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의 첫 사진이다. 야마구치 여행기가 세상에 처음 태어나 고고성을 울리는 모습이다.


라지만 이건 서울의 모습이다. 야마구치를 가려면, 일단 서울을 떠나야 할 것이 아닌가. 만약 항공편을 이용했다면 첫 사진이 무엇이었을지는 모루겟소요. 봉천동으 집에서 인천공항으로 갈라믄 뻐어쓰를 타고 갈 수도 있고, 철덕이니까 공항철도를 이용헐 수도 있는디, 아무래도 창밖풍경 감상에는 뻐어쓰가 유리한지라 뻐어쓰를 탔을거 같다. 일반열차는 풍경감상에 큰 지장이 읎지만, 도시철도는 마주보고 앉아가는 시트 특성상 창밖감상이 크게 제한되는지라... 교통수단에서 창밖을 감상하는 것이야말로 여행에서 가장 즐거운 일 중 하나이다. 이동시간을 낭비하는 시간으로 생각하고 자거나 폰질을 하는 것은 언어도단. 사실 일반적으로야 대개 가서 보는 거 위주로 생각허지 가는 동안을 중시허진 않는 데, 갓직히 난 이게 전혀 이해가 안간다. 나가 이례적인 사람인 것을 부인은 못하것는디, 생전 처음 타보는 산양본선에서 창밖에 펼쳐지는 모습들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여행절반 손해보는 짓 아니냐? 왜 교통수단에서 자지? 생전 첨 가보는 길의 모습들이 파노라마로 창밖에 펼쳐지는데? 항공편도 그렇다. 물론 대형항공기라믄 9열좌석으 특성상 창가자리에 앉을 가능성이 9분의 2라 창가가 아니면 무의미해 잘 수도 있다. 소형항공기는 4열좌석이니 2분의 1 확률이라 훨 낫고. 그런데 그 귀중한 항공기 창가자리에 앉아서 왜 자는 것이지? 수면과시? 사람이란게 은가이 장거리 뛸 일이 많다혀도 결국 항공기란건 어쩌다 한번 타는 것인디 그 소중한 기회를 왜? 구름만 둥둥떠있다 하더라도 구름위를 난다는 것 자체가 언제나 그리운 이름... 아니 경이로운 경험이고 시야가 트여서 지상의 모습이 보인다면 그 자체는 놀라운 장관들의 연속인데 말이다. 모두가 자거나 쉬는데 자지 않고 피곤하고 졸려 뒤지것는데 핏발선 눈으로 창밖을 보고 있는 내가 이상한 놈이기야 하긋다만, 누가 뭐라해도 나는 내가 맞다고 생각헌다. 여행을 갔으면 그 순간순간 하나하나가 모두 경이 아닌가. 어찌 경이의 순간을 그리 가벼이 여기는가.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 정말 나 뿐이냐? 그렇게 생각허지 않는 분이 있다면 같이 여행을 가도 기꺼이 어울릴 수 있으리라 생각헌다.


사설이 참 길다... 하고 싶은 말이 워낙 많은 인생이라. 사실 마르크스는 그런 유언을 남기지 않았지만, 속설에


"유언이란건 살아서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하지 못한 놈들이나 남기는거야!"


라고 일갈하고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저것도 훌륭한 유언인거 같은데

65년 인생내내 나불나불 거리거나 나불거리지 않을 땐 깨작깨작 뭔가를 계속 써 대던 그으 캐릭터와 잘 어울리는 말이기에, 사실이 아니지만 믿고 싶은 구라긴 허다만... 진짜로 죽음의 순간에 저런 생각이 들었어도 저런 말은 안혔을거 같다. 일단 자본론을 1권밖에 못 쓰고 죽은 것은 차치허구(2, 3권은 그의 사후 엥겔스가 출간) 솔까 마르크스 발톱의 때만도 못할 나도 하고 싶은 말을 박찬호보다 빠른 페이스로 떠들어도 다 못허구 죽을거 같은디, 나보다 훨씬 생각의 폭도 깊이도 깊었을 마르크스가 저렇게 생각헌다구? 저건 생각이 많은 사람이 뭔지를 이해 못한 사람이 만든 언어도단의 일화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인생은 캐릭터인지라 캐릭터성을 잘 살이는 구라일화라는 것은 인정한다만서두. 마르크스와 비견할 수야 없지만, 그랴도 속성은 마르크스과라고 분류할 수도 있을 거 같은 놈이 나 인지라 말이 너무 많군 비문에 뭐라고 새겨줄까?


각설하고

서울을 떠나는 데에 서울역을 이용하지 않는 것은 언어도단... 까정은 아니고 그랴도 서울역을 이용해주는 게 예의지. 하물며 철도대국인 대일본제국에 가는디. 배를 타려면 붓싼에 가야허구, 붓싼에 가는데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철도가 왔다다. 물론 KTX는 언어도단. 당연히 각역정차 완행열차를 타고 가야지. 물론 비둘기호도 통일호도 사라진 작금으 개탄스러운 한국에 그런건 읎긴 허다. 고조 무궁화가 제일 많이 서니까, 제일 천천히 가니까 그걸 타고 가며 풍경을 감상할 뿐. 사실 그런 점에서 보면, 배를 타고 일본에 가는 것은 미나토에 살지 않는 센진들에겐 재무적으로도 벨 이익이 읎는 일이다. 배타러 가는데 교통비를 또 써야허니까... 게다가 시간도... 나처럼 시간이 마빡에 덤비는 사람이 아니고선 할 일은 아니다만... 컨셉과 로망은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 아니긋는가. 이제 사진 하나 올려놓은 여행기에 A4로 수십페이지의 사설이 붙었는데 그게 다 컨셉, 그 컨셉을 도출한 내 로망으 표현들이었으니...


서울역에서 경부선 무궁화를 타고 붓싼에 간 다음 관부연락선을 타고 시모노세키에 간 다음 산음본선 열차를 타고 동하기역에 내려야 비로소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의미의 여행 시작이다. 물론 나에게는 이 여정 자체가 전부 모험과 신비가 가득한 여행이지만. 글구, 일부러 붓싼에 일찍 도착하여 내가 한국에선 젤 좋아해 마지 않는 붓싼 풍경도 감상헐거구. 그런 고로 야마구치 여행기가 시작했지만, 아무래도 1화에는 야마구치 모습은 못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제야 윗 사진 설 · 명 · 들 · 어 · 갑 · 니 · 다

사진한장 설명하기가 이리 힘들어서야 원... 읽는 분들께 근성을 강요하는 거 같아 죄송허다죄송헐 시간에 설명을 해

노량진에서 용산역을 가는 동안의 한강철교상의 모습이다. 나가 또 좋아허는게 마천루인지라, 한강을 건널때는 항상 롯데타워를 감상하기 위해 최선을 다헌다. 저 사진도 롯데타워의 새벽녘 모습을 잡아보고자 똥꼬쑈한 노오력으 산물인 것. 아쉽게도 롯데타워의 발기탱천한 모습은 잡지 못혔다만, 빠르게 지나가는 열차차창에 비친 흐리게 비친 서울의 새벽모습이 은근 분위기 있게 나온거 같아 올려봤다. 딱히 분위기 있어보이지 않아도 첫 사진이니 무족권 올렸긋지만.


서울역은 모든 여행의 첫 페이지다. 나중에 항공편 혹은 버스편으로 여행다닐때도 첫 사진은 이걸로 올리는, 컨셉플레이를 해 볼까 생각중이다. 나는 철덕이니깐.


여담인데 언제고 반드시 경의선 철도 여행기를 올릴 생각이다. 왜냐믄 최근에... 최근에... 경의선 승강장이 무려 서울역 구역사로 옮겼거든!!! 여행의 출발사진으로 서울역 구 역사를 찍을 수 있다는 것 이 얼마나 컨셉찬 모습인 것이냐. 아! 너무 무섭다!!!


이 곳에 설 때면 언제나 가슴이 설렌다. 출발하는 느낌을 가장 잘 실감나게 하는 모습이라서.


나를 부산으로 델꼬 갈 무궁화호 1207열차의 모습. 앞에 써 있는 8206은 기관차의 일련번호이고 열차의 편성번호가 1207. 5시간 30분간 동고동락할 동반자이니 모습을 꼭 찍어주는 예의바른 철덕의 모습을 잊지 말자.


이 또한 좋아허는 앵글. 443킬로미터의 철길이 우리의 앞에 놓여있다. 내 앞에 펼쳐있는 여행길을 향해 나아가려는 설렘과 기대감이 한껏 담겨 있어 좋다. 좋은 게 노무 많아 탈이다...


당연히 이런 여행은 수십번, 아니 백번을 넘었을지도 모르게 혔는디, 그 때마다 이런 앵글을 보는데도 항상 찍어 남긴다. 정말 질리지가 않는다. 누구나 그렇게, 봐도바도 좋은 모습들을 하나쯤은 갖고 있을 듯도 헌디 나에게는 이 모습이 그 모습이다.


서울의 자랑 한강의 모습. 솔까 이게 강이냐? 해협이지? 중랑강 안양강부터 강이라고 불러도 충분허다. 용산구와 동작구 사이를 가르는 한 해협의 모습이다. 아마 실제로도 본주인 시모노세키와 구주인 고쿠라의 사이에는 간몬해협이 놓여있는데 이 간몬해협이 좁은 부분은 700미터도 안된다. 한강은 서울시내에도 1킬로미터가 넘는 곳도 즐비한 만큼, 해협급의 강인 것.


전철을 타고서든 승용차를 타고서든 한강은 뻔질나게들 넘어다닌다. 그러나, 열차를 타고 건너는 모습은 각별허다. 서울 시내에서 용무를 보기 위해 건너다니는 것과 달리 나는 붓싼을 넘어 일본에 가는 길이거든. 일상의 모습이 일탈의 모습으로 다르게 의미지워지는 순간. 그랴서 열차를 타고 서울시내를 달리는 순간의 감각을 또 좋아헌다.

I'm on a Train 이라고 씨부랄 탱탱부랄들아~


일상의 밑바닥인 출근길의 시민들 위에서 우월감을 자기과시 하며 만끽하고 있는 일탈의 정점인 여행길의 쌩잉여인생


이 외에도 63빌딩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사진이라등가 신도림역에서 쉬불거리며 통근전철을 기다리는 개돼지의 모습들을 찍은 사진들이 있는데, 말이 노무 많으니 작작허자... 토크를 제지당한 박찬호의 기분...





이 영상도 참 여러번 찍고 올리기도 여러번 올린거 같다. 이 블로그엔 처음이지만.
유튭페이지 설명에도 썼지만, 경부선 명학역에서 금정역 사이 구간에는 서울외곽순환 고속도로의 고가구간이 지나간다. 근데 이게 규모도 규모라 은가이 간지나지만 위치가 또 서울으 행정구역에서 벗어난지 얼마 안된 젖절한 위치에 있는기라. 그랴서 난 이것을 서울으 관문이라 부른다. 이거 지나면 서울 떠난거고 이거 보이면 서울 다 온거. 한 때 진격으 거인이란 만화가 유우행 혔었는디, 대충 그 진격으 거인에 나오는 성벽들이 저만한 스케일일거라 생각허구 보믄 쫌금 더 실감이 난다.


이제 서울을 벗어난다.


자고로 경부선 여행은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터닝이다. 이 드립을 기억하는 사람들 내 연배에는 꽤 있을게 드라마 유행어라서. 1994년에 서울의 달 이라는 드라마가 방영혔고 선풍적 인기를 끌었었는디, 여기에 김영배라는 배우가 춤가르쳐주는 제비로 나온다. 그가 극중에서 스텝을 가르치믄서 스텝을 연습하려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스텝을 밟는다는 각오로 연습해야 합니다, 라고 말한 후 피교습자에게 하는 대사가 저거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터닝

그 장면을 본게 고딩때인데 와 저 드립 쩐당~ 하며 본 기억이 나는 듯도 허구 안 나는 듯도 허구


각설하고

한 스텝 밟고 대전에 도착혔다. 뜬금없지만, 저 아파트무리는 대전으 행정구역에 진입하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물들이다. 윗 영상이 서울으 관문이라믄 저 아파트들은 대전으 등대라고나 할까. 아파트공화국이자 모든 도시가 아파트그라드인 근본없는 한국에, 순전히 경부선 땀시 생긴 근본없는 도시스러운 모습이 딱 상징스러워 찍어부았다. 대전분들껜 죄송허지만, 이 블로그는 악플블로그니 허허허~ 하며 양해를.


