄까나.


저렇게 집 근처 불사에 '아웃소싱' 을 주는 집들도 있지만... 아직도 집 마당, 혹은 집의 방 한 구석에 불단을 만들어놓고 직접 모시며 제사하는 집들도 많다. 일본 소설이나 만화 보면 아침에 불단에 가서 불공드리는 할머니한테 가서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는 주인공의 모습 같은 거 많이들 봤을게다. 한국인들이 죽음을 철저히 자기들의 공간에서 배제시켰다믄 일본인들은 삶이 죽음이요 죽음이 삶이다. 그들은 모리를 좀 심하게 메멘토하고 있달까나.


윗 사진이 불교차원에서 사람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라믄 신토 신사의 경우는 사람이 아닌 것들과의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나. 일본의 신사가 몇개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읎는걸루 안다. 나가 들은 것만 8만개설, 12만개설, 30만개설, 60만개설까지 여러개가 있는지라. 신이 8백만이라는데 신사가 8백만곳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하려나. 신토는 현세에 살아있는 애니미즘이다. 온갖 자연현상 괴기 신비스러움에 전부 신을 갖다 붙여놓고 그들을 경배하는 것을 일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일본 애니 보면 명절마다 신년마다 신사가서 참배하는 게 당연시되는 것 또한 많이들 보셨을 터. 굳이 "너 사실 신토를 숭배하는거 아니야?" 라고 하면 대개는 아니 뭐 딱히 별 생각없이 가던거니까 가는거야, 정도의 답이 돌아올 것이다.


계략도 중요하고 교섭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한다는 것이야!


별 생각없으면 안 가면 되잖아? 근데 왜 굳이 가? 내심을 숨기고 있다고 추궁하려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 자연스럽게 일상화되어 있다는 그 자체가 문화요 사고방식이라는 것. 무의식은 프로이트의 위대한 유산이다. 신토는 일본의 사회적 무의식이랄까나. 일종의 2중체계인 면이 있다고 본다.


 

 현세

내세

 닝겐

 지금 우리닝겐들

불교

 인간외

신화와 괴담

 신사


거칠게 정리하자면 이 정도랄까나. 가장 명백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것은 현세의 인간이다. 그리고, 대개의 소위 "근대화된" 사회에서는 이게 절대적이다. 마, 유우럽 사회도 근대화 이전엔 인간외, 내세 같은 게 중요혔으니까... 이걸 세속화 라고 할 수 있긋제.


일본 이야기헐 때 천황이란 존재를 뺄 수 없는디, 그 천황의 공식적 의의는 일본국의 상징이라는 일본국 헌법 제 1조이지만 비공식적 의의는 일본을 창조한 신의 직계후손이란것이다. 맛카사 쇼군... 맥아더 장군의 지배하에 와타시는 카미가 아닌 데스웅~ 이라고 말할 것을 강요받았지만, 쇼와천황이 진짜 그렇게 생각했을거라 믿는 흑우없제? 혼네와 다테마에는 노무 당연해서 굳이 쓸 필요가 없어진거지, 일본이란 부족이 겉과 속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따지고 보면 누구나 어느정도씩은 겉바속촉이지만 일본의 겉바속촉은 세계제이이이이이이이일! 이라는 것은 일본인 빼고 누구나 안다.


인간외의 존재와 사후에 대한 인식을 불가지화 하는 것이 근대화를 통한 세속화라고 한다면, 일본인들의 현황은 그것에서 거리가 멀다. 정말로 사후의 존재를 믿지 않고 인외의 것을 신경쓰지 않는다면, 신사를 왜 가는가? 사실 그렇기에 신화 혹은 종교와 문화의 관계라는 또 다른 테마를 논하긴 혀야허는디, 이미 길어진 사설에 그런 이야기까지 할 처지는 아닌거 같고... 이러한 인간으로서의 자신... 이랄까? 그런 것에 대한 확신의 부족함이 일본의 문화에 굉장히 강하게 개재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일본의 정신문화에 독특함을 부여하지만, 그러한 부분이 또한 현재 일본의 무책임 사회로서의 성격에 크게 개재하는 면도 있다고 보기에... 저런 부분이야말로 나가 일본을 좋아하는 이유이믄서 일본을 싫어하는 이유가 되는지라, 참 복잡한 심경으로 만들곤 한다. 메타적으로는 바로 그러한 도저히 명쾌하게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함이 들여다보는 재미 자체를 유발하기에 결과적으로 나는 일본을 들여다보고 일본을 즐기는 것이지만.


앞서 일본은 늪이라고 혔는디, 그 이유중 하나는 역시 이것이다. 어차피 일본은 죽을때까지 들여다볼거고, 이 이야기도 계속 생각할 것인지라, 난중에 또 이야기허자.


각설하고

계속 산음본선을 달려가보기루 허자.


하타부역의 모습. 하관역에서 출발한 이후 첫 역이자, 이 곳에서 산양본선과 산음본선이 갈라진다. 산양본선은 히로시마 오카야마 고베 오사카로, 산음본선은 시마네 돗토리같은 깡촌... 을 거쳐 교토로 이어진다. 우리는 이제 산음본선을 달리며 깡촌과 동해(일본해)를 볼 것이다.


뜬금없는 이 사진은, 원래 산음본선으로 접어들면서 산양본선을 찍으려는 의도로 잡은 샷인디, 산양본선의 모습이 전혀 안 잡혔다...사진 밖의 축대가 바로 산양본선의 노반이다.


