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헌디 인걸은 간데읎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사실 하기는 개성처럼 나라가 망해나간 도읍도 아니구, 일본은 운하나 간척사업을 중세부터 꽤나 한지라, 산천이 의구한 것만도 아니다. 일단 오늘 돌아볼 아이바가와 자체가 인공운하이기두 허니.


다만, 하기를 돌아다니면서 보니... 참 사람이 읎드라. 물론 마을에 인구는 없구 관광지이지만 비수기에 날씨도 우중충하고 비오는 날씨이니 사람이 없을법두 혔다만. 그 괴괴함이 더더욱 맘에 들었던 것인디, 오늘 편에서 돌아볼 부분이 괴괴함이 정점을 찍은 부분이다. 잘 전해질지 모르겠다만


글구 멋보다 나가 저 시조를 좋아함. 사바세계으 허무함을 저 만큼 잘 전하는 시조가 딱히 있으련가? 저와 댓구를 이루는 것이라믄 또한 이 문장일진저


『나는 조정에 벼슬하지 않았으므로 사직을 위해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허나 나라가 오백 년간 사대부를 길렀으니, 이제 망국의 날을 맞아 죽는 선비 한 명이 없다면 그 또한 애통한 노릇 아니겠는가?
나는 위로 황천에서 받은 올바른 마음씨를 저버린 적이 없고 아래로는 평생 읽던 좋은 글을 저버리지 아니하려 한다. 길이 잠들려 하니 통쾌하지 아니한가.
너희들은 내가 죽는 것을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라.』


매천야록으로 이름있는 매천 황현의 유언이다. 헬조센이 망하는 때에, 순사하면서 남긴 이야기. 사라져가는 것의 덧없음과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이렇게 엇갈리는 이야기가 있을수가. 그러면서 둘 다 높은 선비력으로 인해 극히 아름다운 문장들이다. 세상에는 언제나 빛과 어둠이 있지만, 빛도 어둠도 나름의 아름다움의 씨앗을 간직하고 있다고 봐야할지도.


각설하고

여행기 들어간다 눈 벌려라


지난 화에서는 쩌그만큼을 이동혔다. 오늘편의 출발점은 아이바 가와.

아이바 가와(藍場川)은 하기의 인공수로, 운하이다. 애초에 섬나라라 수운이 발달할 여건이 갖춰졌던 일본에서는 전국시대를 맞아 전국적으로 물동량이 급증하고 인구가 늘어나믄서 수운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기본이야 당연히 연안수운이지만... 그 수운은 결국 도시안으로 들어가야 최종유통이 되는 것이고, 배에서 일일이 부리는 것보담은 당연히 배로 들어가는 것이 더 이익인 것. 윗 지도만 들여다봐도 하기라는 도시는 수운하기 참 좋은 곳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텐디, 그 발달한 수운의 인조 모세혈관이랄 수 있는게 아이바 가와이다. 이름이 아이바 가와가 된 이유난 藍이라는 것은 쪽빛을 말허는디, 염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색중 하나가 남색이었다. 그 남색 염색장이 아이바가와 일대에 많았고, 그 염색장(藍場 = 아이바)에서 흘러나온 물이 운하를 쪽빛으로 물들였기에 아이바가와라고 이름붙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윗 지도에서는 노오란 네모로 아이바 가와를 표시해놨는디

실제로는 이 지도에서으 파란 줄기가 대충 아이바가와의 핵심구간이다. 저거말고도 지류들이 더 있었던 걸루 아는디, 도시가 발달허구, 저런 전근대수준으 운하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는 물류여건이 갖춰지믄서 사라졌고, 지금 남은 부분은 대략 저 파란선에서도 일부이다. 사실, 아이바가와가 역사유적으로서 제대로 개발된 구간은 윗 지도에서으 우하단, 그니까 하시모토 강과 아부강이 갈라지는 지점에서부터의 일부구간이다. 그랴서 당초에 하기여행계획을 세울때는 지도의 중하단의 하기역에서 내린다음 걸어서 아이바가와를 보고 쇼카손주쿠와 민족영웅 이토히로부미의 집을 보러 갈 생각이었으나... 그랬다간 감당할 수 없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지라, 포기허구 동하기역에서 내렸던 것.


오늘 올릴 아이바가와으 도심 부분은 어찌보믄 기능상으로는 아이바가와가 더 살아있는 부분이랄 수 있다. 여기는 주민들의 마을한복판에 있으믄서 배수로와 하수도 역할을 더 중점적으로 수행하고 있는지라. 다만, 워낙 도시 중심부에 있다봉께 관광지로서으 꾸밈새는 영 아니다.


관광지로 꾸며진 상류부분은 이를테믄

이렇게 잎흐게 꾸며져있구, 나두 관광홈피에서 이런 모습들을 보고 하앍거리며 기대혔던 것. 그러나, 나가 답파한, 윗 지도상으 중류부분은 저렇게까지는 아니다. 물론 그것도 나름대로 봄직한 모양새가 없는건 아니지만, 관광지와 집앞골목이 같을 수는 읎는지라.


이런 에도시대의 역사적 상황과 헤이세이시대으 내 여행으 역사적 상황을 염두에 두고 아이바가와로 떠나봅시다.


아이바가와으 시작점이다. 확실히 위에 펌질헌 사진보다는 추레하고 수질도 쫌금...


다만 지난화에서으 주차장 한 구석 도자기구이터사진에서도 이야기혔지만, 집앞 하수구 개천이 알고보니 4백년전에 수운하던 물길이라더라, 라고 한다믄 간지나는 상황 아닐까? 글구 고슴도치도 지 새끼는 이쁘다고 나에게는 소박한 지방소도시 마을길로서 충분히 잎흐게 보이기두 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분들도 있으실텐디사실 나가 그 의문을 가졌었는디이거 아무리 봐도 그냥 또랑물아닌가? 이런게 무슨 운하??? 라는 것이 사진을 보믄서 든 생각이었다. 그랴서 나름대로 찾아봉께, 에도시대으 아이바가와는 이것보다 많이 크고 깊었다고 헌다. 그 시대에야 주요 물류유통로이니 마을에서 큰 부분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 그러나, 이제는 물류기능을 상실한 물건을 그냥 냅둘 이유는 없는지라, 전체적으로 규모가 크게 축소되어, 이제 원형그대로 남은 곳은 없다, 라고 헌다.


글구 운하라고 하믄 수에즈 운하처럼 10만톤짜리 니미츠급 공모가 교행도 하는 큰 운하가 쉽게들 떠오르실텐디


아이바가와에서 운행한 배는 저러한 川船가와부네라고 불리우는 작은 화물, 여객수송선이다. 아직 가 보진 못혔다만, 사가현 야나가와라는 곳이 또 한 운하하는 도시인디, 저기는 저러한 가와부네를 현대식으로 만들어서 타고 유람하는 유람여행이 꽤 인기라구 헌다. 시마네현의 마츠에에도 있고, 사실 여기 하기의 해자는 상당히 큰 물길을 여전히 유지허구 있는지라, 앞바다까지 나가는 코스를 통트는 가와부네 유람선이 있다. 좀 있다 사진을 올리게 될 것. 다만, 이 날은 날두 흐리구 사람두 읎는데다 시간두 늦어서 탈 길은 없었다만.


하튼 저 수로보다 대략 두어배쯤 넓은 곳에 저 만한 배가 다닌다고 하면 충분히 납~ 득~ 할 수 있었다. 의문! 해소!


이런 시계는 하기시 관광국에서 놓은건지, 미용실 주인양반으 쏀쓰인지 모르겠다만 쏀쓰있는건 분명하다.

다만 역시 빛바래고 낡은...


생활속의 아이바가와라믄 바로 이런 모습들이랄까나. 윗윗윗 사진에 보믄 말씀드린대로 하수구가 많이 나와있다. 그랴도 역사유적인디 최소한으 정화는 하고 내보내는 거 아닐까 생각해보지만. 글구, 아이바가와 위로 다리를 놓고 그 쪽으로 출입구를 놓은 집들도 많은디... 말 그대로 집을 드나들 때마다 역사를 넘나드는 것이렷다.


그 다리위에서 찍어봄. 미깡까지 배경에 잡히믄서 그랴두 쫌금 그럴싸혀 보이는 듯 싶지 않은가?


물길위로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는 나무으 모습은 나으 로망중 하나이다.


요시타케 요이치 사법서사 사무소라고 쓰여있는디... 사법서사라는 표현이 반가워서 찍어봄. 요즘이야 법무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만, 한국에서두 나 소시적까정은 사법서사라고 불리웠다. 행정서사, 사법서사... 한국이 확실히 일본으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또한 그 영향에서 많이 벗어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모습이리라.


나 소시적까지만 혀두 동네에 후지칼라, 코닥칼라 이런 카메라 필름용품겸 사진관들 참 많었는디... 요즘은 디카열풍조차 폰카열풍에 밀려나버린 때문인지 볼 일이 읎다. 부도났다고 이야기를 들었던 것두 같은디, 일본에서는 여전히 건재하시다. 예전같지야 못하시겠다만, 오따끄 문화 말고 예전만한게 일본에 있지두 않응께.


아이바가와으 여러 모습들을 죽 올려봤다. 집 문 나서는 데 저런 물길 하나 놓여있다믄 참 좋을거 같은디. 근데 장마철에 홍수나믄 못 나가는 거 아녀.


이런 활용법이 또. 출입구가 아니라 화단으로 사용하는 모습. 좀 지저분허긴 허다만.


시골마을에 가믄 마을마다 큰 나무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는 모습들 보셨는지 모르겠다. 이 넘이 아이바가와마을을 지키고 있는 나무인 듯. 일본이니까 당연히 신령하나 깃들어 계신 신목이겠지?


위에 사법서사 사진을 올렸는디, 가다보니까 바로 이 블록에 하기지방재판소가 있더라. 윗윗 사진이 그 모습. 밑 사진은 그 바로 앞에 있는 하기 야마구치 법률사무소. 여기는 어쭙잖은 사법서사따우가 아닌 변호사 야마구치 마사유키상께서 웅거하고 계신 곳.


으어... 계단 노무좋다능... 계단 밑으로 아이바가와를 넘어오는 다리도 하나 있었으믄 완벽했을건디. 그 다리를 건너 저 계단을 올라 2층으 나으 스윗홈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싸... 싼닷!!!


아이바가와의 큰 흐름이 굽이치는 곳이다. 은근 물이 남색같은 느낌도 든다?


일단 아이바가와 여행은 여기서 끗. 이 다리를 건너믄 하기 성아랫마을(城下町 - 죠카마치) 역사구역으로 들어간다.


무려 세계유산 되시겠다. 사실 여기서 가려고 맘 먹은 곳이 많었는디, 이 때 이미 오후 4시를 훌쩍넘어가던 시점이라... 진짜 겉핥기로 골목 몇개만 돌아보고 지나쳐와야혔다... 에도시대 초기부터 유신시대까지 이어진 죠카마치인디... 나으 주 관심사는 유신보다는 역시 에도시대으 모리가문과 관련된 것이고, 그건 산노마루(외성)인 이 곳보다는 저그 안쪽으 혼마루(본성)에 주로 있는지라 마음이 급했거든.




비록 미개한 반도인일망정 어쨌거나 나도 이진은 이진이니 이진칸에서 차 한잔 혔어두 좋았겠다만, 예산은 충분헌디 시간이 부족혀서 지나쳤다.


신사쿠 광장이라고 헌다. 유신지사중에서도 필두급으 인물이다.


별 거 없는 공터인 이유는 여기가 무슨 역사유적이 남은 곳이 아니라, 다카스기 신사쿠가 궐기한 장소여서임. 궐기하는 데 넓은 공터에서 하는 건 부득이한 일이긴 허다만, 이런 류으 구경거리 없는 역사유적은 좀 힘빠지게 하기는 헌다.


이 양반이 다카스기 신사쿠. 기헤이타이(奇兵隊)라는 신식군법으로 무장한 의용대를 이끌어 유신으 성공에 기여혔다. 그 기헤이타이는 그 후 일본육군의 한 뿌리가 된다사쓰마인들이 이 인물을 싫어합니다


이거 말고도 이 블록엔 봐야허는게 많었는디, 동선이 꼬이는 고로 바로 남으로 달린다.


나는 수로덕후이므로 수로사진들이 많은 것은 부득이. 서울으 경우 찾아보믄 자연하천에 기반한 수로들이 의외로 꽤 많긴 허다. 그러나, 이렇게 마을의 배수를 위해 놓은 인공수로가 당췌없는 것은 전부 지하화해서인가? 서울에 맨홀이 좀 많긴 하다만서두. 이렇게 지상수로로 놓았다믄 그 자체가 일종의 공원효과도 발휘했을텐데 여러모로 아쉬운 일.


지키자 헌법9조!

저 때만해도 그래봤자 야이 빨갱이 새끼야! 아아아아아! 하는 상황이었는디, 불과 두 달만에 아베가 날아가네 마네 하는 상황이 되다니 정치몰라요.


충혼비, 라고 허는디 누구의 충혼을 기리는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더라. 기본이야 유신당시으 희생자들이긴 헐텐디, 아마 일본특성상 대동아전쟁 당시의 희생자들도 기릴 가능성이 높을 듯. 김치맨으로서는 반민족적 유물이랄까나.


이 물길은 아이바가와의 연장선인지 아닌진 잘 모르겠다. 이어져는 있는디... 명백한 건 하기성의 니노마루의 해자라는 점. 어차피 전시가 아니믄 화물선도 다 다니고 그랬것제.


여기에 온 이유는, 일본의 100명교에 포함된다고 하는 헤이안교(平安橋)를 보기 위해서이다. 다만, 이 또한 워낙 구석탱이에 조용히 묻혀있는 유물이다봉께, 잘 안 찾아져서 좀 헤맸다.


누차 이야기하지만, 물 위에 드리운 나무가지는 예술이지라.


부정한 센징은 도마레! 도마레 라는 표현이 괜히 맘에들더라구.


잠시 헤맨끝에 찾았다~ 평안교~


애개... 이게 100명교라고...? 라고 생각하시는 당신! 작고 아담한 다리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군! 나가 기본적으론 크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헌다만, 작고 아담헌 것도 좋아하는지라... 오래된 옛 성을 둘러싸고 유유히 흐르는 해자위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그 자체로 호젓함과 운치 그 자체 아닌가? 사실, 사진을 타이밍골라 찍어서 그렇지, 의외로 유동차량이 많았다. 성내와 성외를 잇는 다리가 이거 포함 3개밖에 없는지라... 다만, 동네 자체가 하기 시내에서도 구석의 외진 곳이고 해서 차가 좀 다닐 뿐 조용하고 호젓했던 것은 맞다.


이 다리가 가치가 있는 이유는 하기성이 축성되던 1600년대 초 당시에 지어진 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4백년 넘은 다리여서이기 때문. 딱 봐도 많이 낡은 티가 나지 않는가? 호젓하고 고즈넉한 모습과는 달리 묵직한 세월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다리인 것이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나에게는 너무나 아름다운 다리였다. 시간만 넉넉혔다믄 다리 옆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다리구경하고 있고 싶을 정도로.


평안교 기준 성 바깥쪽의 모습. 조용허구 평범한 시골마을이다. 이런 마을들을 돌아다니는 것이 진짜 일본여행.


이건 성 안쪽 모습인디, 역사경관지구라 그런지, 성 바깥쪽보다는 확실히 좀 있어보인다.


다리위에서 바라본 해자의 끝부분. 저그 끝에서 해자는 하시모토 강과 합류하여 일본해(동해)로 흘러든다.


야생의 시바가 나타났다!


시바를 처음보는 건 아니긴 헌디... 여태까지 본 시바와는 비교도 안되게 시바스러운 시바였다. 시바의 이데아 그 자체랄까나. 증말 말도 못하게 귀엽고 깜찍해서 딴에는 최선을 다해 찍었는데, 제대로 나온 사진이 없는 게 실로 안타깝. 쉬크한 성격이어서 그런지 불러도 돌아보지도 않고 그냥 주인따라 평안교를 건너 달려가 부렀다. 역시 본토는 본토. 혼모노 그 자체.


다리도 다리지만 주변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평안교만이라면 이 정도로까지 감흥에 젖지는 않았을 것.


그랴두 역시 다리는 사람이 건너야 다리인 것. 자동차 한대와 할무이 한분이 나란히 건너더니 이내 자동차는 사라지고 할무이만 터벅터벅 걸어가신다. 할무이의 뒷모습이 쓸쓸해보여서 더욱 뇌리에 박힌 모습이랄까나.


평안교에 대한 안내문. 짧은 일본어 실력으로 해석해보자믄, 하기의 세 성문중 하나의 출입구 역할을 혔다구 헌다. 1652년에 놓일 때는 목교였는디, 1764년에 지금의 석교로 놓인 모양. 에도시대 초기에 지금처럼 놓인건 아니구먼... 그랴두 3백년이라능! 길이 6미터 폭 4미터이니 좀 큰 차보다도 작은 다리이다. 물론 아름다움만은 어떤 차보다도 크다만~


다리를 건너 걸음을 서두른다. 여태까지으 현대에 지어진 것이 아닌, 진짜 에도시대에 지어진 집과 석축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제부터는 제대로 성내이니까.


명륜관도 들렀어야 허는디, 못 들렀다. 하기번에서 최초로 근대식 교육을 시작한 곳이 명륜관인지라, 일본근대사에서는 메우 중요한 곳. 이 곳은 명륜관이 있던 옛터이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신 명륜관은 앞서 지나온 아이바가와에서 두 블럭 아래쯤에 있는 깊고 어두운 곳에 있다.


사진이 흔들린 게 많은게... 이 시점부터 빗줄기가 강해지기 시작혔다. 근디 그 빗줄기가 렌즈에 튀어 자동초점 기능이 교란당해버린 바람에... 만약 쾌청한 날이었다믄 사진이 훨씬 좋게 나왔을 것이라는 점을, 이 다음날 쾌청한 날에 돌아다닌 이와쿠니에서 느꼈다. 그럼에도 올린 것은 여기부터 제대로 에도시대 사무라이 마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 앞서 쇼카손주쿠 편에서도 이야기혔듯이, 일본의 전통건축은 흰 벽이 많다. 가히 白壁 - 시로카베의 민족~


그런 와중에도 유난히 두드러지는 이 근사한 벽의 정체는?


바로 구치바家 주택되시겠다.


여기서 설 명 들 어 갑 니 다


이번 여행기가 방장경략인데에서부터 나가 모리 모토나리공과 모리가를 흠모하고 있음은 몇 번 말한 적이 있다. 모리 모토나리공이 위대한 인물이긴 하지만, 가문은 홀로 서는 것이 아닌 법. 모리 모토나리공을 뒷받침한 훌륭한 가신들이 많이 있는데, 그 인물중에 쿠치바 미치요시라는 인물과 후쿠하라 사다토시라는 인물이 있다. 둘 다 모리 모토나리 공을 보좌한 훌륭한 무장들인데...


딱히 그렇게 대단할 것도 없는 두 인물이지만 인상깊게 기억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신장의 야망을 하면서의 일이긴 허다. 모리 가문은 워낙 전국시대의 대세력이고 그런만큼 쟁쟁한 인물들도 많은데, 그 인물들의 대부분은 모리 일족들이고 일족외에는 그렇게 두드러지는 인물이 많지 않다. 그런 와중에 모리가문이 아닌 인물 중에서 두드러지는게 저 두 인물.


이 양반이 (신장의 야망 12편 혁신에서의)구치바 미치요시

이 양반이 후쿠하라 사다토시


무장으로서는 딱히 쓸모있진 않은데, 지장이자 행정관으로서 쓸모가 많아, 초반에 모리가문이 세력을 넓히는 데 역사적으로도 그랬고 게임중에도 도움이 많이 되는 인물들. 신장의 야망을 워낙 많이 했고, 그 중에서도 모리가문을 제일 많이 혔는디, 그러믄서 모리 인물들은 거의 인이 박히다 시피혔는데...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하기 지도를 들여다보니 구치바가의 옛집과 후쿠하라가의 옛집이 지도에서 눈에 띄는 것이 아닌가? 그랴서, 하기에 오면 반드시 이 두 집을 가 보기로 혔구, 앞서 성아랫마을에 들러볼 유신유적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다 스킵한 것도, 다른 것은 못 보더라도 이 두 집은 꼭 보리라 결심했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구치바 집앞에 드디어 도착한 것!


앞서 본 평안교도 문화재로서 가치는 높지만, 시지정 문화재에 지나지 않는디, 이 구치바 가옥은 무려 국 지정 문화재, 한국으로 치면 국보에 버금가는 위치다. 일본은 국지정중요문화재를 뽑아놓고, 그 중에서도 일부를 엄선하여 국보로 지정하는 체계라 행정적으로는 국지정중요문화재와 국보가 동격이지만, 아무래도 국보가 지위가 높음은 부정하기 힘들긴 허다. 그렇더라도 국지정중요문화재만해도 충분히 최대급 유물이라는 것. 보존상태가 극히 좋은 정품 에도시대 상급 사무라이의 가옥이니 그렇게 지정된 것.


들어가는 길의 모습들


여기도 신목이 한 그루 놓여있다.


이 곳의 위치가 하시모토강이 일본해(동해)로 흘러들어가는 하구에 딱 위치해 있는지라, 계획을 세울 때부터 일단 도착하거든 강가이자 바닷가에서 경치를 구경할 생각이었다. 게다가 직접 돌아다녀보니 이 무렵엔 이미 체력이 바닥이 난지라, 지치기두 혔구. 그랴서 바닷가이자 강가에 딱 나갔더니 저렇게 또 오리 한 마리가 날아오르는 모습이 보이기에 한방 찍었다.


하구의 모습들. 운치있단 말 쓰기 지겹지만 어떡해 계속 운치있는 걸. 표현력 부족을 탓하시라.


약간의 휴식과 경치감상을 즐기고 가옥으로 오니 이런 처마가 있는게 아닌가. 하물며 비오는 날의 처마. 처마라는 자체의 원래 용도중 하나가 바로 그 비를 피하는 것인데, 비가 오는 날 처마에 앉아 비를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은 언어도단. 이 또한 한적함의 멋의 극의의 한 장면이기에 또 한번 털썩 주저앉았다.


소위 일본식 정원은 아니지만, 오히려 이런 모습이야말로 평범한 일본가옥의 마당의 모습일 터. 차분허게 두 손 모으고 앉아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마당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짧은 감동의 시간을 마치고


가옥으로 들어가 보기루 헌다.


단아하고 단정한 가옥이다. 4백년의 세월의 무게가 그 깊이를 더한다.


크어... 일본 전통인형! 이게 또 한 멋 하지. 이 인형단은 히나인형이라고 한다. 원래는 헤이안 시대부터 높은 집안의 자제들이 갖고 놀던 인형인데, 이것이 점차 여자아이의 행복을 기원하는 히나마쯔리(3월 3일)를 기념하며 전시하는 물건이 되어 현재의 일본문화의 한 축에 자리하고 있는 물건이다.


사진에는 7단으로 뒤야 있는디, 전통작법으로는 5단이 기본이다.

어차피 일본문화에 대한 이해도 얄팍한 나가 설명하는 것보담은

https://global.rakuten.com/ko/event/culture/hinamatsuri/


이 곳을 참조하시는 것이 이해에는 더 도움이 되겠다.


더 많은 히나인형들은

https://www.google.com/search?q=%E3%81%B2%E3%81%AA%E4%BA%BA%E5%BD%A2&newwindow=1&client=firefox-b&source=lnms&tbm=isch&sa=X&ved=0ahUKEwink92o5NTaAhUDLpQKHfTGC8AQ_AUICigB&biw=2560&bih=1366#imgrc=L7S9G3Swwj0lIM:

여기서 보시길. 중간께에 무지막지한 초거대 히나인형도 있고 그렇다. 몰라 이거 뭐야 무서워...


히나인형을 좋아하는 이유중 하나는 이게 은근히 을씨년스러운 무서움이 깃들어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축일에 것도 여자아이의 축복에 쓰이는 물건이긴 하다만... 그건 일본인들 이야기이구... 나는 이 인형을 처음 볼 때부터 뭔가... 좀 무섭다는 막연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 보다시피 굉장히 화려하고 아름다운 인형무리인 것이, 무서움에 대한 두려움과 아름다움에 대한 끌림의 양가감정을 일으켜서 더더욱이나 이 히나인형에 대한 내 느낌을 복잡미묘하게 만든 부분이 있다. 지금도 을씨년함을 느끼긴 하다만, 그 을씨년함마저도 즐기게 된지라 이제는 히나인형을 보는 것은 내게는 큰 즐거움이다.


