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재삼 재사 말하지만, 나는 일본의 침략행위는 잔악한 범죄이며, 그에 대하여 반성하지 않는 현재의 일본의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태도를 강하게 규탄한다. 정치적으로 나는 현실적 평화주의자(군사적 행동을 반대하고 군비축소를 지향하지만 부득이하게 군비를 갖출 필요는 있음)를 자처하며, 국제문제는 최대한 평화적으로 협력적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렇기에, 대놓고 침략을 했고 그 과거를 미화하는 일본의 작태를 곱게 볼 리가 없다.
계속 말한 이야기지만 이번 화에 또 이것을 강조하는 것은... 이번 화의 이야기는 요시다 쇼인으로 시작해 요시다 쇼인으로 끝나기 때문이며, 그 중간에 무려, 한민족 입장에서 최악의 악인으로 첫 손에 꼽는데 이론의 여지가 벨루 읎을 이토 히로부미의 이야기도 나오기 때문이다. 첫 목적지부터 이렇게 빡쎄대서야 원...
하기라는 곳은 역사도시이다. 그리고, 그 역사의 축은 에도시대의 모리가문의 본거지였다는 점과 메이지 유신 당시의 중심급 인물들이 성장한 곳이 이 곳 하기라는 점 이 두 가지이다. 앞서도 얼핏 말혔지만, 스토리도 (일본인 입장에서)극적이다. 모리 가문은 동의 도쿠가와에 맞서는 서의 구심점이었다. 그러나, 전쟁에서 패해 광대한 영지를 잃고 감시받고 경계당하는 일개 지방세력으로 전락해버렸고, 그 굴욕감을 품은 채 에도막부 250년을 지내야 혔다. 그랬던 모리가에서 서세동점의 와중에 흐름을 잘 타서 모리번은 강력한 경제 군사력을 지닌 웅번으로 성장하고 번 내에서는 여러 (일본 입장에서)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수 많은 신진기예들이 자라나, 마침내 도쿠가와가를 물리치고, 조슈번 출신의 인사들이 일본의 대세를 장악해, 유신으로부터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강력한 세력을 떨치게 되는, 역전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이야기 자체로서는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극적인 성공스토리인 것이다.
그리고 요시다 쇼인은 그러한 신진기예들에게 강한 영감을 주어, 그들이 일본의 새 시대를 이끄는 인물이 되게 한 스승이고, 이토 히로부미는 그 신진기예들의 말석에 존재했던 인물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하기라는 곳이 사실상 오늘날 번영하다가 퇴락하고 있는 일본의 자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내가 이 곳에서 보려는 것은 그 극적인 이야기의 현장과 모습들이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범죄과 악행을 잊을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그러나, 일이 벌어진 자체는 벌어진 것이다. 나가 여행 갔다오고 틈틈이 드립처럼 쓰는 표현이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는 유신의 심장이 따듯한 진정한 일본인이 될 수 있는 기회였다'
라는 것인데... 이거 참 한국에서는 처 맞아도 싼 드립이다만, 저 드립의 기원은 사실 철저한 조롱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D%BC%EB%B3%B8%EC%9D%98_%EB%A7%88%EC%9D%8C%EC%9D%84_%EC%86%8C%EC%A4%91%ED%9E%88_%ED%95%98%EB%8A%94_%EB%8B%B9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라는 것은 이 당의 이름에서 따 왔다. 나가 진짜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혀서냐? 그건 아니구... 일본 정치는 수준이 낮은 것으로 유명허다. 일부 일뽕들은 일본 정치가 한국보다 낫다고 말하는 데 그런 놈들은 그냥 정치에 대해 아닥혔으면 좋겠다.
각설하고
수준이 낮은 정치이다보니 정당들도 해괴망측한 것들이 많은 데... 저 당은 이름부터가 해괴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이름이 우스꽝스러워서 일본 정치를 이야기할 때는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해야죠~ 식으로 드립을 치는데에 저 당의 이름을 요긴히 써 먹는다.
유신의 심장은 당연히
장군님... 그립습니다...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셨던 그 분에게 바치는 오마쥬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이 짤 보고 몇 분을 웃었는지 기억도 안난다. 웃다 뒤지는 줄 알았다. 이 짤에 하도 감명을 받아, 감동이 뭉클히 올라오면 아 나으 유신의 심장이 또 따듯해지네... 라고 말하곤 헌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진정한 일본인임을 자칭하는 데 있어서,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는 유신의 심장이 따듯한 진정한 일본인
이란 자기 소개는 배덕의 미학의 정점을 찍는다, 라고 나는 생각헌다.
솔까 왜놈들이 과거사 반성 안하는 게 짜증나는 이유가, 일본 갖고 칠 수 있는 수 많은 드립들이 있는데... 이 놈들이 반성을 안하고 스스로 악마화를 자초하다봉께 그거 갖고 드립을 칠 수가 없다. 깔끔히 반성하면 진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데... 하긴 그러면 왜놈이 아니긴 하지. 물론 반대로 생각해보면... 나쁜놈이 아니게 될 경우 그 나쁜놈 갖고 드립치는 게 지금처럼 재미가 있을까? 허는 생각이 들긴 헌다. 나는 아직도 개구쟁이 코찔찔이의 심정이 강한지라 그게 배덕의 쾌락을 추구하는 큰 근원이 된다. 나쁜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라는 말을 들으면 더 하고 싶어진달까... 그런 상황에서 나쁜 놈 끝판왕인 일본놀이를 하는 것은 배덕감을 극대화하는 것... 어찌 이 쾌감을 놓칠 수 있으리.
