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상을 쓸 날이 올 줄이야. 예술을 정치선전에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공산주의 국가답게(사실 자본주의 국가라고 안 그런가 하면 이래저래 드는 생각이 있지만) 중국에 여러 선전예술물이 있는데, 이 영상은 대표적인 선전가요인

沒有共產黨就沒有新中國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다

라는 노래의 영상인데, 보시다시피 흑인이 부른 영상이다. 나이지리아의 가수인 브라더 하오라는 양반이 이 노래를 듣고 꽂혀서 부른 영상이라는데, 들어보시믄 알겠지만 목소리가 청아허니 썩 괜찮게 불렀다. 일대일로로 아프리카를 정복해나가는 신제국주의 국가 중국의 선전영상으로서도 딱 이지 싶고, 저 노래를 부르다보니 중국을 진짜 좋아허게 된 친중인사인지라

 

baike.baidu.com/item/%E5%A5%BD%E5%BC%9F

 

好弟_百度百科

基本信息 中文名 好弟 外文名 Steven 别    名 红歌王 国    籍 尼日利亚 出生地 利比里亚 职    业 歌手 主要成就 2011年星光大道月冠军 代表作品 《男人靠的住》《黑人兄弟》 曾属乐团 五

baike.baidu.com

 

바이두백과에 항목도 충실하게 되어 있는 등, 중국과 나이지리아를 비롯한 아프리카간의 중아 우호의 상징? 같은 캐릭터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이다. 브라더 하오의 청아한 목소리가 돋보이는 영상이니, 중국을 싫어하는 당신이라도 한번 들어보자.

 

각설하고,

보시다시피 노래의 제목 몰유공산당취몰유신중국 은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다, 라는 뜻이다. 이 노래를 소개하려고 이 글을 쓰게 된 거는 아니고 지난번 티토와 프라뇨 투지만을 다룬 글에 달린 이 댓글

 

"스탈린, 드 골, 티토가 함께했던 시대라니 중화의 큰 인물 모택동이 떠오르는군요. 킹무갓키에 따르면 진운陳雲이 이런 말을 했다죠.

"만약 모주석이 1956년(대약진 운동 이전)에 서거했다면 그는 틀림없이 중국 인민의 위대한 지도자로 남았을 겁니다. 그가 1966년(문화대혁명 이전)에만 서거했어도 뛰어난 공이 조금 퇴색될지언정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는 1976년에 서거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만약 모택동이 국공내전 직후에 저승으로 갔다면 위대한 지도자 반열에 들어갔을랑가 싶네요.

출처: angelusnobus.tistory.com/199 [절해고도]"

 

에 대한 반론아닌 반론을 하려고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사실 이 블로그야 내 지인들 말고는 어쩌다 얻어걸린 방랑자나, 아마 대부분은 GDP랭킹 때문에 오게 된 사람이 대부분일 것인지라, 댓글 다는 사람은 99%지인들이고, 저 댓글을 단 양반도 지인이기에, 이미 이야기는 대충 된 부분이지만, 미묘하게 사람들의 인식의 헛점사이에 오묘하게 존재하는 관념에 대한 이야기가 되는지라, 굳이 포스팅을 남기게 뒤얐다.

 

못된동이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이러니 저러니 혀두 진한진수당송원명청에 이은 제 10대 중화제국의 태조 아닌가. 마, 공산국가를 군주국으로 폄하하는 논리를 극히 싫어하긴 헌다만, 중국이라는 나라의 제국으로서의 역사가 주는 압도적인 느낌을 생각허믄 비유로서는 그만한 것도 없다는 점은 분명하지 싶어서, 이 비유의 매력을 저버릴 수는 없기에 나도 쓰곤 헌다. 10대제국 중국의 태조 못된동. 그가 대단한 이유는 10대제국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의 저 댓글처럼 10대제국은 못된동이 없었으면 존재할 수 없었을까?

 

최근 인터넷상에서 주로 반중국성향 혐중성향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장개석 재평가론이 활발하고, 넷 상에서 혐중정서는 압도적인데 반해, 굳이 한국에서 공산중국을 옹호하려는 세력은, 저 혐중세력이 민주당지지자들을 친중파로 몰아붙이려는 것과는 전~~~혀 달리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친 민주당 성향 커뮤를 가봐도 혐중정서는 정도만 다르지 마찬가지이다. 민주당 지도자들이 중국에 대해 대립을 피하는 건 어디까지나, 한국경제의 압도적인 중국의존 때문이지, 중국에 나라 팔아먹으려 하기 때문이 아닌데, 혐오감에 사로잡힌 사람이 과연 이성적 판단을 할 수나 있겠나?) 이제는 대충 넷상에서는 주류담론이 된 거 같긴 허다. 물론 나는 이러한 재평가를 혐중성향에서 나온, 결론 정해놓고 갖다붙이기라고 보는 입장이다. 패자가 패자인데는 이유가 다 있는 법. 물론, 그가 그 동안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병신취급만 받아온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장개석은 대단한 지도자인데 별 능력도 없는 주제에 사악하기는 드럽게 사악한 못된동한테 졌다, 라는 담론은 지나치게 일차원적이지 않은가? 정치에서 과정을 중시해야 하는 것과 별개로, 평가는 결과갖고 하는거다. 진데는 진 이유가 다 있는 것. 그냥 장개석이 못된동보다 병신이라 진거다. 훨씬 거대한 세력과 월등히 유리한 외교적 상황, 압도적으로 높은 위신을 갖고 있음에도 졌는데 뭔 말이 많나?

 

그런데, 지금 이 주제 -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다, 에 있어서는 이러한 상호관계가 좀 미묘해지는 부분이 있다. 즉, 역사에서는 어째서 하늘은 장개석을 낳고 또 못된동을 낳으셨는가! 라서 장개석이 결국 패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승자가 된 공산당은 못된동이 영도하는 공산당이 존재하기에 비로소 신중국이 성립할 수 있었고, 그렇기에 못된동은 위대한 지도자다, 라는 논리를 설파해 왔으며, 상기의 저 지인은 친중성향이 아님에도 그러한 전제 자체는 부인하지 않고 있다.

 

굳이 반박하려는 의도가 아니더라도, 반대방향에서 접근해보자. 논리학을 공부했다면 역이대우 뭐 이런거로 이야기해보겠는데, 나는 내 사고의 틀을 기술적으로 바꾸는? 라고 해야할 지 모르것는디, 그런거에 엄청 피곤함을 느낀느지라, 늘상 의식의 흐름으로만 생각을 허는지라...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이 없다, 의 반대명제라면 장개석만 있으면 신중국은 없다, 정도일까나? 만약 역사에서 공산당의 저항을 어떤 식으로든 받지 않았다면 장개석은 무난히, 현실에서처럼 대만섬으로 쫓겨났고, 이제 본성인들 등쌀에 존립조차 위태로워진 중화민국이 아닌, 중화를 통일한 중화민국을 수립했을 것이다. 그럼 그것도 신중국 아닌가? 신중국이라는 개념에 대한 중화인들 사이에서의 논의가 어떤지 정확히는 모른다만, 아마 공산중국에서는 공산당이 세운 중국에 한정해서 말하려 들 것은 안 봐도 바이두일 것이지만, 공산당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대만이나 그래도 일상에선 궁시렁 거릴 수 있는 홍콩, 중화문화권이믄서 따로 나와사는 싱가포르 같은 곳에서 저러한 정의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외세의 침략의 와중에 전통중국이 형해화된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고 새로이 근대세계에 독자적 국가로서 설 수 있는 중국이라는 폭넓은 의미의 단어로 신중국이 쓰일 것이고, 공산당이 세운 신중국은 그것이 현실에서 실현된 형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걸로 받아들여질 것. 뭐, 공산당을 혐오하는 사람은 신중국도 못된다고 할 지 모르겠다만.

