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재삼 재사 말하지만, 나는 일본의 침략행위는 잔악한 범죄이며, 그에 대하여 반성하지 않는 현재의 일본의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태도를 강하게 규탄한다. 정치적으로 나는 현실적 평화주의자(군사적 행동을 반대하고 군비축소를 지향하지만 부득이하게 군비를 갖출 필요는 있음)를 자처하며, 국제문제는 최대한 평화적으로 협력적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렇기에, 대놓고 침략을 했고 그 과거를 미화하는 일본의 작태를 곱게 볼 리가 없다.


계속 말한 이야기지만 이번 화에 또 이것을 강조하는 것은... 이번 화의 이야기는 요시다 쇼인으로 시작해 요시다 쇼인으로 끝나기 때문이며, 그 중간에 무려, 한민족 입장에서 최악의 악인으로 첫 손에 꼽는데 이론의 여지가 벨루 읎을 이토 히로부미의 이야기도 나오기 때문이다. 첫 목적지부터 이렇게 빡쎄대서야 원...


하기라는 곳은 역사도시이다. 그리고, 그 역사의 축은 에도시대의 모리가문의 본거지였다는 점과 메이지 유신 당시의 중심급 인물들이 성장한 곳이 이 곳 하기라는 점 이 두 가지이다. 앞서도 얼핏 말혔지만, 스토리도 (일본인 입장에서)극적이다. 모리 가문은 동의 도쿠가와에 맞서는 서의 구심점이었다. 그러나, 전쟁에서 패해 광대한 영지를 잃고 감시받고 경계당하는 일개 지방세력으로 전락해버렸고, 그 굴욕감을 품은 채 에도막부 250년을 지내야 혔다. 그랬던 모리가에서 서세동점의 와중에 흐름을 잘 타서 모리번은 강력한 경제 군사력을 지닌 웅번으로 성장하고 번 내에서는 여러 (일본 입장에서)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수 많은 신진기예들이 자라나, 마침내 도쿠가와가를 물리치고, 조슈번 출신의 인사들이 일본의 대세를 장악해, 유신으로부터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강력한 세력을 떨치게 되는, 역전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이야기 자체로서는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극적인 성공스토리인 것이다.


그리고 요시다 쇼인은 그러한 신진기예들에게 강한 영감을 주어, 그들이 일본의 새 시대를 이끄는 인물이 되게 한 스승이고, 이토 히로부미는 그 신진기예들의 말석에 존재했던 인물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하기라는 곳이 사실상 오늘날 번영하다가 퇴락하고 있는 일본의 자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내가 이 곳에서 보려는 것은 그 극적인 이야기의 현장과 모습들이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범죄과 악행을 잊을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그러나, 일이 벌어진 자체는 벌어진 것이다. 나가 여행 갔다오고 틈틈이 드립처럼 쓰는 표현이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는 유신의 심장이 따듯한 진정한 일본인이 될 수 있는 기회였다'


라는 것인데... 이거 참 한국에서는 처 맞아도 싼 드립이다만, 저 드립의 기원은 사실 철저한 조롱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D%BC%EB%B3%B8%EC%9D%98_%EB%A7%88%EC%9D%8C%EC%9D%84_%EC%86%8C%EC%A4%91%ED%9E%88_%ED%95%98%EB%8A%94_%EB%8B%B9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라는 것은 이 당의 이름에서 따 왔다. 나가 진짜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혀서냐? 그건 아니구... 일본 정치는 수준이 낮은 것으로 유명허다. 일부 일뽕들은 일본 정치가 한국보다 낫다고 말하는 데 그런 놈들은 그냥 정치에 대해 아닥혔으면 좋겠다.


각설하고

수준이 낮은 정치이다보니 정당들도 해괴망측한 것들이 많은 데... 저 당은 이름부터가 해괴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이름이 우스꽝스러워서 일본 정치를 이야기할 때는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해야죠~ 식으로 드립을 치는데에 저 당의 이름을 요긴히 써 먹는다.


유신의 심장은 당연히


장군님... 그립습니다...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셨던 그 분에게 바치는 오마쥬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이 짤 보고 몇 분을 웃었는지 기억도 안난다. 웃다 뒤지는 줄 알았다. 이 짤에 하도 감명을 받아, 감동이 뭉클히 올라오면 아 나으 유신의 심장이 또 따듯해지네... 라고 말하곤 헌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진정한 일본인임을 자칭하는 데 있어서,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는 유신의 심장이 따듯한 진정한 일본인


이란 자기 소개는 배덕의 미학의 정점을 찍는다, 라고 나는 생각헌다.

솔까 왜놈들이 과거사 반성 안하는 게 짜증나는 이유가, 일본 갖고 칠 수 있는 수 많은 드립들이 있는데... 이 놈들이 반성을 안하고 스스로 악마화를 자초하다봉께 그거 갖고 드립을 칠 수가 없다. 깔끔히 반성하면 진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데... 하긴 그러면 왜놈이 아니긴 하지. 물론 반대로 생각해보면... 나쁜놈이 아니게 될 경우 그 나쁜놈 갖고 드립치는 게 지금처럼 재미가 있을까? 허는 생각이 들긴 헌다. 나는 아직도 개구쟁이 코찔찔이의 심정이 강한지라 그게 배덕의 쾌락을 추구하는 큰 근원이 된다. 나쁜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라는 말을 들으면 더 하고 싶어진달까... 그런 상황에서 나쁜 놈 끝판왕인 일본놀이를 하는 것은 배덕감을 극대화하는 것... 어찌 이 쾌감을 놓칠 수 있으리.


다만 쾌감은 쾌감이고 비판은 비판임을 철저히 구분할 뿐이다.


그리고, 일본인들의 악행은 악행인데, 그 악행의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이룬 성취 그리고 그 성취에 대한 자부심은 일본인들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것 그 뿐이다. 그리고, 이해한 이후에는 응 니네 쓰레기야~ 라고 돌아오는 것이고. 물론 주화입마의 위험이 없다고는 못허는디, 이러고 논지 5년이 넘었다. 그럴 걱정은 없다고 단언헌다.


그니까, 맘 편하게 일뽕 코스프레하면서 놀겠다, 는 이야기... 인데 역시 쉽게 되진 않겠지. 끊임없이 일본 개새끼를 외치며 일뽕에 취하는 수 밖에.


다시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는 나로 돌아가서... 상기한 스토오리가 있기에, 유신과 그 성공은 일본인에겐 정말 놀라울 정도의 짜릿함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현재의 일본의 꼬라지를 보면서 탄식을... 오늘 새벽에 피지ㄹ... 아니 피지알


https://pgr21.com/pb/pb.php?id=freedom&no=76379


이런 글을 썼다. 따로 포스팅 하는 게 좋겠다만 그냥 왠지 귀찮아서. 하튼 이제 "무시무시한 군국주의 일본" 은 한국보다도 군사비가 적은 나라가 되기 직전이다. 아! 너무 무섭다!!! 게다가 계속 생각하는 거지만, 극우파는 오히려 일본의 암이다. 그런 의고적 태도를 버리지 못하면 더더욱 일본은 과거의 영광에 얽메여 현실의 문제를 더 악화시키게 될 뿐이다. 일본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극우파는 정리해야 하는건데... 일본인들의 현실도피성향은 그런 것을 못하게 만들고 있달까나. 아베가 저러면 저럴수록 일본은 더더욱 위축될 뿐이고, 작금의 남북미정상회담 정국에서 그런 면모는 더더욱 두드러지지 않는가.


각설하고

하튼 작금의 일본의 꼬라지를 보면 일본인들은 우째 이런일이... 라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고, 그러다보니 놀랍고도 기적과도 같은 성공을 이어갔던 유신시절의 자국의 과거사에 대해 향수를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잘 나간다면 지금의 번영의 근원이라서, 못 나가더라도 그 때 우리는 빛났는디... 하면서 말이다. 여담인데, 하기에서 열린 유신 기념식의 분위기는 100주년 기념식과 150주년 기념식이 크게 다를 것이다. 일본이 엄청나게 잘 나가던 1968년의 100주년 기념식에서는 희망찬 분위기였고 앞으로"도" 잘하자 였는디, 올해 열릴 150주년 기념식에서는 아무래도 좀 찝찝한 분위기에 앞으로"는" 잘하자 가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일본이 잘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놈은 일부 어쭙잖게 일본에 대해 얄팍하게 아는 우익 지식인들 뿐이니까.


하튼 하기는 바로 그런 곳이다. 그렇기에, 이 곳은,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는 유신의 심장이 따듯한 일본인이라면 가보지 않을 수 없는 곳이 되는거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식의 자기변호를 혀야 할 일이 몇번 더 있긴 할게다. 시모노세키에선 신공황후 문제가 또 걸리는지라... 어쩌겠나. 한국인으로서 일본에 대해 깊은 애착과 격한 증오를 동시에 지니게 된 내 자신을 탓혀야지. 깔끔하게 증오만 하면윤서인처럼 애착만 가지면 문제는 편하겠다만, 나의 장점인 상대의 입장에 잘 이입하는 것과 나으 단점인 자기으 주체성이 모호한 부분땀시 그게 그렇게 되지가 안헌다. 판단과 통찰이란 점에선 분명 장점이라고 생각허기에 이렇게



자기과시 헌다만.


지난화에서의 여행분이다. 이번 화에서는 장거리 이동이 없을 것인지라, 이 지도는 올리지 않게 될 것이다.

대신



하기 시내 여행도를 올려야겠지. 하기의 위치가 어디인지는 윗 지도를 클릭하믄 확대되니 확인허시구.

앞서의 5화에서도 말 혔듯이, 실로 천혜의 땅이랄 수 있다. 좌상단이 지난 화에서 말혔던 시즈키산, 그 산 기슭에 하기성, 성 앞에 해자 하나, 해자 밖에 하기번의 사무라이들의 거소, 그 밖에 또 해자하나, 해자 밖에 성아랫마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둘러싸고 있는 아부강과 하시모토강. 아부강의 삼각주지대에 실로 절묘한 위치에 자리잡은 요새도시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육로로는 산음도의 길의 요충에 자리허구 바다로는 동해(일본해)의 수운의 가운데에 위치하니 물러서면 지키기쉽고 나서면 뻗어나가기 좋... 까지는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좋은 위치의 마을이라 헐 수 있긋다.


산음본선 철길은 역사유적지인 마을 한 가운데를 피하기 위해서인지 죠카마치(성아랫마을)를 크게 빙 돌아서 지나간다.지도상의 뻘건 선이 산음본선 철길. 지도의 좌측에서 진입하여 아래의 하기역(하기역 위치 표시가 잘못뒤얐다...저 바로 아래다. 그림판 다루는 실력이 구려 수정할 엄두가...)을 지나 우상단의 히가시하기역에서 종착혔다.


노오란 별들이 여행 포인트, 핑크색선은 하기에서 나가 돌아다닌 보행로이다. 화살표모양으로 진행방향을 표시혔는디 역시 그림판질이라 퀄이... 마을 자체로만 보면 작은 마을이다만, 전체를 완죤히 타통하려다보니 이 날 걸은 거리는 대략 14킬로미터... 문제는 관부연락선내에서 잠을 제대로 못 이루는 바람에 수면 시간이 2시간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 피로가 제대로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저렇게 돌아다니느라 증말 뒈지는 줄 알았다. 거기에, 역시 앞서 말혔지만, 다른 마을들에서는 10~11시에 일정이 시작되는디, 여기는 열차시간이 맞지 않는 바람에 13시에 일정이 시작되는지라, 시간이 부족해서 조급한 마음에 더 빨리 돌아다니느라... 원래는 이 여행도에 표시된 것보다 대략 대 여섯곳 정도는 더 돌아볼 계획이었는디 촉박헌 시간, 떨어진 체력으로 인해, 저 만큼 밖에 보지 못했다... 이번 여행에서 제일 발목을 잡은 것은 체력이었달까나. 물론, 나가 지도만 보고 계획을 세우는 바람에 감당하기 힘든 무리한 계획을 세운 면이 더 크긴 하겠다만, 대체로 다른 날들은 목적들을 거으 대부분 달성혔던지라... 가장 의욕적으로 계획을 세웠던 하기가 계획달성률은 제일 낮은 게 아이러니.


게다가 이것도 지난 화에서 이야기헌건디 이 날, 2월 3일은 날이 흐렸다. 날이 흐리구나, 하고 생각하고 별 생각없이 마쳤는데... 다음 날부터 날이 쾌청하니 풍경의 때깔이 전혀 달라지는 게 아닌가. 다음 날의 이와쿠니에서 돌아다니믄서 느낀게, '아 하기에서는 날씨가 좋지 않아 풍경이 그렇게 좋지 않게 느껴진거구나...' 라는 것을 절감혔다. 이래저래 첫 날에 신고식을 혹독히 헌 셈. 사스가 갓본으 8백만신은 이방인에게 호락호락허지 않으시다...


마 어쨌거나 열심히 뽈뽈거리고 돌아다녔고, 썰도 구구하게 장황허게 풀었응께 인자부터는 여행모습을 들여다 보기루 허자.


히가시하기 역의 모습. 최신식은 아무리 봐두 아닌디 뭔가 전통식이라기두 애매헌... 절충의 나쁜 사례같은 느낌? 물론 건물 자체로만 보믄 깔끔허니 잘 짓긴 혔다.


방장경략등장버스 답게 운수회사 이름도 방장버스. 이 야마구치현이 주방 장문 두 옛 지명을 합쳐서 된 지역이고 주방 - 장문 에서 한 글자씩 따서 방장 - 보초라는 약칭으로 불리운다는 것은 지난번에 이야기허긴 혔지만, 연재가 지지부진한지라 기억 못하실 분들도 많을 듯하여 또다시 설명충질.


되게 고풍스러운 건물이 나오는데 아무런 역사적인 뭣도 아닌 일반 가옥이다. 마 앞으론 이런 모습 지겹게 볼 거니까. 열차에서 내려서 처음으로 본 일본가옥이기에 찍어올림.


해수면으로부터 내 키만큼 높이도 안된다는 이야기... 동해(일본해)에서 쓰나미가 몰려오면 꼼짝도 못할 듯.


군대가 인기 드릅게 없는 나라에, 인구도 5만도 안되고 그나마 대부분 노인인 동네에서 뭔 군인을 모으겠다고... 마 유신의 심장의 그 동네이니 유신지사 같은 사람이 많기를 바라는 걸지도?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걸어 건넌 철길건널목. 협궤가 좁긴 좁다...


하도 연재를 질질끌다봉께 말 혔는지 안 혔는지 스스로도 아리까리헌디, 일본은 생태레벨이 한국보다 한 레벨 이상 높다. 한국에서 비둘기의 위치는 까마귀가 차지하고 있고 까마귀의 위치는 매인지 독수리인지 황조롱이인지 잘 모르긋는디, 하튼 이놈이 차지허구 있다. 사진 비율을 보시믄 알긋지만, 저 간지포풍의 새들이 바로 머리위를 날아다닌다. 원래 동물을 좋아허지만, 한국에서는 정말 쉽게 보기 힘든 이런 상위포식자 고오급 생물들을 코앞에서 마주허니 감동이 쓰나미처럼 몰려와서 열심히 찍었다.


첫 목적지인 쇼카손주쿠 - 송하촌숙으로 가는 길. 주요 역사여행지 답게 깰끔히 정비된 모습.


이제 한국에선 보기 힘들게 된 정글짐. 옛 추억이 떠올라 볼 때마다 찍곤 혔다. 지금 내 몸뚱아리로 저기 기어들어갔다간 껴서 나오지도 몬헐 듯.


기찻간에서 볼 때도 훌륭혔지만, 역시 내 발로 걸으믄서 코앞에 보니 느낌이... 이런 집들이 그냥 보통의 개돼지들 집이란게 참 놀라운 일이다.


일본의 자전거 문화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보편화되어 있다. 이것도 상당한 장점. 안전을 중시허는 꼬꼬마들도 헬맷을 열심히 착용허구 다니는디, 그게 무슨 경찰이나 공사장 하이바 같아서 묘한 위화감이~ 아키라에 보면 나오는 전공투들이 쓰고 다니는 하이바하고 기본적으로 비슷허다.


조슈번이 막부를 때려잡는데 맨 손으로 되는 것은 아닌 법. 당연히 공업을 발달시키고 무기를 만들어 막부보다 한 테크위의 군비로 딸리는 물량을 뒤집었다. 이러한 조병창에 제철시설, 조선시설등 여러가지 시설이 하기의 근대산업유산으로 남아 있는데, 나으 주 관심사는 아닌지라 지나가는 길에 보인 이런 것만 찍었다. 사실, 이 손바닥만한 마을에 하루를 풀로 할당혔는데두, 보지 못한게 노무 많은지라... 만약 다시 간다면 이런 것들두 둘러볼 겸 하기에만 3일은 할당할 거 같다. 산과 바다와 강도 많아서 풍광도 엄청 수려하거든. 식문화도 제대로 못 체험혔구.


쇼카손주쿠에 도착. 와시가 쇼카손주쿠주쿠죠 요시다 쇼인 데아르!


이 분도 참 훌륭한 장군님이시지...


일본의 역사마을을 돌아다니면 가장 인상깊은 것이 저 검은 기와가 얹힌 흰벽이다. 실로 白壁 - 시로카베의 민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랄까나... 한국은 백의민족 일본은 백벽민족.


쇼인신사의 정문. 쇼인이 위인으로 숭상받은 역사가 그리 오래된 게 아닌지라, 신사 자체가 근본있는 신사라긴 어렵다. 사실 애초에 일본전국 8~60만개의 신사중 거으 대부분이 메이지 다이쇼 이후에 제대로 숭상되기 시작헌 거긴 허다만...


경내는 차분한 공원삘이다.


센 리큐와 그의 제자 후루타 시게나리의 다도이야기를 다룬 효게모노를 엄청 재밌게 본 지라, 일본의 차 문화에도 관심이 있다. 이 건물은 이번 여행에서 처음 본 일본식 다실이라기에 찍음. 하기번 7대번주 모리 시게나리가 1776년 호후에 지었던 것을 쇼와 34년, 그니까 1959년에 여기로 옮겨 보관중이다, 라고 써 있는거 같다. 지어진 해가 미국이 독립선언한 해이구먼.


일본 서브컬처에 보믄 저 시메나와가 또 독특한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시메나와는 액을 막는 금줄인디, 그게 처져 있다는 것은 나같은 부정한 것을 퇴치혀야하는 중요한 곳이라는 의미일 터.


아니나 다를까, 요시다 쇼인이 유폐되어있던 집을 지키는 금줄이었던 것이다.


