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8.03.05 47도도부현 제패냐 66국 제패냐
  2. 2017.09.16 오랫동안의 숙원을 하나 해결

언제봐도 아름다운 국지도부터 보고 가자



전에 글(http://angelusnobus.tistory.com/101?category=755524)을 쓴 적도 있지만 나으 일본 모에의 출발점은 명백히 대망이다. 그 이전에는 일본에 대해 딱히 큰 인식은 없었던... 한국의 민족주으으 포풍의 경우 그 기반으 상당부분은 반일에 의지하고 있긴 허다만, 딱히 일본을 크게 미워해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헌다. 기억이 애매헌 이유는 대망을 읽은게 고등학생때 대략 2학년때쯤 일이고 그게 1994년으 일이니 벌써 24년전으 일인지라... 글구 지나놓고 생각혀보니 확실히 중고생때는 생각으 변화가 급속하야 난중에 명확히 구분하기가 힘들다. 핵교 댕기던 시절을 생각해보믄 학년학년정도가 아니라 학기학기 중간기말등 정기고사단위로도 꽤나 '시대구분' 이 된다고 생각혔었는디, 지금와서 보면 부질읎다. 나가 주장허듯이 지금의 고대 중세 근대 3기구분도 인류역사가 아직 6천년괴베클리테페 어리둥절~밖에 안 뒤야서 그딴 구분이 가능헌거지 6만년되고 6억년 되면 그때가서 요람시기의 6천년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현실은 작금으 알량한 기술발전갖구 무려 4차 산업혁명같은 소리나 허구 앉았다만. 근대 이후으 최대 발명품은 누가 뭐래도 "경제성장" 인디 이로 인한 성장인플레가 유발한 가장 큰 문화적 부작용은 언어 인플레라구 본다. 다 성장허는디 언어만 그대로면 웃기잖어. 이 모순이야 현 단계으 인류가 쉽게 넘어설 것은 아니다만


각설하고

딱히 일본에 대해 별 생각읎던 아해가 대망을 읽고 일본에 대한, 그 단계에서는 상당한 이해와 지식을 쌓게 뒤얐다. 뭣보담 지명과 인명에 대한 이해. 지인중에 JLPT 1급수준은 진작에 넘은 양반이 있는디, 심지어 이 양반보다 인명이나 지명은 나가 더 잘 읽는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 당연히 대망으로 기초를 쌓고 신장의 야망^^으로 심화과정을 밟아서 그런거긴 허다만. 아 글구 하나 더 생각났는디, 대망을 읽기 전에도 일본에 대해 우호적으로 될 큰 계기중 하나가 콘솔게임 슈퍼로봇대전스파로봇또다이센ㅋㅋ이다. 여기선 뭘 배웠냐면 가타가나 읽는 법을 배웠다. 대개 일어를 첨 공부하는 분들중 가타가나땀시 약간으 불편함을 겪는 분들이 있는디, 나으 경우는 외려 가타가나부터 시작한 셈인지라... 스파로봇또다이센에 등장하는 로봇또들이야 대부분 일본표현이 아닌 양식표현을 쓰는 로봇또 - 마징가 젯또에 브레스토화이야 처럼 - 들인지라 대개 가타가나로 표현을 했거든. 그 외에는 대부분 한자였고 덕분에 거의 유일하게 히라가나로 쓰여있던 히라메끼- 번뜩임이 나가 처음 접한 히라가나 일본단어였다 랄까나.


나가 본 대망은 이 판본이다. 마침 어떤 현자가 사진을 웹에 투고해주셨구먼

들어는... 아니 읽어는 보았나 세로쓰기?

내 연배인 분들이야 종종 봤겠다만 80년대 이후출생이신 분들은 거으 못 봤으리라.


대망 스파로봇또다이센 신장으야망은 나에게 있어 일본문화의 입문이 되어준 삼종의 신기랄 수 있긋다.