암 개혁은 서슴없이 혀야제. 옥천쯤인가 지날 때 본건데 굴뚝에 써 있는 구호가 뜬금없이 당당해서 투고


장강... 아니 금강은 흐른다... 경부선은 한국으 4대강중에 영산강을 빼고 한강 금강 낙동강을 지난다. 한강 건너믄 서울 떠나는 거고 낙동강 건너믄 붓싼 들어온거. 금강은 적절하게 가운데니까 투고


왜국에 가는데 어찌 이 곳으 사진을 올리지 않을 수 있으랴

왜인들 오시던 왜관역~ 오늘은 앙겔님 가신다~

이명박 정권 시절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 라는 노래가 극히 일부계층^^에서 유행혔는디, 그 노래 웹에 투고혔다가 국보법으로 잡혀가는거 아니냔 리플을 받은 적 있었다. 나는 쌩까고 그냥 잡아갈테면 잡아가라 국사범 한번 뒤야보자, 하고 배짱부렸고 안 잡혀갔지만. 설마 대명천지 문재인 정권세상에서 잡아가겄어? 홍낄낄


두 번째 스텝을 밟았다. 한 스텝만 더 밟으면 나도 이제 스텝 마스터


이 사진을 왜 올렸나면... 잘은 보이지 않지만 주황색 건물 오른편 그나마 가까이 보이는 건물이 밀양 세종병원이다. 1월 말에 큰 화재로 40명이 희생된 그 곳. 밀양역 바로 옆에 있기에 담아봤다. 여행가던 2월 2일은 그 직후라 사회적 충격이 컸던 때. 3월이 되고 보니 많이 잊혀졌구나... 희생자분들께 애도를, 부상자와 유가족 분들께 위로를...


삼랑진을 지나 양산으로 접어들면 이제 낙동강이 그 유장한 흐름을 마치고 남해바다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흐름이 나타난다. 평평한 곳에서 넓찍하게 흐르는 지라 그 유유한 모습이 아름다워 참 좋아헌다.


잘 보이나? 화명역이다. 일찌기 수십회 붓싼을 드나들었지만, 나름대로 여행마인드를 갖고 붓싼을 드나든건 30이 넘어서였다. 내가 애가 좀 늦된지라...되긴 됐냐? 당시 지인들을 만나기 위해 경부선 열차를 타고 붓싼을 가는디, 이 화명역이란 곳이 인상깊었다. 경부선에서 경상남도으 마지막 역이 물금역(여기도 이름땜시 젛아함. 말물 금할금. 금지를 하덜 말어라, 라니 이 무슨 경상도 양산 시골에 68혁명스러운 역 이름이란 말인가. 힙하기 짝이 읎다)이고 붓싼에 들어서믄 첫 역이 이 화명역이다. 서울의 영등포와 비슷한 야쿠메인 구포역이 부산 북부에선 유명한지라, 붓싼에 들어서 그 구포역이 보이길 기대하고 있던 내개 난데없이 나타난 화명역은 문화컬처였다. 아 이게 붓싼 첫 역이구나.

그 뒤로 서울으 관문이 위의 영상이라믄 붓싼으 관문은 나에겐 화명역이 되었다. 비주얼 임팩트가 있는게 아니고 철저히 개인맥락적 임팩트라 누구에게 츄라이는 몬 하긋다만. 뜬금없이 사랑채 뒤야뿌린 화명동 사람들은 뭔 죄여.


말 나온김에 물금역 사진도. 당연히 안 찍었을리가 읎잖은가. 물금이란 명판 아래 화명행이 보일 것이다. 이 외에도 올리지 못하고 스킵한 사진이 여기까지만 수십장... 진짜 5천장 다 올릴라믄 대하소설써도 모자랄 거같다...


부산이 왜 부산이냐면 산이라 부산이다. 진짜 산 많은 동네다. 그게 도시에 불편함과 기능상으 제약을 많이 준다만, 그기 부여하는 입체성이 도시으 면모를 다채롭게 헌다. 살기엔 안 좋지만 구경하기엔 좋달까나. 원래 여행은 대상화다. 남의 일상에 여행이랍시고 쳐 들어가는 일탈이니까. 시선강간도 이런 시선강간이 따로 있을까.

사진상으 모습은 동서대학교 인근으 모습이다. 동서대 분들 추천 좀...


드디어 도착했다 붓싼!


나를 데려오느라 수고하신 8206기관차에게 감사


경부선으 진짜 선로끝은 저 어드메다. 육안으로 보믄 쫌금 더 가까워보이는디, 사진으로 보믄 멀어보이드라.

원래 일제가 경부선을 놓을때는 쩌 너머으 구 부산여객터미널 위치 근처의 부산잔교역이란 곳부터 놓여 있었다. 그 당시 관부연락선은 진짜 관부연락선이라 연락선에 열차와 화차를 아예 싣고 현해탄을 건넜던지라, 부두에서 열차를 내려놓을 필요가 있었거등. 해방후까지도 있었던걸로 아는디, 50년대에 붓싼역 대화재 이후 부산잔교역이고 당시 붓싼역이고 다 타버려서 지금 위치로 옮겨왔다고 헌다.


부산역에 왔으면 역명판을 찍어야지.


붓싼에 도착한 것은 열차가 지연을 음청 먹어서 대략 1시 50분경. 선편 수속은 5시부터다. 시간이 많이 남은 것은 일부러 그런 것. 배타러 붓싼에 가는데 곱게 배만타고 갈 수 있나. 붓싼구경도 혀야제잉~


일본으로 떠날때도 서울로 돌아갈때도 붓싼에선 시간을 넉넉히 잡었다. 원래는 동행이 있었으니, 동행에게 붓싼의 공포를 알려줄라고 ㅎㅎ 근데 혼자가 되어버린 나이니 공포는 혼자 느낄 수 밖에. 가는 길에는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매축지마을이란 곳을 가기로 혔다. 글구 붓싼에 갔으믄 밀면을 먹어야 허니, 매축지 마을 근처 명소를 찾아봤는디 조방밀면이란 곳이 이름이 있더라. 그려서 매축지 마을 보고 조방밀면 먹고 여객터미널로 돌아올 계획을 세웠다.


서울에 돌아갈 때는 아무 계획도 안 세웠다. 그냥 생각없이 정처없이 떠돌아 볼라구.


영도의 모습


북항대교(지금은 부산항대교라 불리는 거 같던디, 남항대교 북항대교란 이름이 더 좋으니 그냥 북항대교라고 부를거당)와 너머로 보이는 감만부두와 그 너머로 보이는 이기대. 앞이 휑한데, 여기는 원래 붓싼항 1~3부두가 있던 곳이다. 그 부두들을 진해쪽으 부산신항으로 다 옮기고 여기는 재개발하여 신시가지로 재조성헌다고 헌다. 조성사업이 끝나믄 또 구경하러 놀러 와야긋제잉


보... 보인다... 관부연락선...! 관부연락선은 부관훼리 주식회사가 운영하는 한국국적으 성희호와 관부페리사가 운영하는 일본국적으 하마유호가 공동으로 교차운항을 헌다. 이왕 내지에 가는거니까, 가는 길에는 한국배보다는 일본배에 걸리길 바랬는데, 다행히 출국길에는 하마유호를 타고 가게 뒤얐다. 랔키~~


붓싼에 간 타관 사람들은 물론이고 붓싼사람들도 적잖게는 이 모습을 아직 못 본 분들이 있을게다. 붓싼역전은 번화한 곳이라 많이들 봤지만. 바로 붓싼역 뒷역의 모습임. 지금은 방금 찍은 관부연락선이 닿아있는 부산국제여객터미널 정도 말곤 암것도 없어서 사람이 오갈일이 읎는지라. 곧 재개발이 완료되믄 여기도 많이들 드나들것제잉.


붓싼항국제여객터미널으 모습. 이 건물... 정말크다. 현재로선 사용하는 사람도 뻔헌디 건물은 딥따 크게 지어놨다. 나중을 생각하믄 미리 크게 지어놓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만... 다 찰 일이 있을지는 쫌금...


더 가까이에서 본 하마유호으 모습. 난중에 탈 때 전체모습을 더 제대로 찍어야징~ 혔는디, 탈 때는 전체모습을 찍을 틈이 없더라. 그려서 이 모습이 제일 제대로 찍은 전체모습이 뒤얐다.


바로 옆 4부두에 대어져 있는 배들으 모습. 범강3호가 인상적이다. 장비는 극태범강에 당하면 꼼짝도 못해. 3호까지 있으니 장비가 셋이라도 남아나질 않는다.


이 드립 치고 싶어서 찍어왔다...

한국경제를 상징하는 물건을 하나 고르라믄 다 제껴놓고 이걸 고르면 되지 않을까. 약진하는 한국 GDP의 첨병인 랜덤박스 되시겠다.


이런 자투리부지에 지어진 허름한 건물 좋아한다. 아기자기한 느낌이랄까나. 일본의 집들 사진도 징그럽게 많이 보고 찍어왔는데, 거기 집들도 아기자기하고 이쁘다. 다만 일본 집들은 깨끗하게 잘 정비되어 있는데 비해, 붓싼을 비롯한 한국의 정비되지 않은 시가지의 집들은 결코 깨끗... 솔까 지저분하다해도 되겠지. 근데, 난 그게 좋다. 뭔가 도시가 그 강렬하다 못해 과격하게 넘쳐흐르는 생명력을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하는 거 같거든. 아키라에서 마지막에 테츠오가 폭주하면서 삐져나오는 살덩어리처럼 말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저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실례되는 무례한 말이다. 결국 저런 집들은 하층민들이 어렵게 사는 곳인지라... 나는 이걸 가난 뽀르노라고 부른다. 다만 이 역시... 기나긴 서설들에서 이야기한 배덕의 변증법의 범주에서 참 생각을 복잡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감흥을 유발은 허는디, 그게 대상들에게, 위에 말한 대상화가 되어버리는지라...


그러나, 곧 갈 매축지 마을의 사례에서도 보이는데, 이걸 보고 감흥을 느끼는 사람이 나만은 아닌게 분명하다. 매축지 마을은 말 그대로 "빈민촌" 인데, 그 곳을 추억의 마을로 관광지화 한 곳이거등. 사실 그렇잖은가. 한국은 30년전정도까지만 해도 이런 집들이 대부분이었고, 지금 좀 번듯해졌다고 아까 올린 사진같은 아파트들을, 이걸 다 밀어내고 그 자리에 짓은 나라이다. 그래서 근본이 없다는 거다. 문제는 이런 허름하고 가난한, 아픈 모습들이 과거의 모습이고 근본이라고 마냥 남겨둘 수는 없다는 것, 여기서 모순이 생기는 거랄까나. 개인적으로는 생활보조 잘 해주고 내부시설 리모델링을 잘 해주되 건물 모습은 보존하기를 바라지만 시간과 예산, 그리고 사는 사람들의 인식이 그게 쉽게 받쳐주겠는가... 깔끔하게 헐고 아파트 짓는게 가장 경제적인 타협책인지라... 물론 그 와중에 소유자가 아닌 세입자들의 처지는 더더욱 한심한 그 처지가 한 두번이 아니게 되어버리지만 말이다.


이것도 따로 글을 써야할 일인데, 말 나온김에 간만 보는 정도로 올려둔다. 워낙 델리킷한 주제인지라.


이건 공장블록에 대충 만들어놓은 배수로 같지만 이름이 있는 가와이다. 것도 이름이 무려 부산천

삭막하고 황량한 풍경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내 변태적 감수성을 한 폭에 담아내는 그림이라 올려놨다. 멀리 보이는 붓싼으 마을들도 매룍뽀인뜨


가난뽀르노라는 딜레마는 잊고 정겨움과 호젓함 아름다움에 취해보기로 하자. 퍽이나 맘에 드는 모습들이다. 특히 저 은하탕 뭐여... 소시적 아빠 손잡고 때밀면 아프니까 비누칠만 하면 안돼? 하다가 혼나든 그 목욕탕의 이데아 그대로이다.

붓싼답게 밀면집 사진도 한방. 조방밀면을 갈거라 못가서 죄송해용


이 곳들 정도로도 가난뽀르노란 말 듣기 충분헌데 매축지 마을은 더하다. 잠시후 공개됩니다.


님이 무엇입니까? 언제나 그리운 이름입니다. 님은 바로 철길건널목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부우운!!!


서울 시내에는 서소문건널목이 건널목의 이데아를 잘 보여주는 모습으로 남아있다. 다음에 또 가서 열차 구경해야징


매축지마을 입구다. 윗윗 사진에 '더하다' 라는 말의 의미를 느끼시겠는가?

물론 이건 진짜 일제시대에 마을이 조성되던 무렵의 버려진 건물을 보존... 이라기 좀 민망하지만 하여튼 보존하여 안내표지시설화한 것이다. 사람들이 사는 집은 이보다는 낫긴 허다.


이래뵈도 마을문화재 3호이다. 세월은 그 자체로 무게인 것


마을지도


구구하게 설명이 필요할까. 이런 마을이다. 많은 토인들이 살고 있다. 100년전에도 지금에도


한국에 얼마남지 않은 전통적 신비주의의 흔적.


매축지마을이라고 하늘이 높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골목이다. 노무 골목스러워서 골목이란 말 말고 뭐가 더 필요할까 싶다.


이렇게 탑처럼 솟아있는 다락방같은 구조의 부옥은 어렸을 때부터으 로망이다. 정녕 인간은 하늘에 닿고 싶은것인가.그런걸 다락방을 통해 느끼는 것은 네 놈뿐일게다.


유명한 타워팰리스와 구룡마을 사진과 구도가 비슷해보여서 찍었다. 아파트가 없었더라도 마을의 중심4거리 모습은 잘 보여줄 사진 같긴 허다만.


이왕 낡은 마을인거 성진전기 말고 성진전파사였다면 더 분위기 살았을건디.


첫 사진으 건물은 마을들머리라 마을문화재도 뒤얐는디, 이건 마을 한 가운데라 그냥 재난위험시설 경고만 붙고 말아부렀다. 마, 건축양식상으 특이점도 없어보이긴 헌다만... 수십년뒤엔 이런 양식으 건물도 그만큼 얹어진 세월의 무게가 문화재로 만들어줄지도 모르제.