덧붙이자믄


이 사진은 나가 찍은 건 아니고 퍼온 거...


이거는 아마 일본사람들도 좀 무서워하지 않을까. 노에 쓰이는 가면이다. 이 가면은 특히 여성, 그 중에서도 이승에 한을 남긴 여성을 나타내는 가면이라고 한다. 8백만 신의 나라라 쓰고 귀신천지빼까리인 일본에서 이승과 저승사이의 무엇이란 것은 그들에게도 두려움의 한 원천일테지. 하물며 저렇게 섬뜩하게 만들었대서야, 다른 문화의 사람이 보기엔 기겁하지 않기 힘들게다.


그러나, 이 또한 거기에 담긴 깊디 깊은 어떤 정서가 나에게 공명을 일으키는지, 퍽이나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중 하나이다.


일본국지정문화재인 가옥안에 놓인 히나인형이니, 어쭙잖은 것도 아니고 명장이 만든 명품일 것인지라, 사실 보는 안목이야 없다만 감회가 정말 깊었더랬다. 그러니 말이 길어지지.


일본 집은 좀 어둡다는 느낌이 강하다. 한국 전통가옥은 이렇게까지 어둡지는 않은 느낌이었는디... 일본 사극을 보믄 이 어둑어둑한 방에 촛불하나 켜놓고 그 촛불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마주보는 장면이 나오곤 헌다. 어두운 방에 다다미와 백지바른 문창살로 차분한 분위기에서 촛불을 두고 오고가는 눈빛과 이야기가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내곤 하는 느낌.


하기성의 전통시대에 그려진 지도. 누르고 있는 문진이 또한 특색있다.


이 복도... 이 느낌 아주 좋아...


국지정문화재의 품격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가옥이었다.


나오는 길에 히나인형 사진 한번 더 찍고


이건 아부미 - 일본식 등자다. 효게모노 보면 후루타 시게나리가 이거갖고 협잡질 하는 장면이 하나 있었지~


구치바 일문중의 넋이 깃들어 있는 곳에 들러놓고 어찌 구치바 가계도를 담아오지 않을 수 있으리. 보시다시피 구치바가는 단순히 가신이 아니라, 이들 또한 모리가의 먼 방계중 하나다. 물론 노무 멀어져서 계승같은 것을 노릴 처지야 아니게 된지 오래다만. 위에 올린 구치바 미치요시는 가운데 위의 通良을 말하고, 하기번에서의 구치바가 초대는 그 3세손이라고 쓰여있다. 아마 就通나리미치라고 읽는게 아닐까 싶은데...

구치바 가옥을 감상하고 다음 목적지로 발걸음을 옮긴다. 시로카베는 항상 가는 길을 지켜주고 있다.


엄청 흔들렸는데도 올린 이유는 여기가 바로 그 다음 목적지이기 때문.


바로 후쿠하라가 하기 가옥터의 문이다. 屋敷라는 것은 집건물을 뜻하는 옥과 그게 펼쳐진 부지를 뜻하는 부(펼 부 자이다)를 합쳐 말하는 것이고, 이 곳에는 이제 건물은 남아있지 않되 문만이 남아있기에 구 후쿠하라가 하기 집터 문이라는 뜻으로 저런 명판이 붙어 있는 것이다.


문은 이렇다. 후쿠하라가는 모리가의 중신중의 중신이었고, 조슈번이 36만석 밖에 되지 않음에도 일문이 아닌 가신으로서 1만 1천석을 받아 다이묘의 반열에 올랐기에 문도 웅장허다.


인걸도 간데 없고 築걸도 간데 없는데에 대나무만이 비바람을 맞으며 음산한 소리를 내고 있다.


그냥 빈 터이기만 하다면 좀 덜할텐디, 큼지막하게 솟아있는 문 뒤로 건물은 전부 헐려 없고 그 자리에 나무들만 무성해서 더더욱이나 무상함과 음산함을 두드러지게 했다는 느낌이다.


그런 느낌은 이 뒤의 목적지에서 더더욱 증폭된다.

이 사진은 평범한 인근 핵교의 출입문이다. 평범한 출입문인데도 전통양식으로 짓어놓은 게 맘에 들어 찰캌


다음 목적지인 이 곳도 시로카베로 둘러처져 있다.


그 곳은 바로 모리 데루모토 공의 묘소!


모리가의 내력과 모리 데루모토공이란 인물에 대해 적혀있는 안내판이다. 읽어들 보시도록~


입구의 모습. 저 안의 모습에서부터 뭔가 으슬으슬한 느낌이 오지 않는가.

누차 말하지만, 정말 사람이 없어서... 이 으슬으슬한 유적지들을 혼자 다니려니 진짜 귀신들리는 기분이었다.

그 때문인지 이날 밤 숙소에서 잠을 통 이루질 못했다. 처음 와서 느끼는 어색함에 체력을 엄청 소모한 피로감, 앞서 배에서 잠을 자지 못해서 몸 상태도 안 좋은데, 이런 을씨년 스러운 것들만 보고 왔는데다, 일본이란 나라에 대해 평소 갖고 있는 이세계 같다는 느낌까지 더해져서 왜 그렇게 무섭던지. 게다가 그날 따라 창 밖에서 이상한 소리도 났다지. 지금 생각해도 그날 밤의 그 느낌은 정말 서늘하기 짝이 없다.


크으... 좌하단의 세 글자


毛利家


가 보이는가. 무려 모리 종가가 직접 관리하는 곳이다. 오네가이 하는 내용은 유지관리를 위해 자율적으로 참배료를 내 주십사 하는 것이다. 옆에 새전함도 있었음. 권장 기부액은 20엔인데... 여기서 또 역사드립이 하나 떠 올랐다. 원래 모리 데루모토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그에게 복속하면서 안도받은 영지는 120만석이다. 그런데, 이 것이 도쿠가와 이에야스한테 개겼다가 패하면서 36만석으로 줄어든 것이 에도시대의 조슈번이었던 것.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모리 모토나리 공을 존경하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 신군님도 존경해 마지 않는다. 그렇기에, 선대인 모토나리 공의 위업을 빛바래게 하고, 주제넘게 이에야스 공에게 대항한 데루모토는 영 못마땅해 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20엔이란 숫자를 보고 떠올린 게 너는 120만석의 영지를 날려버렸지만 내가 대신 120엔의 새전을 해 주겠다! 라는 것이었고, 과감히 120엔을 새전해주었다. 낄낄~ 컨셉놀이란 자고로 이 정도는 되어야~~


위에 귀신들린거 같다는 이야기를 혔는디 이 장면도 그에 기여한 장면중 하나. 사실, 앞서의 화 언젠가에서도 말혔듯이 일본은 한국에 비해 생태레벨이 높고, 한국에서 비둘기으 위치를 까마귀가 차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까마귀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인 것. 근데, 하필이면 그걸 묘소에서 본거다. 비오는 날 아무도 없는 묘소에서. 마치, 네 놈이 나를 능멸하느냐? 너 좆되봐라, 하고 데루모토 공이 보낸 사자와도 같지 않은가? 분명 이 날 내가 귀신들린 건 이 놈 때문임에 틀림없다.


어쨌건 나는 새전을 혔으니 데루모토공을 참배하러 들어가 본다.


꽤나 크게 만들어진 것은 역시 조슈번의 창시자이기 때문일 것. 언젠가 도조다이곤켄사마(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묘소도 가 볼 것인데, 거기는 여기보다 더 크고 화려하다.


아니나 다를까, 다이쇼 14년이란 숫자가 보인다. 그니까, 조슈번이 유신을 성공시킨 이후에 이렇게까지 묘역이 정비되었다는 것. 당연히 유신을 성공시킨 중추인데 대우가 나쁠리가. 물론 그게 묘역을 이만하게 지은게 다이쇼 시대라는 것인지, 아니면 다이쇼 시대에 저 비석에 써 있듯이 종2위 관직을 제수받은 것임을 알리는 것인지까지는 모르겠다.


네 눈에는 이 나가토 미쓰호시 문장이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미토 코몬 흉내좀 내 봤다~


이제 이 세계를 떠나 현 세계로 돌아갈 시간. 사실 나가봐야 거기도 일본이니 어차피 이세계이다만 말이다.


이 날 여러 곳이 다 인상깊었지만, 나으 일본취미으 여러 면과 결부되어, 바로 이 모리 데루모토공의 묘야말로 정점을 찍은 장면이었다 할 수 있겠다. 모리 데루모토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냥 평범한 묘소일 뿐이었겠다만. 이래서 취미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건디, 내 지인중엔 전국시대기호가 깊은 인물이 없어...


이제 이 날으 마지막 목적지인 지월산을 향해 갈 때이다.


앞서 말씀드린 川船크루즈의 선착장이다. 배는 철수하고 없다. 이를 타보기 위해서라도 지금 만약 다시 일정을 짠다면 반드시 하기를 2일 넣을 것이겠건만.


시즈키 산으로 가는 시즈키교.


이 것이 하기성 혼마루를 지키는 해자이다. 도쿠가와의 쓰레기 잡병따위는 10만명이 몰려와도 막을 수 있다.


성으로 들어가는 길의 입구에 모리 데루모토 공의 동상이 서... 아니 앉아있다. 그러게, 킷카와 지주(친 도쿠가와파. 2부인 이와쿠니이야기하면서 자주 듣게 되실거다)의 말을 들어야지 왜 안고쿠지 에케이(친 도요토미파)같은 놈의 말을 들어갖고 이 모양이냐... 결과적으로 역사의 승자가 되긴 혔다만, 그건 후손들이 승자인거지 본인이 승자인건 아니니까.


이시가키들의 위용이 상당허다. 도쿠가와의 허접군사 따위는 20만명이 몰려와도 다 쳐죽일 수 있다.


진짜 하기본성의 성터. 많은 건물들이 헐려나갔다. 정확한 사연이야 알 수 없다만 추측해보자믄, 조슈번은 막말기에 번청을 이곳 하기에서 현재의 야마구치 현청이 있는 야마구치 시로 옮겼다. 그 당시까지만혀두 어쨌건 1국 1성령이 시퍼렇게 살아있던 시절이니, 번청을 옮기면서 이 곳의 성은 헐어야 혔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저 기단이 바로 혼마루의 천수각이 있던 곳이다. 천수각이 서 있었다믄 을매나 멋졌을까. 복원이라도 할 법헌디, 복원도 안뒤야 있다. 쫌금 이해가 안 간 부분.



더러운 도쿠가와의 개들은 30만이라도 개패듯이 갈아버릴 수 있는 이 위용을 보라



원래라믄 입관료를 내야할 것이나... 문 닫는 시간이 18시인디 이 때는 이미 17시 30분도 넘은 시점. 관리하시는 분도 퇴근하신 거 같아 210엔 굳었다. 새전함이라도 있었다믄 나는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는 유신의 심장이 따듯한 진정한 일본인이니까, 자발적으로 냈을테지만, 아쉽게도 새전함이 없더라.


성안에는 しづきやまじんじゃ시쯔키야마 신사가 있다. 보다시피 메이지 시대에 세워진 신사. 사실 이번에 다니면서 보니까, 신사들이 굉장히 유서는 깊은데, 정작 지어진 시기를 보면 메이지 다이쇼인 경우가 많더라. 물론 이 지도기산신사는 진짜 메이지시대에 세워진 거 맞음. 모리 모토나리공, 모리 데루모토공, 모리 다카치카(유신 당시 조슈번주)공을 기리는 신사이다.


이 때쯤엔 진짜 살...려...줘... 소리가 날 정도로 체력이 퍼져있는 상태여서... 진짜 들어가서 보고만 나왔다. 아 당연히 신사참배는 혔구. 모리의 선현들에게 당연히 예를 표해야 허지 않겠는가.


원래 최종목적은 바로 저 지월산에 등산하여, 거기서 일본해(동해)의 낙조를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늦을대로 늦고 보다시피 하늘은 흐릴대로 흐린데다, 체력은 바닥날대로 바닥나서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읎었다. 곧 공원이 문 닫을 시간이라 나가야 하기두 혔구.


하지만 스바라시한 날에 저기서 낙조를 본다믄 실로 장관중으 장관이지 않을까 싶긴 허다. 언젠가 또 와볼 날을 기약하며 돌아섰다.


하기 성 안녕~~


하기성의 북문밖으로 나오니 펼쳐져 있는 모습. 해자가 그대로 일본해(동해)로 이어져 있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일본인 특유의 스케일 큰 이상주의를 잘 보여준달까나. 물론 나도 바라는 바이기에, 일본해(동해)를 아우르는 두 나라의 우정을 위해서라도 합장하고 사진 찍었다.


지월산도 안녕... 지금 보는데도 새삼 뭉클해진다...


동네가 동네다보니 절이 참 많다... 라기엔 원래 일본은 어딜가든 이렇게 절이 많음. 동경같은 진짜 대도시는 안 가봐서 모르겠다만. 후쿠오카가 나가 가본 제일 큰 도시긴 헌디, 말 그대로 스치듯 안녕혔을 뿐이라.


소소한 귀여움들.


저녁은 마트에서 따쉬락과 스시와 과자를 사다 묵었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디, 진짜 어린애 팔뚞만한 네기토로 마끼를 팔더라. 근데, 거기에 붙은 수식어가 노무 일본스러워서 웃었다. 이름하야


極太ネギトロ入り巻


극태네기토로이리마끼

극태랜다. 낄낄~~ 나가 자주다니는 씹덕싸이트가 있는디, 거기서 떡인지에서 가녀린 주인공을 범하는 중년 아조시들을 극태중년이라 칭하곤 하는 것을 보고 괜히 웃기다 싶어 낄낄거리곤 혔는디, 그게 본토에서 진짜 쓰는 표현일줄이야... 극태 네기토로 마끼한테 위장을 범해지며 이날 하루으 일정을 마쳤다.


지금 보니 끔찍하게 기네... 만약 어제 다 쓸라고 혔으면 토했을 듯. 오늘 편도 사실 둘로 갈라야 맞을 정도로 긴 거 같은데 말이다.


앞으론 보다 적당한 길이로 더 자주 올리는 걸로 혀야긋다. 이렇게 길대서야, 어차피 읽는 사람도 벨루 읎지만 읽을라고 맘 먹은 사람도 무서워서 도망가긋다. 하튼 이로서 드디어 하기에 관련된 이야기가 마감되었다. 1부가 드디어 끗~


다음화부터는 2부 이와쿠니 편으로 넘어간다.


8화에서는 이만큼을 이동혔다.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오랜 투병을 마치고 방장경략이 부활!

사실 투병을 마친지는 좀 됐지만, 불편하다가 편해지니 마냥 늘어지고 싶더라고. 전에도 얼핏 말했지만, 정말 좋아하는 이야기라 오히려 쉽게 못 쓰게 되는 문제 때문이다. 정말 좋아하니, 정말 잘 쓰고 싶은데, 잘 쓰려면 노오오력을 해야하니까. 블로그질의 가장 큰 딜레마중 하나랄까나.


지난화에서의 여정 되시겠다. 오랜만이니 다시 설명충하자면 붉은 선은 산음본선을 통해 하기로 진입한 철도이동. 좌로부터 진입해들어왔다. 분홍색은 하기 내에서의 이동경로. 검은 선은 지난 회에서의 이동한 부분. 별로 못 갔잖아... 라지만, 저 부분이 이야깃거리는 더 많은지라. 원래라믄 시내에서도 더 많은 곳을 다닐 예정이었으나, 노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못 갔다는 것은 아득한 옛날의 지지난회 언젠가에서 한 이야기.


각설하고

오랜만이니 부담시런 이야기 사설 줄이고 바로 여행기 들어가자. 몸안에 든 불필요한 것을 빼내고 나니 불필요한 이야기가 줄었어요!


지난 화의 마지막은 요시다 쇼인의 생가와 묘소, 실로 요시다 쇼인의 인생의 시작과 끝의 모습이었다. 생가와 묘소가 바로 붙어 있는 게 우연스럽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이미 누차 말씀드린 바, 일본인의 장례문화상으로는 자연스러운 일. 집 옆의 절의 가족묘에 모시고 하루에도 몇 번씩 불공을 드리는 일은 일본에서는 자연스러운 것. 요시다 쇼인의 묘를 구경하고 내려오면서 또 한번 찍어본 일본의 장묘문화의 모습.


하기는 유명한 도요지이다. 아시다시피 일본의 도자기 문화는 거의 철저히 한국 - 조선을 통해 도입된 것에 가까우며, 하기또한 예외없이, 임진전쟁 당시 모리 데루모토가 납치해 간 조선인 도공을 통해 도자기 문화를 발전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나가 그 분야를 잘 아는 것은 아니다만, 도자기 문화는 일본이 더 발달하고 성숙한 거 같다. 지난번 구주 사가현에 여행갔을 때도 이마리 - 아리타 라고 엄청 유명한 도요지가 있는디, 이번 야마구치에 와서도 하기야끼라는 절품을 지닌 도요촌을 구경하게 뒤얐으니... 한국은 이천말고 떠오르는 게 없는데...


이 사진은 뭔가 묘한 느낌이 들어 올려봄. 처음엔 그럴싸한 역사유적이랍시고 보존혔는디, 알고보니 주차장 한 구탱이에 쭈그리고 있엌ㅋㅋㅋ 하는 생각이 들었는디 반대로 생각해보믄, 동네 주차장에도 수 백년된 도요지 유적이 있다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해보니 뭔가 좀 숙~ 연~ 해져서 기분이 알쏭달쏭해짐.


이 사진을 찍은 것은 두 가지를 포착혔기 때문인디, 하나는 산음본선의 철길건널목을 건넌다는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사진 좌상단으 하기전례회관 안내판 때문이다. 전례회관이 딱히 대단한 시각적 임팩트를 주고 그런 것은 아니다만, 전통문화와 예법의 본향중 하나인 하기에 있어서 분명 으미있는 시설 아니긋는가? 전례회관은 철길건널목 너머에 있응께 좀 더 뒤에 나온다.


후나쓰켄도 라는 건 뭔지 모르겠다. 뒤의 토마레, 는 알겠다만. 토... 토마레! 토마란쟈!!!


한참 쓰다가 지도를 들여다보니까, 이 건널목이 있는 곳의 지명이 후나쓰다. 그리고 뒤의 답절 - 후미키리는 철길건널목이라는 뜻이구. 그니까 후나쓰 마을을 지나는 현도 - 현관리하의 지방도상의 철길건널목이라는 뜻일 덧.

착한 어린이는 0120-39-4924로 장난전화를 하도록 하자.


크으... 실로 그림같은 기찻길옆 오막살이들... 나가 일본으 마을으 모습중에 또 좋아허는 것중 하나가 바로 저 배수로이다. 한국도 온대몬순기후지역으로서 배수의 필요성이 분명 크고, 비교적 배수시설도 잘 갖춰놓은 나라이긴 헌디... 배수로들이 하나같이 지하에 묻혀버리는 바람에, 그것이 이러한, 의도치 않은 수변풍경을 연출하는 경우를 당췌 찾아볼 수가 읎게 뒤야부렀다. 물론 급격한 난개발의 와중에 이런 계획적인 꾸밈새를 갖출 수 없었으니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만, 아쉬운 것은 으짤수가 읎다.

호젓한 철길건널목옆, 다소곳이 흐르는 배수로 물가에 단정히 자리잡은 전통가옥이라!

일본여행은 이런 맛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닐까.


윗 사진은 시모노세키를 향하는 하행선이고, 이 사진은 교토를 향하는 상행선의 모습이다. 이 쪽은 개발이 뒤야서 하행선쪽 같은 멋은 덜 하다만, 그랴도 죽 뻗은 선형과 수로는 보기 좋지 않은가.


상행선

하행선


철길과 찻길 걷길이 교차하는 곳은 이계임이 틀림없다. 이 곳은 사바세계와 다른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다.


이 건물이 위에 말한 하기 전례회관이다. 아담허다. 스피킹과 히어링이 된다믄 들어가서 이거저거 구경두 허구 썰두 풀구 싶구 그런디... 현실은, 말이 안 통하는데에 지레겁먹고 식당조차 제대로 못 들어간 게 현실. 말이 안 통해도 의사소통이 그렇게 크게 어려운 것두 아니구 번역기두 건재함에두 불구하구 왠지, 꺼려지더라. 특히 그 땀시 지나가다가 본 작고 예뻐서 들어가보고 싶었던 식당들을 많이 놓친게 좀 아쉽다. 나가 쫌금 많이 소심혀서.


이 사진을 찍은 것은 전례회관도 전례회관이지만, 구도상 사진 오른쪽에도 무게가 나뉘어져 있음을 느낄 것이다.


바로 이 집. 일본에는 8백만의 신과 8백만의 성이 있다.

참 애매헌 게, 이런 거 보고 하앍거리는 것을 나가 속한 한국인들 대부분은 이해못할 것이구, 그 대상이 되는 일본인들은 뭐야, 그냥 집이 뭐가 그리 좋음? 하고 의아해 할 것이라구 생각혀보믄 나으 이 일본가옥 모에는 갈 길을 잃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혹시 블로그 오시는 분들 중에 이런 일본 가옥이 나만큼 좋으신 분 있으시다믄 댓글 남겨주시라. 나만 좋아하는 게 아니란 것을 확인받고 싶어!


평범한 낡은 오피스를 왜 찍었냐믄 저기 간판에 붙은 사이토 마하루? 이름한자를 정확히 읽는 것은 일본력이 높은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일인디, 하튼 저 사이토 마하루라고 생각되는 양반이 여기 지역의원인거 같은디, 그 사무실 일본력 높은 표현으로는 연락소이기 때문이다. 소소한 지방정치가 마을과 밀착되어 있는 모습이믄서 나라 자체가 거대한 이끼인 일본의 표현이기두 할테지


하기의 양대 젖줄인 아부강을 건너는 대~ 교~ 인데... 아치가 참 특이하게도 돌아치이다. 그야말로 돌 다리도 돌 아치 얹어보고 건너기인것인건가.


아부강 상류쪽으 모습. 하구에 다다라서이겠지만 슷고~이 한 수량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풍부한 수량을 먹고 자라는 저 강상의 숲이 또 심쿵하게 함.


재밌는게, 반대로 하류쪽은 마치 강가에 듬성듬성 분재 심어놓듯이 잘 관리한 소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상류쪽은 야생의 숲이, 하류쪽은 다듬어진 식수가 이뤄진 게 일본의 양면성 같지 않나? 원래 왜놈들이 표리부동한 놈들이다.


하튼 돌다리를 향해 도쯔케키~~


잠깐 다리가 있는 현재 위치를 확인하구 가자. 지도상에 보라색 스~타~ 로 표현한 곳이 지금 우치이다. 글구 보라색으로 둥글게 표시한 곳이 하기의 여의도 하기의 맨해튼인 이 곳이다. 아쉽게도 섬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나가 알아내질 몬혔다. 역시 원어민이 있어야 토인한테 물어볼 수 있는 거신듸... 다리 이름은 구글 지도에는 나오지 않기에 야후 재팬 지도에서 찾아보니 마쓰모토 대교 松本대교라고 헌다.


좀 더 가까이에서 본 마쓰모토대교신사의 석재도리이의 모습


당시에는 다리의 제원을 써 놓은 것이구나! 허구 생각없이 찍어왔는디, 지금 와서 자세히 봉께 건축이 아니라, 도장 - 페인트칠을 했다는 기록같은 것이었다... 언제 만들어진 다리인지는 알 수 읎는게, 저 도장이 완공당시에 한건지, 나중에 다시 한건지 이것만 봐서는 알 수 읎는지라...


부진아부강곤곤래

작은 강 주제에 수량이 증말 풍성하다. 일본이란 나라가 좁고 긴 지형에 그나마 가운데를 완전히 산이 지르고 지나가는 지형인지라, 강들이 다 짧다. 면적은 한국의 4배에 가까운 나라인데, 제일 긴 강은 한강의 반 밖에 안되는 367키로메다으 시나노강이니.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구 수량은 엄청나다. 지금 지도를 보다보니 혼선이 온 게... 이 강을 구글지도에서는 아부강이라고 허는디 야후 재팬에선 마쓰모토 강이라고 한다? 이게 왠 변괴... 역시 현지인한테 이야기를 듣고 왔어야... 일본어 공부 정말 허긴 혀야 허는디...