 

사실 현실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논자가 1946년까지만해도 장개석이 이끄는 중화민국이 당연히 신중국을 세울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공산당과 타협을 하든 공산당을 쳐부숴서든. 심지어 가장 위대한 지도자 스탈린 동지께서도 다르게 보지 않았을 거라 여겨지는 여러 정황이 있다. 그러나, 국공내전의 전황이 1947년에 들어 급격히 공산당에게 유리하게 기울믄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가능할거라 생각지 않았고, 심지어 상당수의 공산당 구성원조차도 되었으면 좋을 꿈인데 그게 될까? 라고 생각혔을 게 틀림읎는 공산중국이 현실에 나타나버린 것일 뿐. 만약 공산당의 기적과도 같은 승리가 아니었다면, 장개석의 중화민국은 1940년대 하반기에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정부로서 무난히 출범했을 것이다. 물론, 앞서 진한진수당송원명청의 9대 통일왕조라고 혔지만, 실질적으로 기능한 통일왕조는 한당송원명청 6대왕조이고 나머지 셋은 과도왕조에 지나지 않았긴 하다.(그렇다고 해서 삼국지를 끝낸 진나라를 뺄 수는 없잖아! 관우 아세요?) 장개석의 남경국민정부도 그랬을거다 라고 볼 수도 있긴 허다. 장개석의 국정운영능력이 영 좋지 않았던 것도 있고, 불과 10여년전만해도 허구헌날 장개석에 맞서 반장전쟁을 일으키던 산서제국 황제 신중국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염석산 동지를 비롯한 수많은 효웅들도 있었지 않은가. 그러나, 이는 대동아전쟁을 거치믄서 전혀 달라진 장개석의 위상을 고려해 볼 때, 그 전처럼 염석산 동지가 풍옥상이나 장작림... 은 뒤졌고 장학량... 은 좆됐는데 하여튼 이런 놈들과 손잡고 반장전쟁나부랭이를 일으키기에는 너무 격차가 커져버렸다. 물론 여전히 군벌들의 영향력이 없지는 않으나, 무려 카이로회담에서 루스벨트 처칠(이 시점에선 둘 다 일가실각한 상태긴 하지만)과 3대지도자로 까지 자리했던 사람을 그 밑의 군벌이래봤자 쫌 큰 토호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 뒤집는다? 언어도단이다. 정치 지도자로서의 국내외적 위상 명성을 대체할 인물 같은 것은 없다. 엄청난 실정, 이를테믄 1947년의 하이퍼 인플레이션 같은 것으로 나라가 무너질 수도? 랄 수도 있지만, 그런 일이 국공내전이 없는 상황에서 일어났다면, 엄청나게 큰 정치스캔들이 되기야 혔겠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든 어쩌든 혀서 어떻게든 수습하고, 그냥 계속 다스렸을 것이다. 애초에, 정치적으로 대체할 구심점이 없다. 염석산은 산서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지만 전 중화스케일의 인물이 아니고, 이종인은 나라가 무너지는 상황에서야 간신히 대리총통이나 했을 인물인데, 누가 대체한단 말인가?

 

오직 못된동이 이끄는 공산당이라는, 다른 존재와 비교를 불허하는 압도적인 원심력이 있었기에, 저러한 실패들을, 국민당이 주도하는 질서... 그것은 거부할 수 없어... 가 아니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대안이 없다면, 그저 그런 나라일망정 그럭저럭 계속 굴러 갈 수 밖에 없는 것. 단지, 산서나 운남같은 변방지역에 대한 간섭여력이 좀 줄어들었을 수는 있겠다만. 중화민국이 이끄는 신중국을 굳이 역대 중국왕조에 비교혀보자믄 온전한 군현제가 실시되지 못한채 지역왕들의 권력을 인정한 한나라 정도? 아마 장개석이 신중국을 세웠다믄, 실질적 성격에서든 다른 그 무엇과도 비교할 바 없는 압도적인 상징성에서든 한나라 초창기의 정국을 참조하고 빨통^^의 행적을 벤치마킹했을 것이다. 영포는 염석산이고 한신은 이종인인가?

 

 이런 신중국도 신중국이다. 공산당이 없어도 신중국은 있다. 못된동이 아편전쟁이래 100년의 동란을 끝내고 새로운 중국을 실제로 출범시킨 사람인 것은 맞다만, 그가 아니었다면 동란이 끝나지 않고 혼란이 계속되었을 거라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그러나 그렇다해서 못된동이 엄청난 인물이 아니게 되는 것은 또한 아닌 긋도 맞다. 앞서도 말혔듯이 누구도 해낼거라 상상하기 힘들었던, 공산당이 주도하는 질서... 그것은 거부할 수 없어... 를 실현시켰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엄청난 일이다. 오히려, 신중국 출범이라는 정치적 구호에 오용되는 바람에 못된동의 승리는 역설적으로 희석된 것이라 봐도 될 정도로 못된동의 승리는 현실적으로 가능할 거 같아 보이지 않았던 엄청난 정치적 승리다. 뭐 여텨까지 봐 왔으믄 알것지만, 나는 못된동이라 부를 정도로 신중화천자를 극히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좋은 인물이 아니다. 단지, 역사를 뒤져보믄 그다지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다른 능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디, 정치투쟁에서 이겨내는 능력, 권력을 쟁취해내는 능력하나는 기가 막힌 인물 이상으로 보지 않는다. 단지, 그 업계에선 공전절후의 비교를 불허하는 압도적인 성과를 낸 인물일 뿐. 그런 면에서 보면 오히려 못된동은 서태후와 비슷한 인물인 면이 있다. 다른거 다 드럽게 못하는데,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능력하나는 기가맥혔다는 점에서.

 

칭찬을 하는건지, 까는건지 좀 혼란스러운 이야기가 뒤야부럿는디, 사실 못된동이라는 인물과 그의 승리 자체가 갖는 성격이 상당히 혼란스럽기 때문에 으짤 수 읎는 면이 있다. 못된동이 논란의 여지없이 대단한 인물인 부분은, 오히려 공산당 내의 권력장악과정에서 드러나는 면이 있다. 쏘오련의 노선을 맹종하던 모험주의자들과 달리, 그는 중국의 현실이 쏘오련과 다르다는 점을 정확히 간파했고, 그가 이끌던 동안에는 그럭저럭 돌아가던 강서해방구가 쏘오련의 권위를 빈 자들이 이끌자마자 패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허다.(물론 다분히 혐중적인 논자들에게 선호되는, 5차초공은 다르다 5차초공은! 같은 주장도 있긴 허다만, 마찬가지로 못된동은 다르다 못된동은! 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 중공당사에서 대장정이 금과옥조가 되는 것도, 그 와중에 못된동이 당을 완전히 장악허는데 성공혔기 때문이기두 허구. 강서소비에트의 수립부터, 연안으로의 도피과정은 못된동이란 인물의 정치역정에서 가장 압도적인 성공의 기간이라혀두 과언이 아니라구 본다. 어떤 면에서는 국공내전에서의 극적인 대역전보다도 더. 이러한 점을 볼 때, 그의 능력이 탁월하다는 자체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만, 이러한 정치투쟁에서의 기가맥힌 감을 "적들" 에게만 썼다믄 다행인디, 자국민에게도 사용한 문화혁명 같은 짓을 혀댔으니 문제인거지... 정치적 상황을 읽고 거기서 이겨내는 데는 천재적인데, 이를 통해 확보한 권력을, 국태민안에 사용하는 능력은 ??? 이니 그 인물을 단정적으로 규정내리기 힘들어지는 것... 게다가, 대개는 그 둘이 갈리지 않거나, 갈려도 저렇게까지 갈리지는 않는다. 못된동은 그 둘이 갈린 점에서도, 앞서 말한 것과 같은 공전절후의 인물일 수 밖에 없는 것... 여전히 공산중국이 극도로 민감한 정치적 주제이고, 그 공산중국의 정치적 존재감과 상징성은 거의... 도 아니고 그냥 전적으로 못된동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이 인물이 객관적으로 논의될 여건이 아니라 그렇지, 이만큼 입체적이고 재밌는 인물도 흔치 않다. 언젠가 미중갈등이 정리되고 중국이 온전하게 국제질서를 보호하는 한 축이 되든, 패배하여 주저앉든 못된동으로부터 시작된 질서가 끝나고 나면 호사가적 관점에서는 이만큼 재밌게 논할 수 있는 인물도 흔치 않을거라는 이야기. 물론 중공이 승리한 미래와 패배한 미래에서 그에 대한 논의는 전혀 달라지겠지만, 애초에 못된동이란 인물은 내 관점에서는 "역사적" 인물이 아니다. 무슨 의미냐믄 역사의 자연스러운 흐름과 별개로 존재하는 인물이라는 것. 아 이거 참... 원래는 가볍게 쓰고 넘어갈라 그렸는디, 지난 글두 그렇구 역시 펜... 아니 키보드만 잡으믄 생각이 이것저것 글믄서 글이 무거워지네... 사실 원래 좀 가볍게 생각허구 시작허긴 혔는디, 못된동이란 인물에 대해 글을 쓰고 그에 대해 생각을 해 보니, 이거 생각혔던거부다 훨씬 대단헌디? 라는 것을 자각한 면이 있달까? 랄까나...