다만 쾌감은 쾌감이고 비판은 비판임을 철저히 구분할 뿐이다.
그리고, 일본인들의 악행은 악행인데, 그 악행의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이룬 성취 그리고 그 성취에 대한 자부심은 일본인들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것 그 뿐이다. 그리고, 이해한 이후에는 응 니네 쓰레기야~ 라고 돌아오는 것이고. 물론 주화입마의 위험이 없다고는 못허는디, 이러고 논지 5년이 넘었다. 그럴 걱정은 없다고 단언헌다.
그니까, 맘 편하게 일뽕 코스프레하면서 놀겠다, 는 이야기... 인데 역시 쉽게 되진 않겠지. 끊임없이 일본 개새끼를 외치며 일뽕에 취하는 수 밖에.
다시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는 나로 돌아가서... 상기한 스토오리가 있기에, 유신과 그 성공은 일본인에겐 정말 놀라울 정도의 짜릿함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현재의 일본의 꼬라지를 보면서 탄식을... 오늘 새벽에 피지ㄹ... 아니 피지알에
https://pgr21.com/pb/pb.php?id=freedom&no=76379
이런 글을 썼다. 따로 포스팅 하는 게 좋겠다만 그냥 왠지 귀찮아서. 하튼 이제 "무시무시한 군국주의 일본" 은 한국보다도 군사비가 적은 나라가 되기 직전이다. 아! 너무 무섭다!!! 게다가 계속 생각하는 거지만, 극우파는 오히려 일본의 암이다. 그런 의고적 태도를 버리지 못하면 더더욱 일본은 과거의 영광에 얽메여 현실의 문제를 더 악화시키게 될 뿐이다. 일본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극우파는 정리해야 하는건데... 일본인들의 현실도피성향은 그런 것을 못하게 만들고 있달까나. 아베가 저러면 저럴수록 일본은 더더욱 위축될 뿐이고, 작금의 남북미정상회담 정국에서 그런 면모는 더더욱 두드러지지 않는가.
각설하고
하튼 작금의 일본의 꼬라지를 보면 일본인들은 우째 이런일이... 라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고, 그러다보니 놀랍고도 기적과도 같은 성공을 이어갔던 유신시절의 자국의 과거사에 대해 향수를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잘 나간다면 지금의 번영의 근원이라서, 못 나가더라도 그 때 우리는 빛났는디... 하면서 말이다. 여담인데, 하기에서 열린 유신 기념식의 분위기는 100주년 기념식과 150주년 기념식이 크게 다를 것이다. 일본이 엄청나게 잘 나가던 1968년의 100주년 기념식에서는 희망찬 분위기였고 앞으로"도" 잘하자 였는디, 올해 열릴 150주년 기념식에서는 아무래도 좀 찝찝한 분위기에 앞으로"는" 잘하자 가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일본이 잘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놈은 일부 어쭙잖게 일본에 대해 얄팍하게 아는 우익 지식인들 뿐이니까.
하튼 하기는 바로 그런 곳이다. 그렇기에, 이 곳은,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는 유신의 심장이 따듯한 일본인이라면 가보지 않을 수 없는 곳이 되는거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식의 자기변호를 혀야 할 일이 몇번 더 있긴 할게다. 시모노세키에선 신공황후 문제가 또 걸리는지라... 어쩌겠나. 한국인으로서 일본에 대해 깊은 애착과 격한 증오를 동시에 지니게 된 내 자신을 탓혀야지. 깔끔하게 증오만 하면윤서인처럼 애착만 가지면 문제는 편하겠다만, 나의 장점인 상대의 입장에 잘 이입하는 것과 나으 단점인 자기으 주체성이 모호한 부분땀시 그게 그렇게 되지가 안헌다. 판단과 통찰이란 점에선 분명 장점이라고 생각허기에 이렇게
자기과시 헌다만.
지난화에서의 여행분이다. 이번 화에서는 장거리 이동이 없을 것인지라, 이 지도는 올리지 않게 될 것이다.
대신
하기 시내 여행도를 올려야겠지. 하기의 위치가 어디인지는 윗 지도를 클릭하믄 확대되니 확인허시구.
앞서의 5화에서도 말 혔듯이, 실로 천혜의 땅이랄 수 있다. 좌상단이 지난 화에서 말혔던 시즈키산, 그 산 기슭에 하기성, 성 앞에 해자 하나, 해자 밖에 하기번의 사무라이들의 거소, 그 밖에 또 해자하나, 해자 밖에 성아랫마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둘러싸고 있는 아부강과 하시모토강. 아부강의 삼각주지대에 실로 절묘한 위치에 자리잡은 요새도시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육로로는 산음도의 길의 요충에 자리허구 바다로는 동해(일본해)의 수운의 가운데에 위치하니 물러서면 지키기쉽고 나서면 뻗어나가기 좋... 까지는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좋은 위치의 마을이라 헐 수 있긋다.