각설하구 하튼 이 강이 무슨 강이든, 100키로메다도 안 되는 강인디 수량은 상당히 풍부허다. 물이 워낙 많고, 그 많은 물이 엄청난 밀도로 나무들을 키워대고, 키워진 나무들이 또 다시 막대한 물을 저장허는지라. 한국이 물이 부족한 나라가 아닌디, 일본으 이 엄청난 수량은 여러모로 참 매력적인 부분인 거 같다.


다리 위에서 찍은 상류쪽


아치 도리이를 좀 더 가까이서 찍어 봄

그 당시엔 단순히 돌아치라는 점 이상으로 뭔가 묘한 느낌이 든다, 라는 것으 실체를 깨닫지 못혔는디, 지금와서 다시 사진을 보면서 깨달은 게 신사들에서 보던 돌 도리이하고 느낌이 비슷하다는 점 때문에 묘하게 느꼈다는 것이다. 아치가 돌이면 이상한가요? 라는 의문도 일본이라면 납~ 득~


바로 옆에서 찍어 봄. 왠지 정겹지 않나?


사진으론 잘 안 보이지만, 늘 말하듯이 일본으 가와들은 수질도 증말 좋다. 수질 좋은 물이 푸짐하게 흘러가는 모습이 보면 볼 수록 빠져듭니다.


아치 도리이 너머로 보이는 상류으 모습.


하기여의도의 정글에서도 저 나무가 퍽이나 인상깊었더랬다. 굉장히 킹무성하게 자라나서 물속으로까지 가지를 드리우고 있는 모습이 맘에 들었달까나. 하기에서 2일을 보냈다면, 아마 저 숲속에도 들어가 봤을테지.


다만 오래되었고 낡은 모습은 피할 길이 읎다. 최근 일본 사회으 이슈중 하나가, 버블경제 시기에는 돈이 많아 팍팍 짓어부렀고, 거품이 꺼진 이후에는 경기부양한다고 또 팍팍 짓어부는 바람에 부채비율 250%에 기여한 이 공공 인프라들이, 잃어버린 시리이즈가 20년을 넘어 30년이 되어가는 이 시점이 되다봉께, 내구연한이 슬슬 차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리하기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이 짓어놔서 잘 관리도 안 되는디, 점점 낡아가는데, 지방소멸로 사용하고 지켜볼 사람도 줄어드니 이걸 우째야 하나, 하는 게 고민이 되는 부분.


이 작은 다리 하나에도 일본의 빛과 그늘이 고스란히 비추고 있달까나. 참 안타깝다.


저런 강가의 선착장 계단의 모습은 일본 중세시대물에도 많이 나오지만, 서양 중세시대 물에서도 적잖이 볼 수 있다. 백작님의 강가에 짓어져 있는 성이 있고, 그 성의 물가 나루에 배가 닿아 몰래 탈출하는 백작님으 영애를 실어나르는 장면 같은 거 외국 명작만화 같은 데서 본 기억들 있으시려나? 나는 있음.


그러다봉께, 저런 물가으 계단에도 또한 로망이 있다. 이런 소소하고 디테일한 부분들에서 일본의 평범한 마을들의 진짜 매력이 있는 것.


걸어내려가서 나룻배에서 노 저으며 강을 노닐고 싶다능~


이 사진에는 수질이 좀 잘 나온 거 같다. 보시라. 증말 깨끗허지 않은가? 그것도 하구에 다 다라서, 상류에 비하믄 드러운 편인 곳인데두 이렇다. 그렇다구 막 마셔도 되는 건 아니겠지만.


하기 여의도에 진입해서 본 첫 집. 다만 워낙 작은 섬이라, 이 사진 저~ 끝에 보이는 집이 이 섬에서 볼 마지막 집이다. 대략 집 대여섯채 들어가면 끝나는 폭의 섬이랄까나.


크으... 이 또한 죽이는 풍경... 무슨 나문지는 모르겠다만, 이제 2월이라 봄을 맞기 위해 잎새를 틔우지만 아직 2월이라 잎들이 피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작은 다리와 그 다리아래의 수로위로 펼쳐져 있다...


마쓰모토하시(松本橋)라고 쓰여있다. 이 작은 다리까지 합쳐서 전부 마쓰모토 교라고 하는 모양


진짜 아담한 다리다. 내 맘에 쏙~ 들어온다


...

뭐라고 표현해야할 지 모를 풍경이 한 둘이 아니지만... 그나마 그럴싸하고 근사한 풍경들은 레퍼런스들이라도 많다. 그렇지만 이런 소소하고 아담하고 초일상적이라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다니는 풍경에 꽂히면 뭐라고 해야할까? 노무노무 이뻐서 공중제비 20바퀴 돌겠다 이기야! 라고 소리칠까.

일본의 문화중에 또 이름있는게 아담한 일본식 정원이다. 단아하고 예쁘고. 근데, 이런 작은 수로들의 모습도 충분히 일본정원같은 느낌이랄 수 있지 않을까.


이 집이야말로 하기 여의도를 떠나믄서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집. 무슨무슨 유신지사의 고택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고색창연한 일본가옥이다. 사실, 하기의 가옥들은 대부분 이렇고, 단지 유신지사가 머물렀는지 아닌지의 차이만 있다해도 노과언이다.


하기 본토로 들어오니 이번엔 보다 깔끔하게 잘 정비된 가옥들이 반겨준다. 역사지구 아니다. 그냥 동네다. 자전거타고 토인이 지나다니는.


이왕이믄 카토리꾸 교회라 하지 말고 고색창연하게 천주당이라고 해 주믄 더 좋을거 같다.


앞에 덧댄 애드온은 쇼와시대에 지은 게 분명하지 싶은디, 그 뒤의 옛 본당은 아무리 봐도 명치시대쯤에는 짓었을 거 같은 느낌이다. 그 선대인 효명천황시대에는 쇄국중이니 당연히 아닐거고.


물론 저런 고리짝 건물을 아직도 제대로 쓰는 건 아니고, 지금 쓰이는 천주당은 이 사진으 건물임. 그렇다고 옛 건물을 안 쓰는건 아닌거 같긴 허다만. 안 그라믄 애드온을 왜 짓었겠누.


이 건물도 참 예쁜데... 보다시피 폐쇄된 건물이다. 아베 뭐하냐. 지방창생 안하고.


저 전공투 헬맷쓰고 자장구 타고 다니는 꼬꼬마들은 볼 때마다 적응 안된다. 쟈들은 전공투가 뭔지 들어본 적도 읎긋제. 사실 저 헬맷을 보고 전공투를 떠올리는 자체부터가 꼰대 + 빨갱이 조합인지라 환영받지 못함.


이거 단순한 미깡 맞냐? 한국 귤 중에 저만한 귤은 들어본 적도 없다. 한라봉이니 천혜향이니 하는 개량종들 중에는 저 만한 긋도 있는거 같긴 허다만. 내 주먹보다 큰 귤이라니, 저거 하나 먹으믄 한끼식사 때울 덧.




오랜만에 쓸라니 뭔가 기합이 부족허다... 계획으로는 이번화에 하기를 마칠 생각이었는디, 똥도 마렵고 기운도 좀 빠진다. 애초에, 여태까지가 한 화 한 화 가 노무 길기두 혔긴 허다만... 그랴서 일단 여기서 끊고, 하기편을 마치는 것은 다음화로 미루기로 허자.

대신, 정말로 내일은 쓸거임. 내일로 미루자.


7화에서는 이만큼을 이동하였다.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다시 재삼 재사 말하지만, 나는 일본의 침략행위는 잔악한 범죄이며, 그에 대하여 반성하지 않는 현재의 일본의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태도를 강하게 규탄한다. 정치적으로 나는 현실적 평화주의자(군사적 행동을 반대하고 군비축소를 지향하지만 부득이하게 군비를 갖출 필요는 있음)를 자처하며, 국제문제는 최대한 평화적으로 협력적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렇기에, 대놓고 침략을 했고 그 과거를 미화하는 일본의 작태를 곱게 볼 리가 없다.


계속 말한 이야기지만 이번 화에 또 이것을 강조하는 것은... 이번 화의 이야기는 요시다 쇼인으로 시작해 요시다 쇼인으로 끝나기 때문이며, 그 중간에 무려, 한민족 입장에서 최악의 악인으로 첫 손에 꼽는데 이론의 여지가 벨루 읎을 이토 히로부미의 이야기도 나오기 때문이다. 첫 목적지부터 이렇게 빡쎄대서야 원...


하기라는 곳은 역사도시이다. 그리고, 그 역사의 축은 에도시대의 모리가문의 본거지였다는 점과 메이지 유신 당시의 중심급 인물들이 성장한 곳이 이 곳 하기라는 점 이 두 가지이다. 앞서도 얼핏 말혔지만, 스토리도 (일본인 입장에서)극적이다. 모리 가문은 동의 도쿠가와에 맞서는 서의 구심점이었다. 그러나, 전쟁에서 패해 광대한 영지를 잃고 감시받고 경계당하는 일개 지방세력으로 전락해버렸고, 그 굴욕감을 품은 채 에도막부 250년을 지내야 혔다. 그랬던 모리가에서 서세동점의 와중에 흐름을 잘 타서 모리번은 강력한 경제 군사력을 지닌 웅번으로 성장하고 번 내에서는 여러 (일본 입장에서)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수 많은 신진기예들이 자라나, 마침내 도쿠가와가를 물리치고, 조슈번 출신의 인사들이 일본의 대세를 장악해, 유신으로부터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강력한 세력을 떨치게 되는, 역전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이야기 자체로서는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극적인 성공스토리인 것이다.


그리고 요시다 쇼인은 그러한 신진기예들에게 강한 영감을 주어, 그들이 일본의 새 시대를 이끄는 인물이 되게 한 스승이고, 이토 히로부미는 그 신진기예들의 말석에 존재했던 인물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하기라는 곳이 사실상 오늘날 번영하다가 퇴락하고 있는 일본의 자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내가 이 곳에서 보려는 것은 그 극적인 이야기의 현장과 모습들이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범죄과 악행을 잊을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그러나, 일이 벌어진 자체는 벌어진 것이다. 나가 여행 갔다오고 틈틈이 드립처럼 쓰는 표현이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는 유신의 심장이 따듯한 진정한 일본인이 될 수 있는 기회였다'


라는 것인데... 이거 참 한국에서는 처 맞아도 싼 드립이다만, 저 드립의 기원은 사실 철저한 조롱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D%BC%EB%B3%B8%EC%9D%98_%EB%A7%88%EC%9D%8C%EC%9D%84_%EC%86%8C%EC%A4%91%ED%9E%88_%ED%95%98%EB%8A%94_%EB%8B%B9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라는 것은 이 당의 이름에서 따 왔다. 나가 진짜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혀서냐? 그건 아니구... 일본 정치는 수준이 낮은 것으로 유명허다. 일부 일뽕들은 일본 정치가 한국보다 낫다고 말하는 데 그런 놈들은 그냥 정치에 대해 아닥혔으면 좋겠다.


각설하고

수준이 낮은 정치이다보니 정당들도 해괴망측한 것들이 많은 데... 저 당은 이름부터가 해괴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이름이 우스꽝스러워서 일본 정치를 이야기할 때는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해야죠~ 식으로 드립을 치는데에 저 당의 이름을 요긴히 써 먹는다.


유신의 심장은 당연히


장군님... 그립습니다...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셨던 그 분에게 바치는 오마쥬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이 짤 보고 몇 분을 웃었는지 기억도 안난다. 웃다 뒤지는 줄 알았다. 이 짤에 하도 감명을 받아, 감동이 뭉클히 올라오면 아 나으 유신의 심장이 또 따듯해지네... 라고 말하곤 헌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진정한 일본인임을 자칭하는 데 있어서,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는 유신의 심장이 따듯한 진정한 일본인


이란 자기 소개는 배덕의 미학의 정점을 찍는다, 라고 나는 생각헌다.

솔까 왜놈들이 과거사 반성 안하는 게 짜증나는 이유가, 일본 갖고 칠 수 있는 수 많은 드립들이 있는데... 이 놈들이 반성을 안하고 스스로 악마화를 자초하다봉께 그거 갖고 드립을 칠 수가 없다. 깔끔히 반성하면 진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데... 하긴 그러면 왜놈이 아니긴 하지. 물론 반대로 생각해보면... 나쁜놈이 아니게 될 경우 그 나쁜놈 갖고 드립치는 게 지금처럼 재미가 있을까? 허는 생각이 들긴 헌다. 나는 아직도 개구쟁이 코찔찔이의 심정이 강한지라 그게 배덕의 쾌락을 추구하는 큰 근원이 된다. 나쁜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라는 말을 들으면 더 하고 싶어진달까... 그런 상황에서 나쁜 놈 끝판왕인 일본놀이를 하는 것은 배덕감을 극대화하는 것... 어찌 이 쾌감을 놓칠 수 있으리.


다만 쾌감은 쾌감이고 비판은 비판임을 철저히 구분할 뿐이다.


그리고, 일본인들의 악행은 악행인데, 그 악행의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이룬 성취 그리고 그 성취에 대한 자부심은 일본인들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것 그 뿐이다. 그리고, 이해한 이후에는 응 니네 쓰레기야~ 라고 돌아오는 것이고. 물론 주화입마의 위험이 없다고는 못허는디, 이러고 논지 5년이 넘었다. 그럴 걱정은 없다고 단언헌다.


그니까, 맘 편하게 일뽕 코스프레하면서 놀겠다, 는 이야기... 인데 역시 쉽게 되진 않겠지. 끊임없이 일본 개새끼를 외치며 일뽕에 취하는 수 밖에.


다시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는 나로 돌아가서... 상기한 스토오리가 있기에, 유신과 그 성공은 일본인에겐 정말 놀라울 정도의 짜릿함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현재의 일본의 꼬라지를 보면서 탄식을... 오늘 새벽에 피지ㄹ... 아니 피지알


https://pgr21.com/pb/pb.php?id=freedom&no=76379


이런 글을 썼다. 따로 포스팅 하는 게 좋겠다만 그냥 왠지 귀찮아서. 하튼 이제 "무시무시한 군국주의 일본" 은 한국보다도 군사비가 적은 나라가 되기 직전이다. 아! 너무 무섭다!!! 게다가 계속 생각하는 거지만, 극우파는 오히려 일본의 암이다. 그런 의고적 태도를 버리지 못하면 더더욱 일본은 과거의 영광에 얽메여 현실의 문제를 더 악화시키게 될 뿐이다. 일본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극우파는 정리해야 하는건데... 일본인들의 현실도피성향은 그런 것을 못하게 만들고 있달까나. 아베가 저러면 저럴수록 일본은 더더욱 위축될 뿐이고, 작금의 남북미정상회담 정국에서 그런 면모는 더더욱 두드러지지 않는가.


각설하고

하튼 작금의 일본의 꼬라지를 보면 일본인들은 우째 이런일이... 라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고, 그러다보니 놀랍고도 기적과도 같은 성공을 이어갔던 유신시절의 자국의 과거사에 대해 향수를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잘 나간다면 지금의 번영의 근원이라서, 못 나가더라도 그 때 우리는 빛났는디... 하면서 말이다. 여담인데, 하기에서 열린 유신 기념식의 분위기는 100주년 기념식과 150주년 기념식이 크게 다를 것이다. 일본이 엄청나게 잘 나가던 1968년의 100주년 기념식에서는 희망찬 분위기였고 앞으로"도" 잘하자 였는디, 올해 열릴 150주년 기념식에서는 아무래도 좀 찝찝한 분위기에 앞으로"는" 잘하자 가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일본이 잘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놈은 일부 어쭙잖게 일본에 대해 얄팍하게 아는 우익 지식인들 뿐이니까.


하튼 하기는 바로 그런 곳이다. 그렇기에, 이 곳은,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는 유신의 심장이 따듯한 일본인이라면 가보지 않을 수 없는 곳이 되는거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식의 자기변호를 혀야 할 일이 몇번 더 있긴 할게다. 시모노세키에선 신공황후 문제가 또 걸리는지라... 어쩌겠나. 한국인으로서 일본에 대해 깊은 애착과 격한 증오를 동시에 지니게 된 내 자신을 탓혀야지. 깔끔하게 증오만 하면윤서인처럼 애착만 가지면 문제는 편하겠다만, 나의 장점인 상대의 입장에 잘 이입하는 것과 나으 단점인 자기으 주체성이 모호한 부분땀시 그게 그렇게 되지가 안헌다. 판단과 통찰이란 점에선 분명 장점이라고 생각허기에 이렇게



자기과시 헌다만.


지난화에서의 여행분이다. 이번 화에서는 장거리 이동이 없을 것인지라, 이 지도는 올리지 않게 될 것이다.

대신



하기 시내 여행도를 올려야겠지. 하기의 위치가 어디인지는 윗 지도를 클릭하믄 확대되니 확인허시구.

앞서의 5화에서도 말 혔듯이, 실로 천혜의 땅이랄 수 있다. 좌상단이 지난 화에서 말혔던 시즈키산, 그 산 기슭에 하기성, 성 앞에 해자 하나, 해자 밖에 하기번의 사무라이들의 거소, 그 밖에 또 해자하나, 해자 밖에 성아랫마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둘러싸고 있는 아부강과 하시모토강. 아부강의 삼각주지대에 실로 절묘한 위치에 자리잡은 요새도시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육로로는 산음도의 길의 요충에 자리허구 바다로는 동해(일본해)의 수운의 가운데에 위치하니 물러서면 지키기쉽고 나서면 뻗어나가기 좋... 까지는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좋은 위치의 마을이라 헐 수 있긋다.


산음본선 철길은 역사유적지인 마을 한 가운데를 피하기 위해서인지 죠카마치(성아랫마을)를 크게 빙 돌아서 지나간다.지도상의 뻘건 선이 산음본선 철길. 지도의 좌측에서 진입하여 아래의 하기역(하기역 위치 표시가 잘못뒤얐다...저 바로 아래다. 그림판 다루는 실력이 구려 수정할 엄두가...)을 지나 우상단의 히가시하기역에서 종착혔다.


노오란 별들이 여행 포인트, 핑크색선은 하기에서 나가 돌아다닌 보행로이다. 화살표모양으로 진행방향을 표시혔는디 역시 그림판질이라 퀄이... 마을 자체로만 보면 작은 마을이다만, 전체를 완죤히 타통하려다보니 이 날 걸은 거리는 대략 14킬로미터... 문제는 관부연락선내에서 잠을 제대로 못 이루는 바람에 수면 시간이 2시간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 피로가 제대로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저렇게 돌아다니느라 증말 뒈지는 줄 알았다. 거기에, 역시 앞서 말혔지만, 다른 마을들에서는 10~11시에 일정이 시작되는디, 여기는 열차시간이 맞지 않는 바람에 13시에 일정이 시작되는지라, 시간이 부족해서 조급한 마음에 더 빨리 돌아다니느라... 원래는 이 여행도에 표시된 것보다 대략 대 여섯곳 정도는 더 돌아볼 계획이었는디 촉박헌 시간, 떨어진 체력으로 인해, 저 만큼 밖에 보지 못했다... 이번 여행에서 제일 발목을 잡은 것은 체력이었달까나. 물론, 나가 지도만 보고 계획을 세우는 바람에 감당하기 힘든 무리한 계획을 세운 면이 더 크긴 하겠다만, 대체로 다른 날들은 목적들을 거으 대부분 달성혔던지라... 가장 의욕적으로 계획을 세웠던 하기가 계획달성률은 제일 낮은 게 아이러니.


게다가 이것도 지난 화에서 이야기헌건디 이 날, 2월 3일은 날이 흐렸다. 날이 흐리구나, 하고 생각하고 별 생각없이 마쳤는데... 다음 날부터 날이 쾌청하니 풍경의 때깔이 전혀 달라지는 게 아닌가. 다음 날의 이와쿠니에서 돌아다니믄서 느낀게, '아 하기에서는 날씨가 좋지 않아 풍경이 그렇게 좋지 않게 느껴진거구나...' 라는 것을 절감혔다. 이래저래 첫 날에 신고식을 혹독히 헌 셈. 사스가 갓본으 8백만신은 이방인에게 호락호락허지 않으시다...


마 어쨌거나 열심히 뽈뽈거리고 돌아다녔고, 썰도 구구하게 장황허게 풀었응께 인자부터는 여행모습을 들여다 보기루 허자.


히가시하기 역의 모습. 최신식은 아무리 봐두 아닌디 뭔가 전통식이라기두 애매헌... 절충의 나쁜 사례같은 느낌? 물론 건물 자체로만 보믄 깔끔허니 잘 짓긴 혔다.


방장경략등장버스 답게 운수회사 이름도 방장버스. 이 야마구치현이 주방 장문 두 옛 지명을 합쳐서 된 지역이고 주방 - 장문 에서 한 글자씩 따서 방장 - 보초라는 약칭으로 불리운다는 것은 지난번에 이야기허긴 혔지만, 연재가 지지부진한지라 기억 못하실 분들도 많을 듯하여 또다시 설명충질.


되게 고풍스러운 건물이 나오는데 아무런 역사적인 뭣도 아닌 일반 가옥이다. 마 앞으론 이런 모습 지겹게 볼 거니까. 열차에서 내려서 처음으로 본 일본가옥이기에 찍어올림.


해수면으로부터 내 키만큼 높이도 안된다는 이야기... 동해(일본해)에서 쓰나미가 몰려오면 꼼짝도 못할 듯.


군대가 인기 드릅게 없는 나라에, 인구도 5만도 안되고 그나마 대부분 노인인 동네에서 뭔 군인을 모으겠다고... 마 유신의 심장의 그 동네이니 유신지사 같은 사람이 많기를 바라는 걸지도?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걸어 건넌 철길건널목. 협궤가 좁긴 좁다...


하도 연재를 질질끌다봉께 말 혔는지 안 혔는지 스스로도 아리까리헌디, 일본은 생태레벨이 한국보다 한 레벨 이상 높다. 한국에서 비둘기의 위치는 까마귀가 차지하고 있고 까마귀의 위치는 매인지 독수리인지 황조롱이인지 잘 모르긋는디, 하튼 이놈이 차지허구 있다. 사진 비율을 보시믄 알긋지만, 저 간지포풍의 새들이 바로 머리위를 날아다닌다. 원래 동물을 좋아허지만, 한국에서는 정말 쉽게 보기 힘든 이런 상위포식자 고오급 생물들을 코앞에서 마주허니 감동이 쓰나미처럼 몰려와서 열심히 찍었다.


첫 목적지인 쇼카손주쿠 - 송하촌숙으로 가는 길. 주요 역사여행지 답게 깰끔히 정비된 모습.


이제 한국에선 보기 힘들게 된 정글짐. 옛 추억이 떠올라 볼 때마다 찍곤 혔다. 지금 내 몸뚱아리로 저기 기어들어갔다간 껴서 나오지도 몬헐 듯.


기찻간에서 볼 때도 훌륭혔지만, 역시 내 발로 걸으믄서 코앞에 보니 느낌이... 이런 집들이 그냥 보통의 개돼지들 집이란게 참 놀라운 일이다.


일본의 자전거 문화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보편화되어 있다. 이것도 상당한 장점. 안전을 중시허는 꼬꼬마들도 헬맷을 열심히 착용허구 다니는디, 그게 무슨 경찰이나 공사장 하이바 같아서 묘한 위화감이~ 아키라에 보면 나오는 전공투들이 쓰고 다니는 하이바하고 기본적으로 비슷허다.


조슈번이 막부를 때려잡는데 맨 손으로 되는 것은 아닌 법. 당연히 공업을 발달시키고 무기를 만들어 막부보다 한 테크위의 군비로 딸리는 물량을 뒤집었다. 이러한 조병창에 제철시설, 조선시설등 여러가지 시설이 하기의 근대산업유산으로 남아 있는데, 나으 주 관심사는 아닌지라 지나가는 길에 보인 이런 것만 찍었다. 사실, 이 손바닥만한 마을에 하루를 풀로 할당혔는데두, 보지 못한게 노무 많은지라... 만약 다시 간다면 이런 것들두 둘러볼 겸 하기에만 3일은 할당할 거 같다. 산과 바다와 강도 많아서 풍광도 엄청 수려하거든. 식문화도 제대로 못 체험혔구.


쇼카손주쿠에 도착. 와시가 쇼카손주쿠주쿠죠 요시다 쇼인 데아르!


이 분도 참 훌륭한 장군님이시지...


