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지도자는 담배도 간지나게 태우신다

언젠가는 안 그랬던 적도 있었던 거 같지만, 잠깐잠깐을 빼면 언제나 인생은 환멸으로 가득찬 것이라, 한동안 글 쓰는 것두 집어쳤는디, 그랴두 버려두다 시피 헌 블로그에 간간이 댓글이 있곤 허는거 보니 참 신기허기두 허구, 나란 인간이 그랴두 할 수 있는거라고는 글 쓰는 거 뿐인지라, 그 동안 생각해 온 간단한 생각 짧게 남겨둬볼 으욕이 생겨부럿다. 말 나온김으 이야긴디, 나으 글쓰기는 지나치게 번잡하고 간결함이 떨어지는지라, 그런 부분을 좀 유의혀야 것다구 생각은 혀 왔는디, 이번에 함 그런 관점에서 써 보자.

 

각설하고

위 사진이 요시프 브로즈 인 것이야 알 사람은 알테지만, 대부분은 티토라고 해도 모르것제. 이제는 티토슨상님도 잊혀진 사람이라... 인물은 오지만 언젠가 가는 것이구 역사는 흘러 그를 기억에서 지우는디, 오늘 글은 그와 관련하여 비범함과 범속함의 미묘한 관계에 대해 든 생각을 써 볼라 칸다.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위으 사진은 두 위대함의 만남인디, 발칸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티토동지야 발칸에서 가장 위대한 동지고... 솔까 저 시대가 미쳐 돌아가는 시대라 가장 위대한 지도자 스탈린 동지, 두 번째로 위대한 지도자 드 골 동지만 아니었어두, 발칸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라는 칭호에서 '발칸에서' 는 떼고도 남을 위대한 지도자가 티토동지이시다. 그에 대해서두 이래저래 할 말이 많지만, 오늘의 컨셉은

 

간 결 함

 

이니까. 시작부터 틀려먹은거 같긴 허다만 ㅋ. 티토동지께서는 본인 스스로의 위대한 정치지도력뿐 아니라, 굉장히 선진적이시게도 언플과 이미지의 중요성을 잘 알고 활용허신 분인디, 발칸 산속에서 겔릴라 투쟁을 하는 와중에도 서방언론을 통해 언플을 끊임읎이 혔구(이 과정에서 알려진 유명한 프로파간다가, 티토의 겔릴라가 발칸에서 독일군 30만을 붙잡아두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는 7만이었고, 가장 위대한 지도자 답게 스탈린 동지께서는 실제 수치를 알고 계셨다) 심지어 어느 자리인지 기억은 안 나는디, 서방대표와 접견하는 자리에서 파격적이게도 빽구두에 올빽양복을 입고 나가는 미친쏀쓰를 통해 서방오피니언리더들에게 신선한 썈크를 줬던 일이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형성한 이미지는 대동아전쟁 유럽전역기간 내내 잘 써묵기두 혔구, 대전후 유고가 서방과 스탈린 동지 사이에서 줄타기 허는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잘 써먹기두 혔구. 단지 이게 정치적 이미지 뿐만이 아니라, 본인 자체가 상당한 호사가이믄서 세상의 좋은 것을 즐길줄 아는 사람이었고 꾸미고 멋내는데도 관심이 많았다구 헌다. 빽구두에 빽양복같은 미친쏀쓰는 아무나 생각하는게 아니다. 그런 점에서도 위대한 지도자 이 전에 위대한 인간이라 저 양반을 극호한다. 내가 한 사람의 삶을 골라서 살 수 있다믄 외모문제를 빼고 본다면 당연히 티토 아닐까. 물론 티토의 외모도 출중허긴 허다만 내 타입은 아니니께 ㅎ

 

유서프 카쉬라는 또한 위대한 인물사진가가 있다. 앞의 글에서도 소개헌 적이 있는거 같은디

처칠은 찐따니까 좀 작은 사진으로

이 사진으로 유명한.