아까의 입춘대길 건양다경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간, 한국 신비주의의 잔영.

붓싼을 비롯한 영남권은 한국에서 불교으 세가 가장 강한 지역중 하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신비주으으 담지자는 종교이니... 물론 신으 자손이 만세일계로 2천6백년을 다스려온 내지에 비할바는 아니다. 사실 일본이 바로 그 21세기 사이버펑크의 중심에 서 있는 나라주제에 애니미즘에서 별로 벗어나지도 못한 신토같은 것을 신봉하고 신앙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고, 나는 그걸 매력으로 느낀다는 거긴 허다만. 신비주의라는 방식 자체는 농담거리로 조차도 치부 안한다. 그러나, 그것은 삶의 모습이었고 삶으로서 수천년간 이어져 온 것. 흙벽 대충 바른 건물도 1백년이면 문화재가 되는데 수천년간 살아온 삶의 양식이 그런 감흥을 유발하지 않을리는 없는 것이다.


마을을 돌아다니다보니 만물상 비슷한 곳이 있더라. 매축지마을을 대표하는 공방이랄까나? 소박함의 이데아 그 자체. 마을의 중심지 역할도 허는지 안내판두 서 있구, 마을 사랑방 역할을 하는지 하라보지 할모니들 앉아 담소나누는 으자도 있었다. 이 쯤이면 마을으 정겨움을 대표하는 모습이지 싶구 가난뽀르노라는 죄책감 덜 느끼고 찍어올려도 될 거 같은 모습아닐까 시프요.


매축지마을 여행은 여기까지다. 초라함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 그대, 실로 무용의 용을 터득한 자일 것인저.


...


조방밀면... 잊지 않겠다... 어차피 붓싼은 밀면으 왕국인지라, 인근으 다른 밀면집 가서 먹었고 국수요리란건 원래 구두끈으로 만들어도 맛있게 마련인지라 잘 먹었다. 그랴도 명소는 명소라 명소인건디... 난중에 또 가보지 모.


야마구치 여행기라고 써 놓고 붓싼 구경만 시켜서 미안허다... 그랴도 붓싼도 매룍있는 도시당께요.


사실 매축지마을 구경하고 일본으로 떠나서 일본으 마을을 구경하면서는, 아 한국 마을은 개뿔도 아니구나... 라고 생각혔는디... 다시 붓싼에 돌아와 붓싼으 마을들 보니 그랴도 붓싼도 볼만허구나, 하는 생각을 혔다. 아무래도 그 순간 느끼는 감정에 충실한 1차원 단세포 짐승적 인간인지라 ㅎㅎ그랴도 미투 당할 짓은 안한다.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겠지 물론 이 투고에서 보여드린 모습은 가치판단 문제도 있고 뭣보다 호불호가 갈리는... 솔직히 말해 나말고 이런 모습 좋아헐 사람이 을매나 될지 좀 으심스럽긴 하다. 그러나, 이게 우리으 과거다, 라고 생각하믄 의미가, 의미가 느껴졌다면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헌다.


사라져가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아! 방장경략 모르시는구나! 제목부터 또 구구하게 설명들어갑니다~


제목이 왜 저따구여... 말고라도 어차피 설명을 쫌금 더 하긴 혀야혔음. 지지난회가 전략수준, 지난회가 작전술 수준이었다면 전술수준에서 야마구치 여행계획을 어떻게 수립했는지는 약간은 썼어야 허는지라... 구체적인 여행기는 전투기록이라고 보믄 되구.


야마구치~ 의 지도 되겠다. 이미 서술헌 바 입국은 시모노세키다. 시모노세키로 입국헌다고 정해놓긴 혔는디... 누누이 말허지만 생각보다 일본으 1개 현은 넓다. 들어는 갔는디 어디가서 뭘 봐야허는겨... 경도나 동경같은 유우명 관광지가 쫘라락 정리된 긋도 아니구. 그럴때는 일단 덮어놓고 돌아다니고 보는거다. 그리고 돌아다니는 거라면 역시 끝에서 끝이지. 묘하게 삼각형의 느낌이 있는 모양새다. 그리고 시모노세키는 삼각형으 좌하꼭지점. 그렇다믄 상단 꼭지점과 우하단 꼭지점을 가보믄 되겠지? 하는 심뽀로 일단 상단인 하기, 우하단인 이와쿠니는 덮어놓고 가보기로 혔다. 그리고, 나중에 보니 이 두 곳이 야마구치 여행의 중핵이 되는 곳일줄이야... 일이 잘 될라믄 찍어도 정답이 나온다. 나가 대학을 그렇게 갔다.


언제 출발허며 일정을 몇 일로 잡을 것인가도 문제였는디, 관부연락선을 타고 가기로 헌 이상 관부연락선으 운항일정에 맞추는 것은 기본. 다행히 표를 구허던 2017년 12월당시에 2018년 2월표를 예매하믄 반값으로 할인해주는 프로모션이 있더라. 이번에 돌아다니며 보니... 유우명 관광지들을 다니는데도 여행자는 커녕 토인들도 없이 나 혼자인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관광객땀시 사진이 방해받는 일은 읎었구, 그 괴괴한 느낌이 더 좋았지만~ 같이 가기로 헌 지인이 안타까운 집안일로(가족으 사망까지는 아니라 천만다행인) 못 가게 뒤야서 혼자 가게 되어서 그런 면의 장점은 극대화되었달까나.


각설하고

2월은 비수기다 이 말씀. 그려서 표가 반값이더라. 그리고, 그 프로모션의 경우 최대 일주일간 체류가 가능혔다. 그라믄 일주일 있어야제~ 하고 2월 2일에 출발하여 2월 9일에 돌아오는 일정으로 잡았다. 사실 일본에서 출발허는건 2월 8일이기에 하루 더 잡아도 뒤얐긴 헌디... 그랬다믄 그 하루를 호후 혹은 나가토에 썼을 거 같다. 하여튼 일본에 풀로 있는 것은 3일부터 8일까지 6일이니 넉넉해 보인다. 결과적으로 많이 모자랐지만, 그랴도 야마구치의 맛은 살짝 보고 왔다, 라고 체면치레 할 정도는 뒤얐으니.


위에서 말한 바, 하기와 이와쿠니와 시모노세키 삼대장을 기준으로 놓고 동선을 짜기로 혔다. 교통수단은 당연히 슈코토니 갓코 시테이루 라보노 파스다!... JR 파스임. 가끔 이상한 일본어를 늘어놓는데, 저거는 나가 가장 인상깊게 본 일본 애니인 몇번 포스팅 한 적도 있는 아키라의 대사들이다. 아키라는 장점이 많지만 특히나 성우들으 호연이 돋보임. 대사를 듣는 자체가 청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각설하고

파스는 야마구치 히로시마 파스라고 딱 나에게 맞는게 있더라. 이왕이믄 야마구치 파스면 더 좋았겠지만 그것까지 바라는건 욕심이긋제. 근디 생각보다 비싸다. 두 개 도만 돌아다니는데 5일에 11000엔... 지난번에 사용한 북구주 파스가 대략 5개현 5일에 10000엔(물론 난 3일짜리여서 8500엔)인거 생각하믄 쫌금... 야마구치 히로시마는 철도망도 후쿠오카를 끼고 있는 북구주만 못헌디. 회사가 구주는 JR구주이고 여기는 JR서일본인데, 서일본이 사비스가 좀 구리다. 구주는 안내매뉴얼도 주고, 환율우대권도 주고, 한글패치도 잘 되어있고 심지어 KTX 할인권도 주던디 서일본은 꼴랑 영어 일어 중국어만 쓰여있고 한국어는 읎는 교환권 한장 주고 끝... 구주가세요 구주. 서비스 더 좋음. 근데 서일본이 압도적으로 넓고 여행지도 더 많다...


하튼 저렇게 파스를 끊어서 돌아다니는데... 이 동네 지리가 또 그지같다. 일본의 중서부지방을 주고쿠, 한국 발음으론 중국이라고 한다... 중국열도설...


핑크로 하이라이트 된 지역이 주고쿠다.꼴리다 만 좆같다 이 지역은 가늘고 긴 지역의 중앙부에 주고쿠 산맥이 지나가는데, 이 주고쿠 산맥으로 두 지역간의 이격이 상당히 있는 편이다. 그를 반영해서 율령제 시기에 지역을 구분하면서도 주고쿠 산맥 남부지역을 산양, 주고쿠 산맥 이북지역을 산음이라고 불렀다. 죽어도 지네 나라가 양이라 이거지... 산양도는 령제국으로는 하리마 미마사카 비젠 빗츄 빈고 아키 스오 나가토이고 산음도는 단바 단고 다지마 이나바 호키 이즈모 이와미이다. 현으로는 깔끔히 안 떨어지는게 산음인 다지마국과 산양인 하리마국이 지금은 효고현 하나로 묶여있고, 단바국과 단고국은 교토부에 속하는지라... 그를 제외하믄 오카야마현 히로시마현 야마구치현이 산양도이고 일본 체고에 번화지역 우라니혼의 자존심 돗토리현과 시마네현이 산음도랄 수 있긋다.


야마구치현은 현 전체가 산양도이긴 헌디... 말이 산양도지 주고쿠 산맥으 마수는 야마구치에도 깊게 삽입되어 말은 그렇게 하지만 교통망은 정직하게 맨들어 놓았다. 시모노세키는 산양도와 산음도가 만나는 곳이니 두 방면 모두와 잘 통하지만... 산음에 가까운 하기와 정진정명 산양도으 한 가운데인 이와쿠니 두 지역간에는 교통이 그지같은 것. 일개 현 내인데, 하기에서 이와쿠니로 가려면 신간선을 이용해도 열차로 3시간이 걸린다. 한국도 그런 경우 많지만 한국은 철도가 보조교통이니 논외. 이를테면 충남 보령에서 충남 대전(광역시는 개뿔 안희정이나 처먹어라)을 열차타고 갈라믄 보령에서 장항선열차를 타고 천안까지 한시간 반을 간 다음 거기서 경부선 열차타고 다시 한시간 정도 가야허니 얼추 비슷허다. 그러나, 고속도로가 있는데 그런 짓을 왜함. 그러나 여기는 일본이다. 철도가 주고 도로가 종이다. 물론 도로가 있긴 허다. 근데 도로로 최단거리로 가도 2시간 11분 나온다 지금 구글에 쳐보니깐. 보령에서 대전까지 서천공주간 고속도로 이용허믄 1시간 쫌금 더 걸릴건디... 그만큼 주고쿠 산맥이 험한걸루 허자.


그런고로 시모노세키 하기 이와쿠니 삼극점을 축으로 하는 라인을 짜기도 만만치가 않았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그 세 곳만 갈 것도 아니다. 그 지역을 갔으면 이러니 저러니해도 수부도시를 가야하지 않겠는가? 야마구치 현의 수부도시는 정직하게도 야마구치 시. 이 곳도 가야헌다. 그리고 일본은 섬나라인데, 어쨌거나 4대섬이 본토라 치고 그 외에도 4천이 넘는 섬이 있는 섬대국이다. 섬나라에 갔는데, 정진정명의 섬을 안 가보면 안되겠다, 싶어서 야마구치으 해안선을 돌아보다 눈에 띈 곳이 맨 윗 지도 우하단의 스오오시마정이다. 이 곳의 본 섬은 야시로 섬이라는 그 마을에선 제일 큰 섬인디, 이 섬이 찾아보니 또 명물이었던 것이다. 맛과 멋과 역사가 어우러진 버라이어티한 섬이 아닌가. 일단 갈 곳은 이렇게 정했고 동선은 다음과 같이 정했다.


3일 - 이른 아침에 시모노세키 입항. 시모노세키에 머물지 않고 바로 하기로 출발, 산음본선 열차를 3시간(...)동안 타고 하기에 도착하여 여행하고 거기에 숙박

4일 - 하기에서 열차타고 산음본선 미네선 산양신간선 똥꼬쑈를 벌이며 3시간(...)거리의 이와쿠니로 이동하여 이와쿠니여행하고 거기에 숙박

5일 - 이와쿠니에서 스오오시마가 가까운 관계로 스오오시마를 여행하고 온 후 다시 이와쿠니에 숙박(다행히 여기는 열차가 30분 거리 물론 요금은 5천원이다5천 이상이요?!!)

6일 - 산양본선을 타고 또 3시간(...)을 가서 시모노세키를 여행하고 숙박

7일 - 시모노세키에서 산양본선 야마구치선을 타고 야마구치 여행을 하고 다시 시모노세키로 돌아와 숙박

8일 - 시모노세키 여행후 밤에 배타고 일본출발


이런 일정이다. 후후... 무섭나...?이제는  고인된 텐류쨩...


저 계획을 최종적으로 확정한 것은 출발하기 3일전이던가 2일전이던가이다. 그 동안 참 사이트 많이 찾아보고 지도도 슐리펜 장군님이 프랑스 침공을 위해 도로 하나라도 더 찾아내려고 벨기에 지도 들여다보듯이 들여다 봤다. 물론 슐리펜 장군님과 달리 난 성공~ 구체적인 방문지는


구글켜놓고 덮어놓고 해당지를 들여다보기

검색을 통해 요와 가케히키... 요지를 찾은 다음 지도에서 위치를 확인하고 인근 파악


을 병행했다. 그렇게 하여 방문하기로 결정한 명소들이 대략 60여곳.


