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민주당의 과거와 현재 그 자체인 두 인물 오자와 이치로(左), 에다노 유키오(右) 얼굴만 봐도 누가 과거고 누가 현재일지 노무노무 뻔히 보인다 보여... 두 사람은 사이가 상당히 좋지 않은데, 사진만 봐도 삘이 올 것이다

 

그렇습니다... 민주당은 망했습니다... 그러니 같이 저 세상으로 떠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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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우리는 망했습니다 - 나무위키

그렇습니다. 우리는 망했습니다… 그러니 같이 저 세상으로 떠납시다.

namu.wiki

 

일본민주당 하니 망한당이 떠오르고 망했습니다, 하니 고갤이 아름다웠던 시절의 저 드립이 떠 올랐다. 이제와서는 어떤 맥락에서 나온건지 설명하기도 힘들어진 드립이지만, 그렇습니다... 우리는 망했습니다... 그러니 같이 저 세상으로 떠납시다...

 

망한건 민주당하고 나 뿐이었고~

 

각설하고,

사실 짤에서도 등장혔지만, 일민당의 흥망성쇠는 상당부분 저 오자와 이치로로 설명이 된다. 다만, 오자와 이치로도 당세의 영걸 今다나카 카쿠에이 인지라, 경모해 마지 않는 걸물이기에, 그 이야기는 나중에. 마, 잘 써보겠다고 나중에 제대로 써 보겠다고 각잡은 소재치고 글을 쓴 적이 없다만. 결코 실패하면 안되는 소재를 잘못 다뤄 실패하지 않는 체고에 방법은 그것을 다루려는 시도를 않는 것이니까.

 

각설하고,

가급적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도 배려하려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긴 허다만, 기본적으로 다루는 소재 자체가 상당히 디테일 한 면이 있고, 자기의 의식의 흐름에 기반해 글을 쓰는 곳인 이상, 내 블로그으 글들은 대체로 요구하는 배경지식이 상당히 많은 편에 가깝다.

그러나, 그래도 일본 민주당 이야기를 허는디, 2009년 총선에서 압승혀서 55년체제 이후 체초에 진정한 정권교체를 이뤘다가, 당선 직후부터 망허기 시작허더니, 2011년 동일본대지진 직격을 맞고 망한 당, 이라는 정도는 설명이 없어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라고 해놓고 설명혔네.

민주당 집권기의 마지막을 장식한 노다 요시히코 내각총리대신. 일본정치에 나름대로 관심있다는 사람들과 이야기혀도 대충 하토야마나 간 까지는 기억하는데, 그 뒤가 노다 요시히코라는 것은 말할긋도 없고, 간 나오토 뒤에 내각총리대신이 한 명 더 있었던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존재감의 지존이시다. 과연 그는 일본리버럴의 영원한 마지막 총리로 남을 것인가?

민주당의 멸망에 대해 이야기헌다구 헐 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혀야 헐지를 정하는 것은 꽤 재량을 발휘헐 수 있는 영역이다. 시작점을 체고로 멀게 밀어부자믄 오자와 이치로가 자민당에서 뛰쳐나올때까정도 둘 수 있고, 마지막점은 그냥 지금까지 깨속! 이라고 혀도 될 정도... 무난하게 범위를 잡자믄, 민주당 자신의 원인은 아니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일본내각총리대신으로서 짧게 잡아도 근 20여년만에 일가실각 당하지 않은채 물러난 시점부터 시작혀서 구 민진당이 몰락하고 입헌민주당이 이를 대체한 2017년 총선까지 대충 10여년이 대상이 되는게 타당허지 싶다. 다만, 그 이야기를 쓸라카믄 만만찮게 대하정치소설이 뒤아야 허는지라, 그냥 이 글에서는 민주당 집권기 동안 벌어진 사건 크게 네가지만 짚어볼라구 헌다.

 

1. 후텐마기지 이전

 대외문제에서 대체로 친미성향이 강하고 근린제국에 대해서는 마찰을 감수하는 경향이 있는 자민당과 달리 민주당은 미국에 대해서는 할 말은 하고 근린제국에 대해서는 우호적으로 접근하려 혔다. 특히, 민주당 정권의 초대 내각총리대신이 된 하토야마 유키오는 우애외교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믄서 무려 탈구입아 같은 과감한 구호를 내세우기도 혔다. 사실, 내정의 난맥과 내분도 원인이지만, 나가 보기에 민주당 정권의 몰락의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외교인디, 지금 다룰 4대주제에서도 두 가지가 외교문제이다.

 

 그 하나가 이 오키나와의 후텐마기지 이전문제인디, 후텐마기지라는게 뭐길래 그렇게까지 인화성 있는 소재가 뒤얐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그냥 기지의 모습 자체를 보믄 된다. 사실, 대부분으 공항이 그렇듯이, 후텐마기지도 처음부터 저렇게 시가지 한 복판에 있었던 기 아니다. 그러나, 아직 도시가 덜 발달혔던, 대부분의 아시아는 물론 구미의 근대도시에서, 공항은 도시내에 있으믄 안되지만, 도시에서 노무 멀어도 안되는 위치였던지라, 적당히 거리있는 곳에 자리잡게 마련이라는 점 + 공항은 당연히 주변에 이착륙에 방해가 되는 지형물이 벨루 읎는 곳에 위치혀야 허는디, 이거 평지아녀? 도시 개발하기에도 완전히 좋은 위치인 것이다. 그렇기에, 대부분도 아니고 거의 모든, 대도시의 공항들은 위으 사진과 같은 숙명에 처허게 되곤 허는디, 마 그게 민간공항이라믄 문제가 덜 허지만, 군공항이라믄, 것두 자국군도 아닌 외국군의 공항이라믄 저게 문제가 커지는기라... 그랴서, 당초 자민당 집권기에는 저 후텐마기지를 현내의 헤노코 해안을 매립하여 거기에 이전한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그런디, 여기서 오키나와토인들의 반감이 비등헌 것. 오키나와는 말할긋두 없이 일본 전체 면적의 1%도 안되는 손바닥만한 동네인디, 이 오키나와에는 주일미군의 70%이상의 병력과 시설이 밀집혀있다. 마, 이거야 미군이 대동아전쟁에서 이긴 후 1972년까지 오키나와를 점유혔었기 떄문이기두 허지만... 안 그래도 본토와의 경제수준 차이, 정치적 박대등등 상실감이 큰 오키나와 사람들이 이 참에 기지를 현밖으로 옮기는, 후텐마기지 현외이전을 내세웠다. 때 마침 추락사고가 빈발헌다는 오스프리 수송기 이슈 같은 것도 거들었는디, 그거까지 알거는 읎구. 그러나, 기지를 현외로 이전헌다믄 어디에? 다른 동네에서 받아준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니 현 밖으로 뺀다 = 사실상 국외이전이 되는 것이다. 그랴서 이 기지를 괌으로 옮기느니 어쩌느니 허는 이야기가 나왔는디... 이 후텐마기지의 전략적 의의상, 이 기지의 위치를 오키나와에서 뒤로 물른다는 것은 미국의 아시아전략상, 특히 점점 대두하는 중국의 압력(마 이 시기까지는 중국의 위협이 아직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마지막 항목에 설명할 1년 뒤에 상황이 전혀 달라지지만...)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이 위치에서 물러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구체적인 이유가 아니라도, 이 문제는 일미협력, 일미간의 전략적 관계설정이란 점 자체를 흔드는 이슈가 뒤야부럿던 것이다. 대개는 아시겠지만 일본의 전후 외교전략은 정치와 군사는 기본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자위대의 구성이란 점에서든 일미동맹의 성격이나 내용이란 점에서든. 근디, 하토야마 정권에서는 그런 점에 대한 진지한 고려가 충분혔다구 하기 힘든 상황에서, 현지의 여론과 현민의 그 동안의 희생같은 굉장히 '시시한' 이유, 혹은 앞으로는 우애외교를 통해 우애롭게 지낼 것이라는 등의 굉장히 '낭만적인' 이유 등으로 이 문제를 접근했다는 것이다. 마, 나도 평화 협력 우애 좋아헌다만, 그렇다고 군비를 국력이외의 이유(한국의 병역자원 감소 같은)로 줄이는 것에 기본적으로 찬성하지 않는 편이다. 정치는 협력과 대결이 교직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혀두 대결상황은 일정이하로 그 비중을 줄일 수 없는 보다 시리어스한 부분이니끼니. 꽤 리버럴이라는 내 입장도 이럴진디, 민주주의가 제도상으로 돌아가는 나라중 가장 보수적일 것이 거으 학실한 일본에서라면 말 다했다. 이 문제가 상당한 정치스캔들이 뒤야버린 것. 결국 하토야마는 등극 9개월후 사임허는디, 그 사임의 가장 큰 이유는 이 후텐마기지 현외이전 문제였다. 후일담으로 지금은 그냥 헤노코 앞바다 매립하고 기지 공사허구 있다. 다만, 논란 자체가 무시할 정도로 작은 이슈는 아니었던지라, 지금도 원활히 추진은 못허구 계속 갈등이 있다만, 적어도 현외이전 같은 이야기는 쑥 들어간 상태.

