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27. 12:56 때때로 일어나는 일
대화하는 사람들
지금 전 세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사진이다. 도람푸와 젤렌스키가 교황성하를 보내는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즉석회담을 하는 모습. 나가 다닌 여러 커뮤에서으 반응은 장례식가서 저거 뭐더는 짓이고? ㅋㅋ 남들 다 까만옷 입고왔는데 도람푸 점마 혼자 파란옷 뭐고? ㅋㅋ 이런 수준의 반응이다.
그런 무리들에게는 저 사진을 둘러싼 도람푸의 행태가 이전과 뭔가 다르다는 것이 실로 안 보이는 것이다. 난 저 사진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저 사진을 보고서 다른 의미로 도람푸의 수완을 느꼈으며 진심으로 저 사진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보자. 도람푸라는 인물은 병신이다. 아니, 극중주의적 급진주의로 병신이어왔다고 확 오바해보자. 그럼에도 그 병신이 승리를 해 온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뭐 세계화가 어쩌니 양극화가 어쩌니 극우화가 어쩌니 하는 정치적 조건은 중요하지만 그 이야기하자는 게 아니니 차치하고 도람푸 개인이라는 요소로 포커스를 가져가 보자.
성공한 사업가라는 것만으로는 도람푸에 비해 10배도 넘는 재산을 지닌 블룸버그는 도람푸를 막기 위해 나서겠다고 꺼드럭거렸으나, 칼 레이 해리스 치맛바람 옆에서 꺼드럭 거릴 뿐이었다. 본질적으로 그의 성공의 바탕은 저 사업가라는 베이스위에 더하여, 그런 조건을 성공적으로 미디어에서의 쑈비즈니스로 전환시키는 수완을 갈고 닦은데 있다. 때로는 악덕사업가로 때로는 여유있는 부자이미지로 때로는 코믹하고 우스꽝스러운 졸부로 자유자재로 자신을 이미지지운 그 수완. 그리고, 그러한 이미지전략에서의 수완을 상당부분 고스란히 정치투쟁으로 끌어들여서 사람들을 혹하게 하는데 성공한 것.
사실 이미지를 통해 메시지를 전한다는게, 도람푸만의 일은 아니다. 저런걸 도람푸가 발명했을리가 있나. 가깝게는 오바마, 중간으론 케네디, 멀게는 히틀러까지 이미지를 통해 정치를 하는 것은 사진과 영상의 시대이후로 당연한 것이다. 사실 노무 역겹지만, 더 직접적인 롤모델은 레이건일거고. 언제나 정치는 총력전이고 쓸 수 있는건 전부 다 쓰는게 정치이니. 그러나, 이미지는 기본적으로 정치수완 정치력의 베이스 위에서 행사하는거다. 이미지가 본질이 아니다. 도람푸는 정치수완을 도외시하고 이미지를 본질로 삼는데 가까운 행동을 해 온 것이 차이이다.(사실 히틀러는 어느정도 이에 가깝긴 하다) 그리고 이것이 또한 작용한 부분이, 그의 정치행보는 본질적으로 사람들의 정치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파고드는 것이었고, 기존 정치권의 컨센서스 같은걸 깔아뭉갬으로서, 나는 다르다! 라는 이미지와 그러한 정치불신을 결합시킬 수 있었다.