여태까지 봤던 집들이 현대식으로 어레인지된 전통가옥이라믄, 이 집은 명실상부 에도시대에 지어진 정진정명 진품 일본식 가옥이다. 솔까 쇼인이란 인물의 역사성을 제껴놓고 가옥으로봐도 충분히 아름답다. 중요사적이라 들어가보지 못하는 것은 아쉽.


드디어 쇼인신사에 도착.

안에 신관님은 오늘은 또 어떤 싸무라이들을 용기병으로 만들고 있으실런지


신사참배를 하기 전엔 여기서 손과 입을 씻고 가는 것이 참배의 작법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신사참배를 했다고 내가 일제에 혼을 판거 아니다. 문화체험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황국에 충성하는 것도 아니니 그런거 문제삼진 말도록 허자. 일본 여행동안 들른 신사에는 거으 대부분 참배를 혔다. 종교라는 것에 대해서는 기독이든 이슬람이든 불교든 가리지 않고 흘러간 과거의 찌꺼기 이상으로 취급은 하지 않는다. 다만, 수많은 사람들의 열망을 담은 문화의 결정체라는 점에서 그 자체는 상당히 흥미로운 대상으로 간주함. 한국 개신교단을 극히 싫어하지만, 개신교 교회의 건물들 자체는 사람들이 쌓아올린 욕망의 복마전이라고 보아 오모시로이하게 여긴다. 신사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 아직도 원시시대의 애니미즘적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본의 토인들이 자기들이 쌓아올린 허상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는 미몽의 현장으로 여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복마전의 개독이든 신사의 왜인이든 결국 내 눈앞에 살아있는 그들이, 삶의 근원이라 믿고 그것을 숭배한다는 것. 그들의 문화를 겪어보는 것은 그 만큼, 이 세계를 이해하는 경험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히 있다.


오옷 나무 도리이~ 확실히 격이 있는 신사는 나무 도리이를 쓰는구먼. 쇼인은 신으로 모셔진 위인중에서도 격이 아주 높은 인물이라 대우도 좋은 거 같다. 물론 모든 위인의 신사가 나무 도리이를 쓰는 건 아닐 것이기에 내 취향을 멋대로 갖다붙인 설명에 가깝다만.


너 사실 나치를 좋아하는 거 아니야? 물론 하켄크로이츠는 이 역방향이다만. 그려서 동양권에선 逆만자라고 부르긴 허지.

쫌금 흔들렸는디, 신사내전의 제단까지 찍어봤다. 근데 이거 찍어도 되는거겠지? 일단은 토인들에겐 신성한 곳인데 혹시 찍으면 안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일단 아무도 없어서 말리는 사람은 당연히 읎었다만.


일본도 공부문화가 발달한 나라라, 공부의 신으로 숭상되는 신들이 여럿 있다. 쇼인이 길러낸 제자들이 이룩한 일을 볼 때, 공부의 신 업계에서 그의 위상이 어느정도일지 설명이 必要韓紙?


어쨌건 여기도 전통신앙미신의 전당인지라, 길흉화복을 논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근데... 1977년생은 올해가 대액년이라는데? 나 올해 좆되는 건가? 몸 사리고 조심조심 지내야겠다.


캬~ 아무리 일뽕맞은 센징이 해봐야, 정품 일본토인이 야마토 다마시를 담아서 하는 것과 비할수는 읎제~ 정품 신사참배를 토인들이 하기에, 뒤에서 몰래 찍어봤다. 말 나온김의 이야기인디 저 야마토 다마시 - 大和魂 이라는 일본정신을 강조한 사람이 바로 요시다 쇼인이다.


용품창고 같은디, 장소가 장소다 봉께, 스타일을 신경써서 지은거 같다. 괜히 맘에 들어 찰캌


이 신사는 쇼인신사 좌측의 송문신사, 그니까 쇼인 문하생들을 합사한 신사이다. 송문에는 유명인사들도 많지만, 기억해주는 이 없는 스쳐지나간 사람들도 당연히 많고... 왠지 잊혀진 사람들이 쓸쓸해 보여서 찍어봤다. 물론 애초에 신사가 지어질 정도의 사람 자체가 그냥 잊혀진 사람들인건 당연히 아니지만.


쇼인신사 본당을 옆에서 찍은 모습. 앞에서 볼 때는 알 수 없는 나름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신사건축양식 자체가 이렇다. 앞에서 보면 평범한 기와집인디, 그 뒤로 통로 같은 게 지어져있고, 제단을 모신 진짜 본당은 저 뒤에 반발짝쯤 높게 지어져있는 구조이다.


물론 그거야 모셔져 있는 신의 위격이 높은 고오급 신사의 이야기고, 이런 약식으 소소한 신사들이 훨 많다. 개인적으론 이런 게 더 좋다. 위엄찬 신사들이 뭔가 비일상적인 느낌이라믄, 이런 작은 신앙의 장소들이야말로 보다 생활화된, 개개인이 체득한 문화라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지. 쇼인 신사답게 권학당이라는 팻말이 붙어져 있다.

무... 무녀님이다...

무녀님이 주신 경단의 맛 잊지 않겠습니다...

난 이 드립을 치기 위해 일본에 왔는지도 몰라...

항봉무녀는 고갤이 인정한 4대명작이니 야겜러들은 꼭 해보세요.


ㅋ~ 포켓몬뽕에 취한다... 신사경내에서 포켓몬 고 를 플레이하지 마세요 라고 쓰여있다. 근데 저 시점엔 이미 포켓몬 고 인기는 뽕이 다 빠진 뒤이긴 허다만... 전성기에는 쇼인신사까지 와서들 극성이었단 것을 알려주는 역사자료이다.


사스가 쇼카손주쿠...


보시믄 아시긋지만 굉장히 작은 건물이다. 원래는 제자들을 거으 독대하다시피 가르쳤다는디, 그 명성이 높아지믄서 저 좁은 방에서 복작복작 몰려서 가르침을 주고 받았다고 헌다. 현대 일본이 이 작은 부옥에서 태어난 셈이니, 일본인에게는 작지만 큰 집일테지.


강의실의 모습과 요시다 쇼인의 초상. 깐깐허니 잘 가르치게 생긴 거 같긴 허다.


쇼인과 그의 제자 내가 멋대로 이름붙인쇼인12철의 모습. 다카스기 신사쿠, 기도 다카요시, 쿠사카 겐즈이처럼 일본토인들은 잘 알지만 한국인은 잘 모르는 얼굴들 틈에 교과서에서 뻔질나게들 보았을 그 분의 모습이 우중단에 보인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국가적 위인의 地인지라 천황과 황태자내외도 왔다갔다. 연호가 헤이세이인 것으로 보아 금상 아키히토 천황과 황태자 나루히토 친왕이 왔다가 남긴 비석인 듯.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아키히토와 나루히토는 극우와는 거리가 먼 정도를 떠나 아예 상극인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도 당연히 일본인인지라, 쇼인은 위인으로서 존숭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이 곳이야말로 명치유신 태동의 땅


사실 그것보다는 이 비석을 남긴 사람때문에 이 사진을 올린 것. 원 내각총리대신 사토 에이사쿠가 쓴 글을 비석으로 남긴 것이다. 아마 그가 재임중에 이 곳을 정비하면서 남긴 게 아닌가 싶음. 사토 에이사쿠는 허구헌 날 내각총리대신이 바뀌는 일본에서 무려 7년 8개월이나 내각총리대신으로 재임해 역대 2위의 재임기간을 자랑한다. 1위는 3차에 걸쳐 7년 11개월을 재임한 가쓰라 타로. 정작 사토 에이사쿠는 그렇게 카리스마나 지도력이 강한 인물도 아니었음에도 오래 집권했다는게 특색이랄까. 비핵 3원칙으로 뜬금없이 노벨 평화상을 타서 그런지도? 군인 출신인 가쓰라 타로를 빼고 순수 문민중에는 최장기 집권 내각총리대신인디, 그런 점에서 괜히 좋아허는 인물.


불행히도 아베 신조가 작년 총선에서 압승하믄서 사토 에이사쿠의 기록을 월등히 넘을(1기 내각 합치면 10년도 넘을 수 있다)뻔혔는디 요즘 모리토모다 북핵문제다 점점 똥되는 분위기가 역력해져서 다행이지 시프요. 물론, 정치는 모르는거라 이런 위기를 넘기고 10년집권을 달성할지도 모르긴 허다만... 아베 같은애는 빨리 낙마혀야지.


쇼인신사와 쇼카손주쿠를 다 보고 나와서 마주친 선거 포~스타


요즘은 이야기가 뜸한데, 일본에서는 한국에선 사이비종교라고 뭉뚱그려지는 신종교, 신흥종교들의 세가 굉장허다. 그 신종교교단중 가장 세력이 강한 곳중 하나가 불교 일련종계열의 창가학회이고 이 창가학회는 세력을 바탕으로 정계에도 세력이 있는데, 그 정당이 바로 이 공명당. 나가 여행중이던 동안에 야마구치는 선거기간이었는디, 그랴서인지 정치포스타들이 많이 붙어있었다.


안내도인디... 좀 뜬금읎는건 한글패치가 잘 되어 있다는 것. 물론 일본은 자이니치가 지배하는 나라답게 한글패치가 음청 잘 뒤야있다... 만... 요시다 쇼인이나 이토 히로부미를 보러 한국 사람들이 올 일이 을매나 있겠나 싶은... 나같은 놈 말고 올 사람이 딱히 있기나 할런지. 잠시 뒤 이토 고택에 들르는 데 이 땀시 거기서 재밌는 에피소드가 벌어진다.


마을길 호젓허다... 유명 역사여행지이기 이 전에 평범한 시골마을이다.


일본 가옥들 모습. 靑田國男이믄 아마 아오다 쿠니오라고 읽겠지? 이 양반댁은 뭣 땀시 시메나와를 쳐 놨는지 몰것다.


앞서 말한 선거기간임을 더 잘 보여주는 포~스타. 앞서같은 포~스타는 통상의 정치선전 포~스타인 경우도 있는디, 이건 대놓고 선거 포~스타임. 야마구치현 지사선거를, 무려 이 다음날 치른다는 이야기다. 일본은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을 못허게 뒤야있어서 둘 다 무소속이다. 한국도 한때는 그랬지. 대신 어느 정당 추천인지를 밝혀서 소속을 알리는 식이다.


기호 1번인 쿠마노 유즈루 상은 사민당, 신사회당, 일본공산당 추천. 빨갱이새끼야! 선거 구호가 인상깊은게, 시민과 야당이 함께 야마구치를 아베현이 되지 않게 한다 라는 임팩트 넘치는 구호를 보여주고 계신다. 선거 이기고 싶은 당이 할 구호같지는 않다만...

기호 2번인 무라오카 츠구마사 상은 현직으로서 재선에 도전. 당연히 자민당 추천.


선거는 다음날 치뤄졌고... 야마구치를 아베현이 되지 못하게 하겠다고 사자후를 토하시던 쿠마노상은 7만표를 득표했다. 새 시대에의 돌파력을 역설하시던 무라오카 현 지사는 30만표...-- 이와쿠니의 호텔에서 NHK늬우쓰를 통해 봤음. 이 시기는 아직 아베가 압승한 작년 중의원선거의 여파가 강할때인데다, 모리토모 문제가 은근슬쩍 묻히는 분위기였던지라... 그게 아니라도, 지역구가 시모노세키인 아베의 홈 스테이트에서 자민당 후보가 질 리도 없고... 보수세력의 역사적 근원이라는 점에서 보자믄 야마구치는 한국으로 치믄 구미같은 곳이다. 물론 요즘 같은 정세에서 혔다믄 표차는 줄었겠지만, 승부가 뒤집힐 일은 없었을 것.


한국 사람들이 제일 얼굴을 잘 아는 일본인중 하나일 그 분의 상. 근데 뭔가 묘하게 싸구려틱해보인다...-- 이 양반도 일본에서는 위인이라믄 위인인데, 신사를 받진 못혔다. 요시다 쇼인같은 사람이야 당연히 받는거고, 그 제자이자 유신 3걸의 1인인 기도 다카요시도 받았는데, 이토 히로부미는 묘하게 그 격에 못 낀다는 것일까?


초대내각총리대신 이토히로부미 별저

라고 쓰여있다.


천황가의 사람들이야 전전에는 대놓고 신이었고, 전후에는 쉬쉬하며 신인지라 오가는 곳마다 비가 서 있는거야 뭐... 하물며 이것은 다이쇼 15년에 세워진 것. 다이쇼 시기에 황태자였다면 바로 그 분, 쇼와 - 히로히토를 말하는 것. 다이쇼 15년 - 1926년이니 천황으로 등극하는 그 해에 이 곳을 다녀갔다는 이야기가 된다. 조선 침략의 첨병의 집에, 일본 제국주의가 가장 극심했던 시기의 천황이 왔다 간 비이니... 역사의 때가 가장 짙게 농축되어 있는 유적이라고나 할까.


하튼 집에 들어서 본다. 다다미라는 게 참 맘에 드는 바닥재이지 시프요. 물론 관리하기가 개 빡친다고는 하더라만...--


이런 미니어처들도 있다. 사진은 기헤이타이 - 奇병대라고 메이지유신 당시 다카스기 신사쿠가 조직한 의용병대. 에도막부군을 물리치는 데 큰 역할을 혔다.


군산을 비롯한 한국에도 각지에 일본식 가옥이 남아있다만 이것은 정품 of 정품. 게다가 거주한 사람도 정품 of 정품 일본인이니 품격의 차이가...


계단은 언제나 상상력을 자극한다. 저길 오르면 무엇이 있을까.


크어... 다다미방!


크흐... 복도!


실로 일본일본함 그 자체다. 어둠의 그 것이긴 하지만 역사으 아우라가 얹혀있다보니 더더욱 일본스런 맛이 진하게 느껴지는 느낌이다.


소박하고 아담하게 꾸며진 정원으 모습.


어쨌건 일본에선 위인이다보니 위인전도 많다. 맨 아래으 책은 철저대연구 일본의 역사인물 이토 히로부미라는 정진정명 일본스러운 제목의 책.


요시다 쇼인이 일본 입장에서 위대한 사상가라믄 이토 히로부미는 많은 일을 하긴 혔지만 어쨌거나 실무자 실권자일 뿐인지라... 열심히 요시다 쇼인을 묻히고 있는 모습


이런 장면 효게모노에서 많이 봤지. 차 한잔 마시고 싶어진다.


일본을 많이 다닌 것은 아니다만, 보믄 청일전쟁의 종전협상인 일청강화회담에 대해서는 많이 다루는디... 성과면에서는 훨씬 컸다고 봐야 헐 일러전쟁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잘 안 다룬다. 대충 이유를 짐작해보자믄 청일전쟁은 일본의 압도적이고 일방적 승리로, 강화회담에서도 우리 일본 하고 싶은거 다해! 한 자리인데 비해 러일전쟁에서는 미국으 중재로 일본이 제발 이거도 주고 저거도 주세여~~ 하고 졸랐는 데, 로시아가 아니 안 줄거야, 우리가 피곤해서 전쟁 끝낼 뿐인거니 대충 먹고 떨어지셈 ㅋㅋ 하고 마무리헌지라, 그렇게까지 영광된 마무리가 아니었던 점이 크지 않은가 싶고... 거기에,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신 일본을 건설한 이후 최초로 대대적인 대외전쟁에서 승리헌게 청일전쟁이라는 점 등등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토 별저 탐방은 여기까지. 불편한 거 보시느라 수고들 많으셨셈.


앞서 말헌 재밌는 에피소오드를 풀 차례인디... 나는 딱 봐도 똥송하게 생긴 똥양인이다. 체격도 크고 험상궂은 놈이 머리도 빡빡깎고 혼자서 이 여행을 다녔다. 이 곳 또한 역사유적인지라 관리하는 사람이 있었고, 아담한 체구으 선량해보이는 일본 아지매였는디... 저런 똥양인이 혼자서 이 곳을 들어오니 이 분이 꽤나 의아하게 생각혔던 것 같다. 일단 딱 봐도 일본인은 아니다. 그리고 딱 봐도 동아시아 인이다. 전혀 동남아같이 생기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동아시아래봐야 중국 한국이 다 아닌가. 대만이나 몽골은 을마 읎응께. 근디 중국과 한국인들이 이토 히로부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이 집을 관리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잘 알 것이다. 그니까, 그 곳 사람들이 올 이유가 없는 곳인데 이 사람은 도대체 어디서 온 사람일까... 이게 그 아지매는 음청 궁금혔던 모양이다. 나가 관람을 마치고 나갈라 카는데, 이 아지매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혔는지 영어로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서... 차이니즈? 아메리칸? 이렇게 말허더라. 이 때 느꼈다. 아 이 아줌마 내가 한국 사람인거 눈치 챘구나. 한국인이라면 이토 히로부미는 철천지 원수라 이렇게 유심히 보러 들어올리는 없는데도 왔다는 게 지나치게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일본인 답게 대놓고 물어보진 못하고 에둘러 물어본 것이다. 그랴서 당당하게 코리언도 아니고 강고꾸진데스~ 라고 해 주고 왔다. 아줌마의 그 호기심이 풀어지는 표정에 괜시리 나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 다 들더라. 어찌보믄 이번 여행에서 가장 배덕감이 넘치는 순간이었달까나 ㅋㅋ. 일본어를 쫌금이라도 할 줄 알았다믄 왜 왔는지 이야기해줘도 뒤얐을텐디... 아마 그 아지매도 한국인인데 이 곳에 온 이유가 무엇인지 무진장 궁금혀서 더 물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다만, 여행기 내내 보시믄 아시다시피 나 자신, 왜 그딴 걸 보러감? 이라고 물어보믄 에... 또... 하믄서 말이 길어지는지라 깔끔히 설명허기는 쉽지가 않아서... 짧은 일본어로는 그냥 오셨어요~ 네 왔십니더~ 하고 헤어지는 정도였을 듯.



다음 목적지인 요시다 쇼인의 생몰지를 가 보기로 허자. 가는 길에도 일본 가옥들 퍼레이드는 여전히 화려허다. 저 나무로 높게 올린 구조의 부옥이 또 일본 가옥의 특징적 모습중 하나. 앞에 잘 다듬어진 조경수또한 극히 일본적. 저런 소박한 집 마당에 저렇게 다듬어진 나무라는 게 참 놀랍다.


일본식 정원조경수는 기본이고 고오급 스러운 시로카베로 둘러친 집. 이 집 주인은 확실히 재력이 좀 될 것 같다. 시로카베란게 돌아다니다보니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흔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역사유적이 아닌 집인데 이렇게 치고 산다는 것은 만만찮은 재력의 소유자라는 말일 터.