평범한 일본 가옥들의 모습. 윗 사진은 ~~하이츠 하는 표현이 일본에서 왔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는거 같아 찍어봤다. 한국에선 빌라들에 그런 이름이 많이 붙지. 밑 사진은 뭐랄까... 딱 전형적인 일본식 스위트 홈~ 이란 느낌이 들어서. 아담한 부지에 살짝 축대를 돋우고 벽안에는 아기자기하게 정원을 꾸민 2층 일본식 가옥이라니. 거기에 저 돋움과 계단오름라인에서 지붕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일본식 성의 미니어처 같은 느낌도 들구. 아무래도 천수각이라는게 크게 짓은 일본집이다봉께, 일본 가옥들이 그것과 유사해 보이는 면은 있긴 하겠다만, 저 축대와 계단 놓는 방식또한 일본식 성이 그런 모습을 역시 크게 확대해 놓은면이 있는지라... 아담한 집이라는 귀여운 모습과, 무시무시한 군사요새라는 일본성의 축소판이라는 모습이 겹쳐보이는 것이 또한 이율배반 혼네다테 겉바속촉한 일본다워서 좋다.


수로는 언제나 옳다. 특히나 열차를 타고 다리를 건너며 보는 수로라면 더더욱.

일본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3N의 필두. 일본인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드립인데 사진으 NTT도코모라는 국영이었다가 민영화된 통신사, Narita 공항, Nihongo 일본어를 일본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3N이라 불리며 까곤헌다.


니홍고가 3N인 이유. 설명이 必要韓地?


전형적인 일본식 연립. 이런 구조으 연립 꽤 효율적인 거 같은디, 한국엔 왜 안 들어오는지 잘 모르긋다.


수 · 로 · 좋 · 아


열차에서 달리며 보는 철길건널목도 오모시로이한 풍경. 너희들은 나 때문에 서 있는 것이지. 너희를 놔두고 나는 간다! 얼마나 힙찔한가


보인다! 동해(일본해)!


바닷가를 달리는 국도 옆을 달리는 철도, 로망 그 자체 아닌가. 한국에선 일단 바닷가를 달리는 국도 자체가... 그나마 7번국도가 이에 해당하긴 할게다. 지금 동해중부선이 한창 공사중이고 이 노선이 7번국도 인근을 달리기에 내심 기대는 혔다만... 아쉽게도 고가 터널 고가 터널만 달리는 노선이 뒤야부렀다... 그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서두...


아무래도 열차 차창밖으로 찍는거다봉께 차창에 조명이 비치는 정도까정 막기는 힘드니 양해를. 굳이 토 달거 없는 풍경이다. 다만 전선이 쫌금 눈에 거슬리긴 허다만... 이 역시 일본애니코믹을 보는 분들이라면 골목길위에 전신주 사이사이로 드리워진 전선너머 높은 뭉게구름을 걸어가는 청춘들의 모습을 많이들 접하실텐디 이야말로 일본의 모습 그 자체이지 않긋는가.


궁극의 오막살이. 기찻길옆이면서 찻길옆이면서 바닷가옆이다. 아기가 노무 잘자 안 깨어날 거 같다.


섬 삼형제. 개노답은 아닐거 같다.


열차는 구식이지만 어쨌거나 특급클라스인지라, 안 서고 지나는 역이 많다. 그런 역명판들을 찍었는디 어째 죄다 흔들렸댜... 흔들린 역명판을 대표혀서 요시미역 역명판을 올려본다.


이 짤의 풍경보고 토하는 줄 알았음. 노무 좋아서. 수로옆의 철길건널목이라니.

수로도 좋고 철길건널목도 좋지만, 그보다 좋은 건 수로옆 철길건널목이야!

오막살이도 전선도 시골마을도 훌륭한 배경맨들.


시골이다. 산능선의 흐름새와 펼쳐진 농지, 그를 배경으로 지나가는 큰길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갈래길의 모습이 좋아서 찍어봤다. 모습은 안정적이야.


아직 파종이 시작되지 않은 논밭, 강가로 이어지는 갈대밭, 동해(일본해)로 흘러드는 개울물로 이어지는 3단콤보가 모습 자체로 스토오~리가 되기에 올려봤다.


요시 바다는 모래사장이 있어야 더 빛나는 것. 아까 줌 땡겨서 찍었던 섬 개노답... 아니 섬 삼형제가 좀 더 가까워졌다.


건널목 너머로 보이는 집들이 참 일본틱허다.


이런 집은 기와끝도 그럴싸허게 꾸며서 진짜 일본성으 천수각삘난다. 다니다보믄 같은 일본식 가옥이라도, 저 지붕끝에 장식을 잘한 집과 안한 집이 갈린다. 니뽄삘과 니뽄간지으 차이는 확연. 재력차이긋제.


이 동네는 밀감이 특산물이다. 제주도보다 위도가 쫌금 높은디, 섬이라 더 따뜻허기두 허구, 작금에는 남해안에서도 밀감을 키운다고도 허니 자연스러운 일. 먹어봤으믄 좋을건디 못 묵어봤다. 못 먹어본 과일맛은 항상 시게 마련인 법.


일본가옥 퍼레이드.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할 거지만, 일본에는 이러한 전통식 가옥이 정말 무진장 많다. 한국에서 한옥보려면 북촌, 안동, 전주등의 한옥마을에 가야하는 것과 달리, 일본은 그냥 대도시 중심부 아니면 거의 어딜 가나 일옥마을이다. 딱히 전통마을구경갈 이유가 읎는 것. 하도 일상적이다봉께, 아마 일본인들은 일본가옥거리에 딱히 큰 애착이 없지 않을까 싶기두 헌디, 히다의 후루카와 마을이나, 사이타마의 가와고에 같은 곳이 나름 인기인 것을 보믄 제대로 된 전통마을은 또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듯도 싶다. 나는 아직 일본력이 부족하야 저런 흔한 양산형 가옥만 봐도 하앍하앍이다만.