일본 전통지명에 대한 애착과 호의도 다분히 거기서 온다. 한국의 경우 신라시대 9주5소경, 고려시대 5도양계에 이어 조선시대에 와서야 현재까지 이어지는 8도체계로 변천을 겪는다만, 일본으 경우는 신라시대와 동시기인 헤이안시대에 율령을 반포하믄서 정한 5기7도체계가 유신까지도 이어왔기 때문에, 역사적 뿌리가 깊기두 허구. 일본이 근본깊은 거야 앞으로도 수도없이 말할거다만. 그리고 그 근본깊음이 양날의 칼이란 것두.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66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긋다. 일본인 칭구들을 좀 사귀어보고 싶긴 헌디, 한국인 칭구도 제대로 못 사귀는 나가 뭔 일본인 칭구를... 한국인이란 희소성으로 어떻게 되... 기엔 이젠 한국인도 노무 흔하구먼... 씁~


하튼 일본지리를 미카와(대망의 주인공은 이에야스고 이에야스의 출생지이자 출발지가 미카와 오카자키성. 한국으로 치면 전주... 라기엔 이성계는 본관만 전주지 출생성장은 다 동북면이긴 허다만...)에서부터 출발한 것인지라 66국에 대한 애착은 각별허다. 이게 일본여행의 대전략에 있어서 심리적 갈등을 일으킨다. 어쨌거나 나는 일본을 좋아허구, 일본 전국을 샅샅이 여행다녀볼 생각이다. 대개 일본여행하믄 동경 혹은 오사카+경도, 요즘 세상에는 후쿠오카 등으로 입문하여 한번 가보고 땡이거나 저 세 군데만 대충 가보고 딴데가야징~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헐게다. 일단 가까운지라 해외여행느낌이 덜 나기두 허구 한국이랑 비슷하네~ 라는 일부 몰지각한 무리들으 언어도단의 생각들두 있기두 헌지라...


오카자키시는 이 곳

이에야스가 본격적으로 세력을 넓힌 거점은 그 오른쪽의 하마마쓰

이에야스가 천하인이 되고 막부를 세운 에도는 다들 아시는 그 곳...

그리고 이에야스가 어렸을 때 인질생활을 하고 만년을 보낸 곳은 하마마쓰 오른쪽의 시즈오카(당시 이름 순뿌)이다


그러나, 나는 당분간 오사카나 동경 경도에는 갈 생각이 읎다. 처음 간 곳이 아마 거으 대부분으 한국인이 가볼 생각은 커녕 들어본 적도 없는 사가였고 지난번에 간 곳은 야마구치... 전에 어떤 자리에서 야마구치라고 하면 못 알아들을까봐 그래도 한국 사람들이 알 거 같은 시모노세키 간다고 혔더니 되게 특이한 곳 가시네요~ 라는 답이 오드라. 관부연락선의 대본영조차 이런 대접이다. 그리고 아마 올 6~7월에 한번 더 가게 될 거인데, 그때도 가고시마에 가게 될 것이다. 올해가 유신 150주년이거든. 유신하믄 삿초동맹이고 조슈는 갔다왔으니 삿슈도 가 봐야 할 거이 아닌가? 가고시마는 사쓰마국과 오스미국이 합쳐져서 맨들어진 현이다. 그 뒤로도 북해도 폐선여행 가야허구 이에야스도노의 여로를 따라 미카와도 가야허구 지인이 와카야마 진출 예정인데 와카야마도 가야허구... 동경 오사카 같은 데 갈 시간 읎다.


각설하고

몇 번 말혔지만 나는 얕게 갈 생각이 없다. 한 지역을 잡고 샅샅이 뒤져보는 여행을 추구헌다. 사실, 이 말도 언어도단인게... 이번에 야마구치 한 곳만 잡고 갔다왔고 그 한 곳에서만 6박6일(관부연락선 선상숙박땀시)을 있다 왔다만 못 간 곳이 많고 간 곳에서도 못 본게 많다. 하기 이와쿠니 스오오시마 야마구치 시모노세키를 보고 왔다만 나가토 미네 야나이 슈난 우베 산양오노다는 못 가봤다. 이와쿠니를 갔다지만 니시키가와세이류선은 타보지도 못했고 스오오시마에 갔으나 타치우오는 구경도 못했으며 88개소 영장중엔 꼴랑 두 곳 밖에 못 가봤다. 샅샅이? 사앝사~~앝이~~~이? 고작 일주일 가놓고 샅샅이라고 말한다니 어찌 언어도단이라 하지 않을 수 있으리.