일본의 역사마을을 돌아다니면 가장 인상깊은 것이 저 검은 기와가 얹힌 흰벽이다. 실로 白壁 - 시로카베의 민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랄까나... 한국은 백의민족 일본은 백벽민족.


쇼인신사의 정문. 쇼인이 위인으로 숭상받은 역사가 그리 오래된 게 아닌지라, 신사 자체가 근본있는 신사라긴 어렵다. 사실 애초에 일본전국 8~60만개의 신사중 거으 대부분이 메이지 다이쇼 이후에 제대로 숭상되기 시작헌 거긴 허다만...


경내는 차분한 공원삘이다.


센 리큐와 그의 제자 후루타 시게나리의 다도이야기를 다룬 효게모노를 엄청 재밌게 본 지라, 일본의 차 문화에도 관심이 있다. 이 건물은 이번 여행에서 처음 본 일본식 다실이라기에 찍음. 하기번 7대번주 모리 시게나리가 1776년 호후에 지었던 것을 쇼와 34년, 그니까 1959년에 여기로 옮겨 보관중이다, 라고 써 있는거 같다. 지어진 해가 미국이 독립선언한 해이구먼.


일본 서브컬처에 보믄 저 시메나와가 또 독특한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시메나와는 액을 막는 금줄인디, 그게 처져 있다는 것은 나같은 부정한 것을 퇴치혀야하는 중요한 곳이라는 의미일 터.


아니나 다를까, 요시다 쇼인이 유폐되어있던 집을 지키는 금줄이었던 것이다.


여태까지 봤던 집들이 현대식으로 어레인지된 전통가옥이라믄, 이 집은 명실상부 에도시대에 지어진 정진정명 진품 일본식 가옥이다. 솔까 쇼인이란 인물의 역사성을 제껴놓고 가옥으로봐도 충분히 아름답다. 중요사적이라 들어가보지 못하는 것은 아쉽.


드디어 쇼인신사에 도착.

안에 신관님은 오늘은 또 어떤 싸무라이들을 용기병으로 만들고 있으실런지


신사참배를 하기 전엔 여기서 손과 입을 씻고 가는 것이 참배의 작법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신사참배를 했다고 내가 일제에 혼을 판거 아니다. 문화체험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황국에 충성하는 것도 아니니 그런거 문제삼진 말도록 허자. 일본 여행동안 들른 신사에는 거으 대부분 참배를 혔다. 종교라는 것에 대해서는 기독이든 이슬람이든 불교든 가리지 않고 흘러간 과거의 찌꺼기 이상으로 취급은 하지 않는다. 다만, 수많은 사람들의 열망을 담은 문화의 결정체라는 점에서 그 자체는 상당히 흥미로운 대상으로 간주함. 한국 개신교단을 극히 싫어하지만, 개신교 교회의 건물들 자체는 사람들이 쌓아올린 욕망의 복마전이라고 보아 오모시로이하게 여긴다. 신사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 아직도 원시시대의 애니미즘적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본의 토인들이 자기들이 쌓아올린 허상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는 미몽의 현장으로 여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복마전의 개독이든 신사의 왜인이든 결국 내 눈앞에 살아있는 그들이, 삶의 근원이라 믿고 그것을 숭배한다는 것. 그들의 문화를 겪어보는 것은 그 만큼, 이 세계를 이해하는 경험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히 있다.


오옷 나무 도리이~ 확실히 격이 있는 신사는 나무 도리이를 쓰는구먼. 쇼인은 신으로 모셔진 위인중에서도 격이 아주 높은 인물이라 대우도 좋은 거 같다. 물론 모든 위인의 신사가 나무 도리이를 쓰는 건 아닐 것이기에 내 취향을 멋대로 갖다붙인 설명에 가깝다만.


너 사실 나치를 좋아하는 거 아니야? 물론 하켄크로이츠는 이 역방향이다만. 그려서 동양권에선 逆만자라고 부르긴 허지.

쫌금 흔들렸는디, 신사내전의 제단까지 찍어봤다. 근데 이거 찍어도 되는거겠지? 일단은 토인들에겐 신성한 곳인데 혹시 찍으면 안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일단 아무도 없어서 말리는 사람은 당연히 읎었다만.


일본도 공부문화가 발달한 나라라, 공부의 신으로 숭상되는 신들이 여럿 있다. 쇼인이 길러낸 제자들이 이룩한 일을 볼 때, 공부의 신 업계에서 그의 위상이 어느정도일지 설명이 必要韓紙?


어쨌건 여기도 전통신앙미신의 전당인지라, 길흉화복을 논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근데... 1977년생은 올해가 대액년이라는데? 나 올해 좆되는 건가? 몸 사리고 조심조심 지내야겠다.


캬~ 아무리 일뽕맞은 센징이 해봐야, 정품 일본토인이 야마토 다마시를 담아서 하는 것과 비할수는 읎제~ 정품 신사참배를 토인들이 하기에, 뒤에서 몰래 찍어봤다. 말 나온김의 이야기인디 저 야마토 다마시 - 大和魂 이라는 일본정신을 강조한 사람이 바로 요시다 쇼인이다.


용품창고 같은디, 장소가 장소다 봉께, 스타일을 신경써서 지은거 같다. 괜히 맘에 들어 찰캌


이 신사는 쇼인신사 좌측의 송문신사, 그니까 쇼인 문하생들을 합사한 신사이다. 송문에는 유명인사들도 많지만, 기억해주는 이 없는 스쳐지나간 사람들도 당연히 많고... 왠지 잊혀진 사람들이 쓸쓸해 보여서 찍어봤다. 물론 애초에 신사가 지어질 정도의 사람 자체가 그냥 잊혀진 사람들인건 당연히 아니지만.


쇼인신사 본당을 옆에서 찍은 모습. 앞에서 볼 때는 알 수 없는 나름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신사건축양식 자체가 이렇다. 앞에서 보면 평범한 기와집인디, 그 뒤로 통로 같은 게 지어져있고, 제단을 모신 진짜 본당은 저 뒤에 반발짝쯤 높게 지어져있는 구조이다.


물론 그거야 모셔져 있는 신의 위격이 높은 고오급 신사의 이야기고, 이런 약식으 소소한 신사들이 훨 많다. 개인적으론 이런 게 더 좋다. 위엄찬 신사들이 뭔가 비일상적인 느낌이라믄, 이런 작은 신앙의 장소들이야말로 보다 생활화된, 개개인이 체득한 문화라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지. 쇼인 신사답게 권학당이라는 팻말이 붙어져 있다.

무... 무녀님이다...

무녀님이 주신 경단의 맛 잊지 않겠습니다...

난 이 드립을 치기 위해 일본에 왔는지도 몰라...

항봉무녀는 고갤이 인정한 4대명작이니 야겜러들은 꼭 해보세요.


ㅋ~ 포켓몬뽕에 취한다... 신사경내에서 포켓몬 고 를 플레이하지 마세요 라고 쓰여있다. 근데 저 시점엔 이미 포켓몬 고 인기는 뽕이 다 빠진 뒤이긴 허다만... 전성기에는 쇼인신사까지 와서들 극성이었단 것을 알려주는 역사자료이다.


사스가 쇼카손주쿠...


보시믄 아시긋지만 굉장히 작은 건물이다. 원래는 제자들을 거으 독대하다시피 가르쳤다는디, 그 명성이 높아지믄서 저 좁은 방에서 복작복작 몰려서 가르침을 주고 받았다고 헌다. 현대 일본이 이 작은 부옥에서 태어난 셈이니, 일본인에게는 작지만 큰 집일테지.


강의실의 모습과 요시다 쇼인의 초상. 깐깐허니 잘 가르치게 생긴 거 같긴 허다.


쇼인과 그의 제자 내가 멋대로 이름붙인쇼인12철의 모습. 다카스기 신사쿠, 기도 다카요시, 쿠사카 겐즈이처럼 일본토인들은 잘 알지만 한국인은 잘 모르는 얼굴들 틈에 교과서에서 뻔질나게들 보았을 그 분의 모습이 우중단에 보인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국가적 위인의 地인지라 천황과 황태자내외도 왔다갔다. 연호가 헤이세이인 것으로 보아 금상 아키히토 천황과 황태자 나루히토 친왕이 왔다가 남긴 비석인 듯.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아키히토와 나루히토는 극우와는 거리가 먼 정도를 떠나 아예 상극인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도 당연히 일본인인지라, 쇼인은 위인으로서 존숭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이 곳이야말로 명치유신 태동의 땅


사실 그것보다는 이 비석을 남긴 사람때문에 이 사진을 올린 것. 원 내각총리대신 사토 에이사쿠가 쓴 글을 비석으로 남긴 것이다. 아마 그가 재임중에 이 곳을 정비하면서 남긴 게 아닌가 싶음. 사토 에이사쿠는 허구헌 날 내각총리대신이 바뀌는 일본에서 무려 7년 8개월이나 내각총리대신으로 재임해 역대 2위의 재임기간을 자랑한다. 1위는 3차에 걸쳐 7년 11개월을 재임한 가쓰라 타로. 정작 사토 에이사쿠는 그렇게 카리스마나 지도력이 강한 인물도 아니었음에도 오래 집권했다는게 특색이랄까. 비핵 3원칙으로 뜬금없이 노벨 평화상을 타서 그런지도? 군인 출신인 가쓰라 타로를 빼고 순수 문민중에는 최장기 집권 내각총리대신인디, 그런 점에서 괜히 좋아허는 인물.


불행히도 아베 신조가 작년 총선에서 압승하믄서 사토 에이사쿠의 기록을 월등히 넘을(1기 내각 합치면 10년도 넘을 수 있다)뻔혔는디 요즘 모리토모다 북핵문제다 점점 똥되는 분위기가 역력해져서 다행이지 시프요. 물론, 정치는 모르는거라 이런 위기를 넘기고 10년집권을 달성할지도 모르긴 허다만... 아베 같은애는 빨리 낙마혀야지.


쇼인신사와 쇼카손주쿠를 다 보고 나와서 마주친 선거 포~스타


요즘은 이야기가 뜸한데, 일본에서는 한국에선 사이비종교라고 뭉뚱그려지는 신종교, 신흥종교들의 세가 굉장허다. 그 신종교교단중 가장 세력이 강한 곳중 하나가 불교 일련종계열의 창가학회이고 이 창가학회는 세력을 바탕으로 정계에도 세력이 있는데, 그 정당이 바로 이 공명당. 나가 여행중이던 동안에 야마구치는 선거기간이었는디, 그랴서인지 정치포스타들이 많이 붙어있었다.


안내도인디... 좀 뜬금읎는건 한글패치가 잘 되어 있다는 것. 물론 일본은 자이니치가 지배하는 나라답게 한글패치가 음청 잘 뒤야있다... 만... 요시다 쇼인이나 이토 히로부미를 보러 한국 사람들이 올 일이 을매나 있겠나 싶은... 나같은 놈 말고 올 사람이 딱히 있기나 할런지. 잠시 뒤 이토 고택에 들르는 데 이 땀시 거기서 재밌는 에피소드가 벌어진다.


마을길 호젓허다... 유명 역사여행지이기 이 전에 평범한 시골마을이다.


일본 가옥들 모습. 靑田國男이믄 아마 아오다 쿠니오라고 읽겠지? 이 양반댁은 뭣 땀시 시메나와를 쳐 놨는지 몰것다.


앞서 말한 선거기간임을 더 잘 보여주는 포~스타. 앞서같은 포~스타는 통상의 정치선전 포~스타인 경우도 있는디, 이건 대놓고 선거 포~스타임. 야마구치현 지사선거를, 무려 이 다음날 치른다는 이야기다. 일본은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을 못허게 뒤야있어서 둘 다 무소속이다. 한국도 한때는 그랬지. 대신 어느 정당 추천인지를 밝혀서 소속을 알리는 식이다.


기호 1번인 쿠마노 유즈루 상은 사민당, 신사회당, 일본공산당 추천. 빨갱이새끼야! 선거 구호가 인상깊은게, 시민과 야당이 함께 야마구치를 아베현이 되지 않게 한다 라는 임팩트 넘치는 구호를 보여주고 계신다. 선거 이기고 싶은 당이 할 구호같지는 않다만...

기호 2번인 무라오카 츠구마사 상은 현직으로서 재선에 도전. 당연히 자민당 추천.


선거는 다음날 치뤄졌고... 야마구치를 아베현이 되지 못하게 하겠다고 사자후를 토하시던 쿠마노상은 7만표를 득표했다. 새 시대에의 돌파력을 역설하시던 무라오카 현 지사는 30만표...-- 이와쿠니의 호텔에서 NHK늬우쓰를 통해 봤음. 이 시기는 아직 아베가 압승한 작년 중의원선거의 여파가 강할때인데다, 모리토모 문제가 은근슬쩍 묻히는 분위기였던지라... 그게 아니라도, 지역구가 시모노세키인 아베의 홈 스테이트에서 자민당 후보가 질 리도 없고... 보수세력의 역사적 근원이라는 점에서 보자믄 야마구치는 한국으로 치믄 구미같은 곳이다. 물론 요즘 같은 정세에서 혔다믄 표차는 줄었겠지만, 승부가 뒤집힐 일은 없었을 것.


한국 사람들이 제일 얼굴을 잘 아는 일본인중 하나일 그 분의 상. 근데 뭔가 묘하게 싸구려틱해보인다...-- 이 양반도 일본에서는 위인이라믄 위인인데, 신사를 받진 못혔다. 요시다 쇼인같은 사람이야 당연히 받는거고, 그 제자이자 유신 3걸의 1인인 기도 다카요시도 받았는데, 이토 히로부미는 묘하게 그 격에 못 낀다는 것일까?


초대내각총리대신 이토히로부미 별저

라고 쓰여있다.


천황가의 사람들이야 전전에는 대놓고 신이었고, 전후에는 쉬쉬하며 신인지라 오가는 곳마다 비가 서 있는거야 뭐... 하물며 이것은 다이쇼 15년에 세워진 것. 다이쇼 시기에 황태자였다면 바로 그 분, 쇼와 - 히로히토를 말하는 것. 다이쇼 15년 - 1926년이니 천황으로 등극하는 그 해에 이 곳을 다녀갔다는 이야기가 된다. 조선 침략의 첨병의 집에, 일본 제국주의가 가장 극심했던 시기의 천황이 왔다 간 비이니... 역사의 때가 가장 짙게 농축되어 있는 유적이라고나 할까.


하튼 집에 들어서 본다. 다다미라는 게 참 맘에 드는 바닥재이지 시프요. 물론 관리하기가 개 빡친다고는 하더라만...--


이런 미니어처들도 있다. 사진은 기헤이타이 - 奇병대라고 메이지유신 당시 다카스기 신사쿠가 조직한 의용병대. 에도막부군을 물리치는 데 큰 역할을 혔다.


군산을 비롯한 한국에도 각지에 일본식 가옥이 남아있다만 이것은 정품 of 정품. 게다가 거주한 사람도 정품 of 정품 일본인이니 품격의 차이가...


계단은 언제나 상상력을 자극한다. 저길 오르면 무엇이 있을까.


크어... 다다미방!


크흐... 복도!


실로 일본일본함 그 자체다. 어둠의 그 것이긴 하지만 역사으 아우라가 얹혀있다보니 더더욱 일본스런 맛이 진하게 느껴지는 느낌이다.


소박하고 아담하게 꾸며진 정원으 모습.


어쨌건 일본에선 위인이다보니 위인전도 많다. 맨 아래으 책은 철저대연구 일본의 역사인물 이토 히로부미라는 정진정명 일본스러운 제목의 책.


요시다 쇼인이 일본 입장에서 위대한 사상가라믄 이토 히로부미는 많은 일을 하긴 혔지만 어쨌거나 실무자 실권자일 뿐인지라... 열심히 요시다 쇼인을 묻히고 있는 모습


이런 장면 효게모노에서 많이 봤지. 차 한잔 마시고 싶어진다.


일본을 많이 다닌 것은 아니다만, 보믄 청일전쟁의 종전협상인 일청강화회담에 대해서는 많이 다루는디... 성과면에서는 훨씬 컸다고 봐야 헐 일러전쟁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잘 안 다룬다. 대충 이유를 짐작해보자믄 청일전쟁은 일본의 압도적이고 일방적 승리로, 강화회담에서도 우리 일본 하고 싶은거 다해! 한 자리인데 비해 러일전쟁에서는 미국으 중재로 일본이 제발 이거도 주고 저거도 주세여~~ 하고 졸랐는 데, 로시아가 아니 안 줄거야, 우리가 피곤해서 전쟁 끝낼 뿐인거니 대충 먹고 떨어지셈 ㅋㅋ 하고 마무리헌지라, 그렇게까지 영광된 마무리가 아니었던 점이 크지 않은가 싶고... 거기에,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신 일본을 건설한 이후 최초로 대대적인 대외전쟁에서 승리헌게 청일전쟁이라는 점 등등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토 별저 탐방은 여기까지. 불편한 거 보시느라 수고들 많으셨셈.


앞서 말헌 재밌는 에피소오드를 풀 차례인디... 나는 딱 봐도 똥송하게 생긴 똥양인이다. 체격도 크고 험상궂은 놈이 머리도 빡빡깎고 혼자서 이 여행을 다녔다. 이 곳 또한 역사유적인지라 관리하는 사람이 있었고, 아담한 체구으 선량해보이는 일본 아지매였는디... 저런 똥양인이 혼자서 이 곳을 들어오니 이 분이 꽤나 의아하게 생각혔던 것 같다. 일단 딱 봐도 일본인은 아니다. 그리고 딱 봐도 동아시아 인이다. 전혀 동남아같이 생기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동아시아래봐야 중국 한국이 다 아닌가. 대만이나 몽골은 을마 읎응께. 근디 중국과 한국인들이 이토 히로부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이 집을 관리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잘 알 것이다. 그니까, 그 곳 사람들이 올 이유가 없는 곳인데 이 사람은 도대체 어디서 온 사람일까... 이게 그 아지매는 음청 궁금혔던 모양이다. 나가 관람을 마치고 나갈라 카는데, 이 아지매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혔는지 영어로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서... 차이니즈? 아메리칸? 이렇게 말허더라. 이 때 느꼈다. 아 이 아줌마 내가 한국 사람인거 눈치 챘구나. 한국인이라면 이토 히로부미는 철천지 원수라 이렇게 유심히 보러 들어올리는 없는데도 왔다는 게 지나치게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일본인 답게 대놓고 물어보진 못하고 에둘러 물어본 것이다. 그랴서 당당하게 코리언도 아니고 강고꾸진데스~ 라고 해 주고 왔다. 아줌마의 그 호기심이 풀어지는 표정에 괜시리 나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 다 들더라. 어찌보믄 이번 여행에서 가장 배덕감이 넘치는 순간이었달까나 ㅋㅋ. 일본어를 쫌금이라도 할 줄 알았다믄 왜 왔는지 이야기해줘도 뒤얐을텐디... 아마 그 아지매도 한국인인데 이 곳에 온 이유가 무엇인지 무진장 궁금혀서 더 물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다만, 여행기 내내 보시믄 아시다시피 나 자신, 왜 그딴 걸 보러감? 이라고 물어보믄 에... 또... 하믄서 말이 길어지는지라 깔끔히 설명허기는 쉽지가 않아서... 짧은 일본어로는 그냥 오셨어요~ 네 왔십니더~ 하고 헤어지는 정도였을 듯.



다음 목적지인 요시다 쇼인의 생몰지를 가 보기로 허자. 가는 길에도 일본 가옥들 퍼레이드는 여전히 화려허다. 저 나무로 높게 올린 구조의 부옥이 또 일본 가옥의 특징적 모습중 하나. 앞에 잘 다듬어진 조경수또한 극히 일본적. 저런 소박한 집 마당에 저렇게 다듬어진 나무라는 게 참 놀랍다.


일본식 정원조경수는 기본이고 고오급 스러운 시로카베로 둘러친 집. 이 집 주인은 확실히 재력이 좀 될 것 같다. 시로카베란게 돌아다니다보니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흔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역사유적이 아닌 집인데 이렇게 치고 산다는 것은 만만찮은 재력의 소유자라는 말일 터.


이 높게 솟은 나무로 된 건물은 진짜 꼭 한번 들어가보고 싶다. 지인이 일본에 진출할 예정인디, 이 양반한테 나중에 일본에서 돈 벌어 집사면 꼭 저런 집 사라고 혀서 들어가 봐야지.


하기 전반부에 봤던 가옥중 가장 맘에 든 집


벽돌로 쌓은 벽은 쫌금 아쉽다만... 기와지붕 얹고 기름먹인 나무로 벽을 둘러친 집이 이시가키... 아니 축대위에 올라가 있다.


거기에 담장밖으로 수줍은 듯이 빼꼼히 내다보는 한 떨기 꽃송이...


집 문까지 굉장히 완성도 높은 일본식 가옥의 구색을 증말 잘 갖추고 있다. 진짜 집 구경만 해도 질리지를 않는다.


이 것은 요시다 쇼인의 숙부 타마키 분노신의 구택. 타마키 분노신은 요시다 쇼인에게 물적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된 양반이다.


일본식 초가집 지붕. 이 지붕이 또 맘에 들더라구.


내부는 평범한 다다미방. 8첩이나 되는 널찍한 방이 줄줄이 이어져 있다.


중간에 사진이 좀 없는데... 라기보다는 사실 나가 지나치게 사진의 밀도가 높긴 하다만... 하여튼 중간에 언덕길을 오른데다, 6일간의 일정중 유일하게 비가 내린지라(4일차엔 눈) 비를 피하며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사진이 좀 없다. 대략 언덕길을 수십분 올라서 도착한, 요시다 쇼인의 묘역. 메이지 유신 150주년임을 알리는 표지들이 자기과시 하고 있다.


요시다 쇼인 여기 잠들다.


쇼인의 묘 인근은 그의 관계자들의 묘로 채워져 있다. 다카스기 신사쿠 말고는 다 잘 모르는 사람이라 중요헌건 아닌디... 맨 오른쪽 다카스기 신사쿠의 호칭은 쇼인 문하생 쌍벽의 1인이고 맨 왼쪽 요시다 토시마로는 쇼인문하생 사천왕의 1인 이라고 뒤야 있는디... 일본인들은 이런 칭호 너무 좋아한다. 쌍벽 삼인중 사천왕 등등. 전국시대로 가면 사명신 오대로 오색비 칠본창 24장 삼대장 등등 이런 게 증말증말 많음. 이런 중2스러움이 또 일본으 매력이긴 허지. 저런 칭호들 전부 한번 정리한다한다 벼르고 있는데 귀찮아서 참 안해진다.


요시다 쇼인이 태어난 곳은 터 밖에 남아있지 않다. 터를 보아허니 유복한 집은 아무래도 아니었던 듯.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네~


이 곳의 진짜 의의는 이 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기의 전망이 잘 보이는 곳이었다. 그리 많이 올라오지 않는데 비해 전망의 가성비가 상당허더라. 보다시피 날이 흐렸기 망정이지 쾌청했다믄 정말 노올라운 뷰를 보여줬지 시프요.


이제 다음 목표는 저 지월산을 향하는 것이다.


6화에서는 이 만큼을 이동혔다.

얼마 못 갔잖아...--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결국 4일만에 쓴다... 마 열심히 운영해서 수 천 수 만명씩 방문자를 끌어오는 블로그도 있다만, 대개 블로그는 자기 생각 가볍게 쓰는 곳이다. 마, 나라고 수 만명씩 오길 안 바라느냐면 완전히 그런건 아니긴 헌디, 일본해가 어쩌고 천황폐하가 어쩌고 대본영이 어쩌고 하는 블로그에 수 만명이 오면 그게 더 문제이지 싶기도... 애초에 수 많은 사람들이 오기를 바라기보담은 내가 하는 생각을, 그냥 흘려보내기보다는 뭔가 써서 남기고 싶은 바램에 하는 곳이기에 결국 여기는 내 일기장 이상은 아니다. 그렇기에, 맘편히 쓰면 되고 워낙 생각이야 많으니 줄줄 써내려가면 그만인데... 그게 또 막상 쓸라믄 그렇지가 않다. 그래도 잘 쓰고 싶고, 결국 나가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는디, 그게 왜 좋고 왜 믓찐지를 제대로 쓰고 싶다보니 그게 부담이 뒤야서 부담감땀시 에이 내일쓰자, 에이 모레쓰자 하고 미루게 되네. 마 이 또한 나으 심정이니 으짤 수 있나. 그런갑다 하구 써 내려가야지. 어떻게든 6월에 가고시마 가기 전까지는 다 쓰는걸루


각설하고

오늘은 어떻게든 하기에 도착혀 보기루 허자.

