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매니아... 라고 까지 하기엔 자격미달이 한량없지만, 하튼 매니아으 말석을 자처할 수는 있다, 하는 처지에서 오랜 숙원이 하나 있었는디...


 전국시대야 기라성같은 호걸용장재사들이 넘쳐흘렀던 시대이지만, 그 여러 세력들 중에서도 세력단위로서 가장 좋아하는 가문은 호조가문이다. 이건 나의 어떠한 성향의 표현인 것 같은데, 나는 현대세계를 논함에 있어서도 GDP기준으로 세력을 따지는 것을 좋아하고 현대든 근대든 GDP 갖고 노는 걸 좋아한다. 앵거스 메디슨은 참고만 하는게 좋다고 생각허지만.


근디, 전근대에 그런 믓찐 개념이 대대적으로 통용되던 훈늉한 사회가 있으니, 그거이 바로 일본 되시긋다. 일본 중세 근세(솔까 이 근세개념 맘에 안들지만)시대, 일본에서 경제력을 따지던 기준은 석고라는 개념이었다. 한국의 석이 대략 80, 혹은 100킬로그램 정도의 쌀중량으로서 정확히 되어있는데 비해, 일본의 석 이라는 개념은 그렇게 명확하진 않은걸루 안다. 이런거 알기 위해서라두 일본어는 배워야 허구, 그려서 일본어 원문을 읽을 수 있어야 허는디... 다른 주제 같다면 귀찮아서 안함, 이지만, 이 것만은 다르다. 나는 대일본제국으 황국신민잉께, 일본어을 익혀서 야마토 다마시를 갈고 닦어야 허는 것이니깐.

하튼, 생산량을 모종의 기준으로 석 이라는 단위로 환산하고, 이걸 영주의 소령별로, 나아가 각 지역의 국별로 환산하여 비교를 하곤 헌다. 이를테면 오와리국은 51만석, 미노국은 40만석이고, 미노국에서도 예를 들면 후와 미츠하루 같은 경우는 후와군 3만 5천석 이런 식으로. 물론 모리가문처럼 여러 나라를 다스리는 번주의 경우는 주고쿠 9국 120만석 이런 식.


각설하고, 저 석고란 개념, 그냥 GDP 아닌가? GRDP라고 태클걸 우매한 이들을 위해 일침을 가해두자면 당당히 사가미 "국" 무사시 "국" 오와리 "국" 의 GDP이니 GRDP가 아니랑께. 농담만은 아닌게, 에도막부가 일본을 스베떼하고 우에의 자리를 차지했지만, 그 당시에도 에도막부가 직할하는 것은 천령 4백만석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직할의 기본들에게 역시 근 4백만석을 주어서 실질적으로 8백만석을 통할하긴 혔지만, 하튼 막부으 석고는 4백만인 것이다. 그러니, 번별로 석고를 내어 GDP라 하는게 무리가 아니게 되는, 알면 알수록 요지경인 일본역사의 성격에 맞는 드립이 되는 것이다.


이 쯤에서 보고가는 일본 전국시대 지도. 이 지도를 좋아허는게, 오늘날의 현경계를 실선, 전근대시대의 국경계를 점선으로 해 놓아 변천을 비교하기 좋게 해 놓은 때문이다. 전국시대에 관심있는 당신을 위한 잇 아이템. 한자로 써있는게 오늘날의 현 이름이고, 한글로 쓰여있는게 전근대시대의 국 이름이다.



아 이야기 엄청도네. 각설하고, 하튼 호조가문을 좋아하는 이유가, 전국시대 군웅들중에 석고가 짱짱맨이었기 때문이다. 개조 호조 소운이 이마가와령을 떠날때는 불과 3천으 병력을 이끌고 떠났으나, 간악한 히데요시의 비겁한 총동원으로 비련의 불꽃속에 관동 호조령이 무너져갈 무렵에는 무려 250만석의 대제국을 이루었던 것이다...