이 높게 솟은 나무로 된 건물은 진짜 꼭 한번 들어가보고 싶다. 지인이 일본에 진출할 예정인디, 이 양반한테 나중에 일본에서 돈 벌어 집사면 꼭 저런 집 사라고 혀서 들어가 봐야지.


하기 전반부에 봤던 가옥중 가장 맘에 든 집


벽돌로 쌓은 벽은 쫌금 아쉽다만... 기와지붕 얹고 기름먹인 나무로 벽을 둘러친 집이 이시가키... 아니 축대위에 올라가 있다.


거기에 담장밖으로 수줍은 듯이 빼꼼히 내다보는 한 떨기 꽃송이...


집 문까지 굉장히 완성도 높은 일본식 가옥의 구색을 증말 잘 갖추고 있다. 진짜 집 구경만 해도 질리지를 않는다.


이 것은 요시다 쇼인의 숙부 타마키 분노신의 구택. 타마키 분노신은 요시다 쇼인에게 물적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된 양반이다.


일본식 초가집 지붕. 이 지붕이 또 맘에 들더라구.


내부는 평범한 다다미방. 8첩이나 되는 널찍한 방이 줄줄이 이어져 있다.


중간에 사진이 좀 없는데... 라기보다는 사실 나가 지나치게 사진의 밀도가 높긴 하다만... 하여튼 중간에 언덕길을 오른데다, 6일간의 일정중 유일하게 비가 내린지라(4일차엔 눈) 비를 피하며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사진이 좀 없다. 대략 언덕길을 수십분 올라서 도착한, 요시다 쇼인의 묘역. 메이지 유신 150주년임을 알리는 표지들이 자기과시 하고 있다.


요시다 쇼인 여기 잠들다.


쇼인의 묘 인근은 그의 관계자들의 묘로 채워져 있다. 다카스기 신사쿠 말고는 다 잘 모르는 사람이라 중요헌건 아닌디... 맨 오른쪽 다카스기 신사쿠의 호칭은 쇼인 문하생 쌍벽의 1인이고 맨 왼쪽 요시다 토시마로는 쇼인문하생 사천왕의 1인 이라고 뒤야 있는디... 일본인들은 이런 칭호 너무 좋아한다. 쌍벽 삼인중 사천왕 등등. 전국시대로 가면 사명신 오대로 오색비 칠본창 24장 삼대장 등등 이런 게 증말증말 많음. 이런 중2스러움이 또 일본으 매력이긴 허지. 저런 칭호들 전부 한번 정리한다한다 벼르고 있는데 귀찮아서 참 안해진다.


요시다 쇼인이 태어난 곳은 터 밖에 남아있지 않다. 터를 보아허니 유복한 집은 아무래도 아니었던 듯.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네~


이 곳의 진짜 의의는 이 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기의 전망이 잘 보이는 곳이었다. 그리 많이 올라오지 않는데 비해 전망의 가성비가 상당허더라. 보다시피 날이 흐렸기 망정이지 쾌청했다믄 정말 노올라운 뷰를 보여줬지 시프요.


이제 다음 목표는 저 지월산을 향하는 것이다.


6화에서는 이 만큼을 이동혔다.

얼마 못 갔잖아...--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결국 4일만에 쓴다... 마 열심히 운영해서 수 천 수 만명씩 방문자를 끌어오는 블로그도 있다만, 대개 블로그는 자기 생각 가볍게 쓰는 곳이다. 마, 나라고 수 만명씩 오길 안 바라느냐면 완전히 그런건 아니긴 헌디, 일본해가 어쩌고 천황폐하가 어쩌고 대본영이 어쩌고 하는 블로그에 수 만명이 오면 그게 더 문제이지 싶기도... 애초에 수 많은 사람들이 오기를 바라기보담은 내가 하는 생각을, 그냥 흘려보내기보다는 뭔가 써서 남기고 싶은 바램에 하는 곳이기에 결국 여기는 내 일기장 이상은 아니다. 그렇기에, 맘편히 쓰면 되고 워낙 생각이야 많으니 줄줄 써내려가면 그만인데... 그게 또 막상 쓸라믄 그렇지가 않다. 그래도 잘 쓰고 싶고, 결국 나가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는디, 그게 왜 좋고 왜 믓찐지를 제대로 쓰고 싶다보니 그게 부담이 뒤야서 부담감땀시 에이 내일쓰자, 에이 모레쓰자 하고 미루게 되네. 마 이 또한 나으 심정이니 으짤 수 있나. 그런갑다 하구 써 내려가야지. 어떻게든 6월에 가고시마 가기 전까지는 다 쓰는걸루


각설하고

오늘은 어떻게든 하기에 도착혀 보기루 허자.

은가이 일본 다녀본 사람이래두 야마구치 같은 시골은 생소하지 않기가 힘들기에, 지도를 적극 첨부혀야 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랴서, 이번 회 부터는 글 머리에는 지난 회에 지나친 곳들을 지도로 보여주고, 글 말미에는 이번 회에 지나친 곳들을 지도로 보여주고하는 지도로 열고 지도로 닫는 구성으로 해보기루 혔다. 무계획적으로 쓰다봉께, 시행착오가 많지만, 써 가면서 발전하는 거라고 자위대해보자.


그런데, 막상 그려보니...


분홍색선이 시모노세키에서 하기까지의 동선인디 반도 못갔네... 아직 시모노세키 시역을 벗어나지도 못혔다... 사진을 좀 더 줄여서라도 이번회엔 반드시 하기에...


철도를 타고 지나가는 구간이 많긴 하지만, 사실 대부분은 도착한 목적지에서의 사진과 여정이 훨씬 많다. 다만 시모노세키에서 하기까지는 로컬선으로서 속도도 느리고 뷰포인트도 많은데다 관광열차인 마루마루노 하나시를 타기까지 혀서 이렇게 내용이 많은 것. 2일차의 녹색선상중 전반부의 미네선 구간에선 사람이 많아 사진 별로 찍지도 못혔고, 후반의 신간선은 285킬로미터로 주변경관과 스치듯 안녕이니 찍은것도 별로 없음. 마 아예 없다는 건 아니구... 이빨 털면 그 선상에서도 한 회는 뽑을 수 있지만 그러지 말기로... 지도는 2원화할 것이다. 야마구치 전체에서 현재위치가 어디인지 보여주는 지도와, 그 현재위치를 확대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돌아다녔는지 보여주는 지도로. 지난 4화와 5화처럼 장거리 이동간의 내용만 있는 경우는 이처럼 전체지도만 올릴거구.


검은색선이 해당 회차에서 이동한 코스가 될 것이고, 회색박스로 전체에서의 위치를 표시할 것임. 점점 제도화되어간다~


각설하고

5화 시작합니다


마을 자체는 평범하지만 주변 지리가 참... 주고쿠 산맥의 계곡 한 복판에 깊게 자리한 마을 너머로 바다가 보인다는 위치가 참 멋드러지지 시프요. 저 마을 한번 가서 바닷가부터 계곡따라 산마루까지 올라가 보고 싶더라능.

우미노 미에루 마치~


생각난김에 듣고들 가시라.



나가토후타미역과 에키덴마치. 역 이름은 나가토지만 행정구역상 시모노세키시내이다. 이런 경우는 현재의 나가토시가 아니라, 령제국 시절의 나가토국의 이름을 딴 것이다. 산음본선상의 시모노세키, 나가토, 하기는 전부 폐번치현 전에는 나가토국. 한국같은 경우는 조선시대의 행정구역이 거의 그대로 이어진지라, 이런 괴리가 벨루 읎는디, 일본같은 경우는 1872년 폐번치현 이전과 이후가 행정구역이 극적으로 달라지고 그 시기가 그렇게 오래된 것이 아닌지라, 현행행정구역이 아님에도 구 행정구역명이 상당히 많이 쓰인다. 특히 철도에 그런 흔적이 많은데, 이를테면 구마모토시와 오이타시를 잇는 규슈 중부내륙을 타통하는 간선의 이름은 호히본선이다. 오이타의 옛 지명인 豊後에서 豊자를, 구마모토의 옛 지명인 肥後에서 肥자를 따서 豊肥본선이라고 부르는 것. 豊後는 분고이고 肥後는 히고인데 분히가 아니고 호히인 이유는 豊자가 일반적으로는 호라고 더 많이 읽히기 때문. 이런 경우가 넘쳐 흐르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철도노선은 이런 식이다. 산음도 같은 이름도 이젠 공식적으론 안쓰지만 우리는 지금 산음본선상을 달리고 있지 않은가. 일본어의 고유명사의 무체계성은 전 세계는 몰라도 확실히 OECD 내에서는 분명 제 1일 것이기 때문에, 그냥 외워라... 일본에 대한 애정이 생기면 다 외울 수 있다.


...

이 학교... 운영하는거 맞나? 물론 나가 산음본선을 답파한 날이 토요일인지라, 학교가 쉬는 날이긴 했다만, 산속 사람도 마을도 별로 없는 곳에 휑뎅그레~허니 놓여있는 학교를 보니 뭔가 좀 음탕... 아니 음산한 생각이 들더라. 버려졌다기엔 노무 깨끗헌 것두 같구... 버려진 학교라면 당연히 이사쿠를 찍고 있을테니 음탕하기도 할 것. 첫 사진의 저거는 아무래도 수영장같은디, 2월에 수영할 일도 없을텐디 물은 왜 채워놓았댜... 이래저래 미스테리한 학교였다. 이사쿠 아니면 코난과 김전일이 지배하고 있는 학교일지도. 여기는 일본이니까.


ㅋ... 산골짜기에 콕박힌 마을을 감싸고 도는 구불구불한 삼나무 옛길... 아늑하기 서울역앞 그지없다...


아늑한 일본집들. 마지막 사진은 장작을 패서 쌓아놓은 게 특이해서 올림. 요즘같은 세상에 장작을 때는 집이 있나? 일부러 앤틱하게 벽난로를 쓰는 집이 있을지도 모르긴 하다만.



흐리게 나왔어도 역명판은 어지간하믄 올린다. 타키베역의 모습


일본가옥이 잘 잡혀서 올리기두 혔다만, 오른쪽의 보다 전통적인 일본가옥과 왼쪽의 세련된 현대식 가옥이 대비가 되는 것도 맘에 들어 올렸다. 오른쪽은 아늑한 맛이, 왼쪽은 세련된 맛이, 그러면서도 둘다 일본맛이 난다는 게 참 일본일본하다.


이런 집은 진짜 레고같지 않냐. 레고 일본성 시리즈 같은 느낌이 든다. 아기자기하고 깔끔하다는 말이 끊임없이 튀어나오지 않을 수가 읎다.


이 곳은 코토이 역이라는 곳인데... 완전 깡촌의 시골역이다시모노세키 이후 안 그런 역이 있었냐꼴랑 자판기 한대가 편의시설의 전부... 일본은 자판기 대국이다. 이번 여행중 호텔에서 아사히 신문을 줏어봤는데, 거기에 실린 자판기 기사에 따르면 현재 일본의 자판기는 250만대... 근데 이게, 급감해서 이정도랜다. 전성기는 270만대라던가...


코토이 역의 승강장


토인할매들이 내리는 모습. 이 모습을 보고 감회에 빠진 게, 이 전에 나가 쓴 여행기중에 가장 공들여 쓴 것은 2012년에 경전선 동부구간의 구선이 신선으로 대체되기 직전에 여행가믄서 거기서 찍은 사진이 오버랩되어서였다. 원북역이라는 곳인데, 그 곳의 할매들이 내리는 모습이 이 모습을 보믄서 떠올랐던 것.


이 사진이다. 한참 찾았네. 2012년 4월에 전국한바퀴 도는 여행을 혔었는디, 그 당시 원북역에서 찍은 사진임. 지금 저 원북역은 사라지고 없다...ㅠㅠ 워낙 외진 곳이라, 대체역조차 생기지 않고 그냥 사라져버림. 넘나 안타까운 것... 코토이 역은 당분간은 없어지지 않겠지.


체고에 안락함을 자랑하는 코토이역 편으시설


한국발음으로는 특우역이다. 특상급 와규라도 기르는 곳이려나?


마시마로생산이라믄 일본도 한국에 뒤지지 않는 대국이다. 아무래도 쌀 생산량이 많으니 일본쪽이 더 많겠지.


다시 바다가 펼쳐진다. 해안도로변에 홀로 솟을바위가 하나 돋아있다. 분명히 저 바위에는 발파하려 혔더니 인부가 기절했다더라, 같은 전설이 붙어있을거다. 여긴 일본이니까.


앞 바다에 떠 있는 아담한 섬. 분명 저 섬에는 요괴가 출몰해 아이들을 납치해다 잡아먹었다는 괴담같은 게 붙어있을거다. 여기는 일본이니까.


나가 여행을 잘 즐기는 이유를 들자믄 이런 모습들을 들 수 있다. 별 거 없는 허허벌판이잖아? 근데 난 이런거만 봐도 자지러진다. 떨어지는 낙엽에도 깔깔거리는 여고생의 감수성이랄까나. 허허벌판 펼쳐지다가 건널목을 넘어 가로지르는 도로 하나라도 나왔다간 기절을 한다. 감각의 역치가 낮아서인지, 이런 심심하고 평범한 모습들만 봐도 괜히 감흥이 돋고 그런다. 그러니, 여행을 하면 순간순간이 다 즐거움이 아닐 수가 있겠는가? 뭐 나쁜 것은 아니고 오히려 좋은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별거 아닌 것에서도 감흥과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은 좋은거 아니겠나?


히토마루역의 모습. 여기서부터 나가토시이다... 면 좋겠지만, 사실 이 앞의 이가미역이란 곳부터 나가토인디, 못 찍었다... 구경을 열심히 하다봉께, 놓친역이 쫌금 많다...


나가토 후루이치역으 모습. 중간 거점격이자 철도분기점이기도 헌 나가토역에 가까워지니 역의 빈도가 는다.

스게에... 스고이데스네... 이런 멋드러진 전신주를 보고 어찌 감탄않을 수 있으리. 어차피 경관에 장해가 될 전신주라믄, 이렇게 고즈넉한 멋이라도 있어야지 않을까.


멀리 신사가 보이기에 또 찍어봄. 대개으 도리이는 돌 도리이다. 왠지 돌 도리이면 근본없어 보이는 느낌... 현실적으로는 나무도리이로는 제대로 관리하는게 불가능에 가까우니 으짤수 읎겠다만서두...


이런 집도 진짜 일본성채같다. 거기에, 저 나무 나가 교양이 짧아 무슨 나무인지는 모르겠다만 일본식 정원하믄 저런 나무 하나 있어야지 싶은 나무라 더더욱 좋다. 돌 기단에 기와얹은 흰벽으로 둘러치고, 성문같은 계단위의 정원에 천수각같은 가옥과, 일본식으로 꾸며진 정원의 모습의 집. 문화적으로 일본은 정말 특색이 강한 스타일리스트같은 느낌이 있는데, 집이라는, 가장 일상적인 곳에서도 그러한 스타일이 두드러진다는 점이 일본을 좋아허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모습.


산음본선상에서 바닷가 사진은 흔한 것.


중간경로의 필두격인 나가토시에 진입했다. 시가지의 여러모습들을 대충 올려 봄.


사진찍는 사람을 찍는 사진. 난 이런 메타적인 상황을 참 좋아헌다. 분명 내 뒤에선 또 누군가 나를 찍고 있었을거야.


마루마루노 하나시는 나가토에서도 환영받는다.


마루마루노 하나시의 한 축을 담당하는 대국 나가토다운 화물하역모습... 인데 나가토시는 인구가 3만여명밖에 안된다... 이래서는 한국의 군들 중에 갖다놓아도 중하위권... 다만, 나가토는 철도가 분기되는 요충지이기두 허구... 일본의 지리적 특성상 연안해운이 엄청 발달혀있다. 거기에, 선박과 함께 화물의 양대축인 철도가 일본에선 고자다. 철도대국이지만, 협궤철도의 한계땀시 철도의 화물운송기능이 형편없는 것... 그러다보니 이런 작은 시골에도 거점항이믄 저런 하역시설은 쉽게 볼 수 있는 것.


일본마을 중에서도 한 구석의 미깡나무와 함께 찍혀 야마구치임을 과시하는 모습


여행에 대한 나으 모토는

너의 일상은 나의 일탈

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가는 여행지는 누군가가 일상을 보내고 있는 곳 아니던가. 이런 일상적인 모습이야말로 어찌보면 나가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더 잘 보여주는 것 아닐까. 바람에 날리는 빨랫줄의 빨래와 미깡빛 지붕과, 텃밭과 옆의 허물어져가는 빈집까지 관광열차 차창밖에서는 풍경이 된다.


일본가옥사진을 자꾸 올리는 이유는 좋아하시는 분은 더 많이 보시라고, 안 좋아하시는 분은 자꾸 보고 좋아하시게 되라고 올리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스스로의 가옥을 어떻게 생각헐지 궁금헌디... 나가 만약 일본인이었다믄, 일본의 가옥문화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졌을 거 같다. 다녀본데 래봐야 홍콩, 상해, 마카오, 대만, 일본, 한국뿐인디, 그 중에서 가옥이 지어진 주거지구는 일본이 최고인 거 같다. 서울으 별 볼일없는 가옥들 사이를 걸어다니는 것도 좋아허는 내 입장에선 이런 집들이 즐비한 곳은 그 자체로 천국이다.


나가토 미스미역의 역명판. 다음역인 이이역은 일본에서도 가장 간단한 이름의 역이 아닐까. 한자로는 飯井역이라 그렇게까지 간단하진 않다만. 마치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믄 ㅇㅇ 역같은 느낌이지 않은가.


이제는 흘러간 밈이지만 이 친구도 생각나고.

yeeyee역


흔들려서 흐릿한 사진 왜 올렸냐믄... 다리 교각밑에 퍼덕이는 물새 보이는가? 물새가 막 물을 박차고 떠오르는 장면이 인상깊어 찍은 것이라 올린거임. 순간포착이 빛나지 않냐? 흔들린건 아쉽지만.


ㅋ... 저 골목속으로 빠져들거 같다...


한국도 한옥가옥건축이 쫌금 더 발달혔으믄 이렇게 될 수 있었을 거 같은디... 기와지붕 올리는 건축양식이야 양국이 대동소이허니께. 일본이라고 막 돈이 덤벼서 코스트 무시하고 저래 짓는것은 아닐거구, 하도 보편적이다보니 단가도 낮아지구 기술도 보편화뒤야서 저렇게 된 거 아니겠나. 건축문화의 빌드업 과정에서의 차이가 이제와서 양국의 건축문화의 격차를 돌이킬 수 없게 벌였다고 생각허니 참 아쉽다... 한국에도 이런 전통가옥건축이 보존뒤얐다믄 굳이 일본에 와서야 이런 감흥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닐텐디...