은가이 일본 다녀본 사람이래두 야마구치 같은 시골은 생소하지 않기가 힘들기에, 지도를 적극 첨부혀야 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랴서, 이번 회 부터는 글 머리에는 지난 회에 지나친 곳들을 지도로 보여주고, 글 말미에는 이번 회에 지나친 곳들을 지도로 보여주고하는 지도로 열고 지도로 닫는 구성으로 해보기루 혔다. 무계획적으로 쓰다봉께, 시행착오가 많지만, 써 가면서 발전하는 거라고 자위대해보자.


그런데, 막상 그려보니...


분홍색선이 시모노세키에서 하기까지의 동선인디 반도 못갔네... 아직 시모노세키 시역을 벗어나지도 못혔다... 사진을 좀 더 줄여서라도 이번회엔 반드시 하기에...


철도를 타고 지나가는 구간이 많긴 하지만, 사실 대부분은 도착한 목적지에서의 사진과 여정이 훨씬 많다. 다만 시모노세키에서 하기까지는 로컬선으로서 속도도 느리고 뷰포인트도 많은데다 관광열차인 마루마루노 하나시를 타기까지 혀서 이렇게 내용이 많은 것. 2일차의 녹색선상중 전반부의 미네선 구간에선 사람이 많아 사진 별로 찍지도 못혔고, 후반의 신간선은 285킬로미터로 주변경관과 스치듯 안녕이니 찍은것도 별로 없음. 마 아예 없다는 건 아니구... 이빨 털면 그 선상에서도 한 회는 뽑을 수 있지만 그러지 말기로... 지도는 2원화할 것이다. 야마구치 전체에서 현재위치가 어디인지 보여주는 지도와, 그 현재위치를 확대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돌아다녔는지 보여주는 지도로. 지난 4화와 5화처럼 장거리 이동간의 내용만 있는 경우는 이처럼 전체지도만 올릴거구.


검은색선이 해당 회차에서 이동한 코스가 될 것이고, 회색박스로 전체에서의 위치를 표시할 것임. 점점 제도화되어간다~


각설하고

5화 시작합니다


마을 자체는 평범하지만 주변 지리가 참... 주고쿠 산맥의 계곡 한 복판에 깊게 자리한 마을 너머로 바다가 보인다는 위치가 참 멋드러지지 시프요. 저 마을 한번 가서 바닷가부터 계곡따라 산마루까지 올라가 보고 싶더라능.

우미노 미에루 마치~


생각난김에 듣고들 가시라.



나가토후타미역과 에키덴마치. 역 이름은 나가토지만 행정구역상 시모노세키시내이다. 이런 경우는 현재의 나가토시가 아니라, 령제국 시절의 나가토국의 이름을 딴 것이다. 산음본선상의 시모노세키, 나가토, 하기는 전부 폐번치현 전에는 나가토국. 한국같은 경우는 조선시대의 행정구역이 거의 그대로 이어진지라, 이런 괴리가 벨루 읎는디, 일본같은 경우는 1872년 폐번치현 이전과 이후가 행정구역이 극적으로 달라지고 그 시기가 그렇게 오래된 것이 아닌지라, 현행행정구역이 아님에도 구 행정구역명이 상당히 많이 쓰인다. 특히 철도에 그런 흔적이 많은데, 이를테면 구마모토시와 오이타시를 잇는 규슈 중부내륙을 타통하는 간선의 이름은 호히본선이다. 오이타의 옛 지명인 豊後에서 豊자를, 구마모토의 옛 지명인 肥後에서 肥자를 따서 豊肥본선이라고 부르는 것. 豊後는 분고이고 肥後는 히고인데 분히가 아니고 호히인 이유는 豊자가 일반적으로는 호라고 더 많이 읽히기 때문. 이런 경우가 넘쳐 흐르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철도노선은 이런 식이다. 산음도 같은 이름도 이젠 공식적으론 안쓰지만 우리는 지금 산음본선상을 달리고 있지 않은가. 일본어의 고유명사의 무체계성은 전 세계는 몰라도 확실히 OECD 내에서는 분명 제 1일 것이기 때문에, 그냥 외워라... 일본에 대한 애정이 생기면 다 외울 수 있다.


...

이 학교... 운영하는거 맞나? 물론 나가 산음본선을 답파한 날이 토요일인지라, 학교가 쉬는 날이긴 했다만, 산속 사람도 마을도 별로 없는 곳에 휑뎅그레~허니 놓여있는 학교를 보니 뭔가 좀 음탕... 아니 음산한 생각이 들더라. 버려졌다기엔 노무 깨끗헌 것두 같구... 버려진 학교라면 당연히 이사쿠를 찍고 있을테니 음탕하기도 할 것. 첫 사진의 저거는 아무래도 수영장같은디, 2월에 수영할 일도 없을텐디 물은 왜 채워놓았댜... 이래저래 미스테리한 학교였다. 이사쿠 아니면 코난과 김전일이 지배하고 있는 학교일지도. 여기는 일본이니까.


ㅋ... 산골짜기에 콕박힌 마을을 감싸고 도는 구불구불한 삼나무 옛길... 아늑하기 서울역앞 그지없다...


아늑한 일본집들. 마지막 사진은 장작을 패서 쌓아놓은 게 특이해서 올림. 요즘같은 세상에 장작을 때는 집이 있나? 일부러 앤틱하게 벽난로를 쓰는 집이 있을지도 모르긴 하다만.



흐리게 나왔어도 역명판은 어지간하믄 올린다. 타키베역의 모습


일본가옥이 잘 잡혀서 올리기두 혔다만, 오른쪽의 보다 전통적인 일본가옥과 왼쪽의 세련된 현대식 가옥이 대비가 되는 것도 맘에 들어 올렸다. 오른쪽은 아늑한 맛이, 왼쪽은 세련된 맛이, 그러면서도 둘다 일본맛이 난다는 게 참 일본일본하다.


이런 집은 진짜 레고같지 않냐. 레고 일본성 시리즈 같은 느낌이 든다. 아기자기하고 깔끔하다는 말이 끊임없이 튀어나오지 않을 수가 읎다.


이 곳은 코토이 역이라는 곳인데... 완전 깡촌의 시골역이다시모노세키 이후 안 그런 역이 있었냐꼴랑 자판기 한대가 편의시설의 전부... 일본은 자판기 대국이다. 이번 여행중 호텔에서 아사히 신문을 줏어봤는데, 거기에 실린 자판기 기사에 따르면 현재 일본의 자판기는 250만대... 근데 이게, 급감해서 이정도랜다. 전성기는 270만대라던가...


코토이 역의 승강장


토인할매들이 내리는 모습. 이 모습을 보고 감회에 빠진 게, 이 전에 나가 쓴 여행기중에 가장 공들여 쓴 것은 2012년에 경전선 동부구간의 구선이 신선으로 대체되기 직전에 여행가믄서 거기서 찍은 사진이 오버랩되어서였다. 원북역이라는 곳인데, 그 곳의 할매들이 내리는 모습이 이 모습을 보믄서 떠올랐던 것.


이 사진이다. 한참 찾았네. 2012년 4월에 전국한바퀴 도는 여행을 혔었는디, 그 당시 원북역에서 찍은 사진임. 지금 저 원북역은 사라지고 없다...ㅠㅠ 워낙 외진 곳이라, 대체역조차 생기지 않고 그냥 사라져버림. 넘나 안타까운 것... 코토이 역은 당분간은 없어지지 않겠지.


체고에 안락함을 자랑하는 코토이역 편으시설


한국발음으로는 특우역이다. 특상급 와규라도 기르는 곳이려나?


마시마로생산이라믄 일본도 한국에 뒤지지 않는 대국이다. 아무래도 쌀 생산량이 많으니 일본쪽이 더 많겠지.


다시 바다가 펼쳐진다. 해안도로변에 홀로 솟을바위가 하나 돋아있다. 분명히 저 바위에는 발파하려 혔더니 인부가 기절했다더라, 같은 전설이 붙어있을거다. 여긴 일본이니까.


앞 바다에 떠 있는 아담한 섬. 분명 저 섬에는 요괴가 출몰해 아이들을 납치해다 잡아먹었다는 괴담같은 게 붙어있을거다. 여기는 일본이니까.


나가 여행을 잘 즐기는 이유를 들자믄 이런 모습들을 들 수 있다. 별 거 없는 허허벌판이잖아? 근데 난 이런거만 봐도 자지러진다. 떨어지는 낙엽에도 깔깔거리는 여고생의 감수성이랄까나. 허허벌판 펼쳐지다가 건널목을 넘어 가로지르는 도로 하나라도 나왔다간 기절을 한다. 감각의 역치가 낮아서인지, 이런 심심하고 평범한 모습들만 봐도 괜히 감흥이 돋고 그런다. 그러니, 여행을 하면 순간순간이 다 즐거움이 아닐 수가 있겠는가? 뭐 나쁜 것은 아니고 오히려 좋은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별거 아닌 것에서도 감흥과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은 좋은거 아니겠나?


히토마루역의 모습. 여기서부터 나가토시이다... 면 좋겠지만, 사실 이 앞의 이가미역이란 곳부터 나가토인디, 못 찍었다... 구경을 열심히 하다봉께, 놓친역이 쫌금 많다...


나가토 후루이치역으 모습. 중간 거점격이자 철도분기점이기도 헌 나가토역에 가까워지니 역의 빈도가 는다.

스게에... 스고이데스네... 이런 멋드러진 전신주를 보고 어찌 감탄않을 수 있으리. 어차피 경관에 장해가 될 전신주라믄, 이렇게 고즈넉한 멋이라도 있어야지 않을까.


멀리 신사가 보이기에 또 찍어봄. 대개으 도리이는 돌 도리이다. 왠지 돌 도리이면 근본없어 보이는 느낌... 현실적으로는 나무도리이로는 제대로 관리하는게 불가능에 가까우니 으짤수 읎겠다만서두...


이런 집도 진짜 일본성채같다. 거기에, 저 나무 나가 교양이 짧아 무슨 나무인지는 모르겠다만 일본식 정원하믄 저런 나무 하나 있어야지 싶은 나무라 더더욱 좋다. 돌 기단에 기와얹은 흰벽으로 둘러치고, 성문같은 계단위의 정원에 천수각같은 가옥과, 일본식으로 꾸며진 정원의 모습의 집. 문화적으로 일본은 정말 특색이 강한 스타일리스트같은 느낌이 있는데, 집이라는, 가장 일상적인 곳에서도 그러한 스타일이 두드러진다는 점이 일본을 좋아허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모습.


산음본선상에서 바닷가 사진은 흔한 것.


중간경로의 필두격인 나가토시에 진입했다. 시가지의 여러모습들을 대충 올려 봄.


사진찍는 사람을 찍는 사진. 난 이런 메타적인 상황을 참 좋아헌다. 분명 내 뒤에선 또 누군가 나를 찍고 있었을거야.


마루마루노 하나시는 나가토에서도 환영받는다.


마루마루노 하나시의 한 축을 담당하는 대국 나가토다운 화물하역모습... 인데 나가토시는 인구가 3만여명밖에 안된다... 이래서는 한국의 군들 중에 갖다놓아도 중하위권... 다만, 나가토는 철도가 분기되는 요충지이기두 허구... 일본의 지리적 특성상 연안해운이 엄청 발달혀있다. 거기에, 선박과 함께 화물의 양대축인 철도가 일본에선 고자다. 철도대국이지만, 협궤철도의 한계땀시 철도의 화물운송기능이 형편없는 것... 그러다보니 이런 작은 시골에도 거점항이믄 저런 하역시설은 쉽게 볼 수 있는 것.


일본마을 중에서도 한 구석의 미깡나무와 함께 찍혀 야마구치임을 과시하는 모습


여행에 대한 나으 모토는

너의 일상은 나의 일탈

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가는 여행지는 누군가가 일상을 보내고 있는 곳 아니던가. 이런 일상적인 모습이야말로 어찌보면 나가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더 잘 보여주는 것 아닐까. 바람에 날리는 빨랫줄의 빨래와 미깡빛 지붕과, 텃밭과 옆의 허물어져가는 빈집까지 관광열차 차창밖에서는 풍경이 된다.


일본가옥사진을 자꾸 올리는 이유는 좋아하시는 분은 더 많이 보시라고, 안 좋아하시는 분은 자꾸 보고 좋아하시게 되라고 올리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스스로의 가옥을 어떻게 생각헐지 궁금헌디... 나가 만약 일본인이었다믄, 일본의 가옥문화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졌을 거 같다. 다녀본데 래봐야 홍콩, 상해, 마카오, 대만, 일본, 한국뿐인디, 그 중에서 가옥이 지어진 주거지구는 일본이 최고인 거 같다. 서울으 별 볼일없는 가옥들 사이를 걸어다니는 것도 좋아허는 내 입장에선 이런 집들이 즐비한 곳은 그 자체로 천국이다.


나가토 미스미역의 역명판. 다음역인 이이역은 일본에서도 가장 간단한 이름의 역이 아닐까. 한자로는 飯井역이라 그렇게까지 간단하진 않다만. 마치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믄 ㅇㅇ 역같은 느낌이지 않은가.


이제는 흘러간 밈이지만 이 친구도 생각나고.

yeeyee역


흔들려서 흐릿한 사진 왜 올렸냐믄... 다리 교각밑에 퍼덕이는 물새 보이는가? 물새가 막 물을 박차고 떠오르는 장면이 인상깊어 찍은 것이라 올린거임. 순간포착이 빛나지 않냐? 흔들린건 아쉽지만.


ㅋ... 저 골목속으로 빠져들거 같다...


한국도 한옥가옥건축이 쫌금 더 발달혔으믄 이렇게 될 수 있었을 거 같은디... 기와지붕 올리는 건축양식이야 양국이 대동소이허니께. 일본이라고 막 돈이 덤벼서 코스트 무시하고 저래 짓는것은 아닐거구, 하도 보편적이다보니 단가도 낮아지구 기술도 보편화뒤야서 저렇게 된 거 아니겠나. 건축문화의 빌드업 과정에서의 차이가 이제와서 양국의 건축문화의 격차를 돌이킬 수 없게 벌였다고 생각허니 참 아쉽다... 한국에도 이런 전통가옥건축이 보존뒤얐다믄 굳이 일본에 와서야 이런 감흥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닐텐디...


앞서 썼던가 모르긋는디, 일본은 굳이 한옥마을... 아니 和옥마을을 갈 필요가 읎다는 게 이래서이다. 그냥 동네가 다 화옥마을인디 뭐하로 화옥마을을 굳이 가나. 현실은 어마어마한 교통비땀시 어디 여행갈라믄 큰맘묵고 가야허는게 문제긴 허다만. 교통비만은 절대적인 한국의 승!


여행기념품으로 이런 것을 주더라. 하기는 도자기로 유명헌 곳인디, 그 하기에서 만든 도자기다. 이래저래 마루마루노 하나시를 탄 것은 여행의 첫 장을 굉장히 풍요롭게 해 줬달까나. 근디, 이게 부피가 미묘하게 커서... 캐리어가 아니라 약간 큰 백팩하나 메고 간 입장에서 담을데가 부족한게 문제... 이거 우겨넣느라, 가져간 짐중에서도 없어도 되는 거 일부는 버리고, 가방 싹 다 다시  싸느라 첫날 숙소에서 고생좀 혔다. 그리고, 지금은 방 한구석에 고이 모셔져 있는 중. 나가 워낙 차든 물이든 왕창 마시는지라, 기념품 수준의 작은 잔으로는 양이 노무 작아서...


우미노미에루마치가 넘쳐 흐른다...


데챠아아앗! 똥전신주상! 시야를 가리지 마는 데샤아아앗!!!


사실 열차차창밖으로 찍는 사진은 이렇게 버리는 게 반이다. 정말 맘에 들어서 찍었는디, 열차가 워낙 고속으로 이동허는지라, 나중에서야 이렇게 노이즈가 끼었음을 알게 되는 게 태반. 전신주가 없었다믄 완벽한 앵글인디, 설명충짓을 한다는 핑계로 망친 사진 올려본다.


아늑허다...


계속 이어지는, 지나치게 빛깔이 좋은 바다...


근데 바닷가에 쓰레기들이... 저건 다 자이니치가 버린 것입니다.


계속 이어지는 지나치게 고운 일본가옥들.

어찌보면 계속 이 패턴이긴 혔다. 바다 가옥 바다 가옥 가끔 들판 다시 바다 가옥.

나가 노무 심심한 것을 좋아하는 건가... 이런 모습들만 줄창 이어지더라도 많은 분들이 좋아허믄 좋을텐디.


다니믄서 보니까, 일본 놀이터에는 아직도 정글짐이 많이 있더라. 저거 한국에선 위험하다고 다 철거혔는디... 일본 아들은 보수주의 소극성이라 안 위험하게 잘 노나? 나 소시적엔 하튼 저기서 나름 재밌을 거 같아 들어갔다가 얼마 안가 싫증나서 나오기를 거듭혔던 기억이 선허다.


수 없이 올린 바다사진도 이 것이 마지막이다.


보인다! 하기! 행정구역상의 하기에 들어온 지는 쫌금 뒤얐다만, 저것을 하기라고 하는 이유는 저 산, 指月 - 시즈키산이, 조슈 모리번의 거성이었던 하기성이 자리잡았던 산이기 때문이다. 원래 전국시대부터 천혜의 요해여서 아마고씨 오우치씨가 지배할 때도 시즈키성이 자리혔던 곳이지만, 히로시마 아키 요시다고리야마 성이 거성이었고, 주고쿠 일대를 제패해서 주고쿠내에 전략적 위협이 사라진 모리 모토나리 이래 모리가문이 지배하는 동안에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지역이었으나... 세키가하라전투에서 모리가문이 좆되고 스오 나가토 2국만이 남게된 이후 방어에 적합하면서 해상운송에도 편한 이 곳에 거점을 잡아 조슈 모리번 250년의 역사를 이어가게 되는 곳이다. 딱 봐도 바닷가에, 평평한 해안에 홀로 우뚝 솟은게 방어와 교통 모두에 유리해 보이지 않나? 하물며 이 사진에선 알기 힘들지만, 저 산의 양 옆으로는 또 강줄기가 흘러간다. 역겨운 도쿠가와군 따위는 10만명이 몰려와도 다 쳐 죽일 수 있는 천혜의 요새인 것이다.이에야스님 사랑합니다 충성충성충성


모순될지는 모르긋다만, 나는 전국시대 가문중에서 도쿠가와 가문과 모리 가문을 둘 다 좋아헌다. 서로 거칠게 대립했지만, 대립이야 그들 일이고 그 가문의 역사의 멋에서 감흥을 느끼는 것은 나으 일이니까. 세키가하라에서 도쿠가와가 이겼을 때도 좋았고, 무진전쟁에서 모리가 이겼을 때도 그들이 느꼈을, 250년의 원한을 풀었을때의 감정을 생각해보니 짜릿하더라.


시즈키산 밑으로 펼쳐진 하기마을의 모습. 역시 일본일본하다. 보시믄 아시겠지만 지붕일부에 눈이 쌓여있다. 이 시기 일본은 역대 최악의 폭설이 전국에 내리던 시점. 저녁이 되어 숙소에 들어가 늬우쓰를 틀 때마다 어디난 40센치, 어디는 60센치 속보들이 이어졌다. 내 여행도 좆되었어야 마땅허나... 어찌된 일인지, 야마구치의 서쪽인 후쿠오카와 야마구치의 동쪽인 시마네는 폭설로 뒤지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야마구치만은 별 다른 악천후가 없었다. 총 6일 일정중 눈이 온 것은 4일차뿐이었고, 심지어 2, 3, 5, 6일의 4일은 흐리지조차 않은 쾌청한 날씨를 보였다. 이는 일본의 8백만신께서 일본을 숭모하여 찾아온 반도으 꼬꼬마를 가호하심이리라~

일본일본한 마을에 미깡을 얹으면 야마구치. 하기 역시 밀감이 횡행한다. 밀감 못 먹어보고 온게 새삼 아쉬워지는군.


일본가옥중에서도 특히 이렇게, 1층에 복층식으로 지붕을 얹은 구조가 맘에 든다. 천수각으로 치자믄 2층천수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나. 일본 가옥을 들어가보지 않아서 저런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진 모르겠다. 아마 다락으로 쓰지 않을까 싶은디... 차라리 그냥 2층을 올리면 올렸지 저렇게 올려야 할 당위성이나 효율성은 없어 보이는데도 저렇게 많이 짓는 것이 또한 일본의 形 스러운 느낌이라 증말 좋다.


하기성의 천혜의 해자역할을 맡고 있는 남의 하시모토 강. 하기성의 북측 해자역할을 맡고 있는 아부강은 더 가야 보인다. 두 강이 둘러싸고 있는 삼각주격의 지역이 하기성과 그 성아랫마을이고, 하기의 구 시가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하기역의 모습들. 옛날에 쓰이던 개찰구가 앤팈허다.


하기역 역명판. 이름은 여기가 하기역인데, 하기의 철도교통의 중심이자 마을의 중심은 하기역이 아닌 이 다음 역인 히가시하기역이다.


지금 쓰이는 개찰구인디... 이것도 앤틱허잖아! 원래도 옛 것을 잘 보존허는 일본이다만, 최근 수십년간 경제를 중심으로 사회가 멈춰버리다보니, 더더욱이나 시간이 멈춘 마을, 시간이 멈춘 나라가 뒤야부렀달까나.


여기서도 마루마루노 하나시를 직원들이 환영헌다. 이야깃거리가 되는 사진인디 흔들린 게 아쉽.

종착역인 히가시하기역에 닿기 전 마지막 철교인 아부강 철교를 건너고 있다. 강물에 귀엽고 맛있는 오리들이 많이 떠 있는 모습.


바로 이 지점이 아부강과 하시모토강이 갈라지는 지점이다. 왼쪽이 지금까지 달리면서 보아온 하시모토강, 오른쪽이 원래 강의 본류인 아부강.


평범한 사진임에도 올린 이유는, 달리는 마루마루노 하나시의 객실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이기에.


관광열차이긴 허다만, 아무래도 나같은 가이진들이 이용하기에 접근성이 좋은 열차는 아닌지라... 대부분 토인들이 탑승혔던 것으로 추정헌다. 하기는 일본내에서도 꽤 랭크가 있는 역사관광지인지라, 토인들도 많이 찾아온다고 헌다.


마루마루노 하나시


저 너머로 달려가면 경도까지 닿는다. 경도까지의 거리, 572킬로미터...


안녕 마루마루노 하나시. 잊지 못할거야...

이제 고작 여행 1일차 시작인데, 벌써 한참 써 온 느낌이 든다몇일 걸려 쓴지 생각을 해라 괜시리 감흥이...

드디어 하기에 도착혔다. 다음화에서부터는 뚜벅이다.


5화에서는 이만큼을 이동하였다.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격조혔다. 지난주 수요일에 쓰고 이번주 목요일이니 1주일도 넘어만이네... 그 동안 약속이 많기두 혔구, 꼐임에 빠지기두 혔지만 역시 글을 몰아쓰다보니 왠지 구찮아져서... 그랴두 써야제. 멋보다 6월말에는 가고시마에 다시 여행갈 계획인디, 이 스피이드로 쓰다간 가고시마 가기전까지 야마구치 여행기도 다 못 쓸거 같아서... 진짜 앞으로는 가급적 매일, 최소한 2일에 한번은 써야긋다... 라고 하면 2일에 한번, 최소한 3일에 한번은 쓰겠지? ㅎㅎ


각설하고

본격적으로 여행이 시작뒤얐다. 이 말 몇번 하는거냐... 하지만 이젠 진짜 시작인 걸. 지난회까지가 일단 여행세팅단계에서의 겸사겸사 여행이었다믄, 이번부터가 본격출발. 그러니까 지도부터 보자


흔한 야마구치 지도다. 클릭하면 커지는 거 모르는 흑우들 없제? 6천제곱킬로미터의 광활한 대지에 140만명의 막대한 인구가 살고 있는 대국 야마구치... 거대한 야마구치를 돌아다니는데는 치밀한 계획이 필요허다.