 

2. 관료개혁의 문제

대일본제국 관료주의의 대본영 카스미가세키

 사실 이 부분은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는 지라 간략히만 이야기허구 가겠다. 그러나, 나가 보기에 이 또한 꽤나 시리어스헌 문제.

 일본이 관료천국이라는 점은 일본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믄 대충은 아는 일일게다. 일본으 경우 오히려, 관료들의 경우는 대신이 경우가 거으 없는기, 한국에서 부처 내부의 관료가 승진하여 장관이 되는 것이 훈훈한 이야기로 여겨지는 것과는 다른 분위기이다. 이는 일종의 일본식 민주적 자제인 면이 있는디, 일단 내각제인지라, 의원이 대신이 되는게 기본이라서 그렇기두 허다만, 어차피 성청의 일은 관료가 주도적으로 하고 의원출신 대신은 그냥 도장만 찍어주시믄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디(사실 관료의 정치인 길들이기라는 점은 한국도 썩 자유롭지 못허긴 허다만...) 그만큼 관료의 장악력이 확실한 이상, 오히려 관료가 일정이상은 나아가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는 부분이 있다. 그랴서, 일본 관료들은 커리어를 끝까지 밟을 경우 사무차관이 끝이다. 아예 정계로 진출할 사람들은 중간에 그만두고 선거에 나간다만. 한국에서 비슷한 느낌을 보려면 검찰을 보믄 되겠다. 정치할 검사는 적당한 직급에서 물러나 자기가 활동할 당에 들어간다. 정치할 생각이 없이 계속 검사할 사람은 검찰총장하고 끝이고. 사실 말 나온김의 이야기지만 그런 점에서 윤석열의 정계진출 시도는 굉장히 언어도단이라고 생각한다만... 요즘 한국정치는 생각만해도 신물이 나올 거 같으니,

각설하고,

일본 관료계가 민주적 통제가 부족하다는 부분은 꽤나 전부터 지적되어 온 부분이고, 민주당은 이를 손보겠다고 집권전부터 벼르고 있었다. 구체적인 조치야, 나가 일본신문을 보는 게 아니니 자세히까정은 모른다만, 의사결정과정에 있어서 관료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방향으로의 조치를 시행하는 한편으로, 관료의 자율성을 줄이고 정치인의 장악력을 높이는 조치들이 잇달았다고 안다. 근데, 이게 당대에 하나의 부작용, 후대에 하나의 부작용을 유발허는디, 당대의 부작용은 그 동안 관료들이 다 해처먹는다! 라고 불만이 비등허긴 혔다만, 그 말은 뒤집어보믄 관료가 일을 다 해왔던지라, 그 관료의 영향력을 줄인다는 것은 그 들이 처리하던 그 업무영역을 어디선가는 메꿔야 헌다는 말이 되는데... 일본정도로까지 관료의 우위가 강하지 않은 한국에서도 사실 관료들의 협조 없이는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지를 않는디(기억할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것다만, 박근혜 시절 해양수산부문의 전문가였던 윤진숙 전 장관조차도 관료가 써주는거 대독하기만 하는걸루 조롱거리가 된 일이 있었다. 윤진숙은 일 제대로 못하다가 물러났는디, 오히려 이게 본인에겐 전화위복이 된게, 그가 물러나고 2개월 뒤 세월호 사건이 터져부럿다...) 일본에서는 오죽하랴. 그랴서 행정난맥상이 상당혔다구 헌다. 안 그래도, 자민당과 노선이 달라 개혁한다고 제도와 지침은 자꾸 바꾸는데, 그걸 실제로 집행해야 하는 관료들이 반은 민주당 정권에 억눌려서, 반은 니들 하고 싶은대로 해 봐라~ 하고 손 놓으믄서 개판이 뒤야부럿던 것.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은 이런 데에서 나온다, 랄까나...

다 써놓고 복기허다봉께, 후대의 부작용을 빼 묵었네잉... 원래 강력한 독자성을 지니던 관료집단에, 민주당시기의 개혁... 이겠지...? 하여튼 개혁으로 정치권의 개입이 상당부분 가능해졌는디, 이걸 정작 잘 써먹은건 아베정권이 뒤얐다. 모리토모 가케 사건을 비롯해, 관료집단이 총리관저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눈치를 보고 손타쿠를 한다는 이야기는 꽤나 파다하다. 그리고, 그 실무를 스가 요시히데가 혔었다고도 허구. 원래 의도대로 관료의 폭주를 억제하는게 아니라, 관료가 정당히 견제해야 할 일조차 못하게 뒤야버렸다는 것. 뭐야 역시 민주당의 실패 맞잖아 쑺

 

3. 민주당의 내분

 오자와 상은 크고 높아서 함부로 다루지 않고 싶지만, 오자와 이치로라는 존재의 민주당에서의 존재감 땀시 안 다룰수는 없는 것. 오자와 라는 인물의 특징을 간단히 두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유능하다

(2) 썩었다

 

사실 나가 보기에 오자와의 썩음은 좀 과대평가 된 부분이 있다구 본다. 이를 방증하는 부분이 민주당 집권기에 있었던 오자와 기소와 관련된 여러 해프닝이다. 정확히 무슨 혐의였는지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은 양해를. 이 또한 이해하기 쉽게 간단히만 말허자믄, 오자와에게 비리혐의가 제기 되었다. 그런데, 이걸 검찰이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어느 나라나 검찰은 철저하고 꼼꼼허지만, 민족성의 근저에서부터 꼼꼼함이 깔려있는 일본 검찰이 무려 불기소처분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에는 검찰심사회라는 것이 있어서, 검찰의 기소처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대충 검찰의 기소에 대한 배심원판정? 그런 느낌이라구 보믄 되는디... 이 검찰심사회에서 불기소처분을 무효화하고 기소할 것을 요구해서 기소가 되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론 무죄판결... 즉, 제도적으로 오자와는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받았는데, 대중들이 그걸 못 받아들였다, 라고 보믄 된다. 오자와라는 인물은 킹무갓키에도 나오고 위에도 썼지만 今다나카 가쿠에이라 칭할 수 있는 정치의 고수다. 다만, 그 정치의 방법도 다나카 가쿠에이 같다는 게 문제... 일본이 잘 안 변하는 사회라고 허지만, 아무리 그랴두 70년대 정치수법이 지금 시대에도 고스란히 통할 정도로 안 변하는 사회는 아니다. 전임 오히라 마사요시 내각총리대신의 급사로 인해, 내각총리대신 자리를 엉겁결에 받은 스즈키 젠코 원 내각총리대신이 남긴 유명한 말이

"아마 돈 안쓰고 총리가 된건 나 뿐일 거 같다"

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79년처럼 저렇게 총리해보겠다고 돈 뿌렸다가는 난리나는 세상이다. 오자와는 지금 시대에, 저 시대의 정서에 기반한 정치를 해대고 있는지라, 본인의 강력함과 유능함과 별개로 구시대 정치인, 썩은 정치인이라는 이미지에서 당췌 자유롭지가 못허다. 어찌보믄 진짜로 문제가 있는게 맞는데, 본인이 수완이 좋아서 법에만 안 걸리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만, 70년대에도 그러다가 잡혀간 정치인 많고, 검찰의 수사기법은 그 때보다 발달한 세상이라, 법적으로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은 그리 가벼이 볼 일은 아닌건 분명허긴 허다만서두. 민주당의 2009년 총선에서의 압승이 오자와의 리더쉽이 결정적으로 작용혔던지라, 당내에서는 오자와의 세력이 상당히 강했으나, 그 오자와의 정치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은 상당혔던 것. 이것이 그가 총리가 되지 못한 근본적 배경이기두 허구, 저 맨~ 위에 에다노 상과의 사이가 좋지 않다고 혔는디, 에다노 상 본인이 그러한 오자와 정치에 대한 반대를 강력히 표방하는 인물이어서 그렇기두 허다.

하튼 그런 전차로, 오자와와 반 오자와로 민주당은 집권 내내 날을 샜고, 안 그래도 이미지 좋지 않은 오자와가 이끄는데, 그 오자와가 주축이 되어 내분을 해싸대믄서, 국정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니 민심이 남아나겠는가? 전반적으로 보자믄 민주당 정권의 지지기반이 허물어진 덜 구체적이믄서도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이것이라고 볼 수 있다.

 

4. 첨각열도

운명의 첨각열도...

바로 위에 덜 구체적인 원인이 내분이라구 혔는디, 구체적인 원인이 무엇이냐, 하나를 꼽는다믄 이거다.