코구시역에 도착. 꽤 온거 같지만, 아직도 시모노세키시내임... 앞서 마루마루노 하나시가 하기의 하, 나가토의 나, 시모노세키의 시 라고 말한적 있는디, 당연 시모노세키가 세 동네중 제일 커서, 하기까지의 전 구간의 반 안팎을 차지헌다. 군산이나 진주같은 도시들도 도심지는 도시지만, 외곽으로 나가믄 노선버스가 하루에 3대도 안 들어오는 마을들도 있는 것과 비슷헌 것. 일본은 철도가 조밀혀서 구석구석 철도역이 있는 게 차이인 거구.


야생의 신사가 나타났다! 뻘건 도리이가 줄줄이 있는걸 보니 이나리 신사의 말사들중 하나인 듯. 앞으로 줄창 보게될 것이다. 하앍하앍.


좀 흐리게 나온게 통한일 정도로 맘에 든 사진. 흰 벽, 동백나무, 일본식 기와지붕이 또한 일본스러운 멋의 한 단면을 노무 잘 보여준다.


일본토인들의 소굴


뭐라고 읽는지는 모르긋다만 하여튼 무슨 해수욕장이라구 헌다. 여름에 이런 데 와 보믄 참 좋을 덧. 하얀 모래밭에 파란 바닷물이 부딪혀 하얀 파도로 바수어진다.


마루마루노 하나시는 관광열차이다. 그런고로 풍경이 좋은 곳에서는 잠시 멈춰서서 사진을 찍는 포토타임을 제공헌다. 이 곳이 처음으로 멈춰선 포토포인트. 트라이포드들이 많은 것은 쫌금 신경쓰이지만... 탁 트인 동해(일본해)의 모습을 바라보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다.


저 바다색깔 뭐냐고... 이 일대가 주변에 딱히 항만이나 산업시설이 없어 물이 유난히 깨끗하긴 할테다만, 나중에 볼 시모노세키 항, 그것도 무려 조선소 앞의 바다도 깨끗했던 것을 보면 확실히 일본쪽이 한국에 비해 바닷물의 오염은 훨씬 잘 관리하고 있는 느낌이다. 쪽빛바다 에메랄드빛바다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말이 필요없다. 그냥 감상감상. 이런 모습을 열차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더욱 훌륭. 한국에도 옛 삼척선을 활용한 동해안 관광열차가 있긴 허다. 아직 타보지는 못혔다만. 삼척 강릉에 놀러갔을 때는 나가 아직 경제권이 없던 시절이거등. 다만, 그건 교통수단으로서의 의의를 잃고 박제화된 거지만, 이 열차는 살아있다. 이맛에 일본온다...


수질 뭐냐고... 좀 오바하자믄 소금기만 빼면 그냥 마셔도 되긋네... 쪽빛으로 짙게 물든 바다가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투명하게 비춰보인다는 이 이율배반...


열차는 다시 달리기 시작헌다. 저 바위위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아도 좋겠다.


노무 깨끗하고 색이 짙다보니 오히려 오염물질 같아 보일 지경이다. 바다는 푸르른 우라늄색~


이런 곳의 펜션에서 묵으면서 바닷가를 마냥 걸어다녀보고 싶어서 찍어봤다.


유타마역


그 분은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 이 양반 지역구가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다. 저 때만해도 아베 신조 내각총리대신님이 천년만년 해처먹을줄 알았지... 물론 아직 끝나진 않았다만, 빨리 원 내각총리대신이 되셔야 헐텐디.


산 바다 들 그리고 길


바다에 떠있는 쫌끔만한 섬이 모에포인트


길은 바다를 달린다


그리고 그 길은 굽이굽이쳐 도는 바닷가를 따라 끝없이 달린다.

이 풍경보고 또 뻑갔는데, 열차 조명이 눈치없이 끼어들었다. 관광용 오픈카를 배치하라고 시위해볼까.


best 미니멀한 풍경. 길과 바다와 하늘만의 담백한 모습


그러나 늘 그렇듯이 뛰는 best 위에 나는 better가 있는 법. 바다와 하늘만의 더더욱 담백한 모습.

닝겐 돌아와도 자리없다.


그냥 좋다... 절대로 코멘트 달기 귀찮은 게 맞습니다 ㅎㅎ~

사실은 내 스타일 자체가 기본적으로 사진 하나 찍을 때 마다 이건 여행기에 이런 코멘트 달믄서 올려야징~ 하고 찍는 것인지라, 일일이 다 달라믄 달 수는 있다만... 솔까 막연한 감상을 구체적 표현으로 옮긴다는 거 나도 피곤헌 일이구, 안 그려두 말이 너무 많군 인 놈이 말이 더 많아지믄 보는 사람도 피곤허니께... 봐라봐라, 왜 코멘트 안 다는지에 대한 이야기조차도 말이 많아지잖아...--




사실 이번 편을 쓰기 전에 주저했던 이유중 하나가 뭐냐면... 보시다시피 절경과 절경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모습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이 동해(일본해)연안을 달리는 산음본선의 풍광이긴 허다. 근디... 그러다봉께, 시모노세키에서 하기까지 가는 열차안에서 찍은 사진이 400여장... 물론 이것도 일본여행이고 애초에 관광열차기두 허다만, 열차안에서의 모습만으로 여러 화를 차지하는 게 쫌금 그렇다, 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한 화로 끝내고 싶은데 사진이 400여장... 컷컷한다혀도 뭔 수로 400장을 한 화에 한댜... 하는 게 고민이었다. 그랴서 엄두가 쫌금 안나서 일주일 이상 미뤄진 면이 크다. 그리고 직접 써보니깐 초반에 사설도 있다봉께, 도저히 한 화에 끝낼수는 없을 거 같다. 이미 충분히 긴데... 하고 싶은 말이 노무 많아서 늘 문제.