설명허긴 혔지만 아무리 주둥아리로 설명해대봐야 지도에다 금 좍좍 긋어서 보여주는 것허구는 비교가 안되제. 그랴서 대충 금을 긋어봤다. 출발점은 좌하단으 시모노세키다. 첫날은 지난회에서 썼듯이 스치듯 안녕이다. 7시 45분에 국제여객타~미나루에 내려서 10시에 출발하는 열차를 탔으니. 어차피 4일차와 6일차는 시모노세키에서 물빨핥이니 그 때 보믄 된다. 색색깔로 화~려하게 금을 긋어놨는데, 각각의 일차별로 구분해 놓은거다. 한 색으로 그으려니 전혀 구분이 안되더라고.


1일차는 분홍색선이다. 시모노세키에서 10시 21분에 출발해 산음본선을 마루마루노 하나시 열차를 타고 달려 12시 50분에 히가시하기역에 도착헌다. 사실, 하기가 에도막부초기부터 말기까지 2백년 이상 모리가의 거성으로서 조슈번의 번청이 있던 곳인지라 볼 게 음청시리 많다. 근디, 교통편때문에, 여행시작시간은 제일 늦음. 자세한 설명은 어차피 이번 화에서도 하기에 도착도 못하고 산음본선상으 사진들만 올릴거니까 하기에서 하기구경한 이야기는 하기편에서 하기로 하기. 낄낄~ 하튼 하기 구경하고 하기에서 잔다


2일차는 녹색선이다. 이 날 철도여행이 일본으 배배꼬인 로컬교통편을 제일 잘 보여주는 날임. 상기 여행도상에서 맨 위의 노오란 네모가 하기이고, 맨 오른쪽의 노오란 네모가 이와쿠니인데 이 두 지역간을 이동하려니 도로는 그지같고 철도는 줄창 갈아타야 함은, 앞서 0화에서 설명한 바 있다. 그것을 실행하는 날인데... 녹색선을 짚으며 잘 따라오시라. 하기의 히가시하기역을 7시 7분에 출발한다. 산음본선을 따라 지도상에서 왼쪽으로 쫌금 가면 나가토라는 동네가 있다. 여기서 7시 46분에 내림. 그리고 부랴부랴 7시 52분에 오는 열차를 탄다. 간격이 촉박혀서 약간이라도 연착했다믄 놓치는 판인지라, 승강장 확인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무사히 환승에 성공허구 이번엔 남쪽으로 미네선을 따라 달린다. 9시 1분에 아사역에서 내린다. 여기선 쫌금 오래 기달려야 하는게 신간선을 타야허는지라. 이런 시골동네에 신간선이 오믄 을매나 오겠나. 아사역이 있는 산요오노다시는 인구가 6만이다. 사스가 토건족의 국가... 뭐, 인구 3만도 안되는 구례에 KTX가 서는 한국이 할 말은 아닌듯도 하지만... 그나마 구례역 위치가 구례도 아니고 순천시 행정구역이란게 함정이지만.


각설하고

9시 46분에 후쿠오카에서 오카야마로 가는 신간선 고다마 열차를 탄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그럴싸한 구간이랄까나. 고다마는 신간선중에서 최약체라는 것은 젖혀두고서... 그랴두 어쨌건 신간선인지라 휙휙 달려서 10시 33분에 신이와쿠니에 도착. 기존역과 신역이 동떨어지긴 일본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은지라, 신간선역인 신 이와쿠니와 기존역인 산양본선상의 이와쿠니역은 직선거리로 7킬로미터. 그렇게 멀지도 않네~ 이와쿠니의 인구는 13만이다... 구 울산역인 태화강역과 KTX역인 현 울산역 사이가 19킬로미터로 아마 한국에서 제일 멀텐데 울산시 인구는 110만이기라도 하지... 그리고 시골동네라 당연히 직선코스 같은건 없다. 빙빙 돌아야. 그리고 숙소는 당연히 구 이와쿠니역 근처... 어쩌겟소요. 줄창 걸어야지. 그렇게 이와쿠니까지 꾸역꾸역 가서 꾸역꾸역 구경하고 거기서 잔다.


3일차는 갈색선이다. 3일차가 이동이 두 번째로 적다. 아예 지도에 표시하지도 않은 6일차는 어디 안 가고 시모노세키 시내에서만 돌아다니는지라. 패스 유효기간이 5일인지라, 6일차에 어디 가려면 일본으 살인적인 교통요금을 감수해야함... 그래서 코스를 이렇게 짠거다. 이와쿠니의 숙소에서 스오오시마정의 야시로섬으로 갔다오는 코오스. 산양본선 이와쿠니역에서 출발해 역시 산양본선상의 오바타케역에서 내려, 걸어서 섬에 들어가 섬을 구경하고 다시 걸어서 나와 오바타케역에서 전일 묵었던 숙소로 돌아오는 코오스다. 그런고로 선은 하나지만 왕복임. 이와쿠니에서 오바타케는 각역정차로도 25분밖에 안 걸려서 특기할 것은 없음. 제돈내고 타면 요금이 5천원인건 못본걸로 하자... 대충 서울역에서 금정역까지 전철타고 가면 저 거리다. 요금은 1천650원. 설명이 必要韓地?


4일차는 고올~든 색이다. 거리는 상당히 멀지만 여정은 단순한 게, 이와쿠니역에서 산양본선 열차를 타고 주우욱~ 가면 된다. 시모노세키 역에서 내리면 깔끔하겠지만, 시모노세키 일정으 첫 날인 4일차에는 시모노세키의 원 시가지랄 수 있는 초후지역을 돌아볼 예정인지라, 시모노세키에서 4정거장 앞인 초후역에서 내린다. 이와쿠니에서 8시 19분에 출발해 초후에 11시 4분에 도착. 그리고, 초후 모리마을을 돌아보고... 원래는 간몬해저보도를 건너 북구주시에 있는 모지성터에 가서 구주에서 본 하관의 야경을 찍어올 예정이었는데... 여러 이유로 포기혔다. 자세한 것은 언젠가... 언젠가는 쓰게 될 4일차 여행기에서. 그리고 시모노세키 역전으, 지난 회에 올렸던 그 호텔에서 투숙


5일차는 짙은 하늘색선이다. 시모노세키에서 야마구치까지 열차를 타고 가서 구경하고 다시 시모노세키로 돌아오는, 기본적으로 3일차와 유사한 구성이다. 당초 여행을 계획헐때는 아예 한 곳에 숙소잡고 계속 머무르믄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도 모색을 혀 봤는디... 이런 시골동네으 교통상황으로 참치삼치꽁치인 구상인 것이다... 그런 것은 동경이나 오사카 같은 곳에서나 할 수 있는 것... 그러나, 베이스캠프를 잡고 인근을 헤집고 다니는 것은 로망인지라, 3일차나 5일차 같은 일정을 넣게 된 것. 8시 11분에 하관역을 출발해, 신야마구치에서 야마구치 선으로 갈아탄 다음 10시 2분에 야마구치역에 도착. 이후 줄창 돌아다니믄서 구경하다가... 이미 4일차부터 체력이 오링나기 시작한지라, 목적한 곳을 다 보지는 못허구, 17시께에 다시 하관으로 돌아왔다. 이 날도 3일차와 마찬가지로 같은 코스 왕복. 상술한 바 파스가 5일짜리인지라, 이 날이 이번 여행에서 열차를 마지막으로 탄 날. 마지막 열차 보내믄서 코끝이 살짝 찡~ 했달까나~


6일차는 앞서 말한대로 지도에 없다. 시모노세키 시내에서 요기조기 구경다니다가 밤에 배타고 한국으로 출항. 따지고 보믄 이 날이 "관" 에서 "부" 로 가는 날이니 진짜 관부연락선은 이건데... 숙박은 배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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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사진보다 보조설명이 더 많은 신세는 언제 벗어나려나... 아마 이게 진짜 마지막일 거 같다. 물론 하기 이와쿠니 스오오시마 야마구치 등지에서도 설명충 짓을 피할수는 읎을거 같긴 허다만... 이 정도로까지 투머치토크를 하진 않을 것.


이제부터 진짜! 여행기다...


이전에 또 구구하게 토크 하나... 이게 참... 산음본선은 바닷가를 지난다. "그 바닷가" 를... 이게 나의 일뽕컨셉상으로는 그 바다를 일본해라고 부르고 싶은디... 이 글을 쓰는 나는 한국인이고 한국어를 쓰고 한국어를 쓰는 한국인들이 이 글을 볼 것이란 말이지?얼마 보지는 않지만 그런 상황에서 일본해라고 쓰는거... 이거 참... 감당 될 일인가 싶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태도를 강하게 비판하며 일본 극우를 반대하며 아베가 날아갈 판이 된게 참 꼬시다고 생각한다. 근데, 바로 그, 잘못된 행위 비도덕적 행위를 한다, 라는 배덕감이 주는 쾌감을 워낙 즐기는지라... 배덕감이 없이는 안되는 몸이 되어버렷! 그런 의미에서 방금전까지 고민을 혔는디... 역시 일상에서 쓰이지 않는 힙찔한 표현이 주는 매력이 추가되는 면이 있는지라


동해(일본해) 로 병기명칭을 쓰기루 혔다.

재기발랄하지 않나?괴기지랄해

배덕감을 유희차원에서 즐기려면 그 전제는 "죽을죄는 아닐 것" 이어야 할 게다. 일본해라고 하는건 죄이긴 하지만 죽을죄는 아니지 않은가? 죽을죄라고? 그럼 하라키리를 할테니 가이샤쿠를...


하튼 이제부터 펼쳐질 동해(일본해)의 절경을 감상하시라. 물론 찍새가 구려서 그렇게 믓지게까지 나오진 않았다만... 누누이 말하지만 나가 보는 그 느낌을 그대로 담을 수 있는 그런 기술이 있음 좋것다.


특색은 없지만 마루마루노 하나시가 출발한 이래 찍은 첫 사진이라 투고. 일본에서 아파트는 기본적으로 서민주거수단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독주택에 살지 공동주거를 하지 않음. 한국과는 크게 다르다. 이 아파트를 찍은 게 자세히 보믄 쓰레기가 쌓여있고 문짝이 떨어져 있고 하튼 폐허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또 인상깊어서. 일본의 빈집문제는 점점 심각함을 더하고 있다. 한국도 아직은 평균수명의 증가가 인구증가를 떠받치고 있기에 빈집문제가 주변적 의제지만... 이건 서울같은 대도시에서나의 일이지 시골 다녀보면 장난 아니다. 힙찔이근성에 충실하게, 한국내 여행을 다닐때도 시골동네 위주로 다니는데, 버려진 폐가 허물어진 담장은 쉽게 볼 수 있다. 시청이나 군청 소재지에서도. 시모노세키는 인구가 26만이니까 절대수로는 군산시 정도, 인구비례로는 구미시 정도하고 비교할 수 있을텐디, 지역경제상황따라 다르지만 아직 한국은 그렇게까지 심하진 않음. 구미야 경제가 망가졌으니 그렇다치고 진주나 원주같은 도시에서 저런 빈집이 빈발하기 시작하믄 한국에서도 이게 진지한 문제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할게다.


일본스러운 언덕마을. 언덕도 좋고 마을도 좋지만, 그것보다 좋은 것은 언덕마을이야!



이 사진에 제목을 붙이라면 메멘토 모리 정도? 일본문화에서 죽음이란 요소는 굉장히 중요하다. 이 떡밥도 이야기하자믄 길어지는디... 간단히 투 스몰토킹을 혀 보자믄, 대개 싸울아비... 아니 싸무라이의 죽음의 문화에서 그것을 인지하는 분들이 많을텐디, 그건 부차적인 것이다. 보다 정확히는 일본이 죽음의 문화가 워낙 공고하기 땀시 지배층인 싸무라이 문화도 그렇게 뒤얐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어째 이번화는 껄끄러운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디... 일본의 문화를 들여다보믄서 가장 나으 시선을 붙잡은 것은 신사였다. 아마 계속 이야기해야 할텐데, 난 일본의 침략과 우익행위를 증오해 마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신사가 한국인들에게 아픔을 준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의 문화를 이해하려면 신사빼고 이야기가 안된다. 일본의 악행과 일본의 문화가 큰 관련이 있고 상호작용 헌 것도 맞다만... 악이라고 매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악은 악 자체의 흥미로운 요소가 있는 것이고, 나는 신사와 신토라는 것에서 그걸 느끼는 것. 그래서 비판하는 태도를 결코 잃지 않는 베이스에서 일본의 신토문화를 나름대로는 진지하고 깊게 들여다보려 한다. 신사참배도 많이 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거 못 참겠으면 보지 마라. 솔까,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짜증난다. 사실 아무도 뭐라 안하는데아무도 안 보니까 제 발 저려서 이러는 거 같기도 하다만... 대놓고 일뽕짓하다가 태클 들어오면 그 때부터 반응하는걸로 할까... 뭔가 이렇게 제 발 저리는 거 스스로 보기에도 꼴불견 같기두 허니깐.


각설하고

일본의 정신문화의 두 축은 불교와 신토이다. 신불습합 같은 이야기도 있으니. 나는 아직 이 둘의 관계와 의의를 정확히 이해하진 못헌다. 사실 정확히 이해한다고는 은가이 공부 많이 한 사람이라도 함부로 말할 수 있는건 아니지만... 위으 사진으 경우는 기본적으로 불교문화에 바탕헌다. 일본인들은 죽으믄 집근처 절에 가서 스님 모셔다가 불공드리고 화장하고 가족묘에 분봉헌다. 그랴서 저런 비석들 보면 ~~家之墓라고 쓰여있다. 도쿠가와네라면 德川家之墓 이렇게 쓰여있다는 것. 그리고 보시다시피 바로 집근처에 그런 묘들이 떼로 모여있는 절들이 동네 골목골목마다 있다. 기억할 사람이 을매나 될 지 모르긋는디, 지금 서초구 원지동에 가면 서울 추모공원이 있다. 까놓고 말해 화장장 납골당이다. 이거 들어올 때 반대 을매나 심했냐. 게다가 지금도 화장시설은 크게 부족하고, 화장시설이 있는 지역은 니네는 니네가 만들어 쓰셈, 하고 없는 지역은 아 그거 놓을라니 반발하고 거세하는 사람 많아 안되니 그냥 쓰겠심 하고 좀 싸워대나. 화장실에서 신문보며 똥싸는 아빠한테 가서 아빠 집 옆에 화장장 생긴대요 라고 말해봐라. 당장 똥 끊고 나와서 피켓들고 시위하러 가실거다. 그런 모습과 비교하면 완전 딴판인 거랄까나.


저렇게 집 근처 불사에 '아웃소싱' 을 주는 집들도 있지만... 아직도 집 마당, 혹은 집의 방 한 구석에 불단을 만들어놓고 직접 모시며 제사하는 집들도 많다. 일본 소설이나 만화 보면 아침에 불단에 가서 불공드리는 할머니한테 가서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는 주인공의 모습 같은 거 많이들 봤을게다. 한국인들이 죽음을 철저히 자기들의 공간에서 배제시켰다믄 일본인들은 삶이 죽음이요 죽음이 삶이다. 그들은 모리를 좀 심하게 메멘토하고 있달까나.


윗 사진이 불교차원에서 사람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라믄 신토 신사의 경우는 사람이 아닌 것들과의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나. 일본의 신사가 몇개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읎는걸루 안다. 나가 들은 것만 8만개설, 12만개설, 30만개설, 60만개설까지 여러개가 있는지라. 신이 8백만이라는데 신사가 8백만곳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하려나. 신토는 현세에 살아있는 애니미즘이다. 온갖 자연현상 괴기 신비스러움에 전부 신을 갖다 붙여놓고 그들을 경배하는 것을 일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일본 애니 보면 명절마다 신년마다 신사가서 참배하는 게 당연시되는 것 또한 많이들 보셨을 터. 굳이 "너 사실 신토를 숭배하는거 아니야?" 라고 하면 대개는 아니 뭐 딱히 별 생각없이 가던거니까 가는거야, 정도의 답이 돌아올 것이다.


계략도 중요하고 교섭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한다는 것이야!


별 생각없으면 안 가면 되잖아? 근데 왜 굳이 가? 내심을 숨기고 있다고 추궁하려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 자연스럽게 일상화되어 있다는 그 자체가 문화요 사고방식이라는 것. 무의식은 프로이트의 위대한 유산이다. 신토는 일본의 사회적 무의식이랄까나. 일종의 2중체계인 면이 있다고 본다.


 

 현세

내세

 닝겐

 지금 우리닝겐들

불교

 인간외

신화와 괴담

 신사


거칠게 정리하자면 이 정도랄까나. 가장 명백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것은 현세의 인간이다. 그리고, 대개의 소위 "근대화된" 사회에서는 이게 절대적이다. 마, 유우럽 사회도 근대화 이전엔 인간외, 내세 같은 게 중요혔으니까... 이걸 세속화 라고 할 수 있긋제.


일본 이야기헐 때 천황이란 존재를 뺄 수 없는디, 그 천황의 공식적 의의는 일본국의 상징이라는 일본국 헌법 제 1조이지만 비공식적 의의는 일본을 창조한 신의 직계후손이란것이다. 맛카사 쇼군... 맥아더 장군의 지배하에 와타시는 카미가 아닌 데스웅~ 이라고 말할 것을 강요받았지만, 쇼와천황이 진짜 그렇게 생각했을거라 믿는 흑우없제? 혼네와 다테마에는 노무 당연해서 굳이 쓸 필요가 없어진거지, 일본이란 부족이 겉과 속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따지고 보면 누구나 어느정도씩은 겉바속촉이지만 일본의 겉바속촉은 세계제이이이이이이이일! 이라는 것은 일본인 빼고 누구나 안다.


인간외의 존재와 사후에 대한 인식을 불가지화 하는 것이 근대화를 통한 세속화라고 한다면, 일본인들의 현황은 그것에서 거리가 멀다. 정말로 사후의 존재를 믿지 않고 인외의 것을 신경쓰지 않는다면, 신사를 왜 가는가? 사실 그렇기에 신화 혹은 종교와 문화의 관계라는 또 다른 테마를 논하긴 혀야허는디, 이미 길어진 사설에 그런 이야기까지 할 처지는 아닌거 같고... 이러한 인간으로서의 자신... 이랄까? 그런 것에 대한 확신의 부족함이 일본의 문화에 굉장히 강하게 개재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일본의 정신문화에 독특함을 부여하지만, 그러한 부분이 또한 현재 일본의 무책임 사회로서의 성격에 크게 개재하는 면도 있다고 보기에... 저런 부분이야말로 나가 일본을 좋아하는 이유이믄서 일본을 싫어하는 이유가 되는지라, 참 복잡한 심경으로 만들곤 한다. 메타적으로는 바로 그러한 도저히 명쾌하게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함이 들여다보는 재미 자체를 유발하기에 결과적으로 나는 일본을 들여다보고 일본을 즐기는 것이지만.


앞서 일본은 늪이라고 혔는디, 그 이유중 하나는 역시 이것이다. 어차피 일본은 죽을때까지 들여다볼거고, 이 이야기도 계속 생각할 것인지라, 난중에 또 이야기허자.


각설하고

계속 산음본선을 달려가보기루 허자.


하타부역의 모습. 하관역에서 출발한 이후 첫 역이자, 이 곳에서 산양본선과 산음본선이 갈라진다. 산양본선은 히로시마 오카야마 고베 오사카로, 산음본선은 시마네 돗토리같은 깡촌... 을 거쳐 교토로 이어진다. 우리는 이제 산음본선을 달리며 깡촌과 동해(일본해)를 볼 것이다.


뜬금없는 이 사진은, 원래 산음본선으로 접어들면서 산양본선을 찍으려는 의도로 잡은 샷인디, 산양본선의 모습이 전혀 안 잡혔다...사진 밖의 축대가 바로 산양본선의 노반이다.


평범한 일본 가옥들의 모습. 윗 사진은 ~~하이츠 하는 표현이 일본에서 왔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는거 같아 찍어봤다. 한국에선 빌라들에 그런 이름이 많이 붙지. 밑 사진은 뭐랄까... 딱 전형적인 일본식 스위트 홈~ 이란 느낌이 들어서. 아담한 부지에 살짝 축대를 돋우고 벽안에는 아기자기하게 정원을 꾸민 2층 일본식 가옥이라니. 거기에 저 돋움과 계단오름라인에서 지붕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일본식 성의 미니어처 같은 느낌도 들구. 아무래도 천수각이라는게 크게 짓은 일본집이다봉께, 일본 가옥들이 그것과 유사해 보이는 면은 있긴 하겠다만, 저 축대와 계단 놓는 방식또한 일본식 성이 그런 모습을 역시 크게 확대해 놓은면이 있는지라... 아담한 집이라는 귀여운 모습과, 무시무시한 군사요새라는 일본성의 축소판이라는 모습이 겹쳐보이는 것이 또한 이율배반 혼네다테 겉바속촉한 일본다워서 좋다.


수로는 언제나 옳다. 특히나 열차를 타고 다리를 건너며 보는 수로라면 더더욱.

일본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3N의 필두. 일본인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드립인데 사진으 NTT도코모라는 국영이었다가 민영화된 통신사, Narita 공항, Nihongo 일본어를 일본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3N이라 불리며 까곤헌다.


니홍고가 3N인 이유. 설명이 必要韓地?


전형적인 일본식 연립. 이런 구조으 연립 꽤 효율적인 거 같은디, 한국엔 왜 안 들어오는지 잘 모르긋다.


수 · 로 · 좋 · 아


열차에서 달리며 보는 철길건널목도 오모시로이한 풍경. 너희들은 나 때문에 서 있는 것이지. 너희를 놔두고 나는 간다! 얼마나 힙찔한가


보인다! 동해(일본해)!


바닷가를 달리는 국도 옆을 달리는 철도, 로망 그 자체 아닌가. 한국에선 일단 바닷가를 달리는 국도 자체가... 그나마 7번국도가 이에 해당하긴 할게다. 지금 동해중부선이 한창 공사중이고 이 노선이 7번국도 인근을 달리기에 내심 기대는 혔다만... 아쉽게도 고가 터널 고가 터널만 달리는 노선이 뒤야부렀다... 그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서두...


아무래도 열차 차창밖으로 찍는거다봉께 차창에 조명이 비치는 정도까정 막기는 힘드니 양해를. 굳이 토 달거 없는 풍경이다. 다만 전선이 쫌금 눈에 거슬리긴 허다만... 이 역시 일본애니코믹을 보는 분들이라면 골목길위에 전신주 사이사이로 드리워진 전선너머 높은 뭉게구름을 걸어가는 청춘들의 모습을 많이들 접하실텐디 이야말로 일본의 모습 그 자체이지 않긋는가.


궁극의 오막살이. 기찻길옆이면서 찻길옆이면서 바닷가옆이다. 아기가 노무 잘자 안 깨어날 거 같다.


섬 삼형제. 개노답은 아닐거 같다.


열차는 구식이지만 어쨌거나 특급클라스인지라, 안 서고 지나는 역이 많다. 그런 역명판들을 찍었는디 어째 죄다 흔들렸댜... 흔들린 역명판을 대표혀서 요시미역 역명판을 올려본다.


이 짤의 풍경보고 토하는 줄 알았음. 노무 좋아서. 수로옆의 철길건널목이라니.

수로도 좋고 철길건널목도 좋지만, 그보다 좋은 건 수로옆 철길건널목이야!

오막살이도 전선도 시골마을도 훌륭한 배경맨들.


시골이다. 산능선의 흐름새와 펼쳐진 농지, 그를 배경으로 지나가는 큰길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갈래길의 모습이 좋아서 찍어봤다. 모습은 안정적이야.


아직 파종이 시작되지 않은 논밭, 강가로 이어지는 갈대밭, 동해(일본해)로 흘러드는 개울물로 이어지는 3단콤보가 모습 자체로 스토오~리가 되기에 올려봤다.


요시 바다는 모래사장이 있어야 더 빛나는 것. 아까 줌 땡겨서 찍었던 섬 개노답... 아니 섬 삼형제가 좀 더 가까워졌다.


건널목 너머로 보이는 집들이 참 일본틱허다.


이런 집은 기와끝도 그럴싸허게 꾸며서 진짜 일본성으 천수각삘난다. 다니다보믄 같은 일본식 가옥이라도, 저 지붕끝에 장식을 잘한 집과 안한 집이 갈린다. 니뽄삘과 니뽄간지으 차이는 확연. 재력차이긋제.


이 동네는 밀감이 특산물이다. 제주도보다 위도가 쫌금 높은디, 섬이라 더 따뜻허기두 허구, 작금에는 남해안에서도 밀감을 키운다고도 허니 자연스러운 일. 먹어봤으믄 좋을건디 못 묵어봤다. 못 먹어본 과일맛은 항상 시게 마련인 법.


