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상을 쓸 날이 올 줄이야. 예술을 정치선전에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공산주의 국가답게(사실 자본주의 국가라고 안 그런가 하면 이래저래 드는 생각이 있지만) 중국에 여러 선전예술물이 있는데, 이 영상은 대표적인 선전가요인

沒有共產黨就沒有新中國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다

라는 노래의 영상인데, 보시다시피 흑인이 부른 영상이다. 나이지리아의 가수인 브라더 하오라는 양반이 이 노래를 듣고 꽂혀서 부른 영상이라는데, 들어보시믄 알겠지만 목소리가 청아허니 썩 괜찮게 불렀다. 일대일로로 아프리카를 정복해나가는 신제국주의 국가 중국의 선전영상으로서도 딱 이지 싶고, 저 노래를 부르다보니 중국을 진짜 좋아허게 된 친중인사인지라

 

baike.baidu.com/item/%E5%A5%BD%E5%BC%9F

 

好弟_百度百科

基本信息 中文名 好弟 外文名 Steven 别    名 红歌王 国    籍 尼日利亚 出生地 利比里亚 职    业 歌手 主要成就 2011年星光大道月冠军 代表作品 《男人靠的住》《黑人兄弟》 曾属乐团 五

baike.baidu.com

 

바이두백과에 항목도 충실하게 되어 있는 등, 중국과 나이지리아를 비롯한 아프리카간의 중아 우호의 상징? 같은 캐릭터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이다. 브라더 하오의 청아한 목소리가 돋보이는 영상이니, 중국을 싫어하는 당신이라도 한번 들어보자.

 

각설하고,

보시다시피 노래의 제목 몰유공산당취몰유신중국 은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다, 라는 뜻이다. 이 노래를 소개하려고 이 글을 쓰게 된 거는 아니고 지난번 티토와 프라뇨 투지만을 다룬 글에 달린 이 댓글

 

"스탈린, 드 골, 티토가 함께했던 시대라니 중화의 큰 인물 모택동이 떠오르는군요. 킹무갓키에 따르면 진운陳雲이 이런 말을 했다죠.

"만약 모주석이 1956년(대약진 운동 이전)에 서거했다면 그는 틀림없이 중국 인민의 위대한 지도자로 남았을 겁니다. 그가 1966년(문화대혁명 이전)에만 서거했어도 뛰어난 공이 조금 퇴색될지언정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는 1976년에 서거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만약 모택동이 국공내전 직후에 저승으로 갔다면 위대한 지도자 반열에 들어갔을랑가 싶네요.

출처: angelusnobus.tistory.com/199 [절해고도]"

 

에 대한 반론아닌 반론을 하려고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사실 이 블로그야 내 지인들 말고는 어쩌다 얻어걸린 방랑자나, 아마 대부분은 GDP랭킹 때문에 오게 된 사람이 대부분일 것인지라, 댓글 다는 사람은 99%지인들이고, 저 댓글을 단 양반도 지인이기에, 이미 이야기는 대충 된 부분이지만, 미묘하게 사람들의 인식의 헛점사이에 오묘하게 존재하는 관념에 대한 이야기가 되는지라, 굳이 포스팅을 남기게 뒤얐다.

 

못된동이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이러니 저러니 혀두 진한진수당송원명청에 이은 제 10대 중화제국의 태조 아닌가. 마, 공산국가를 군주국으로 폄하하는 논리를 극히 싫어하긴 헌다만, 중국이라는 나라의 제국으로서의 역사가 주는 압도적인 느낌을 생각허믄 비유로서는 그만한 것도 없다는 점은 분명하지 싶어서, 이 비유의 매력을 저버릴 수는 없기에 나도 쓰곤 헌다. 10대제국 중국의 태조 못된동. 그가 대단한 이유는 10대제국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의 저 댓글처럼 10대제국은 못된동이 없었으면 존재할 수 없었을까?