아마 한국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희토류라는 것을 처음, 혹은 제대로 알게 된 사건이기도 할 이 사건은 2010년 9월에 발생혔는디...  동중국해 한 가운데 떠 있는 이 섬은 아시다시피 일본과 중국 사이의 영토분쟁 대상이 되는 지역이다. 마, 이렇게 말허믄 일본입장에선 싫어허겠지만, 하여튼 이걸 갖고 갈등이 있다는 자체는 사실이니께. 한국의 독도도 그렇듯이. 첨각열도는 일본이 실효지배허구,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허는 곳인디, 2010년 9월에 중국 어부가 일본의 영해내에서 불법조업하다가 체포되는 일이 벌어졌다. 중국입장서는 당연히 격앙혔구, 대중시위가 좀체 허용되지 않는 중국에서 대규모의 반일 시위가 용인될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중국이 시행한게, 희토류의 전면 수출금지였다. 희토류가 뭔지야 대충들 알것지만 간단히 설명허자믄, 첨단산업부품 - 반도체, 휴대전화, 태양광발전 등등에 많이는 아니지만, 없으면 안되는 위치를 차지하는 원료들이고, 이것의 전세계 생산량의 3분의 2를 중국이 차지허구 있었는디, 이것의 수출을 전면금지해버렸다. 그러자, 일본정부는 몇일 버티지도 못 허구, 바로 중국어부를 석방해버리는,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대 굴욕을 당해버렸다.

 

이 사건은 여러모로 입체적으로 민주당 정권에 엄청난 타격을 준 것을 넘어, 일본인의 대중인식의 방향 자체도 결정지어버린 부분이 있다. 앞서도 말혔듯이 하토야마 유키오는 한국 중국등과 친하게 지내는 우애외교를 내세웠고, 미국에 대해서는 그동안의 일방적인 결속이 아닌 '정상적인' 관계를 갖겠다는 노선을 표방혔다. 그러나, 대동아전쟁이후 근 70년간 일본은 미국과의 결속... 이라 쓰고 보호아래서 안전을 보장받아 왔는디, 이 보장을 내팽개치려는 거냐는 불안감이 앞서 후텐마 기지 사건을 크게 만들었다고 설명혔다. 마, 탈구입아혀서 아세아 제국과 친하게 지내믄 되지. 쟌넨! 잠궈라 희토류 였습니다! 가 된 게 이 사건인 것. 즉, 단순히 일본이 중국에 굴욕을 당하고 끝인게 아니라, 하토야마를 위시한 민주당 외교가 총체적 붕괴되어 버린 사건이 이 사건인 것이다. 잘 지내던 미국과의 관계는 파탄내버리고, 잘 지내보려던 아세아제국에게는 싸대기 맞고, 일본은 국제고아가 되어버리는 거 아니냐? 라는것이, 막연한 의혹에서 구체적인 공포로 떠오른 게 이 사건인 것. 추가허자믄, 다음다음해에는 한국에서 이명박으 독도방문 사건 + 천황사과요구 발언등으로 인해, 한국에게도 싸대기를 맞음으로서, 그만 둬! 이미 우애외교의 HP는 제로야! 이던 상황에서 끗끗내 마이나스를 찍게 만들어부럿다...

의미심장하게도, 2010년은 1971년 이래 40년간 세계 GDP 2위(집계방법의 차이에 따라서는 쏘오련이 2위인 집계도 있으나, PPAP가 아닌 노미널로는 아무래도 일본이 계속 우위였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를 굳게 지켜온 일본이 마참내 중국에 따라잡혀 3위로 내려앉은 그 해이기도 혔다. 일본은 침몰하고 중국이 그 자리를 빼앗는 것이 여러모로 오버랩이 되어버린 해 였던 것. 앞서의 국제미아가 될 우려에 대한 공포가 이제 더 이상 중국에게 우위가 아니라는 점에서 미국에겐 버려지고 중국에겐 잡아먹힐지 모른다는 구체적인 양상으로 승화뒤야부럿고, 이 후 일본에서의 반중정서는 급격히 고양되었다. 그리고, 그 스토오리 라인을 그냥 깔아제낀거나 마찬가지인 민주당은 스스로 화덕으로 기어들어가 불을 지펴버린 꼴이 된 것이고... 일본인들이 민주당이라믄 경기를 일으키는 가장 구체적이고 강력한 이유가 이 것이라는 점은 내가 보기엔 틀림읎다.

 

이상의 4인방이 민주당을 문화혁명해버린 원흉되겠다. 첨각열도가 강청이겠지? ㅎ

많은 사람들이 동일본대진재로 인해 일본민주당이 망혔다구 생각허는디, 그건 본질이 아니다. 그 것은 단지 이미 망해있던 민주당에게 어떻게든 반격을! 해 보겠다는 모든 의지를 상실하게 만든 사건에 지나지 않는 것... 2009년부터 2010년 사이에 민주당은 이미 망해있었다. 마, 동일본 대진재가 읎었다믄 지금보다 상황이 나았을지 어땠을지는 모르겠다만... 어쩌면 지금 입헌민주당의 굳건한 당주인 에다노 유키오상이, 대중적으로 인지도를 얻고 스타가 된 것이 동일본대진재 당시 관방장관으로서의 맹활약이었다는 점을 생각혀보믄, 그나마 희망의 기둥인 에다노마저도 뜨지 못했을지도?

일본 양심세력을 강하게 지지하고, 어떻게든 우경화를 되돌리기를 바라는 것이 내 입장이지만, 솔직히 민주당집권 4년은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좋게 볼 구석이 단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재앙 그 자체였다... 심정적인 면을 빼고, 냉정히 저들에게 다시 정권을 쥐어줄 수 있겠느냐고 하면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는 4년이었다. 다시 기회가 온다믄 그래도 저 때보다는 낫겠지. 그러나 다시 기회가 올까? 얼마전의 재보궐 선거에서 야권공투가 3개 선거구에서 모두 승리하는 일이 벌어지긴 혔다. 그러나, 여전히 차기총리로 누가 적절하냐고 하는 여론조사에 에다노 유키오란 이름은 저~~~ 아래, 4%밖에 못 받은 스가 요시히데보다도 밑에 있을 뿐이다... 심지어

일국의 내각총리대신의 체통에 어울리는 드립을 날리시는 고 노다로 차기 내각총리대신 사마

이딴게 여론조사에서 1위다. 솔까 한국정치가 엉망이라고 하지만, 일본정치를 들여다 볼작시면, 한국 정치는 고오급 첨단정치다...

민주당이 살아날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는 개뿔. 지금 같아서는 택도 없는 소리. 단지, 93년 이전의 1.5당체제 정도로라도 회복했으믄 좋것는디, 그것조차 참 만만치가 않다... 아베의 평판이 뚝 떨어지고, 스가가 엄청난 혹평을 받고 있고, 차기 주자라는게 저런 꼴이니, 그랴두 다음 중원선은 이전보다는 나을거라고 기대해보긴 헌다만...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제목은 야마토 다마시가 느껴지는 문구로 정해봤다. 사스가... 오토코다!

 

와시가 지민토주쿠주쿠조 기시다 후미오데아르!

윗 사진은 묘하게 개눈... 아니 이제 중정부장이시니 함부로 부르면 안되지. 박지원 장군님하고 비슷하게 나온 듯. 뒤늦게 개눈... 아니 박지원 장군님 등극 축하~ 김재규 장군님이 이끄시던 그 자리를 이어받으셨으니 불퇴전의 각오로 업무를 수행하셔야 할 것.

 

기시다 후미오라는 인물은 애매한 인물이다. 사실 기시다 후미오가 짝눈이라는 것을 이 글을 쓸라구 사진 찾아보믄서 첨 알았다. 그렇다믄 기시다가 그렇게 듣보냐? 듣보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습니다? 분명 요직을 수없이 역임하믄서 여러 무대에서 활동혔으며, 특히 은근히 대중노출이 높은 외무대신을 역임하기도 헌데다, 한국에서는 위안부 합의당시 일본의 외무대신으로서 대표하여 합의를 이끈지라 인지도가 있을 법두 허다만... 아마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위안부 합의 때 일본 외무대신이 누군지 아세요? 하면 모를게다. 허긴 뭐 대부분으 사람들은 그 당시 한국 외무대신이 윤병세였단 것도 잊었을테지만. 차기 일본 내각총리대신으로 유력한 사람을 세 사람 꼽아보라구 설문을 한다믄 아마 대부분 사람이 음... 펀쿨섹? 을 처음에 꼽을테구 그 다음으로 좀 아는 사람이어야 이시바 시게루나 스가 요시히데의 이름이 나올테지만... 현실적으로 내각총리대신이 될 사람이 누구냐 라고 헌다믄 코로스 사태 이전까지는 이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지도나 지명도는 기적적으로 낮은 인물. 일본정치에 한국 도내 최상위권의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중 하나일 나가 저 양반이 짝눈 인 것을 저 이름을 알게된지 5년이 넘어서야 알았다니 말 다했다. 위 사진이 개눈... 아니 박지원 장군님 닮아 보이는 것도 양 눈매가 크게 다른 것이 한 원인일 듯두 허구.