그런 관계로 일단 산음본선 전편인 셈 치고 오늘은 여기까지. 어차피 연장선상이니 산음본선 후편은 내일 쓰는 것으로 하긋다.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일본 이야기를 할작시면 이 문구부터 띄워놓고 혀야 분위기가 살제.

내 블로그 왔으면 평가물어부터 보고 가라. 사실 보진 않았지만, 간지폭풍 그 자체인거야 뭐... 일본의 중요한 특성중 하나가 남녀노소관동관서고금을 불문하고 중2스럽다는 것인데, 중2력의 먼 기원쯤 되지 않을까


기원정사의 종소리 제행무상의 울림이 있고 사라쌍수의 꽃색깔 성자필쇠의 이치를 보여주나니


늘 뜬금이 없지만, 오늘도 일본에 관해 이 이야기 저 이야기 찾아보다가 귀 없는 호이치라는 이야기도 들여다보게 뒤얐다. 사실 귀 없는 호이치에 대해서야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원평합전 이야기 하다보면 귀 없는 호이치까지는 쉽게 하이퍼링크가 이어지는지라...


귀 없는 호이치와 관련하여 우타가와 구니요시가 그렸다는 우키요에

사실 이 그림은 귀 없는 호이치와 직접 관련된건 아닌거 같고 단노우라 전투와 관련하여 그려진 거 같긴 허다만 요시 이런 류으 이야기를 할 때는 우키요에 하나쯤 넣어줘야 분위기가 살지

그림 오른쪽의 인물이 단노우라 전투에서 평가군을 이끈 다이라노 토모모리


자세한 것은 찾아들 보시기 바라고, 관련하여 인상깊은 구절 하나만 소개헌다. 늘 그렇듯이 출처는 절대적이고 상대적인 지식의 원천 킹무갓키


『살려달라고 비는 호이치를 헤이케 원령들은 살려주지만 대신 그의 귀를 뜯어가고, 영원히 죽지 못하는 몸으로 만들어 세상을 떠돌며 헤이케 일문의 이야기를 전하고 다니는 저주를 내렸다』


영원히 죽지 못하는 몸으로 만들어 세상을 떠돌며 헤이케 일문의 이야기를 전하고 다닌다

이 부분이 극히 일본스럽달까나 그런 느낌이 있으요. 일족낭당의 이야기야 어느 나라든 있다. 일족낭당이란 표현도 꽤나 중2로워 기억하고 있다가 지금 써먹고저 검색해보니 제일 먼저 뜨는게 중국춘추시대 범려이야기다. 저 표현 자체가 일본만의 것이 아니듯 일족낭당^^의 이야기는 일본만의 이야기는 아니되... 나가 과문한 탓이야 늘상 있지만(끊임없이 쓰는 표현이지만 생략하고 싶진 않다. 방어기제로서도 좋기도 하거니와, 못 읽은 글이 많다 라는 것은 실존적 조건이믄서 장래으 가능성으로서 기대감으 영역이기두 허지 않는가?) 일족의 멸문과 운명, 그 원한 한맺힘으 울부짖음에 대한 이야기는 일본에서 두드러진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이번 여행에서 느낀 대표적인 것중 하나가 일본인의 죽음에 대한 인식과 관련된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일본인들은 죽음과 너무 가까이 지낸다. 나도 마 쫌금 다른 방향으로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항상 허긴 헌다만... 메멘토 모리라는 격언은 일본에 필요없는 정도를 넘어 일본인들은 죽음과 좀 거리를 둘 필요가 있지 않은가 싶을 정도로 일본인들의 삶에 삶너머의 피안은 노무나도 가까이 있다.


일본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유난히 멸문의 화나 단절이 많았던 걸까?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까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일본의 설화나 이야기에 멸문에 관한 것이 상당히 많은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싶다. 평가물어도 멸문 이야기고. 요와 가케히키도 네마와시다나... 이게 아니고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무엇을 인식하고 무엇을 인식하지 못하는 가이다. 멸문이 일본에 쫌금 더 많았다 하더라도 다른 나라에 그것이 없었던 일이 아닐 것이되, 과문한 나로서 말하기에 일본은 분명히 다른 문화권에 비해 멸문의 이야기가 많다는 것, 종말과 소멸과 죽음의 이야기가 많다는 것은 일본인들이 그것을 끊임없이 의식하며 살고 있다는 것.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위의 인용구이다.


세상을 떠돌며 헤이케 일문의 이야기를 전하고 다니는 저주


라니 진짜 노무노무 일본스럽지 않은가? 나가 을매나 일본스러운 사람인가, 라는 것은 인간 존재으 보편과 고유의 문제차원으 것이겠고 최근들어 일본취미가 점점 깊어지는 중이긴 하다만 저 문구에서 받은 감흥은 유난히 깊다. 뭐랄까... 요즘들어 종종 드는 생각인데, 과연 나가 이 사바세계, 최소한 인간세상으 존재이긴 한건가, 라는 생각이 들곤 헌다. 뿌리없는 부평초 떠돌이 으식이야 뭐 또 흔한 중2로움의 기제중 하나긴 헌디... 방 밖으로 잘 나가진 않는다. 그러나, 나가면 한 없이 떠돈다. 이번 일본 여행도 그렇고 하여튼 여행을 다니면 많이 돌아다닌다. 나가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 혀서 이 곳이 내 곳이냐, 라고 한다면 그런 느낌도 아니다. 그냥 지금 내가 있는 곳이지 내 곳은 아닌 것. 마찬가지로 돌아다니면서 있는 곳도 그냥 지금 내가 있는 곳이지 남의 곳은 아닌 것. 피아의 의식이 약하다고 할까나. 나는 나가 아니고 남도 남이 아니다 랄까나. 그렇다고 우리냐면 그건 더더욱 아닌거 같긴 헌디... 이야기하려는 건 이게 아니니 파스.