보시믄 알긋지만 나가 좀 꼼꼼한 편이다... 계획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세워놓고 그대로 움직이기를 즐기는 스타일이랄까나. 아이젠하워 장군님께서 계획은 시작하는 순간 틀어진다 그래도 계획은 세워야 한다, 라곤 허지만 여태까지으 여행을 돌아볼 때 계획이 그렇게 크게 틀어지는건 아니었고 이번에도 90%이상으 달성율을 자랑헌다. 물론 상대가 있어서 그에 맞춰 행동해야 하는 군사작전과 달리 스오오시마와 천하대명물 유리광사5중탑 쇼인무덤 같은건 어디 가는거 아니니 그런 차이가 나는거긋지만.


야마구치 내에서 어떻게 움직이기로 한 지를 쓰는데 한 회가 들 줄은... 사실 여행을 계획적으로 하는 것에 비하면 글 쓰기는 오히려 충동적으로 헌다. 뭘 쓸지만 정해놓고 덮어놓고 글쓰기버튼 부터 누르기 시작허는지라. 피지라... 아니 피지알의 글쓰기 버튼과 달리 내 블로그으 글쓰기 버튼은 한량없이 가볍다. 낄낄. 글을 계획적으로 쓰는 능력이 있었다면 지금쯤 문필로 나름 이름있는 사람이 되었을 자신이 있긴 하다만서두 현실은 방구석 잉여니깐.


각설하고

이제 진짜 여행기를 쓰기 위한 밑밥은 다 깔었다. 오히려 3회로 나누는 바람에 전략 작전술 전술계획이 정리가 된 면도 있어 보이구. 다음 일본여행을 할 때는 전략편 작전술편은 이번에 써 놓은 것을 링크거는 것으로 때울 수 있긋제.

다음회부터는 진짜 여행기를 쓴다 진짜루! 어차피 보는 사람이야 을마 읎지만 요와 나가 여행하믄서 느꼈던 그 감동을 다시 새록새록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긋제.




충동적으로 쓰다보니 역시 이게 문제. 방장경략 설명을 전혀 안했구먼...-- 의식의 흐름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진짜 여행기에 쓰려면 이 또한 사연이 구구허니 저거까정 써 놓고 글 마쳐야긋다.


일본의 령제국들은 각각의 약칭이 또 있다. 몇개만 예를 들자믄

아키국(安芸) - 게이슈(芸州)

에치젠국(越前) - 엣슈(越州) - 이 경우는 엣츄(越中) 에치고(越後) 전부 엣슈다. 비슷하게 備자를 공유하는 비젠 빗츄 빈고(각각 전중후...)도 약칭은 공히 빗슈

사쓰마국(薩摩) - 삿슈(薩州)


이런 식이다. 솔까 뭐 줄일거 있다고 약칭을 부르는진 모르긋다만...

이번에 여행을 간 야마구치현은 스오(周防)국과 나가토(長門)국 두 나라가 합쳐서 된 현이다. 그리고 약칭은 각각 보슈(防州), 조슈(長州). 조슈란 이름은 메이지 유신 당시의 조슈땀시 아는 분도 많을 것이다. 이 조슈가 그 조슈임. 방장경략은 이 둘을 묶어 부르는 것임은 능히 짐작할 수 있으시겠다만, 이 둘이 묶이는 역사적 사연은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일단은

https://ja.wikipedia.org/wiki/%E9%98%B2%E9%95%B7%E7%B5%8C%E7%95%A5


일어가 된다믄 이걸 보시는 게 낫긋제. 나가 일어가 뒤야서 저걸 아는건 아니구 신장으 야망을 열심히 하다봉께 알게 된거긴 허다만. 일본 전국시대에 수많은 효웅명인기자괴걸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나가 가장 경모해 마지 않는 인물중 하나는 모리 모토나리 도노이다.


이번 여행중 모리저택에서 찍어온 모리 모토나리 공의 존영

잘 보면 내 얼굴 보인다 ㅎㅎ


모리 모토나리는 야마구치 옆동네인, 지금은 히로시마현으 일부인 아키국의 호족으로서, 전국시대 최강의 지략가로 이름이 높다. 신장의 야망 시리즈 보면 거의 대부분 지략 100은 모리 모토나리으 것. 가끔 아마고 쓰네히사나 호조 소운이 더 높은 경우도 있지만. 이 양반은 본시 아키의 국인중 우두머리격에 지나지 않았으나...


일본에 쫌금이라도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믄 누구나 안다 혀도 과언이 아닌, 이 이쓰쿠시마 신사가 있는 이쓰쿠시마섬에서 당시 방장지방을 지배하던 오우치 가문의 군세를 격파하고 단숨에 전국대명으로 약진한다. 오우치군을 격파했으믄, 오우치의 땅을 먹어야 할 것이 아닌가? 이게 보초케이랴쿠 = 방장경략인 것이다. 나가 다닌 이 여행이 딱 방장의 땅을 답파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이 지역이 모리 모토나리 이후, 모리가문이 몰락하고도 에도시대 내내 모리가문의 영지로(몰락전의 영지는 이것의 4배정도...) 남은지라 어디를 가든 모리가의 흔적을 찾을 수가 있었다. 야마구치시에서는 모리 모토나리 도노에게 헌상된 신사도 갔고. 아쉽게도 모리 모토나리 공의 묘는 아키국 - 히로시마현에 있는지라 참례는 못혔다만.


그렇기에, 모토나리 공을 기리는 의미에서 여행기의 이름을 방장경략으로 정혔다.

내일부터는 진짜 방장경략이다. 요오시~ 토오바쯔다~~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언제봐도 아름다운 국지도부터 보고 가자



전에 글(http://angelusnobus.tistory.com/101?category=755524)을 쓴 적도 있지만 나으 일본 모에의 출발점은 명백히 대망이다. 그 이전에는 일본에 대해 딱히 큰 인식은 없었던... 한국의 민족주으으 포풍의 경우 그 기반으 상당부분은 반일에 의지하고 있긴 허다만, 딱히 일본을 크게 미워해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헌다. 기억이 애매헌 이유는 대망을 읽은게 고등학생때 대략 2학년때쯤 일이고 그게 1994년으 일이니 벌써 24년전으 일인지라... 글구 지나놓고 생각혀보니 확실히 중고생때는 생각으 변화가 급속하야 난중에 명확히 구분하기가 힘들다. 핵교 댕기던 시절을 생각해보믄 학년학년정도가 아니라 학기학기 중간기말등 정기고사단위로도 꽤나 '시대구분' 이 된다고 생각혔었는디, 지금와서 보면 부질읎다. 나가 주장허듯이 지금의 고대 중세 근대 3기구분도 인류역사가 아직 6천년괴베클리테페 어리둥절~밖에 안 뒤야서 그딴 구분이 가능헌거지 6만년되고 6억년 되면 그때가서 요람시기의 6천년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현실은 작금으 알량한 기술발전갖구 무려 4차 산업혁명같은 소리나 허구 앉았다만. 근대 이후으 최대 발명품은 누가 뭐래도 "경제성장" 인디 이로 인한 성장인플레가 유발한 가장 큰 문화적 부작용은 언어 인플레라구 본다. 다 성장허는디 언어만 그대로면 웃기잖어. 이 모순이야 현 단계으 인류가 쉽게 넘어설 것은 아니다만


각설하고

딱히 일본에 대해 별 생각읎던 아해가 대망을 읽고 일본에 대한, 그 단계에서는 상당한 이해와 지식을 쌓게 뒤얐다. 뭣보담 지명과 인명에 대한 이해. 지인중에 JLPT 1급수준은 진작에 넘은 양반이 있는디, 심지어 이 양반보다 인명이나 지명은 나가 더 잘 읽는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 당연히 대망으로 기초를 쌓고 신장의 야망^^으로 심화과정을 밟아서 그런거긴 허다만. 아 글구 하나 더 생각났는디, 대망을 읽기 전에도 일본에 대해 우호적으로 될 큰 계기중 하나가 콘솔게임 슈퍼로봇대전스파로봇또다이센ㅋㅋ이다. 여기선 뭘 배웠냐면 가타가나 읽는 법을 배웠다. 대개 일어를 첨 공부하는 분들중 가타가나땀시 약간으 불편함을 겪는 분들이 있는디, 나으 경우는 외려 가타가나부터 시작한 셈인지라... 스파로봇또다이센에 등장하는 로봇또들이야 대부분 일본표현이 아닌 양식표현을 쓰는 로봇또 - 마징가 젯또에 브레스토화이야 처럼 - 들인지라 대개 가타가나로 표현을 했거든. 그 외에는 대부분 한자였고 덕분에 거의 유일하게 히라가나로 쓰여있던 히라메끼- 번뜩임이 나가 처음 접한 히라가나 일본단어였다 랄까나.


나가 본 대망은 이 판본이다. 마침 어떤 현자가 사진을 웹에 투고해주셨구먼

들어는... 아니 읽어는 보았나 세로쓰기?

내 연배인 분들이야 종종 봤겠다만 80년대 이후출생이신 분들은 거으 못 봤으리라.


대망 스파로봇또다이센 신장으야망은 나에게 있어 일본문화의 입문이 되어준 삼종의 신기랄 수 있긋다.

일본 전통지명에 대한 애착과 호의도 다분히 거기서 온다. 한국의 경우 신라시대 9주5소경, 고려시대 5도양계에 이어 조선시대에 와서야 현재까지 이어지는 8도체계로 변천을 겪는다만, 일본으 경우는 신라시대와 동시기인 헤이안시대에 율령을 반포하믄서 정한 5기7도체계가 유신까지도 이어왔기 때문에, 역사적 뿌리가 깊기두 허구. 일본이 근본깊은 거야 앞으로도 수도없이 말할거다만. 그리고 그 근본깊음이 양날의 칼이란 것두.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66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긋다. 일본인 칭구들을 좀 사귀어보고 싶긴 헌디, 한국인 칭구도 제대로 못 사귀는 나가 뭔 일본인 칭구를... 한국인이란 희소성으로 어떻게 되... 기엔 이젠 한국인도 노무 흔하구먼... 씁~


하튼 일본지리를 미카와(대망의 주인공은 이에야스고 이에야스의 출생지이자 출발지가 미카와 오카자키성. 한국으로 치면 전주... 라기엔 이성계는 본관만 전주지 출생성장은 다 동북면이긴 허다만...)에서부터 출발한 것인지라 66국에 대한 애착은 각별허다. 이게 일본여행의 대전략에 있어서 심리적 갈등을 일으킨다. 어쨌거나 나는 일본을 좋아허구, 일본 전국을 샅샅이 여행다녀볼 생각이다. 대개 일본여행하믄 동경 혹은 오사카+경도, 요즘 세상에는 후쿠오카 등으로 입문하여 한번 가보고 땡이거나 저 세 군데만 대충 가보고 딴데가야징~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헐게다. 일단 가까운지라 해외여행느낌이 덜 나기두 허구 한국이랑 비슷하네~ 라는 일부 몰지각한 무리들으 언어도단의 생각들두 있기두 헌지라...


오카자키시는 이 곳

이에야스가 본격적으로 세력을 넓힌 거점은 그 오른쪽의 하마마쓰

이에야스가 천하인이 되고 막부를 세운 에도는 다들 아시는 그 곳...

그리고 이에야스가 어렸을 때 인질생활을 하고 만년을 보낸 곳은 하마마쓰 오른쪽의 시즈오카(당시 이름 순뿌)이다


그러나, 나는 당분간 오사카나 동경 경도에는 갈 생각이 읎다. 처음 간 곳이 아마 거으 대부분으 한국인이 가볼 생각은 커녕 들어본 적도 없는 사가였고 지난번에 간 곳은 야마구치... 전에 어떤 자리에서 야마구치라고 하면 못 알아들을까봐 그래도 한국 사람들이 알 거 같은 시모노세키 간다고 혔더니 되게 특이한 곳 가시네요~ 라는 답이 오드라. 관부연락선의 대본영조차 이런 대접이다. 그리고 아마 올 6~7월에 한번 더 가게 될 거인데, 그때도 가고시마에 가게 될 것이다. 올해가 유신 150주년이거든. 유신하믄 삿초동맹이고 조슈는 갔다왔으니 삿슈도 가 봐야 할 거이 아닌가? 가고시마는 사쓰마국과 오스미국이 합쳐져서 맨들어진 현이다. 그 뒤로도 북해도 폐선여행 가야허구 이에야스도노의 여로를 따라 미카와도 가야허구 지인이 와카야마 진출 예정인데 와카야마도 가야허구... 동경 오사카 같은 데 갈 시간 읎다.


각설하고

몇 번 말혔지만 나는 얕게 갈 생각이 없다. 한 지역을 잡고 샅샅이 뒤져보는 여행을 추구헌다. 사실, 이 말도 언어도단인게... 이번에 야마구치 한 곳만 잡고 갔다왔고 그 한 곳에서만 6박6일(관부연락선 선상숙박땀시)을 있다 왔다만 못 간 곳이 많고 간 곳에서도 못 본게 많다. 하기 이와쿠니 스오오시마 야마구치 시모노세키를 보고 왔다만 나가토 미네 야나이 슈난 우베 산양오노다는 못 가봤다. 이와쿠니를 갔다지만 니시키가와세이류선은 타보지도 못했고 스오오시마에 갔으나 타치우오는 구경도 못했으며 88개소 영장중엔 꼴랑 두 곳 밖에 못 가봤다. 샅샅이? 사앝사~~앝이~~~이? 고작 일주일 가놓고 샅샅이라고 말한다니 어찌 언어도단이라 하지 않을 수 있으리.