 

한국에서야 마 당연한 거다만 일본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낀기... 일본관련 자료는 킹무갓키로 기초적 조사를 한 후, 일문위키피디아를 보는 것이 정석에 가깝다. 킹무갓키를 본 바, 그의 화려한 총알이 나에 좆까네 커리어에 비해 단촐한 내용이었다. 마, 내각총리대신도 아닌 일개 각료치고는 비교적 충실허다 싶긴 혔다만. 근디...

일어위키에 갔는데 거기에도 킹무갓키에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킹무갓키가 일뽕위키로서 기본적으로 일본위키피디아의 내용을 복번붙(복사 번역 붙임의 준말로서 제가 만든 신조어입니다. 와! 샌즈!)하는 경우가 꽤 많기 때문이기에 새삼스러울 그야 읎다만 문제는 일어위키에도 내용이 저거 밖에 읎다는 거다. 한국에서야 누구? 인 인물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일본에서는 30년가까이 의원직을 역임하고 역대최장수 내각에서 줄줄이 핵심요직을 맡았으며 역대 최장수 총리의 심복으로서 차기 내각총리대신 경쟁의 필두에 서 있는 사람중 하나인데 그렇다는 게 문제이믄서 기시다 후미오라는 인물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것. 참고로,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최대으 라이벌인 이시바 시게루 문서는 기시다 후미오의 3배는 된다. 이시바가 좀 대중친화적이어서 그렇기두 허다만.

이 인간을 포스팅하는 이유는, 무려 댓글에서 일본정치글좀 써 달라 하신 분이 있어서 무거운 응딩이... 아니 손꾸락을 들어 쓰는거긴 헌디, 그럼 왜 기시다냐? 라고 헌다믄 이 기시다라는 인물이 현 시점에서 일본정치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는 사람이믄서, 거의 일본정치의 입장에선 '한 시대' 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뒤야뿐 아베 신조 시대의 마무리와 신 시대의 창생이 어떻게 될 것인가? 를 가늠해 볼 인물이기 때문이다. 마, 여는 글로 볼 때 뭔가 좀 쌔하다는 뉘안스를 이미 찐하게 풍기고 시작혀부럿다만. 그는 어떻게 9선 의원에 6개 국의 수호대명... 이 아니고 6개 부처의 대신 - 장관, 신시대 아베특색 외교의 선봉, 차기 내각총리대신 경쟁의 필두가 될 수 있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찐따인가?

 

일본의 유력으원들이란게 으레 그렇지만 기시다도 세습정치인이다. 애비가 통산성 관료출신 의원. 그리고 본인은 애비의 의원비서로서 정계입문. 어쩜 이래 정석적인지 재미있거나 흥미로울 스토리 하나없이 교과서적인 정치인의 코스를 밟고 있다. 이래서 인기가 읎나... 사상적으로는 평범한 일본 우익 정치인이다. 그렇긴 헌디 포메이션이 나쁘진 않다. 아베처럼 강경한 우파성향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모나지 않은(일본사회에서 특히 중요)노선을 택하믄서 강경 우파들의 니즈에 잘 부합하기도 허는 한편 스스로도 우익정치인으로서 일본인들이 정치인은 이럴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에 꽤나 부합하는 면이 강한 인물. 이래저래 평범평범/. 그러나, 수완가로서는 결코 만만치 않은 인물이며 특히 외무대신으로서는 상당히 큰 업적을 여럿 남겼다. 그 중에 특기할 만한 두 가지가 앞서 말한 위안부문제일한합의(일본측 공식명칭은 이것이다)와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이다.

 

위안부문제일한합의는 기시다의 가장 큰 업적중 하나라고 단연 말할 수 있다. 일본 입장에서는.

 

딱 봐도 둘 다 일본입장에선 대단한 외교적 성과임을 알 수 있으시겠다만, 단순히 큰 성공으로서의 문제가 아니라, 신시대 아베특색 외교정책에 정확히 부합한다는 점이 더더욱이나 그의 정치적 자산을 아베 신조라는 우산하에 극대화 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신시대 아베특색 외교라는 표현이야 눈치빠른 분은 아시겠지만 신시대중국특색사회주으라는 슈킨페 정권의 모토 패러디긴 헌디, 어찌보믄 통하는 점이 증말 있다. 아베가 내세운 외교노선은

 

"전후 외교의 총결산"

 

이라는 것이다. 아베란 인물이 대동아전쟁의, 일본 우익입장에서의 부정적 유산을 총정리하려는 입장을 갖고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고, 그런 면에서 한국에 제일 잘 알려진 게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그의 노력이다. 그러나, 어쨌건 일본은 대국이고, 한국과의 관계는 일본 입장에선 무시할 수야 없지만 어디까지나 2선급 과제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아베의 전후외교의 총결산은 일본의 국경 모든 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중국과의 첨각열도 문제, 로시아와의 북방영토문제, 오키나와문제, 미국과의 관계 공고화등등 까놓고 말해 현재 일본의 외교현안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전부 망라하고 있으며, 이러한 외교영역 전반을 일본 우익의 입장에 부합하게 총정리하려는 실로 담대하다 아니 말할 수 없는 절후의 대기획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지금와서야 그 기획들이 여러모로 어그러졌다는 점은 일본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믄 대충은 아실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기획이 가장 절정이던 시기가 바로 기시다 후미오가 외무대신이던 시절이라는 것.

 

전후 외교의 총결산이 추구하는 바는 여러가지가 있다만 그 중에 역시 가장 중요한 것중 하나는 중국의 위협에 맞서 일본의 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안전망의 구축이다. 그리고,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미동맹. 그런데, 아시다시피 이 일미동맹문제에 개밥에 도토리가 하나 껴 있다. 바로 헬조센. 이 이야기를 다각적으로 보자믄 미국의 대중정책도 봐야허는디, 아시긋다만 오바마 2기 = 슈킨페 1기에 접어들믄서 미중관계는 점차 경쟁관계로 접어들기 시작혔다. 오바마 1기 = 호금도 2기 시절에 미국이 외교 경제면에서 정체되는 동안에 중국이 외교 경제면에서 급부상허믄서 진지하게 중국위협론이 부상하기 시작혔기 때문. 그러나, 아시다시피 당시 미국은 조지 부시 2세의 악정으로 외교 경제면에서 여력을 크게 상실혔던 상황에, 여전히 아프간 이라크 - IS 문제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실업문제등으로 고전하고 있었다. 부족한 역량, 과도한 과업은 미국에게 아웃소싱을 요구했고, 그 아웃소싱의 일환으로 이뤄진 것이 서아시아에서는 이란 핵합의라믄, 동아시아에서는 일미한 삼각동맹의 재편이었다. 물론 피벗 투 아시아 정책하에 해외주둔 미군의 주력을 옮기려는 계획도 미국 스스로 하고 있었고, 이라크 철군 이란 핵합의등도 사실 결국 따지고 보믄 동아시아에 배치하여 중국을 견제할 여력을 확보하려는 시도였기 땀시, 다 이어져있는거긴 허다만, 이미 말혔듯이 미국 자체의 국력의 한계가 여러모로 노정되고 있던 시점인지라, 현지 지배인은 반드시 필요헌 것이었고, 기본적으로는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미국으 지배인이 될 수 밖에 읎었다.

 

그런데, 여기서 걸리는 게 한국이다. 이미 만만찮은 경제 군사 강국으로 성장헌데다, 북경을 코앞에 두고 있는 천혜의 입지를 갖춘 한편으로 일본 우익이 빼애애액 거리며 그렇게 우려허듯이, 중국과의 (주로 경제)관계가 지나치게 깊어서 중국의 영향권으로 넘어갈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게 만드는 한국. 이 문제를 이야기허다보믄 외교, 나아가 정치라는 것은 제로썸이라는 것을 이해 못하는 통사들이 참 많다는 점을 느낄 때가 끊이지를 않는디...

한국의 우익새끼들은 한국의 가치를 끊임없이 후려친다. 왜냐믄,

한국은 별거 아니다 - 그러니까 미국이나 일본 입장에선 한국따위 없어도 신경도 안쓴다 - 그러니까, 한국 주제에 배짱 부리지 말고 미국 일본말 순순히 잘 듣고 복종해라

라는 삼단논법으로 한국의 대미추종을 정당화하려 들기 때문이다. 좆까라 그래라. 5천만의 인구 2조달러에 육박하는 경제력, (아직은)60만의 상비군과 200만의 예비전력을 지닌 나라가 중국쪽으로 넘어가면 일미가 퍽이나 좋아허겠다. 그리고 퍽이나 위협 안되겠다. 까놓고 말해 일본이 아세아의 보루인 것은 맞다. 그런데, 일뽕새끼들이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은 전국시대에도 본성은 홀로 설 수 없고, 본성을 지키는 지성 외성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성이 무너지면 본성이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고 버티더라도 본성이 제 기능을 못헌다. 미국 중심 세계관을 인정한다 치고 일본조차도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지성에 지나지 않지만, 어쨌거나 이세탄보다 넓은 태평양너머에 있는지라, 아세아에서는 일본이 본성이고, 한국은 그 본성을 지키는 필수지성이다. 한국이 무너지면 일본도 무너지고, 한국이 넘어가면 본성을 지키던 외성이 본성공략의 첨병이 된다는 생각은 안하나? 저딴 새끼들이 자기가 우파라고 현실주의니 어쩌니 하는 꼬라지를 보면 정말 웃음도 안 나온다.