최근에 웹에서 유행하는 이미지이다. 제대로 논하려면 지지부진하지만, 조카 신발높아~ 하고 넘기면 머리 아프지 않고 후련하고 좋다, 라는, 작금의 반지성주의적 행태에 부합하기도 하고 그걸 조롱하는거기도 한 이미지이다. 도람푸는 제도권에 대해 저걸 진짜로 시전해버렸고, 그로서 성공한 사람이다. 바이든과 도람푸는 그야말로 서로 상성이었던게, 바이든은 그야말로 지루한 제도권의 상징같은 인물이라는 점 때문이다. 여기서도 도람푸의 이미지전략의 강력함이 보이는게, 그는 항상 바이든을 sleepy joe 라고 불렀다. 졸린 조 라는 언명을 통해, 그가 자신이 타기하고자 하는 지루한 기득권 - 미국 정치불신의 마법의 주문과도 같은 워싱턴 정치권이라는 딱지를 붙이는데 완벽히 성공한 것이다. 물론 반대로, 그러한 프로세스는 기존 질서에 대한 존중의 상징과도 같기에, 기존 질서를 무시하고 사회를 위험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도람푸에 대해서도, 기존 질서의 상징 그 자체인 상원의원만 36년을 한 그가 카운터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자체가, 도람푸의 기존질서 VS 그거 흔들기 라는 구도가 성립한 전제의 이야기기 때문에, 지금 시대는 결국 도람푸에게 휘둘리는 시대가 된 것이고.
각설하고
그렇기에 도람푸의 정치는 극히 취약한 제도적 수행능력과 엄청나게 강력하지만 정치프로세스상으로는 터무니없이 과도한 이미지선전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1기때는 그나마 상술한 바의 기존 프로세스들의 저지로 인해 그나마 덜 말아먹었으나, 1기의 [실패] 를 거울삼아 이 악물고 돌아온 2기때는 기존 프로세스의 떠받침이 없으니 지금 이모양 이 꼴이 나고 있는 것이다. 1기때는 기존 프로세스를 이해하면서도 그래도 도람푸를 돕긴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틸러슨 맥매스터 켈리 에스퍼 폼페이오 같은 사람들이 도람푸가 그나마 수용할만한 패들을 쥐어줬기에, 그랴두 도람푸가 국제정치라는 게임의 플레이어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바로나 헤그세스 같은 놈들은 개 좆도 모르는 병신들이기 때문에, 작동가능한 패 자체를 도출해낼 수가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도람푸는 쎄게 나가기만 하고 그게 먹히질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경에 처해있었던 것이다.
저 사진이 나오기 전 까지는
물론, 저 사진은 하나의 신호일 뿐이기에, 진짜로 전환된거라고 확정 절대 못한다. 그러나 말했잖나. 극중주의적 급진성으로 사태를 대하겠다고. 그랴야 글이 자극적이고 오모시로이 해진다. 그럼 죽어 정신으로 글을 써야, 도람푸 동지의 정신을 따르는 게 된다는 것이다. 세계는 오모시로이해야 하니까 후후
각설하고
도람푸의 이미지 전략은 영웅 구세주로 자신을 이미지지우는 것이다. 그렇기에 항상 자신이 중심이고 자신이 주목받고 배경은 흐릿해진채, 자신은 크게 부각된다. 위의 사진은 그 반대다. 젤렌스키와 도람푸는 완전히 대등하게 보이고, 심지어 두번째 사진에선 젤렌스키가 중심이다. 교황청이라는, 현 단계의 인류가 가진 가장 초현실적 공간에서 둘은 내팽개쳐져 있는거 같다. 내팽개쳐진재, 오직 둘이서만이 대화하고 있다. 심지어, 항상 웅변을 통해 자기 이야기만 내뱉는 도람푸가 젤렌스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다.
나가 탁월한 혜안을 지녔다는 거야, 당연한거지만, 아니 씨벌 저 사진을 보고도 이게 안보여? 보지야? 컄 ㅋㅋㅋㅋ 오히려 난 저 사진을 보고 눈깔이 띠용~ 하지 않는 걸 이해 못하겠다. 너무 다르다. 저 사진은 우리가 알아온 도람푸의 사진이 절대 아니다. 상술혔듯이, 지금 도람푸 곁에는 그의 뜻을 거슬러 다르게 행동하게 맨들 어른도 없다. 완전히 딸랑이가 된 국무장관 루비오가 저런걸 시키겠나? 아니 시킬수도 없는 게, 계속 말하지만 저 사진의 연출 퀄리티는 도람푸의 그 것이다. 너무나도 강력하고 선명하게 이미지를 통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런 강력한 미디어 메시지 프로세스는 현 단계의 인류에선 도람푸 이외에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오바마 정도밖에는 없다. 즉, 저 이미지는 도람푸 본인이 의도하고 연출한 것일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도람푸의 것이 아니면서도 도람푸의 것이라는 거다.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저 사진을 본 순간 극히 혼란에 빠졌던 것이고.