그러나 현실이 그렇다. 이 또한 누차 말하지만 서울 33+3년 살믄서 아직도 새로운 곳이 계속 나오는디, 살지도 않는, 그나마 외부에 알려지지도 않은 일본 시골이라믄 말할 것이 있으랴. 어쩔 수 없이 피눈물을 머금고 한 지역을 대충 일주일 잡고 다녀만 보려해도 몇십번을 가야 다 들를 수 있는 게 일본여행인 것이다. 일본을 다니듯이 한국을 다녀봐라, 라고 일침을 놓을 민족주으으 포풍에 사로잡힌 분이 있을지 모르는데, 내 폴더에 저장된 한국여행다니믄서 찍은 사진 보여주면 찍소리도 못할테니 아닥들 허시구. 여행을 원체 좋아허는지라 한국도 한두군데를 다닌게 아니다. 붓싼 같은 경우는 10번도 넘게 갔다. 한국에선 역시 가장 입체적이고 다채로운 붓싼이 좋드라.


각설하고

어쨌건 한 지역을 대략 일주일 안팎으로 다니는 것으로 가 본걸로 하기로 하고 각 지역을 제패하는 것으로 허자, 라고 생각을 잡았다. 말 나온김으 이야긴데 이 제패라는 표현이 또 꽤나 일본 스럽다. 한국에선 아주 생소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상적으로 쓰이는 표현도 아닌디 일본에선 일상적으로 쓰인다. 게임을 제패 여행을 제패 관동을 제패 하여튼 뭔가 complete 했다고 여겨지면 아~ 제패했다~ 라는 표현을 덥썩덥썩 붙여대는 것이 일본으 언어문화인 것. 생각해보믄 꽤 재밌는 개념 아닌가. 별거 아닌거 다 해놓고 제패! 라는 그럴싸한 표현 붙이기 좋아하는게 누차 말하는 일본인의 중2로움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기두 허구. 그랴서 나도 제패라는 표현을 소중히 하는 유신의 심장이 따듯한 일본인이 되기로 하였다.


하튼 제패를 허긴 혀야허는디... 고민은 제목대로다

47도도부현을 제패하느냐 66국을 제패하느냐.


여기서 또 잠깐 이야기하자면 쓰시마와 잇키는 국으로 안친다. 율령이 반포되던 당시의 5기 7도 66국만을 인정한다... 라고 하기엔 데와 무츠가 쫌금... 아니 쫌금 많이 걸리는디... 무츠 1국을 위에 서술한 개념으로 제패하려면 1달도 더 걸릴텐데... 역시 이와키 이와시로 리쿠젠 리쿠오 리쿠츄로 제패혀야... 하튼 요와 가케히키도 네마와시다나... 이게 아니고 하튼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일본을 제패하느냐다. 나는 헤이안 시대의 마음을 소중히 하여 66국을 제패... 하려고 하니 이게 문제가 한 둘이 아니다. 앞서 말한 데와나 무츠의 경우는 위에 쓴대로 나중에 쪼개진 구분으로 제패하는걸로 갈음할 수 있다고 치자. 관동 아와나 동해도의 시마국같은 경우는 어쩌지? 진짜 손바닥만해서 한국으로 치면 1개 기초지방정부만도 못허다. 안동같이 큰데 말고. 물론 성남같은데보다는 크지만 서천군 정도? 그 정도 할 거 같다. 물론 이 정도 크기면 진짜 일주일에 제패! 할 수 있을거 같긴 허다. 이 생각 지금 들었는디 그럴싸 한데?


진짜 문제는 역시 경계다. 대부분의 국경계는 현재의 현경계로 계승이 뒤얐다. 그러나 위 지도를 보믄 알 수 있듯이 시모사국은 갈갈이 찣겨서 형해화 뒤얐다. 부젠 지쿠젠 지쿠고 일대도 엉망이고. 나가노현 - 시나노국이나 도야마현 - 엣추국 어쭙잖지도 않게 4국 4현이 깔끔히 떨어져버린 사국처럼 깔끔하다믄야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 일관성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번으 야마구치 여행에서도 이미 스오 나가토 두 나라를 한번에 갔다온 셈이 뒤야부렀기두 허구... 일단 지금 나으 일본이해능력 수준에서 과연 스오국과 나가토국을 깔끔허게 가를 수나 있을까? 도도부현 아래으 시정촌단위에서는 국경계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경우가 노무 많다. 이와쿠니시야 깔끔히 스오국이고 하기시야 깔끔히 나가토국이다만, 경계인 미네시나 야마구치 시는? 애매헌 것이다. 물론 진정으로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한다면야 이런 것도 알아서 가야긋지만... 컨셉을 지킨다는건 실로 멀고도 험한 길...