그러나 현실이 그렇다. 이 또한 누차 말하지만 서울 33+3년 살믄서 아직도 새로운 곳이 계속 나오는디, 살지도 않는, 그나마 외부에 알려지지도 않은 일본 시골이라믄 말할 것이 있으랴. 어쩔 수 없이 피눈물을 머금고 한 지역을 대충 일주일 잡고 다녀만 보려해도 몇십번을 가야 다 들를 수 있는 게 일본여행인 것이다. 일본을 다니듯이 한국을 다녀봐라, 라고 일침을 놓을 민족주으으 포풍에 사로잡힌 분이 있을지 모르는데, 내 폴더에 저장된 한국여행다니믄서 찍은 사진 보여주면 찍소리도 못할테니 아닥들 허시구. 여행을 원체 좋아허는지라 한국도 한두군데를 다닌게 아니다. 붓싼 같은 경우는 10번도 넘게 갔다. 한국에선 역시 가장 입체적이고 다채로운 붓싼이 좋드라.


각설하고

어쨌건 한 지역을 대략 일주일 안팎으로 다니는 것으로 가 본걸로 하기로 하고 각 지역을 제패하는 것으로 허자, 라고 생각을 잡았다. 말 나온김으 이야긴데 이 제패라는 표현이 또 꽤나 일본 스럽다. 한국에선 아주 생소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상적으로 쓰이는 표현도 아닌디 일본에선 일상적으로 쓰인다. 게임을 제패 여행을 제패 관동을 제패 하여튼 뭔가 complete 했다고 여겨지면 아~ 제패했다~ 라는 표현을 덥썩덥썩 붙여대는 것이 일본으 언어문화인 것. 생각해보믄 꽤 재밌는 개념 아닌가. 별거 아닌거 다 해놓고 제패! 라는 그럴싸한 표현 붙이기 좋아하는게 누차 말하는 일본인의 중2로움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기두 허구. 그랴서 나도 제패라는 표현을 소중히 하는 유신의 심장이 따듯한 일본인이 되기로 하였다.


하튼 제패를 허긴 혀야허는디... 고민은 제목대로다

47도도부현을 제패하느냐 66국을 제패하느냐.


여기서 또 잠깐 이야기하자면 쓰시마와 잇키는 국으로 안친다. 율령이 반포되던 당시의 5기 7도 66국만을 인정한다... 라고 하기엔 데와 무츠가 쫌금... 아니 쫌금 많이 걸리는디... 무츠 1국을 위에 서술한 개념으로 제패하려면 1달도 더 걸릴텐데... 역시 이와키 이와시로 리쿠젠 리쿠오 리쿠츄로 제패혀야... 하튼 요와 가케히키도 네마와시다나... 이게 아니고 하튼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일본을 제패하느냐다. 나는 헤이안 시대의 마음을 소중히 하여 66국을 제패... 하려고 하니 이게 문제가 한 둘이 아니다. 앞서 말한 데와나 무츠의 경우는 위에 쓴대로 나중에 쪼개진 구분으로 제패하는걸로 갈음할 수 있다고 치자. 관동 아와나 동해도의 시마국같은 경우는 어쩌지? 진짜 손바닥만해서 한국으로 치면 1개 기초지방정부만도 못허다. 안동같이 큰데 말고. 물론 성남같은데보다는 크지만 서천군 정도? 그 정도 할 거 같다. 물론 이 정도 크기면 진짜 일주일에 제패! 할 수 있을거 같긴 허다. 이 생각 지금 들었는디 그럴싸 한데?


진짜 문제는 역시 경계다. 대부분의 국경계는 현재의 현경계로 계승이 뒤얐다. 그러나 위 지도를 보믄 알 수 있듯이 시모사국은 갈갈이 찣겨서 형해화 뒤얐다. 부젠 지쿠젠 지쿠고 일대도 엉망이고. 나가노현 - 시나노국이나 도야마현 - 엣추국 어쭙잖지도 않게 4국 4현이 깔끔히 떨어져버린 사국처럼 깔끔하다믄야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 일관성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번으 야마구치 여행에서도 이미 스오 나가토 두 나라를 한번에 갔다온 셈이 뒤야부렀기두 허구... 일단 지금 나으 일본이해능력 수준에서 과연 스오국과 나가토국을 깔끔허게 가를 수나 있을까? 도도부현 아래으 시정촌단위에서는 국경계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경우가 노무 많다. 이와쿠니시야 깔끔히 스오국이고 하기시야 깔끔히 나가토국이다만, 경계인 미네시나 야마구치 시는? 애매헌 것이다. 물론 진정으로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한다면야 이런 것도 알아서 가야긋지만... 컨셉을 지킨다는건 실로 멀고도 험한 길...


이미 야마구치에서 버린 몸인지라 그냥 47 도도부현으로 하는 것을 主로 그 과정에서 가능한한 66국 여행을 하는 것을 從으로 삼는 것으로 편의적인 결론을 내었다.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66국지도만은 못해도 이것도 꽤 아름답지 않은가


이제 슬슬 야마구치 여행기와 접점이 닿기 시작헌다. 왜 실질적인 첫 여행이 야마구치가 되었는가, 라는 이야기를 할 차례가 왔응께. 일본을 가기로 혔으믄 어디부터 가야허는가? 그 이전의 질문이 반도으 센진이 내지에 갈 때는 어뜨케 가야허는가? 하는 질문이 들었다. 교통편 이야기다. 교통편 이야기지만! 나으 여행은 컨셉이다. 그렇기 때문에 센진으로서 내지에 갈 때는 당연히!


관부연락선


을 타고 가야지! 하는 생각은 진즉부터 혔다. 음... 이렇게까지 쓰는건 일제 식민지배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게 되는지라... 지난 회에서 쓴, 배덕의 변증법 범위에서도 쫌금 애매허다 싶긴 헌디...


일본 개새끼 일본 제국주의 개새끼 일제 식민지배 아웃 아베 씨발놈


이걸로 갈음허자. 일부러 잘못되고 부정한 이야기를 함으로서 배덕감을 즐기는 것이 내 호사가로서의 지향인지라...


도덕주의를 존중하고 따른다. 그러나 배덕주의를 외면치 않고 즐긴다.


이 정도랄까나. 이를테면 앞으로 여행에서 토인이란 표현을 또 많이 쓸거다. 70년대 서부영화나 아프리카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믄 아마 원어로는 native 의 번역이 아닐까 싶은디, 이걸 土人이라고 번역해놓았다. 토인. 아! 얼마나 배덕적인가! 현지인을 멸시하고 얕잡아보는 뉘앙스를 저렇게 잘 담은 표현이 있을까. 지금이야 다 원주민이라고 번역하겠지만, 토인. 이 표현 참 인상이 엄청나게 깊다. 이것도 나으 생물학적 한계 - 70년대에 태어나 그 문화를 향유하고 자랐다는 한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게다. 인종차별과 멸시를 일삼는 현재으 일베 극우들이라혀도 토인이란 표현을 익숙하게 느끼진 않을테니까. 오히려 인종차별을 극력 반대하는 나가 그런 표현에 익숙하고 웃기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이러니인 것인 것이겠지. 하튼 토인이란 말을 쓴다고 나가 원주민을 멸시하는거 아니다. 애버리진에 대한 오스트레일리아의 태도는 글러먹기 짝이 없다. 독일을 좋아하지만 헤레로족에 대한 태도는 아주 썩어빠졌다. 최근까지도 독일 교과서에는 헤레로족의 봉기를 폭동으로 부득이하게 진압했다고 써 있으니.


그렇지만 애버리진도 헤레로족도 토인인걸. 물론 베를린 시민은 베를린 토인이고 붓싼 사람은 붓싼토인, 스오오시마정민은 스오오시마 토인이다. 토인토인~


이런 의도라고 이해해주시라. 식민지배는 아픈과거지만 rule34원칙(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포르노가 존재한다. 아직 없는 것은 곧 나온다)에 의거하여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유희의 대상이라는 것이 호사가로서 내 원칙이고 여기서 예외는 없다. 다만 공개표현으로선 선을 넘진 말아야겠지. 윤서인으 조두숭아저씨 처럼. 이미 넘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만, 적어도 나는 문제의식을 잃은게 절대 아님은 누차 밝혔다. 정 불편하시믄 못 보는거지 뭐. 난 계속 그렇게 쓸거니깐.


각설하고

내지에 갈 때는 관부연락선

이건 철칙이다. 물론 예외있는 철칙... 하여튼 철칙... 지난 2016년에 사가에 갈 때도 당초 의도는 관부연락선을 타고 갈 것이었다. 근데, 9시간 걸린다네? 일정이 3박 4일인데 배에서 18시간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으사 아니 선장양반! 그랴서 으짤수 없이 쾌속선으로 후쿠오카를 통해 갔다. 이것도 3+3시간이지만... 그냥 항공편을 타는게 맞았겠다만, 왠지 배가 타고 싶더라구. 섬에 갈 때는 배 아입니꺼?


그 때는 못 갔지만 이번에는, 역사적인 첫 자력일본여행에서만은 반드시 관부연락선을 타고 가기로 혔다. 관부연락선 탑승의 원칙과 47도도부현의 원칙이 만난다면? 당연히 배가 닿는 곳을 여행혀야 헌다. 관부연락선이 닿는 땅 시모노세키, 시모노세키가 있는 야마구치 여행은 정해진 숙명이었던 것이다. 야마구치가 첫 빠따로 뽑히게 된 데에는 이러한 심원하고도 아련한 사연이 있는 것이다. 때 마침 작년 올해가 명치 유신 150주년이더라. 명치유신을 직접적으로 달성한 무진전쟁이 1867년에 발발하야 1868년에 끝난지라. 야마구치에 가는 것이 더더욱 빛나는 때가 되었달 수 있긋다.


구구하게 말이 많았다만 어디 가볼까? 여기 어때? 그래 가자~ 이런 여행도 좋지만 이런 저런 통빡을 굴리고 나름대로 스토리와 사연을 담아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능가. 세상이란 것은 아는만큼 보이는 것이고 말이 많아지는건 아무래도 아는게 있어서 그렇게 되는 것일텡게. 일본에 대해 참 많이 생각하고 들여다봐왔지만, 직접 들어가보는 것은 (사실상)처음이다. 아 저 사실상 참 거슬리네. 물론 훌륭한 튜터리얼이 되긴 혔다만, 역시 자립과 자족을 모토로 삼는 내 입장에선 역시 아쉽긴 허다. 이것도 참 복잡한 양가감정이랄까나.


왜 야마구치에 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드디어 끝이다. 이제 내일부터는 어떻게 가서 무엇을 보고왔는지를 본격적으로 써 나가겠다.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2부 시작한다.



강을 건너와서도 밀림이다. 서울에서도 가장 교통량이 많은 곳이다보니 그냥 보행자는 포기혔는디, 그러다보니 형식적으로 갖춰놓은 보행시설은 대~자연의 나와바리가 되었달까나. 인간이 아무리 베어내도 끊임없이 자라나는 자연의 생명력 어쩌구 하는 이야기를 간혹 듣곤 하는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저렇게 무시무시하게 파고 들어오는 자연에 맞서 이런 구조물을 유지하는 인간도 대단한 거 아닌가 싶다.



윗 사진과 같은 길을 한참 걸어가고서야 월드컵 경기장으로 가는 길이 나오기 시작한다. 중간에 찍은 사진이야 있지만 딱히 올릴만헌게 못 뒤야서 전체 구간의 10분의 1 정도는 스킵.



서울의 또 하나의 아름다운 내 중 하나인 홍제천. 나가 다녀본 서울의 개울중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곳이랄 수 있다. 다만 이 홍제천은 서울 변두리에서도 안산 인왕산 북악산으로 도심과 살짝 격리되어 있어 덜 개발이 된 한편으로 그 산들만 건너면 바로 서울 도심인 배후외곽인지라, 간선교통망을 깔기 굉장히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고, 그 결과로 짤에서 볼 수 있듯이 내부순환로가 거대한 고가도로로 그 위를 가로지른다. 자연경관을 즐기는 관점에선 실로 안타까운... 뭐 소소한 뽀나쓰로 그늘이 지어져서 햇볕이 따가운 날 산보하기엔 더 좋아졌달 수도 있다만...



다 사람 편하자고 하는 짓이지 VS 그래도 사람답게 살아야지

니들이 뭐라하든 고가도로는 놓여부렀고 태양빛은 그 위에 작렬허고 하늘은 아름답다



마포구 대본영의 모습이다. 원랜 어딨었는지 몰겄는디 하튼 지금은 여기에. 쫌금 검색혀봤는디 검색력이 구려서 못 찾었다.