근데 일족낭당의 이야기는 피아의 이야기의 궁극이다. 인간은 혼자냐 혼자가 아니냐? 쉽게들 고독하다고 하는데, 그 가장 강력한 안티테제가 가족 아니냐? 단독자 의식이 철학적 차원(이라지만 아무래도 서양철학)에서 인간에게 본질적으로 씌워진 것이라고 여겨진다면 일족 의식은 생물적 차원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생물적 차원이 더 근원적인거 아님? 이랄수도 있겄는디, 생물적 차원이 뿌리라면 철학적 차원은 지향이라고 생각헌다. 과거와 미래라는 것. 그러면 미래가 좋은거라고 보는거 아님? 이랄 수 있것는디, 말혔잖어. 내 곳은 내 곳이 아니고 남 곳은 남 곳이 아니랑께.


각설하고

떠돌이는 떠돌이다. 어디에도 뿌리박지 못하고 세상을 떠돈다. 일족낭당은 강력한 뿌리다. 흔들리지 않는 존재의 근원이다. 흔들리지 않는 것을 흔들리는 것이 세상에 퍼뜨리고 다닌다. 이 얼마나 훌륭한 모순이며 근사한 배덕인가. 하물며 그 일족낭당은 세상에서 거세당하여 이제 없다. 원한만이 남았다. 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임에도 그 부질없음을 넘어 보이는 한 없는 집착이란 말인가. 훗, 입으로는 제행무상을 말하지만, 집념은 솔직하군~ 미연시... 같은 소리 집어치우고 쎾쓰꼐임에서 빠질 수 없는(이것도 일제에서만) 배덕의 문구에 정확히 부합하지 않나? 일본인의 의식구조라는 것이 이렇게 공고하다.


일본이란 존재에게서 받은 인식은 이렇게 모호하기만 허다. 일본이란 것에 대해 메우 큰 감흥을 받고 인상을 갖고 있음에도 함부로 글을 쓰지 않으려는 것은 꼐임하느라 바빠서알면 알 수록 이 나라라는 것은 수렁이라는 생각이, 그것도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1차적으로는 수렁처럼 헤어나기 힘든 나라라는 으미에서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질곡과도 같은 사회와 인식과 문화에 한번 빠져들면 다른 생각을 하기 쉽지 않다. 흔히 말하는 잘라파고스라는 것이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그 수렁의 의미가 또 빛과 어둠으로 크게 갈리는디, 어둠으로서는 워낙 끈적끈적하고 질척질척하여 벗어나는 자체가 힘들다는 의미다. 마, 전통사회가 있는 곳에서야 어디든 안 그렇겠냐만... 이건 또 문화와 선진국 이야기라는 다른 테마를 끌어들여야 허는디... 이래서 선행연구가 중요허다. 미리 써 놓고 들어갔어야 허는디... 간단히 말하자면 선진화된 사회중 가장 전통문화가 강한게 일본이다. 전통문과가 공고한 아프간이나 이슬람 동남아는 전혀 선진화되지 않은 사회다. 선진화된 구미는 전통문화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한국이야 뭐...-- 인면조같은 근본있는 문화가 있긴 하다만, 그런 깊디 깊은 근본이 이제까지 잊혀져 있었다는 자체에서 말 다한거 아니냐?


각설하고

그런 점에서 일본의 특수성에 여러 원인이 있것지만 나는 전통문화가 공고한 선진사회라는 점을 핵심으로 꼽곤 헌다. 좋게 보자면 잘 보존된건디, 음모론적 음습함적으로 보자면 일본의 문화라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수렁과 같아서, 첨단 현대문명이 자리하고도 그 수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극태일본문화에 박히면 꼼짝도 못한다.

그리고 당연히, 이러한 모순 부조리 배덕은 엄청난 흥미로움으로 다가온다. 앞서 말한 빛의 의미다. 배덕감이라는 것은 사실 현 시점에서 나으 쾌락관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라 음청 신중허게 이야기허구 싶긴 헌디, 어차피 일본이란 존재가 이런 배덕감의 소굴과도 같은 곳이라, 일본 이야기하믄서 배덕을 피할수는 없다. 제목도 그려서 저런거구. 삭힌 홍어 즐기시는 분들이라면 알지 않은가즐기지 않아도 짐작정도는...암모니아 냄새의 엄청난 고통을 넘어서고 나면 그 다음부터 열리는 강렬한 자극의 쾌감 말이다. 배덕감이란건 이런거다. 한국인이란 일족낭당은 본시 통각에 지나지 않은 매운 맛을 극히 즐기는 족속인지라 배덕의 민족의 소양을 타고 났다.멕시코나 인도는 배덕빼믄 남는게 읎것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고 상식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지만 존재하는 무언가가 있다. 보수주의적 견지에서 존재 자체는 증명 자체 아닌가. 설명과 이해가 안되는 존재라는 모순은 그 존재를 찬찬히 들여다보아야만 알 수 있다. 들여다보면서는 이~게 무슨소리야! 잏! 하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지만, 차차 대상을 이해하게 되면서 암모니아 냄새는 걷히고, 아니 걷히지는 않지만 그것이 특유의 향과 겹치면서 강렬한 삭힌홍어멋(맛의 오타인데 그럴싸하다? 하여 그냥 둠)으로서 감각으 영역에 들어오게 된다는 것이다.