이미 야마구치에서 버린 몸인지라 그냥 47 도도부현으로 하는 것을 主로 그 과정에서 가능한한 66국 여행을 하는 것을 從으로 삼는 것으로 편의적인 결론을 내었다.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66국지도만은 못해도 이것도 꽤 아름답지 않은가


이제 슬슬 야마구치 여행기와 접점이 닿기 시작헌다. 왜 실질적인 첫 여행이 야마구치가 되었는가, 라는 이야기를 할 차례가 왔응께. 일본을 가기로 혔으믄 어디부터 가야허는가? 그 이전의 질문이 반도으 센진이 내지에 갈 때는 어뜨케 가야허는가? 하는 질문이 들었다. 교통편 이야기다. 교통편 이야기지만! 나으 여행은 컨셉이다. 그렇기 때문에 센진으로서 내지에 갈 때는 당연히!


관부연락선


을 타고 가야지! 하는 생각은 진즉부터 혔다. 음... 이렇게까지 쓰는건 일제 식민지배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게 되는지라... 지난 회에서 쓴, 배덕의 변증법 범위에서도 쫌금 애매허다 싶긴 헌디...


일본 개새끼 일본 제국주의 개새끼 일제 식민지배 아웃 아베 씨발놈


이걸로 갈음허자. 일부러 잘못되고 부정한 이야기를 함으로서 배덕감을 즐기는 것이 내 호사가로서의 지향인지라...


도덕주의를 존중하고 따른다. 그러나 배덕주의를 외면치 않고 즐긴다.


이 정도랄까나. 이를테면 앞으로 여행에서 토인이란 표현을 또 많이 쓸거다. 70년대 서부영화나 아프리카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믄 아마 원어로는 native 의 번역이 아닐까 싶은디, 이걸 土人이라고 번역해놓았다. 토인. 아! 얼마나 배덕적인가! 현지인을 멸시하고 얕잡아보는 뉘앙스를 저렇게 잘 담은 표현이 있을까. 지금이야 다 원주민이라고 번역하겠지만, 토인. 이 표현 참 인상이 엄청나게 깊다. 이것도 나으 생물학적 한계 - 70년대에 태어나 그 문화를 향유하고 자랐다는 한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게다. 인종차별과 멸시를 일삼는 현재으 일베 극우들이라혀도 토인이란 표현을 익숙하게 느끼진 않을테니까. 오히려 인종차별을 극력 반대하는 나가 그런 표현에 익숙하고 웃기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이러니인 것인 것이겠지. 하튼 토인이란 말을 쓴다고 나가 원주민을 멸시하는거 아니다. 애버리진에 대한 오스트레일리아의 태도는 글러먹기 짝이 없다. 독일을 좋아하지만 헤레로족에 대한 태도는 아주 썩어빠졌다. 최근까지도 독일 교과서에는 헤레로족의 봉기를 폭동으로 부득이하게 진압했다고 써 있으니.


그렇지만 애버리진도 헤레로족도 토인인걸. 물론 베를린 시민은 베를린 토인이고 붓싼 사람은 붓싼토인, 스오오시마정민은 스오오시마 토인이다. 토인토인~


이런 의도라고 이해해주시라. 식민지배는 아픈과거지만 rule34원칙(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포르노가 존재한다. 아직 없는 것은 곧 나온다)에 의거하여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유희의 대상이라는 것이 호사가로서 내 원칙이고 여기서 예외는 없다. 다만 공개표현으로선 선을 넘진 말아야겠지. 윤서인으 조두숭아저씨 처럼. 이미 넘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만, 적어도 나는 문제의식을 잃은게 절대 아님은 누차 밝혔다. 정 불편하시믄 못 보는거지 뭐. 난 계속 그렇게 쓸거니깐.


각설하고

내지에 갈 때는 관부연락선

이건 철칙이다. 물론 예외있는 철칙... 하여튼 철칙... 지난 2016년에 사가에 갈 때도 당초 의도는 관부연락선을 타고 갈 것이었다. 근데, 9시간 걸린다네? 일정이 3박 4일인데 배에서 18시간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으사 아니 선장양반! 그랴서 으짤수 없이 쾌속선으로 후쿠오카를 통해 갔다. 이것도 3+3시간이지만... 그냥 항공편을 타는게 맞았겠다만, 왠지 배가 타고 싶더라구. 섬에 갈 때는 배 아입니꺼?