산음본선 철길은 역사유적지인 마을 한 가운데를 피하기 위해서인지 죠카마치(성아랫마을)를 크게 빙 돌아서 지나간다.지도상의 뻘건 선이 산음본선 철길. 지도의 좌측에서 진입하여 아래의 하기역(하기역 위치 표시가 잘못뒤얐다...저 바로 아래다. 그림판 다루는 실력이 구려 수정할 엄두가...)을 지나 우상단의 히가시하기역에서 종착혔다.
노오란 별들이 여행 포인트, 핑크색선은 하기에서 나가 돌아다닌 보행로이다. 화살표모양으로 진행방향을 표시혔는디 역시 그림판질이라 퀄이... 마을 자체로만 보면 작은 마을이다만, 전체를 완죤히 타통하려다보니 이 날 걸은 거리는 대략 14킬로미터... 문제는 관부연락선내에서 잠을 제대로 못 이루는 바람에 수면 시간이 2시간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 피로가 제대로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저렇게 돌아다니느라 증말 뒈지는 줄 알았다. 거기에, 역시 앞서 말혔지만, 다른 마을들에서는 10~11시에 일정이 시작되는디, 여기는 열차시간이 맞지 않는 바람에 13시에 일정이 시작되는지라, 시간이 부족해서 조급한 마음에 더 빨리 돌아다니느라... 원래는 이 여행도에 표시된 것보다 대략 대 여섯곳 정도는 더 돌아볼 계획이었는디 촉박헌 시간, 떨어진 체력으로 인해, 저 만큼 밖에 보지 못했다... 이번 여행에서 제일 발목을 잡은 것은 체력이었달까나. 물론, 나가 지도만 보고 계획을 세우는 바람에 감당하기 힘든 무리한 계획을 세운 면이 더 크긴 하겠다만, 대체로 다른 날들은 목적들을 거으 대부분 달성혔던지라... 가장 의욕적으로 계획을 세웠던 하기가 계획달성률은 제일 낮은 게 아이러니.
게다가 이것도 지난 화에서 이야기헌건디 이 날, 2월 3일은 날이 흐렸다. 날이 흐리구나, 하고 생각하고 별 생각없이 마쳤는데... 다음 날부터 날이 쾌청하니 풍경의 때깔이 전혀 달라지는 게 아닌가. 다음 날의 이와쿠니에서 돌아다니믄서 느낀게, '아 하기에서는 날씨가 좋지 않아 풍경이 그렇게 좋지 않게 느껴진거구나...' 라는 것을 절감혔다. 이래저래 첫 날에 신고식을 혹독히 헌 셈. 사스가 갓본으 8백만신은 이방인에게 호락호락허지 않으시다...
마 어쨌거나 열심히 뽈뽈거리고 돌아다녔고, 썰도 구구하게 장황허게 풀었응께 인자부터는 여행모습을 들여다 보기루 허자.
히가시하기 역의 모습. 최신식은 아무리 봐두 아닌디 뭔가 전통식이라기두 애매헌... 절충의 나쁜 사례같은 느낌? 물론 건물 자체로만 보믄 깔끔허니 잘 짓긴 혔다.
방장경략등장버스 답게 운수회사 이름도 방장버스. 이 야마구치현이 주방 장문 두 옛 지명을 합쳐서 된 지역이고 주방 - 장문 에서 한 글자씩 따서 방장 - 보초라는 약칭으로 불리운다는 것은 지난번에 이야기허긴 혔지만, 연재가 지지부진한지라 기억 못하실 분들도 많을 듯하여 또다시 설명충질.
되게 고풍스러운 건물이 나오는데 아무런 역사적인 뭣도 아닌 일반 가옥이다. 마 앞으론 이런 모습 지겹게 볼 거니까. 열차에서 내려서 처음으로 본 일본가옥이기에 찍어올림.
해수면으로부터 내 키만큼 높이도 안된다는 이야기... 동해(일본해)에서 쓰나미가 몰려오면 꼼짝도 못할 듯.
군대가 인기 드릅게 없는 나라에, 인구도 5만도 안되고 그나마 대부분 노인인 동네에서 뭔 군인을 모으겠다고... 마 유신의 심장의 그 동네이니 유신지사 같은 사람이 많기를 바라는 걸지도?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걸어 건넌 철길건널목. 협궤가 좁긴 좁다...
하도 연재를 질질끌다봉께 말 혔는지 안 혔는지 스스로도 아리까리헌디, 일본은 생태레벨이 한국보다 한 레벨 이상 높다. 한국에서 비둘기의 위치는 까마귀가 차지하고 있고 까마귀의 위치는 매인지 독수리인지 황조롱이인지 잘 모르긋는디, 하튼 이놈이 차지허구 있다. 사진 비율을 보시믄 알긋지만, 저 간지포풍의 새들이 바로 머리위를 날아다닌다. 원래 동물을 좋아허지만, 한국에서는 정말 쉽게 보기 힘든 이런 상위포식자 고오급 생물들을 코앞에서 마주허니 감동이 쓰나미처럼 몰려와서 열심히 찍었다.