 

사설이 길었는디, 중국견제는 일미 양국의 공통현안인데, 일본은 이에 맞서는 축으로 일미동맹을 강화허구 싶어허는디, 미국은 그에 한발 더 나아가서 일미한 추축을 공고히 하고 싶어한다는 것. 미국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조선반도가 갖는 중요성과 위상을 인정한 상태에서 체제를 수립허구 싶어허지만, 일본우익은 바보기 때문에 조선따위는 일미가 가면 알아서 따라올 것이라는 수준이하의 관념을 갖고 있는 것이라도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생각헌다. 신시대아베특색외교의 대중 대한 파트는 이런 전제하에 이뤄진 것이라 그 자체로서 관철되기는 어렵다.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일인데, 위안부문제는 이 연장선상에서 출발했다. 박근혜 정권 출범과 슈킨페 1기, 오바마 2기, 아베내각 출범은 시기적으로 거의 겹치는데, 바로 이 무렵에 한국의 헌법재판소에서 위안부문제해결에 정부가 적극 나서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까지 나왔다. 날로 위협을 더해가는 중국을 막기 위해 일미한 아크시즈를 구축하려는 오바마 입장에서는 역사문제때문에 일한이 대립하는 상황을 좌시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래서 처음에는 위안부문제해결에 적극 나설 것을 오바마 정권측에서 압박했다. 아베가 정국신사에 참배하려하자 태클걸어 저지한 것도 이 시기의 일. 즉, 위안부문제가 처음부터 일본에 유리하게 돌아간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에는 도덕주의를 기본적으로 내세우는 오바마정권이, 역사문제이자 여성문제이기도 한 위안부문제에서 도덕적 우위에 있는 한국을 편들어준 부분도 있을테다. 정치란건 단면적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이 시기의 박근혜 정권의 병신짓은 주제가 아니니 제대로 언급하진 않겠다만, 협상은 교착상태에서 크게 벗어나질 몬혔다. 이 당시 협상의 책임자가 바로 외무대신이던 기시다 후미오. 일본이 유리한 협상판이 아니었지만, 그 협상판에서 한국측 논리를 꼬투리 잡아가믄서 일본(우익)의 입장을 잘 방어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판을 한국이, 것도 회담장 밖에서 스스로 뒤집어 엎어버렸다. 무려 박근혜가 중국의 종전 70주년 행사를 기념하는 천안문 단상에 무려 푸틴과 카자흐대통령 나자르바예프의 사이에 서 버렸던 것. 이런 공식행사는 의전이 굉장히 중요헌디, 서방에 맞서는 동방세력의 입장에서 의전 서열 1, 2위는 슈킨페, 푸틴이 자기 주최국일때마다 돌아가믄서 하는 것이고(모스크바 승리의 날 행사에선 2위가 중국이고 천안문행사에선 2위가 로시아) 이 그룹에 끼어있는 나라들이 대체로 변변치 않은지라, 이젠 물러났지만 그 당시 30년간 카자흐를 이끌믄서 나라를 공고한 반석위에 올렸던 다이토료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가 거의 맡아놓고 의전 3위를 차지하던게 그 당시 동방진영의 관행이었다.

 

근데 한국이 떡하니 끼어서 그 3위자리의 위상을 엄청나게 올려줘버린 것이다. 안 그래도 한국은 동방진영의 스파이다 절로 넘어갈거다 라고 일본이 끊임없이 우겨왔는데, 무려 친미성향이라고 여겨져왔던 한국 우익의 지도자가 저쪽 진영의 위신을 엄청 올려줘버리는 대폭거를 저질러 버린 것. 그 뒤 한국의 외교가는 미국에서 걸려오는 전화로 난리가 났다. 도대체 뭐냐 왜 간거냐 무슨 생각이냐 라는 것을 확인 & 압박하려는 미국측의 투고가 넘쳐흘렀던 것. 당연히 한국의 입장은 엄청나게 난처해졌고, 교착상태이던 일한 위안부 협의도 상황이 크게 나빠졌다. 미국입장에선 한국이 일미한 진영에 정말 남으려는 것인지를 의심하게 되는 상황에 처해버렸고, 기시다 외무대신은 이 상황을 놓치지 않고 한국을 압박했다. 한국이 이 문제를 더 끌었다가는 진짜로 미국의 의심을 사게 될 판이었던지라, 더 버티지 못하고 그야말로 일방적으로 일본에 유리하게 낙착되어버린 것이 위안부문제일한합의인 것이다.

 

물론 국제외교의 큰 흐름이 문제종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과정에서 기시다 외무대신이 실무자로서 핵심적인 공헌을 한 것은 틀림없다.(물론 2등공신임. 1등은 박근혜니까 ㅋ) 전후외교의 총결산이라는 점에서 두 가지 큰 성과를 거둔 것이다. 한국과의 역사문제의 "최종적" 해결과 중국에 대항하는 일미한 동맹강화의 가장 큰 걸림돌 제거라는. 아시다시피 그 1년뒤에 일한지소미아를 체결함으로서 형식적 완성도를 더 높이긴 혔지만, 이 시기는 이미 박근혜 정권이 침몰하던 중이라 견제랍시고 혔지만 무의미한 무브먼트가 되어버렸기로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보다 더 해져버렸긴 허다만서두.

 

 

하튼 그렇게 혁혁한 공을 세운 기시다 외무대신은 이듬해 방일한 오바마를 무려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방문시키는데에도 성공한다. 추가 뽀인뜨라믄 기시다 후미오 본인의 지역구가 히로시마이기두 허다. 본인의 일문이 히로시마 기반이기도 허구. 본인 고향은 동경이지만, 이런 관계로 야구도 히로시마 카프를 응원한다고 헌다. 지역구 민심장악이란 점에서도 어마어마한 업적이었을 것. 한국에서도 이 문제로 난리까지는 아니지만 꽤나 큰 불만이 있었고, 오바마 = 일뽕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져버린 것도 이 사건때문이긴 허다. 일본입장에서는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일본이 전범국가로서의 성격을 벗어버리고 전쟁이라는 행위의 희생자국가라는 이미지를 프로파간다 하기에 실로 좋은 이벤트가 뒤야뿐 것. 신시대 아베특색 외교의 입장에서는 이제 도덕적 짐을 벗어버린 일본은 아세아를 선도하는 국가로서 야만의 땅 군마... 가 아니라 중국에 맞서는 자유진영의 첨병으로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된 것. 물론 앞서으 위안부문제일한합의에 비하믄 이 사건은 상징성밖에 없는 것이긴 허다만, 개헌문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사건으로 아베정권이 획득한 정치적 자산은 실로 막대한 것이었다.

 

솔까 오바마를 위대한 지도자라고 생각한다만 이 무브먼트만은 도저히 정당화를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용서를 못하것다. 저런건 하지 말았어야 했다. 여담이지만 이후 도람푸가 등극한 이후 '진주만을 잊지 않았다' 발언을 해서 뒤집어지긴 혔는디, 이건 또 뒤에 이야기헐 거구, 한국여론입장에선 더더욱이나 반일 도람푸 친일 오바마 라는 도식이 굳어지게 되어버린 계기가 된 것. 한국 우익들은 한국 진보진영이 왜 친 트럼프인지 이해 못하는데, 그건 지들이 도람푸의 행위를 반중 반한이란 입장에서만 해석하는 소아병때문이라는 걸 지들은 절대 모를 것이다.

 

하튼 외무대신으로서 기시다 후미오는 이런 굉장한 업적을 남기고 물러났다. 왜냐믄 차기를 준비혀야 허니까. 저 당시에는 아직 자민당 총재임기가 2기 6년으로 정해져 있었고, 아베가 총재가 된 것은 2012년인지라 다다음해에 물러나게 될 지 모를 상황이었기에, 한껏 정치적 주가가 올라간 기시다가 당으로 돌아가 몸을 풀 필요가 있었던 상황인 것. 물론 다다음해에 자민당 총재임기를 3기 9년으로 늘려서 지금까지 집권허구 있다만, 정치는 모든 상황을 다 대비해야 하는 것이니까. 3기 9년안이 0.0001%확률로 부결될 수도 있었기두 허구, 기시다 본인이 무려 4년이 넘게 외무대신에 재직중이었던지라 물러날 때가 되기두 혔었구.