그의 사진은 인물의 본질의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을 잘 드러내기로 정평이 나 있는디, 맨 우으 사진도 카쉬가 찍은 것이다. 원래도 명성높은 사진가였지만(애초에 그러니까, 처칠의 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인 사진을 찍을 사진가로 발탁이 뒤얐었겠지?) 처칠의 저 사진을 찍은 이후로 전 세계적 명성을 읃게 뒤얐고, 호사에 환장한 티토동지께서는 그러한 카쉬를 초청해다가 맨 위으 저 사진 말고도 자신의 인물사진을 여러장 찍게 하셨다. 유서프 카쉬 티토로 검색하믄 다른 사진들도 볼 수 있다. 갠적으로는 맨 위으 사진을 좋아혀서 저 걸 이미지 샷으로 박았다만. 위대한 인물은 위대한 인물을 알아보고 어울린다, 라는 면에서 윗 사진은 위대함과 위대함의 만남이랄까나. 처칠같은 개밥의 도토리는 좀 거슬린다만 ㅋ

 

각설하고,

사실 티토동지의 위대함에서부터 오늘 글의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발칸, 특히 남슬라브인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구구하게 말할거 없이 그냥 개판이다. 수 많은 나라와 부족으로 갈라져 지리멸렬허다가, 오스만제국한테 수백년간 지배받으믄서 종교적으로도 뿔뿔이 흩어졌고, 근대에 들어 민족주의의 폭풍이 몰아닥쳤을 때, 당연히 이 갈라진 부족 나뉘어진 종교는 고스란히 아이덴티티간으 갈등으로 이어졌고, 그 와중에 오스트레일리아 황태자가 암살당하고 전쟁이 나고 전쟁(1차대전)의 결과로 억지로 한 나라로 만들어졌다가, 다음 전쟁(대동아전쟁 유럽전역)와중에 또 쪼개져서 서로 수십만씩 학살하고 난리가 나 부런 역사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유고내전이란 이름으로 또 수십만명씩 서로 죽이고 학살하고 난리가 나 부럿다가, 이제와서야 싸우다 지쳐 평화가 찾아와 그럭저럭 살고 있는 동네가 남슬라브인의 땅 유고슬라비이다.

 

슬라브인은 러시아로 대변되는 동슬라브인, 체코 폴란드로 대표되는 서슬라브인이 이름이 있구, 오스트레일리아 남부 그리스 북부의 지역에 모여살던 남슬라브인이란 분파는 좀 이름값이 읎다. 그나마, 세계적 제국이 된 동슬라브인, 뚜렷한 민족적 정체성을 수립허구 들으면 이름을 아는 나라인 체코 폴란드 등으로 발전한 서슬라브인과 달리,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몬테네그로,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등 이름을 월드컵 4강때문에 좀 이름이 있을 크로아티아 말고는 사회과부도족 이외에는 들어도 못 봤을, 그나마도 크지도 않은 나라인 한국의 1개 도 만도 못한 크기와 인구의 나라들로 갈갈이 쪼개지는 바람에 안 그래도 존재감이 없는게, 남슬라브인의 안타까운 현실이라 허것다.

 

간단히 말허려구 혔는디, 워낙 역사가 구구허다봉께 말이 길어지네. 남슬라브인으 아이덴티티는 좀 복합적으로 미묘한 면이 있다. 남슬라브인이라는 큰 아이덴티티가 읎는건 아닌디,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세르비아 인헌티 니들은 같은 민족이야~ 허믄 나가 저놈들하고 같은 민족이라고라? 허믄서 붕쯔붕쯔하는 부분도 있다는거. 그리고, 그로 인해 크게 두 번의 상호간의 대 학살전을 치렀는디, 한번은 2차대전 시기의 상호학살이고, 다른 한 번은 유고내전 시기의 대학살이다.

 

그리고 그 중간에, 그 동네가 평화로웠던 시절이 바로 티토동지가 영도하던 시기이다.

티토본인은 크로에이셔인 애비(웃긴게 애비이름은 그의 성과를 엎은 프라뇨이다 ㅋㅋ)와 슬로베니아인 애미 사이에 태어났는디, 한국어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자료(킹무갓키...)로서는 그의 아이덴티티가 무엇이었는지 뚜렷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아마 크로에이셔에 가깝지 않았을까. 슬로베니아는 마치 저 북방의 에스토니아가 발트인의 혈통이믄서도 우리는 노르딕이랑께요~ 하는거랑 비슷허게, 우리는 캐쏠릭 서유럽이오~ 하는 느낌이 있어서 아이덴티티가 좀 흐린지라.