그 바로 옆에는 세계배 경기장이 있다. 이제 거으 다 왔다



위에 홍제천이 나가 다녀본 서울개울중엔 젤루 옢흐다고 혔는디, 세계배 경기장 진입전에 이런 개울이 있는게 아닌가. 말 그대로 녹색 풀밭 가운데를 오솔길마냥 개울한줄기가 지나고 있는게 탐스럽고 예쁘기 짝이 없다. 진짜 자연하천 같은 느낌. 집에 와서 찾아보니 불광천이라고 허는디... 나중에 여기도 한번 가 봐야 쓰것다.



경기장도 거대구조물 덕후 입장에선 어느정도는 매룍쪽인 것. 나가 제일 인상깊게 본 경기장은 실제의 경기장이 아니라, 나 소시적에 티비에서 방영했던 일본애니 메칸더 V의 대본영이었던 킹 다이아몬드이다. 폐허가 된 도시에 야구장이 알고보니 메칸더 V의 비밀기지라는 설정인디, 메칸더 V가 출동할 때 출격용으로 변신하는 씬이 진짜 개포풍간지. 솔까 메칸더 V보다 킹 다이아몬드가 더 멋졌음. 악당인 콩키스타 군단한테 발각되어 파괴당한 다음에는 이동식 비밀기지로 바뀌는 데 이것도 포풍간지. 그 때의 설레임이 지금도 아련허다. 물론 어린 마음에도, 주변 시가지는 다 뽀개졌는디, 야구장 혼자 멀쩡하면 그걸 콩키스타 군단이 눈치 못채나? 하는 의아함은 들었었구... 그런 의아함이 소시적 아동물 볼 때마다 새록새록 들었으며 그런 의아함들이 임계점을 돌파하면서 사춘기가 온 것일테지. 비단 나만 그런건 아닐거 같은디, 다른 사람하고 이에 대한 이야기는 안 혀 봐서.


잡설이 많은건 상암경기장 자체엔 거으 매력을 느끼지 못혀서. 다만 생각거리는 되었으니 이것이 거대구조물으 존재감!


이러거나 저러거나 경기장 북측을 돌면 드디어 목적지다.



가을은 여기저기에 찾아와 있다. 나무그늘아래 홀로 앉아있는 노인은 예전같으면 인생의 황혼이었긋지만, 이제 평균수명이 늘어나서 저 정도믄 인생의 늦가을 정도는 될 덧. 가을과 가을. 나도 미래엔 저렇게 쓸쓸해질까이미 충분히 쓸쓸한 거 같은데



보이시는가 땅크가


문화비축기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주말을 맞이하여 적잖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근데 집에와서 보니 이태원에서 세계 음식축제도 열렸더라. 장소로 보나 주제로 보나 유명세로 보나 그 쪽이 사람은 더 많았을 거 같다. 그럼에도 여기 온 모든 힙스터들에게 찬사를. 히릿~




근데 뜬금없이 진입로에 이런 믓진 건물이 있었다. 유류비축기지이던 시절의 입구쪽 초소격인 건물이지 싶은디... 이 뜬금없는 세련됨은 뭐지? 미술관이나 박물관 건물이라 해도 믿을 만한 멋짐이다. 하도 세련되어서 여기 재개장하면서 새로 지은 건물인가 생각도 혀 봤지만, 건물이 세월의 때를 적잖이 뒤집어 쓴게, 뭘로 봐도 박원순이 아니라 박정희가 만든 건물로 밖엔 안 보인다. 건물의 세련됨 자체도 맘에 들었지만, 그 뜬금없음 맥락없음이 더더욱이나 인상적인 건물이었다. 커뮤니티 센터라고 되어 있었는데, 안에는 화장실하고 사무실 몇개가 다 였던 거 같음. 모르지 나중에 민토같은 대화 행사방으로 쓸지도. 멋있어서 그렇게 개방된다믄 함 사용해보고 싶다.




드디어 유류비축기지다운 건물이 나온다. T - 6 호라고 불리우는 것 같더라.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탱크의 면모오~~~


쟌넨!

이 건물은 이번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원래 이 곳에는 5개의 대형탱크가 있었고, 그것들은 전략기밀시설이었으며  이게 지어지던 무렵에 북이 저지른 판문점 도끼사건에, 동아시아에서 미군철수, 중미 수교등으로 위협을 느끼고 있던 시점에서 폭탄 한방이면 인근을 불바다로 만들고도 남을 유류탱크를 저렇게 휑뎅그레 허니 공터에 놓을리가 없다...


라는 걸 다른 탱크들을 보고 알았다. T - 1 부터 T - 5 까지 원래 박정희 시대에 지어진 탱크들은 산의 사면을 깎아내어 움푹 들어가게 한 다음, 탱크를 짓고 그 주위를 다시 공구리로 둘러쳐서 간단히 파괴할 수 없도록 만들어놨다.

다만 이 땅크라고 완전 뜬금없는 것은 아닌 게, 5개의 탱크중 3개는 원형을 일정부분 보존하고 1호와 2호 땅크를 해체혔는디, 거기서 나온 철판으로 외부를 만든 것이다. 위치상 저기가 시설의 가운데라 본관격으로 저렇게 짓은 셈


T- 6 이 문화비축기지의 중심을 지키고 있어요~


박근혜 정권으 몇 안되는 업적중 하나일 푸드트럭들. 저런 업태가 이 전에 없던 것은 아니지만, 박근혜으 창조경제가 청년창업으 모델이라고 츄라이 츄라이 했던 대표적인 업태라할 수 있응께 업적이라고 혀 주자. 안 그러면 업적이 노무 없잖아.없는 거 맞지만


저기서 점심삼아 양꼬치 닭꼬치 삼겹살꼬치 꼬치 3종의 신기를 먹었다. 맛은... 음... 당연히 가성비도... 음...



6호땅크 앞에 왔다. 글구보니 2차대전 독일군 주력전차가 대충 6호까지 나왔다고 볼 수 있는디(마우스는 없는걸로...) 그럼 이 놈을 티이거라고 불러야 할까. 원래는 물 등의 액체탱크에서 따온게 전차의 탱크라는 표현이지만, 이제는 역으로 이 탱크들을 전차라고 불러주기로 하자. 사진으로 잘 느껴질 지 모르것는디 볼륨감이 상당하다. 아예 이 문화비축기지으 비축 땅크들 자체의 핵심은 공간감이라는 느낌이다. 저것보다 큰 건물들은 많지만, 그 안이 휑뎅그레 허니 비어서 뜨악스럽게 느껴지는 그 공간감은 이 곳의 매력이다. 진짜 공간감은 안으로 들어가 봐야 알 수 있으니 같이 안으로 들어가 보도록 허자.



장사는 유동인구인지라, 유동인구가 많은 여기 1층은 까페다. 꼬치들을 먹고 양이 부족혔던지라 주전부리를 파나 봤더니 케키 밖에 없어서 관두고 지나쳤다.



이런 계단을 오르고 내려서 안쪽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






이런 느낌이다. 공간감이 느껴지시는가? 사진을 두장씩 묶어 놓은 것은 같은 구도에서 사람이 있는 구도와 없는 구도를 나란히 놓으려는 으도에서 묶어놓았다. 사람의 크기와 비교해보는 쪽이 더 느낌이 잘 올텡게. 몰론, 이거야 이미 말혔듯이 나중에 만든 건물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기지가 갖는 성격을 집약적으로 잘 보여주게 만든 공간이 아니라 할 수 없을 거 같은 느낌이다. 지난 추석때 처음 들어와보고 살짝 압도감을 느꼈던 공간이다.



이런 출입구가 또 보인다. 들어가본다.







방금 실내에서 끼고 돌아온 원통구조물 안은 텅 빈채 옥상이라긴 애매한 중정(中庭)이라기엔 뭔가 삭막한 그런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고 거기서는 위가 뻥 뚫려 있어 하늘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 아 뭐라고 표현해야하지. 내가 이런 느낌을 표현할 줄 알았다면 작가헸을지도. 이 공간이 정말 너무 좋았다. 아무것도 없는 콘크리트로 둘러쳐진 둥그런 벽은 압박감이 느껴질 정도로 나를 윽박질러 온다. 그러나 살짝 고개를 들면 뻥 뚫린 위로 하늘이 고스란히 펼쳐져 있다. 마치 나를 옥죄어 오던 회색의 압박감이 그대로 위로 솟아올라 푸르게 채색되어버린다고나 할까. 이 압박감과 해방감이 엇갈려지나가는 느낌이 뭐라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감상을 들게 혔다.



이런 회전계단도 노무 좋지 않냐. 현실에선 딱히 볼 일도 없는데 이상하게 영화나 애니에선 많이 보는 그런 공간. 현실에서의 일탈의 느낌 그 자체랄까나. 게다가 뱅글뱅글 돌아가는 형태 자체도 초현실적인 느낌이라 참 좋아한다. 안타깝게도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 밑에 내려가보진 못혔다.



갓직히 나가 만든거 같진 않다만 하여튼 그렇다고 합니다.


티이거 땅크 뒷쪽으로 나와봤다. 왼쪽에 보이는 게 1호전차, 오른쪽에 보이는 게 2호전차



딱 봐도 심상찮아 보이는 구조물이 보이는 2호전차 쪽으로 다가가 본다.



육중한 방호시설들이다. 정확한 용도야 도슨트라도 있어 설명을 들어야 알긋지만 하여튼 거대구조물의 위압감을 잘 살려준다는 것은 설명 안 들어도 알 긋다.



이런 모습에서 바위산을 깨고 들어가 만든 구조물이란 것이 잘 드러난다. 박정희... 꼼꼼한 새끼...


넋을 잃고 구경하다가 통로가 나온다. 들어가주자.



공간감각의 충격 두 번째. 하 씨바 그냥 말이 안 나온다. 물론 이 뒤에 한번 더 충격이 오긴 허는디, 예술적 미적 아름다움에서나 공간의 감각에서나 이 곳, 2호 탱크를 부분 철거하고 만든 이 공연장이 최고인 것 같다. 진짜 아름답다. 사진마다 구구이 코멘트 할까 하다가 구린 표현력으로 써 봐야 뻔할 거 같아서 관 뒀다. 귀찮아서기도 하지만 진짜 표현력이 사진에 비해 너무 초라해서가 크다.



아 영상 왜 가운데로 안 놔지지. 사진만으로는 전체으 느낌이 잘 안 느껴질 거 같아, 짧게 동영상으로 찍어봤다. 전문 찍새가 아니니 흔들리는 건 양해를. 여기서 공연하면 나도 고자 말고 대 배우 심영이 될 거 같은 기분이다.

님은 바로 사회주의 낙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부우운!!!



2호 전차를 서서히 벗어난다. 무색조 공구리덩어리에 거뭇거뭇하게 진 얼룩, 슬쩍 얹혀진 잡초덩굴은 옥스포드 대 담쟁이 덩굴같은 것과는 또 전혀 다른 세월의 감각을 보여준다.


사람하나 쭈그려 앉으면 딱 좋은 깨진 구석이 지지기둥 아래에 있다. 야수의 상처랄까나.



1호 전차도 가 봤는데, 전에 왔을 땐 아무도 없더니 오늘은 공연리허설 하는 사람들이 연습하고 있어서 뜨내기는 출입불가였다. 여기는 유리로 둘러쌓여 카펫이 깔려있는 원형공간이 있는디 것 또한 볼 품이 있었다.



3호는 손 안댄 땅끄의 원형이랜다. 여기는 또 어떤 것을 보여줄지 도키도키하믄서 올라가 본다.



입구부터 한 포스 하신다. 아쉽게도 보시다시피 자물쇠를 채워놓아 위는 올라가 볼 수 없다. 안전시설을 쫌 더 하고 접근가능케 해 줬음 싶기도 헌디, 안전시설을 하는게 원형을 훼손헐 수도 있고 낡아서 사람이 닿는 자체가 시설보존에 안 좋을 수도 있으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박원순 체고에 사업 서울미래유산. 많은 옛것들이 보존되길 바란다.




ㅋㅇ~~ 존재감 뽕에 취한다... 지엽적으로 밖에 볼 수 없어 아쉽지만 존재감을 느끼기엔 충분허다.


방호공구리의 두께는 튼실허다. 전략기밀시설이란 것은 이런 것이다, 라는 걸 부피로서 실감케 해 준다.



이대로 가긴 뭔가 아쉽고 어떻게는 등짝... 등짝이 보고 싶다. 이럴때는 개구라장이의 눈으로 보면 돌파구가 열린다



이렇게 옆에 있는 능선아닌 능선으로 올라가면 된다. 하지 말라는 짓은 다 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나는 아직도 개구라장이



보인다... 등짝!




크고... 아름다워요...



근데 보아하니 뒤쪽에 전망대가 있다... 나 뭐한거지... 다만 저기는 이 기지공원과는 별개의 접근로의 장소인지라... 시간과 체력이 되었다면 가 보았을 텐디, 시간도 꽤 지났고 이미 10킬로미터 이상 걸은지라 체력도 떨어진 상태였던지라, 다음을 기약키로 헌다.


대신 귀

여운4

호탱크를 드리겠습니다.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이니 옆에 있는 4호전차가 보인다. 오히려 전차의 전체 면모는 이 너마가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하앍하앍



돌아나와 4호전차로 가보기로 하자. 여기는 전시공간이다.



육중한 면모는 이 곳도 갈 길 없으시다.



나닛...

이 공간감은 뭐지...