 

하튼 못된동에 대해서는

각설하고

결론은 그거다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다 X

공산당이 없으면 공산신중국도 없다 O

라는 것. 마 원래는 못된동이 없으면 공산신중국도 없다, 라고 쓰려구 혔는디, 라임과 플로우를 맞추는 건 중요헌 거니께

 

그리고, 공산신중국이 아닌, 국민신중국이었더라도, 중국은 지금같은 대국이 되었을 것이다. 다른 자리에서 계속 이야기혀왔지만, 동아시아의 급격한 발전은 한자문화권의 힘인거니께.

못된동이 없어도 신중국은 생기고 그 신중국은 거대한 중국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못된동은 있었고 새롭고 거대한 중국은 공산신중국이 되었다.

그 사이에 놓인 심연의 한 가운데에 모택동이 있다...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위대한 지도자는 담배도 간지나게 태우신다

언젠가는 안 그랬던 적도 있었던 거 같지만, 잠깐잠깐을 빼면 언제나 인생은 환멸으로 가득찬 것이라, 한동안 글 쓰는 것두 집어쳤는디, 그랴두 버려두다 시피 헌 블로그에 간간이 댓글이 있곤 허는거 보니 참 신기허기두 허구, 나란 인간이 그랴두 할 수 있는거라고는 글 쓰는 거 뿐인지라, 그 동안 생각해 온 간단한 생각 짧게 남겨둬볼 으욕이 생겨부럿다. 말 나온김으 이야긴디, 나으 글쓰기는 지나치게 번잡하고 간결함이 떨어지는지라, 그런 부분을 좀 유의혀야 것다구 생각은 혀 왔는디, 이번에 함 그런 관점에서 써 보자.

 

각설하고

위 사진이 요시프 브로즈 인 것이야 알 사람은 알테지만, 대부분은 티토라고 해도 모르것제. 이제는 티토슨상님도 잊혀진 사람이라... 인물은 오지만 언젠가 가는 것이구 역사는 흘러 그를 기억에서 지우는디, 오늘 글은 그와 관련하여 비범함과 범속함의 미묘한 관계에 대해 든 생각을 써 볼라 칸다.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위으 사진은 두 위대함의 만남인디, 발칸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티토동지야 발칸에서 가장 위대한 동지고... 솔까 저 시대가 미쳐 돌아가는 시대라 가장 위대한 지도자 스탈린 동지, 두 번째로 위대한 지도자 드 골 동지만 아니었어두, 발칸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라는 칭호에서 '발칸에서' 는 떼고도 남을 위대한 지도자가 티토동지이시다. 그에 대해서두 이래저래 할 말이 많지만, 오늘의 컨셉은

 

간 결 함

 

이니까. 시작부터 틀려먹은거 같긴 허다만 ㅋ. 티토동지께서는 본인 스스로의 위대한 정치지도력뿐 아니라, 굉장히 선진적이시게도 언플과 이미지의 중요성을 잘 알고 활용허신 분인디, 발칸 산속에서 겔릴라 투쟁을 하는 와중에도 서방언론을 통해 언플을 끊임읎이 혔구(이 과정에서 알려진 유명한 프로파간다가, 티토의 겔릴라가 발칸에서 독일군 30만을 붙잡아두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는 7만이었고, 가장 위대한 지도자 답게 스탈린 동지께서는 실제 수치를 알고 계셨다) 심지어 어느 자리인지 기억은 안 나는디, 서방대표와 접견하는 자리에서 파격적이게도 빽구두에 올빽양복을 입고 나가는 미친쏀쓰를 통해 서방오피니언리더들에게 신선한 썈크를 줬던 일이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형성한 이미지는 대동아전쟁 유럽전역기간 내내 잘 써묵기두 혔구, 대전후 유고가 서방과 스탈린 동지 사이에서 줄타기 허는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잘 써먹기두 혔구. 단지 이게 정치적 이미지 뿐만이 아니라, 본인 자체가 상당한 호사가이믄서 세상의 좋은 것을 즐길줄 아는 사람이었고 꾸미고 멋내는데도 관심이 많았다구 헌다. 빽구두에 빽양복같은 미친쏀쓰는 아무나 생각하는게 아니다. 그런 점에서도 위대한 지도자 이 전에 위대한 인간이라 저 양반을 극호한다. 내가 한 사람의 삶을 골라서 살 수 있다믄 외모문제를 빼고 본다면 당연히 티토 아닐까. 물론 티토의 외모도 출중허긴 허다만 내 타입은 아니니께 ㅎ

 

유서프 카쉬라는 또한 위대한 인물사진가가 있다. 앞의 글에서도 소개헌 적이 있는거 같은디

처칠은 찐따니까 좀 작은 사진으로

이 사진으로 유명한.

그의 사진은 인물의 본질의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을 잘 드러내기로 정평이 나 있는디, 맨 우으 사진도 카쉬가 찍은 것이다. 원래도 명성높은 사진가였지만(애초에 그러니까, 처칠의 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인 사진을 찍을 사진가로 발탁이 뒤얐었겠지?) 처칠의 저 사진을 찍은 이후로 전 세계적 명성을 읃게 뒤얐고, 호사에 환장한 티토동지께서는 그러한 카쉬를 초청해다가 맨 위으 저 사진 말고도 자신의 인물사진을 여러장 찍게 하셨다. 유서프 카쉬 티토로 검색하믄 다른 사진들도 볼 수 있다. 갠적으로는 맨 위으 사진을 좋아혀서 저 걸 이미지 샷으로 박았다만. 위대한 인물은 위대한 인물을 알아보고 어울린다, 라는 면에서 윗 사진은 위대함과 위대함의 만남이랄까나. 처칠같은 개밥의 도토리는 좀 거슬린다만 ㅋ

 

각설하고,

사실 티토동지의 위대함에서부터 오늘 글의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발칸, 특히 남슬라브인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구구하게 말할거 없이 그냥 개판이다. 수 많은 나라와 부족으로 갈라져 지리멸렬허다가, 오스만제국한테 수백년간 지배받으믄서 종교적으로도 뿔뿔이 흩어졌고, 근대에 들어 민족주의의 폭풍이 몰아닥쳤을 때, 당연히 이 갈라진 부족 나뉘어진 종교는 고스란히 아이덴티티간으 갈등으로 이어졌고, 그 와중에 오스트레일리아 황태자가 암살당하고 전쟁이 나고 전쟁(1차대전)의 결과로 억지로 한 나라로 만들어졌다가, 다음 전쟁(대동아전쟁 유럽전역)와중에 또 쪼개져서 서로 수십만씩 학살하고 난리가 나 부런 역사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유고내전이란 이름으로 또 수십만명씩 서로 죽이고 학살하고 난리가 나 부럿다가, 이제와서야 싸우다 지쳐 평화가 찾아와 그럭저럭 살고 있는 동네가 남슬라브인의 땅 유고슬라비이다.

 

슬라브인은 러시아로 대변되는 동슬라브인, 체코 폴란드로 대표되는 서슬라브인이 이름이 있구, 오스트레일리아 남부 그리스 북부의 지역에 모여살던 남슬라브인이란 분파는 좀 이름값이 읎다. 그나마, 세계적 제국이 된 동슬라브인, 뚜렷한 민족적 정체성을 수립허구 들으면 이름을 아는 나라인 체코 폴란드 등으로 발전한 서슬라브인과 달리,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몬테네그로,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등 이름을 월드컵 4강때문에 좀 이름이 있을 크로아티아 말고는 사회과부도족 이외에는 들어도 못 봤을, 그나마도 크지도 않은 나라인 한국의 1개 도 만도 못한 크기와 인구의 나라들로 갈갈이 쪼개지는 바람에 안 그래도 존재감이 없는게, 남슬라브인의 안타까운 현실이라 허것다.

 

간단히 말허려구 혔는디, 워낙 역사가 구구허다봉께 말이 길어지네. 남슬라브인으 아이덴티티는 좀 복합적으로 미묘한 면이 있다. 남슬라브인이라는 큰 아이덴티티가 읎는건 아닌디,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세르비아 인헌티 니들은 같은 민족이야~ 허믄 나가 저놈들하고 같은 민족이라고라? 허믄서 붕쯔붕쯔하는 부분도 있다는거. 그리고, 그로 인해 크게 두 번의 상호간의 대 학살전을 치렀는디, 한번은 2차대전 시기의 상호학살이고, 다른 한 번은 유고내전 시기의 대학살이다.

 

그리고 그 중간에, 그 동네가 평화로웠던 시절이 바로 티토동지가 영도하던 시기이다.