첫 목적지인 쇼카손주쿠 - 송하촌숙으로 가는 길. 주요 역사여행지 답게 깰끔히 정비된 모습.
이제 한국에선 보기 힘들게 된 정글짐. 옛 추억이 떠올라 볼 때마다 찍곤 혔다. 지금 내 몸뚱아리로 저기 기어들어갔다간 껴서 나오지도 몬헐 듯.
기찻간에서 볼 때도 훌륭혔지만, 역시 내 발로 걸으믄서 코앞에 보니 느낌이... 이런 집들이 그냥 보통의 개돼지들 집이란게 참 놀라운 일이다.
일본의 자전거 문화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보편화되어 있다. 이것도 상당한 장점. 안전을 중시허는 꼬꼬마들도 헬맷을 열심히 착용허구 다니는디, 그게 무슨 경찰이나 공사장 하이바 같아서 묘한 위화감이~ 아키라에 보면 나오는 전공투들이 쓰고 다니는 하이바하고 기본적으로 비슷허다.
조슈번이 막부를 때려잡는데 맨 손으로 되는 것은 아닌 법. 당연히 공업을 발달시키고 무기를 만들어 막부보다 한 테크위의 군비로 딸리는 물량을 뒤집었다. 이러한 조병창에 제철시설, 조선시설등 여러가지 시설이 하기의 근대산업유산으로 남아 있는데, 나으 주 관심사는 아닌지라 지나가는 길에 보인 이런 것만 찍었다. 사실, 이 손바닥만한 마을에 하루를 풀로 할당혔는데두, 보지 못한게 노무 많은지라... 만약 다시 간다면 이런 것들두 둘러볼 겸 하기에만 3일은 할당할 거 같다. 산과 바다와 강도 많아서 풍광도 엄청 수려하거든. 식문화도 제대로 못 체험혔구.
쇼카손주쿠에 도착. 와시가 쇼카손주쿠주쿠죠 요시다 쇼인 데아르!
이 분도 참 훌륭한 장군님이시지...
일본의 역사마을을 돌아다니면 가장 인상깊은 것이 저 검은 기와가 얹힌 흰벽이다. 실로 白壁 - 시로카베의 민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랄까나... 한국은 백의민족 일본은 백벽민족.
쇼인신사의 정문. 쇼인이 위인으로 숭상받은 역사가 그리 오래된 게 아닌지라, 신사 자체가 근본있는 신사라긴 어렵다. 사실 애초에 일본전국 8~60만개의 신사중 거으 대부분이 메이지 다이쇼 이후에 제대로 숭상되기 시작헌 거긴 허다만...
경내는 차분한 공원삘이다.
센 리큐와 그의 제자 후루타 시게나리의 다도이야기를 다룬 효게모노를 엄청 재밌게 본 지라, 일본의 차 문화에도 관심이 있다. 이 건물은 이번 여행에서 처음 본 일본식 다실이라기에 찍음. 하기번 7대번주 모리 시게나리가 1776년 호후에 지었던 것을 쇼와 34년, 그니까 1959년에 여기로 옮겨 보관중이다, 라고 써 있는거 같다. 지어진 해가 미국이 독립선언한 해이구먼.
일본 서브컬처에 보믄 저 시메나와가 또 독특한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시메나와는 액을 막는 금줄인디, 그게 처져 있다는 것은 나같은 부정한 것을 퇴치혀야하는 중요한 곳이라는 의미일 터.
아니나 다를까, 요시다 쇼인이 유폐되어있던 집을 지키는 금줄이었던 것이다.
여태까지 봤던 집들이 현대식으로 어레인지된 전통가옥이라믄, 이 집은 명실상부 에도시대에 지어진 정진정명 진품 일본식 가옥이다. 솔까 쇼인이란 인물의 역사성을 제껴놓고 가옥으로봐도 충분히 아름답다. 중요사적이라 들어가보지 못하는 것은 아쉽.
드디어 쇼인신사에 도착.
안에 신관님은 오늘은 또 어떤 싸무라이들을 용기병으로 만들고 있으실런지
신사참배를 하기 전엔 여기서 손과 입을 씻고 가는 것이 참배의 작법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신사참배를 했다고 내가 일제에 혼을 판거 아니다. 문화체험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황국에 충성하는 것도 아니니 그런거 문제삼진 말도록 허자. 일본 여행동안 들른 신사에는 거으 대부분 참배를 혔다. 종교라는 것에 대해서는 기독이든 이슬람이든 불교든 가리지 않고 흘러간 과거의 찌꺼기 이상으로 취급은 하지 않는다. 다만, 수많은 사람들의 열망을 담은 문화의 결정체라는 점에서 그 자체는 상당히 흥미로운 대상으로 간주함. 한국 개신교단을 극히 싫어하지만, 개신교 교회의 건물들 자체는 사람들이 쌓아올린 욕망의 복마전이라고 보아 오모시로이하게 여긴다. 신사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 아직도 원시시대의 애니미즘적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본의 토인들이 자기들이 쌓아올린 허상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는 미몽의 현장으로 여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복마전의 개독이든 신사의 왜인이든 결국 내 눈앞에 살아있는 그들이, 삶의 근원이라 믿고 그것을 숭배한다는 것. 그들의 문화를 겪어보는 것은 그 만큼, 이 세계를 이해하는 경험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히 있다.
