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30. 20:52 때때로 일어나는 일
정치에 있어서 지도자의 문제
원래는 쓰려구 혔던 깜이 있었는디, 그 주제를 쓸라카믄 아무래도 이 문제를 먼저 짚고 넘어가야 헐 부분이 있고... 이 주제까정 쓰고 글을 쓸라구 허니 안 그래도 방만허구 장황한 글이 더 길어질 것인지라, 이거부터 쓰구 원래 쓸 깜을 쓰는걸루 허려헌다.
각설하고
지도자의 문제를 논하기에 앞서 모두 가장 위대한 지도자 스탈린 동지의 모습을 감상들 하시라.
스탈린 동지 허믄 대개 많이 쓰이는 사진이 얄타회담에서 루스벨트 찐따 처칠과 셋이 찍은 사진이지만, 언제나 주류에서 벗어나 힙함을 추구하는데 여념이 없는 힙찔이답게 같은 3대장 짤이라도 밑의 포츠담에서의 삼대장 짤을 더 즐기는 편이다. 스탈린 입장에선, 최대 파트너는 뜬금없(지많은 않)게 죽어버리고, 땡깡부리던 찐따는 전쟁에서 이기고 선거에서 져서 날아가 버렸으니 황당하기가 이를 데 없으셨을 테지만, 능숙하게 전후처리를 이끄시어 쏘오련의 권익을 최대한 확보하시었다.
스탈린에 대해 자주 언급한 적은 읎긴 하지만, 20세기를 넘어, 구미를 넘어 근대 정치를 대표하는 3대장(다른 둘은 리슐리외와 비스마르크)이며 그 3대장에서도 단연 필두이신 스탈린 동지는 지도자 그 자체가 아니라 할 수 읎겠다. 마, 대부분의, 나와 사석에서 대화를 나눠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믄 뜬금없이 스탈린 이야기가 훅 치고 들어오는게 좀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다만, 정치에 대한 나의 관점은 도덕원칙을 무시하지는 않으나, 기본적으로는 퍼포먼스 - 성과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입장이라는 것이 그 동안의 글들에서 알음알음 드러나 왔다구 생각헌다. 그러한 나의 정치에 대한 관점을 압축하는 한 문장이라고 헌다믄
'정치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것이다'
라는 것이다. 디게 심상해보이는 문장일 수 있것으나, 저 문장은 많은 것을 함축헌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인간대 인간, 세력대 세력의 상호작용에 바탕하여 돌아간다. 당연히 모든 인간과 모든 세력은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을 높이려는 방향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그러한 의도가 실질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사실상 상대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는 것인 경우가 많다. 정치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네거티브정치를 헌다, 라는 것이다. 왜냐믄 그게 쉽거든. 정치라는게 자기의 위치를 높이는 것이라고 헌다믄 나의 역량을 늘리는 방법도 있으나, 상대의 역량을 줄이는 것으로도 그것은 달성가능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치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작업이 아니다. 이미 있는 존재들이 그 존재의 입장을 갖고 상호작용하는 것이기에 본질 자체가 제로썸이다. 포지티브썸은 수행으로서의 정치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 여담인데 그 때문에, 정치가 더 사람들에게 인식이 나쁘기도 허다. 과학이나 경제같은 영역은 새로운 기술이나 새로운 생산 사업 영역의 발굴로 포지티브썸을 이뤄내는데, 정치는 아예 그게 본령이 아니니까 소모적이고 갈등적으로 보이는 것 - 그런 상황에서 정치는 상대의 입장이 유리해지는 것을 막는
견제
가 핵심이 된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말 또한 디게 심상한 표현이나, 정치가 구체적으로 이뤄지는 과정은 거의 전적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견제하고 상대와의 세력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이뤄진다. 세력균형이 늘 이뤄지지 않는다고? 물론 그래서 균형이 무너지기도 헌다. 그러나, 무너지고 나면 그 다음에 오는 것은 또 다른 세력균형, 변동된 플레이어와 상황에 기반한 다른 세력균형이다. 인류가 현 단계를 넘어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게 아니라면 정치는 견제와 균형이 아닐 수 읎다. 그렇기에, 누울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 라는 것은 견제와 균형의 수행으로서의 정치를 단 한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스탈린 동지께서는 그러한 정치술에 있어서 카미사마의 경지에 도달허신 분이라 아니할 수 읎다. 다시 말허지만 이것은 그 어떤 도덕판단도 개재하지 않은 순전한 수행으로서의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보믄 도덕적 문제가 월등히 적은 비스마르크쪽이 더 대단허기두 허지만, 비스마르크가 거의 예술적인 수준의 정치를 수행해 낸 것은 사실이나, 스탈린 동지의 그 것이 갖는 스케일상의 우위가 워낙 큰지라, 스탈린 동지쪽이 3대장의 필두라고 나는 보는 것이다.리슐리외는 키자루 거기에, 스탈린 동지는 비스마르크보다 월등히 뛰어난 행정가로서의 업적도 있는지라, 종합점수 면에서 앞서기두 허구.