티토의 영웅적 겔릴라 활동기야 화려한 총알이 나의 좆까는 시기긴 허다만 이 글으 주제는 아니니 알어서들 찾아보시구, 그렇게 허여 승리한 티토는 개별부족주의를 지양하고 남슬라브인이라는 큰 정체성을 세우는데 주력혔다. 물론, 바로 전까지 서로 수십만명씩 죽여대던 크로아티아인과 세르비아인은 물론이고, 아예 종교가 다른 보스니아인이나 슬로베니아인, 한술 더 떠 혈통조차 다른 불가리아계(오늘날의 마케도니아인)까지 그게 쉽게 될 일이 아니었다만, 철저하고도 정교한 민족평등정책, 민족간 화합정책으로 티토 유고슬라비아 시기의 유고는 민족간 문제가 '거의' 불거지지 않았고, 서로간에 잘 어울려서 잘 지냈으며, 쏘오련의 위성국도 아니어서 유연한 외교 정치적 입지로 나라 자체가 상당히 살만혔다. 티토 본인이 기린아라, 소시적부터 지도자활동을 혔구, 1945년에 집권하고서도 아직 젊었던지라, 그 뒤로 35년을 더 살믄서 1980년까지 티토의 영도하에 안정된 시기를 보낼 수 있었고, 티토가 죽고서도 10년간은 그 체제는 안정적으로 돌아갔다.

 

위에 '거의' 라고 표현헌 이유는 완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마참내 등장허는게, 글의 제목인 프라뇨 투지만이다.

 

세르비아 놈들 까불믄 날려버리겠어

 

티토의 민족정책은 안 그래도 바로 그 민족주의적 충동의 과잉이 세계를 불태웠던 2차대전 직후의 분위기에서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고, 그래서 제대로 먹혀들어갈 수 있었지만, 애초에 그러한 과잉이 어디서 오겠는가? 민족주의 자체가 강렬한 정서적 충동에 기반하기 때문인기라. 그리고, 대~~ 주의 이런 것도 안 먹히는 구호는 아니다만, 애초에 민족주의는 기본적으로 순수성 배제성을 빼고는 이야기헐 수가 없는기다. 거기에, 앞서도 말혔듯이, 애초부터 상호학살의 두 축인, 캐솔릭을 믿는 크로에이셔인과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인이 같은 민족이라구 허믄 ??? 이 나올 수 밖에. 심지어 아예 머슬림인 보스니아인까지 나오믄 말 다했다.

 

그런고로 티토집권기간에도 중반기부터는 슬슬 저러한 소민족주의들이 대두허기 시작혔구, 그 와중에 가장 두드러지는 인물중 하나가 크로아티아 소 민족주의의 주도자인 프라뇨 투지만이다. 당연히 티토의 정치노선이 남슬라브인의 통합을 강조허는 것인디, 그에 대놓고 반항하는 자는 당연히 정치범이었고, 티토시기 투지만은 상당한 탄압을 받어야 혔다. 그리고, 그런 티토가 죽었다. 남슬라브인의 통합이라는 이상은 존재하기는 허지만, 막연한 것이었고, 현실의 유고슬라비아에서 그 통합의 명백한 구심점이자 근원은 티토의 리더쉽이었는데, 그게 사라진 것. 티토 사후에도, 연방을 이루는 6개공화국은 연방대통령을 순회배출하여 연방을 유지허믄서 각 공화국의 독자성과 자치는 존중하는 형태로 큰 탈없이 이어져나갈수는 있었다. 그러나, 이제 대놓고 투지만이나, 세르비아의 밀로셰비치 같은 인간을 억누를 존재는 없어졌고, 이제 유고연방에서는 슬슬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공산권 붕괴로 인해 당연히 유고에서도 공산정권은 무너졌고, 그를 대체할 정치적 리더쉽을 둘러싸고 본격적인 갈등이 벌어지기 시작혔다. 구 유고의 지도를 보믄 알겠지만 여러 나라가 있는데 그 중에서 비교적 큰 나라는 서북의 크로아티아, 중부의 보스니아, 동남의 세르비아 세 나라이다. 이 중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강국이었고, 독자적 국가로서의 역사도 제일 탄탄한 것은 수도인 베오그라드가 있는 세르비아이고, 헝가리 오스트레일리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상당부분 서방화된 크로아티아, 오스만 지배시기 무슬림화된 보스니아가 그 뒤를 따른다. 위치로 보나 종교로 보나 유고내전 시기에 가장 큰 전장이 되고 가장 큰 피해를 보스니아가 볼 수 밖에 없었달까나.