앞서 썼던가 모르긋는디, 일본은 굳이 한옥마을... 아니 和옥마을을 갈 필요가 읎다는 게 이래서이다. 그냥 동네가 다 화옥마을인디 뭐하로 화옥마을을 굳이 가나. 현실은 어마어마한 교통비땀시 어디 여행갈라믄 큰맘묵고 가야허는게 문제긴 허다만. 교통비만은 절대적인 한국의 승!


여행기념품으로 이런 것을 주더라. 하기는 도자기로 유명헌 곳인디, 그 하기에서 만든 도자기다. 이래저래 마루마루노 하나시를 탄 것은 여행의 첫 장을 굉장히 풍요롭게 해 줬달까나. 근디, 이게 부피가 미묘하게 커서... 캐리어가 아니라 약간 큰 백팩하나 메고 간 입장에서 담을데가 부족한게 문제... 이거 우겨넣느라, 가져간 짐중에서도 없어도 되는 거 일부는 버리고, 가방 싹 다 다시  싸느라 첫날 숙소에서 고생좀 혔다. 그리고, 지금은 방 한구석에 고이 모셔져 있는 중. 나가 워낙 차든 물이든 왕창 마시는지라, 기념품 수준의 작은 잔으로는 양이 노무 작아서...


우미노미에루마치가 넘쳐 흐른다...


데챠아아앗! 똥전신주상! 시야를 가리지 마는 데샤아아앗!!!


사실 열차차창밖으로 찍는 사진은 이렇게 버리는 게 반이다. 정말 맘에 들어서 찍었는디, 열차가 워낙 고속으로 이동허는지라, 나중에서야 이렇게 노이즈가 끼었음을 알게 되는 게 태반. 전신주가 없었다믄 완벽한 앵글인디, 설명충짓을 한다는 핑계로 망친 사진 올려본다.


아늑허다...


계속 이어지는, 지나치게 빛깔이 좋은 바다...


근데 바닷가에 쓰레기들이... 저건 다 자이니치가 버린 것입니다.


계속 이어지는 지나치게 고운 일본가옥들.

어찌보면 계속 이 패턴이긴 혔다. 바다 가옥 바다 가옥 가끔 들판 다시 바다 가옥.

나가 노무 심심한 것을 좋아하는 건가... 이런 모습들만 줄창 이어지더라도 많은 분들이 좋아허믄 좋을텐디.


다니믄서 보니까, 일본 놀이터에는 아직도 정글짐이 많이 있더라. 저거 한국에선 위험하다고 다 철거혔는디... 일본 아들은 보수주의 소극성이라 안 위험하게 잘 노나? 나 소시적엔 하튼 저기서 나름 재밌을 거 같아 들어갔다가 얼마 안가 싫증나서 나오기를 거듭혔던 기억이 선허다.


수 없이 올린 바다사진도 이 것이 마지막이다.


보인다! 하기! 행정구역상의 하기에 들어온 지는 쫌금 뒤얐다만, 저것을 하기라고 하는 이유는 저 산, 指月 - 시즈키산이, 조슈 모리번의 거성이었던 하기성이 자리잡았던 산이기 때문이다. 원래 전국시대부터 천혜의 요해여서 아마고씨 오우치씨가 지배할 때도 시즈키성이 자리혔던 곳이지만, 히로시마 아키 요시다고리야마 성이 거성이었고, 주고쿠 일대를 제패해서 주고쿠내에 전략적 위협이 사라진 모리 모토나리 이래 모리가문이 지배하는 동안에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지역이었으나... 세키가하라전투에서 모리가문이 좆되고 스오 나가토 2국만이 남게된 이후 방어에 적합하면서 해상운송에도 편한 이 곳에 거점을 잡아 조슈 모리번 250년의 역사를 이어가게 되는 곳이다. 딱 봐도 바닷가에, 평평한 해안에 홀로 우뚝 솟은게 방어와 교통 모두에 유리해 보이지 않나? 하물며 이 사진에선 알기 힘들지만, 저 산의 양 옆으로는 또 강줄기가 흘러간다. 역겨운 도쿠가와군 따위는 10만명이 몰려와도 다 쳐 죽일 수 있는 천혜의 요새인 것이다.이에야스님 사랑합니다 충성충성충성


모순될지는 모르긋다만, 나는 전국시대 가문중에서 도쿠가와 가문과 모리 가문을 둘 다 좋아헌다. 서로 거칠게 대립했지만, 대립이야 그들 일이고 그 가문의 역사의 멋에서 감흥을 느끼는 것은 나으 일이니까. 세키가하라에서 도쿠가와가 이겼을 때도 좋았고, 무진전쟁에서 모리가 이겼을 때도 그들이 느꼈을, 250년의 원한을 풀었을때의 감정을 생각해보니 짜릿하더라.


시즈키산 밑으로 펼쳐진 하기마을의 모습. 역시 일본일본하다. 보시믄 아시겠지만 지붕일부에 눈이 쌓여있다. 이 시기 일본은 역대 최악의 폭설이 전국에 내리던 시점. 저녁이 되어 숙소에 들어가 늬우쓰를 틀 때마다 어디난 40센치, 어디는 60센치 속보들이 이어졌다. 내 여행도 좆되었어야 마땅허나... 어찌된 일인지, 야마구치의 서쪽인 후쿠오카와 야마구치의 동쪽인 시마네는 폭설로 뒤지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야마구치만은 별 다른 악천후가 없었다. 총 6일 일정중 눈이 온 것은 4일차뿐이었고, 심지어 2, 3, 5, 6일의 4일은 흐리지조차 않은 쾌청한 날씨를 보였다. 이는 일본의 8백만신께서 일본을 숭모하여 찾아온 반도으 꼬꼬마를 가호하심이리라~

일본일본한 마을에 미깡을 얹으면 야마구치. 하기 역시 밀감이 횡행한다. 밀감 못 먹어보고 온게 새삼 아쉬워지는군.


일본가옥중에서도 특히 이렇게, 1층에 복층식으로 지붕을 얹은 구조가 맘에 든다. 천수각으로 치자믄 2층천수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나. 일본 가옥을 들어가보지 않아서 저런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진 모르겠다. 아마 다락으로 쓰지 않을까 싶은디... 차라리 그냥 2층을 올리면 올렸지 저렇게 올려야 할 당위성이나 효율성은 없어 보이는데도 저렇게 많이 짓는 것이 또한 일본의 形 스러운 느낌이라 증말 좋다.


하기성의 천혜의 해자역할을 맡고 있는 남의 하시모토 강. 하기성의 북측 해자역할을 맡고 있는 아부강은 더 가야 보인다. 두 강이 둘러싸고 있는 삼각주격의 지역이 하기성과 그 성아랫마을이고, 하기의 구 시가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하기역의 모습들. 옛날에 쓰이던 개찰구가 앤팈허다.


하기역 역명판. 이름은 여기가 하기역인데, 하기의 철도교통의 중심이자 마을의 중심은 하기역이 아닌 이 다음 역인 히가시하기역이다.


지금 쓰이는 개찰구인디... 이것도 앤틱허잖아! 원래도 옛 것을 잘 보존허는 일본이다만, 최근 수십년간 경제를 중심으로 사회가 멈춰버리다보니, 더더욱이나 시간이 멈춘 마을, 시간이 멈춘 나라가 뒤야부렀달까나.


여기서도 마루마루노 하나시를 직원들이 환영헌다. 이야깃거리가 되는 사진인디 흔들린 게 아쉽.

종착역인 히가시하기역에 닿기 전 마지막 철교인 아부강 철교를 건너고 있다. 강물에 귀엽고 맛있는 오리들이 많이 떠 있는 모습.


바로 이 지점이 아부강과 하시모토강이 갈라지는 지점이다. 왼쪽이 지금까지 달리면서 보아온 하시모토강, 오른쪽이 원래 강의 본류인 아부강.


평범한 사진임에도 올린 이유는, 달리는 마루마루노 하나시의 객실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이기에.


관광열차이긴 허다만, 아무래도 나같은 가이진들이 이용하기에 접근성이 좋은 열차는 아닌지라... 대부분 토인들이 탑승혔던 것으로 추정헌다. 하기는 일본내에서도 꽤 랭크가 있는 역사관광지인지라, 토인들도 많이 찾아온다고 헌다.


마루마루노 하나시


저 너머로 달려가면 경도까지 닿는다. 경도까지의 거리, 572킬로미터...


안녕 마루마루노 하나시. 잊지 못할거야...

이제 고작 여행 1일차 시작인데, 벌써 한참 써 온 느낌이 든다몇일 걸려 쓴지 생각을 해라 괜시리 감흥이...

드디어 하기에 도착혔다. 다음화에서부터는 뚜벅이다.


5화에서는 이만큼을 이동하였다.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오늘의 닮은 꼴은 태평양 양안의 진짜 싸나이들



이젠 알렉산더 카렐린이 얼마나 유명한진 잘 모르긋다. 사상최강의 싸나이중 하나이긴 헌디, 인쟈 카렐린도 옛날사람이라... 그랴두 어쨌건 개돼지들 사이에선 카렐린이 유명하긋제.


궁내청 장관... 이라면 비교가 쫌금 애매허니 황거 비서대신이라고 치믄 백악관 비서대신이란게 그렇게까지 획기적으로 중요한... 자리 맞나... 하튼 중요하다믄 중요하고 안 중요하다믄... 그럴리가 없는 자리이지만 역시 비서는 비서인지라 미묘한 인지도를 갖고 있을 존 켈리 백악관 비서대신.


닮지 않았나? 강인하고 터프한 싸나이들이라는 점에서도 통하는 부분이 있고, 애초에 카렐린같은 역대급 싸나이와 닮을라믄 본인도 싸나이가 아니고서야 될 일이 아니니 존 켈리 비서대신도 어지간히 믓진 싸나이 인 덧.

멋있는~ 사나이~ 많고 많지만~~


올해한정 통하는 점인데, 존 켈리 비서대신은 50년생 67세이고 카렐린은 67년생 50세임. 이거야 두 사람으 생일이 지나믄 달라질 거지만, 찾은 시기가 미묘한데요~ 뭐랄까... 남성성이라는 것이 결코 긍정적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만 기본적으로 가치를 메타적으로 평가하는 입장에서는 부정적 가치라도 그 정점에 달한 사람을 도저히 낮게 보지를 몬하는 편이다. 이렇게 싸나이들을 모아놓고 보니 그것도 믓찌네... 하는 생각도 듬


이 또한 멋진 싸나이들. 구차하게 설명들어가자믄 좌 -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중 -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우 -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안타깝게도 헤르베르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대신이 대장을 못 다는 바람에 3대장이 못된건 아쉽다만, 몽키 D 가프도 대장급(사실 짬으로는 원수급...) 중장이잖아? 가프 중장인 셈 치자. 그 동안 마리조아의 도람푸 천황폐하의 황거에서 그를 보좌혔던 3대장들도 증말 스트롱한 싸나이들이다. 어지간히 스트롱하지 않고서야 그레이트를 입에 달고 살 정도로 그레이트한 천황폐하의 망나니짓을 억누를수는 없었을 터. 듣자허니, 이 3대장을 세간에서는 부시의 Axis of Devil 에 빗대어 Axis of adult 라고 불렀다 하더라. 철딱서니 없이 망나니짓이나 하고 다니는 트럼프에 대해 어허 트럼프쿤, 그런 망나니짓을 하는 분충은 용서하지 않아요! 하고 얼러왔다는 점에서.


아쉽게도 오늘 헤르베르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대신이 일가실각하는 바람에, 이 멋진 3대장의 모습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후임은 존 볼턴. 부시시절에 그만큼 말아먹었음 뒤얐지 뭘 또 겨나온댜... 다음 차례가 누가 될런지는... 다른 2대장은 당장은 짤릴거 같진 않지만, 굳이 누가 먼저 짤리냐면 매티스 방위대신이 먼저 짤리지 않을까 싶기도. 켈리 비서대신은 천룡인이자 차기 대통령인 이방카의 남편 쿠슈너를 슬쩍 눌러줄 정도로 힘을 쓰고 있응께. 어른의 축이 그나마 트럼프의 폭주를 누르고 있는데, 아카이누 대장격인 켈리 비서대신이 짤리는 날은 어쩌면 지구 최후의 날일지도.


트럼프도 허우대는 멀쩡혀서 비주얼 상으로는 멋진 싸나이의 조건은 갖추고 있다.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 장군님의 스터너를 아무나 접수할 수 있는것이 아니다. 하지만 하는 짓이 철딱서니가 없어서야... 생긴건 서부극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인데, 하는 짓은 틴에이저 반항아 아닌가. 정작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트럼프를 지지혔지만...


어쨌건 이렇게 또 백악관의 멋진 시대가 하나의 막을 내렸다. 멋진 싸나이의 시대가 끝나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여러 의미에서.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격조혔다. 지난주 수요일에 쓰고 이번주 목요일이니 1주일도 넘어만이네... 그 동안 약속이 많기두 혔구, 꼐임에 빠지기두 혔지만 역시 글을 몰아쓰다보니 왠지 구찮아져서... 그랴두 써야제. 멋보다 6월말에는 가고시마에 다시 여행갈 계획인디, 이 스피이드로 쓰다간 가고시마 가기전까지 야마구치 여행기도 다 못 쓸거 같아서... 진짜 앞으로는 가급적 매일, 최소한 2일에 한번은 써야긋다... 라고 하면 2일에 한번, 최소한 3일에 한번은 쓰겠지? ㅎㅎ


각설하고

본격적으로 여행이 시작뒤얐다. 이 말 몇번 하는거냐... 하지만 이젠 진짜 시작인 걸. 지난회까지가 일단 여행세팅단계에서의 겸사겸사 여행이었다믄, 이번부터가 본격출발. 그러니까 지도부터 보자


흔한 야마구치 지도다. 클릭하면 커지는 거 모르는 흑우들 없제? 6천제곱킬로미터의 광활한 대지에 140만명의 막대한 인구가 살고 있는 대국 야마구치... 거대한 야마구치를 돌아다니는데는 치밀한 계획이 필요허다.


설명허긴 혔지만 아무리 주둥아리로 설명해대봐야 지도에다 금 좍좍 긋어서 보여주는 것허구는 비교가 안되제. 그랴서 대충 금을 긋어봤다. 출발점은 좌하단으 시모노세키다. 첫날은 지난회에서 썼듯이 스치듯 안녕이다. 7시 45분에 국제여객타~미나루에 내려서 10시에 출발하는 열차를 탔으니. 어차피 4일차와 6일차는 시모노세키에서 물빨핥이니 그 때 보믄 된다. 색색깔로 화~려하게 금을 긋어놨는데, 각각의 일차별로 구분해 놓은거다. 한 색으로 그으려니 전혀 구분이 안되더라고.


1일차는 분홍색선이다. 시모노세키에서 10시 21분에 출발해 산음본선을 마루마루노 하나시 열차를 타고 달려 12시 50분에 히가시하기역에 도착헌다. 사실, 하기가 에도막부초기부터 말기까지 2백년 이상 모리가의 거성으로서 조슈번의 번청이 있던 곳인지라 볼 게 음청시리 많다. 근디, 교통편때문에, 여행시작시간은 제일 늦음. 자세한 설명은 어차피 이번 화에서도 하기에 도착도 못하고 산음본선상으 사진들만 올릴거니까 하기에서 하기구경한 이야기는 하기편에서 하기로 하기. 낄낄~ 하튼 하기 구경하고 하기에서 잔다


2일차는 녹색선이다. 이 날 철도여행이 일본으 배배꼬인 로컬교통편을 제일 잘 보여주는 날임. 상기 여행도상에서 맨 위의 노오란 네모가 하기이고, 맨 오른쪽의 노오란 네모가 이와쿠니인데 이 두 지역간을 이동하려니 도로는 그지같고 철도는 줄창 갈아타야 함은, 앞서 0화에서 설명한 바 있다. 그것을 실행하는 날인데... 녹색선을 짚으며 잘 따라오시라. 하기의 히가시하기역을 7시 7분에 출발한다. 산음본선을 따라 지도상에서 왼쪽으로 쫌금 가면 나가토라는 동네가 있다. 여기서 7시 46분에 내림. 그리고 부랴부랴 7시 52분에 오는 열차를 탄다. 간격이 촉박혀서 약간이라도 연착했다믄 놓치는 판인지라, 승강장 확인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무사히 환승에 성공허구 이번엔 남쪽으로 미네선을 따라 달린다. 9시 1분에 아사역에서 내린다. 여기선 쫌금 오래 기달려야 하는게 신간선을 타야허는지라. 이런 시골동네에 신간선이 오믄 을매나 오겠나. 아사역이 있는 산요오노다시는 인구가 6만이다. 사스가 토건족의 국가... 뭐, 인구 3만도 안되는 구례에 KTX가 서는 한국이 할 말은 아닌듯도 하지만... 그나마 구례역 위치가 구례도 아니고 순천시 행정구역이란게 함정이지만.


각설하고

9시 46분에 후쿠오카에서 오카야마로 가는 신간선 고다마 열차를 탄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그럴싸한 구간이랄까나. 고다마는 신간선중에서 최약체라는 것은 젖혀두고서... 그랴두 어쨌건 신간선인지라 휙휙 달려서 10시 33분에 신이와쿠니에 도착. 기존역과 신역이 동떨어지긴 일본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은지라, 신간선역인 신 이와쿠니와 기존역인 산양본선상의 이와쿠니역은 직선거리로 7킬로미터. 그렇게 멀지도 않네~ 이와쿠니의 인구는 13만이다... 구 울산역인 태화강역과 KTX역인 현 울산역 사이가 19킬로미터로 아마 한국에서 제일 멀텐데 울산시 인구는 110만이기라도 하지... 그리고 시골동네라 당연히 직선코스 같은건 없다. 빙빙 돌아야. 그리고 숙소는 당연히 구 이와쿠니역 근처... 어쩌겟소요. 줄창 걸어야지. 그렇게 이와쿠니까지 꾸역꾸역 가서 꾸역꾸역 구경하고 거기서 잔다.