 

기시다가 왜 강력한 차기주자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설명이 뒤얐을 것이다. 요소들을 정리혀보자

- 우익성향이면서도 지나치게 강성이지 않아 부담이 덜한한편으로 그럼에도 강성우익들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추종하는 무난한 정치적 스탠스

- 고이즈미부터 시작하여 아베정권에 이르기까지 현대 자민당 정권에서 계속 활약허믄서 업적과 위상을 안정적으로 구축혔다는 점

- 외무대신으로서의 엄청난 업적

 

그리고 아시는 분은 아시긋지만, 묘하게도 기시다가 외무대신에서 물러나믄서 모든게 꼬이기 시작혔다.

1. 박근혜가 날아갔다. 덕분에 가장 큰 레거시인 위안부문제일한합의가 무의미해져부럿다. 사실 위안부문제일한합의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합의였다. 한국인들이니 잘 아시긋지만 한국여론의 반발은 엄청났다. 위안부수요집회에 한번도 가지 않고 영혼보내기만 하던 본인도 12월 30일 집회만은 분노해서 참석혔을정도니 원. 원래 협상이란것은 이익균형이 맞어야 헌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유리한 협상이면 그 협상을 들고간 정권이 타격을 받거나 붕괴되어 새로운 상대와 다시 협상을 해야하게 되는 것. 박근혜 정권이 위안부합의 만으로 무너진 것은 아니지만, 그게 정권에 큰 데미지를 주어 이듬해의 총선패배의 큰 원인이 뒤얐고, 총선패배가 탄핵의 조건을 배태했다는 점을 생각혀보믄 사실 위안부문제일한합의는 일본우익 입장에선 어떤 면에선 황금알을 낳는 거위 배를 가른 면이 있다. 한국 우익정권을 살려두고 계속 황금알을 받는게 결과론적으론 더 나았을 것.

2. 일뽕 오바마가 가고 일까 도람푸가 다이토료가 뒤야부럿다. 이것도 한국우익새끼들은 한사코 이해를 못허는디, 도람푸가 친한이라고까지 하는 일부 근첩들은 오바긴 헌디, 일본에 대해 미묘하게 비우호적인 것은 명백하다. 앞서 말혔듯이 진주만을 잊지 않았다, 라는 발언은 단순한 - 한국입장에서 사이다 발언인 정도가 아니라,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에 다시 한번 리틀뽀이를 날려버린 것이다.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으로 면죄부가 부여되었던 일본의 과거사에 다시 파문을 내려버린 것. 이로서 기시다의 레거시는 둘 다 빛이 크게 바래버렸다.

3. 모리토모 가케로 시작된 아베정권의 위상하락이 코로스 사태에 이르러 극대화 되어버린 것. 물론 모리토모 가케가 있었음에도 2017년 중원선에서 지민토는 단독과반을 달성하긴 혔다. 그러나, 이제 멀어진 개헌선은 돌아올 기미가 안 보이고(국민민주당이 사쿠라긴 혔다만, 다가올 중원해산을 앞두고 반지민토 야권공투를 모색중이니 것두 힘들어졌다) 아베 장기집권에 대한 피로감은 점점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거기에, 1차 아베내각이 무너진 큰 원인이었던 아베 본인의 건강문제가 최근 다시 대두하고 있다. 물론 정부수반의 건강은 중요문제라 아직 제대로 된 정보가 공개된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 불거지는 건강문제가 사실이라면 여러모로 어렵달 수 있겠다.

 

기시다는 아베의 아바타다. 일본현대정치의 오랜 전통은 총리는 바지사장을 시켜놓고 야미쇼군이 실제로 다스리는 것이라는 속설이 있는데, 마 그 속설이 실제로 작동혔던건 현대일본정치 유일의 대 정치가인 다나카 가쿠에이 시절에 주로 통했던 것이고, 그 뒤로도 비슷헌게 간간이 있긴 혔다만(가이후라든지.... 우노라든지...) 오부치 게이조 내각총리대신 이후로는 그런 행태는 사실상 사라졌다. 근데 기시다가 만약 집권에 성공헌다믄 그건 분명히 아베의 괴뢰가 될 것이다. 뭐 정치란게 또 모르는 거라 진짜로 권력을 잡고 나믄 어쩔지는 모른다만. 다들 노태우가 전두환의 꼭두각시가 될 거라 생각혔지만 아니었잖어?

 

다만 기시다는 단순히 아베와 개인적 관계를 갖는게 아니다. 현재 일본 정계는 우익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허구 있구, 아베는 그 우익을 재건하고 공고하게 만든 강력한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갖는다. 그런데 만약 아베가 어떤 식으로 무너진다고 허더라도 우익이 무너지는 것은 다른 문제다. 우익이 건재허다믄 기시다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어찌보믄 이 부분이 지금 기시다의 정치생명에 있어서 참 복잡하게 작용한다. 일단 아베 신조라는 인물은 학실히 퇴조세에 접어든 것은 분명하지 싶다. 다시 예전처럼 공고한 위상을 찾을 길이 보이질 않는다. 코로스가 그 실체를 드러내주기도 혔구. 그렇다고 우익세력이 무너질까? 일단 대체할 리버럴 세력이 전혀 신망을 얻지 못하고 있다.

 

www.nhk.or.jp/senkyo/shijiritsu/

 

NHK世論調査 内閣支持率 | NHK選挙WEB

NHKが毎月行っている世論調査のうち、内閣支持率については2013年の第2次安倍内閣発足以降の推移が一目でわかります。また調査結果をお伝えしたニュースに基づいて、そのほかの内容も掲��

www.nhk.or.jp

 

NHK세론조사인디, 맨 밑에 정당지지율 조사가 있다.

 

참담하다. 입헌민주당 4.9%가 필두다. 2017년 중원선때의 대약진은 어디로 갔는지 허망하기 짝이 없다. 야권공투로 힘을 모은다고 하지만, 야권공투도 아베정권 내내 이뤄진 일이고, 이젠 참신함도 없다. 물론 지지정당없는 층에서는 저 격차보다는 그래도 야권에 지지가 좀 더 가는 편이긴 허다만, 정권교체의 희망은 없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우익은 건재할 것이다. 아베가 건재하다면야 그냥 양위를 받으면 그만이겠지만, 아베가 건재하지 않아도 우익이 건재하니 기시다에게는 밝은 미래가?

 

라기엔 이시바가 우익이 아니냐면 그건 또 아니다. 물론 이시바는 상당한 양심파 인사긴 하다만, 그 역시 개헌을 주장하고 일미동맹을 중시하고 재무장을 추진하는(애초에 방위족이니. 무려 방위청장과 방위대신 - 중간에 부서이름이 바뀌어서 - 을 모두 역임한 두 사람중 한 사람이다) 사람인지라, 당내우익이 기시다에게 몰아준다는 보장이 없다. 물론 그 동안 자민당 총재선거를 보믄 평당원여론에서 이시바가 근소하게 우세하지만, 당직자 의원여론에서 아베가 압도적이어서 항상 이기곤 혔다. 근데, 의원이나 당직자들이 이시바를 지지하지 않은건 아베가 강력한 권력을 지닌 내각총리대신이어서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아베가 여전히 강하다면 그 분위기를 기시다한테 물려줄 수 있곘다만, 아베가 점차 수세에 몰리는 상황에서 과연 물러나는 아베의 뜻을 의원들이 순순히 따라줄까.

 

물론 아직 기회는 있다. 중의원은 해산시기가 유동적이지만 자민당 총재선거는 시기가 정해져있다. 내년 9월. 일단 내년 9월까지 상황의 호전을 기대해 볼 여러 계기가 있는데 일단은 코로스 사태의 진정여부다. 거기에 올림픽의 성황여부도 관건이 있다. 그 사이에 치뤄질 수도 있는 중의원 선거도 있다. 그러나, 지금 꼬라지를 보믄 아시긋지만 코로스는 아베정권이 잘 대처해낼 거라는 기대가 전혀 없어진 상황이다. 해결이 되더라도, 그건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어서이지 아베정권이 뭔가를 해서는 아닐 것이다. 기적적으로 일본이 최초의 치료제를 개발이라도 하면 모르겠지만, 그건 영국이나 미국 어쩌면 중국? 제약사가 가져갈 것이다. 코로스 치료제가 빨리 나와서 올림픽이 성황리에 개최되면 여론이 바뀔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믄 이것도 코로스와 관련이 있다고는 하겠지만... 지금으로선 내년 상반기중에 이 병이 퇴치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기 힘들다. 아직 올림픽은 11개월 남았기에 단언할 일은 아니다만, 기냐 아니냐, 라고 헌다믄 역시 아닐 가능성이 높은 것.

글구 중원해산. 위에 여론조사를 링크혔는디, 그 중에 오모시로이한 부분이 그거다.

내도 이거보고 재밌었는디, 중의원해산 총선거를 언제하면 좋겠느냐? 라는 질문이다.