일본가옥 퍼레이드.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할 거지만, 일본에는 이러한 전통식 가옥이 정말 무진장 많다. 한국에서 한옥보려면 북촌, 안동, 전주등의 한옥마을에 가야하는 것과 달리, 일본은 그냥 대도시 중심부 아니면 거의 어딜 가나 일옥마을이다. 딱히 전통마을구경갈 이유가 읎는 것. 하도 일상적이다봉께, 아마 일본인들은 일본가옥거리에 딱히 큰 애착이 없지 않을까 싶기두 헌디, 히다의 후루카와 마을이나, 사이타마의 가와고에 같은 곳이 나름 인기인 것을 보믄 제대로 된 전통마을은 또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듯도 싶다. 나는 아직 일본력이 부족하야 저런 흔한 양산형 가옥만 봐도 하앍하앍이다만.


코구시역에 도착. 꽤 온거 같지만, 아직도 시모노세키시내임... 앞서 마루마루노 하나시가 하기의 하, 나가토의 나, 시모노세키의 시 라고 말한적 있는디, 당연 시모노세키가 세 동네중 제일 커서, 하기까지의 전 구간의 반 안팎을 차지헌다. 군산이나 진주같은 도시들도 도심지는 도시지만, 외곽으로 나가믄 노선버스가 하루에 3대도 안 들어오는 마을들도 있는 것과 비슷헌 것. 일본은 철도가 조밀혀서 구석구석 철도역이 있는 게 차이인 거구.


야생의 신사가 나타났다! 뻘건 도리이가 줄줄이 있는걸 보니 이나리 신사의 말사들중 하나인 듯. 앞으로 줄창 보게될 것이다. 하앍하앍.


좀 흐리게 나온게 통한일 정도로 맘에 든 사진. 흰 벽, 동백나무, 일본식 기와지붕이 또한 일본스러운 멋의 한 단면을 노무 잘 보여준다.


일본토인들의 소굴


뭐라고 읽는지는 모르긋다만 하여튼 무슨 해수욕장이라구 헌다. 여름에 이런 데 와 보믄 참 좋을 덧. 하얀 모래밭에 파란 바닷물이 부딪혀 하얀 파도로 바수어진다.


마루마루노 하나시는 관광열차이다. 그런고로 풍경이 좋은 곳에서는 잠시 멈춰서서 사진을 찍는 포토타임을 제공헌다. 이 곳이 처음으로 멈춰선 포토포인트. 트라이포드들이 많은 것은 쫌금 신경쓰이지만... 탁 트인 동해(일본해)의 모습을 바라보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다.


저 바다색깔 뭐냐고... 이 일대가 주변에 딱히 항만이나 산업시설이 없어 물이 유난히 깨끗하긴 할테다만, 나중에 볼 시모노세키 항, 그것도 무려 조선소 앞의 바다도 깨끗했던 것을 보면 확실히 일본쪽이 한국에 비해 바닷물의 오염은 훨씬 잘 관리하고 있는 느낌이다. 쪽빛바다 에메랄드빛바다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말이 필요없다. 그냥 감상감상. 이런 모습을 열차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더욱 훌륭. 한국에도 옛 삼척선을 활용한 동해안 관광열차가 있긴 허다. 아직 타보지는 못혔다만. 삼척 강릉에 놀러갔을 때는 나가 아직 경제권이 없던 시절이거등. 다만, 그건 교통수단으로서의 의의를 잃고 박제화된 거지만, 이 열차는 살아있다. 이맛에 일본온다...


수질 뭐냐고... 좀 오바하자믄 소금기만 빼면 그냥 마셔도 되긋네... 쪽빛으로 짙게 물든 바다가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투명하게 비춰보인다는 이 이율배반...


열차는 다시 달리기 시작헌다. 저 바위위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아도 좋겠다.


노무 깨끗하고 색이 짙다보니 오히려 오염물질 같아 보일 지경이다. 바다는 푸르른 우라늄색~


이런 곳의 펜션에서 묵으면서 바닷가를 마냥 걸어다녀보고 싶어서 찍어봤다.


유타마역


그 분은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 이 양반 지역구가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다. 저 때만해도 아베 신조 내각총리대신님이 천년만년 해처먹을줄 알았지... 물론 아직 끝나진 않았다만, 빨리 원 내각총리대신이 되셔야 헐텐디.


산 바다 들 그리고 길


바다에 떠있는 쫌끔만한 섬이 모에포인트


길은 바다를 달린다


그리고 그 길은 굽이굽이쳐 도는 바닷가를 따라 끝없이 달린다.

이 풍경보고 또 뻑갔는데, 열차 조명이 눈치없이 끼어들었다. 관광용 오픈카를 배치하라고 시위해볼까.


best 미니멀한 풍경. 길과 바다와 하늘만의 담백한 모습


그러나 늘 그렇듯이 뛰는 best 위에 나는 better가 있는 법. 바다와 하늘만의 더더욱 담백한 모습.

닝겐 돌아와도 자리없다.


그냥 좋다... 절대로 코멘트 달기 귀찮은 게 맞습니다 ㅎㅎ~

사실은 내 스타일 자체가 기본적으로 사진 하나 찍을 때 마다 이건 여행기에 이런 코멘트 달믄서 올려야징~ 하고 찍는 것인지라, 일일이 다 달라믄 달 수는 있다만... 솔까 막연한 감상을 구체적 표현으로 옮긴다는 거 나도 피곤헌 일이구, 안 그려두 말이 너무 많군 인 놈이 말이 더 많아지믄 보는 사람도 피곤허니께... 봐라봐라, 왜 코멘트 안 다는지에 대한 이야기조차도 말이 많아지잖아...--




사실 이번 편을 쓰기 전에 주저했던 이유중 하나가 뭐냐면... 보시다시피 절경과 절경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모습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이 동해(일본해)연안을 달리는 산음본선의 풍광이긴 허다. 근디... 그러다봉께, 시모노세키에서 하기까지 가는 열차안에서 찍은 사진이 400여장... 물론 이것도 일본여행이고 애초에 관광열차기두 허다만, 열차안에서의 모습만으로 여러 화를 차지하는 게 쫌금 그렇다, 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한 화로 끝내고 싶은데 사진이 400여장... 컷컷한다혀도 뭔 수로 400장을 한 화에 한댜... 하는 게 고민이었다. 그랴서 엄두가 쫌금 안나서 일주일 이상 미뤄진 면이 크다. 그리고 직접 써보니깐 초반에 사설도 있다봉께, 도저히 한 화에 끝낼수는 없을 거 같다. 이미 충분히 긴데... 하고 싶은 말이 노무 많아서 늘 문제.


그런 관계로 일단 산음본선 전편인 셈 치고 오늘은 여기까지. 어차피 연장선상이니 산음본선 후편은 내일 쓰는 것으로 하긋다.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여행기 + 관련글을 처음 쓴 게 3월 4일인디, 쓰기 시작헌지 10일만에 드디어! 일본에 닿았다. 이제부터 펼쳐질 모습들은 내지의 그 것. 각오들 하시라! 후후


제대로 잠은 못 잤지만, 하여튼 마지막 순간엔 항상 잠이 들어있긴 허다. 눈을 떠 보니 기분좋은 리드미컬한 흔들림이 멈춰있었다. 아 도착했구나. 부랴부랴 캐머러를 챙겨들고 배박이... 아니 배 밖으로 나갔다. 이 사진은 나가서 처음 눈에 들어온 모습.


가이쿄유메타워 - 한국말로는 해협 꿈의 탑.143미터정도인지라 그리 높은 탑은 아니다만 인구 26만의 시골도시에서 그 이상을 바라기는 힘들제. 높이는 애매혀두 위치가 완죤히, 본주와 구주를 가로지르는 해협수로의 목줄기에 서 있는지라, 전망은 좋다. 다만 올라가지는 않았다. 나으 힙찔이 근성이 남들 다 가는 곳은 가지 말랑께, 라고 울부지져서. 나중에 가 볼 기회가 있긋제. 하관에만 3일을 여행(지난 사가여행당시 1일 있었으니)했지만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이 많다. 히노야마 공원도 안 가봤고, 남풍박(하에도마리)시장도 안 가봤구. 그니까 나중에 또 가볼 핑계가 되지 않갔어?


시모노세키 항에서 시모노세키의 풍경을 찍는다면 대략 이 모습. 저 멀리 간몬대교가 보인다. 다리 왼쪽이 히노야마 공원이고, 다리 오른쪽은 북구주시의 구 모지(門司)성터가 있는 산. 산 이름은 모루겟소요. 구글지도에도 안 나온다. 산 정상이 모지성터라고만 나오지... 다음에 부젠국 여행때 가 보는 것으로.


다리 앞에 보이는 동그란 것은 하이! 가랏토 요코초 놀이공원내의 관람차. 저런거 타는거 좋아하는데 왜 탈 생각을 안혔는지 지금와서 보니 의아허네. 혼자가서 못탄다, 라는 것은 반대다. 나는 힙찔이기 때문에 아무도 혼자 탈 생각을 안하는 것이야 말로 혼자 탈 가치가 있다고 생각허는 놈이니께. 난중에 저것두 타 봐야징.


평범한 수로 같은데 왜 찍었냐믄, 이것이 반도방향에서 오는 수로의 입구기 땀시. 방금 전까지 잠든채로 저 수로를 항해해 왔던 것.


그냥 올리는 시모노세키 항의 모습들. 선상 앵글은 흔치 않지 않카써? 밑의 사진에는 배가 물을 배출허구 있는데, 저게 그 평형수인가 뭔가하는 그것 아닌가 싶다.


달이... 아름답군요...

내지에 와서도 듣는 사람 없이 읊어본다. 흙흙...



아쉽게도 배가 침몰하지 않아, 여기에 집합해 볼 기회는 없었다. 다음엔 잘 부탁해요옹~~


선상반란에 결국 실패하고 순순히 시모노세키에 내릴 준비를 하는 반란군... 아니 선원들의 모습


항구는 시모노세키다. 당연한 소리. 오른쪽은 화물부두이고 왼쪽이 우리가 내릴 하관항 국제여객터미널이다. 오른쪽 부두가 화물부두라지만, 젠카이노~ 에서 봤듯이 이 배도 적잖은 화물을 싣고 왔기 때문에 짐도 많이 부린다.


저 작은 배는 무슨 꿈과 희망을 안고 끝없는 대해원을 향해 나아가는가.


우리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5만마력 엔진


우리를 여기까지 몰고 온 하마유 대본영. 선장사마이하 일동 수고많으셨다능.



드디어 배가 접안허기 시작헌다. 사실 도착은 꽤 전에 혔다. 붓싼부터 하관까지의 통상속도로의 항해시간은 대략 8시간. 전일 21시에 출발혔으니 순수 항해능력만으로는 새벽 6시 이전에 충분히 도착함. 그러나, 항만측이 접안을 받을 준비가 뒤아야 배를 댈 수 있는거인지라, 몇 시간 기다렸다. 붓싼으로 돌아갈 때는 더 많이 기다린다. 출발이 19시거든.


배를 받을 준비를 하는 항만롸동자들의 모습. 성별 여성.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니까. 요즘 같은 세상에 미투 당하기 딱 좋은 드립.미투운동 지지합니다. 진짜라구욧!


큰 가방을 가지러 배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며 찍음. 처음에는 일본어 자판기라 일어... 일제! 라고 좋아혔는디, 전부 롯데거라 짜게 식었던... 다만 역시 한국에선 롯데가 롯데하지만 일본에선 그랴두 롯데두 일본하는지라 한국판매품보단 질이 좋더라. 요식업은 갓본이 짱!


개돼지들도 나와서 구경하기 시작. 처음에는 배박이에 나 밖에 읎었는디, 배가 닿은 것을 알고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허더라.


바다위에 점점이 떠있는 갈매기들의 모습.


이제 진짜 내린다.


내린 이후, 붓싼국제여객터미널과 비슷한 이유로, 하마유호의 사진을 더는 찍지 못혔다. 그런고로 이 사진이 하마유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이다. 돌아올 때는 성희호였응께. 하마유의 미니어처가 마지막이라니 상징적이지 않은가. 10시간 동안 즐거웠고 수고많았으요. 하마유 안녀어엉~~


내리면서 이러쿵저러쿵한 수속을 밟는데, 사진은 찍지 말라구 뒤야있다. 그랴서 수속 다 밟고 터미널 로비에 나와서야 사진 찍는게 가능함. 하관항과 관련된 여행지들을 사진으루 소개허는디, 일관성이 보인다. 즉, 성-현-도 prefecture 레베루으 것은 영어로, 시급의 하위 행정구역은 한자로 써놓은. 경남도, 야마구치현, 산동성은 앨퍼빗이고 광양 태창 붓싼 하관 청도시는 한자로 쓰여있다. 이것이 일본의 꼼꼼함이란 것입니다?


아 이제 사진이 좀 낫네. 앞서 선상에서 찍은 사진들은 새벽이라 그런지 쫌금 화질구지인데, 여기부턴 화질구지가 좀 덜함. 어차피 여행을 많이 다닐거니 사진 찍는 것도 좀 배워야긋다, 생각은 허는디 늘 그렇듯이 공부하는건 싫어서... 그랴두 일본어 공부는 진짜 혀야허는디...


타미나루에서 나와서 바로 찍은 사진. 저 육교가 하관역까지 직통으로 이어준다.


붓싼 아지매들이 나온 것은 양해를. 자르기 귀찮아서. 어차피 붓싼 광역시 시모노세키 구에 마실 나왔으니 붓싼 토인이 붓싼에 놀러온 거 아니긋는가.


각설하고

국제여객타미나루으 모습이다.


해협꿈탑. 높은 것은 아름답다.


이 곳은 나가 여행 5, 6박을 하게 될 스마일호텔시모노세키. 그러나 지금은 하기로 가야헌다. 나중에 보자구~


조센과의 역사가 얽힌 역사도시 시모노세키 다운 도시장식물, 저 시절 관부연락선은 배수량이 3천톤가량이었음. 1만 6천톤인 지금, 양국관계는 5배 가까워졌는가...


일본교통체계의 특징을 보여주는 사진. 한국이라고 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본은 철도가 주를 이루고 철도역을 중심으로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는 버스망의 2원체계구성이라는 성격이 월등히 강허다. 하관시내의 경우는 산양본선이 주 철도역할을 하는데... 사실 하관내에서는 산양본선이 핵심부를 잘 포괄허진 못한다. 도시 핵심부는 간몬해협 바닷가를 따라서 있는디, 산양본선은 내륙쪽으로, 산음본선은 일본해쪽으로 뻗는지라. 그럼에도 하관역이 핵심적인 이유는, 하관시가 인구 90만인 북구주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 이 날 하선한 시각이 7시 45분이고 역에서 대략 8~9시 사이를 보낸지라 딱 통근시간이었는디, 통근자들이 음청 많이 타고 내리고 열차도 계속 드나들었응께. 하튼 하관역은 그런 관계로 수 많은 열차와 수 많은 버스들이 드나든다. 한국의 30만급 도시에는 이런거 읎제?한국은 도로로 다 때우는데요


잔돈도 바꿀겸, 선상에서 충전을 잘 못혀서 빳떼리가! 부족혀진 캐머러 에너지도 채울겸, 내 에너지도 채울 겸 모스바가에 갔다. 전에 다 먹은 접시사진만 올리는 컨셉으로 인기를 끌었던 식당후기 사진블로그으 컨셉을 표절해봤다. 맛은 쏘쏘. 역시 육식은 일본인으 특기가 아니랑께요...


대신 해산물은 일본이지! 으아~ 넘쳐흐르는 회와 벤또들~~ 난 이것을 먹기 위해 일본에 온지도 몰라...진짜 일본가서 회와 도시락만 잔뜩 먹고와도 본전은 뽑고 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따쉬락을 적당히 싸들고 승강장으로 올라가 본다. 2년만이군 시모노세키역은.


철덕아니면 잘 모를 일이지만, 일본은 철도궤간이 협궤다. 한국은 표준궤인 1435mm 궤간을 쓰는디, 일본은 1067mm의 케이프궤간을 사용함. 유신 후 초창기 일본이 그지일때야 싸게싸게 철도를 짓는데 유리혔지만, 싼건 싼 이유가 있는지라... 수송능력이 떨어져서 이 이후로 곤욕을 많이 치른다. 표준궤로 바꾸니 마니 하다가 일본답게 이것도 저것도 결정 못하고 그냥 지금에 이르러버림...


일본이 지배한 조센은 표준궤인데, 일본이 대륙을 침략하고자 대륙과 궤간을 맞췄기 때문이 중요한 이유이다. 나쁜놈들이 나쁜의도로 한 일이 좋은 결과를 낫은 흔치 않은 경우랄까나?


까마귀! 나가 가장 좋아허는 새중 하나다. 불길하니 좋지 않은가? 우는 소리도 그렇고 은근히 큰 새라 존재감도 쩔고 하여튼 간지폭발이라 좋아함. 이 이후로도 느끼는 건데, 일본은 여러모로 한국보다 생태레벨이 높다. 숲의 울창함도 한수위고, 애초에 느낌이 온대식생이상 열대식생미만인, 하나 윗단계인 느낌이고... 새의 경우는 한국에서 비둘기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일본에선 까마귀가 차지허구 있다. 비둘기 구경을 거으 못할 정도. 그리고 한국에서 까마귀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매가 차지하고 있고... 마을에서 매가 무리지어 사람 머리위를 날아다니는 모습을, 한국에서 까마귀가 그러는 것보다 더 자주 볼 수 있다. 곧 가게 될 하기에서 매의 사진을 찍었는데, 제대로 찍지 못해서 그 포풍간지를 전하지 못하는 게 아쉬울 지경.


쩌그 철길으 끝에는 본주와 구주를 잇는 지하철로가 있다. 본주와 구주를 잇는 경로는


도로 - 간몬대교

보도 - 간몬해저보도

철로 - 산양본선해저철도톤네루

       - 산양신간선해저철도톤네루


가 있는디, 도로교인 간몬대교 빼고는 전부 해저로 지나가는지라 볼 것은 읎다. 그랴서, 언젠가 차량을 타고 간몬대교를 건너보는 것이 또 하나 목표임. 이번 여행이야 철저히 컨셉을 지켜 야마구치 밖으로 한발도 안 나갔고, 여행기 막판에 그 인증도 할 것이다만, 난중에 부젠 지쿠젠 지쿠고국의 터전을 이어받은 후쿠오카 여행을 갈 때는 두 지역을 반드시 타통할 것이다.


여러 열차들의 모습. 대충 느끼시겠지만 열차들이 구리다... 완행이라 그렇기두 허지만, JR 서일본이 좀 짠돌이다. 사실 JR 동해(도카이)와 JR 동일본을 빼고는 다른 JR 지사들은 경영상태가 그리 썩 좋지 못헌지라... 특히 서일본은 관할구역도 터무니 없이 넓고, 동일본이 관동이라는 절대적 캐쉬카우가 있는데 비해, 서일본은 관서지역이 캐시카우지만 여기는 일본 전국에서도 가장 사철과의 경쟁이 극심... 그랴서 서일본은 규모에 비해 자금여유가 그렇게까지 빵빵하진 못함... 그랴서 80년대에 나온 사진에 나온 것 같은 열차들이 아직도 굴러다니구 그런다. 한국같으면 전부 폐차되었을 열차들임... 이래도 분할민영화입니까?



위의 백청무늬열차는 북구주 고쿠라와 하관을 잇는 셔틀열차격의 열차임. 행선판이 선명어다. 두 지역은 꼴랑 두 정거장, 14킬로미터 거리밖에 안되니, 거으 마을버스 수준으 열차랄까나. 다만 이러니 저러니 혀두 상징성과 실용성은 크지. 본주와 구주를 잇는거니께


자 이제 따쉬락을 먹을 시간! 아까 들렀던 마트에서는 방어회와 시메사바초밥을 사왔다. 동네마트에서 방어회와 시메사바초밥이라니... 서울에서 고등어초회초밥을 먹으려면 어디 가야했더라... 방어회는 노량진가서 먹으려다가 눈탱이 맞은 기억밖에 읎구... 근데 그게 동네마트에 널렸다. 사스가 갓본... 이 방어는 에히메현산이다. 양식인건 뭐 좀 그렇다만, 나는 딱히 자연산과 양식맛을 구분할 정도로 고오급 입맛은 아니니 상관읎구. 두툼허구 큼직헌게 5조각인데 430엔, 4천여원이니 가성비도 긋긋. 마 노량진에 가서 "잘" 사면 이것보다 싸고 좋은 자연산을 살 지 모르긋다만, 노량진에 가서 "잘" 사는게 가능한 사람이 얼마나? 거으 대부분은 사기꾼 천지빼가리인 노량진에서 눈탱이만 맞는다. 재작년 겨울에 알고 지내던 사람이 방어먹으러 노량진 가자기에 거기 가면 사기먹을텐데요... 하고 말렸는디 굳이 가자그래서 갔다가 아니나 다를까 사기먹고 온 이후로 노량진은 쳐다도 안 본다. 나같이 실력도 없고 보는 눈도 없는 사람도 좋은 가성비으 방어를 집앞에서 사 먹을 수 있다니 을매나 좋은가. 이런 유통망이 전국에 깔려있다는 게 일본 요식업, 유통업의 진짜 저력일게다. 지금 한국에서 제철 방어를 동네편의점에서 사 먹으려면 어느정도 자본이 투자되어야 헐런지...


때깔좋고~ 비주얼 좋고~ 맛 좋고~ 만족스럽게 묵었다.


원래 역에 가믄 역명판을 찍어 조의... 아니 예의를 표해야 허는디 좀 늦었다. 모지역은 북구주이고 하타부역은 산양본선과 산음본선이 갈라지는 분기역이다. 소속은 산양본선. 잠시후 나는 하타부역 방면으로 출발헌다.


간지포풍 까마귀장군님 보고가라


이 방면이 산음 산양본선방면. 저 길의 끝에는 동경이 동경너머에는 동북과 북해도가 그 끝에는 왓카나이가 있겠지. 언젠가 가 닿을 곳들이다.


나가 탈 열차는 일반열차가 아니다. 마루마루노 하나시라는 특별관광열차.


파스를 끊었기 땀시 대부분으 열차는 자유석에 그냥 타믄 그만이지만, 이 열차는 일반열차가 아닌지라 자유석わ ない... 전석 지정석인 열차이다. 한국에서 각 지역간의 이동을 검색할 때는 하관에서 하기까지가는 직통열차가 있네? 하고 ㅎㅎ 거렸다. 왜냐믄 일본에선 직통열차가 드럽게 없기때문... 신간선을 제외하고는 일반열차는 특급쾌속도 300킬로미터를 넘게 운행하는 편이 없다. 한국의 열차가 300아래가 별로 없는 것과는 상반되는 것... 그런데 있기에 좋아했더니... 와서 보니까 이게 일반열차가 아니라 관광특별열차 아닌가. 그렇기에, 파스만으로는 탈 수 읎구 지정석을 끊어야 한다는 것을 타기 직전에야 알게 된 것이다. 솔까 일어능력이 제로에 수렴하는지라, 지정석은 가급적 사용하지 않으려구 혔는디 난관에 봉착한 것. 일본에서 번역앱을 딱 두 번 썼는디, 그 중 하나가 여기였다. 정확히는 지정석을 끊어야 하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역무원에게 파파고로 찍어서 보여준 것. 이 역무원이 또 좀 어리버리한건지, 처음에 파스를 보여줬을 때는 별 말 없더니, 이상한 낌새를 느낀 나가 번역앱으로 보여주니 그때가서야 지정석 끊어야 한다고 해 주는 것이 아닌가. 그랴서 부랴부랴 지정석을 발권해주는 미도리노마도구치라는 역무창구에 가서 발권받은 것이 사진의 지정권이다. 끊지 못했으면 첫날 일정 완전히 망가질 뻔... 왜냐면 일반열차를 갈아타고 가면 도착시간이 수 시간이 늦어지는 데, 그 정도가 문제가 아니라, 하기가 위치한 지역은 산음본선이 지나가는데... 이 산음본선의 배차간격이 아~~~주 창백하기 때문이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중간에 열차가 없는 시간이 3시간 이상 있었던 것으로. 그니까, 하기에 도착하자마자 저녁시간 되어서 바로 숙소에 가서 자야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뻔 혔던 것. 히히~ 방어 맛있당~ 하고 아무 생각없이 열차에 타려했다가 못타고 쫓겨나고 벙찔뻔했던 위기였던 것이다. 다행히 눈치를 채서 지정권을 끊고 탑승에 성공한 이 경험으로 나으 일본여행력은 또 1레벨 오른 것. 나름 좋은 경험이 뒤얐다는 느낌이다. 작은 성취감을 느꼈달까나?