 

최근 인터넷상에서 주로 반중국성향 혐중성향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장개석 재평가론이 활발하고, 넷 상에서 혐중정서는 압도적인데 반해, 굳이 한국에서 공산중국을 옹호하려는 세력은, 저 혐중세력이 민주당지지자들을 친중파로 몰아붙이려는 것과는 전~~~혀 달리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친 민주당 성향 커뮤를 가봐도 혐중정서는 정도만 다르지 마찬가지이다. 민주당 지도자들이 중국에 대해 대립을 피하는 건 어디까지나, 한국경제의 압도적인 중국의존 때문이지, 중국에 나라 팔아먹으려 하기 때문이 아닌데, 혐오감에 사로잡힌 사람이 과연 이성적 판단을 할 수나 있겠나?) 이제는 대충 넷상에서는 주류담론이 된 거 같긴 허다. 물론 나는 이러한 재평가를 혐중성향에서 나온, 결론 정해놓고 갖다붙이기라고 보는 입장이다. 패자가 패자인데는 이유가 다 있는 법. 물론, 그가 그 동안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병신취급만 받아온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장개석은 대단한 지도자인데 별 능력도 없는 주제에 사악하기는 드럽게 사악한 못된동한테 졌다, 라는 담론은 지나치게 일차원적이지 않은가? 정치에서 과정을 중시해야 하는 것과 별개로, 평가는 결과갖고 하는거다. 진데는 진 이유가 다 있는 것. 그냥 장개석이 못된동보다 병신이라 진거다. 훨씬 거대한 세력과 월등히 유리한 외교적 상황, 압도적으로 높은 위신을 갖고 있음에도 졌는데 뭔 말이 많나?

 

그런데, 지금 이 주제 -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다, 에 있어서는 이러한 상호관계가 좀 미묘해지는 부분이 있다. 즉, 역사에서는 어째서 하늘은 장개석을 낳고 또 못된동을 낳으셨는가! 라서 장개석이 결국 패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승자가 된 공산당은 못된동이 영도하는 공산당이 존재하기에 비로소 신중국이 성립할 수 있었고, 그렇기에 못된동은 위대한 지도자다, 라는 논리를 설파해 왔으며, 상기의 저 지인은 친중성향이 아님에도 그러한 전제 자체는 부인하지 않고 있다.

 

굳이 반박하려는 의도가 아니더라도, 반대방향에서 접근해보자. 논리학을 공부했다면 역이대우 뭐 이런거로 이야기해보겠는데, 나는 내 사고의 틀을 기술적으로 바꾸는? 라고 해야할 지 모르것는디, 그런거에 엄청 피곤함을 느낀느지라, 늘상 의식의 흐름으로만 생각을 허는지라...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이 없다, 의 반대명제라면 장개석만 있으면 신중국은 없다, 정도일까나? 만약 역사에서 공산당의 저항을 어떤 식으로든 받지 않았다면 장개석은 무난히, 현실에서처럼 대만섬으로 쫓겨났고, 이제 본성인들 등쌀에 존립조차 위태로워진 중화민국이 아닌, 중화를 통일한 중화민국을 수립했을 것이다. 그럼 그것도 신중국 아닌가? 신중국이라는 개념에 대한 중화인들 사이에서의 논의가 어떤지 정확히는 모른다만, 아마 공산중국에서는 공산당이 세운 중국에 한정해서 말하려 들 것은 안 봐도 바이두일 것이지만, 공산당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대만이나 그래도 일상에선 궁시렁 거릴 수 있는 홍콩, 중화문화권이믄서 따로 나와사는 싱가포르 같은 곳에서 저러한 정의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외세의 침략의 와중에 전통중국이 형해화된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고 새로이 근대세계에 독자적 국가로서 설 수 있는 중국이라는 폭넓은 의미의 단어로 신중국이 쓰일 것이고, 공산당이 세운 신중국은 그것이 현실에서 실현된 형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걸로 받아들여질 것. 뭐, 공산당을 혐오하는 사람은 신중국도 못된다고 할 지 모르겠다만.

 