오옷 나무 도리이~ 확실히 격이 있는 신사는 나무 도리이를 쓰는구먼. 쇼인은 신으로 모셔진 위인중에서도 격이 아주 높은 인물이라 대우도 좋은 거 같다. 물론 모든 위인의 신사가 나무 도리이를 쓰는 건 아닐 것이기에 내 취향을 멋대로 갖다붙인 설명에 가깝다만.
너 사실 나치를 좋아하는 거 아니야? 물론 하켄크로이츠는 이 역방향이다만. 그려서 동양권에선 逆만자라고 부르긴 허지.
쫌금 흔들렸는디, 신사내전의 제단까지 찍어봤다. 근데 이거 찍어도 되는거겠지? 일단은 토인들에겐 신성한 곳인데 혹시 찍으면 안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일단 아무도 없어서 말리는 사람은 당연히 읎었다만.
일본도 공부문화가 발달한 나라라, 공부의 신으로 숭상되는 신들이 여럿 있다. 쇼인이 길러낸 제자들이 이룩한 일을 볼 때, 공부의 신 업계에서 그의 위상이 어느정도일지 설명이 必要韓紙?
어쨌건 여기도 전통신앙미신의 전당인지라, 길흉화복을 논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근데... 1977년생은 올해가 대액년이라는데? 나 올해 좆되는 건가? 몸 사리고 조심조심 지내야겠다.
캬~ 아무리 일뽕맞은 센징이 해봐야, 정품 일본토인이 야마토 다마시를 담아서 하는 것과 비할수는 읎제~ 정품 신사참배를 토인들이 하기에, 뒤에서 몰래 찍어봤다. 말 나온김의 이야기인디 저 야마토 다마시 - 大和魂 이라는 일본정신을 강조한 사람이 바로 요시다 쇼인이다.
용품창고 같은디, 장소가 장소다 봉께, 스타일을 신경써서 지은거 같다. 괜히 맘에 들어 찰캌
이 신사는 쇼인신사 좌측의 송문신사, 그니까 쇼인 문하생들을 합사한 신사이다. 송문에는 유명인사들도 많지만, 기억해주는 이 없는 스쳐지나간 사람들도 당연히 많고... 왠지 잊혀진 사람들이 쓸쓸해 보여서 찍어봤다. 물론 애초에 신사가 지어질 정도의 사람 자체가 그냥 잊혀진 사람들인건 당연히 아니지만.
쇼인신사 본당을 옆에서 찍은 모습. 앞에서 볼 때는 알 수 없는 나름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신사건축양식 자체가 이렇다. 앞에서 보면 평범한 기와집인디, 그 뒤로 통로 같은 게 지어져있고, 제단을 모신 진짜 본당은 저 뒤에 반발짝쯤 높게 지어져있는 구조이다.
물론 그거야 모셔져 있는 신의 위격이 높은 고오급 신사의 이야기고, 이런 약식으 소소한 신사들이 훨 많다. 개인적으론 이런 게 더 좋다. 위엄찬 신사들이 뭔가 비일상적인 느낌이라믄, 이런 작은 신앙의 장소들이야말로 보다 생활화된, 개개인이 체득한 문화라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지. 쇼인 신사답게 권학당이라는 팻말이 붙어져 있다.
무... 무녀님이다...
무녀님이 주신 경단의 맛 잊지 않겠습니다...
난 이 드립을 치기 위해 일본에 왔는지도 몰라...
항봉무녀는 고갤이 인정한 4대명작이니 야겜러들은 꼭 해보세요.
ㅋ~ 포켓몬뽕에 취한다... 신사경내에서 포켓몬 고 를 플레이하지 마세요 라고 쓰여있다. 근데 저 시점엔 이미 포켓몬 고 인기는 뽕이 다 빠진 뒤이긴 허다만... 전성기에는 쇼인신사까지 와서들 극성이었단 것을 알려주는 역사자료이다.
사스가 쇼카손주쿠...
보시믄 아시긋지만 굉장히 작은 건물이다. 원래는 제자들을 거으 독대하다시피 가르쳤다는디, 그 명성이 높아지믄서 저 좁은 방에서 복작복작 몰려서 가르침을 주고 받았다고 헌다. 현대 일본이 이 작은 부옥에서 태어난 셈이니, 일본인에게는 작지만 큰 집일테지.
강의실의 모습과 요시다 쇼인의 초상. 깐깐허니 잘 가르치게 생긴 거 같긴 허다.