 

이 세 나라를 이끄는 세 사람 - 크로아티아의 프라뇨 투지만, 보스니아의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유고내전의 주역(+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 반군의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인데, 이 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이름이 난 것은 보스니아전쟁의 핵심인물이자, 보스니아에서의 학살의 책임도 가장 큰 밀로셰비치(사실 좀 억을은 헌기,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의 수장인 라도반 카라지치가 진짜 당사자이며 그나마 밀로셰비치는 작작 좀 하라는 입장이었다. 카라지치가 안 들어먹고, 밀로셰비치도 결국 그럼에도 지원을 이어가는 바람에 전범혐의를 벗어날 수는 읎었지만)이긴 허다만, 일찍부터 민족주의의 폭풍을 예견하고 예언한 '선지자'는 프라뇨 투지만이었다. 이 양반은 티토밑에서 겔릴라 활동을 하고 군인으로서의 커리어가 가장 크긴 허다만, 대전후 역사학을 박사학위를 딸 때까지 공부(부럽다!)혔구, 그런 학술활동중에, 크로에이셔 민족주의에 경도된 사람이기에, 이론적 인식적 기반이 가장 강했다고 헐 수 있것다. 역사연구란기 민족성과 떨어질 수 있는게 아니고 그에 대한 이해가 가장 깊을 수 밖에 없는 영역인지라, 역사 혔다는 사람이 민족에 경도되기루 맘 먹었다믄 누가 막을 수 있는기 아니다. 물론 대개는 학술활동을 거치믄서 객관화 훈련을 받는지라, 거리를 두게 되지만, 그러다가 흑화되믄 못 막는다는 이야기. 투지만도 그렇고 떡사마(이덕일)도 그렇고... 유고내전도 직접적 계기는 크로아티아의 유고연방에서의 탈퇴시도였기두 헌지라, 시발점이 된 것은 맞다만, 그것이 참혹한 내전과 끔찍한 학살로 이어진건 탈퇴시도 자체때문은 아니기두 헌지라, 유고내전의 아사리판에 이 사람의 책임이 크다고는 하지만, 그의 행동이 문제는 있었어도 범죄가 되진 않았기에,(물론 크로아티아도 보스니아에서 여러 비인도적 행위를 벌였고 그 책임은 분명히 투지만에게 닿는다. 다만 그게 국제정치문제로 비화되진 않았다는 이야기) 이 양반은 신생 크로아티아의 지도자가 되어 '독립전쟁' 도 이끌어 성공시키고 독립국가의 지도자도 허믄서 전쟁범죄자가 되어 빵에서 뒈진 밀로셰비치와 달리,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었다.

 