3일차는 갈색선이다. 3일차가 이동이 두 번째로 적다. 아예 지도에 표시하지도 않은 6일차는 어디 안 가고 시모노세키 시내에서만 돌아다니는지라. 패스 유효기간이 5일인지라, 6일차에 어디 가려면 일본으 살인적인 교통요금을 감수해야함... 그래서 코스를 이렇게 짠거다. 이와쿠니의 숙소에서 스오오시마정의 야시로섬으로 갔다오는 코오스. 산양본선 이와쿠니역에서 출발해 역시 산양본선상의 오바타케역에서 내려, 걸어서 섬에 들어가 섬을 구경하고 다시 걸어서 나와 오바타케역에서 전일 묵었던 숙소로 돌아오는 코오스다. 그런고로 선은 하나지만 왕복임. 이와쿠니에서 오바타케는 각역정차로도 25분밖에 안 걸려서 특기할 것은 없음. 제돈내고 타면 요금이 5천원인건 못본걸로 하자... 대충 서울역에서 금정역까지 전철타고 가면 저 거리다. 요금은 1천650원. 설명이 必要韓地?


4일차는 고올~든 색이다. 거리는 상당히 멀지만 여정은 단순한 게, 이와쿠니역에서 산양본선 열차를 타고 주우욱~ 가면 된다. 시모노세키 역에서 내리면 깔끔하겠지만, 시모노세키 일정으 첫 날인 4일차에는 시모노세키의 원 시가지랄 수 있는 초후지역을 돌아볼 예정인지라, 시모노세키에서 4정거장 앞인 초후역에서 내린다. 이와쿠니에서 8시 19분에 출발해 초후에 11시 4분에 도착. 그리고, 초후 모리마을을 돌아보고... 원래는 간몬해저보도를 건너 북구주시에 있는 모지성터에 가서 구주에서 본 하관의 야경을 찍어올 예정이었는데... 여러 이유로 포기혔다. 자세한 것은 언젠가... 언젠가는 쓰게 될 4일차 여행기에서. 그리고 시모노세키 역전으, 지난 회에 올렸던 그 호텔에서 투숙


5일차는 짙은 하늘색선이다. 시모노세키에서 야마구치까지 열차를 타고 가서 구경하고 다시 시모노세키로 돌아오는, 기본적으로 3일차와 유사한 구성이다. 당초 여행을 계획헐때는 아예 한 곳에 숙소잡고 계속 머무르믄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도 모색을 혀 봤는디... 이런 시골동네으 교통상황으로 참치삼치꽁치인 구상인 것이다... 그런 것은 동경이나 오사카 같은 곳에서나 할 수 있는 것... 그러나, 베이스캠프를 잡고 인근을 헤집고 다니는 것은 로망인지라, 3일차나 5일차 같은 일정을 넣게 된 것. 8시 11분에 하관역을 출발해, 신야마구치에서 야마구치 선으로 갈아탄 다음 10시 2분에 야마구치역에 도착. 이후 줄창 돌아다니믄서 구경하다가... 이미 4일차부터 체력이 오링나기 시작한지라, 목적한 곳을 다 보지는 못허구, 17시께에 다시 하관으로 돌아왔다. 이 날도 3일차와 마찬가지로 같은 코스 왕복. 상술한 바 파스가 5일짜리인지라, 이 날이 이번 여행에서 열차를 마지막으로 탄 날. 마지막 열차 보내믄서 코끝이 살짝 찡~ 했달까나~


6일차는 앞서 말한대로 지도에 없다. 시모노세키 시내에서 요기조기 구경다니다가 밤에 배타고 한국으로 출항. 따지고 보믄 이 날이 "관" 에서 "부" 로 가는 날이니 진짜 관부연락선은 이건데... 숙박은 배 안에서.


-------------------------------------------


여행사진보다 보조설명이 더 많은 신세는 언제 벗어나려나... 아마 이게 진짜 마지막일 거 같다. 물론 하기 이와쿠니 스오오시마 야마구치 등지에서도 설명충 짓을 피할수는 읎을거 같긴 허다만... 이 정도로까지 투머치토크를 하진 않을 것.


이제부터 진짜! 여행기다...


이전에 또 구구하게 토크 하나... 이게 참... 산음본선은 바닷가를 지난다. "그 바닷가" 를... 이게 나의 일뽕컨셉상으로는 그 바다를 일본해라고 부르고 싶은디... 이 글을 쓰는 나는 한국인이고 한국어를 쓰고 한국어를 쓰는 한국인들이 이 글을 볼 것이란 말이지?얼마 보지는 않지만 그런 상황에서 일본해라고 쓰는거... 이거 참... 감당 될 일인가 싶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태도를 강하게 비판하며 일본 극우를 반대하며 아베가 날아갈 판이 된게 참 꼬시다고 생각한다. 근데, 바로 그, 잘못된 행위 비도덕적 행위를 한다, 라는 배덕감이 주는 쾌감을 워낙 즐기는지라... 배덕감이 없이는 안되는 몸이 되어버렷! 그런 의미에서 방금전까지 고민을 혔는디... 역시 일상에서 쓰이지 않는 힙찔한 표현이 주는 매력이 추가되는 면이 있는지라


동해(일본해) 로 병기명칭을 쓰기루 혔다.

재기발랄하지 않나?괴기지랄해

배덕감을 유희차원에서 즐기려면 그 전제는 "죽을죄는 아닐 것" 이어야 할 게다. 일본해라고 하는건 죄이긴 하지만 죽을죄는 아니지 않은가? 죽을죄라고? 그럼 하라키리를 할테니 가이샤쿠를...


하튼 이제부터 펼쳐질 동해(일본해)의 절경을 감상하시라. 물론 찍새가 구려서 그렇게 믓지게까지 나오진 않았다만... 누누이 말하지만 나가 보는 그 느낌을 그대로 담을 수 있는 그런 기술이 있음 좋것다.


특색은 없지만 마루마루노 하나시가 출발한 이래 찍은 첫 사진이라 투고. 일본에서 아파트는 기본적으로 서민주거수단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독주택에 살지 공동주거를 하지 않음. 한국과는 크게 다르다. 이 아파트를 찍은 게 자세히 보믄 쓰레기가 쌓여있고 문짝이 떨어져 있고 하튼 폐허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또 인상깊어서. 일본의 빈집문제는 점점 심각함을 더하고 있다. 한국도 아직은 평균수명의 증가가 인구증가를 떠받치고 있기에 빈집문제가 주변적 의제지만... 이건 서울같은 대도시에서나의 일이지 시골 다녀보면 장난 아니다. 힙찔이근성에 충실하게, 한국내 여행을 다닐때도 시골동네 위주로 다니는데, 버려진 폐가 허물어진 담장은 쉽게 볼 수 있다. 시청이나 군청 소재지에서도. 시모노세키는 인구가 26만이니까 절대수로는 군산시 정도, 인구비례로는 구미시 정도하고 비교할 수 있을텐디, 지역경제상황따라 다르지만 아직 한국은 그렇게까지 심하진 않음. 구미야 경제가 망가졌으니 그렇다치고 진주나 원주같은 도시에서 저런 빈집이 빈발하기 시작하믄 한국에서도 이게 진지한 문제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할게다.


일본스러운 언덕마을. 언덕도 좋고 마을도 좋지만, 그것보다 좋은 것은 언덕마을이야!



이 사진에 제목을 붙이라면 메멘토 모리 정도? 일본문화에서 죽음이란 요소는 굉장히 중요하다. 이 떡밥도 이야기하자믄 길어지는디... 간단히 투 스몰토킹을 혀 보자믄, 대개 싸울아비... 아니 싸무라이의 죽음의 문화에서 그것을 인지하는 분들이 많을텐디, 그건 부차적인 것이다. 보다 정확히는 일본이 죽음의 문화가 워낙 공고하기 땀시 지배층인 싸무라이 문화도 그렇게 뒤얐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어째 이번화는 껄끄러운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디... 일본의 문화를 들여다보믄서 가장 나으 시선을 붙잡은 것은 신사였다. 아마 계속 이야기해야 할텐데, 난 일본의 침략과 우익행위를 증오해 마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신사가 한국인들에게 아픔을 준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의 문화를 이해하려면 신사빼고 이야기가 안된다. 일본의 악행과 일본의 문화가 큰 관련이 있고 상호작용 헌 것도 맞다만... 악이라고 매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악은 악 자체의 흥미로운 요소가 있는 것이고, 나는 신사와 신토라는 것에서 그걸 느끼는 것. 그래서 비판하는 태도를 결코 잃지 않는 베이스에서 일본의 신토문화를 나름대로는 진지하고 깊게 들여다보려 한다. 신사참배도 많이 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거 못 참겠으면 보지 마라. 솔까,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짜증난다. 사실 아무도 뭐라 안하는데아무도 안 보니까 제 발 저려서 이러는 거 같기도 하다만... 대놓고 일뽕짓하다가 태클 들어오면 그 때부터 반응하는걸로 할까... 뭔가 이렇게 제 발 저리는 거 스스로 보기에도 꼴불견 같기두 허니깐.


각설하고

일본의 정신문화의 두 축은 불교와 신토이다. 신불습합 같은 이야기도 있으니. 나는 아직 이 둘의 관계와 의의를 정확히 이해하진 못헌다. 사실 정확히 이해한다고는 은가이 공부 많이 한 사람이라도 함부로 말할 수 있는건 아니지만... 위으 사진으 경우는 기본적으로 불교문화에 바탕헌다. 일본인들은 죽으믄 집근처 절에 가서 스님 모셔다가 불공드리고 화장하고 가족묘에 분봉헌다. 그랴서 저런 비석들 보면 ~~家之墓라고 쓰여있다. 도쿠가와네라면 德川家之墓 이렇게 쓰여있다는 것. 그리고 보시다시피 바로 집근처에 그런 묘들이 떼로 모여있는 절들이 동네 골목골목마다 있다. 기억할 사람이 을매나 될 지 모르긋는디, 지금 서초구 원지동에 가면 서울 추모공원이 있다. 까놓고 말해 화장장 납골당이다. 이거 들어올 때 반대 을매나 심했냐. 게다가 지금도 화장시설은 크게 부족하고, 화장시설이 있는 지역은 니네는 니네가 만들어 쓰셈, 하고 없는 지역은 아 그거 놓을라니 반발하고 거세하는 사람 많아 안되니 그냥 쓰겠심 하고 좀 싸워대나. 화장실에서 신문보며 똥싸는 아빠한테 가서 아빠 집 옆에 화장장 생긴대요 라고 말해봐라. 당장 똥 끊고 나와서 피켓들고 시위하러 가실거다. 그런 모습과 비교하면 완전 딴판인 거랄까나.


저렇게 집 근처 불사에 '아웃소싱' 을 주는 집들도 있지만... 아직도 집 마당, 혹은 집의 방 한 구석에 불단을 만들어놓고 직접 모시며 제사하는 집들도 많다. 일본 소설이나 만화 보면 아침에 불단에 가서 불공드리는 할머니한테 가서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는 주인공의 모습 같은 거 많이들 봤을게다. 한국인들이 죽음을 철저히 자기들의 공간에서 배제시켰다믄 일본인들은 삶이 죽음이요 죽음이 삶이다. 그들은 모리를 좀 심하게 메멘토하고 있달까나.


윗 사진이 불교차원에서 사람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라믄 신토 신사의 경우는 사람이 아닌 것들과의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나. 일본의 신사가 몇개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읎는걸루 안다. 나가 들은 것만 8만개설, 12만개설, 30만개설, 60만개설까지 여러개가 있는지라. 신이 8백만이라는데 신사가 8백만곳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하려나. 신토는 현세에 살아있는 애니미즘이다. 온갖 자연현상 괴기 신비스러움에 전부 신을 갖다 붙여놓고 그들을 경배하는 것을 일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일본 애니 보면 명절마다 신년마다 신사가서 참배하는 게 당연시되는 것 또한 많이들 보셨을 터. 굳이 "너 사실 신토를 숭배하는거 아니야?" 라고 하면 대개는 아니 뭐 딱히 별 생각없이 가던거니까 가는거야, 정도의 답이 돌아올 것이다.


계략도 중요하고 교섭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한다는 것이야!


별 생각없으면 안 가면 되잖아? 근데 왜 굳이 가? 내심을 숨기고 있다고 추궁하려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 자연스럽게 일상화되어 있다는 그 자체가 문화요 사고방식이라는 것. 무의식은 프로이트의 위대한 유산이다. 신토는 일본의 사회적 무의식이랄까나. 일종의 2중체계인 면이 있다고 본다.


 

 현세

내세

 닝겐

 지금 우리닝겐들

불교

 인간외

신화와 괴담

 신사


거칠게 정리하자면 이 정도랄까나. 가장 명백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것은 현세의 인간이다. 그리고, 대개의 소위 "근대화된" 사회에서는 이게 절대적이다. 마, 유우럽 사회도 근대화 이전엔 인간외, 내세 같은 게 중요혔으니까... 이걸 세속화 라고 할 수 있긋제.


일본 이야기헐 때 천황이란 존재를 뺄 수 없는디, 그 천황의 공식적 의의는 일본국의 상징이라는 일본국 헌법 제 1조이지만 비공식적 의의는 일본을 창조한 신의 직계후손이란것이다. 맛카사 쇼군... 맥아더 장군의 지배하에 와타시는 카미가 아닌 데스웅~ 이라고 말할 것을 강요받았지만, 쇼와천황이 진짜 그렇게 생각했을거라 믿는 흑우없제? 혼네와 다테마에는 노무 당연해서 굳이 쓸 필요가 없어진거지, 일본이란 부족이 겉과 속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따지고 보면 누구나 어느정도씩은 겉바속촉이지만 일본의 겉바속촉은 세계제이이이이이이이일! 이라는 것은 일본인 빼고 누구나 안다.


인간외의 존재와 사후에 대한 인식을 불가지화 하는 것이 근대화를 통한 세속화라고 한다면, 일본인들의 현황은 그것에서 거리가 멀다. 정말로 사후의 존재를 믿지 않고 인외의 것을 신경쓰지 않는다면, 신사를 왜 가는가? 사실 그렇기에 신화 혹은 종교와 문화의 관계라는 또 다른 테마를 논하긴 혀야허는디, 이미 길어진 사설에 그런 이야기까지 할 처지는 아닌거 같고... 이러한 인간으로서의 자신... 이랄까? 그런 것에 대한 확신의 부족함이 일본의 문화에 굉장히 강하게 개재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일본의 정신문화에 독특함을 부여하지만, 그러한 부분이 또한 현재 일본의 무책임 사회로서의 성격에 크게 개재하는 면도 있다고 보기에... 저런 부분이야말로 나가 일본을 좋아하는 이유이믄서 일본을 싫어하는 이유가 되는지라, 참 복잡한 심경으로 만들곤 한다. 메타적으로는 바로 그러한 도저히 명쾌하게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함이 들여다보는 재미 자체를 유발하기에 결과적으로 나는 일본을 들여다보고 일본을 즐기는 것이지만.


앞서 일본은 늪이라고 혔는디, 그 이유중 하나는 역시 이것이다. 어차피 일본은 죽을때까지 들여다볼거고, 이 이야기도 계속 생각할 것인지라, 난중에 또 이야기허자.


각설하고

계속 산음본선을 달려가보기루 허자.


하타부역의 모습. 하관역에서 출발한 이후 첫 역이자, 이 곳에서 산양본선과 산음본선이 갈라진다. 산양본선은 히로시마 오카야마 고베 오사카로, 산음본선은 시마네 돗토리같은 깡촌... 을 거쳐 교토로 이어진다. 우리는 이제 산음본선을 달리며 깡촌과 동해(일본해)를 볼 것이다.


뜬금없는 이 사진은, 원래 산음본선으로 접어들면서 산양본선을 찍으려는 의도로 잡은 샷인디, 산양본선의 모습이 전혀 안 잡혔다...사진 밖의 축대가 바로 산양본선의 노반이다.


평범한 일본 가옥들의 모습. 윗 사진은 ~~하이츠 하는 표현이 일본에서 왔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는거 같아 찍어봤다. 한국에선 빌라들에 그런 이름이 많이 붙지. 밑 사진은 뭐랄까... 딱 전형적인 일본식 스위트 홈~ 이란 느낌이 들어서. 아담한 부지에 살짝 축대를 돋우고 벽안에는 아기자기하게 정원을 꾸민 2층 일본식 가옥이라니. 거기에 저 돋움과 계단오름라인에서 지붕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일본식 성의 미니어처 같은 느낌도 들구. 아무래도 천수각이라는게 크게 짓은 일본집이다봉께, 일본 가옥들이 그것과 유사해 보이는 면은 있긴 하겠다만, 저 축대와 계단 놓는 방식또한 일본식 성이 그런 모습을 역시 크게 확대해 놓은면이 있는지라... 아담한 집이라는 귀여운 모습과, 무시무시한 군사요새라는 일본성의 축소판이라는 모습이 겹쳐보이는 것이 또한 이율배반 혼네다테 겉바속촉한 일본다워서 좋다.


수로는 언제나 옳다. 특히나 열차를 타고 다리를 건너며 보는 수로라면 더더욱.

일본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3N의 필두. 일본인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드립인데 사진으 NTT도코모라는 국영이었다가 민영화된 통신사, Narita 공항, Nihongo 일본어를 일본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3N이라 불리며 까곤헌다.


니홍고가 3N인 이유. 설명이 必要韓地?


전형적인 일본식 연립. 이런 구조으 연립 꽤 효율적인 거 같은디, 한국엔 왜 안 들어오는지 잘 모르긋다.


수 · 로 · 좋 · 아


열차에서 달리며 보는 철길건널목도 오모시로이한 풍경. 너희들은 나 때문에 서 있는 것이지. 너희를 놔두고 나는 간다! 얼마나 힙찔한가


보인다! 동해(일본해)!


바닷가를 달리는 국도 옆을 달리는 철도, 로망 그 자체 아닌가. 한국에선 일단 바닷가를 달리는 국도 자체가... 그나마 7번국도가 이에 해당하긴 할게다. 지금 동해중부선이 한창 공사중이고 이 노선이 7번국도 인근을 달리기에 내심 기대는 혔다만... 아쉽게도 고가 터널 고가 터널만 달리는 노선이 뒤야부렀다... 그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서두...


아무래도 열차 차창밖으로 찍는거다봉께 차창에 조명이 비치는 정도까정 막기는 힘드니 양해를. 굳이 토 달거 없는 풍경이다. 다만 전선이 쫌금 눈에 거슬리긴 허다만... 이 역시 일본애니코믹을 보는 분들이라면 골목길위에 전신주 사이사이로 드리워진 전선너머 높은 뭉게구름을 걸어가는 청춘들의 모습을 많이들 접하실텐디 이야말로 일본의 모습 그 자체이지 않긋는가.


궁극의 오막살이. 기찻길옆이면서 찻길옆이면서 바닷가옆이다. 아기가 노무 잘자 안 깨어날 거 같다.


섬 삼형제. 개노답은 아닐거 같다.