티토본인은 크로에이셔인 애비(웃긴게 애비이름은 그의 성과를 엎은 프라뇨이다 ㅋㅋ)와 슬로베니아인 애미 사이에 태어났는디, 한국어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자료(킹무갓키...)로서는 그의 아이덴티티가 무엇이었는지 뚜렷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아마 크로에이셔에 가깝지 않았을까. 슬로베니아는 마치 저 북방의 에스토니아가 발트인의 혈통이믄서도 우리는 노르딕이랑께요~ 하는거랑 비슷허게, 우리는 캐쏠릭 서유럽이오~ 하는 느낌이 있어서 아이덴티티가 좀 흐린지라.

티토의 영웅적 겔릴라 활동기야 화려한 총알이 나의 좆까는 시기긴 허다만 이 글으 주제는 아니니 알어서들 찾아보시구, 그렇게 허여 승리한 티토는 개별부족주의를 지양하고 남슬라브인이라는 큰 정체성을 세우는데 주력혔다. 물론, 바로 전까지 서로 수십만명씩 죽여대던 크로아티아인과 세르비아인은 물론이고, 아예 종교가 다른 보스니아인이나 슬로베니아인, 한술 더 떠 혈통조차 다른 불가리아계(오늘날의 마케도니아인)까지 그게 쉽게 될 일이 아니었다만, 철저하고도 정교한 민족평등정책, 민족간 화합정책으로 티토 유고슬라비아 시기의 유고는 민족간 문제가 '거의' 불거지지 않았고, 서로간에 잘 어울려서 잘 지냈으며, 쏘오련의 위성국도 아니어서 유연한 외교 정치적 입지로 나라 자체가 상당히 살만혔다. 티토 본인이 기린아라, 소시적부터 지도자활동을 혔구, 1945년에 집권하고서도 아직 젊었던지라, 그 뒤로 35년을 더 살믄서 1980년까지 티토의 영도하에 안정된 시기를 보낼 수 있었고, 티토가 죽고서도 10년간은 그 체제는 안정적으로 돌아갔다.

 

위에 '거의' 라고 표현헌 이유는 완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마참내 등장허는게, 글의 제목인 프라뇨 투지만이다.

 

세르비아 놈들 까불믄 날려버리겠어

 

티토의 민족정책은 안 그래도 바로 그 민족주의적 충동의 과잉이 세계를 불태웠던 2차대전 직후의 분위기에서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고, 그래서 제대로 먹혀들어갈 수 있었지만, 애초에 그러한 과잉이 어디서 오겠는가? 민족주의 자체가 강렬한 정서적 충동에 기반하기 때문인기라. 그리고, 대~~ 주의 이런 것도 안 먹히는 구호는 아니다만, 애초에 민족주의는 기본적으로 순수성 배제성을 빼고는 이야기헐 수가 없는기다. 거기에, 앞서도 말혔듯이, 애초부터 상호학살의 두 축인, 캐솔릭을 믿는 크로에이셔인과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인이 같은 민족이라구 허믄 ??? 이 나올 수 밖에. 심지어 아예 머슬림인 보스니아인까지 나오믄 말 다했다.

 

그런고로 티토집권기간에도 중반기부터는 슬슬 저러한 소민족주의들이 대두허기 시작혔구, 그 와중에 가장 두드러지는 인물중 하나가 크로아티아 소 민족주의의 주도자인 프라뇨 투지만이다. 당연히 티토의 정치노선이 남슬라브인의 통합을 강조허는 것인디, 그에 대놓고 반항하는 자는 당연히 정치범이었고, 티토시기 투지만은 상당한 탄압을 받어야 혔다. 그리고, 그런 티토가 죽었다. 남슬라브인의 통합이라는 이상은 존재하기는 허지만, 막연한 것이었고, 현실의 유고슬라비아에서 그 통합의 명백한 구심점이자 근원은 티토의 리더쉽이었는데, 그게 사라진 것. 티토 사후에도, 연방을 이루는 6개공화국은 연방대통령을 순회배출하여 연방을 유지허믄서 각 공화국의 독자성과 자치는 존중하는 형태로 큰 탈없이 이어져나갈수는 있었다. 그러나, 이제 대놓고 투지만이나, 세르비아의 밀로셰비치 같은 인간을 억누를 존재는 없어졌고, 이제 유고연방에서는 슬슬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공산권 붕괴로 인해 당연히 유고에서도 공산정권은 무너졌고, 그를 대체할 정치적 리더쉽을 둘러싸고 본격적인 갈등이 벌어지기 시작혔다. 구 유고의 지도를 보믄 알겠지만 여러 나라가 있는데 그 중에서 비교적 큰 나라는 서북의 크로아티아, 중부의 보스니아, 동남의 세르비아 세 나라이다. 이 중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강국이었고, 독자적 국가로서의 역사도 제일 탄탄한 것은 수도인 베오그라드가 있는 세르비아이고, 헝가리 오스트레일리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상당부분 서방화된 크로아티아, 오스만 지배시기 무슬림화된 보스니아가 그 뒤를 따른다. 위치로 보나 종교로 보나 유고내전 시기에 가장 큰 전장이 되고 가장 큰 피해를 보스니아가 볼 수 밖에 없었달까나.

 

이 세 나라를 이끄는 세 사람 - 크로아티아의 프라뇨 투지만, 보스니아의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유고내전의 주역(+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 반군의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인데, 이 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이름이 난 것은 보스니아전쟁의 핵심인물이자, 보스니아에서의 학살의 책임도 가장 큰 밀로셰비치(사실 좀 억을은 헌기,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의 수장인 라도반 카라지치가 진짜 당사자이며 그나마 밀로셰비치는 작작 좀 하라는 입장이었다. 카라지치가 안 들어먹고, 밀로셰비치도 결국 그럼에도 지원을 이어가는 바람에 전범혐의를 벗어날 수는 읎었지만)이긴 허다만, 일찍부터 민족주의의 폭풍을 예견하고 예언한 '선지자'는 프라뇨 투지만이었다. 이 양반은 티토밑에서 겔릴라 활동을 하고 군인으로서의 커리어가 가장 크긴 허다만, 대전후 역사학을 박사학위를 딸 때까지 공부(부럽다!)혔구, 그런 학술활동중에, 크로에이셔 민족주의에 경도된 사람이기에, 이론적 인식적 기반이 가장 강했다고 헐 수 있것다. 역사연구란기 민족성과 떨어질 수 있는게 아니고 그에 대한 이해가 가장 깊을 수 밖에 없는 영역인지라, 역사 혔다는 사람이 민족에 경도되기루 맘 먹었다믄 누가 막을 수 있는기 아니다. 물론 대개는 학술활동을 거치믄서 객관화 훈련을 받는지라, 거리를 두게 되지만, 그러다가 흑화되믄 못 막는다는 이야기. 투지만도 그렇고 떡사마(이덕일)도 그렇고... 유고내전도 직접적 계기는 크로아티아의 유고연방에서의 탈퇴시도였기두 헌지라, 시발점이 된 것은 맞다만, 그것이 참혹한 내전과 끔찍한 학살로 이어진건 탈퇴시도 자체때문은 아니기두 헌지라, 유고내전의 아사리판에 이 사람의 책임이 크다고는 하지만, 그의 행동이 문제는 있었어도 범죄가 되진 않았기에,(물론 크로아티아도 보스니아에서 여러 비인도적 행위를 벌였고 그 책임은 분명히 투지만에게 닿는다. 다만 그게 국제정치문제로 비화되진 않았다는 이야기) 이 양반은 신생 크로아티아의 지도자가 되어 '독립전쟁' 도 이끌어 성공시키고 독립국가의 지도자도 허믄서 전쟁범죄자가 되어 빵에서 뒈진 밀로셰비치와 달리,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었다.