그 때는 못 갔지만 이번에는, 역사적인 첫 자력일본여행에서만은 반드시 관부연락선을 타고 가기로 혔다. 관부연락선 탑승의 원칙과 47도도부현의 원칙이 만난다면? 당연히 배가 닿는 곳을 여행혀야 헌다. 관부연락선이 닿는 땅 시모노세키, 시모노세키가 있는 야마구치 여행은 정해진 숙명이었던 것이다. 야마구치가 첫 빠따로 뽑히게 된 데에는 이러한 심원하고도 아련한 사연이 있는 것이다. 때 마침 작년 올해가 명치 유신 150주년이더라. 명치유신을 직접적으로 달성한 무진전쟁이 1867년에 발발하야 1868년에 끝난지라. 야마구치에 가는 것이 더더욱 빛나는 때가 되었달 수 있긋다.


구구하게 말이 많았다만 어디 가볼까? 여기 어때? 그래 가자~ 이런 여행도 좋지만 이런 저런 통빡을 굴리고 나름대로 스토리와 사연을 담아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능가. 세상이란 것은 아는만큼 보이는 것이고 말이 많아지는건 아무래도 아는게 있어서 그렇게 되는 것일텡게. 일본에 대해 참 많이 생각하고 들여다봐왔지만, 직접 들어가보는 것은 (사실상)처음이다. 아 저 사실상 참 거슬리네. 물론 훌륭한 튜터리얼이 되긴 혔다만, 역시 자립과 자족을 모토로 삼는 내 입장에선 역시 아쉽긴 허다. 이것도 참 복잡한 양가감정이랄까나.


왜 야마구치에 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드디어 끝이다. 이제 내일부터는 어떻게 가서 무엇을 보고왔는지를 본격적으로 써 나가겠다.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일본 전국시대 매니아... 라고 까지 하기엔 자격미달이 한량없지만, 하튼 매니아으 말석을 자처할 수는 있다, 하는 처지에서 오랜 숙원이 하나 있었는디...


 전국시대야 기라성같은 호걸용장재사들이 넘쳐흘렀던 시대이지만, 그 여러 세력들 중에서도 세력단위로서 가장 좋아하는 가문은 호조가문이다. 이건 나의 어떠한 성향의 표현인 것 같은데, 나는 현대세계를 논함에 있어서도 GDP기준으로 세력을 따지는 것을 좋아하고 현대든 근대든 GDP 갖고 노는 걸 좋아한다. 앵거스 메디슨은 참고만 하는게 좋다고 생각허지만.


근디, 전근대에 그런 믓찐 개념이 대대적으로 통용되던 훈늉한 사회가 있으니, 그거이 바로 일본 되시긋다. 일본 중세 근세(솔까 이 근세개념 맘에 안들지만)시대, 일본에서 경제력을 따지던 기준은 석고라는 개념이었다. 한국의 석이 대략 80, 혹은 100킬로그램 정도의 쌀중량으로서 정확히 되어있는데 비해, 일본의 석 이라는 개념은 그렇게 명확하진 않은걸루 안다. 이런거 알기 위해서라두 일본어는 배워야 허구, 그려서 일본어 원문을 읽을 수 있어야 허는디... 다른 주제 같다면 귀찮아서 안함, 이지만, 이 것만은 다르다. 나는 대일본제국으 황국신민잉께, 일본어을 익혀서 야마토 다마시를 갈고 닦어야 허는 것이니깐.

하튼, 생산량을 모종의 기준으로 석 이라는 단위로 환산하고, 이걸 영주의 소령별로, 나아가 각 지역의 국별로 환산하여 비교를 하곤 헌다. 이를테면 오와리국은 51만석, 미노국은 40만석이고, 미노국에서도 예를 들면 후와 미츠하루 같은 경우는 후와군 3만 5천석 이런 식으로. 물론 모리가문처럼 여러 나라를 다스리는 번주의 경우는 주고쿠 9국 120만석 이런 식.


각설하고, 저 석고란 개념, 그냥 GDP 아닌가? GRDP라고 태클걸 우매한 이들을 위해 일침을 가해두자면 당당히 사가미 "국" 무사시 "국" 오와리 "국" 의 GDP이니 GRDP가 아니랑께. 농담만은 아닌게, 에도막부가 일본을 스베떼하고 우에의 자리를 차지했지만, 그 당시에도 에도막부가 직할하는 것은 천령 4백만석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직할의 기본들에게 역시 근 4백만석을 주어서 실질적으로 8백만석을 통할하긴 혔지만, 하튼 막부으 석고는 4백만인 것이다. 그러니, 번별로 석고를 내어 GDP라 하는게 무리가 아니게 되는, 알면 알수록 요지경인 일본역사의 성격에 맞는 드립이 되는 것이다.