열차는 구식이지만 어쨌거나 특급클라스인지라, 안 서고 지나는 역이 많다. 그런 역명판들을 찍었는디 어째 죄다 흔들렸댜... 흔들린 역명판을 대표혀서 요시미역 역명판을 올려본다.


이 짤의 풍경보고 토하는 줄 알았음. 노무 좋아서. 수로옆의 철길건널목이라니.

수로도 좋고 철길건널목도 좋지만, 그보다 좋은 건 수로옆 철길건널목이야!

오막살이도 전선도 시골마을도 훌륭한 배경맨들.


시골이다. 산능선의 흐름새와 펼쳐진 농지, 그를 배경으로 지나가는 큰길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갈래길의 모습이 좋아서 찍어봤다. 모습은 안정적이야.


아직 파종이 시작되지 않은 논밭, 강가로 이어지는 갈대밭, 동해(일본해)로 흘러드는 개울물로 이어지는 3단콤보가 모습 자체로 스토오~리가 되기에 올려봤다.


요시 바다는 모래사장이 있어야 더 빛나는 것. 아까 줌 땡겨서 찍었던 섬 개노답... 아니 섬 삼형제가 좀 더 가까워졌다.


건널목 너머로 보이는 집들이 참 일본틱허다.


이런 집은 기와끝도 그럴싸허게 꾸며서 진짜 일본성으 천수각삘난다. 다니다보믄 같은 일본식 가옥이라도, 저 지붕끝에 장식을 잘한 집과 안한 집이 갈린다. 니뽄삘과 니뽄간지으 차이는 확연. 재력차이긋제.


이 동네는 밀감이 특산물이다. 제주도보다 위도가 쫌금 높은디, 섬이라 더 따뜻허기두 허구, 작금에는 남해안에서도 밀감을 키운다고도 허니 자연스러운 일. 먹어봤으믄 좋을건디 못 묵어봤다. 못 먹어본 과일맛은 항상 시게 마련인 법.


일본가옥 퍼레이드.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할 거지만, 일본에는 이러한 전통식 가옥이 정말 무진장 많다. 한국에서 한옥보려면 북촌, 안동, 전주등의 한옥마을에 가야하는 것과 달리, 일본은 그냥 대도시 중심부 아니면 거의 어딜 가나 일옥마을이다. 딱히 전통마을구경갈 이유가 읎는 것. 하도 일상적이다봉께, 아마 일본인들은 일본가옥거리에 딱히 큰 애착이 없지 않을까 싶기두 헌디, 히다의 후루카와 마을이나, 사이타마의 가와고에 같은 곳이 나름 인기인 것을 보믄 제대로 된 전통마을은 또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듯도 싶다. 나는 아직 일본력이 부족하야 저런 흔한 양산형 가옥만 봐도 하앍하앍이다만.


코구시역에 도착. 꽤 온거 같지만, 아직도 시모노세키시내임... 앞서 마루마루노 하나시가 하기의 하, 나가토의 나, 시모노세키의 시 라고 말한적 있는디, 당연 시모노세키가 세 동네중 제일 커서, 하기까지의 전 구간의 반 안팎을 차지헌다. 군산이나 진주같은 도시들도 도심지는 도시지만, 외곽으로 나가믄 노선버스가 하루에 3대도 안 들어오는 마을들도 있는 것과 비슷헌 것. 일본은 철도가 조밀혀서 구석구석 철도역이 있는 게 차이인 거구.


야생의 신사가 나타났다! 뻘건 도리이가 줄줄이 있는걸 보니 이나리 신사의 말사들중 하나인 듯. 앞으로 줄창 보게될 것이다. 하앍하앍.


좀 흐리게 나온게 통한일 정도로 맘에 든 사진. 흰 벽, 동백나무, 일본식 기와지붕이 또한 일본스러운 멋의 한 단면을 노무 잘 보여준다.


일본토인들의 소굴


뭐라고 읽는지는 모르긋다만 하여튼 무슨 해수욕장이라구 헌다. 여름에 이런 데 와 보믄 참 좋을 덧. 하얀 모래밭에 파란 바닷물이 부딪혀 하얀 파도로 바수어진다.


마루마루노 하나시는 관광열차이다. 그런고로 풍경이 좋은 곳에서는 잠시 멈춰서서 사진을 찍는 포토타임을 제공헌다. 이 곳이 처음으로 멈춰선 포토포인트. 트라이포드들이 많은 것은 쫌금 신경쓰이지만... 탁 트인 동해(일본해)의 모습을 바라보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다.


저 바다색깔 뭐냐고... 이 일대가 주변에 딱히 항만이나 산업시설이 없어 물이 유난히 깨끗하긴 할테다만, 나중에 볼 시모노세키 항, 그것도 무려 조선소 앞의 바다도 깨끗했던 것을 보면 확실히 일본쪽이 한국에 비해 바닷물의 오염은 훨씬 잘 관리하고 있는 느낌이다. 쪽빛바다 에메랄드빛바다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말이 필요없다. 그냥 감상감상. 이런 모습을 열차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더욱 훌륭. 한국에도 옛 삼척선을 활용한 동해안 관광열차가 있긴 허다. 아직 타보지는 못혔다만. 삼척 강릉에 놀러갔을 때는 나가 아직 경제권이 없던 시절이거등. 다만, 그건 교통수단으로서의 의의를 잃고 박제화된 거지만, 이 열차는 살아있다. 이맛에 일본온다...


수질 뭐냐고... 좀 오바하자믄 소금기만 빼면 그냥 마셔도 되긋네... 쪽빛으로 짙게 물든 바다가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투명하게 비춰보인다는 이 이율배반...


열차는 다시 달리기 시작헌다. 저 바위위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아도 좋겠다.


노무 깨끗하고 색이 짙다보니 오히려 오염물질 같아 보일 지경이다. 바다는 푸르른 우라늄색~


이런 곳의 펜션에서 묵으면서 바닷가를 마냥 걸어다녀보고 싶어서 찍어봤다.


유타마역


그 분은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 이 양반 지역구가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다. 저 때만해도 아베 신조 내각총리대신님이 천년만년 해처먹을줄 알았지... 물론 아직 끝나진 않았다만, 빨리 원 내각총리대신이 되셔야 헐텐디.


산 바다 들 그리고 길


바다에 떠있는 쫌끔만한 섬이 모에포인트


길은 바다를 달린다


그리고 그 길은 굽이굽이쳐 도는 바닷가를 따라 끝없이 달린다.

이 풍경보고 또 뻑갔는데, 열차 조명이 눈치없이 끼어들었다. 관광용 오픈카를 배치하라고 시위해볼까.


best 미니멀한 풍경. 길과 바다와 하늘만의 담백한 모습


그러나 늘 그렇듯이 뛰는 best 위에 나는 better가 있는 법. 바다와 하늘만의 더더욱 담백한 모습.

닝겐 돌아와도 자리없다.


그냥 좋다... 절대로 코멘트 달기 귀찮은 게 맞습니다 ㅎㅎ~

사실은 내 스타일 자체가 기본적으로 사진 하나 찍을 때 마다 이건 여행기에 이런 코멘트 달믄서 올려야징~ 하고 찍는 것인지라, 일일이 다 달라믄 달 수는 있다만... 솔까 막연한 감상을 구체적 표현으로 옮긴다는 거 나도 피곤헌 일이구, 안 그려두 말이 너무 많군 인 놈이 말이 더 많아지믄 보는 사람도 피곤허니께... 봐라봐라, 왜 코멘트 안 다는지에 대한 이야기조차도 말이 많아지잖아...--




사실 이번 편을 쓰기 전에 주저했던 이유중 하나가 뭐냐면... 보시다시피 절경과 절경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모습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이 동해(일본해)연안을 달리는 산음본선의 풍광이긴 허다. 근디... 그러다봉께, 시모노세키에서 하기까지 가는 열차안에서 찍은 사진이 400여장... 물론 이것도 일본여행이고 애초에 관광열차기두 허다만, 열차안에서의 모습만으로 여러 화를 차지하는 게 쫌금 그렇다, 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한 화로 끝내고 싶은데 사진이 400여장... 컷컷한다혀도 뭔 수로 400장을 한 화에 한댜... 하는 게 고민이었다. 그랴서 엄두가 쫌금 안나서 일주일 이상 미뤄진 면이 크다. 그리고 직접 써보니깐 초반에 사설도 있다봉께, 도저히 한 화에 끝낼수는 없을 거 같다. 이미 충분히 긴데... 하고 싶은 말이 노무 많아서 늘 문제.


그런 관계로 일단 산음본선 전편인 셈 치고 오늘은 여기까지. 어차피 연장선상이니 산음본선 후편은 내일 쓰는 것으로 하긋다.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여행기 + 관련글을 처음 쓴 게 3월 4일인디, 쓰기 시작헌지 10일만에 드디어! 일본에 닿았다. 이제부터 펼쳐질 모습들은 내지의 그 것. 각오들 하시라! 후후


제대로 잠은 못 잤지만, 하여튼 마지막 순간엔 항상 잠이 들어있긴 허다. 눈을 떠 보니 기분좋은 리드미컬한 흔들림이 멈춰있었다. 아 도착했구나. 부랴부랴 캐머러를 챙겨들고 배박이... 아니 배 밖으로 나갔다. 이 사진은 나가서 처음 눈에 들어온 모습.


가이쿄유메타워 - 한국말로는 해협 꿈의 탑.143미터정도인지라 그리 높은 탑은 아니다만 인구 26만의 시골도시에서 그 이상을 바라기는 힘들제. 높이는 애매혀두 위치가 완죤히, 본주와 구주를 가로지르는 해협수로의 목줄기에 서 있는지라, 전망은 좋다. 다만 올라가지는 않았다. 나으 힙찔이 근성이 남들 다 가는 곳은 가지 말랑께, 라고 울부지져서. 나중에 가 볼 기회가 있긋제. 하관에만 3일을 여행(지난 사가여행당시 1일 있었으니)했지만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이 많다. 히노야마 공원도 안 가봤고, 남풍박(하에도마리)시장도 안 가봤구. 그니까 나중에 또 가볼 핑계가 되지 않갔어?


시모노세키 항에서 시모노세키의 풍경을 찍는다면 대략 이 모습. 저 멀리 간몬대교가 보인다. 다리 왼쪽이 히노야마 공원이고, 다리 오른쪽은 북구주시의 구 모지(門司)성터가 있는 산. 산 이름은 모루겟소요. 구글지도에도 안 나온다. 산 정상이 모지성터라고만 나오지... 다음에 부젠국 여행때 가 보는 것으로.


다리 앞에 보이는 동그란 것은 하이! 가랏토 요코초 놀이공원내의 관람차. 저런거 타는거 좋아하는데 왜 탈 생각을 안혔는지 지금와서 보니 의아허네. 혼자가서 못탄다, 라는 것은 반대다. 나는 힙찔이기 때문에 아무도 혼자 탈 생각을 안하는 것이야 말로 혼자 탈 가치가 있다고 생각허는 놈이니께. 난중에 저것두 타 봐야징.


평범한 수로 같은데 왜 찍었냐믄, 이것이 반도방향에서 오는 수로의 입구기 땀시. 방금 전까지 잠든채로 저 수로를 항해해 왔던 것.


그냥 올리는 시모노세키 항의 모습들. 선상 앵글은 흔치 않지 않카써? 밑의 사진에는 배가 물을 배출허구 있는데, 저게 그 평형수인가 뭔가하는 그것 아닌가 싶다.


달이... 아름답군요...

내지에 와서도 듣는 사람 없이 읊어본다. 흙흙...



아쉽게도 배가 침몰하지 않아, 여기에 집합해 볼 기회는 없었다. 다음엔 잘 부탁해요옹~~


선상반란에 결국 실패하고 순순히 시모노세키에 내릴 준비를 하는 반란군... 아니 선원들의 모습


항구는 시모노세키다. 당연한 소리. 오른쪽은 화물부두이고 왼쪽이 우리가 내릴 하관항 국제여객터미널이다. 오른쪽 부두가 화물부두라지만, 젠카이노~ 에서 봤듯이 이 배도 적잖은 화물을 싣고 왔기 때문에 짐도 많이 부린다.


저 작은 배는 무슨 꿈과 희망을 안고 끝없는 대해원을 향해 나아가는가.


우리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5만마력 엔진


우리를 여기까지 몰고 온 하마유 대본영. 선장사마이하 일동 수고많으셨다능.



드디어 배가 접안허기 시작헌다. 사실 도착은 꽤 전에 혔다. 붓싼부터 하관까지의 통상속도로의 항해시간은 대략 8시간. 전일 21시에 출발혔으니 순수 항해능력만으로는 새벽 6시 이전에 충분히 도착함. 그러나, 항만측이 접안을 받을 준비가 뒤아야 배를 댈 수 있는거인지라, 몇 시간 기다렸다. 붓싼으로 돌아갈 때는 더 많이 기다린다. 출발이 19시거든.


배를 받을 준비를 하는 항만롸동자들의 모습. 성별 여성.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니까. 요즘 같은 세상에 미투 당하기 딱 좋은 드립.미투운동 지지합니다. 진짜라구욧!


큰 가방을 가지러 배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며 찍음. 처음에는 일본어 자판기라 일어... 일제! 라고 좋아혔는디, 전부 롯데거라 짜게 식었던... 다만 역시 한국에선 롯데가 롯데하지만 일본에선 그랴두 롯데두 일본하는지라 한국판매품보단 질이 좋더라. 요식업은 갓본이 짱!


개돼지들도 나와서 구경하기 시작. 처음에는 배박이에 나 밖에 읎었는디, 배가 닿은 것을 알고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허더라.


바다위에 점점이 떠있는 갈매기들의 모습.


이제 진짜 내린다.


내린 이후, 붓싼국제여객터미널과 비슷한 이유로, 하마유호의 사진을 더는 찍지 못혔다. 그런고로 이 사진이 하마유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이다. 돌아올 때는 성희호였응께. 하마유의 미니어처가 마지막이라니 상징적이지 않은가. 10시간 동안 즐거웠고 수고많았으요. 하마유 안녀어엉~~


내리면서 이러쿵저러쿵한 수속을 밟는데, 사진은 찍지 말라구 뒤야있다. 그랴서 수속 다 밟고 터미널 로비에 나와서야 사진 찍는게 가능함. 하관항과 관련된 여행지들을 사진으루 소개허는디, 일관성이 보인다. 즉, 성-현-도 prefecture 레베루으 것은 영어로, 시급의 하위 행정구역은 한자로 써놓은. 경남도, 야마구치현, 산동성은 앨퍼빗이고 광양 태창 붓싼 하관 청도시는 한자로 쓰여있다. 이것이 일본의 꼼꼼함이란 것입니다?


아 이제 사진이 좀 낫네. 앞서 선상에서 찍은 사진들은 새벽이라 그런지 쫌금 화질구지인데, 여기부턴 화질구지가 좀 덜함. 어차피 여행을 많이 다닐거니 사진 찍는 것도 좀 배워야긋다, 생각은 허는디 늘 그렇듯이 공부하는건 싫어서... 그랴두 일본어 공부는 진짜 혀야허는디...


타미나루에서 나와서 바로 찍은 사진. 저 육교가 하관역까지 직통으로 이어준다.


붓싼 아지매들이 나온 것은 양해를. 자르기 귀찮아서. 어차피 붓싼 광역시 시모노세키 구에 마실 나왔으니 붓싼 토인이 붓싼에 놀러온 거 아니긋는가.


각설하고

국제여객타미나루으 모습이다.


해협꿈탑. 높은 것은 아름답다.


이 곳은 나가 여행 5, 6박을 하게 될 스마일호텔시모노세키. 그러나 지금은 하기로 가야헌다. 나중에 보자구~


조센과의 역사가 얽힌 역사도시 시모노세키 다운 도시장식물, 저 시절 관부연락선은 배수량이 3천톤가량이었음. 1만 6천톤인 지금, 양국관계는 5배 가까워졌는가...


일본교통체계의 특징을 보여주는 사진. 한국이라고 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본은 철도가 주를 이루고 철도역을 중심으로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는 버스망의 2원체계구성이라는 성격이 월등히 강허다. 하관시내의 경우는 산양본선이 주 철도역할을 하는데... 사실 하관내에서는 산양본선이 핵심부를 잘 포괄허진 못한다. 도시 핵심부는 간몬해협 바닷가를 따라서 있는디, 산양본선은 내륙쪽으로, 산음본선은 일본해쪽으로 뻗는지라. 그럼에도 하관역이 핵심적인 이유는, 하관시가 인구 90만인 북구주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 이 날 하선한 시각이 7시 45분이고 역에서 대략 8~9시 사이를 보낸지라 딱 통근시간이었는디, 통근자들이 음청 많이 타고 내리고 열차도 계속 드나들었응께. 하튼 하관역은 그런 관계로 수 많은 열차와 수 많은 버스들이 드나든다. 한국의 30만급 도시에는 이런거 읎제?한국은 도로로 다 때우는데요


잔돈도 바꿀겸, 선상에서 충전을 잘 못혀서 빳떼리가! 부족혀진 캐머러 에너지도 채울겸, 내 에너지도 채울 겸 모스바가에 갔다. 전에 다 먹은 접시사진만 올리는 컨셉으로 인기를 끌었던 식당후기 사진블로그으 컨셉을 표절해봤다. 맛은 쏘쏘. 역시 육식은 일본인으 특기가 아니랑께요...


대신 해산물은 일본이지! 으아~ 넘쳐흐르는 회와 벤또들~~ 난 이것을 먹기 위해 일본에 온지도 몰라...진짜 일본가서 회와 도시락만 잔뜩 먹고와도 본전은 뽑고 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따쉬락을 적당히 싸들고 승강장으로 올라가 본다. 2년만이군 시모노세키역은.


철덕아니면 잘 모를 일이지만, 일본은 철도궤간이 협궤다. 한국은 표준궤인 1435mm 궤간을 쓰는디, 일본은 1067mm의 케이프궤간을 사용함. 유신 후 초창기 일본이 그지일때야 싸게싸게 철도를 짓는데 유리혔지만, 싼건 싼 이유가 있는지라... 수송능력이 떨어져서 이 이후로 곤욕을 많이 치른다. 표준궤로 바꾸니 마니 하다가 일본답게 이것도 저것도 결정 못하고 그냥 지금에 이르러버림...


일본이 지배한 조센은 표준궤인데, 일본이 대륙을 침략하고자 대륙과 궤간을 맞췄기 때문이 중요한 이유이다. 나쁜놈들이 나쁜의도로 한 일이 좋은 결과를 낫은 흔치 않은 경우랄까나?