스탈린 동지에 대해서는 더 좋은 글들을 쓸 사람이 있는디, 아무래도 그 양반이 점점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다봉께, 이런 위험~한 글을 쓰기는 좀 난망해지는 거 같구... 하튼 스탈린이란 인물이 정치의 수행이란 점에서 엄청난 사람이었다는 것만 알아두믄 된다.
각설하고
그러나 사실 오히려 이런 위대한 지도자들은 정치에 있어서 딜레마를 유발하는 면이 있다. 정치라는 것이 세력과 세력사이의 상호작용이라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읎다. 이 쯤에서 또한 위대한 정치가인 김대중 화법으로 발뺌을 혀 두자믄, 나는 어디까지나 아마추어 호사가에 지나지 않는지라, 논리가 정치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대신 호사력으로 단련된 시원시원한 주장전개 썰풀기 를 본령으로 삼음으로 제대로 된 이론을 알고 싶지 않은데스 허는 사람은 흐미 쩌시네엽, 허구 넘어가믄 되고 제대로 된 이론으로 보기에 택도 없으면 코웃음 치고 지나가시믄 되것다. 물론 반론이나 질문이 있다믄 딴에는 성의껏 대할 것이다만. 세력대 세력의 관계가 정치이긴 하다만, 그 세력이라는 것은 결국 개별 인간들이 어떠한 동기하에 뭉쳐서 이루어진 것이고, 당연히 이러한 개별 인간들의 입장이나 역량은 세력대 세력의 정치에서 기본적인 바탕이 된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물론 능력차이라는 게 있긴 허다만, 그 차이가 개인단위에서 볼 때는 꽤 커보이지만서두, 그것은 결국 큰 수의 법칙에 따라 시행횟수가 늘어날 수록 점점 평균에 수렴하게 되고, 수만 수십만을 넘어 수천만 수억단위의 인간사이의 관계인 국가, 지역단위의 정치쯤 되고 보면 그 개별인간간의 차이는 수렴하여, 규모에 따라서 가게 된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이것도 수많은 논의점과 예외가 있지만, 사회학은 그런 모순을 견뎌내고 이론이 있다고 믿는 것. 사실 개인적으론 이론에 회의적이고 개별사례의 집합만이 있는거 아닌가? 라는 회의가 들 때가 많다만 그래서는 학술이란 게 성립하질 않으니까
물론 이에 대해 얼마전, 이 또한 당연한 이야기인 듯 하지만 심오한 통찰이 담긴 글을 보긴 혔다.
쵸우센의 역사학자 오항녕 선생이 쓴 글에서 대충 이런 문구가 나오더라
역사는 구조와 의지와 우연의 결합
이라는 말. 물적 조건으로서의 구조, 구성원들의 지향과 문화라는 점에서의 의지, 그리고 그 수많은 사상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우연의 조합.
사실 현대 사회학의 토대가 근본적으로는 마르크스에서 출발하게 된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다만, 그가 철저한 구조주의를 지향했기 때문인 면이 있다.