이게 일본 맛이다일본은 삭힌홍어 참고로 나는 삭힌홍어 안 먹는다. 먹을 계획두 읎구. 대신 일본문화를 열심히 먹을 것. 후후


일본과 그 문화에 대해서 엄청난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은 지금 나으 아이덴티티에 가깝다.

다만 여기서 또 이야기를 하나 하고 싶은 게 있다. 정확히는 질문을 던지고 싶은건데...


왜 일본을 좋아하는(오타쿠류 빼고) 사람들은 보수적 우익적인 사람들이 많은가?


어제는 시이나 에쓰사부로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시이나 재정 당시으 시이나 에쓰사부로옹의 모습.필살기는 AA 윤보선 닮았다는 평가를 듣곤헌다.


일본정치와 막후정치는 동의어 인데 시이나 에쓰사부로는 70년대 일본정치에서 그 롤을 맡았던 사람이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찾다가


http://epoque.egloos.com/v/3937890


이런 훌륭한 글을 찾았다. 문춘같은 일본잡지에서 비화! 시이나 재정의 막전막후! 이런 식으로 쓰였을 거 같은 투로 잘 정리된 글이다.그런 글을 번역한걸지도 저런 썰류의 이야기를 좋아허구, 결국 나가 쓰는 것도 그런 썰류의 이야기인지라 재밌게 잘 읽었고, 시이나 재정과 다나카 후쿠다의 각복전쟁에서 이어지는 다나카 사퇴 무렵의 첨예한 전말에 대해서도 공부가 된 좋은 글이었다.


근데... 저 양반 블로그에 쓰인 정치글을 보면 전형적인 소위 현실주의자의 이야기다. 한국은 좆도 아니고 울이니는 븅신짓하고 있으며 아베의 심모원려에 비해 한국정치는 적폐청산질이나 하고 있다, 라는 류으. 이번 경우만 이렇다면야 일반한성급화겠지만 저런 사례를 한 두번 본게 아니다이것도 일반한성급... 보일때마다 모아서 정리해놓고 싶을 정도로 한국에서 일본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수적이고 보수적인 사람들은 일본 좋아한다. 물론 비교적 우익논객스타일 스러운 사람들에서의 이야기긴 하다만... 개돼지들은 저런 사람들이 반발하고 거세하는 반일교육에 세뇌된 무리들이라 우익들도 반일이다. 지금은 형해화되어가는 일베으 경우도 일베으 모태가 된 넷우익 논객류들은 친일성향이 강했다. 그러나, 그런 이들으 선동을 받고 모여든 일베는 민족주으으 포풍... 좌우와 나향욱 개돼지를 가로세로축으로 볼 때 우파 나향욱들을 빼면 한국은 나머지 셋 - 좌파 나향욱 우파 개돼지 좌파 개돼지는 반일성향이 강하다. 나는 어쨌건간에 아이덴티티면에서는 좌파나향욱에 가까운지라그렇다고 쳐줘요 헤헷~ 일본을 좋아하는 것과 일본을 비판하는 것은 철저히 구분헌다. 사실 이 이야기를 하려고 꺼낸 이이기인디, 일본 문화를 내재적으로 이해하려 드는 사람들은 일본의 행태에 대해서도 우호적이다. 어찌보면 당연한건가? 위에도 말했듯이 수렁과도 같은 일본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일단 암모니아 냄새를 견뎌내야 헌다. 물론 저런 헬조센 네또우요 부류들은 대일본제국 문화만큼 깊기는 커녕 얄팍하기 짝이 없는 무리들인지라 설명이 안되는 건 아니다. 일본이 우파우위의 권위주의적인 사회이며 대중주의가 말살되다시피 한 사회이니 저런 부류들 입장에선 일본이 맘에 들 수 밖에. 한국도 비슷한 사회였는디, 그걸 극복하고 민중주의와 진보성향이 약진하고 있으니 고깝기 짝이 읎을게다. 코리언 네또우요들이 노무쿤만 보면 반발하고 거세하는 이유도, 결국 한국형 대중주의의 효시는 노무현이라 그런거기두 허구.


자문자답이 뒤야부렀는디, 이 떡밥도 언제 한번 각 잡고 글을 쓸 주제였다만 여기서 흘려부렀다. 워낙 나으 글쓰기가 으식으 흐름이다봉께...


각설하고


위에 말한 것

일본을 좋아하는 것과 일본을 비판하는 것은 철저히 구분한다


이게 나으 태도이다. 아베 신조와 그 정권에 대해서는 무진장 못마땅허다. 이 놈은 글렀다. 일본 우익으 세계관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무책임의 세계관이다. 자기가 벌인 과거의 행위에 대한 책임감이 없다. 조상이 했다고? 일족낭당의 평가와 원가와 호조가의 후예인 자들이 할 말이냐? 애초에 일본 우익은 그런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는 세력인디? 반대로 자기 조상은 그릇되지 않았다고 정당하다고 말하고 싶은 게 일본 우익들인게 문제인 것. 다만 대가리가 없는 게 아니라, 대놓고 그렇게 말은 못허구 고노담화 수정 같은 식으로 이죽질이나 해 대는게 한계이지만. 대가리가 없는 애들은 정국신사 앞에 가면 많이 볼 수 있구. 이시바 시게루 같은 자민당내 야당이나 에다노 유키오 상 같은 경우는 좋아헌다. 자민당을 파괴허는 게 일생일대의 과업이라고 하신 오자와 상... 갑자기 나오시면 그리워지잖아요... 하튼 오자와 이치로야 썩어빠진 부패정치인에 비겁자지만 그래두 좋아허구. 울 감독님이 솩 시절까지는 갑이었지 않은가. 한화에서 망했어도 감독님은 감독님인거다. 감독님... 그립습니다...