사실, 전국시대의 석이라는 것은 대략 1인이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산출량 정도의 개념에 가깝다. 그렇기에, 1석이면 인구가 1인이라고 보면 우악스럽지만 아주 틀리지는 않는 것. 그러니까, 호조령은 대충 250만명 정도의 인구였달까나. 오늘날로 치믄 가나가와 켄, 동경도, 사이타마 켄, 군마 켄의 거의 전역과, 도치키 켄 서남부, 지바 켄 중북부 대부분, 시즈오카 켄 동부지역으로서 대충 2만에서 3만 제곱킬로미터 정도 될테지. 아마 조선으로 친다믄 경기와 충청 전체를 합친 것과 비슷한 영토, 인구였을게다. 애개 존만이 아니여~ 랄 분들이 있긋지만...


전국시대에선 이 호조가문이 최대세력이다. 물론 오다보다는 작지만... 심지어 오다를 계승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220만석이었기 땀시, 호조가문은 일단 도요토미 본가보다도 세력이 더 컸던거다. 전국시대 모노가타리들은 대개 천하인 3대장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3대장에 맞먹을 만한 인기를 누리는 게 다케다, 우에스기 정도. 그 외에는 다테 시마즈 모리 정도가 언급되는 정도랄까나. 근데 천하인 3대장중 히데요시는 애초에 전국시대 대부분 시기에 다이묘가 아니었기 땀시, 논외이고, 오다는 동남아시아에서 싱가포르 수준으로 신계니까 논외라 치면, 언급되는 세력들 중에 최대가 모리가문의 120만석 정도이다. 그런데 호조는 250만석! 가히 관동대제국이라 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나는 전국시대를 고등학교 때 대망을 읽는 것으로 입문혔는디... 보면 이야기 중반까지는 동해도와 기내에서 아웅다웅하는게 전부다. 이에야스으 활동무대가 거기니까. 그런데 이 동네에선 오다빼고(앞으로 이 말 안한다) 제일 크대봐야 다케다 신겐이 100만석이 될까 말까 한 정도. 아사이 아사쿠라 이런 애들은 30만 40만석 이렇고, 이에야스도 동해도 3국을 제패하기 이전엔 기껏해야 60~70만석이다. 그나마도 미카타가하라에서 박살난 이후에는 다케다측에 넘어간 땅이 많아 50만석이나 되었을런지. 그런데, 소설의 중반쯤에, 드디어 히데요시의 관동출병에서 호조가문이 안타깝게도 패배하고 히데요시는 이에야스를 엿먹이기 위해, 이에야스의 마쓰다이라 당이 대대로 다스려온 동해도에서 관동으로 옮기라고 지시를 하게 된다. 근데, 그 때 나온 석고


250만


띠요오오옹~~ 이거 실화냐? 라는 생각이 절로드는 초거대석고가 아닌가. 100만석이면 내로라 하며 떵떵거리는 줄 알았는데, 이야기에 한번 나오지도 않던 관동땅에 250만석의 초거대 제국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충격은 노올라운 것이었다. 나가 호조가문에 뻑가기 시작한 게 이 무렵인디... 아마 지금의 GDP 성애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물론, GDP라는 개념을 갖고 논건 중학교때 사회과 부도보면서 부터지만.


호조가문의 관동제패 일대기

색깔별로 초대 소운, 2대 우지쓰나, 3대 우지야스(이 분이 혼모노임), 4대 우지마사의 영토확장을 표시한 것이다

5대 우지나오도 있는디, 이 때는 일본정치체제의 본질인 흑막정치를 하시려고 우지마사가 가독만 물려주고

자기가 다 하던 시점이라 우지마사 우지나오는 같은 시기로 취급한것이다.

말 그대로 이바라키와 도치키만 빼고 관동을 제패했으며, 도치키의 유우키 가문등은 상당부분 호조에 복속상태, 히타치에서 골목대장 하던 사타케 가문은 우지마사 대에 이르러 호조와 제대로 붙기 시작하면서 탈탈 털리던 시점이었다.