사실 현실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논자가 1946년까지만해도 장개석이 이끄는 중화민국이 당연히 신중국을 세울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공산당과 타협을 하든 공산당을 쳐부숴서든. 심지어 가장 위대한 지도자 스탈린 동지께서도 다르게 보지 않았을 거라 여겨지는 여러 정황이 있다. 그러나, 국공내전의 전황이 1947년에 들어 급격히 공산당에게 유리하게 기울믄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가능할거라 생각지 않았고, 심지어 상당수의 공산당 구성원조차도 되었으면 좋을 꿈인데 그게 될까? 라고 생각혔을 게 틀림읎는 공산중국이 현실에 나타나버린 것일 뿐. 만약 공산당의 기적과도 같은 승리가 아니었다면, 장개석의 중화민국은 1940년대 하반기에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정부로서 무난히 출범했을 것이다. 물론, 앞서 진한진수당송원명청의 9대 통일왕조라고 혔지만, 실질적으로 기능한 통일왕조는 한당송원명청 6대왕조이고 나머지 셋은 과도왕조에 지나지 않았긴 하다.(그렇다고 해서 삼국지를 끝낸 진나라를 뺄 수는 없잖아! 관우 아세요?) 장개석의 남경국민정부도 그랬을거다 라고 볼 수도 있긴 허다. 장개석의 국정운영능력이 영 좋지 않았던 것도 있고, 불과 10여년전만해도 허구헌날 장개석에 맞서 반장전쟁을 일으키던 산서제국 황제 신중국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염석산 동지를 비롯한 수많은 효웅들도 있었지 않은가. 그러나, 이는 대동아전쟁을 거치믄서 전혀 달라진 장개석의 위상을 고려해 볼 때, 그 전처럼 염석산 동지가 풍옥상이나 장작림... 은 뒤졌고 장학량... 은 좆됐는데 하여튼 이런 놈들과 손잡고 반장전쟁나부랭이를 일으키기에는 너무 격차가 커져버렸다. 물론 여전히 군벌들의 영향력이 없지는 않으나, 무려 카이로회담에서 루스벨트 처칠(이 시점에선 둘 다 일가실각한 상태긴 하지만)과 3대지도자로 까지 자리했던 사람을 그 밑의 군벌이래봤자 쫌 큰 토호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 뒤집는다? 언어도단이다. 정치 지도자로서의 국내외적 위상 명성을 대체할 인물 같은 것은 없다. 엄청난 실정, 이를테믄 1947년의 하이퍼 인플레이션 같은 것으로 나라가 무너질 수도? 랄 수도 있지만, 그런 일이 국공내전이 없는 상황에서 일어났다면, 엄청나게 큰 정치스캔들이 되기야 혔겠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든 어쩌든 혀서 어떻게든 수습하고, 그냥 계속 다스렸을 것이다. 애초에, 정치적으로 대체할 구심점이 없다. 염석산은 산서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지만 전 중화스케일의 인물이 아니고, 이종인은 나라가 무너지는 상황에서야 간신히 대리총통이나 했을 인물인데, 누가 대체한단 말인가?

 

오직 못된동이 이끄는 공산당이라는, 다른 존재와 비교를 불허하는 압도적인 원심력이 있었기에, 저러한 실패들을, 국민당이 주도하는 질서... 그것은 거부할 수 없어... 가 아니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대안이 없다면, 그저 그런 나라일망정 그럭저럭 계속 굴러 갈 수 밖에 없는 것. 단지, 산서나 운남같은 변방지역에 대한 간섭여력이 좀 줄어들었을 수는 있겠다만. 중화민국이 이끄는 신중국을 굳이 역대 중국왕조에 비교혀보자믄 온전한 군현제가 실시되지 못한채 지역왕들의 권력을 인정한 한나라 정도? 아마 장개석이 신중국을 세웠다믄, 실질적 성격에서든 다른 그 무엇과도 비교할 바 없는 압도적인 상징성에서든 한나라 초창기의 정국을 참조하고 빨통^^의 행적을 벤치마킹했을 것이다. 영포는 염석산이고 한신은 이종인인가?

 

 이런 신중국도 신중국이다. 공산당이 없어도 신중국은 있다. 못된동이 아편전쟁이래 100년의 동란을 끝내고 새로운 중국을 실제로 출범시킨 사람인 것은 맞다만, 그가 아니었다면 동란이 끝나지 않고 혼란이 계속되었을 거라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그러나 그렇다해서 못된동이 엄청난 인물이 아니게 되는 것은 또한 아닌 긋도 맞다. 앞서도 말혔듯이 누구도 해낼거라 상상하기 힘들었던, 공산당이 주도하는 질서... 그것은 거부할 수 없어... 를 실현시켰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엄청난 일이다. 오히려, 신중국 출범이라는 정치적 구호에 오용되는 바람에 못된동의 승리는 역설적으로 희석된 것이라 봐도 될 정도로 못된동의 승리는 현실적으로 가능할 거 같아 보이지 않았던 엄청난 정치적 승리다. 뭐 여텨까지 봐 왔으믄 알것지만, 나는 못된동이라 부를 정도로 신중화천자를 극히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좋은 인물이 아니다. 단지, 역사를 뒤져보믄 그다지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다른 능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디, 정치투쟁에서 이겨내는 능력, 권력을 쟁취해내는 능력하나는 기가 막힌 인물 이상으로 보지 않는다. 단지, 그 업계에선 공전절후의 비교를 불허하는 압도적인 성과를 낸 인물일 뿐. 그런 면에서 보면 오히려 못된동은 서태후와 비슷한 인물인 면이 있다. 다른거 다 드럽게 못하는데,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능력하나는 기가맥혔다는 점에서.