 

남슬라브인이라는 존재의 역사속에서 통합과 분열의 흐름은 부침을 거듭혔다. 아마 여러 역사 정치적 이유로, 앞으로는 이러한 형태으 민족적 갈등이 큰 동란을 불러올 가능성은, 어느정도 안정화된 사회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구, 남슬라브인들도 이제는 산하 소민족들 각자가 자신의 길을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평화롭게 갈라선 체코와 슬로바키아도 다시 합칠일은 읎어보이는디, 서로 저런 끔찍한 꼴을 보고 갈라진 그들이 다시 합치려는 시도를 할 일은 더더욱 읎을 것이다. 결국 대 남슬라브주의(라고 일단 이름 붙인다믄)와 소 남슬라브주의의 수백... 이라긴 좀 그렇고 백수십년간의 갈등은 소 남슬라브주의의 역사적 승리로 끝났다고 봐야할까? 그렇게 본다믄 요시프 브로즈 티토는 역사의 패배자이고, 프라뇨 투지만은 역사의 승자인 것일까? 이상과 현실의 갈등이란 형태로 단순화 도식화하는거 좋아허지는 않는다만, 서로간의 차이를 넘어 화합하자, 라는 건 아무래도 이상에 가까울 것이고 너와 나는 다르니 각자 갈길 가자, 라는 쪽은 아무래도 현실에 가까다고 할 수는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남슬라브주의에 있어서 이건 좀 맥락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남슬라브주의의 시작은 어디까지나 세르비아의 패권주의였기 때문이다. 상술한 바, 슬로베니아나 크로아티아는 일찌기 오스트레일리아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 꽤 서방화 되었고, 그 아래쪽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거의 4백년이나 받었는디, 19세기에 들어 민족주의의 폭풍이 불믄서 남슬라브 여러 나라가 독자적으로 독립하믄서, 원래 가장 강했고, 오스만제국과의 코소보 전투에서 장렬하게 패배하여 멸망했던 기억이 있는 세르비아가 가장 강하게 민족국가로서 발전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각자 다른 역사적 경로가, 상술한대로 남슬라브라는 정체성과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세르비아 등등으 개별정체성이 혼재되는 미묘한 상황을 만들었고, 대개 이런 경우 가장 쎈놈은 패권주의를, 상대적으로 약한쪽은 분열주의... 라고 허믄 왠지 비난 같으니 개별주의를 주창하게 마련이다. 그러한 세르비아 패권주의가 관철된 것도, 세르비아 자신의 성공때문이라기보다는 1차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격동의 과정에서 이뤄진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면이 크다. 그러나 어쨌든 남슬라브주으으 플랫폼으로서 유고슬라비아가 성립은 혔는디, 그 구성원간에 서로 쳐죽여댄다(2차대전)믄 그 상황에서 남슬라브주의를 버릴 것인가, 개별 민족주의를 버릴 것인가? 라는 질문이, 남슬라브인 혹은 슬로베니아인 크로아티아인 보스니아인 세르비아인 몬테네그로인 헤르체고비나인에게 주어진 역사철학적 질문이랄 수 있겠다. 티토가 이 질문을 얼마나 고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위대함을 볼 때 그 양반은 분명히 꽤나 이 문제를 깊이 생각했으리라 확신헌다. 그렇지 않고서야, 유고슬라비아연방의 안정된 정치적 분위기가 단지 그의 강권만으로 이뤄졌을리는 없을테니까. 그러나, 그의 죽음과 그에 이어진 동란속에 남슬라브주의는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졌고, 남슬라브주의라는 낡은 표대를 역사의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것은 프라뇨 투지만+이다. 역사에서의 영웅주의에 대해 미리 이야기를 혀 놓았으믄 좋을텐디, 위대한 지도자 어쩌구 하는 걸 좋아허는 내 스타일상 영웅적 인물에 대한 고평가경향이 있는건 분명허다. 다만 영웅주의 자체는 전혀 긍정하지 않는다. 위대한 인물은 결과적으로 형성되는 것이지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만큼 정치도 다분히 결과로 평가받지 않을 수 없다. 위대한 인물인 티토와 결과를 낸 투지만... 이는 범속한 인물인 투지만이 위대한 인물인 티토를 저버린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위대한 지도자의 성과가 범속한 인물에게 짓밟힌 모양새로 끝난다는 것이 속상해서 끝끝내 이런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부정은 못하긋다. 티토의 뜻을 이을 위대한 지도자가 있었다믄 가능했을까? 그렇다기엔,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라도, 나치독일에 맞서 해방투쟁을 이끈 성과같은 것은 평시에는 내지 못했을거 같긴 하다. 티토가 그 정도의 카리스마가 있으니까, 가능했던 것이라고 헌다믄, 티토 본인의 위대함이 어쨌건간에, 결국 그 또한 역사의 산물인 것... 역사란 게 이래서 참 어렵다...

 

사실 이 글을 쓰믄서 계속 든, 유사허믄서도 다른 결과를 낸 사례들이 떠 올랐다. 인근의 루마니아라던가, 저 멀리 아프리카의 르완다라던가... 그러나, 그 이야기까지 허자믄 이미 간결함 따위 박살나버린 글 더 산만해지니, 그건 다음의 이야기로 미뤄두기로 허구, 오늘은 티토동지를 기리믄서 여기까지 허기루 허자.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내 블로그 왔으면 재규어 장군님 존영부터 보고 가라


벌써 재작년이 된, 박근혜 탄핵무렵부터 일부 호사가들과 드립러들 사이에 재규어 장군님의 풍수지리에 관한 썰이 돌았다. 오늘 검색하다가 그 글의 원 출처? 에 가까울 거 같은 포스팅을 찾았는데, 그 글에 쓰인 부분을 긁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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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육관도사로 알려진 고 손석우(孫錫佑·1928~1998)씨의 묘입니다. 육관도사는 ‘터’라는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든 인물인데 유명한 일화가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선친의 묘를 잡아준 일화입니다. 김 전 부장은 1970년대 중반 건설부장관으로 재임할 때 부친이 사망하자 손석우씨에게 묫자리를 봐달라고 했으며 손씨가 터를 골라주며 말했습니다. “이곳은 군왕지지(君王之地)다!” 그런데 장용득씨(1999년 작고)라는 또다른 풍수가에게 그 땅을 봐달라고 하자 장씨는 “여기 묘를 쓰면 3년 내에 장남이 이금치사(以金致死) 당한다”며 말렸다지요. 이금치사란 쇠붙이를 잘못 써 죽는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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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이다. 육관 손석우나, 내가 퍼온 글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호가 하남인 하남 장용득이나 당대의 풍수가라고 한다. 뭐, 나가 점이나 이런 걸 믿지는 않지만, 호사가가 그런 것들을 다루지 않는다면 호사가 실격 아니것는가? 양이 호사가들도 타로점 보고 노아의 방주의 진실을 파헤치고 그럴거다.

각설하고
지난 탄핵기간에 돌았던 썰은 당대의 풍수가인 두 사람의 말이 결국 다 맞은거 아니냐, 라는 거다. 하남의 말이야 장군님께서 쇠붙이인 총을 놀려 거사를 일으켰다가 결국 유명을 달리하신거니 보다 직설적으로 맞았달 수 있겠다. 육관의 말은 허언처럼 들렸겠으나, 박근혜가 인민들의 손에 내쫓긴 시점에서 그 애비놈인 박정희 놈을 정의의 발텁으로 징벌하신 재규어 장군님이 이제와서 어찌 군왕이 아니라 할 수 있으리. 의를 떨쳐 군왕이 되어 이제 전설이 되셨으니 가히 육관의 예언도 맞았다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저 글의 출처가 어디인지 짐작들 하시겠는가?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2/21/2015122102731.html


그 이름 찬란한 조선일보다. 한때 우매하여 조선일보를 좆선일보라고 불렀었는데, 어찌감히 조선일보 따위를 신성한 좆에 비유할 수 있으리. 좆에 대한 극도의 불경이니 그냥 조선일보는 조선일보라고 불러주면 된다. 쓰레기를 쓰레기라고 부르듯이.


각설하고

당연히 조선일보답게, 그리고 아직 박근혜년이 망하지 않은 2015년 답게 조선일보는 그 뒤에 이런 사족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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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관도사는 이외에도 현충원에 있는 고 박정희 대통령의 묘소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한 바 있습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묫자리는 육관도사와 쌍벽을 이룬 청오 지창룡(池昌龍)선생이 잡아준 것입니다. 육관은 청오를 비난하며 “(박대통령) 묘를 잘못 잡아 외아들(박지만씨를 지칭)이 감옥을 들락거리고 가족간에 분란이 그치지 않는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이 됐으니 육관도사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할 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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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조선일보 놈들이 박용철 박용수 사건(박근혜 5촌 살인사건으로 더 알려진)을 아무것도 모르는 양 입 닦고 있어서 그렇지 저 말은 말 그대로 맞는 말이다. 박근혜 박근령 박지만 세 머저리 쓰레기들이 사이가 거지같고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인건 말할 긋도 없는 것. 하물며 그 전해에는 정윤회를 둘러싸고 박지만이 파워게임질까지 했는데,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것과 무 슨상 관인지? ㅎㅎ

풍수지리 같은 고오풍 스러운 것들은 대개 회장님이나 나이 지긋한 양반들이 좋아헌다. 그리고 육관 손석우 정도 되는 인물이라믄 그 바닥에서 레전설급 인물일건데... 그렇기에 그 양반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그런데 그런 먹어준다는 사람이 자기들의 취향과 완전히 배치되는 언행을 혔었으니 조선일보는 완죤히 못마땅하겠지만, 상기한 전차로 대놓고 까지는 못하고 그냥 에둘러서 육관... 당신은 틀렸어...! 라고 말하고 싶었을 게다.