쇼인과 그의 제자 내가 멋대로 이름붙인쇼인12철의 모습. 다카스기 신사쿠, 기도 다카요시, 쿠사카 겐즈이처럼 일본토인들은 잘 알지만 한국인은 잘 모르는 얼굴들 틈에 교과서에서 뻔질나게들 보았을 그 분의 모습이 우중단에 보인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국가적 위인의 地인지라 천황과 황태자내외도 왔다갔다. 연호가 헤이세이인 것으로 보아 금상 아키히토 천황과 황태자 나루히토 친왕이 왔다가 남긴 비석인 듯.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아키히토와 나루히토는 극우와는 거리가 먼 정도를 떠나 아예 상극인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도 당연히 일본인인지라, 쇼인은 위인으로서 존숭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이 곳이야말로 명치유신 태동의 땅
사실 그것보다는 이 비석을 남긴 사람때문에 이 사진을 올린 것. 원 내각총리대신 사토 에이사쿠가 쓴 글을 비석으로 남긴 것이다. 아마 그가 재임중에 이 곳을 정비하면서 남긴 게 아닌가 싶음. 사토 에이사쿠는 허구헌 날 내각총리대신이 바뀌는 일본에서 무려 7년 8개월이나 내각총리대신으로 재임해 역대 2위의 재임기간을 자랑한다. 1위는 3차에 걸쳐 7년 11개월을 재임한 가쓰라 타로. 정작 사토 에이사쿠는 그렇게 카리스마나 지도력이 강한 인물도 아니었음에도 오래 집권했다는게 특색이랄까. 비핵 3원칙으로 뜬금없이 노벨 평화상을 타서 그런지도? 군인 출신인 가쓰라 타로를 빼고 순수 문민중에는 최장기 집권 내각총리대신인디, 그런 점에서 괜히 좋아허는 인물.
불행히도 아베 신조가 작년 총선에서 압승하믄서 사토 에이사쿠의 기록을 월등히 넘을(1기 내각 합치면 10년도 넘을 수 있다)뻔혔는디 요즘 모리토모다 북핵문제다 점점 똥되는 분위기가 역력해져서 다행이지 시프요. 물론, 정치는 모르는거라 이런 위기를 넘기고 10년집권을 달성할지도 모르긴 허다만... 아베 같은애는 빨리 낙마혀야지.
쇼인신사와 쇼카손주쿠를 다 보고 나와서 마주친 선거 포~스타
요즘은 이야기가 뜸한데, 일본에서는 한국에선 사이비종교라고 뭉뚱그려지는 신종교, 신흥종교들의 세가 굉장허다. 그 신종교교단중 가장 세력이 강한 곳중 하나가 불교 일련종계열의 창가학회이고 이 창가학회는 세력을 바탕으로 정계에도 세력이 있는데, 그 정당이 바로 이 공명당. 나가 여행중이던 동안에 야마구치는 선거기간이었는디, 그랴서인지 정치포스타들이 많이 붙어있었다.
안내도인디... 좀 뜬금읎는건 한글패치가 잘 되어 있다는 것. 물론 일본은 자이니치가 지배하는 나라답게 한글패치가 음청 잘 뒤야있다... 만... 요시다 쇼인이나 이토 히로부미를 보러 한국 사람들이 올 일이 을매나 있겠나 싶은... 나같은 놈 말고 올 사람이 딱히 있기나 할런지. 잠시 뒤 이토 고택에 들르는 데 이 땀시 거기서 재밌는 에피소드가 벌어진다.
마을길 호젓허다... 유명 역사여행지이기 이 전에 평범한 시골마을이다.
일본 가옥들 모습. 靑田國男이믄 아마 아오다 쿠니오라고 읽겠지? 이 양반댁은 뭣 땀시 시메나와를 쳐 놨는지 몰것다.
앞서 말한 선거기간임을 더 잘 보여주는 포~스타. 앞서같은 포~스타는 통상의 정치선전 포~스타인 경우도 있는디, 이건 대놓고 선거 포~스타임. 야마구치현 지사선거를, 무려 이 다음날 치른다는 이야기다. 일본은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을 못허게 뒤야있어서 둘 다 무소속이다. 한국도 한때는 그랬지. 대신 어느 정당 추천인지를 밝혀서 소속을 알리는 식이다.
기호 1번인 쿠마노 유즈루 상은 사민당, 신사회당, 일본공산당 추천. 빨갱이새끼야! 선거 구호가 인상깊은게, 시민과 야당이 함께 야마구치를 아베현이 되지 않게 한다 라는 임팩트 넘치는 구호를 보여주고 계신다. 선거 이기고 싶은 당이 할 구호같지는 않다만...
기호 2번인 무라오카 츠구마사 상은 현직으로서 재선에 도전. 당연히 자민당 추천.
선거는 다음날 치뤄졌고... 야마구치를 아베현이 되지 못하게 하겠다고 사자후를 토하시던 쿠마노상은 7만표를 득표했다. 새 시대에의 돌파력을 역설하시던 무라오카 현 지사는 30만표...-- 이와쿠니의 호텔에서 NHK늬우쓰를 통해 봤음. 이 시기는 아직 아베가 압승한 작년 중의원선거의 여파가 강할때인데다, 모리토모 문제가 은근슬쩍 묻히는 분위기였던지라... 그게 아니라도, 지역구가 시모노세키인 아베의 홈 스테이트에서 자민당 후보가 질 리도 없고... 보수세력의 역사적 근원이라는 점에서 보자믄 야마구치는 한국으로 치믄 구미같은 곳이다. 물론 요즘 같은 정세에서 혔다믄 표차는 줄었겠지만, 승부가 뒤집힐 일은 없었을 것.