게다가 위에 말했듯이 저 사진은 실로 장엄하고 아름답다. 현 단계의 인류가 가진 가장 초현실적 곳인 교황청이란 공간에서, 성하의 선종에 임해 모두가 혼미하고 부산한 와중에 그러한 주위의 동요에는 아랑곳없이 둘은 둘만의 세계에 침잠해있다. 심지어 서로를 탐하는 거 같은 포르노그래피적인 면까지 느껴질 정도로. 대화를 룰34화 한다면 바로 저 사진이 될 것이다. 이건 예술작품이다. 유화로 그린다음 교황청 천장에 붙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사진을 처음 본 순간, 장엄한 공간에서의 거대한 위화감이 소용돌이 치면서 다시, 인간은 서로 소통함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그 자체로 형상화함으로서, 숭고하기까지 해진 작품인 것이다. 실로 아름답고 실로 감동했다. 지난 10여년간 도람푸를 증오하고 비방해왔고 심지어 그저께까지도 그랬는데, 저 사진을 보는 순간 일거에 무장해제 되어버렸다 와따시는.
그를 뒷받침하는 두가지 기사가 추가된다. 하나는 젤렌스키 본인이, 도람푸와의 대화가 의미있었다고 말한 부분이다. 다른 하나는 도람푸 자신이 푸틴은 전쟁을 끝낼생각이 없고 나를 이용하는거 같다 고 말한 것이다. 전자는 다른 상황이었다면 립서비스였을 것이나, 우리는 21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예술작품의 반열에 오를 저 사진과 함께 그 말을 듣고 있다. 진실일 것이다. 그리고, 후자는 그걸 이제 알았음? ㅋㅋ 하는 조롱을 들어도 싸다. 그런데, 그걸 알았다는거 아닌가? 여태까지 절대로 듣지 않고 도외시해온 도람푸가. 그러한 언설들이 저 사진과 조합되면 지시하는 바는 분명하다
변화.
도람푸는 뭔가 변했다. 나는 확신한다. 작금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수많은 사건들을 접하면서 그는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대로면 그는 아무고토 못하고 두창이와도 비교가 안될 취임덕을 당하게 된다. 우리가 알아온 도람푸는 그런거에 아랑곳않고 조까라마이신으로 행동하는 인간이다. 나도 그럴 줄 알았고 어떻게 망가질까? ㅎㅎ 하면서 그저께까지 지내왔다. 저 사진은, 도람푸라는 인류사에도 손꼽을 정도로 독특한 정신에 일어난,
변화가 사진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시나이다
삼종기도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시나이다 라는 문장은 가장 아름다운 문장중 하나이다. 그에 비견해도 손색이 없을, 어떠한 art적인 일의 징후이다 저 사진은. 그리하여 나는 저 사진에, 현대고전회화로서
대화하는 사람들
이라는 제목을 붙일 것이다.
그것이 어떤 변화일지는 알 수 없다. 그야말로 돌연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에 대해서는 지켜보자, 라고 말하고 때우고 싶다. 물론 나는 늘 오바하고 늘 틀린다. 밑에 글도 내 흥취에 겨워 썼다가 틀렸지 않은가? 그러나, 삶은 이야기다 트럼프의 삶에 있어서도 내 삶에 있어서도. 그리고 이야기는 서로를 존재적으로 구속하고 엮고 연결한다. 그렇다는 것을 저 사진은 웅변하고 있다. 바뀔거라는, 더 나아질거라는 믿음이 없이는 인간은 의미있을 수 없고, 그것은 이야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숫자는 그 부산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