올해안 19%

내년상반기 18%

내년10월 임기만료와 가까운 시기 50%

 

여론 상으로 해산하면 불리하다는 것. 이건 한국에선 아는 사람이 거으 없을텐디, 일본 중의원은 대동아전쟁이후 임기만료로 해산한 적이 거의 없다. 임기만료 해산이 몇번인줄 아시는가? 1회. 단 한번이다. 의회해산과 내각불신임은 부득이한 상황에 쓰는 정치수단인데, 일본에선 의회해산이 내각총리대신과 집권여당이 선거전략에 따라 "당연히" 사용하는 수단이 된지 오래다. 원래라면 지금 아베는 재집권후 두번째(2012, 2016) 의회임기를 보내고 있어야 허는디 2015년에 한번해산하고 그 다음엔 무려 2017년에 해산해서 세번째 의회임기를 보내고 있다. 아베만 그런게 아니라 으레 그렇다. 당연히 의회정치선진국에선 이런 식으로 무도하게 해산을 남발하지 않는다. 최근 영국에선 브렉시트 때문에 해산이 몇번 있었지만, 그건 브렉시트가 초유의 사태니까 그런거고.

그렇듯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의회해산이 남발되는 일본에서, 그 의회해산을 하지 말라는 여론이 반을 넘었다. NHK는 아베의 지지율이 비교적 높게 나오는(저 조사에서도 36%로서 같은 시기 아사히 조사www.asahi.com/politics/yoron/의 33%보다 높다)데도 저렇다는 것이다. 물론 지지율상 해산을 하면 이기기야 허겠다만 그 선거에서 더 불리할 것이란건 명약관화. 게다가 코로스 상황인지라 대규모의 인적 이동을 수반할 총선거는 더더욱 하기 힘든 상황.

마, 여기서도 최상으 시나리오는 꼽아볼 수 있는기,

- 코로스 치료제가 올해말에 나오고 내년 초에 잡힌다

- 올림픽이 성황리에 개최된다

- 올림픽직후 총선을 치러 승리한다

라면 2021년 9월에 치를 지민토 총재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해볼 수도 있다.

...

되겠냐?

뭐 세상사란게 무족권 안될일이란건 없긴 허지. 그러나 기냐 아니냐에 내 손 모두와 내 돈모가지를 걸라고 헌다믄 되는 쪽에 걸지 안될쪽에 걸지는 않는 법이다. 기시다 후미오 입장에선 참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물론 자민당 주류파벌들이 아직은 친 아베이고, 아베정권이 정말 주저않는다면 자기들도 저 압도적인 정당지지율도 유지된다고 장담은 못하기에, 여전히 아베를 중심으로 - 아베 신조를 성공한 총리로서 마치게 하기 위해 뭉쳐있는 상황이긴 하다. 현실적으로 기시다를 꺾고 총리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이시바는 본인 세력도 적고 그 동안 아베와 지나치게 대립각을 세워온지라, 아베를 옹위해온 호소다파나 아소파 니카이파가 곱게 지지해주기에는 면목이 없기도 하고. 그러나, 지금같은 세론이라믄 당원투표에서 참패하여 의원투표로도 못이기는 경우가 생길수도 있기에, 여러모로 상황이 복잡하고, 이걸 칼같이 정리하기에는 내 지식과 자료도 부족허다.

 

이 글은 그냥 기시다 후미오란 인물이 어떤 인물이고 어떻게 부상했으며 지금 어떤 상황이다, 라는 것을 감 잡으시는 정도로 보면 좋다는 것.

물론 그 이전에 현재의 일본정국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기시다 후미오라는 사내 라는 점을 알리고자 쓴 글이다.

요청하신 데 대한 답이 늦어서 죄송헌데, 보실지 모르긋네. 하튼 모처럼만에 생산적인 지적활동을 한 거 같아 보람도 있구 좋네. 이제 겜하러 가야징~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어제 썼던 글을 기반으로 피지알에 일본 정치부분만 다시 쓴 글.

원 주소는


https://pgr21.com/pb/pb.php?id=freedom&no=74291


아 근데, 내 내키는 대로 막 써도 되는 블로그와는 달리, 공개된 사이트에, 것두 글쓰기버튼의 무게가 천근만근이라는 피지랄... 아 스갤시절 버릇이 ㅋㅋ~~ 피지알에 쓸라니 굉장히 피곤허다. 근데, 반대로 그 피곤함을 감수하고 글을 쓰니 훨씬 정제되고 서사가 갖춰진 좋은 글이 되긴 혔다. 뭐니뭐니해도 베스트 댓글은



당근빳다 칭찬댓글이죠 쉬바

키배가 피곤해져서 공개적인데는 글 안써야지 혔는디, 아무래도 글쓰기 능력은 다른 사람의 압력을 감안하고 써야 제대로 발휘되는구나, 하는 걸 느끼긴 혔음. 꼴리는 주제가 생기면 간간이 써야긋다. 칭찬댓글 또 받아야징. 오홍홍 조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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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본에서 衆院選 = 총선이 실시되었습니다. 잠시후 출구조사가 나올테고 결과가 확정될테지만 현재로서 자민공명 연합의 압승은 확실하죠. 지난 7월 동경도의회 선거에서 자민당이 참패 할 때만해도 가케 - 모리토모 사건과 겹쳐 아베정권은 위기이며 실각가능성까지 점쳐졌던 데 비하면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셈입니다. 그러한 위기로 몰아넣은 것은 기본적으로 고이케 유리코라는 인물의 부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그 위기에서 벗어난 것도 고이케 유리코의 실책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낙착되는 분위기네요.

사실 고이케가 아베와 그렇게 다른 인물이냐, 라면 그리 큰 차이점이 있는 인물은 아닙니다. 이 게시판에서도 아베보다 더하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도 나오고 혔는디, 그 정도가 크게 의미있는 부분은 아니라고 보구요. 그런 고이케가 아베와 차별화 되는 부분을 굳이 찾자면 크게 탈 원전과 포용적 정치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탈 원전이야 뭐 옆나라 이야기인 한국과 달리 후쿠시마 원발이 터진 당사자인 일본으로서는 중차대한 이슈가 아닐 수 없기에, 탈 원전을 내세운 고이케가 아베와 차별화 되는 것은 분명하죠. 그리고 아베가 일생일대의 과업으로 생각허는 개헌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안보법제등 여러 무리수를 범하며 독선적인 모습을 보이는 탓에, 고이케가 내세운 포용적 정치 - 구체적으로는 뒤에 이야기할 민진당과의 연대 등으로 구현하려 한 - 라는 독트린은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었죠.

게다가 아베가 벌써 1, 2차 내각을 합쳐서 햇수로 8년 만 6년 이상을 장기집권하고 있기도 하죠. 전후 최장수 내각총리대신인 사토 에이사쿠으 기록을 넘볼 수준이고, 이미 낙착되다 시피 한 총선의 결과로서는 최장수 내각은 확정적이라고 봐도 뭐... 그러다보니 어떤 형태의 피로감? 같은 게 있었다고 보이는 게, 가케 모리토모가 중대한 비위이고 이에 대한 대응이 불투명하긴 했지만, 명백한 증거가 나온 것도 형사처벌이 확실히 진행된 것도 아닌지라, 이것 만으로 그나마 잃어버린 30년 와중에 성과를 냈다, 라고 할 수 있는 아베 내각을 물러나게 하는 것은 언어도단이 아닌가? 하는 면이 있다고 보거든요. 이제 할만큼 했으니 너 내려와라, 이런 분위기가 일본 대중들 사이에는 어렴풋이, 일본 정계에는 보다 뚜렷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비 자민계 인물중에 필두에 서 있었던 게 고이케, 이게 고이케 대망론으 얄팍한 근거 아닌가 싶습니다. 앞서 두 가지를 말씀드렸지만, 그것 만으로 고이케라는 인물이 내각총리대신 물망에 오를 정도로 강력한 인물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쨌거나 판이 그렇게 세팅된 이상, 플레이어들은 그 판에서 최선을 다 할수 밖에요. 애초에 아베가 이번에 중원을 해산한 것도, 이대로 가다가 고이케 세력이 전열을 정비할 내년에 정기총선을 치렀다가는 진짜 고이케한테 패할 수 있기 땀시, 어거지란 비판을 듣더라도 지금 의회를 해산해서, 고이케가 준비가 덜 되었을 때 총선을 치르자, 라는 계산이란 것은 역시 명백한 증거야 없지만, 사람들이 전부 수군거리는 이야기기두 허구... 총선의 테마는 아베냐 비 아베냐, 어찌보면 가장 전형적인 신임선거 비슷하게 되었달까나요. 몰아내고자 하는 입장에서는 반 아베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라고 생각헌거구, 아베 입장에서는 아직 반 아베가 제대로 전열을 못 갖췄으니 지금 미리 승부를 내서 시간을 벌자, 라는 것이었으니, 적어도 중원 해산 전까지는 서로 계산이 통하는 부분이 없잖았다 할 수 있것습니다.