구조라는 것은 '객관적으로 존재' 하는 것이고, 그 객관적인 대상의 분석을 일삼음으로서 사회학은 명백한 과학이 될 수 있었으니까. 이를테면 그 사상의 영향을 받아 나오는 말중에 쉽게 접헐 수 있는게, 진보적인 사람조차도 부자가 부자당 찍는 것은 당연한 것, 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은 윤재인 정권의 부동산 탄압정책으로 인해, 재산세가 무너지고 건강보험료가 무너지고 있는 악질 쁘띠부르주아인 내가, 여전히 골수 윤재인의 지지자로 남는 것 같은건 설명을 못헌다. 심지어 이런 부분은 도덕사회학? 같은 게 있다면 그런 식으로라도 분석이라도 가능허지, 우연쯤 되고서는 아예 학술적 분석의 대상조차 될 수 읎다. 구조 의지 우연 뒤로 갈 수록 비학술적이 된달까나.
지도자라는 존재는 이런 모순이 어떤 의미에서 극대화되는 부분이 있다. 물론, 세계사에 흔해 넘쳐빠지는 평범한 지도자들에게서는 문제가 안된다. 이를테면 같은 그루지아 인이지만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를 기억허는 사람이 지금 을매나 있는가? 그러나 조셉 스틸... 스탈린 동지! 용서하시옵소서! 동지 이름갖고도 드립이 치고 싶어져서!!! 이오시프 스탈린이라는 사람은 세계사를 바꾼 사람중 하나가 뒤야부럿다. 심지어 그루지아 민족의 역사 전체를 봐도 이 민족은 세계사에 남겼다고 할 만헌기 거으 읎는디, 그루지아 수백만 민중의 수백년 역사의 운이 스탈린이라는 한 인물에게 몰빵되기라두 헌듯, 그 한 사람만으로도 적어도 앞으로 상당기간의 역사에 그루지아인은 깊은 족적을 남긴 민족이 뒤야뿐 것이다. 물론 스탈린은 그루지아민족으로서 태어났지만 로시아인으로서으 아이덴티티를 가졌다만서두(물론 음식은 그루지아 음식을 좋아혔다구 허구 그건 당연한 거다만)
힛틀러가 쏘오련 침공을 하기 전, 쏘오련을 무시한 데에는 1차대전 당시의 로시아제국의 졸전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아니 할 수 읎다. 바르바로사 작전 초기 거으 모든 관측자들이 쏘오련이 가을을 넘기기 힘들다고 생각헌 것도 그와 무관허지 않을테구. 그러나, 2차대전의 쏘오련은 1차대전의 로시아와 전혀 다른 나라였고, 심지어 미국의 쑈미더머니를 퍼받기 전에도 스탈린그라드에서 사실상 자체능력으로 독일의 최정예부대를 쌈싸먹는 성과를 내기까지 혔다. 1차대전으 로시아군이라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당연히 로시아혁명과 레닌, 볼셰비키라는 존재들의 영향도 있지만, 적어도 그 당시 쏘오련이 독일과 맞설 수 있는 하드파워를 조성해낼 수 있었던 것에 스탈린을 빼고는 설명이 안된다. 그런 점에서, 요즘 스탈린과 그의 대숙청까지 재조명하는 수정주의가 크게 대두하고 있긴 하다만서두.
앞서 말헌 견제와 균형이라는 점에서, 쏘오련 사회 내부에서 뭔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다들 알구는 있었지만, 그렇다해도 그것이 직접 성과를 드러내기 전에, 사람들이 1910년대의 독일과 로시아사이의 균형이 크게 바뀌었다고 판단할 여지는 벨루 읎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회와 그를 이끄는 지도자들은 균형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형성하려구 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성공적이지 못헌 이유는 상대도 그를 시도허니까. 큰 수의 법칙으로 역량이 환원된다구 허믄 무한히 경쟁해서 현재의 균형구도가 확대재생산 되는게 일반적이지, 균형 자체가 특별한 큰 사건없이 근본적으로 변허지는 않기 마련이고, 바로 이런 부분이 현상유지 편향의 강력한 근거가 되기도 허며 실제 그게 사실이기두 허다. 대부분의 지도자는 범용하니까. 그렇기에, 간혹 나오는 스탈린 동지 같은 가장 위대한 지도자의 경우 이러한 통상적인 해석을 무력화시키는 돌출변수가 되는데... 그것을 과연 학술적으로 의미지울 수 있는가? 하면 그건 좀... 그래서 나는 역사학 뿐 아니라, 크게는 사회학조차도 사후적 기술 이상이 될 수 없지 않은가? 하는 회의를 지우지 못하고 썰쟁이가 뒤야뿐 것이다. 척척석사나 박사가 되지 못허구. 핑계한번 조타~
스탈린 동지으 이야기를 허다봉께 아주 자연스럽게 나가 쓰려허던 글이 대충 완성뒤야 뿐 거 같다. 역시 가장 위대한 지도자 스탈린 동지... 동지를 따르는 길에 틀림은 없습니다...