그니까 일단 나쁜 건 네놈이란거다



비슷허게 요시다 시게루는 좋아헌다. 그렇지만 기시 노부스케는 싫다. 쇼와의 괴인이란 정진정명으 일본스러운 멋드러짐이 두드러지는 별명이 기시의 것인게 안타까울 정도. 이 별명 요시다 주면 안되냐? 쫌금 애매헌게 중승근 강홍 원 내각총리대신이긴 허다. 현재로 이어지는 최현대 일본극우의 뿌리라믄 역시 이 양반인지라... 그렇지만, 중승근 원 내각총리대신은 워낙에 카리스마가 돋보이는데다... 역시 나 자신 생물로서으 개체성으 한계를 넘기는 힘든지라... 눈 뜨고 본 첫 일본 내각총리대신이 중승근 총리대신이고 그 양반이 알고보니 카리스마가 개쩌는 인물이었다는 것까지 알고보니 호의적인 시선을 접기가 쫌금 힘들다. 마치 오리새끼가 눈뜨고 처음 본 존재를 엄마인줄 알고 따라다니는 것과 같달까나?


정치적으로 진보적이믄서 일본문화에 대해 매력을 느끼며 내재적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읎진 않을게다. 그런 양반들이 만약 이 글을 보게 된다믄 같이 이야기나 굽신굽신


각설하고

어찌보믄 이 긴 사설들은 지금 하려는 이야기들을 위한 말머리에 불과혔다.


대일본제국 천황폐하 신사참배 일본해


이런 표현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라고 물어볼 필요가 있나. 한국에서 저러는 것은 미친 개소리지.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믄 나는 저런 표현들에대해서도 배덕적 매력을 느끼며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고 이후의 글에서도 쓸 생각이다. 그리고, 그런 표현을 쓰지만 나가 저런 표현들에 동의해서 그러는 것이 결코 아님을 밝히기 위해, 일종의 신분증명 김일성 개새끼 격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굳이 저런 표현을 왜? 냐고 한다면... 그게 배덕이니까...? 이 블로그 글을 꾸준히 읽는 분같은 것은 우리에겐 있을수가 없어이시라믄 느낄텐디, 나가 너무하네를 노무하네 같은 식으로 표현하는 것, 김대중을 슨상님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많이 봤을 것이다. 전부 일베에서 나오는 노무현 김대중 비하표현이다. 그리고 당연히 나는 김대중을 최고의 대통령으로 노무현은 한국 현대정치가 나아가야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획기적인 지도자로 평가한다. 그런데도 저들에 대한, 악의가 넘치다 못해 뚝뚝 떨어지는 표현들을 즐겨 사용한다. 왜 그런가, 라고 하면... 사실 딱 부러지게 설명하기 힘들다. 배덕이란게 그런거다, 라는 것을 구구하게 설명하려고 이 글을 썼다, 라고 하는게 이해가 가실런지? 원래 잘 설명하기도 이해하기도 힘들다.


굳이 설명하자면 나는 자극의 성격보다는 자극의 크기를 더 중시한다. 결국 정치란 것은 인간 정서의 최종심급이다. 가치와 윤리와 이익과 갈등이 소용돌이 치는, 일본문화따위는 비교도 안되는 수렁 그 자체인 것이다. 그렇기에, 거기서 인간의 정서는 첨예해지고 그 첨예한 정서는 정당화와 확신의 엄호하에 극한을 향해간다. 정서는 표현된다. 그것이 저러한 극단적 표현들의 근원이다. 라고 나는 본다. 노무한 슨상님 같은 표현이야 사실 일베에서도 가장 일상적이고 소프트한 표현에 지나지 않지만, 일종으 입문이랄까나. 어쨌거나 내 집이라지만 여기는 블로그고 누구나 와서 볼 수 있는 공개된 장소이다. 거기서 저러한, 네또우요들 빼고사회통념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표현을 쓴다는 것이 쉽게 용인되냐면 그럴리는 없다. 내 지인들이야, 저런 이야기해도 저 양반은 그럴만하니까, 라고 이해하거나 아니면 좋다고 같이 쓰고 그러지만, 공개된 장소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그렇게 말하기는 힘들다. 사실 여태까지도 노무하네, 표현 쓸 때마다 쫌금씩 조마조마혔다. 어차피 하루에 100명도 안오는 절해고도라 그럼에도 쓰기야 썼다만.


자극의 크기가 큰 것은 거기에 담긴 상념과 정념이 크기 때문이다. 정치는 가장 강렬한 정서의 장이고 그 정서의 표현에는 가능한한 극단적 표현이 사용되기 마련이며 그렇기에 그 표현들이 담고있는 감정의 크기는 크다. 상대에게 최대한의 상처를 주고 자기편을 최대한 고무시키기 위해 만들어지는 표현이니까. 그리고, 상대가 소중히 하는 것들을 악마화하는 것도 당연히 수반되고. 노짱 그립습니다... 라는 표현을 친노가 쓰지만, 일베충들도 쓴다 담긴 정서는 완전히 반대인채로. 나 자신 어느 한 진영에 발을 담그고 있는 플레이어이긴 하다만, 그런 나가 있는 한편으로 그러한 상황을 관조하는 나도 있다. 일종의 메타평론이랄까나. 그런 메타적인 나가 보기에 노무한 슨상님 같은 표현은 노무나도 강렬한 정서의 함축인지라 흥미롭기 짝이 없는 것이다. 이게 그러한 "악" 의 표현들을 나가 즐겨쓰게 만드는 정서적 동인이다.