 

칭찬을 하는건지, 까는건지 좀 혼란스러운 이야기가 뒤야부럿는디, 사실 못된동이라는 인물과 그의 승리 자체가 갖는 성격이 상당히 혼란스럽기 때문에 으짤 수 읎는 면이 있다. 못된동이 논란의 여지없이 대단한 인물인 부분은, 오히려 공산당 내의 권력장악과정에서 드러나는 면이 있다. 쏘오련의 노선을 맹종하던 모험주의자들과 달리, 그는 중국의 현실이 쏘오련과 다르다는 점을 정확히 간파했고, 그가 이끌던 동안에는 그럭저럭 돌아가던 강서해방구가 쏘오련의 권위를 빈 자들이 이끌자마자 패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허다.(물론 다분히 혐중적인 논자들에게 선호되는, 5차초공은 다르다 5차초공은! 같은 주장도 있긴 허다만, 마찬가지로 못된동은 다르다 못된동은! 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 중공당사에서 대장정이 금과옥조가 되는 것도, 그 와중에 못된동이 당을 완전히 장악허는데 성공혔기 때문이기두 허구. 강서소비에트의 수립부터, 연안으로의 도피과정은 못된동이란 인물의 정치역정에서 가장 압도적인 성공의 기간이라혀두 과언이 아니라구 본다. 어떤 면에서는 국공내전에서의 극적인 대역전보다도 더. 이러한 점을 볼 때, 그의 능력이 탁월하다는 자체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만, 이러한 정치투쟁에서의 기가맥힌 감을 "적들" 에게만 썼다믄 다행인디, 자국민에게도 사용한 문화혁명 같은 짓을 혀댔으니 문제인거지... 정치적 상황을 읽고 거기서 이겨내는 데는 천재적인데, 이를 통해 확보한 권력을, 국태민안에 사용하는 능력은 ??? 이니 그 인물을 단정적으로 규정내리기 힘들어지는 것... 게다가, 대개는 그 둘이 갈리지 않거나, 갈려도 저렇게까지 갈리지는 않는다. 못된동은 그 둘이 갈린 점에서도, 앞서 말한 것과 같은 공전절후의 인물일 수 밖에 없는 것... 여전히 공산중국이 극도로 민감한 정치적 주제이고, 그 공산중국의 정치적 존재감과 상징성은 거의... 도 아니고 그냥 전적으로 못된동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이 인물이 객관적으로 논의될 여건이 아니라 그렇지, 이만큼 입체적이고 재밌는 인물도 흔치 않다. 언젠가 미중갈등이 정리되고 중국이 온전하게 국제질서를 보호하는 한 축이 되든, 패배하여 주저앉든 못된동으로부터 시작된 질서가 끝나고 나면 호사가적 관점에서는 이만큼 재밌게 논할 수 있는 인물도 흔치 않을거라는 이야기. 물론 중공이 승리한 미래와 패배한 미래에서 그에 대한 논의는 전혀 달라지겠지만, 애초에 못된동이란 인물은 내 관점에서는 "역사적" 인물이 아니다. 무슨 의미냐믄 역사의 자연스러운 흐름과 별개로 존재하는 인물이라는 것. 아 이거 참... 원래는 가볍게 쓰고 넘어갈라 그렸는디, 지난 글두 그렇구 역시 펜... 아니 키보드만 잡으믄 생각이 이것저것 글믄서 글이 무거워지네... 사실 원래 좀 가볍게 생각허구 시작허긴 혔는디, 못된동이란 인물에 대해 글을 쓰고 그에 대해 생각을 해 보니, 이거 생각혔던거부다 훨씬 대단헌디? 라는 것을 자각한 면이 있달까? 랄까나...

 

하튼 못된동에 대해서는

각설하고

결론은 그거다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다 X

공산당이 없으면 공산신중국도 없다 O

라는 것. 마 원래는 못된동이 없으면 공산신중국도 없다, 라고 쓰려구 혔는디, 라임과 플로우를 맞추는 건 중요헌 거니께

 

그리고, 공산신중국이 아닌, 국민신중국이었더라도, 중국은 지금같은 대국이 되었을 것이다. 다른 자리에서 계속 이야기혀왔지만, 동아시아의 급격한 발전은 한자문화권의 힘인거니께.

못된동이 없어도 신중국은 생기고 그 신중국은 거대한 중국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못된동은 있었고 새롭고 거대한 중국은 공산신중국이 되었다.

그 사이에 놓인 심연의 한 가운데에 모택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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