이 쯤에서 보고가는 일본 전국시대 지도. 이 지도를 좋아허는게, 오늘날의 현경계를 실선, 전근대시대의 국경계를 점선으로 해 놓아 변천을 비교하기 좋게 해 놓은 때문이다. 전국시대에 관심있는 당신을 위한 잇 아이템. 한자로 써있는게 오늘날의 현 이름이고, 한글로 쓰여있는게 전근대시대의 국 이름이다.



아 이야기 엄청도네. 각설하고, 하튼 호조가문을 좋아하는 이유가, 전국시대 군웅들중에 석고가 짱짱맨이었기 때문이다. 개조 호조 소운이 이마가와령을 떠날때는 불과 3천으 병력을 이끌고 떠났으나, 간악한 히데요시의 비겁한 총동원으로 비련의 불꽃속에 관동 호조령이 무너져갈 무렵에는 무려 250만석의 대제국을 이루었던 것이다...


사실, 전국시대의 석이라는 것은 대략 1인이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산출량 정도의 개념에 가깝다. 그렇기에, 1석이면 인구가 1인이라고 보면 우악스럽지만 아주 틀리지는 않는 것. 그러니까, 호조령은 대충 250만명 정도의 인구였달까나. 오늘날로 치믄 가나가와 켄, 동경도, 사이타마 켄, 군마 켄의 거의 전역과, 도치키 켄 서남부, 지바 켄 중북부 대부분, 시즈오카 켄 동부지역으로서 대충 2만에서 3만 제곱킬로미터 정도 될테지. 아마 조선으로 친다믄 경기와 충청 전체를 합친 것과 비슷한 영토, 인구였을게다. 애개 존만이 아니여~ 랄 분들이 있긋지만...


전국시대에선 이 호조가문이 최대세력이다. 물론 오다보다는 작지만... 심지어 오다를 계승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220만석이었기 땀시, 호조가문은 일단 도요토미 본가보다도 세력이 더 컸던거다. 전국시대 모노가타리들은 대개 천하인 3대장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3대장에 맞먹을 만한 인기를 누리는 게 다케다, 우에스기 정도. 그 외에는 다테 시마즈 모리 정도가 언급되는 정도랄까나. 근데 천하인 3대장중 히데요시는 애초에 전국시대 대부분 시기에 다이묘가 아니었기 땀시, 논외이고, 오다는 동남아시아에서 싱가포르 수준으로 신계니까 논외라 치면, 언급되는 세력들 중에 최대가 모리가문의 120만석 정도이다. 그런데 호조는 250만석! 가히 관동대제국이라 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나는 전국시대를 고등학교 때 대망을 읽는 것으로 입문혔는디... 보면 이야기 중반까지는 동해도와 기내에서 아웅다웅하는게 전부다. 이에야스으 활동무대가 거기니까. 그런데 이 동네에선 오다빼고(앞으로 이 말 안한다) 제일 크대봐야 다케다 신겐이 100만석이 될까 말까 한 정도. 아사이 아사쿠라 이런 애들은 30만 40만석 이렇고, 이에야스도 동해도 3국을 제패하기 이전엔 기껏해야 60~70만석이다. 그나마도 미카타가하라에서 박살난 이후에는 다케다측에 넘어간 땅이 많아 50만석이나 되었을런지. 그런데, 소설의 중반쯤에, 드디어 히데요시의 관동출병에서 호조가문이 안타깝게도 패배하고 히데요시는 이에야스를 엿먹이기 위해, 이에야스의 마쓰다이라 당이 대대로 다스려온 동해도에서 관동으로 옮기라고 지시를 하게 된다. 근데, 그 때 나온 석고


250만


띠요오오옹~~ 이거 실화냐? 라는 생각이 절로드는 초거대석고가 아닌가. 100만석이면 내로라 하며 떵떵거리는 줄 알았는데, 이야기에 한번 나오지도 않던 관동땅에 250만석의 초거대 제국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충격은 노올라운 것이었다. 나가 호조가문에 뻑가기 시작한 게 이 무렵인디... 아마 지금의 GDP 성애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물론, GDP라는 개념을 갖고 논건 중학교때 사회과 부도보면서 부터지만.


호조가문의 관동제패 일대기

색깔별로 초대 소운, 2대 우지쓰나, 3대 우지야스(이 분이 혼모노임), 4대 우지마사의 영토확장을 표시한 것이다

5대 우지나오도 있는디, 이 때는 일본정치체제의 본질인 흑막정치를 하시려고 우지마사가 가독만 물려주고

자기가 다 하던 시점이라 우지마사 우지나오는 같은 시기로 취급한것이다.