특별기획된 관광열차인지라 역무원들의 환영모습도 특~별~ 마루마루노 하나시에서 하나시는 각각 출발역인 하기, 중간역인 나가토, 종착역인 시모노세키(물론 나는 그 반대로 이동)의 머릿글자를 따서 하나시가 된 것. 마루마루도 사연이 있었는디 까묵었다. 현수막에 그려진 것들은 이 라인선상 지역의 특산물인 도미, 쭈꾸미, 복어, 밀감. 하나도 못 먹었다...


열차가 들어온다. 앞서 올린 사진들과 같은 똥차에 화장... 아니 페인팅만 그럴싸하게 허구 내부 인테리어 그럴싸하게 바꾼 것. 똥차라곤 하지만, 꼼꼼한 일본답게 관리상태는 당연히 좋다. 뭐니뭐니해도 철도운용의 기술적 능력면에선 한국은 일본의 상대가 안된다. 한국도 꽤 고레벨이지만 이 분야에선 일본이 갑인지라... 독일 미국 다 일본한테 안된다.


자 올라타 볼까나~


일본스러운 장식물들


나가 앉을 자리인데... 좁다! 너무 좁아! 178에 100인 내 방뎅이가 꽉 끼어서 앉아있기 힘들 정도.니가 비대한거란 생각은 안드냐 그나마 문간 바로 옆이라 시야도 안 트이고... 다행히도 내 옆자리에 앉은 토인행님이 멀리도 아니고 무려 다음역인 하타부에서 내려주더라. 관광열차라지만 요금이 특별히 다른 것도 아니고 일반열차와 운행자체는 기본적으로 같기에, 시간만 맞으면 현지인들이 그냥 교통수단으로 이용허는 경우도 있는디, 이 행님이 그런 행님이었던 것 같다. 그 자리도 좁기는 마찬가지지만 시야는 넓었거든. 그랴서, 냉큼 옆자리로 옮겨앉아 산음본선과 일본해의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열차내부으 모습. 달려가는 동안 바닷가의 모습은 이 사진기준으로 오른쪽에 전부 펼쳐진다. 당연히 나으 자리도 그 쪽 창가자리. 사진에 보이는 자리들이 더 편해보이긴 한다만, 여행은 잘 보이는 자리가 편한 자리 아니겠는가?


하기는 도자기가 또 유명한 곳이다. 하기의 명 장인들이 만든 궁극의 도자기들이 일본의 마음을 담아 전시되어 있는 모습. 열차에서 기념품으로 쫌금 작지만 하나 주더라. 이래저래 땡잡은 열차행. 이게 또 운이 좋았던 게, 주말에만 운행하는 열차였다 마루마루노 하나시는. 이 날이 토요일이기에 이용할 수 있었던 것.


앞칸으로 이어지는 모습. 나가 탄곳은 和실, 일본식 열차이고 앞칸은 洋실 서양식 칸이다. 저 칸에서는 음료와 간식도 팔던디 풍경보는데 정신팔려서 사먹을 틈이 읎었다.


이제 두 번째 따쉬락을 깔 시간. 고등어초회는 그 존재를 알게 된 이후로 가장 좋아하는 회 중 하나. 당연히 하나 사서 탑승. 기찻간에서 먹는 따쉬락만큼 맛나는 것이 있을까? 하물며 그게 고등어 초회인데야! 달리는 중에 먹는 게 더 로망스럽지만, 달리는 중에는 풍경을 1초도 놓지치 않고 보고 싶은지라, 일부러 출발전에 까서 묵어부럿다.



드디어 출발~ 나가 과문헌지라 깃발들고 열심히 환송하는 문화의 근원을 확실히 안다고는 말 못하긋는디... 아무래도 저것은 일본이 수 많은 섬의 나라인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섬이란 것은 배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곳이다. 그렇기에 드나드는 배는 섬의 대동맥과도 같은 것. 당연히 배가 드나드는 일은 엄청나게 중요한 일인데, 바다란 곳은 예나 지금이나 음청시리 위험한 곳 아닌가. 그러다봉께 배가 무사히 드나들기를 바라는 島人시마진의 마음은 간절한 것이었고, 그렇기에 배가 드나들 때의 환영이랄까 의식같은 것은 굉장히 진지하면서도 열정적이다. 디씨에서 오가사와라 여행기, 북해도 레분섬 여행기를 봤는데, 거기에서 출항할 때 시마진들이 환송행사하는 모습보고 지젼 감동먹어서 실시간으로 눈물 줄줄 흘리며 봤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코끝이 찡허다.


해당 내용이 투고된 여행기는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travel_japan&no=485821&page=1&search_pos=-472366&s_type=search_name&s_keyword=heeeeya

이 포스팅이고



이게 영상이다. 한번 꼭들 보시라. 진짜 감동적이다...
아 씨바 또 눈물나네...ㅜㅜ
나중에 레분섬 꼭 가야지...


공항에서 항공기가 이륙할 때 지상요원들도 저렇게까지는 아니지만 도열해서 손을 들어 배웅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난다. 떠나는 것에 대한 환송이야 일반적인 일이겠다만... 저런 모습은 뭔가 쫌금은 특별한 느낌이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든다. 마루마루노 하나시를 보내는 사람들도 저렇게까지 간절하진 않겠지만, 저러한 일본의 마음을 갖고 환송했겠지.


그러한 환송을 받으며 하기를 향해 출발혔다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자 슬슬 일본을 향해 떠날 시간이 다가온다. 붓싼 구경을 마치고 여객터미널로 돌아와 다시 한번 하마유호를 찍어 봄. 전체 샷 잡은 게 하나 더 있었네잉.


북항대교와 영도으 모습. 흐릿해서 사진빨은 잘 안 나오지만 그랴도 석양이 슬쩍 배경에 깔리니 그럭저럭 볼만한 풍경. 그렇지만 이 사진을 올린 진짜 이유는, 잠시 후 펼쳐질, 야경과 비교해보시라고 올리는 것.


가방들이 줄 서 있는 모습. 저 문을 들어서면 이제 당신은 한국도 일본도 아닌 곳으로 가는 이계의 문으로 들어서는거야!


낮에 잠깐 들러서 몇가지 문의를 하고 갈 때는 사람이 하나두 없다시피 혔는디, 지금은 사람이 많다. 정원 560명인 하마유호가 출항하기 직전이기두 하거니와, 그 한 시간 뒤에는 역시 비슷한 규모를 자랑허는, 후쿠오카로 가는 뉴 카멜리아 호도 출항하기 때문일게다.


이계의 문으로 들어왔다. 사진에 찍힌 작은 배는 2016년에 후쿠오카로 갈 때 탑승혔던 비틀호. 오랜만에 반가워서 찍어봄. 요~ 히사시부리~~


나가 찍고 싶었던 것은 이 앵글이지라. 근디, 일단 창문이 가로막아 제대로 찍을수도 없었거니와, 이 탑승통로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 제지하더라. 그래서 제대로 못 찍음.


그나마 카메라를 유리창에 딱 붙히고 찍어 잘 나온편인 사진. 확실히... 2만톤에 육박하는 배는 크다... 뒷문을 열고 차량과 화물을 적재하는 배들과 달리 하마유와 성희는 저렇게 앞 사이드에 달린 문을 통해 적재하더라. 항해하다가 저 문 열리면 다들 물고기밥 되는거야


배에 올라타니 이런 게 있더라. 이러니 저러니해도 조립식... 프라모델은 숫놈으 로망이제. 중학교 이후로 하나도 못 혀보긴 혔다만, 루리웹 같은데 프라모델 올라오믄 흐뭇하게 보곤 헌다. 나 어릴땐 다 조립식이라 그랬다.


모두가 짐 푸느라 분주한 동안에 어차피 짐이라곤 꼴랑 가방쨩 하나인 나는 침상에 가방 떤져놓고 갑판으로 나왔다. 갑판. 아 뭔가 로망이 넘치는 이름 아니냐. 여행은 배고 배는 갑판이지.


붓싼항 여객터미널과 인근 야경. 아까 봤던 비틀호가 쫌금 더 잘 보임.


으미 무셔라. 공포증,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확실히 나는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거 같음. 하물며 시꺼먼 바다으 심연이 나으 심연을 빨아들이려 함에야.


영도, 북항대교로 이어지는 야경으 모습. 뭔가 참 괜찮은디, 사진으론 잘 안 전해지네잉.




그래서 영상으로 찍어봤습니다. 근데 더 잘 전해지는지는 모르겠다잉. 배경음은 잠시후 현해탄 바다를 짓쳐나가기 위해 몸 풀고 있는 하마유호의 5만마력 엔진음.


침몰하면 형님만 믿겠슙니다 굽신굽신


나가 탄 하마유호 뒤에서 역시 출항준비허구 있는 뉴 카멜리아호.


기계의 심장은 기관이고 기관의 상징은 굴뚝 아니것는가. 배가 움직인다, 라는 것을 사람들이 시각화한다면 그 상징은 단연 굴뚝일 것이다. 열심히 대기오염물질을 내 뿜고 있으시는 중이다. 굴뚝에서 배출되는 연기가 또 나름 장엄하야 영상을 찍었는디, 육안으로는 보이던 게 영상에선 안 보여서 안 올랴줌.


선박의 후미에서 전두부를 바라보믄 이런 느낌. 오른쪽은 여객터미널에서 배에 올라타는 탑승구


선박으 객들이 오갈 수 있는 공간은 3개층으루 뒤야있구, 외부에서 객들이 오갈 수 있는 갑판도 3개층이다. 층이 올라갈 때마다 쫌금 더 잘 보이는 뉴 카멜리아호. 원체 큰 배라는 것으 존재감을 좋아허는지라 마구마구 찍기두 혔구, 실질적으로는 나가 타고 있는 배는 못 찍는거나 마찬가지잖여. 그랴서, 일종으 대리만족으로 비슷한 크기와 형태으 뉴 카멜리아를 많이 찍기두 혔다. 하마유라고 생각허구 봐 달랑께요.


영도 북항대교 야경이다. 스바라시... 그러나, 이 것은 시작에 불과허다.


닝겐에게 허용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갈 차례...


위엄찬 굴뚝이 맞아준다. 기관앞에 선 인간이란, 얼마나 초라헌가...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본 하마유... 아니 뉴 카멜리아의 모습


로고는 날치를 형상화헌 거 같다. 사진이 흔들려 죄송허다.


구명뽀트 못 타믄 형님만 믿겠슙니다 굽신굽신.


보트 위에서 보트를 바라보는 모습. 진짜 암온어 보트다. 쟈들은 대략 300톤, 나가 타고 있는 보트는 1만 6천톤...


부산항 야경은 그 자체로 훌륭허지만 북항대교가 그 야경으 중심을 지키며 더 돋보이게 해 준다. 사진처럼 색깔도 바꿔준다.


왜 그런거 있지 않은가. 열차를 타면 탈선사고를 겪어보고 싶고 배를 타면 침몰사고를 겪어보고 싶고 항공기를 타면 추락사고를 겪어보고 싶... 이건 좀 아니군. 겸사겸사 일본에 가는 김에 지진 화산도 좀 겪어보고 싶었는데, 지진이 나지 않은 것은 이번 여행의 옥의 티였다.


느끼시라 존재감을. 자꾸 츄라이 츄라이 하는 것은 양이들이 고기를 김치에 싸 먹는 맛을 몰라서... 사실 내가 좋아서다.


1조 5천억달러 지디피의 경제대국인 한국 산업의 분출구인 붓싼을 수호하는 크레인들의 모습.


닝겐이 갈 수 있는 최상단 갑판에서 전체적으로 찍어봄. 공간감을 느껴보시라구. 솔까 1만톤 넘는 배를 타볼 일이 생전 없는 사람이 대부분 아니겠능가?


배 가운데에는 이런 회전계단이 있어 1~3층간 통행이 가능허다.


낯선 천장이다...

나는 이세계로 떠난다...


현실은 저 가방이나 나나 비슷한 취급. 사람 하나 딱 들어갈 만한 작은 침상이 앞으로 9시간 동안 나에게 허락된 공간일 뿐. 키가 190이상인 사람은 여기서 바로 누워 잘 수는 없겠더라. 178인 나도 좀 빡빡혔다. 빡빡하구만.


달이 휘영청 떴더라. 잘 찍어볼라구 줌을 땡겼더니 구름속으로 숨어버림. 깍쟁이 같으니라구.


웅장한 뉴 카멜리아와 휘황찬란한 북항대교으 미경을 아랑곳않고 선원들이 선상반란... 아니 출항을 준비하는 모습.


또 한번 츄라이.


잘 있거라 부산항아 다시보자 부산역아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저는 헬조센에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일본을 찾아 떠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오오~~~

https://www.youtube.com/watch?v=0n2ItsCmLtw


진짜 떠난다 으아, 글 쓰고 있는 지금도 코끝이 찡해진다...


드론이란게 이래서 획기적인 발명품 같다. 드론 하나 있었다믄 나가 타고 있는 하마유가 떠나는 모습을 찍을 수 있었을텡게. 카멜리아쨩 우리는 먼저 갑니다. 카멜리아쨩도 후쿠오카까지 잘 가용~


같은 풍경이지만 출발한 배 위에서 찍었으니 다른 풍경임. 서 있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지는거야.


카멜리아호의 전체모습. 이제 더 이상은 카멜리아를 츄라이할 수 없다.



출항.avi 과질. 여초에서는 고화질을 과질이라 그러더라. 사스가 여초으 쏀쓰...


한국경제의 수호거신들의 모습. 신사하나 놓아드려야 하지 않을까.


자성대에서 감만부두에 이르는 모습. 이 휘황찬란한 모습이 붓싼항으 극히 일부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에서 그나마 붓싼과 비교할만한 항구는 고베항 정도였는데, 95년 고베 대 지진 이후 몰락하다시피 혔다. 지금 일본에는 붓싼과 비교할만한 물동량으 항구는 없다. 다만, 여러 항구가 나누어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긴 허다만. 경제가 3배인데 물동량 자체가 적을리는 읎지.


배가 출항허니 조선토인들이 우르르 몰려나온 모습. 이제 일본에 가서 일본토인들을 구경혀야제. 그 와중에 구름이 걷혀 달이 쫌금 보인다. 달님, 여행을 굽어 살피사, 배도 침몰시켜주고 일본가면 지진나게 해 주세요.


지금 글 쓰는 중에 쫌금 고민이 되는게... 이거 노무 긴거 아닌가 싶다... 근데 꼴랑 출항 갖고 짜르자니 그것두 애매허구... 어차피 나 꼴릴라고 쓰는 목적이 독자 편으성보다 우선인 고로 그냥 길게 가자. 말이 너무 많군.


선상에서 제대로 잡은 북항대교 모습인데 사진이 흔들렸... 흔들림 보정 카메라 같은 것두 있나보던디, 나는 거지라 그런거 몬산다.


달 좋고~


안녕~ 9일날 다시 만나용~


영도와 북항대교 모습. 이  북항대교야말로 부산항의 관문이 아닐까.




썸네일만봐도 꽤 꼴릴 거 같긴 허다만, 영상보는 거 안 좋아하시는 분들도 이 영상은 꼭 보시라. 이왕이면 풀 스크린으로.
이번화의 심장이자 핵심이자 이것만 보면 이번화는 다 보는거다. 한 밤중에 빛나는 북항대교를 여객선을 타고 지나는 거 이거 진짜 훌륭함. 여행에 대해 갖고 있던 일말의 주저함을 깨끗이 날리고, 온전히 여행의 즐거움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명백히 이 순간부터다.


아... 너무 잘 생겼다...


배의 갑판구조가 쫌금 꼬여있어서, 갑판 맨 앞에 나오는 방법을 몰라 가운데에서만 계속 사진을 찍었는디, 어케 길을 찾았다. 일단 이 녀석이 존재감을 발휘하기에 찍어 봄.


총원! 전속전진!

아쉽게도 막혀있어서 타이타닉으 그 장면은 찍지 못했다.혼자서 무슨 추한꼴을 연출할라고


부산항은 빛난다. 감만부두에서 신선대부두로 이어지는 모습


밤이 아니었다믄 사진 오른쪽에 오륙도가 보였을 듯. 반짝이는 불빛들이 오륙도 등대일 거 같긴 허다만.


우리배 북항대교 감만부두. 오늘의 모습들의 요약샷이랄까나.


하마유호의 대본영의 모습. 조타실은 원래 불을 안 키나보다. 그렇긴 혀야헐 게, 밖의 빛이 잘 보여야 할테니깐. 시모노세키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굽신굽신.


소형컨테이너선이 화물을 부리는 모습. 진짜 대형컨테이너선 들은 강서의 부산신항쪽에들 있겠지.


뵈는 것도 없는 사진을 올린 이유는 저 녹색과 적색의 점멸등 때문에. 꺼졌다 켜졌다, 허는디, 저게 붓싼항에서 외해로 나가는 수로의 안내등이 아닌가 싶어서다. 딱 저 가운데로 통과하더라. 그니까, 저그를 지나믄 그 때부터는 이제 진짜 부산항 밖으로 나간다는 말이 되는 것. 심미적으로는야 북항대교 밑을 지나는 순간이 붓싼을 떠나는 순간이지만, 기술적으로는 바로 저기부터가, 진짜 부산을 떠나는 순간인 것이랄까나.


달이... 아름답군요.

들어줄 사람은 없다. 흙흙...ㅜㅜ


이젠 북항대교도 멀리 보인다. 이 사진도 줌을 꽤 땡긴거임. 근데 저 녹색등 두 개는 뭐지... 그 때는 간파혔을것두 같은디 지금은 기억 안난다.


의도는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거함이 일으키는 물보라를 보여주는 것이었는디 조명과 화질과 스킬상 이게 한계. 그냥 참가... 아니 투고에 의의를.


줌 안 땡기고 보면 이 정도 거리다. 육지에서 멀어진다는 게 실감난다. 글구 이 쯤되니 파도도 외해의 파도인데다 배도 전속항주중이라 상당히 흔들리더라. 사진을 찍을라면 다리에 꽤나 힘 주고 서서 난간에 기대어야 찍을 수 있을 정도였다.


글구보면 붓싼에는 ~~대 이런 지명이 많다. 글구 그 곳들은 하나같이 바닷가의 돌출된 반도지역이다. 태종대, 신선대, 이기대, 해운대. 글구 그게 바로 이 붓싼항을 중심으로 쪼로록 늘어서 있구. 저러한 형태의 지형을 ~~臺라고 부르는 모양임. 여기부터 사진은 그걸 찍은건데, 캐머러가 파노라마 기능이 없는건지 쓸 줄 모르는건지 하튼 한 샷에 다 안 담겨서 나눠 찍었다. 이 사진으 맨 왼쪽 어두컴컴한강북부분이 태종대다. 인가도 공장도 부두도 근처에 없으니 이 시간엔 어두컴컴... 가운데의 시커먼 부분은 ~~대는 아니고 부산해양대학교가 있는 조도라는 섬이다. 그 바로 옆에 흐릿허게 북항대교가 보이고 사진 오른쪽이 대략 신선대다. 신선대는 지금은 완전히 부산 북항의 부두가 된지라, ~~대 로서으 면모는 많이 빛이 바래긴 했다만.


이 사진은 또 다른 가치가 있는 사진. 사진 맨 왼쪽에, 이 포스팅에서 뻔질나게 본 북항대교가 얼핏 보일 것이다. 글구 사진으 가운데에서 쫌금 오른쪽에 보이는 빛의 띠의 부분은... 그 등킨드나쓰로 유명한 강알리 강알대교... 광안대교이다. 붓싼을 상징하는 두 다리가 한 샷에 잡힌 것이랄까나. 물론 거가대교도 남항대교도 있다만, 붓싼으 관광뽀인뜨 스러운 것은 북항대교와 광안대교이긴 헌지라.


각설하고

사진의 중앙 왼쪽이 위에 말한 신선대이고 거으 한 가운데가 경관을 개 박살내고 있어 짜증나는 SK오륙도뷰아파트, 그 바로 오른쪽이 이기대이다. 이기대의 바로 오른쪽이 광안대교. 광안대교는 이기대에서부터 센틈시티... 센텀시티를 넘어 해운대로 이어지는 핵심교통로.


윗 사진과 많이 겹치는디, 이 사진으 한 가운데쯤이 광안대교라 보믄 된다. 오른쪽으로 치우친 부분이 해운대... 이면 좋겠지만 거기는 동백섬이다. 2001년 APEC 회의를 했던 곳의 유적도 남아있음.


강알대교... 아니 광안대교의 줌샷. 이빠이 줌을 땡긴데다 한밤중이고 흔들리는 선상이니 화질은 양해를. 선상에서 이렇게 잡는게 쉬운 일은 아니... 기는 개뿔 해운대 광안리 유람선 타고 찍으면 된다. 타본적은 읎다만. 원래 기대한 것은 하마유호가 강알리와 해운대 앞을 지나서 일본으로 향하길 바랬는디, 그러지는 않구 그대로 공해상으로 직진해 나가더라. 어디서 보니까, 그 앞으로 지나가는 이벤트항해를 하긴 한다고 하더라만, 그게 걸릴만큼 운이 좋진 몬혔음.


이 사진의 맨 오른쪽이 해운대다. 해운대라면 다들 해수욕장을 생각허는디, 정확히는 그 해운대 해수욕장 동쪽의 고개가 해운대인 것. 지금은 거기도 현대 아파트가 들어가서 경관을 다 망쳤다. 아파트 작작좀 쳐 지어대지.


하여튼 붓싼이 이렇게 거대허다. 야경으 규모로만 본다믄 이만한 항구는 세계에도 흔치 않지 않을까 싶기두.


이 사진으 강알대교는 쫌금 더 잘 나왔네 ㅎㅎ


원래는 이게 마지막 샷이 될 게 아니었다. 야경이 노무 인상깊어서, 붓싼이 보이지 않을 때 까지 갑판에서 야경을 구경하며 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안전상으 이유로 22시 이후로는 갑판에 나가 있을 수 읎다더라. 그랴서 여기까정 보고 선실로 들어가야 혔다. 그런 관계로 마지막 기념 풀샷 한방.


달님도 안녕~


이제 들어가 잘 시간이다. 이 뒤로야 드러누워 잤으니 찍고 자시고 할 것도 없... 는데 이게 잠을 못 이뤘다. 사실 당초 걱정혔던건 멀미였다. 전에 후쿠오카로 갈 때는 쾌속선이라 3시간이내에 도착이니 멀미가 나도 괜찮으려니, 하고 탔고 멀미 자체도 별로 나지 않았다. 이번엔 9시간이라는 장시간이지만 그랴두 큰배이니 쫌금 덜 흔들리겠지, 하고 그냥 탔는데... 이게 크게 흔들리지는 않는데 엄청 깊게 흔들리는거다. 그니까, 느리~~잇한 속도로 스으~~윽 가라앉았다가 같은 느낌으로 스으~윽 올라오기를 반복허는거다. 어라 이거 생각보다 흔들리네? 좆된거 아냐, 하고 긴장혔는디... 다행히 멀미가 나지는 않더라. 글구 멀미가 나지 않을거라는 안도감이 생기고 나니까, 그 리드미컬한 흔들림이 되게 재밌게 느껴졌다. 당연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이가 천천히 흔들리는 요람에 들어가 있으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하는 느낌? 그 우아하고 품위있는 흔들림을 느끼며 잠 들려 혔는디...


잠이 안온다! 갈증이 심한 것도 아니고 피로함이 없는 것도 아닌데, 잠이 안 오는거다... 그랴서 꼴랑 두 시간 밖에 몬 잤다. 글구 이 수면부족이 내지에서으 첫 날의 대파국... 까지는 아니고 소파국에 악영향을 미쳤달까나 싶다. 느긋한 흔들림이 잠을 촉진해줄 줄 알았는데, 그게 기분이 좋다보니 오히려 각성이라도 되어버린 것일지도... 라기엔 돌아올 때는 잘 잤는데... 그 때는 진짜 피곤해 죽을거 같은 상태였으니 당연한건가...


하여튼 이렇게 부산을 떠나 일본으로 향했다.


깊은 어둠속으로... 침잠해 간다...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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