한국 사람들이 제일 얼굴을 잘 아는 일본인중 하나일 그 분의 상. 근데 뭔가 묘하게 싸구려틱해보인다...-- 이 양반도 일본에서는 위인이라믄 위인인데, 신사를 받진 못혔다. 요시다 쇼인같은 사람이야 당연히 받는거고, 그 제자이자 유신 3걸의 1인인 기도 다카요시도 받았는데, 이토 히로부미는 묘하게 그 격에 못 낀다는 것일까?
초대내각총리대신 이토히로부미 별저
라고 쓰여있다.
천황가의 사람들이야 전전에는 대놓고 신이었고, 전후에는 쉬쉬하며 신인지라 오가는 곳마다 비가 서 있는거야 뭐... 하물며 이것은 다이쇼 15년에 세워진 것. 다이쇼 시기에 황태자였다면 바로 그 분, 쇼와 - 히로히토를 말하는 것. 다이쇼 15년 - 1926년이니 천황으로 등극하는 그 해에 이 곳을 다녀갔다는 이야기가 된다. 조선 침략의 첨병의 집에, 일본 제국주의가 가장 극심했던 시기의 천황이 왔다 간 비이니... 역사의 때가 가장 짙게 농축되어 있는 유적이라고나 할까.
하튼 집에 들어서 본다. 다다미라는 게 참 맘에 드는 바닥재이지 시프요. 물론 관리하기가 개 빡친다고는 하더라만...--
이런 미니어처들도 있다. 사진은 기헤이타이 - 奇병대라고 메이지유신 당시 다카스기 신사쿠가 조직한 의용병대. 에도막부군을 물리치는 데 큰 역할을 혔다.
군산을 비롯한 한국에도 각지에 일본식 가옥이 남아있다만 이것은 정품 of 정품. 게다가 거주한 사람도 정품 of 정품 일본인이니 품격의 차이가...
계단은 언제나 상상력을 자극한다. 저길 오르면 무엇이 있을까.
크어... 다다미방!
크흐... 복도!
실로 일본일본함 그 자체다. 어둠의 그 것이긴 하지만 역사으 아우라가 얹혀있다보니 더더욱 일본스런 맛이 진하게 느껴지는 느낌이다.
소박하고 아담하게 꾸며진 정원으 모습.
어쨌건 일본에선 위인이다보니 위인전도 많다. 맨 아래으 책은 철저대연구 일본의 역사인물 이토 히로부미라는 정진정명 일본스러운 제목의 책.
요시다 쇼인이 일본 입장에서 위대한 사상가라믄 이토 히로부미는 많은 일을 하긴 혔지만 어쨌거나 실무자 실권자일 뿐인지라... 열심히 요시다 쇼인을 묻히고 있는 모습
이런 장면 효게모노에서 많이 봤지. 차 한잔 마시고 싶어진다.
일본을 많이 다닌 것은 아니다만, 보믄 청일전쟁의 종전협상인 일청강화회담에 대해서는 많이 다루는디... 성과면에서는 훨씬 컸다고 봐야 헐 일러전쟁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잘 안 다룬다. 대충 이유를 짐작해보자믄 청일전쟁은 일본의 압도적이고 일방적 승리로, 강화회담에서도 우리 일본 하고 싶은거 다해! 한 자리인데 비해 러일전쟁에서는 미국으 중재로 일본이 제발 이거도 주고 저거도 주세여~~ 하고 졸랐는 데, 로시아가 아니 안 줄거야, 우리가 피곤해서 전쟁 끝낼 뿐인거니 대충 먹고 떨어지셈 ㅋㅋ 하고 마무리헌지라, 그렇게까지 영광된 마무리가 아니었던 점이 크지 않은가 싶고... 거기에,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신 일본을 건설한 이후 최초로 대대적인 대외전쟁에서 승리헌게 청일전쟁이라는 점 등등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토 별저 탐방은 여기까지. 불편한 거 보시느라 수고들 많으셨셈.
앞서 말헌 재밌는 에피소오드를 풀 차례인디... 나는 딱 봐도 똥송하게 생긴 똥양인이다. 체격도 크고 험상궂은 놈이 머리도 빡빡깎고 혼자서 이 여행을 다녔다. 이 곳 또한 역사유적인지라 관리하는 사람이 있었고, 아담한 체구으 선량해보이는 일본 아지매였는디... 저런 똥양인이 혼자서 이 곳을 들어오니 이 분이 꽤나 의아하게 생각혔던 것 같다. 일단 딱 봐도 일본인은 아니다. 그리고 딱 봐도 동아시아 인이다. 전혀 동남아같이 생기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동아시아래봐야 중국 한국이 다 아닌가. 대만이나 몽골은 을마 읎응께. 근디 중국과 한국인들이 이토 히로부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이 집을 관리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잘 알 것이다. 그니까, 그 곳 사람들이 올 이유가 없는 곳인데 이 사람은 도대체 어디서 온 사람일까... 이게 그 아지매는 음청 궁금혔던 모양이다. 나가 관람을 마치고 나갈라 카는데, 이 아지매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혔는지 영어로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서... 차이니즈? 아메리칸? 이렇게 말허더라. 이 때 느꼈다. 아 이 아줌마 내가 한국 사람인거 눈치 챘구나. 한국인이라면 이토 히로부미는 철천지 원수라 이렇게 유심히 보러 들어올리는 없는데도 왔다는 게 지나치게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일본인 답게 대놓고 물어보진 못하고 에둘러 물어본 것이다. 그랴서 당당하게 코리언도 아니고 강고꾸진데스~ 라고 해 주고 왔다. 아줌마의 그 호기심이 풀어지는 표정에 괜시리 나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 다 들더라. 어찌보믄 이번 여행에서 가장 배덕감이 넘치는 순간이었달까나 ㅋㅋ. 일본어를 쫌금이라도 할 줄 알았다믄 왜 왔는지 이야기해줘도 뒤얐을텐디... 아마 그 아지매도 한국인인데 이 곳에 온 이유가 무엇인지 무진장 궁금혀서 더 물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다만, 여행기 내내 보시믄 아시다시피 나 자신, 왜 그딴 걸 보러감? 이라고 물어보믄 에... 또... 하믄서 말이 길어지는지라 깔끔히 설명허기는 쉽지가 않아서... 짧은 일본어로는 그냥 오셨어요~ 네 왔십니더~ 하고 헤어지는 정도였을 듯.