가장 위대한 부하 몰로토프 동지께서 이렇게 회고허신 적이 있다
"가끔 이상한 꿈을 꾸곤해. 꿈 속에서 나는 폐허가 된 도시를 헤매곤 하지. 어디로 가야할 지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는 채 말이야. 그럴때면 항상 스탈린이 나타나곤 했어. 참 이상한 꿈이지"
정확한 원문이 기억이 안 나구 나으 즈질 검색력으로 찾지를 못해 각색겸 미화를 혔는디 대충 저런 말이다. 역시 스탈린 동지께서는 빛이오 길이시다.
지도자 라는 것에 대해서 나는 이런, 그럴싸해보이는 표현을 생각해내었다
"지도자란 인격화된 정치이다"
라는 표현으로선 그럴싸허긴 헌디, 역시 의심암귀가 있는지라 저 말을 그냥 써도 되나? 하는 회의는 있기에, '지도자의 정의' 라구 단언은 못허것다만, 어차피 썰쟁이니까, 저것이 내가 지도자라는 것을 정의하는 말이라 봐두 될 것이다. 물론 지도자의 역량이나 캐릭터 카리스마에 따라 인격화의 정도는 달라질 것이다. 이를테믄 노무현은 한국의 인격화된 정치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만, 윤재인은 그 정도는 아니지. 그냥 친구따라 청와대 간 사람일 뿐. 지지는 하지만, 그것은 윤재인이 아니라, 민주화운동기반 진보세력의 수장으로서 지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은 인간 노무현을 지지한다. 그 차이인 것이다. 노무현은 인격화된 한국 진보정치니까. 물론 스탈린동지께서는 그냥 스탈린은 인격화된 정치이다, 라구 혀두 된다.
세력대 세력은 기본적으로 하드파워로 구분을 혀야허는 기 맞다. 그러나, 문제는 결국 수많은 상황에서 세력은 정치적 판단을 해야하고, 민주정치나 권위주의에서의 정도차이는 있을지언정 기본적으로는 그 판단의 결정은 상당부분 지도자에게 귀속된다. 그렇기에, 지도자라는 존재는 구조적 분석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유의미한 차이가 빚어지는 원인이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의 약한고리 - 과학적 접근의 개미지옥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마 이런 견해를 단순하고 철지난 영웅주의라고 하는 통사들이 있을 지 모르것으나, 구조주의적 분석이 스놉하고 힙했던 것은 한국사회기준으로 아무리 봐도 2000년대 초 무렵까지으 일이지 싶다. 애초에, 과학을 자처하는 경제학 조차도 방법론상의 한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모색을 허는디 말이다. 물론 경제학자들 중엔 아직도 자기는 과학한다는 오소독스한 통사들이 즐비허긴 허겠지만 니가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니 생각속에서는 말이야, 랄까나.
늘 그렇듯이 장황허구 길게 썼지만, 그래봐야 딱 문제제기만 한 선에서 그친거 같다. 애초에 이걸 제대로 이야기 하려 혔던 긋두 아니긴 허니까. 물론 혀야 허는 이야기긴 허다만.
내일이 될지 모레가 될 지는 모르것지만, 오늘 던져놓은 떡밥을 바탕으루 원래 허려던 이야기를 혀 보것다.
뭘 그리 뜸을 들이냐? 라고 짜증낼 지 모르니 주제를 말하자믄 도널드 트럼프란 인물에 대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주제라구 헌다믄 아! 하믄서 이런 밑밥을 왜 깔았는지 이해가 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ㅋㅋ
하튼 다음 시간에 만나요 어린이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