히데요시가 5년만 늦게 왔어도 관동은 통일되었을 것이고 진정한 관동대제국이 세워졌을 것이거늘...ㅠㅠ



첨언해두자믄, 관동전봉 이전 이에야스으 영지는 동해도 삼주인 미카와 스루가 도토미에, 구 다케다령인 카이국과 시나노국 남부 대부분을 차지하여 대략 150만석 안팎이다. 100만석이나 늘려준다는데 이게 왜 엿먹이는 거냐? 사실 대망을 읽던 당시엔 잘 몰랐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호조가문이 전국시대 제일의 민정가였다는 것이다. 신장의 야망을 해 봐도 다케다 우에스기의 기마, 오다 다테 시마즈의 철포, 모리의 수군 이런 격으로 나오는게 호조의 내정이다. 호조가문은 질이 떨어져도 압도적 경제력으로 압도적 쪽수로 밀고 나오는 컨셉의 가문인 것. 실제로, 오다 사후 호조가문과 이에야스가 오다의 구령을 놓고 갈등한 적이 있는디, 이 때 이에야스가 1만 5천의 병력을 출동시킨데 비해 호조가문은 무려 5만 5천명을 출동시키기도 혔다. 그것도, 히타치에서는 사타케 가문과, 아와에서는 사토미 가문과 대치하는 와중에도 말이다. 물론 이에야스의 미카와병이 유수의 강병인데다, 이에야스는 야전만큼이나 조략에도 능한 양반이라, 세력의 열세에도 오히려 이익을 본 것은 이에야스였지만 말이다. 하튼 그렇기에, 호조가문을 지지하는 토착여론이 메우 강했던 바, 이에야스가 어지간히 내정을 잘하지 않고서는 호조에 비해 못하다고 여겨져 인심을 잃고, 거대한 관동의 습지대에 발목이 푹푹 빠지리라는 사루의 얕은 계산으로 전봉시켰던 것이고, 이것이 톡톡한 오산이었음을 역사는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각설하고, 하튼 그 때의 노올라움은 나으 전국시대 취미의 레일을 깔었고, 지금까정 그 레일 위에서 달리고 있다. 제일 좋아하는 가문은 호조가문, 제일 좋아하는 지역은 관동.


아, 이제사 본론인디... 근데 한국웹을 뒤지다보믄 이 관동에 대해 설명이랍시고 혀 놓은게, 무려


"세키가하라의 동쪽"


이라는 개말법적인 설명이다. 아니 세키가하라 동쪽은 미노 오와리 이세 - 줄여서 노미세라고 부르는 다른 지역이고 그 동쪽에서도 동남쪽은 동해도, 동북쪽은 카이의 갑, 시나노의 신, 에치고의 월 을 딴 갑신월 - 고신에쓰라 부르는 지역이며 거기를 넘어 후지산을 지나야 관동인디, 이게 무슨 망발이다요? 실로 어이가 없던 일이었다만, 꽤 오랫동안 나가 이걸 검증해볼 생각을 안했었다. 무려 킹무갓키에도 수 년간 이렇게 쓰여 있던 것.


오늘도 꼐임하다가 지쳐서 쉬려고 갓키질을 허다가 또 관동 항목에 마우스 포인터가 닿았고... 그 맘에 안드는 설명이 또 머리에 떡 하니 붙어 있었다. 왠지 오늘은 뭔가가 나으 게으름 본능을 뚝 끊어버리고 튀어나왔다. 내 이걸 함 뒤져봐야쓰겄다, 라는. 일단 한국어 능력에 비하면 2%도 안되지만, 그래도 세컨 랭귀지가 영어이니 영문위키를 뒤져봤다. 올커니, 내 맘에 드는 구절이 나왔다. 하코네의 동쪽이라는 것이다.


하코네의 위치를 남자의 색깔 핑크로 강조하여 표시해보았다.



근디, 그것만으론 부족헌데다, 어찌 야마토의 일을 양이들이 논한단 말인가. 그랴서... 한국어 능력에 비하면 1%도 안되지만, 그랴도 서드 랭귀지인 일본어로서 일문위키를 뒤져보았다.