까마귀! 나가 가장 좋아허는 새중 하나다. 불길하니 좋지 않은가? 우는 소리도 그렇고 은근히 큰 새라 존재감도 쩔고 하여튼 간지폭발이라 좋아함. 이 이후로도 느끼는 건데, 일본은 여러모로 한국보다 생태레벨이 높다. 숲의 울창함도 한수위고, 애초에 느낌이 온대식생이상 열대식생미만인, 하나 윗단계인 느낌이고... 새의 경우는 한국에서 비둘기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일본에선 까마귀가 차지허구 있다. 비둘기 구경을 거으 못할 정도. 그리고 한국에서 까마귀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매가 차지하고 있고... 마을에서 매가 무리지어 사람 머리위를 날아다니는 모습을, 한국에서 까마귀가 그러는 것보다 더 자주 볼 수 있다. 곧 가게 될 하기에서 매의 사진을 찍었는데, 제대로 찍지 못해서 그 포풍간지를 전하지 못하는 게 아쉬울 지경.


쩌그 철길으 끝에는 본주와 구주를 잇는 지하철로가 있다. 본주와 구주를 잇는 경로는


도로 - 간몬대교

보도 - 간몬해저보도

철로 - 산양본선해저철도톤네루

       - 산양신간선해저철도톤네루


가 있는디, 도로교인 간몬대교 빼고는 전부 해저로 지나가는지라 볼 것은 읎다. 그랴서, 언젠가 차량을 타고 간몬대교를 건너보는 것이 또 하나 목표임. 이번 여행이야 철저히 컨셉을 지켜 야마구치 밖으로 한발도 안 나갔고, 여행기 막판에 그 인증도 할 것이다만, 난중에 부젠 지쿠젠 지쿠고국의 터전을 이어받은 후쿠오카 여행을 갈 때는 두 지역을 반드시 타통할 것이다.


여러 열차들의 모습. 대충 느끼시겠지만 열차들이 구리다... 완행이라 그렇기두 허지만, JR 서일본이 좀 짠돌이다. 사실 JR 동해(도카이)와 JR 동일본을 빼고는 다른 JR 지사들은 경영상태가 그리 썩 좋지 못헌지라... 특히 서일본은 관할구역도 터무니 없이 넓고, 동일본이 관동이라는 절대적 캐쉬카우가 있는데 비해, 서일본은 관서지역이 캐시카우지만 여기는 일본 전국에서도 가장 사철과의 경쟁이 극심... 그랴서 서일본은 규모에 비해 자금여유가 그렇게까지 빵빵하진 못함... 그랴서 80년대에 나온 사진에 나온 것 같은 열차들이 아직도 굴러다니구 그런다. 한국같으면 전부 폐차되었을 열차들임... 이래도 분할민영화입니까?



위의 백청무늬열차는 북구주 고쿠라와 하관을 잇는 셔틀열차격의 열차임. 행선판이 선명어다. 두 지역은 꼴랑 두 정거장, 14킬로미터 거리밖에 안되니, 거으 마을버스 수준으 열차랄까나. 다만 이러니 저러니 혀두 상징성과 실용성은 크지. 본주와 구주를 잇는거니께


자 이제 따쉬락을 먹을 시간! 아까 들렀던 마트에서는 방어회와 시메사바초밥을 사왔다. 동네마트에서 방어회와 시메사바초밥이라니... 서울에서 고등어초회초밥을 먹으려면 어디 가야했더라... 방어회는 노량진가서 먹으려다가 눈탱이 맞은 기억밖에 읎구... 근데 그게 동네마트에 널렸다. 사스가 갓본... 이 방어는 에히메현산이다. 양식인건 뭐 좀 그렇다만, 나는 딱히 자연산과 양식맛을 구분할 정도로 고오급 입맛은 아니니 상관읎구. 두툼허구 큼직헌게 5조각인데 430엔, 4천여원이니 가성비도 긋긋. 마 노량진에 가서 "잘" 사면 이것보다 싸고 좋은 자연산을 살 지 모르긋다만, 노량진에 가서 "잘" 사는게 가능한 사람이 얼마나? 거으 대부분은 사기꾼 천지빼가리인 노량진에서 눈탱이만 맞는다. 재작년 겨울에 알고 지내던 사람이 방어먹으러 노량진 가자기에 거기 가면 사기먹을텐데요... 하고 말렸는디 굳이 가자그래서 갔다가 아니나 다를까 사기먹고 온 이후로 노량진은 쳐다도 안 본다. 나같이 실력도 없고 보는 눈도 없는 사람도 좋은 가성비으 방어를 집앞에서 사 먹을 수 있다니 을매나 좋은가. 이런 유통망이 전국에 깔려있다는 게 일본 요식업, 유통업의 진짜 저력일게다. 지금 한국에서 제철 방어를 동네편의점에서 사 먹으려면 어느정도 자본이 투자되어야 헐런지...


때깔좋고~ 비주얼 좋고~ 맛 좋고~ 만족스럽게 묵었다.


원래 역에 가믄 역명판을 찍어 조의... 아니 예의를 표해야 허는디 좀 늦었다. 모지역은 북구주이고 하타부역은 산양본선과 산음본선이 갈라지는 분기역이다. 소속은 산양본선. 잠시후 나는 하타부역 방면으로 출발헌다.


간지포풍 까마귀장군님 보고가라


이 방면이 산음 산양본선방면. 저 길의 끝에는 동경이 동경너머에는 동북과 북해도가 그 끝에는 왓카나이가 있겠지. 언젠가 가 닿을 곳들이다.


나가 탈 열차는 일반열차가 아니다. 마루마루노 하나시라는 특별관광열차.


파스를 끊었기 땀시 대부분으 열차는 자유석에 그냥 타믄 그만이지만, 이 열차는 일반열차가 아닌지라 자유석わ ない... 전석 지정석인 열차이다. 한국에서 각 지역간의 이동을 검색할 때는 하관에서 하기까지가는 직통열차가 있네? 하고 ㅎㅎ 거렸다. 왜냐믄 일본에선 직통열차가 드럽게 없기때문... 신간선을 제외하고는 일반열차는 특급쾌속도 300킬로미터를 넘게 운행하는 편이 없다. 한국의 열차가 300아래가 별로 없는 것과는 상반되는 것... 그런데 있기에 좋아했더니... 와서 보니까 이게 일반열차가 아니라 관광특별열차 아닌가. 그렇기에, 파스만으로는 탈 수 읎구 지정석을 끊어야 한다는 것을 타기 직전에야 알게 된 것이다. 솔까 일어능력이 제로에 수렴하는지라, 지정석은 가급적 사용하지 않으려구 혔는디 난관에 봉착한 것. 일본에서 번역앱을 딱 두 번 썼는디, 그 중 하나가 여기였다. 정확히는 지정석을 끊어야 하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역무원에게 파파고로 찍어서 보여준 것. 이 역무원이 또 좀 어리버리한건지, 처음에 파스를 보여줬을 때는 별 말 없더니, 이상한 낌새를 느낀 나가 번역앱으로 보여주니 그때가서야 지정석 끊어야 한다고 해 주는 것이 아닌가. 그랴서 부랴부랴 지정석을 발권해주는 미도리노마도구치라는 역무창구에 가서 발권받은 것이 사진의 지정권이다. 끊지 못했으면 첫날 일정 완전히 망가질 뻔... 왜냐면 일반열차를 갈아타고 가면 도착시간이 수 시간이 늦어지는 데, 그 정도가 문제가 아니라, 하기가 위치한 지역은 산음본선이 지나가는데... 이 산음본선의 배차간격이 아~~~주 창백하기 때문이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중간에 열차가 없는 시간이 3시간 이상 있었던 것으로. 그니까, 하기에 도착하자마자 저녁시간 되어서 바로 숙소에 가서 자야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뻔 혔던 것. 히히~ 방어 맛있당~ 하고 아무 생각없이 열차에 타려했다가 못타고 쫓겨나고 벙찔뻔했던 위기였던 것이다. 다행히 눈치를 채서 지정권을 끊고 탑승에 성공한 이 경험으로 나으 일본여행력은 또 1레벨 오른 것. 나름 좋은 경험이 뒤얐다는 느낌이다. 작은 성취감을 느꼈달까나?


특별기획된 관광열차인지라 역무원들의 환영모습도 특~별~ 마루마루노 하나시에서 하나시는 각각 출발역인 하기, 중간역인 나가토, 종착역인 시모노세키(물론 나는 그 반대로 이동)의 머릿글자를 따서 하나시가 된 것. 마루마루도 사연이 있었는디 까묵었다. 현수막에 그려진 것들은 이 라인선상 지역의 특산물인 도미, 쭈꾸미, 복어, 밀감. 하나도 못 먹었다...


열차가 들어온다. 앞서 올린 사진들과 같은 똥차에 화장... 아니 페인팅만 그럴싸하게 허구 내부 인테리어 그럴싸하게 바꾼 것. 똥차라곤 하지만, 꼼꼼한 일본답게 관리상태는 당연히 좋다. 뭐니뭐니해도 철도운용의 기술적 능력면에선 한국은 일본의 상대가 안된다. 한국도 꽤 고레벨이지만 이 분야에선 일본이 갑인지라... 독일 미국 다 일본한테 안된다.


자 올라타 볼까나~


일본스러운 장식물들


나가 앉을 자리인데... 좁다! 너무 좁아! 178에 100인 내 방뎅이가 꽉 끼어서 앉아있기 힘들 정도.니가 비대한거란 생각은 안드냐 그나마 문간 바로 옆이라 시야도 안 트이고... 다행히도 내 옆자리에 앉은 토인행님이 멀리도 아니고 무려 다음역인 하타부에서 내려주더라. 관광열차라지만 요금이 특별히 다른 것도 아니고 일반열차와 운행자체는 기본적으로 같기에, 시간만 맞으면 현지인들이 그냥 교통수단으로 이용허는 경우도 있는디, 이 행님이 그런 행님이었던 것 같다. 그 자리도 좁기는 마찬가지지만 시야는 넓었거든. 그랴서, 냉큼 옆자리로 옮겨앉아 산음본선과 일본해의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열차내부으 모습. 달려가는 동안 바닷가의 모습은 이 사진기준으로 오른쪽에 전부 펼쳐진다. 당연히 나으 자리도 그 쪽 창가자리. 사진에 보이는 자리들이 더 편해보이긴 한다만, 여행은 잘 보이는 자리가 편한 자리 아니겠는가?


하기는 도자기가 또 유명한 곳이다. 하기의 명 장인들이 만든 궁극의 도자기들이 일본의 마음을 담아 전시되어 있는 모습. 열차에서 기념품으로 쫌금 작지만 하나 주더라. 이래저래 땡잡은 열차행. 이게 또 운이 좋았던 게, 주말에만 운행하는 열차였다 마루마루노 하나시는. 이 날이 토요일이기에 이용할 수 있었던 것.


앞칸으로 이어지는 모습. 나가 탄곳은 和실, 일본식 열차이고 앞칸은 洋실 서양식 칸이다. 저 칸에서는 음료와 간식도 팔던디 풍경보는데 정신팔려서 사먹을 틈이 읎었다.


이제 두 번째 따쉬락을 깔 시간. 고등어초회는 그 존재를 알게 된 이후로 가장 좋아하는 회 중 하나. 당연히 하나 사서 탑승. 기찻간에서 먹는 따쉬락만큼 맛나는 것이 있을까? 하물며 그게 고등어 초회인데야! 달리는 중에 먹는 게 더 로망스럽지만, 달리는 중에는 풍경을 1초도 놓지치 않고 보고 싶은지라, 일부러 출발전에 까서 묵어부럿다.



드디어 출발~ 나가 과문헌지라 깃발들고 열심히 환송하는 문화의 근원을 확실히 안다고는 말 못하긋는디... 아무래도 저것은 일본이 수 많은 섬의 나라인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섬이란 것은 배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곳이다. 그렇기에 드나드는 배는 섬의 대동맥과도 같은 것. 당연히 배가 드나드는 일은 엄청나게 중요한 일인데, 바다란 곳은 예나 지금이나 음청시리 위험한 곳 아닌가. 그러다봉께 배가 무사히 드나들기를 바라는 島人시마진의 마음은 간절한 것이었고, 그렇기에 배가 드나들 때의 환영이랄까 의식같은 것은 굉장히 진지하면서도 열정적이다. 디씨에서 오가사와라 여행기, 북해도 레분섬 여행기를 봤는데, 거기에서 출항할 때 시마진들이 환송행사하는 모습보고 지젼 감동먹어서 실시간으로 눈물 줄줄 흘리며 봤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코끝이 찡허다.


해당 내용이 투고된 여행기는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travel_japan&no=485821&page=1&search_pos=-472366&s_type=search_name&s_keyword=heeeeya

이 포스팅이고



이게 영상이다. 한번 꼭들 보시라. 진짜 감동적이다...
아 씨바 또 눈물나네...ㅜㅜ
나중에 레분섬 꼭 가야지...


공항에서 항공기가 이륙할 때 지상요원들도 저렇게까지는 아니지만 도열해서 손을 들어 배웅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난다. 떠나는 것에 대한 환송이야 일반적인 일이겠다만... 저런 모습은 뭔가 쫌금은 특별한 느낌이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든다. 마루마루노 하나시를 보내는 사람들도 저렇게까지 간절하진 않겠지만, 저러한 일본의 마음을 갖고 환송했겠지.


그러한 환송을 받으며 하기를 향해 출발혔다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https://pgr21.com/pb/pb.php?id=freedom&no=76109


오랜만에 피지라... 아니 피지알에 글을 썼다 ㅎㅎ


오바마 장군님을 까다니 니들이 그러고도 사람이야! 이게 참 공개적인 자리에 쓰려니... 그 동안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블로그에 써 오던 막나가는 표현들을 못 쓰니 심히 답답허구먼... 그랴두 어쩌랴. 절해고도에 쓰면 아무도 안 보는 것을. 게다가 올만에, 그렇게 심각하게 갈등요소가 있는 것은 아닌 주제로 키배도 했더니, 생각도 정리되고 논지도 보강되고 좋네. 주제 잘 잡아서 가끔 써야긋다.


근데 피지라... 아니 피지알 벌점 진짜... 박근혜가 사람새끼가 아니라... 이거 썼더니 바로 4점... 이미 한번 징역살다와서 벌점 여유도 없는데... 글쓰기 버튼이 250자를 써야해서 무거운게 아니라 이런 이유로 무거운 동네다... 하튼 써 놓은 글이니 퍼다 놔야제.


글이 맘에 드신 분들은 링크가서 댓글들을 봐 주시길. 댓글에 논지가 음청 많이 추가뒤얐다. 공개게시판에 글 쓰는 것은 역시 피드백때문이제.



-----------------------------------



사실 비 올때는 피하는 게 도리입니다. 작금의 흥분된 정세속에서 많은 이들의 반감을 살 글을 쓰는 게 현명한 행위는 아니지만...
전부터 개인적으로 극히 좋아했고 정말 대단하다고 평가하는 인물이 이렇게 멸시당하는 것을 보니 실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해 글쓰기 버튼의 무거움과 그를 넘는 귀찮음을 넘어 글을 쓰게 뒤얐네유...



각설하고
기본적으로 외교분야를 중심으로 평가해 보고자 합니다. 오바마를 평가하려면 그가 어떤 정세인식을 갖고 있었는지부터 판단해야하지 시프요.
전통적으로 미국외교는 대서양 외교 + 중동외교였죠. 지금 우리는 중국의 어마어마한 비중을 보고 태평양 외교가 당연히 중심이라고 생각하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부시가 집권하던 2000년 당시만 해도 중국의 경제력은 독일...은 커녕 영국 프랑스보다도 낮았습니다. 독일을 넘어서서 3위가 된게 2006년, 일본을 넘어서서 2위가 된 것은 불과 2009년으로서 지금의 초강대국 중국은 10년도 되지 않았다는거죠. 그리고 아직도 그런 주장을 펴는 사람이 없지 않지만, 부시시기에는 심지어 주류학계에서도 일각에서는 중국붕괴론이 있었죠. 그리고, 중국은 보란듯이 그걸 다 이겨내고 지금은 확고한 2위, 여러 경제관측에서 노미널 GDP로 빠르게는 2027년, 대개 2030년대 중반이면 미국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고 있구요. 물론 중국이 약진하고 있고, 장차 미국에 위협을 가할 나라가 중국이라는 것은 그 당시에도 누구나 예측했죠. 부시가 중동에서 실패한 것은 팩트 그 자체로도 엄청나게 까이지만, 무엇보다 중국에 발목잡혀 정치 군사적 자원을 낭비하고 미국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동안에 중국이 미국의 견제를 받지 않고 팽창하는 것을 방치했다는 전략적 실패라는 점에서도 엄청 까입니다.

거기에 부시시기 외교의 가장 큰 문제점이 두 가지가 있는데...
1. Axis of devil 발언으로 상징되는 선악이분법적 세계관
2. 국제사회의 협력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일방주의
뭐 이것 말고도 찾아보면 많을겁니다만, 굳이 이 둘을 꺼내는 것은 오마바 실드치는 글이니 오바마가 개선한 것 위주로 쓰고자... 흠흠~
이로 인해 미국의 절대패권은 불과 20년을 가지 못하고 크게 도전받는 위치가 되어버렸죠. 쏘오련이 멸망하고 절대강국이 되었고, 진지하게 경제적 도전을 우려했어야 할 일본이 스스로 주저앉았지만, 그렇다고혀서 미국 경제가 막 전세계의 반이 되고 그런 것은 아니거든요. 70년대 이후 예나 지금이나 미국은 세계 경제의 4분의 1에서 5분의 1을 차지하는 절대강국이지만, 그걸로 혼자서 전부 다 할수는 없는거고... 애초에, 미국이 대쏘봉쇄에서 승리하는 큰 바탕이 뒤얐고, 지금 반중론자들이 미국의 강점으로 여기는 것도 중국은 친구가 적지만 미국은 친구가 많다는 것이라는 점에서도 들듯이, 외교적 리더쉽이라는 것은 핵심적인 미국의 소프트파워입니다. 중국이 GDP가 앞서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런 구도를 당장 바꿀수는... 트럼프같은 인물이 계속 나올 게 아닌 이상 그렇게 되진 않겠죠. 안 나온다는 보장은...

말씀드린 바, 이 두 가지 부분을 오바마는 개선하고자 했습니다. 2000년에 비해 2008년은 위에 서술한대로 중국이 일본의 경제력을 추월하기 직전이어서 위협이 보다 명백히 가시회되기두 혔구... 오바마 시기에 국제협력의 확대를 모색했다는 부분은 구구히 설명 안해도 적어도 이 부분은 많은 분들이 인정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표적인 업적이 이란과의 핵합의, 쿠바와의 관계개선 모색을 들 수 있을거고, 삐걱거리던 유럽제국들과의 관계개선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졌죠. 이제는 기억도 못할 분들도 있지 싶은디 2009년에 오바마가 노벨평화상을 선불로 받은 값은 어느정도 했다고 봅니다 이런 면에서.