다음 목적지인 요시다 쇼인의 생몰지를 가 보기로 허자. 가는 길에도 일본 가옥들 퍼레이드는 여전히 화려허다. 저 나무로 높게 올린 구조의 부옥이 또 일본 가옥의 특징적 모습중 하나. 앞에 잘 다듬어진 조경수또한 극히 일본적. 저런 소박한 집 마당에 저렇게 다듬어진 나무라는 게 참 놀랍다.
일본식 정원조경수는 기본이고 고오급 스러운 시로카베로 둘러친 집. 이 집 주인은 확실히 재력이 좀 될 것 같다. 시로카베란게 돌아다니다보니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흔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역사유적이 아닌 집인데 이렇게 치고 산다는 것은 만만찮은 재력의 소유자라는 말일 터.
이 높게 솟은 나무로 된 건물은 진짜 꼭 한번 들어가보고 싶다. 지인이 일본에 진출할 예정인디, 이 양반한테 나중에 일본에서 돈 벌어 집사면 꼭 저런 집 사라고 혀서 들어가 봐야지.
하기 전반부에 봤던 가옥중 가장 맘에 든 집
벽돌로 쌓은 벽은 쫌금 아쉽다만... 기와지붕 얹고 기름먹인 나무로 벽을 둘러친 집이 이시가키... 아니 축대위에 올라가 있다.
거기에 담장밖으로 수줍은 듯이 빼꼼히 내다보는 한 떨기 꽃송이...
집 문까지 굉장히 완성도 높은 일본식 가옥의 구색을 증말 잘 갖추고 있다. 진짜 집 구경만 해도 질리지를 않는다.
이 것은 요시다 쇼인의 숙부 타마키 분노신의 구택. 타마키 분노신은 요시다 쇼인에게 물적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된 양반이다.
일본식 초가집 지붕. 이 지붕이 또 맘에 들더라구.
내부는 평범한 다다미방. 8첩이나 되는 널찍한 방이 줄줄이 이어져 있다.
중간에 사진이 좀 없는데... 라기보다는 사실 나가 지나치게 사진의 밀도가 높긴 하다만... 하여튼 중간에 언덕길을 오른데다, 6일간의 일정중 유일하게 비가 내린지라(4일차엔 눈) 비를 피하며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사진이 좀 없다. 대략 언덕길을 수십분 올라서 도착한, 요시다 쇼인의 묘역. 메이지 유신 150주년임을 알리는 표지들이 자기과시 하고 있다.
요시다 쇼인 여기 잠들다.
쇼인의 묘 인근은 그의 관계자들의 묘로 채워져 있다. 다카스기 신사쿠 말고는 다 잘 모르는 사람이라 중요헌건 아닌디... 맨 오른쪽 다카스기 신사쿠의 호칭은 쇼인 문하생 쌍벽의 1인이고 맨 왼쪽 요시다 토시마로는 쇼인문하생 사천왕의 1인 이라고 뒤야 있는디... 일본인들은 이런 칭호 너무 좋아한다. 쌍벽 삼인중 사천왕 등등. 전국시대로 가면 사명신 오대로 오색비 칠본창 24장 삼대장 등등 이런 게 증말증말 많음. 이런 중2스러움이 또 일본으 매력이긴 허지. 저런 칭호들 전부 한번 정리한다한다 벼르고 있는데 귀찮아서 참 안해진다.
요시다 쇼인이 태어난 곳은 터 밖에 남아있지 않다. 터를 보아허니 유복한 집은 아무래도 아니었던 듯.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네~
이 곳의 진짜 의의는 이 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기의 전망이 잘 보이는 곳이었다. 그리 많이 올라오지 않는데 비해 전망의 가성비가 상당허더라. 보다시피 날이 흐렸기 망정이지 쾌청했다믄 정말 노올라운 뷰를 보여줬지 시프요.
이제 다음 목표는 저 지월산을 향하는 것이다.
6화에서는 이 만큼을 이동혔다.
얼마 못 갔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