관동지방이란 항목으로 들어가보니, 오늘날으 관동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는디... 그 말미에 관동 이란 항목이 따로 있었고, 여기서 보물을 찾을 수 있었다.


https://ja.wikipedia.org/wiki/%E9%96%A2%E6%9D%B1

일어 되는 분들은 가서 보시라. 난 일어는 거으 안되지만 한자가 쫌금 뒤야서... 글구 어차피 다들 구글번역기 돌릴거잖아?


관동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672년의 임신의 난에서 기인한다. 대란을 겪고 혼비백산한 아스카의 조정에서는 아스카의 방어를 위해 삼 개의 관을 세우니... 관 삼대장의 이름은 후와 관 - 不破関(ふわのせき) 스즈카 관 - 鈴鹿関(すずかのせき) 아라치 관 - 愛発関(あらちのせき) 이라 한다.


세 관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

사실 세키가하라 동쪽이란 말이 근원에선 틀린 건 아닌 게, 저 후와관이 딱 세키가하라의 위치다.



이 삼관을 세우고 그 동쪽을 관동이라 일컫기 시작한 거이가 관동이란 칭호의 유래이다. 그니까 오늘날으 관동과는 전혀 다르며... 일부 불학자들이 세키가하라 동쪽이라고 한다라는 것은 이 시기의 개념을 여과없이 그냥 써갈겨 댄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 중간에 과정들이 쫌금 더 있던디, 나으 목적은 그게 아니니 스킵허구... 오늘날의 관동개념과 유사해진 것은 무로마치 막부 시기에 관동을 통할하기 위한 기구로서 가마쿠라 공방이 세워지면서의 일이다. 이 시기 공방은 물론, 이즈국 카이국과 동북지방까지도 관할했다고는 하지만, 거기엔 따른 공방들이 있기도 혔구헌지라, 딱 오늘날의 1도 6현에 해당하는

사가미국, 무사시국, 시모사국, 고즈케국, 시모즈케국, 가즈사국, 아와국, 히타치국(순서는 호조가문의 진출순 므흣~)


이 8국이 핵심관할지가 되었다. 그리고 이야말로 그 이름도 찬란한


관동 8주


인 것이다. 이 관동 8주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왜 그렇게 멋지게 느꼈는지 모르겠다. 나가 세키가하라 동쪽운운하는 기술을 증말 맘에 안 들어한 것도, 그러면 관동 8주하고 너무 다르잖아! 라는데에서 온 불만이기도 했구.

우리가 아는 관동은 대충 이렇게 성립된 것이다. 저 위에 영문위키에서 하코네의 동쪽이라고 혔는디, 그건 에도시대의 개념으로 보인다. 일본은 주요 가도마다 관소를 세워서 치안과 경제활동에 사용했고, 동해도에서 관동으로 들어갈 때 꼭 지나야 하는 길목이 하코네이다. 윗 지도를 보면 잘 알 수 있을 터. 산으로 둘러쌓인 사이에 한줄기 길이 놓여있다. 당연히 여기에는 관소가 있었고, 따라서 하코네의 관소 동쪽이 에도시대 이래의 관동이 된 것이다. 양이들이 이런 동양으 심오한 역사를 이해하기 어려우니 저런 단순한 서술로 끝났던 것. 그랴도 양이 치고는 기특한 거 인정.(아마도 영어능력이 있는 일본인이 썼을 가능성이 더 높긴 허지만, 어차피 비슷헌 게 저 과정을 영어로 쓰려고 해봐라. 일어 영어 2중언어능룍짜라도 빡칠 것)


이러한 전차를 오늘 드디어 킹무갓키에 투고하는 데 성공하였다. 킹무갓키가 존마니 꼬꼬마들이 엄한 내용으로 바꾸거나 과거 내용으로 롤백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무려 일어위키를 참조하여 썼다는 데 감히 누가 개기리. 이제 앞으로 킹무갓키로 관동을 배우는 사람들은 진정한 관동인 관동 8주의 역사를 알 수 있게 뒤얐다. 어찌 뿌듯하지 않으리. 아울러, 오랫동안 더렵혀져 온 관동의 패자 호조가문의 명예도 되살린 것 같아 감개가 무량허다. 편히 잠드소서 호조의 영령들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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