나는 여기서 최고의 공간감을 보았다. 6호전차는 훌륭했지만 예술적 각색이 들어가 있고, 2호전차는 6호전차 중정과 함께 개방감과 압박감의 듀오였다. 근데, 코코와... 이곳은... 그냥 땅끄 속을 그대로 냅두고 그걸 통짜로 전시장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 이곳이야말로 공간


The 공간


그 자체였다... 맥락이 있는 이야기는 맥락에서 벗어날 때 위화감에서 닥쳐오는 이야기의 위력을 느끼게 한다. 1편에서 롯데타워 이야기할 때 넛지하게 말혔었지만. 일상에도 감각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무뎌진다. 오직 일상적이지 않은 감각만이 감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긴 여행을 마치고 집에 왔을 때 감동적인 것은, 일상에서 벗어남이 일상을 일탈로 만들었기 때문인 터... 이런 휑뎅그레 한 공간이 유류비축기지라는 40년의 역사적 맥락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감동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술적으로 뛰어난 것은 결코 아니지만 적어도 공간으로서의 감동은 4호탱크가 최고였다. 여기는 날것 그 자체로서의 공간이었으니까



혁명은 옳다. 이 곳은 공간의 혁명이다.



여기는 5호전차의 입구다 5호는 이름이 있으니 판터라고 불를까. 2대전 독일군 1~4호 전차는 왜 간지나는 이름이 없는걸까.



3호전차가 위에서 올려다 본 땅끄의 본 모습이라면 여기는 밑에서 올려다 본 모습이다.


5호는 박물관이다. 이 문화비축기지에 대한 설명과 사연들이 전시되어 있다. 일어로 모노가타리야카타 라고 쓰인게 일뽕을 차오르게 헌다. 기모찌이잇!



입구에 있는 영상물.AVI인데, 전국 각지의, 이러한 문화재생사업에 대한 안내를 담고 있는 음탕한 영상이었다. 보고 쌀뻔했다. 다시 한번 기모찌이잇!!!



드라이한 안내문. 그러나 정수는 차곡차곡 담겨있는 안내문.



아까 들어올 짝에 보았던 뜬금없어 아름다운 초소의 현역시절 모습과 현재모습이다. 유리를 찍은거라 내 몰골이 반사된 것은 못난 꼬라지라 정말 미안하다!!!



채용공고와 입사수험표. 예나 지금이나 채용은 중요하다. 미래엔 알파고가 우리를 기본소득으로 먹여살려 줄 거지만.

충성충성충성



현역시절 기지의 전모라고 헌다. 2호와 4호전차가 보다 큼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둘이 나가 공간감에 압도되었던 두 곳이기도 허구. 큰 것은 아름답다. 크고... 아름다우니까...



재첩잡이 하는 난지도... 이건 굉장히 귀하네요... 저 시절만해도 여름에는 한강에 강수욕하러 가는 게 가장 대중적인 서울사람들의 피서였기두 허다구 헌다.



이 뒤의 모습은 한국이 망하지 않는 이상 오래오래 보존될 것이기에, 이러한, 한 때 존재했지만 이제 볼 수 없는 모습들은 귀한 것. 지어지고 있는 가양대교 같은 사진들이다.


사실 전략기밀시설이라고는 혔지만, 여기 비축한 석유는 민수용이다. 전략비축이 아닌건 아니긴 하지만, 공공목적하곤 쫌금 다른거라. 그랴도 저런 표현이 신비주의를 강화하여 더 그럴싸하게 보이지 않는가? 서울에서 사용하는 석유를 쌓아놨다가, 지금은 SK이노베이션이 된 당시는 공기업이었던 대한석유공사 - 유공 석유차가 들어오면 내 주곤 혔다. 다만, 사진에 나온 설명의 시기에는 이미 선경그룹에 인수되어 SK(주)이던 시절이긴 허다만, 유공이라고 혀야 또 옛날같아 보이잖아. ㄲㄲ



판터땅끄는 우전시실에서 좌전시실로 볼 것을 권장허구 있는디 중간에 이런 회랑이 있다.



회랑에서 청춘들이 희롱하여 놀고 있다. 놀고들 있네.이 씨발 존나 부럽...



말끔하게 다듬어진 새 공구리와 너덜너덜한 낡은 공구리가 함께 있는 사이에 관람방향이라고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는 플라스틱 쪼가리가 왠지 이 곳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거 같아 찍어봤다.



장소는 기억을 지배하고 기억은 의식을 지배한다


인간의 본질은 감각과 기억이다


라는 이 블로그으 모토와 통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런 건 기억해 줘야지. 가능하다믄 1978년 당시 초착공시의 이런 것도 보존이 뒤얐으믄 좋았긋지만, 그 시절은 이런거 때려부수기 정신없던 시절이다. 박정희를 싫어하긴 한다만, 그 시대에 그런 것까지 챙길 여유가 충분치 않았다는 점까지 부정하기는 힘들기에 뭐라 하진 못하긋고 쫌금 안타깝다는 생각은 든다.


박물관은 판터를 둘러싸고 있고, 그 내부는 역시 이러한 공간이다. 다만 이미 4호에서 한번 봤고, 위의 사진에서도 봤듯이 판터보다는 4호가 훨씬 큰지라 감흥은 덜허다. 잠깐 앉아서 쉬다가 나왔다. 이미 많이 지쳤거든



이로서 주요한 곳은 다 둘러 보았다. 가을의 化신이자 花신인 코르모스가 수고했다고 혀 준다.



옛적에는 유류비축기지의 대본영이었고, 지금은 문화비축기지으 대본영이 된 건물을 내려가다가 딱 앉아 쉬기 좋은 곳을 발견혔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마음이 탁 놓여서 찍어본 사진들. 비늘구름이 아름답다. 구름 사진을 여럿 찍었는디, 투 머치 토커라지만 지나치게 투 머치 토크 한 거 같아 싹 다 짤랐다. 다만 여행을 끝 마친 시점의 사진을 글을 다 쓴 시점에 올려보는게 또 메타 이야기가 되는 거 같아 여기엔 올려봄. 구름 이쁘쥬?



이 곳이 문화비축기지으 대본영이다. 모토가 썩 맘에 든다.


구경 다 하고 집에 갈라 그러는디 개막행사장에서 시장님 어쩌고 하는 게 아닌가. 어찌 내가 야발갑, 서울시발님을 그냥 지나치리. 게다가 지금 확인해보니 두 번째 사진은 또 시발 하고 있는 모습이 제대로 잡히신 게 아닌가. 사랑해요 야발갑~ 대통령감은 아무리 봐도 아닌 거 같아, 기대 안한다만 서울시장으로선 나에겐 아주 맘에 든다. 서울시장 3선 임기까지 잘 마치고 그 뒤로도 뭐가 뒤얐든 좋은 일들 많이 하길 바람.


아 길었다. 긴 글 보느라 수고들 많으셨다.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드뎌 역사적인 여행폴더 첫 글이다. 담담하게 주위를 편한 맘으로 산보하는 여행을 즐기는 터이다. 그리고, 그렇게 즐겨도 좋은 서울의 모습을 널리하루 1백명의 방문자에게 알리고 싶기도 혔었는지라 도키도키허다. 너무 힘주지 말고 가벼이 쓰도록 해 보것다


 전에 박원순에 대해


http://angelusnobus.tistory.com/90


이런 글을 쓰기도 혔는디, 이 양반이 하여튼 뭔가 뚝딱뚝딱 만드는 걸 좋아허는거 같긴 허다. 다만, 그게 삐까뻔쩍한 새거보다는, 아기자기하고 다채롭게, 구석구석 숨어있는 것들을 발굴해 다시 근사하게 꾸며내기를 좋아하는 느낌. 링크에도 있고 그거 말고도 서울시이의 각종 도시재생사업들을 보면 느낄 수 있다. 이런 컨셉은 증말 최고. 한국 시민운동 역사상 최고의 기획통 다운 탁월한 기획력들이랄까나. 정무능력이 구의원급이라고 까인다던데, 기획력이 좋으니 봐주자.


각설허구, 그런 박원순이 또 하나의 공구리질을 해냈다


이름하야 문화 비축기지. 원래 지금의 상암 월드컵 경기장 하늘공원 인근은 서울에서도 쓸모 없는 땅이었다. 나와 비슷한 세대를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원래 난지도 있던, 쓰레기 산이 있던 곳이란 기억이 제일 선할거다. 내 윗세대도 그럴 것이, 윗세대에겐 거긴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으니까. 마포나루를 기억하는 당신이라면 19세기 사람일거고. 그러던 곳이, 난지도가 포화되어 쓰레기장은 인천앞바다로 옮겨가고 거기에 세계배... 월드컵 경기장이 들어오고 인근에 미디어 컴플렉스가 생기믄서 서울으 신 부도심이 되어있는 거이 지금의 모습.


근디, 그 자리 - 상암 월드컵 경기장 바로 뒷편에 원래는 전략비축유를 축적하는 유류비축기지가 있었단다. 15만배럴의 막대한 양의 석유를 5개의 탱크에 담아 보관하던 1급 전략시설이었다. 73년 오일썈크 땀시 썈크 먹은 박정희가 석유때문에 엿먹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시설이라던가. 1978년생이니 나보다 한살 동생이다. 한국의 근대 유산이란 게 이렇게 연혁이 짧은 건 역시 아쉬운 일...


그것이 월드컵을 기점으로 위험시설이며 중대행사에 방해가 되니 다른 동네로 옮겨가고 그 뒤로 비축기지는 버려져 있다가... 이번에 박원순이 들어오믄서 문화시설로 재개장하기로 했단다. 이 소식을 처음 들은게 작년이던가 올해초던가 그런디, 뭐 석유탱크 하나 있고 그 안에 동네 문화센터마냥 이거저거 있는거긋제, 하고 생각혔었는디... 어쨌거나 그런걸 좋아허는지라 지난 추석에 가족 드라이브 가자기에 거기나 함 가보자 혀서 가 봤는데, 생각보다 근사하고 본격 문화시설 인 것이 아닌가. 내 취향엔



한 시설이었다. 그 때는 임시 개장이었는디, 14일에 본격 개장을 한다기에, 가보기로 혔다. 근데, 이 월드컵 경기장에서 한강 건너 맞은 편에, 나가 자전거 탈 때마다 종점으로 삼곤 허는 안양천 합수부가 있다. 거기엔 서울 서부권 최대규모으 자전거 휴게집적지? 같은 거이가 있고. 거기까지 자전거 타고 가서 땀 말리믄서 강 건너으 W배 경기장을 보곤 혔었던지라... 이 참에 거기서부터 출발해서 그 일대를 한 바퀴 주욱 돌고 문화비축기지까지 걸어가 보기로 하였다. 그런 고로 여행 코오스는 다음과 같다



자전거 집적에서 가장 가까운게 지도 아래쪽의 9호선 신목동역이니 거서 내려, 안양강을 따라 걸어간 다음, 자전거 집적지(참고로 지도상의 2.0km지점이 자전거 집적지다 캡처할 때 표시해 놓을 걸)에서 사진좀 박고, 아직 W배 대교는 개통 안혔으니까, 성산대교로 한강을 건넌 후 W배 경기장을 지나 지도 맨 우에 있는 남자호모의 색깔 핑크네모속의 문화비축기지까지 가는걸로. 생각보다 거리가 꽤 된다. 다리부상만 아니라믄 물구나무서서라도 가는데그건 팔로 가는건데 괜찮다 어차피 팔도 부상이다 다리가 불편허니 쪼까 기합은 넣고 가야쓸 거리 되긋다. 꽤 오래 걸어야 할 거인지라, 행사는 16시부터라지만 집에선 12시 좀 넘어서 출발혔다.



신목동역 3번출구로 나가기 직전으 사진. 으미는 읎지만, 그 날 찍은 첫 사진이니 올린다. 

그 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의미불명



가을은 이렇게 신목동역 3번출구에도 찾아오고 있었다


출구에서 내려다 본 안양강 고수부지으 모습. 주변이 공사중이라 쫌금 황량하지만 쫌금 더 상류로 가믄 예쁜 길들이 나온다. 난중에 자전거 타믄서 나가 다니는 길들을 한 번 포스팅해볼까도 생각 중


지금 보니 그 날 찍어 온 사진이 440여장 되는데, 이거 다 올리다간 한도 끝도 없을 거 같아 액기스만 뽑아 올려야 쓰것다. 액기스만 뽑는데도 장황하겠지만. 은근 나가 투 머치 토커 기질이 좀 있다.



토인들이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다. 다른 때는 나도 지나가는 토인 1 이지만, 오늘은 당당한 여행객이다 엣헴

하튼 길을 가야허니 나두 저 길로 내려가 본다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가 잘 깔려 있다. 증말 걷기 좋은 길이다. 옆에가 공사중이라 삭막하지만 않음 더 좋을텐디.



안양강에도 카리스마 대빵 큰 오리는 갤주, 아니 강주로서 군림하신다. 사실 강민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악질 임빠라서, 4차원 정신세계는 좋아헌다.



거대구조물은 항상 옳다. 대개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사람들은 도시문명에 회의적이고 거대구조물을 경원시 허던디, 나는 영 그렇지가 않다. 나는 아스팔트 들판에서 공구리 나무를 보며 자랐거등. 나도 나중에 나이들면 턴힐아카준표가 보기엔 턴페이스하게 될까?


강가에는 갈대가 자라고 있다. 가을하믄 갈대지.