말 그대로 이바라키와 도치키만 빼고 관동을 제패했으며, 도치키의 유우키 가문등은 상당부분 호조에 복속상태, 히타치에서 골목대장 하던 사타케 가문은 우지마사 대에 이르러 호조와 제대로 붙기 시작하면서 탈탈 털리던 시점이었다.

히데요시가 5년만 늦게 왔어도 관동은 통일되었을 것이고 진정한 관동대제국이 세워졌을 것이거늘...ㅠㅠ



첨언해두자믄, 관동전봉 이전 이에야스으 영지는 동해도 삼주인 미카와 스루가 도토미에, 구 다케다령인 카이국과 시나노국 남부 대부분을 차지하여 대략 150만석 안팎이다. 100만석이나 늘려준다는데 이게 왜 엿먹이는 거냐? 사실 대망을 읽던 당시엔 잘 몰랐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호조가문이 전국시대 제일의 민정가였다는 것이다. 신장의 야망을 해 봐도 다케다 우에스기의 기마, 오다 다테 시마즈의 철포, 모리의 수군 이런 격으로 나오는게 호조의 내정이다. 호조가문은 질이 떨어져도 압도적 경제력으로 압도적 쪽수로 밀고 나오는 컨셉의 가문인 것. 실제로, 오다 사후 호조가문과 이에야스가 오다의 구령을 놓고 갈등한 적이 있는디, 이 때 이에야스가 1만 5천의 병력을 출동시킨데 비해 호조가문은 무려 5만 5천명을 출동시키기도 혔다. 그것도, 히타치에서는 사타케 가문과, 아와에서는 사토미 가문과 대치하는 와중에도 말이다. 물론 이에야스의 미카와병이 유수의 강병인데다, 이에야스는 야전만큼이나 조략에도 능한 양반이라, 세력의 열세에도 오히려 이익을 본 것은 이에야스였지만 말이다. 하튼 그렇기에, 호조가문을 지지하는 토착여론이 메우 강했던 바, 이에야스가 어지간히 내정을 잘하지 않고서는 호조에 비해 못하다고 여겨져 인심을 잃고, 거대한 관동의 습지대에 발목이 푹푹 빠지리라는 사루의 얕은 계산으로 전봉시켰던 것이고, 이것이 톡톡한 오산이었음을 역사는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각설하고, 하튼 그 때의 노올라움은 나으 전국시대 취미의 레일을 깔었고, 지금까정 그 레일 위에서 달리고 있다. 제일 좋아하는 가문은 호조가문, 제일 좋아하는 지역은 관동.


아, 이제사 본론인디... 근데 한국웹을 뒤지다보믄 이 관동에 대해 설명이랍시고 혀 놓은게, 무려


"세키가하라의 동쪽"


이라는 개말법적인 설명이다. 아니 세키가하라 동쪽은 미노 오와리 이세 - 줄여서 노미세라고 부르는 다른 지역이고 그 동쪽에서도 동남쪽은 동해도, 동북쪽은 카이의 갑, 시나노의 신, 에치고의 월 을 딴 갑신월 - 고신에쓰라 부르는 지역이며 거기를 넘어 후지산을 지나야 관동인디, 이게 무슨 망발이다요? 실로 어이가 없던 일이었다만, 꽤 오랫동안 나가 이걸 검증해볼 생각을 안했었다. 무려 킹무갓키에도 수 년간 이렇게 쓰여 있던 것.


오늘도 꼐임하다가 지쳐서 쉬려고 갓키질을 허다가 또 관동 항목에 마우스 포인터가 닿았고... 그 맘에 안드는 설명이 또 머리에 떡 하니 붙어 있었다. 왠지 오늘은 뭔가가 나으 게으름 본능을 뚝 끊어버리고 튀어나왔다. 내 이걸 함 뒤져봐야쓰겄다, 라는. 일단 한국어 능력에 비하면 2%도 안되지만, 그래도 세컨 랭귀지가 영어이니 영문위키를 뒤져봤다. 올커니, 내 맘에 드는 구절이 나왔다. 하코네의 동쪽이라는 것이다.


하코네의 위치를 남자의 색깔 핑크로 강조하여 표시해보았다.