대일본제국 천황폐하 신사참배 일본해


같은 표현도 그러하다. 어찌 한국인으로서 그런 말을! 이란 반응이 나오는 거야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헌다. 그러나, 위에 말한 것과 같은 전차로 거기서 느껴지는 강렬한 상념은 나의 감상을 자극한다. 나의 배덕적인 감상을. 일본이란 존재는 그렇기에, 그 자체로도 배덕적이지만, 한국인이라는 아이덴티티를 전제하면 더더욱 배덕적이 된다. 그리고 이 배덕의 입자가속은 나의 감정을 쿼크로 분해해버려 빅뱅의 세계로 나를 인도한다.빅뱅 군대 갔는데 권지용만 간거 아님? 권지용이 빅뱅이지


실제로 일본여행에서 나가 가장 인상깊게 본 것은 신사이고 일본여행을 앞으로도 하면서 가장 중점을 둘 것은 신사를 구경하고 참배하는 것이다. 참배도 많이 했고 새전도 많이 했다. 요즘 신사들 경영 어렵다더라... 이 망할놈으 자슥이 우리 조상님들이 그토록이나 굴욕스레 생각하고 거부하고자 혔던 신사참배를 대놓고 해부러야? 라는 반응이 나오겠지만... 원래 설명이란건 구구한 것. 나가 그러는 이유는 이미 쓸만큼은 썼다구 생각허구 앞으로으 글에서도 짬짬이 계속 쓸 것이다. 아 내가 일본극우에 동조해서 그런거 아니라니깐요!


일종의 민속인거다. 일본이란 나라의 민속. 만약에 한국의 무속이 뿌리뽑히지 않았다믄 서낭당이 비슷한 역할을 했으려나? 일본으 신토가 불교와 습합 - 신불습합되믄서 살아남은 것은 일본문화의 앞서 말한 수렁적 특성을 강화하면서도, 지금 일본문화가 발하는 독특한 매력의 심원한 근원이 되었다고 본다. 그것이 제국주으으 앞잡이가 된 것이 문제인디


1. 제국주의가 나쁘지 신토가 나쁜게 아니다. 전근대 신토는 그런게 아니었다. 히데요시가 신사 앞세우고 쳐들어왔더냐

2. 제국주의는 당연히 강력히 비판한다. 물론 이해는 혀야허지만 잘못은 잘못으로서 이야기헌다

3. 제국주의에 이용당하는 것이 아닌 지금의 일본신토는 수많은 아니메에서도 신년 오봉이면 자연스레 신사가서 참배하고 오미쿠지 뽑고 에마걸고 오는 자연스러운 일본의 문화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아베는 더 욕하는 거다.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려 하니까


이 정도가 내 입장이다, 라고 생각해주시라. 어느 나라나 여행지로서으 그 나라으 가장 큰 매력은 전통문화에서 나온다. 세계에서도 가장 강력하게 존재하는 전통문화(일본의 막강한했던 경제력이 그것에 담긴 의미를 물성화해 주었으니까)로서 신토와 신사가 매력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이번에 감동으 눈물을 줄줄 흘리믄서 다니기두 혔구.


관부연락선을 타고 현해탄을 넘으믄서 황국의 바다에 들어서 감개 무량해지고 산음본선을 타고 가믄서 일본해으 풍광을 보고 감탄하며 신사를 참배하믄서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하는 유신의 심장이 따듯한 진정한 일본인이 되는 기분~


이 문장만 보믄 윤서인인줄 알긋네 ㅎㅎ


그니까 이건 동해


이건 일본해라는 이야기

윗 사진은 구룡포 앞바다에서 찍은거고 밑 사진은 산음본선 타고 가믄서 나가토에서 찍은거.


독을 마시려면 잔까지

라는 말 좋아헌다. 이왕 일본 여행을 가고 여행기를 쓸 참이면 윤서인보다 더 독하게 써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나는 소심쭈그렁탱이라 그렇게까지는 몬하긋다만... 대충 이런 마인드로 일본을 대하고 있음을 밝혀두려고 쓴다. 앞으로도 일본은 계속 다닐거고 대할거니깐.


여행기는 다음회부터...


쟌넨! 다음회도 서론입니다!

다음회는 일본 여행에 대한 전체적인 대강과 계획을 이야기할 것이고 이번 여행이 그 대강에서 어떤 자리인지를 쫌금 설명하며 계획을 오또케 세웠는지를 이야기하려헌다. 이미 후쿠오카 사가 나가사키를 한번 갔다오긴 혔다만, 그건 남으 일정에 묻어간 것에 가깝고 주도적으로 간 역사적인 첫 일본여행이 이번 여행인지라 이론과 실제를 제대로 언급할 수 있는 첫 여행이라 그렇다. 뭐 그렇지 않더라도 여행이란 것을 갈 때는 왜 가는지 어떻게 갈 건지 어떻게 갔는지의 3박자는 당연히 있는거구 이번화가 왜 가는지라면 다음화가 어떻게 갈 건지이며 진짜 여행기는 어떻게 갔는지 부터니깐. 블로그 투고 하기 전에 썼던 경전선 여행기에서도 이 파탄... 패턴을 지켰구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거다. 인식이란게 그렇게 되는건지라.


나으 장대한 일본여행의 구상이 펼쳐진다. 개봉박두~


일단 의무방어전은 치렀으니 문명하러 가야징 ㅎㅎ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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