그리고 지금 육관의 말은 전부 진실이 되었다. 어떠냐? 조선일보 개병신들아. 기분이 쌉쌀하냐? ㅎㅎ

저 글의 말미에 있는 부분은 더 가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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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 김에 청오 지청룡선생(2003년 작고)은 고 김영삼 대통령 시절 다음과 같은 예언도 남겼다고 합니다.

“다음대는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 나올 것이며 그 후 가장 불쌍한 대통령이 나올 것이며 한사람의 쫓겨나는 대통령이 나올 것이며 그 다음 성군(聖君)이 나와 나라를 부강케할 것이다!”

청오의 말대로라면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은 고 김대중, 가장 불쌍한 대통령은 고 노무현, 한사람의 쫓겨나는 대통령은 이명박, 성군은 박근혜 대통령이 되는 셈인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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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갘ㅋㅋㅋㅋ 성군 ㅋㅋㅋㅋ 비웃음 말고 뭐가 필요할지.

2015년이면 갓직히 인간이란게 대가리를 달고만 있어도 박근혜가 이미 병신인 걸, 최소한 아 이건 쫌금 아닌데... 하는 걸 깨닫고도 남았을 시점인데 저 지랄하고 자빠졌다. 조선일보 진짜 이 쓰레기들 어찌해야하냐.

참고로 청오의 함자는 지창룡이다. 조선일보놈들이 오타낸 것.

사실 이 포스팅을 하게 된 것은 간만에 킹무갓키에서 시흥시 항목을 보는데 시흥시 지역 출신 인물중에 청오 지창룡 선생이 있어서 그 양반에 대해 검색하다가, 바로 위에 인용한 저 성군드립의 쏘오스가 된 예언을 검색하다가 들어오게 된 것. 사스가 하이퍼링크...


각설하고

당연히 2017년 시점에서 박근혜가 쫓겨나는 바람에 이제 다음에 올 성군만 남게 되었고, 지창룡 선생의 예언을 접한 문베... 아니 문꿀오소리 분들께서는 문재인이 그 성군이 될 것이라고 신나하고 있다. 불과 2년전에는 조선일보가 박근혜를 갖고 했던 이야기였는데... 세상이 뒤바뀐다는게 무릇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솔까 이죽거리는 댓글달고 싶어서 조선일보 로그인하기 위해 가입할 뻔 했다. 그런 더러운 데에 차마 가입할 수야 없어서 관뒀지만.


오늘 인용한 이야기의 최초출처가 조선일보인지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아마 웹에 투고되기로는 거으 최초의 글이었지 않나 싶은디... 이제와서 이런 식으로 씹히리라곤 그 당시엔 생각도 못했겠지. 조선일보 쓰레기들이 최순실을 몰랐을리는 없다. 당연히 알았을거다. 김어준 같은 머저리도 아는데, 조선일보가 모르면 나가 죽어야지. 그러나, 2015년 시점에선 그 잡것 때문에 박근혜가 이 꼴이 되리라곤 생각도 안했던거겠지. 정말로 덮을 수 있을줄 알았고, 정말로 정권 재창출해서 '빨갱이' 놈들을 영원히 묻어버릴 줄 알았겠지. 세상이 그렇게 우스워보이더냐? 지들같은 쓰레기들이 천년만년 떵떵거릴 정도로 세상에 도리가 없지 않음이야 그런 얄팍하기 한량없는 쓰레기들이 알 수 있을리가 있겠나.


자기들이 이긴 줄 알고 썼던 글이 이렇게 고스란히 자기들 꼬라지를 우습게 만드는 글이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을 게다. 저런 사례들을 조사해서 글을 쓸만큼 똑똑이야 했겠지만, 앞날이, 불과 1년여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가늠조차 못했대서는 그야말로 헛똑똑 그 자체라고 할 수 밖에. 새삼 통쾌한 기분이 들어 글 한번 올려 봤다.


올해 5월 24일에는 정말 재규어장군님 묘소에 참배한번 하러 가야겠다.

장군님... 그립습니다...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http://sports.chosun.com/news/news.htm?id=201103250100231510015651&ServiceDate=20110324


이호준과 최동수를 착각한 류중일 감독


벌써 6년이나 지난 기사를 올린 이유는, 최동수 영감이 은퇴한지 꽤 되어서 이제는 운위하는 사람이 벨루 없어져서 그런 것. 야구계에서 이 둘은 닮은 꼴로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다


http://mlbpark.donga.com/mlbpark/b.php?&b=bullpen&id=930126


이호준 딸도 헷갈린다는 영혼의 동반자 이호준-최동수.jpg



구구하게 나가 쓸거 없이 이호준 최동수로 검색해보믄 줄줄이 나온다.



뭐 완전 똑같다, 수준까진 아니긴 허지만, 솔까 지난번의 권정생 최문순보단 쫌 덜 닮은 거 같긴 하지만 이 정도믄 90%는 닮았다고 혀도 될 덧.


이 블로그는 기본적으로 나으 창작이 전혀 없는 포스팅은 가급적 올리지 않는다. 뭐라도 나가 얹은 게 있어야 쓰고, 그러다봉께 그게 쫌 스트레스가 되어 요즘은 잘 안쓰긴 하다만... 쓸 거리는 계속 쌓아놓고 있응께 언젠간 쓰겄제.

나으 창작이 읎는데도 쓴건 우리 호부지가 오늘 씨이즌 최종 홈경기에서 공식 은퇴식을 가졌기 때문. 닮은 꼴 글임에도, 유우모아 커티거뤼가 아니라, 인물 커티거뤼인 긋도 호부지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여서. 여전히 로또포를 터뜨려주고 있으시기 땀시 포스트씨이즌에도 선발 대타 가리지 않고 나가시기야 하겠지만, 하여튼 야구슨슈로서 공식적으로 이제 그만둡니다아~ 하는 선언은 오늘 한 것. 호부지가 있는 팀중 응원한 것은 해태뿐인데, 해태시절 호부지는 그냥 별 활약읎는 유망주였던지라, 90년대 말 여러 이유로 해태에 대한 애정이 끊길 무렵까지는 딱히 호부지를 응원할 꺼리가 읎었다. 쇀시절에도 딱히 뭐... 근데 호부지가 신생팀 엔씨로 오믄서 인격적으로나 리더쉽으로나 기량으로나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믄서 호감이 상당히 올랐달까나. 그랴서 오늘 은퇴하신다니 뭔가 오랜 세월 무탈히 잘 보내신 데 대해 흐뭇하믄서도 섭섭한 기분도 있고 그렇다. 엄청 리스펙트한 슨슈까진 아니지만, 그랴도 뭔가 짠~ 하게 만드는 느낌.


글구 사실 이 드립을 치고 싶어서

이호준의 별명은 호부지다. 쇀시절까지는 뭔가 좀 골때리는 이미지였는디 엔씨오믄서 리더쉽은 물론 선수단 분위기를 챙기고 듬직하게 이끄는 모습이 아부지 같아서 이호준 + 아부지 해서 호부지가 된 것. 응원가도 아빠의 청춘. 근데 오늘 경기에


진짜 아부지가 오셨다. 호부지의 아부지니까 호부지부지인가요? 홍낄낄. 이걸로 창작내용 채웠다 듀후후


은퇴식 풀영상을 다 본건 아니지만, 아마 은퇴식에 최동수는 오지 않았던 거 같다. 왔더라믄 또한 멋졌을 거 같은디. 쫌금 아쉬움. 마 기획이란 게 그리 쉬운 거이가 아니긴 하다만서두.


하튼 호부지 그 동안 수고 많으셨구, 올해 엔씨발 팀 꼬라지 응망진창이지만, 멱살잡고 하드캐리해서, 마지막 씨이즌에 기적같은 우승 한번 부탁드립니다. 우리 민우도 마지막까정 잘 좀 챙겨주시구용 하앍~


호부지와 함께 투샷~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http://news.joins.com/article/21966134


홍준표 "적폐세력 대표는 왜 부르나"…靑회동 거부


마 니 모래시계 금사 들어는 봤나?


이 양반도 한국정계 대표 저격수 출신이다보니 워딩이 만만치가 않음. 내용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가능한한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언어표현을 공개석상에서 물의가 빚어지는 한계치까지 밀어붙여 하는 데에 당할 자가 없는거 같다.