근디, 그것만으론 부족헌데다, 어찌 야마토의 일을 양이들이 논한단 말인가. 그랴서... 한국어 능력에 비하면 1%도 안되지만, 그랴도 서드 랭귀지인 일본어로서 일문위키를 뒤져보았다.


관동지방이란 항목으로 들어가보니, 오늘날으 관동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는디... 그 말미에 관동 이란 항목이 따로 있었고, 여기서 보물을 찾을 수 있었다.


https://ja.wikipedia.org/wiki/%E9%96%A2%E6%9D%B1

일어 되는 분들은 가서 보시라. 난 일어는 거으 안되지만 한자가 쫌금 뒤야서... 글구 어차피 다들 구글번역기 돌릴거잖아?


관동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672년의 임신의 난에서 기인한다. 대란을 겪고 혼비백산한 아스카의 조정에서는 아스카의 방어를 위해 삼 개의 관을 세우니... 관 삼대장의 이름은 후와 관 - 不破関(ふわのせき) 스즈카 관 - 鈴鹿関(すずかのせき) 아라치 관 - 愛発関(あらちのせき) 이라 한다.


세 관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

사실 세키가하라 동쪽이란 말이 근원에선 틀린 건 아닌 게, 저 후와관이 딱 세키가하라의 위치다.



이 삼관을 세우고 그 동쪽을 관동이라 일컫기 시작한 거이가 관동이란 칭호의 유래이다. 그니까 오늘날으 관동과는 전혀 다르며... 일부 불학자들이 세키가하라 동쪽이라고 한다라는 것은 이 시기의 개념을 여과없이 그냥 써갈겨 댄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 중간에 과정들이 쫌금 더 있던디, 나으 목적은 그게 아니니 스킵허구... 오늘날의 관동개념과 유사해진 것은 무로마치 막부 시기에 관동을 통할하기 위한 기구로서 가마쿠라 공방이 세워지면서의 일이다. 이 시기 공방은 물론, 이즈국 카이국과 동북지방까지도 관할했다고는 하지만, 거기엔 따른 공방들이 있기도 혔구헌지라, 딱 오늘날의 1도 6현에 해당하는

사가미국, 무사시국, 시모사국, 고즈케국, 시모즈케국, 가즈사국, 아와국, 히타치국(순서는 호조가문의 진출순 므흣~)


이 8국이 핵심관할지가 되었다. 그리고 이야말로 그 이름도 찬란한


관동 8주


인 것이다. 이 관동 8주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왜 그렇게 멋지게 느꼈는지 모르겠다. 나가 세키가하라 동쪽운운하는 기술을 증말 맘에 안 들어한 것도, 그러면 관동 8주하고 너무 다르잖아! 라는데에서 온 불만이기도 했구.

우리가 아는 관동은 대충 이렇게 성립된 것이다. 저 위에 영문위키에서 하코네의 동쪽이라고 혔는디, 그건 에도시대의 개념으로 보인다. 일본은 주요 가도마다 관소를 세워서 치안과 경제활동에 사용했고, 동해도에서 관동으로 들어갈 때 꼭 지나야 하는 길목이 하코네이다. 윗 지도를 보면 잘 알 수 있을 터. 산으로 둘러쌓인 사이에 한줄기 길이 놓여있다. 당연히 여기에는 관소가 있었고, 따라서 하코네의 관소 동쪽이 에도시대 이래의 관동이 된 것이다. 양이들이 이런 동양으 심오한 역사를 이해하기 어려우니 저런 단순한 서술로 끝났던 것. 그랴도 양이 치고는 기특한 거 인정.(아마도 영어능력이 있는 일본인이 썼을 가능성이 더 높긴 허지만, 어차피 비슷헌 게 저 과정을 영어로 쓰려고 해봐라. 일어 영어 2중언어능룍짜라도 빡칠 것)


이러한 전차를 오늘 드디어 킹무갓키에 투고하는 데 성공하였다. 킹무갓키가 존마니 꼬꼬마들이 엄한 내용으로 바꾸거나 과거 내용으로 롤백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무려 일어위키를 참조하여 썼다는 데 감히 누가 개기리. 이제 앞으로 킹무갓키로 관동을 배우는 사람들은 진정한 관동인 관동 8주의 역사를 알 수 있게 뒤얐다. 어찌 뿌듯하지 않으리. 아울러, 오랫동안 더렵혀져 온 관동의 패자 호조가문의 명예도 되살린 것 같아 감개가 무량허다. 편히 잠드소서 호조의 영령들이시여...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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