남슬라브인이라는 존재의 역사속에서 통합과 분열의 흐름은 부침을 거듭혔다. 아마 여러 역사 정치적 이유로, 앞으로는 이러한 형태으 민족적 갈등이 큰 동란을 불러올 가능성은, 어느정도 안정화된 사회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구, 남슬라브인들도 이제는 산하 소민족들 각자가 자신의 길을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평화롭게 갈라선 체코와 슬로바키아도 다시 합칠일은 읎어보이는디, 서로 저런 끔찍한 꼴을 보고 갈라진 그들이 다시 합치려는 시도를 할 일은 더더욱 읎을 것이다. 결국 대 남슬라브주의(라고 일단 이름 붙인다믄)와 소 남슬라브주의의 수백... 이라긴 좀 그렇고 백수십년간의 갈등은 소 남슬라브주의의 역사적 승리로 끝났다고 봐야할까? 그렇게 본다믄 요시프 브로즈 티토는 역사의 패배자이고, 프라뇨 투지만은 역사의 승자인 것일까? 이상과 현실의 갈등이란 형태로 단순화 도식화하는거 좋아허지는 않는다만, 서로간의 차이를 넘어 화합하자, 라는 건 아무래도 이상에 가까울 것이고 너와 나는 다르니 각자 갈길 가자, 라는 쪽은 아무래도 현실에 가까다고 할 수는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남슬라브주의에 있어서 이건 좀 맥락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남슬라브주의의 시작은 어디까지나 세르비아의 패권주의였기 때문이다. 상술한 바, 슬로베니아나 크로아티아는 일찌기 오스트레일리아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 꽤 서방화 되었고, 그 아래쪽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거의 4백년이나 받었는디, 19세기에 들어 민족주의의 폭풍이 불믄서 남슬라브 여러 나라가 독자적으로 독립하믄서, 원래 가장 강했고, 오스만제국과의 코소보 전투에서 장렬하게 패배하여 멸망했던 기억이 있는 세르비아가 가장 강하게 민족국가로서 발전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각자 다른 역사적 경로가, 상술한대로 남슬라브라는 정체성과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세르비아 등등으 개별정체성이 혼재되는 미묘한 상황을 만들었고, 대개 이런 경우 가장 쎈놈은 패권주의를, 상대적으로 약한쪽은 분열주의... 라고 허믄 왠지 비난 같으니 개별주의를 주창하게 마련이다. 그러한 세르비아 패권주의가 관철된 것도, 세르비아 자신의 성공때문이라기보다는 1차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격동의 과정에서 이뤄진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면이 크다. 그러나 어쨌든 남슬라브주으으 플랫폼으로서 유고슬라비아가 성립은 혔는디, 그 구성원간에 서로 쳐죽여댄다(2차대전)믄 그 상황에서 남슬라브주의를 버릴 것인가, 개별 민족주의를 버릴 것인가? 라는 질문이, 남슬라브인 혹은 슬로베니아인 크로아티아인 보스니아인 세르비아인 몬테네그로인 헤르체고비나인에게 주어진 역사철학적 질문이랄 수 있겠다. 티토가 이 질문을 얼마나 고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위대함을 볼 때 그 양반은 분명히 꽤나 이 문제를 깊이 생각했으리라 확신헌다. 그렇지 않고서야, 유고슬라비아연방의 안정된 정치적 분위기가 단지 그의 강권만으로 이뤄졌을리는 없을테니까. 그러나, 그의 죽음과 그에 이어진 동란속에 남슬라브주의는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졌고, 남슬라브주의라는 낡은 표대를 역사의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것은 프라뇨 투지만+이다. 역사에서의 영웅주의에 대해 미리 이야기를 혀 놓았으믄 좋을텐디, 위대한 지도자 어쩌구 하는 걸 좋아허는 내 스타일상 영웅적 인물에 대한 고평가경향이 있는건 분명허다. 다만 영웅주의 자체는 전혀 긍정하지 않는다. 위대한 인물은 결과적으로 형성되는 것이지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만큼 정치도 다분히 결과로 평가받지 않을 수 없다. 위대한 인물인 티토와 결과를 낸 투지만... 이는 범속한 인물인 투지만이 위대한 인물인 티토를 저버린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위대한 지도자의 성과가 범속한 인물에게 짓밟힌 모양새로 끝난다는 것이 속상해서 끝끝내 이런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부정은 못하긋다. 티토의 뜻을 이을 위대한 지도자가 있었다믄 가능했을까? 그렇다기엔,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라도, 나치독일에 맞서 해방투쟁을 이끈 성과같은 것은 평시에는 내지 못했을거 같긴 하다. 티토가 그 정도의 카리스마가 있으니까, 가능했던 것이라고 헌다믄, 티토 본인의 위대함이 어쨌건간에, 결국 그 또한 역사의 산물인 것... 역사란 게 이래서 참 어렵다...

 

사실 이 글을 쓰믄서 계속 든, 유사허믄서도 다른 결과를 낸 사례들이 떠 올랐다. 인근의 루마니아라던가, 저 멀리 아프리카의 르완다라던가... 그러나, 그 이야기까지 허자믄 이미 간결함 따위 박살나버린 글 더 산만해지니, 그건 다음의 이야기로 미뤄두기로 허구, 오늘은 티토동지를 기리믄서 여기까지 허기루 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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