그러나, 항상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는 법


http://v.media.daum.net/v/20170926110550096


박지원 "靑회동 불참 洪, 스스로 적폐세력 인정..참 이상한 분"




모래시계 검사? 그 정도야 미주 한인회장 선에서 정리해주지 ㄲㄲ~


이빨로는 죽어도 안 지는 양반 그 자체...


여기서 길티플레저 원칙에 대해 말을 좀 해둬야 할 게... 나 이 양반 진짜 좋아한다. 솔까 지금 처지가 궁해져서 그렇지, 적어도 능력면에서 이 양반보다 뛰어난 정치인은 현재 한국에 없고, 넷상에서는 우익한테는 빨갱이라 욕먹고, 진보파한테는 호남적폐라고 욕먹는 사람이지만, 난 이 양반의 정치적 지향의 타당성을 인정하기에, 진심으로 좋아한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나 자신은 무족권 자극적이고 웃기기만 하면 어지간해서는 다 좋아하는 사람이다. 홍준표도 정치적으로는 완전 나와 반대쪽에 있는 사람이지만, 저 아조시 웃기고 대굴빡 상당히 잘 굴리는 지라 그건 평가하는 편임. 저 박지원에 대한 별명중 최악중의 최악이라 할 만한 것이라면 디씨발인지 일베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가 한 눈이 없어서 그 자리에 의안을 넣고 다니는 것에 기인해 붙여진 별명인


개눈깔


이 될 것이다. 으으... 사석이나 디씨가 아니라 공개석상에 이 별명을 쓰는 것만으로도 섬찟하다... 그렇지만, 나는 이 별명으로 부른다. 박지원을 좋아함은 이미 말한 바인데... 저 별명에서 내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이유는 거기에 담긴 엄청난 악의 때문이다. 박지원이란 인물이 얼마나 맘에 안 들고 심적으로 극심한 증오가 들면 저런 인륜을 저버리다시피하는 별명을 다 갖다 붙였을까. 저렇게까지 강한 증오를 받는다는 것은, 상대편 입장에서 혐오감이 쌓일만한 일이 엄청나게 많았다는 것 이다. 즉, 그만큼 많은 일을 지속적으로 해냈다는 것이고, 그 만큼 지속적으로 중요한 지위에서 성과를 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내가 진심으로 혐오하는 정치인 중 하나가 김진태인데, 이 양반은 박근혜 정권 말기와 박근혜 탄핵 시기 잠깐 빤짝하고 지금 꺼져서 운위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네이버는 장악됐다의 진성호라던가, 박근혜 정권 초를 장악한 윤그랩 이런 사람들 누가 언급이나 하는가? 그러나, 개눈깔 장군님은 1990년대 슨상님의 오른팔로 등장한 이래, 근 사반세기를 이빨털기 하나로 천하를 주유하시는 몸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큰 성과가 적들에게는 엄청난 증오심과 반감을 유발한 것이고, 그것이 장애인에 대한 심각한 비하인 개눈깔이라는 별칭으로 나온 것이라는 거다. 게다가 하여튼 자극적이고 어감 쎄지 않나. 개눈깔.

개인적으로는 개눈깔 장군님이란 칭호를 쓰기 전에 척안의 효장이라는 별명을 붙였던 적이 있다. 외눈하고는 쫌금 다르긴 하지만, 하튼 간지나는 칭호라고 생각한다. 개눈깔 장군님이란 별칭을 썼다간 인격적으로 말살될 거 같은 자리에선 저 별칭을 쓴다. 만약 이 블로그가 사람이 많아지기라도 했다간 쓰지 못할 별명이겠지... 그럴 일은 없을거 같으니, 진심으로 경의를 담아, 그에 대한 악의들을 조롱하는 의도에서 개눈깔 장군님이라 칭한다.


길티 플레저란게 이렇게 힘들다...--


각설하고,

아카준표(베니준표가 차라리 더 낫긋지만, 어감상 아카준표가 좋아서 씀. 적준표?)도 만만치 않은 인물이다. 아니, 적어도 기량으로는 21세기 정치권에서 손 꼽을 인물이라 평가헌다. 모래시계 검사에, 원조 저격수 타이틀은 고스돕쳐서 딴게 아니니껜. 정치를 계보에 의거해 하기보다, 자기 정치를 하다보니 계파 세력을 몬 만들고 겉돌았는데, 파쿠쿠네(パククネ 박근혜를 일어로 파쿠쿠네라 표현한다... 일본어는 위대하다...)가 자기만 망한 게 아니라, 그 동안 그쪽 진영에서 이루어져온 정치적 구조와 계보를 통째로 끌어안고 망하는 바람에 아카준표보다 앞줄에 서 있던 사람들 죄 날아가고 보수 잔당으 필두에 서게 된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새옹지마라기엔 본인 입장에선 꽤나 난처한 새옹지마랄까나. 그의 정치가 순탄치 않은 것은 팔자이기라도 헌 건지, 초선이 된 다음해에 슨상님이 당선되믄서 정권교체가 뒤야부렀다. 졸지에 야당의원행. 그 와중에 저격수로서 정권교체 전, 야당당수일 때도 엄청 까댔지만, 정권 교체후에도 슨상님에게 극딜넣으면서 이름을 날린 게 그의 정치 시작이다.


그런 고로 일각에서는 원조 저격수라고 그를 부르는 데, 사실 진짜 원조 저격수가 바로 개눈깔 장군님이다. 괜히 한 수위이신게 아니다. 새정치 국민회의 시절부터 원내대변인 원내대표등을 하믄서, 지금은 망가지고 사라졌지만, 당시에는 명 대변인이라 일컬어졌던 박희태 원 국회의장과 합을 겨루기도 혔었다. 이 때도 주옥같은(싫어하는 양반들은 빨리 발음하시라) 드립들을 날리믄서 저격수가 저격을 기관총 쏘듯이 하셨던 분이시다. 단지 꼬꼬마시절이라 디테일은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냥 와 쩐다, 혔던 기억만 남. 나가 정치를 갓 보기 시작하던 무렵에 화려한 족적을 남겼던지라 인상깊게 남아 있달까나.


어찌보믄 그랴도 세상이 정직허다믄 정직헌 게, 진짜로 능력과 기량이 있는 인물들이 오래 무대에 남어서 활동한다는 점에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직이란 말이 엄한 데 끌려와 고생헌다 고 허겠지만 솔까 이 두 사람, 해 놓은 말만 보면 지옥에 떨어져도 할 말이 없는 쓰레기들이긴 허지만, 정작 치명적인 법적 정치적 문제를 일으키진 않은지라, 둘 다 사반세기 가까운 정치활동을 하믄서 아직도 활발히 무대에 나서고 있는걸 보믄. 물론, 아카준표나 개눈깔 장군님을, 정치 관계자나 연구자가 아닌, 대중들 중에서 높게 평가허는 사람은 벨루 읎을 거라 본다. 특히나, 반대진영이라면 말할 것두 읎구. 그러나, 이 두 사람은 한국 현대정치에서 가장 능력과 재주, 재주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거 같은디, 재주가 높은 사람들이다. 물론 개눈깔 장군님이 한수 위지만.


솔까 저 양반을 이빨로 이길 사람이 있을까? 나두 일반인 레벨에선 한 이빨 한다고 자처하는 편이긴 헌디, 한번 개눈깔 장군님과 각잡고 이빨로 함 붙어보고 싶다. 초고수와 스파링하는 것 그 자체일텡게. 당연히 줘팸 당하긋지만, 저런 고수에게 사사를 받을 기회를 갖는다는 자체가 영광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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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승근 강홍 원 내각총리대신의 재위당시 사진


아무래도 이거 저거 쓰다보니, 이 블로그는 일본관련 컨텐츠가 중심이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 일본에 대해 경멸 혐오와 애정 애착이라는 양가감정을 갖고 있는디, 그 양측 감정이 모두 강렬하다보니 결과적으로 일본관련 정보나 자료에 대해 많이 들여다보게 되고, 그 자체가 무척이나 오모시로이 하다봉께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 것. 글구 그러다보니 결국 좋게좋게 말하게 되는 경우가 아무래도 많을테구. 물론, 저번 논할 도리가 없습니다 같은 경우는 까기도 했다만. 데헷~


각설하고

나카소네 야스히로 내각총리대신이 나에게 임팩트가 강한건 아무래도 나가 처음으로 들어본 일본으 내각총리대신이어서 그렇다. 82년부터 87년까지 재위혔는디, 이 시기 나는 6살~ 11살이니... 몇살때 처음 들었는지까정은 기억 안 나지만, 아무래도 6살보다는 11살에 더 가까웠겄... 이라 하려다 또 생각해보니 울산 살 때 처음 들었던 거 같은 기억이 난다. 울산에 85년까지 살았으니 그 이전이믄 6살에 더 가까울지도. 처... 천재소년...!!!