참고로 갈대와 억새를 구분할 줄 아시는가? 간단히, 물가에 나는건 갈대, 물가가 아닌, 산이나 들판에 자라는 것은 억새라고 알믄 된다고 헌다. 공부가 되는 여행기아닌가.



날씨좋은 주말이다봉께 수 많은 토인들이 안양강가를 우가우가하고 있다. 마, 나도 나들이 아니었음 딱 자전거 탔을 거 같은 날이긴 혔다만. 한 여름, 30도 35도 할 때 전세내다시피 텅빈 길을 돌아다녔을 때도 좋았지만 사람이 많은 건 많은대로 좋지. 물론, 봄 가을은 이제 멸종위기종인지라, 토인들이 우가우가하는 것은 길어야 두 달 남짓일게다. 내는 추운 것도 좋아허니, 또 다음달 말쯤이믄 전세내서 달리고 있긋제.


1차 목적지가 보인다. 저 야트막한 다리를 건너믄 서울 서부지구 자전거 집적지멋대로 갖다 붙인 이름치고는 그럴싸하지 않은가이다. 서쪽이니 큐시가지다.아키라 보세요 20번 보세요



안양강은 여기까지다. 사진 오른쪽이 안양강길이고, 사진 왼쪽은 한강상류로 가는 길. 나가 등지고 있는 방향이 한강 하류. 여기는 그야말로 안양강 삼거리.



멀리 목적지 인근이 보인다. 아쉽게도 강 남안을 걷는 내내 문화비축기지는 볼 수가 읎었다. 원래, 전략기밀시설이다봉께, 밖에서 그리 호락호락하게 볼 수 있게 혀 놓지는 않었다.



공사중인 월드컵 대교으 모습. 원안은 가양대교였다고 허던디, 가양대교란 이름도 좋을텐디, 수 많은 오필꼴을 외친 사람들 땀시...-- 글구 가양동 사람들은 좋지만 상암동 사람들은 싫기두 헐테구.



나타났다! 모두으 존경을 받는 가장 위대한 건물!!!

나는 마천루가 느므느므 좆소. 그 날은 날이 꽤 괜찮은 편이었지만, 나가 겪어본 최고상태으 쾌청한 날과는 쫌금 거리가 있는 날이었던지라, 명확히 보이진 않는다. 저것보다 더 잘 보이는 날도 여럿 있었다. 저 지점에서 롯데 타워까지는 직선거리로 거으 23킬로미터 정도 되는데두 아주 잘 보인다. 실로 가장 위대한 건물



서울 서부지구 자전거 집적소는 대략 이런 모습이다. 우리 집에서 여까지 대략 14킬로미터 정도인디, 여까지 왕복하는 걸로 운동욕구를 달래고 있다. 다리 부상만 아니었다믄 부산 정도는 당일로 갔다 올 수 있는디부상중이니 부릴 수 있는 허세 아니야! 내 자전거 주행능력은 미국가셨어!



서울 서부지구 자전거 집적소에서 볼 수 있는 3대 비경이라믄 하늘공원, 상암 월드컵 경기장, 북한산이 있겠다. 3대장이 한 컷에 잡힌다. 나는 저 산이 인왕산인줄 알고 있었다. 근데, 오늘 지도에서 확인해보니 저 각도에서 보이는 것은 북한산이었음. 북한산도 날 맑은 날에 보면 죽인다. 저번에 완전 청명한 날에, 구름 그림자가 드리운 북한산 보고 탄성이 절로 나왔더랬다. 14일도 그러길 바랬는디 안 그래서 아쉽.


이 산책길을 따라 성산대교로 가야헌다.



대개으 도시들에서 제일 높은 건물은 방송탑이다. 에펠탑도 방송탑, 캐나다 CN타워도 방송탑, 동경의 동경탑 스카이트리도 방송탑이듯이, 남산탑도 방송탑임. 63빌딩이 서울의 패권을 차지하기 전까지 제일 높은 구조물은 남산탑이었다. 빌딩으로는 31빌딩이었지만. 63빌딩한테 패권을 넘겨준 뒤로도 한동안은 해발로는 제일 높은 게 남산탑이었었으나, 이제 해발 490미터인 남산탑은 건물높이로만 555미터인 가장 위대한 롯데타워앞에 무릎을 꿇었다. 롯데타워 찬양해하지만 롯데리아는 가면 안된다


공사중인 건물에는 나름으 풍취가 있다. 없는 동안의 모습, 지어지고 나서의 모습은 오랜 세월이다. 그러나 지어지는 동안의 모습은 지어지는 동안에만 있다. 특히나, 가양대교처럼 오랫동안 방치되어서 킹무갓키식 표현으로 무한성이 되어버린 건물은 폐허의 느낌까지 있달까나. 언젠간 완공되어서 느끼지 못하게 되겠다만.



그런 풍류를 아는 멋들어진 鳥객이 한 분 계시다. 저번에도 산보할 때 저 기둥위엔 새 한마리가 앉아 있었는디, 이 날도 있다. 새들한테 핫 플레이스인 가 보다. 근데 저 새는 정체가 뭐지? 생전 처음보는 괴조로다. 앉아있는 풍채를 보아허니 지체높으신 새이신거 같다.



괴조가 앉아있던 그 기둥은 아니고 그 옆기둥인디, 이렇게 찍으니 이 역시 하나의 모노리스로서 손색이 없다. 서울도 언젠가는 몰락해갈 터... 쾌청한 하늘아래 희뿌얘서 무상허다



박원순으 또 다른 토건질인 한강 함상공원의 모습. 찾아보니 1900톤급의 서울함이라고 헌다. 저번에 지인들과 다닐 때 디게 작아보인다고 혔었는디. 아니네... 전에 포항에서 봤던 포항함이 1200톤이었는디, 이 쪽이 훨 크다... 저기도 나중에 함 가봐야징. 근데 역시 구축함은 뽄새가 안 난다. 빨리 독도함이 퇴역혀서 독도함이 전시되면 뽄새가 날 거 같기두 헌디, 수심이 되기나 할런지... 게다가 너무 크면 진짜 뜬금없어져서 안 될거 같긴 하다만. 그랴도 아이오와급 전함 같은거면 뜬금 다 씹어먹고 간지포풍일텐디.



물 좋고 하늘 좋다~

라고 하려 혔는디, 물 색깔이 쫌금... 멀리서 각도주고 보면 푸른디 가까이서 보면 녹색이다... 녹조까지는 아니겠다만, 워낙 천만시민이 배출하는게 많다보니, 하수처리율이 꽤 높은데도 수질은 쫌금 그렇다... 서울 시내에서도 쾌청한 물이 흐르믄 참 좋을텐디.



구름이 은은히 깔린 하늘은 그랴도 확실히 좋다. 이 날 하늘은 A+급은 아니지만 B+급은 된다A마이너스가 없는 학교를 나와서요 후후~



성산대교는 한강에서도 꽤나 쎄련된 외모를 자랑하는 다리이다. 외모지상주의는 진리. 이제 곧 내 발 아래에서 신음하겠지 후후~



여의도 랜드마크 3대장

63빌딩이야 뭐 영원한 서울 최고층 건물이고~ 사실 80년대를 살아온 사람이라믄 63빌딩으 임팩트는 아마 평생 지우지 못하지 않을까. 이젠 아파트보다도 낮은 건물이 되었고, 여의도에서도 가운데의 IFC빌딩에 밀려 2등이 뒤야 부렀지만, 그랴도 마음속에는 영원한 최고층 건물이다. 63빌딩아 아프지마... 우 하단의 국회의사당도 그 건물에 대한 사람들으 이미지와는 별개로 빼놓을 수 없는 랜드마크랄 수 있겠지. 저기가 은근히 가서 놀만하다 그러던디, 한번 간다 간다 해놓고 잘 안가진다. 정치혐오가 이렇게 무섭다.



사~ 이제 성산대교에 다 왔응께 걸어올라가야 허는디... 여기가 강변공원에서 시가지로 나가는 출구인디, 다리 진입로가 영 찾기가 힘들다. 주변에 공사판 아조시들한테 물어봤는디, 웃기게도 내가 왔던 길로 가랜다. 아조시 거기 없어서 여기 온거거등녀... 아조시들 아는체 허세 쎈척은 하튼 알아줘야 헌다. 그냥 나가 헤매다가 길을 찾아내어 다리로 올라갔다.



근데 다리 진입로로 가니 이 무슨 밀림이... 통행인이 어지간히도 없는 진입로인 모양이었다. 성산대교 남단 교차로가 쫌금 복잡혀서 보행자 진입이 개떡같긴 하다만...



어쨌건 이름표는 찍어줘야지



스펙도 찍어주고. 현대는 스펙시대 아닌가. 보아하니 착공기준으론 나보다 형인디 완공기준으론 나보다 동생이다. 동생이라고 봐야긋제?



하늘의 새털구름이 아름다워서 찍어봤다. 하늘이 수면이고 거기에 물결무늬 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헌다.

보아하니 다리 아래는 대규모 폐기물 처리장이었다. 그늘진 곳에도 관심을. 우리가 쫌금만 덜 버리믄 한강물이 그만큼 더 푸른 색이 될 것이다.그러나 1회용품을 포기할 수는 없지



다리 위에서 찍은 현 제왕과 전대 제왕의 모습. 나란히 찍기엔 거리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진짜 롯데타워는 저 뜬금없이 치솟음! 이 제 맛인거 같다. 스카이라인과 이어지지 않고 중뿔나게 튀어나왔다고 비난하는 우매한 무리들도 있는 거 같더라만. 이제 현대가 삼성동 타워를 세워 두 개의 탑을 완성하면, 강남의 스카이라인은 세계가 선망하는 그 것이 될 것이다.


여기도 토인이 많이 지나가는 모습이다. 차량도 많던디, 확실히 나가놀기 좋은 가을이다.



서울 함도 한번 더 찍어주고.



한강으 대교를 걷는다는 것은 이런 느낌. 솔까 보행자 접근성이 무지무지 안 좋기 땀시, 1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차는 없다 치고혼자 걷게 되는 경우가 많다. 마, 나야 그 느낌을 좋아하지만. 뭔가 맥락에서 내팽개쳐져 혼자 동떨어진 느낌이 딱 내 인생같아서 더더욱.



여름에 봤던 무시무시하게 뭉게뭉게한 구름과는 다른, 가을 특유의 수놓는 듯한 구름이 참 아름답다 싶었다. 다만, 역시 크고 아름다운거 성애자라, 지난 여름에 봤던 그 무시무시한 구름들이 임팩트는 훨씬 크다. 그거 사진 찍어놨어야 허는디...



요즘 한강에 가마우지가 많아졌다. 가마우지라는 넘이 보면 볼 수록 간지와 카리스마가 쩔더라. 그 가마우지 장군님께서 하늘을 나시실래 찍어봤다. 가마우지인지 제대로 알아보기도 힘들지만, 뭔가 어떻게든 찍어보겠다고 아둥바둥하는 노력이 가상하지 않은가? 장려상감 사진이라고 자처한다. 뭔가 광활한 하늘에 점 하나 찍힌거 같은 두 번째 사진은 왠지 미적으로 가치있어 보이기도 하고라고 정센승리를 해보기도 하고


성산대교의 아치는 밖에서 보믄 멋져보이지만 속은 이렇다 랄까나... 오빠 믓찌나!



이 쪽은 당인리 화력발전소에 토건광 박원순이 문화비축기지와 비슷한 짓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으 테이트 모던 어쩌고 하던디, 이젠 이런 도시재생면에선 서울도 충분히 선진적이지 않을까 싶다.



서울함을 다리상에서 가장 가까이 접근해 찍어 본 모습. 그랴도 군함이라고 뽄새가 없진 않다.



옆에보니 고속정도 하나 전시되어 있다. 야는 작다고 물 위에 올려부렀네. 검색해보니 잠수함도 하나 있다던디, 잠수함 답게 물 속에 넣어놨는지 안 보인다.


성산대교를 거으 다 건너왔다. 건너 오는 내내 차가 참 많네, 혔는디 이 표지판을 보고 단박에 이해가 와부렀다. 성산대교를 가운데 두고 남으로는 서부간선도로 북으로는 사진상으 내부순환로가 이어진다. 글구 이 두 도로는 서울시내에서 최악의 정체로 5위 안에 드는 두 도로이다. 3위안에 들지도. 그러니 당연히 막히지... 주말인데두.



건너오다보니 이런 게 있다. 나 소시적만혀두 군사정권이었구, 울산같은 전략산업단지에 들어가는 고오속 버스들은 진입전에 헌병이 타서 검문하고 그렸는디, 서울에서는 한강다리에서, 평소에 그랬다간 길이 터져나갈테니 그러진 않구 군사훈련같은거 있을 때마다 검문쑈하고 그랬다. 그 시절에 쓰던 헌병막사인 걸루 보인다. 이것도 시대의 흔적, 시대의 상처라면 상처랄까나... 지금은 버려진 폐허인데 뭔가 미묘한 쓸쓸함이 여운을 주길래 찍어봤다.



그렇게 성산대교를 건너왔다.


투 머치 토커라지만 쓰다보니 나도 지친다. 멘트 뽑는 게 이렇게 힘듭니다.


여기까지 1편으로 하고 나머지는 좀 쉬다가 2편에 올리자. 대충 찍어온 사진 반쯤은 소화한 거 같응께 2편으로 끝낼 수 있을 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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