그게 꼬인 것은 명백히, 이미

http://www.sedaily.com/NewsView/1OMEIYBONC

이런 기사에서 잘 정리되어 있듯이, 고이케의 실책 때문입니다. 만약, 고이케가 민진당을 무난히 흡수할 수 있었다면 - 다르게 말한다면 이번 중원선의, 알량하지만 그나마의 대의랄 수 있는 "반아베" 에 충실혔다믄 중원선은 당초의 박빙의 계산을 이뤄낼 수 있었겠죠. 그러나, 여기서 고이케는 자기의 우익본색을 버리지 못하고, 민진당의 의원들에게 개헌과 안보법제 찬성이라는, "후미에" 를 요구해버렸습니다. 심지어 표현을 강도높게 하지 않는 것이 통상의 관례인 일본에서 자기와 맞지 않는 인물들은 "배제한다" 라는 상당히 쎈 톤의 발언을 하면서 분위기를 제대로 망쳐버렸죠.  이번 선거국면에서 고이케가 겉으로는 아베와 맞서는 인물로서 자리매김지워졌지만, 실제로는 아베와 별 다를 바 없는 인물이라는 성격이 있었고, 전자가 후자를 가려줄 때까지는 고이케는 바람을 몰 수 있었지만, 저 발언을 통해, 스스로 아베와 별 다를 바 없는 인물이라는 성격을 대놓고 들이밀어 버리는 바람에, 이제 고이케는 별 가치없는 인물이 되어버렸다는 거죠.

사실 저는 중원선이 치뤄지기 이 전에, 일종으 음모론적 가정으로서 우려했던 부분 중 하나가, 고이케가 사실은 호헌 세력 ≒ 진보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일종의 트로이목마가 될 것이 아닌가? 하는 부분이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꼴이 되었십니다. 이미 이 글을 보실 때면 대충 결과들을 아실 분들도 많을 텐데, 민진당의 진보세력이 새로이 창당한 입헌 민주당은 기적적으로 고이케의 희망의 당을 누르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말 그대로 역부족으로서, 기존 민진당에 비해 3분의 2 안팎으로 의석이 줄어드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되었거든요. 아베에 맞서는 기수가 아니라, 일본 호헌세력을 약화시키는 트로이목마가 되어버린 꼴이랄까나.

물론 고이케가 명시적으로 그런 것을 의도했다고 보긴 힘들겝니다. 고이케도 어쨌거나 야망의 정치인이고, 중원선 이후 자기 정치를 하려면 당연히 자기의 지도력이 높아지는 형태로 자기 당을 구성하려는 욕구를 갖는 것은 당연한거죠. 그러나, 정치란 것의 본질은, 되게 시시한 이야기지만 저로서는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뻗기"

라고 생각합니다. 누군들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려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될 일이냐, 아닐 일이냐 를 헤아리는 것이 정치인의 중요한 통찰이자 덕목이란 거죠. 그리고 고이케는 그걸 완전히 실패한거고. 민진당을 제대로 끌어안아 골칫덩이를 안고 총선에서 이기느냐(사실 민진당을 제대로 끌어안았다 한 들 총선을 이겼을지도 의문이고, "말썽꾸러기" 들이 순순히 따라갔을 것이냐도 의문입니다만) 맘에 드는 것만 체리피킹하여 기반을 단단히 하는 대신 성과는 덜 내느냐 의 갈림길이어서 일단 뭘 골라도 타당성이 없는거야 아니었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번 중원선의 판은

아베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였던 선거였다는 것을 그는 감안치 못했다는 거죠. 그 과정에서, 제대로 된 정치력도 제대로 된 비전도 보여주지 못한채, 그냥 아베의 몽키버전일 뿐임을 보여주는 최악의 행보를 보였다는 것이 결정적으로 현실에서 작용했고.


웃긴건, 고이케가 하려했던 것을 정작 이룬 것은 입헌민주당과 에다노 유키오라는 것입니다. 이 또한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제는 매당노가 되어버린 원 민진당 대표 마에하라 세이지는 호헌 정당 대표이지만 개헌파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애초에, 민진당도, 그 옛날 - 한 때는 제가 정말 좋아했지만 이제는 늙고 몰락한 오자와 이치로의 주도로 민주당을 만들 때 부터 이런 저런 세력들을 다 긁어모은 반 자민 기획정당의 하나였던 면이 크고 그 때문에 마에하라 같은 대놓고 우익사람부터 하토야마 같은 분명한 좌익사람까지 이 사람 저 사람 다 모여있던 정당인거죠. 그게, 2009년 총선에서 사상 최대의 승리로 자민당을 몰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뒤로의 몰락이야 뭐 이 또한 다들 아시는 대로...

원래 이질적 세력의 연합은 순전히 덩치 뿔리기 말고는 딱히 기대할 부분이 없죠. 그러나, 덩치가 완전히 쪼그라 든 주제에 본래의 이질성까지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은 민진당 부진의 큰 원인중 하나이자 골칫거리 였십니다.

대충 파악들 하셨긋지만, 이번 입헌민주당은 그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버렸습니다. 원 내각관방인 에다노 유키오의 주도로 이번 중원선을 앞두고 급조된 정당에 지나지 않은 입헌민주당은, 바로 그 고이케가 "배제" 했던 사람들이, 우리는 우리의 의지 - 호헌과 진보 - 를 버릴 수 없다, 라는 기치하에 모여든 잔류세력에 지나지 않았고, 지지율도 한 때 3%를 찍는 등 절망적인 상황이었죠. 그러나, 몸이 가벼워진데다, 고이케가 그나마 갖고 있던 깃발을 사실상 스스로 내려버리는 바람에, 그나마 아베와 자민당 밖에서 제대로 된 깃발을 휘날리고 있는, 사실상 유일한 정당(공산당은 이래저래 아웃스탠딩하니까 논외로)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특히 호헌성향의 일본인들의 지지가 온전하게 몰릴 수 있었죠.

워낙 세가 미진한지라, 이번 총선에서 입헌민주당은 77명의 후보밖에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후보들중 메우 많은 수의 후보가 당선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를 정도로, 입민당은 사람들의 신망을 모으고 있습니다. 대략 50~60석이 기대되는 상황이죠. 곧 확정되겠지만, 이 글을 쓰는건 아직 개표초반이니까.

아베가 불의한 인물이다, 라는 이미지가 씌워져 있는 상황이란 것은 일본 정치를 관심있게 지켜봐오신 분들이라면 다들 아실겁니다. 그렇기에 그에 맞서 불의하지 않은 인물인 고이케가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인디, 그 고이케가 배제 발언으로 의로운 인물또한 아님을 일본 47도도부현에 널리 자백해버리는 바람에 인망을 잃었는데... 입헌민주당은 어려운 처지에서 자기들의 소신을 지키겠다고 계란을 들고 바위와 맞선 세력으로서 크게 신망을 얻게 되는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킹무갓키를 쫌금 인용하자면

https://namu.wiki/w/%EC%A0%9C48%ED%9A%8C%20%EC%9D%BC%EB%B3%B8%20%EC%A4%91%EC%9D%98%EC%9B%90%20%EC%B4%9D%EC%84%A0%EA%B1%B0

"심지어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지사까지 입헌민주당의 에다노 유키오 대표를 간접적으로 세키가하라 전투의 이시다 미츠나리(…)에 비유하며 모두가 동군(희망의당)에 투항하는 와중에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고 있는 사나이다운 인물이라고 칭찬을 건넸다."

그 이시하라 신타로 마저도 저들은 의인이라고 칭송을 마다치 않았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이 구조와 이익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라는 세계를, 지나치게 서사화하여 정치 이해를 단순하게 한다는 점은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런 이야기들이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무시할 일까지는 아니지 않을까, 저 자신 감성적인 사람인 처지라 그런 생각을 거두기는 아무래도 힘들긴 헙니다.

그렇기에, 이번 총선이 예상대로 끝난다면, 비록 60석 안팎으로 줄었지만, 확실하게 진보와 호헌에 대한 결의를 갖고 있는, 단단한 정당이 일본 중원에 등장하는, 오랫동안 후퇴하기만 해 왔던 일본의 진보세력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쾌거라고 할 수 있는 일이 벌어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도 사실 이게 뿌듯혀서 이 글을 쓰게 된 것이기도 하구요.


정치란 것을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하는데, 이번 일본 중원선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보면서도 그걸 참 깊게 느낍니다. 물론, 작년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의 한국이 사건 자체로는 훨씬 극적이긴 했지만, 한국의 민주당과 문재인이 시대의 흐름에 올라 탄 면이 있다고 본다면, 일본의 입헌민주당과 에다노 유키오는 시대의 흐름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또 다른 드라마를 담아내는 것이랄까나, 그런 생각이 드네요.

여전히 현실은 험난하고 처지는 곤궁합니다만 앞으로 입헌민주당의 발전과 성공을 기원합니다.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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