다른 양반은 일어 발음으로 부르는 게 더 편한데, 이 양반은 한국 발음으로 부르는 게 더 좋다. 어감 좋지 않나? 중승근 총리대신 중승근 강홍 총리대신.

이 양반은 사실 한국입장에서 달가운 사람은 아니다. 일본 현실정치에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명백한 우경화의 분명한 시발점은 이 양반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역사교과서를 "왜곡" 하는거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80년대를 살았다면, 그 상징적 문구가


대륙 침략을 삭제하고 그것을 대륙 진출로 대체


했다는 내용일 것이다. 이게 중승근 총리대신 시절에 이뤄진 일이다. 물론, 당시만해도 일본 우파가 그렇게까지 막나가던 시절이 아니라 근린제국조항이라고 혀서 주변국을 배려한다, 이런 것을 넣었다고는 허는디 미봉책인지 어떤지 지금도 있는지 어떤지까지는 찾아보기 귀찮다. 80년대 초가 참 암울한 시기였던게, 미국에선 레이건 같은 개쓰레기가 영국에선 쌭처같은 개썅년이 한국에선 전두환같은 인간도 아닌게 지도자가 되는 와중에 일본에선 또 중승근 총리대신이... 전 세계가 우경화으 길로 들어서기 시작한 암울한 시기였달까나. 등소평은 훌륭한 지도자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파적 방향으로 전환한 양반이니 이 양반도 우경화?


각설하고, 나가 블로그를 실질적으로 시작하믄서 처음으로 올린 포스팅은 하타 쓰토무 원 내각총리대신 사거와 관련된 소식이었다.

http://angelusnobus.tistory.com/73

문득 그 항목을 보다가 다른 원 내각총리대신들은 우째 되었나, 궁금해져서 대충 찾아보니


다케시타 노보루 내각총리대신 사거

하시모토 류타로 내각총리대신 사거

오부치 게이조 내각총리대신 사거는 재직중이었으니 워낙 유명해서 알 사람은 다 알고

가이후 도시키 내각총리대신 사거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총리대신 사거


나가 기억하는 이름들으 상당수가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얼굴들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살아있는, 20세기으 내각총리대신중에 대표적인 인물이라믄 무라야마 도미이치 호소카와 모리히로와 함께 중승근 총리대신이 대표적일게다. 아니 이 셋 뿐이던가.


감상에 젖어 킹무갓키에서 중승근 총리대신 항목을 찬찬히 보는디...


이 항목이 눈에 띄었고, 이걸 테마로 중승근 총리대신에 대한 포스팅이나 해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이 양반 1918년 생이고 아직도 살아있는 정도를 넘어


중승근 강홍 원 내각총리대신 근영2015년 사진인데? 저 양반이 100년을 살았는데 2년 정돈 엊그제지 뭘


말 그대로 백세현역을 실천하고 있으시다. 여전히 일본 보수우익의 존경받는 원로로 대접받고 있는 것. 성향을 떠나 캐릭터로만 본다믄, 장로 대현자 컨셉에 딱 부합하는 살아있는 사례랄까나. 니챤네루 꼬꼬마가 중승근 총리대신을 만나 어질고 현명한 한 말씀 듣고 눈물흘리는 장면이 떠오르는 나는 이제 어엿한 황국신민인데스.


단언컨대 지구에 현재 살아있는 사람중 전현직 여부를 떠나, 가장 먼저 장관자리를 맡아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 사람 아닐까. 테크노크라트들이 고스란히 늙어 제론토크라시가 되는 현상이 심한 일본에서도 단연 초엘리트로서 화려한 커리어를 밟아 온 사람이니 말할 것도 없다. 평가여부를 떠나 저 한 마디는 진짜 포풍간지일거 같긴 허다


내가 처음 장관을 맡았던 건 58년전 일이었지


닷타나...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이 짤보고 눈물이 절로 글썽거리는 나는 노리타다. 솔까 노리타라는 말은 맹목적으로 감독님을 옹호하고 깽판치는 팥팥들에게 하는 말이기에... 감독님 정말 좋아했고 지금와서 안스럽지만, 잘못하신건 잘못하셨다고 생각하는 나같은 사람은 디피니숑한 으미으 노리타는 아니긴 할게다

라고 일단 변명해보고...


86년부터 야구를 보아온 입장에서, 감독님으 진정한 전성기는 요시 쌍방울 시절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김성근이란 인물이 김성근 다웠던 것은 태평양에서으 89년, 쌍방울에서의 나날들, 02년 엘지시절, 스크왕조시절이라고 할 수 있긋다. 개인적으론 요시 2015년 6월까지의 한화시절도 넣고는 싶지만...


그러나 그 중에서도 진정레알킹갓 김성근이 김성근 다웠던건 말할긋도 읎이 쌍방울 시절이다. 아마 올드팬들이라면 이런 이름들듣고 아 그런 인물이 있었지~ 하실텐디


박성기, 박진석, 성영재, 이현승, 김현욱 이런 구질구질한 투수들 데리고 저런 아들을 10승 15승 투수로 만들어가며, 김광림같은 하라보지 불러다 다시 리즈시절 만들어주고 평발 심성보, 퇴물 박노준(팬들껜 미안~ 하지만 난 노리타니까) 데리고 무써~운 팀을 만들었던 그 시절이 진짜 김성근이었다.


인간적으로 문제 있는거, 아니 많은거 맞고, 내로남불도 맞고 말년엔 좋게 말해 바뀐 세상에 적응 못한, 나쁘게 말해 늙은이 맛이 간 것도 맞지만...


구질구질한 내 이야기를 첨언하자면, 나는 게으르고 썩어빠진 정신을 지닌 인간이지만, 굉장히 흥이 강하고 열정이 많은 사람이기두 허다. 다만, 그러한 인간적 요소를 표출할, 사회성을 거으 갖고 태어나지 못혀서 이런 절해고도에 갇혀버렸을 뿐. 그런데, 우리 감독님은 아마... 나가 아는 한 야구계에서, 아니 인간계에서도 가장 열정이 강한 사람중 하나일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일단 그가 단순히 열정만 있는 사람이라서는 아니고, 2015년 하반기 전까지는 신화적 커리어를 써가던 사람이라서기도 하겠지만... - 애초에 인간사에 이유가 하나인 일이 어딨냐??? - 갓직히 이 글 쓰기전까지 나는 왜 감독님을 보면 그리워지는가, 하는데 대해 구체적 이유를 생각혀보진 않었는디, 지금 이 글을 쓰믄서 생각해봉께, 그으 열정에 끌렸던거 같다. 그가 벌인 수많은 쓰레기짓도 열정이 과해서, 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씰드치는건 아니고, 열정이 넘치지만 쓰레기짓 안하는 사람도 많으니 정당화하는 것도 아니다만.


하튼 그립습니다... 감독님...


계속 그리웠지만... 감독님 다음으로 야구계에서 젛아하는(울 민우는 야구인으로서가 아닌 이유로 좋아하는 부분이 크니깐~~♥) 그러나 요즘은 보기 힘들어진 부라미가 그린 위으 한 컷을 보고 증말 눈물이 왈칵 날라 그래서 이 포스팅을 혔다... 부람갑... 솔까 나도 게으르고 꾸준하지 못항께, 그가 꾸준하지 못하고, 뭔가 되는대로 살아가는 것같은 모습을 뭐라 할 자격도 없고 뭐라 할 생각도 없고 오히려 감정이입도 되고 안타깝고 그렇지만, 부라미가 힘내서 좋은 만화 많이 그려줬음 좋겠다 하는 생각도 들구... 글구, 마 원래 까가 10개 군단은 되지만 빠도 10개 사단은 되는 감독님잉께, 부라미가 감독님을 좋게 그려주는 것이 새삼스럽진 않지만, 윗 짤 처럼 느므느므 멋지게, 김성근이란 인간의 한국 프로야구 인으로서의 삶을 그 자체 그대로! 라는 느낌으로 그려준 것이 느므느므 고맙고도 감사스럽고 그래서, 하는게 이 포스팅이기두 허다.


감독님두 부라미두 하는 일 잘 되고 행복하셨으믄. 솔까 상상력이 부족해서, 누구 응원할 때는 이 말말고 뭔 말을 혀야헐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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