이런 부분은 오바마가 사랑의 천사~ 이런거여서 그런게 아니고... 단지

"미국의 힘의 한계"

를 명확히 인식한, 현실적 판단의 결과라고 저는 봅니다. 1991년 쏘오련이 멸망한 이후, 쏘오련 봉쇄에 투입되던 미국의 엄청난 자원은 당장 거의 전부가 여유자원으로 돌아섰고, 쏘오련 같은 무시무시한 적조차도 이겨냈는데, 누가 나를 당하랴,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으셈~ 하는 분위기로 17년을 지내보고나니, 그렇다 하더라도 결국 모든 것을 미국이 할 수는 없다 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했단거죠. 미국의 힘은 핵심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부차적인 부분은 국제협력을 통해해결하거나, 현실을 인정하거나, 믿을 수 있는 파트너에게 외주를 주자 정도의 결론을 내렸다고 볼 수 있겠십니다.

그런 부분이 제일 잘 드러난 부분은 중동문제라고 헐 수 있을 것인데... 국제협력을 통해 해결한 성과의 가장 큰 부분은 뭐니뭐니해도 IS격퇴라고 봅니다. IS가 사실상 완파된 것은 지난 해 초의 일입니다만... 명백히 2015년~2016년간의 전역을 통해 이미 망조가 든 것은 분명했었고... 이 와중에 오바마가 취한 대응책은

- 미군은 지상군을 직접 투입하진 않는다.
- 다만 현지에 대항세력을 양성하고 교육훈련 물자지원으로 그들을 뒷받침하며 무엇보다 공군!
- 이란의 현실적 영향력을 인정한다

여기서 잠깐 샛길을 가자면 혹자는 민주주의뽕에 취해 카다피 아사드를 공격해 그들을 취약하게 해 놓은 자업자득아니냐, 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바로 직전 부시정권의 실패를 전혀 고려치 않은 단견입니다. 부시정권의 대중동정책 실패가 여러 원인에 기반하지만, 그 문제점은 '중동 현지민심을 정면으로 위배' 한다는 것으로 집약됩니다. 오바마는 이런 부분을 최대한 만회하기 위해, 현지의 정서를 거스르지 않고 현지의 분위기에 맞추는 방향으로 노선을 취하는거죠.

처음에는 저 세가지 전략이 미온적이고 지나치게 유약해서 실패할거다, 라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저 전략은 일단 IS 격파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는 완전한 성공을 거뒀죠. 그 성공이 트럼프 시기에 넘어와서 확정되는 바람에 제대로 평가를 못 받았고, 오바마에 대한 저평가에 이 부분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지만, IS 격파는 누가 뭐래도 오바마의 공이 큽니다.

이란과의 핵협상도 그렇죠. 전통적인 미국의 우방들인 수니파 왕정들과 이스라엘이 거세하고... 아니 거세게 반발혔지만, 이란의 핵문제는 일단 트럼프가 엎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해결이 됐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오바마에 거세하고... 아니 거세게 반발하는 여론이 북핵은? 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긴 헌디, 이 비교는 좀 있다 하기루 허구... 오바마가 현실적으로 판단했다는 부분은 여기서도 빛납니다. 이스라엘이나 수니왕정들이 원하는 것은 이란이 핵도 못 갖게 하고 이란국가 자체도 찍어눌러주세요 징징~~ 인데, 조금만 생각해봐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일이죠. 그래서 오바마는 일단 핵을 못 갖게 하자, 라는 목적에 집중하여 그걸 성사해낸겁니다. 왜냐면 핵은 단기간의 협상으로 못 갖게 할 수 있으니... 이스라엘과 수니왕정의 반이란정서는 협상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니까요. 거기에, 실질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안보라는 점에서도 이란이 핵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은 직접적이고 확고한 위협은 막아주는 것이니, 이스라엘의 안보를 버린 것도 아닙니다.



사실 오바마가 더더욱 빛나는 것은 이러한 여러 판단과 성과들조차 밑밥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중국봉쇄"

라는 진정한 목적을 위한 밑밥. 오바마 시기에는 남해 9단선 문제가 불거지긴 했지만, 적어도 미국과 중국이 지금처럼 대놓고 갈등하진 않았습니다. 철저히 남해문제에 집중한 갈등이었지. 경제문제에서도 중국의 환율조작문제등을 갖고 교섭가능한 수준의 갈등이었지, 너 보복관세! 이렇게 막 나가진 않았죠. 그러나 오바마는 면종복배 구밀복검의 위선자(?)답게, 겉으로는 신사적인 척 하면서 뒤로는 중국을 엿먹이기 위한 준비를 착착 진행중이었다고 봅니다.

사실 오바마는 더 빨리 동아시아로 오고 싶어했죠. IS문제가 터지는 바람에 중동에 과하게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그가 바랬던 시기에 오지 못했을 뿐. 만약 IS문제나 아사드정권 문제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충분히 아시아로 피벗한 미국을 오바마 임기 내에 봤을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이란의 핵문제를 방치한 채로, 중동에서의 여러 갈등들을 냅둔채로 아시아로 오는 것은 어렵죠. 오바마 임기 말에 들어 이는 어느정도 수습국면으로 들어갔지만... 시기가 늦었죠.

오바마가 히로시마에 방문하고 위안부문제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는데, 이것은 뒤의 일만 기억하고 앞의 일은 기억 못하는데에서 나옵니다. 오바마는 그렇게 허술한 사람이 아닌게... 한국과 일본 사이의 과거사 문제를 그는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아베가 내각총리대신이 된 것이 2012년이고 총선에서의 압도적 대승리로 기세등등한 그는 역사수정주의를 전면적으로 밀어붙일 태세였는데... 오히려 이 시기에 미국의 태도는 아베한테 역사문제에서 유연하게 나오라,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라는 것에 더 가까웠습니다. 아베의 등극은 박근혜의 등극과 시기적으로 겹치는디, 오히려 이 시기 위안부 문제등 과거사 문제에서는 한국이 미국의 지원을 업고 일본을 압박하는 분위기였죠. 거기에 중국의 반일정서까지 때마침 대두한 첨각열도 문제로 표출되는 바람에 오히려 아베가 어려움에 처하고 여러 역사 수정주의적 시도들이 철회되기도 했습니다. 고노담화 수정을 포기하고 아베가 어설프게 나마 과거사 문제에서 역대정부의 태도를 (맘에 안들지만 마지못해)계승한다고 하기도 했죠.

제가 판단하기로는 미국의 태도가 바뀐건 이 시점입니다. 그러니까, 미국 - 오바마의 의도는

- 중국에 맞서기 위해선 한미일협력이 왓다다
- 근데 한일간에 과거사문제가 있네?
- 어떻게든 덮어두고 중국에 맞서기 위한 협의체 건설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자

이 정도의 태도였지 않은가, 그렇게 보는거죠. 아베가 미흡하게나마 과락은 면했다고 (한국은 절대 그렇게 생각지 않지만)오바마의 생각이 들자, 그 시점부터 역으로 한국에게 일본과 협력하라는 시그널을 보내죠. 때마침 박근혜는 이러한 미국의 신호를 - 과거사 문제에선 미국은 우리편이넹 오홍홍 조와용~ 하고 오판하고 위안부문제에서 더 강경하게 나가는 한편, 그렇게들 말리는데도 천안문광장에 오르면서 미국의 꼭지를 돌게 했구요. 그 때부터 분위기가 완전 달라졌고, 박근혜의 미숙한 외교력과 겹쳐 그 해 2015년 말에 한국은 굴욕적인 위안부협의를 맺게 된거고, 한국 대중들의 감정이 어땠건간에, 오바마는 이것으로서 한미일 협력을 가로막는 역사적 장벽을 일단 "공식적으로는" 정리했다고 생각한 것으로 봅니다. 히로시마를 방문한 것도 그런 연장선상이구요.

사실, 일본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피부로 느끼는 한국인들과 다르게, 미국인들입장에서는 일본의 과거사 문제가 "우리의 승리로 끝난문제" 이상의 체감은 아닐것이라고 본다면... 현실적인 계산가로서의 오바마가 이 정도로 정리되었다고 생각하는 게 외교적 판단이란 점에서는 그렇게까지 하자는 아니었지 않은가 그렇게 봅니다. 히로시마 방문을 통해 던진 신호는 이제 확실히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하위)파트너이며 앞으로 우린 중국견제의 길로 일로 매진할 것임을 선언한 것이다, 저는 그것을 그렇게 읽었습니다. 물론 굉장히 맘에 안 들었지만... 오히려 그것을 보면서 아 오바마 저 양반 일처리 하나 정말 기똥차게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었죠.



구구하게 말이 많았는데... 오바마는 스마트하고 젠틀한 미국이라는 이미지의 회복과, 미국의 실질적인 이익의 확대 양쪽 모두를 겨냥해 외교를 했고, 그 성과를 차근차근 쌓아가고 있었던, 상당한 수완과 성과를 거둔 성공적 행보를 밟았다고 저는 봅니다. 원래는 제목을 왜 "위대한" 지도자인가? 라고 쓰려고 했는데... 그렇게 쓰지 못한 것은 결국 그 기획이 미완의 것으로 끝났기 때문이죠. 진정 위대한 지도자에게 변명은 필요 없는 것...(물론 사석에선 위대한 지도자라고 합니다) 부시정권기에 상실한 외교적 위상과 자원이 지나치게 심대해서 그것을 복원하는 데에만 엄청난 노오력을 퍼부어야 했기도 하고... 이미 심화되던 미국정치의 양극화가 오바마시기에 대폭발하는 바람에 국내적 동력이 약해진 부분도 있고(이 부분은 오바마 본인의 정치스타일과도 관련이 있는데, 이것까지 이야기하려면 글이...)

개인적으로 제일 아쉬운 부분은 2014년 중간선거입니다. 공교롭게도 선거 반 년전과 선거 반 년후에는 오바마의 지지율이 좋았는데 하필 선거 당시만 오바마의 지지율이 급작스레 낮아져서... 선거에서 크게 패하는 바람에 마지막 2년의 국정동력을 상당부분 상실하죠. 뭐, 오바마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런 여론조사는 다 가짜 늬우쓰다~ 라고 쉽게들 말하겠지만...

하튼 그렇게 국정동력도 잃는 바람에 화룡점정은 찍지 못했죠. 무엇보다 후계자복이... 클린턴이라는, 오바마가 어쩔 수 없는 거물이 없었다면, 후계구도를 자기의 의도를 반영하여 설정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현실은 클린턴... 하여튼 클린턴... 참 할 말 많은 클린턴... 게다가 그 상대가 트럼프... 만약 트럼프라는 인물이 없어서 상대가 테드 크루즈나 존 케이식이 상대후보였다면 클린턴이 지지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오바마와 트럼프의 확고한 공통점은 "새로운 인물" 이라는 것이고 미국인들은 그저 새로운 인물을 뽑았을 뿐...



이런 이유로 저는 오바마의 외교적 역량과 그 행보를 높게 평가합니다. 지나치게 추론위주의 뇌내망상성 글이 된 거 같긴 합니다만, 250자를 넘기라고 했지 추론을 쓰지 말라고는 안 했으니 써 올립니다?



-------------------------


다 써놓고 나서야 글 초반에 북핵 이란핵 떡밥을 던져놓고 회수 안한걸 깨달음. 그걸 회수해 놓았다면 더 좋은 글이 뒤얐을 건디, 댓글에 대충 추가하기두 혔구... 충동적으로 쓰는 글버릇상 떡밥을 흘리는 것은 으짤 수 읎다.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자 슬슬 일본을 향해 떠날 시간이 다가온다. 붓싼 구경을 마치고 여객터미널로 돌아와 다시 한번 하마유호를 찍어 봄. 전체 샷 잡은 게 하나 더 있었네잉.


북항대교와 영도으 모습. 흐릿해서 사진빨은 잘 안 나오지만 그랴도 석양이 슬쩍 배경에 깔리니 그럭저럭 볼만한 풍경. 그렇지만 이 사진을 올린 진짜 이유는, 잠시 후 펼쳐질, 야경과 비교해보시라고 올리는 것.


가방들이 줄 서 있는 모습. 저 문을 들어서면 이제 당신은 한국도 일본도 아닌 곳으로 가는 이계의 문으로 들어서는거야!


낮에 잠깐 들러서 몇가지 문의를 하고 갈 때는 사람이 하나두 없다시피 혔는디, 지금은 사람이 많다. 정원 560명인 하마유호가 출항하기 직전이기두 하거니와, 그 한 시간 뒤에는 역시 비슷한 규모를 자랑허는, 후쿠오카로 가는 뉴 카멜리아 호도 출항하기 때문일게다.


이계의 문으로 들어왔다. 사진에 찍힌 작은 배는 2016년에 후쿠오카로 갈 때 탑승혔던 비틀호. 오랜만에 반가워서 찍어봄. 요~ 히사시부리~~


나가 찍고 싶었던 것은 이 앵글이지라. 근디, 일단 창문이 가로막아 제대로 찍을수도 없었거니와, 이 탑승통로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 제지하더라. 그래서 제대로 못 찍음.


그나마 카메라를 유리창에 딱 붙히고 찍어 잘 나온편인 사진. 확실히... 2만톤에 육박하는 배는 크다... 뒷문을 열고 차량과 화물을 적재하는 배들과 달리 하마유와 성희는 저렇게 앞 사이드에 달린 문을 통해 적재하더라. 항해하다가 저 문 열리면 다들 물고기밥 되는거야


배에 올라타니 이런 게 있더라. 이러니 저러니해도 조립식... 프라모델은 숫놈으 로망이제. 중학교 이후로 하나도 못 혀보긴 혔다만, 루리웹 같은데 프라모델 올라오믄 흐뭇하게 보곤 헌다. 나 어릴땐 다 조립식이라 그랬다.


모두가 짐 푸느라 분주한 동안에 어차피 짐이라곤 꼴랑 가방쨩 하나인 나는 침상에 가방 떤져놓고 갑판으로 나왔다. 갑판. 아 뭔가 로망이 넘치는 이름 아니냐. 여행은 배고 배는 갑판이지.


붓싼항 여객터미널과 인근 야경. 아까 봤던 비틀호가 쫌금 더 잘 보임.


으미 무셔라. 공포증,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확실히 나는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거 같음. 하물며 시꺼먼 바다으 심연이 나으 심연을 빨아들이려 함에야.


영도, 북항대교로 이어지는 야경으 모습. 뭔가 참 괜찮은디, 사진으론 잘 안 전해지네잉.




그래서 영상으로 찍어봤습니다. 근데 더 잘 전해지는지는 모르겠다잉. 배경음은 잠시후 현해탄 바다를 짓쳐나가기 위해 몸 풀고 있는 하마유호의 5만마력 엔진음.


침몰하면 형님만 믿겠슙니다 굽신굽신


나가 탄 하마유호 뒤에서 역시 출항준비허구 있는 뉴 카멜리아호.


기계의 심장은 기관이고 기관의 상징은 굴뚝 아니것는가. 배가 움직인다, 라는 것을 사람들이 시각화한다면 그 상징은 단연 굴뚝일 것이다. 열심히 대기오염물질을 내 뿜고 있으시는 중이다. 굴뚝에서 배출되는 연기가 또 나름 장엄하야 영상을 찍었는디, 육안으로는 보이던 게 영상에선 안 보여서 안 올랴줌.


선박의 후미에서 전두부를 바라보믄 이런 느낌. 오른쪽은 여객터미널에서 배에 올라타는 탑승구


선박으 객들이 오갈 수 있는 공간은 3개층으루 뒤야있구, 외부에서 객들이 오갈 수 있는 갑판도 3개층이다. 층이 올라갈 때마다 쫌금 더 잘 보이는 뉴 카멜리아호. 원체 큰 배라는 것으 존재감을 좋아허는지라 마구마구 찍기두 혔구, 실질적으로는 나가 타고 있는 배는 못 찍는거나 마찬가지잖여. 그랴서, 일종으 대리만족으로 비슷한 크기와 형태으 뉴 카멜리아를 많이 찍기두 혔다. 하마유라고 생각허구 봐 달랑께요.


영도 북항대교 야경이다. 스바라시... 그러나, 이 것은 시작에 불과허다.


닝겐에게 허용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갈 차례...


위엄찬 굴뚝이 맞아준다. 기관앞에 선 인간이란, 얼마나 초라헌가...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본 하마유... 아니 뉴 카멜리아의 모습


로고는 날치를 형상화헌 거 같다. 사진이 흔들려 죄송허다.


구명뽀트 못 타믄 형님만 믿겠슙니다 굽신굽신.


보트 위에서 보트를 바라보는 모습. 진짜 암온어 보트다. 쟈들은 대략 300톤, 나가 타고 있는 보트는 1만 6천톤...


부산항 야경은 그 자체로 훌륭허지만 북항대교가 그 야경으 중심을 지키며 더 돋보이게 해 준다. 사진처럼 색깔도 바꿔준다.


왜 그런거 있지 않은가. 열차를 타면 탈선사고를 겪어보고 싶고 배를 타면 침몰사고를 겪어보고 싶고 항공기를 타면 추락사고를 겪어보고 싶... 이건 좀 아니군. 겸사겸사 일본에 가는 김에 지진 화산도 좀 겪어보고 싶었는데, 지진이 나지 않은 것은 이번 여행의 옥의 티였다.


느끼시라 존재감을. 자꾸 츄라이 츄라이 하는 것은 양이들이 고기를 김치에 싸 먹는 맛을 몰라서... 사실 내가 좋아서다.


1조 5천억달러 지디피의 경제대국인 한국 산업의 분출구인 붓싼을 수호하는 크레인들의 모습.


닝겐이 갈 수 있는 최상단 갑판에서 전체적으로 찍어봄. 공간감을 느껴보시라구. 솔까 1만톤 넘는 배를 타볼 일이 생전 없는 사람이 대부분 아니겠능가?


배 가운데에는 이런 회전계단이 있어 1~3층간 통행이 가능허다.


낯선 천장이다...

나는 이세계로 떠난다...


현실은 저 가방이나 나나 비슷한 취급. 사람 하나 딱 들어갈 만한 작은 침상이 앞으로 9시간 동안 나에게 허락된 공간일 뿐. 키가 190이상인 사람은 여기서 바로 누워 잘 수는 없겠더라. 178인 나도 좀 빡빡혔다. 빡빡하구만.


달이 휘영청 떴더라. 잘 찍어볼라구 줌을 땡겼더니 구름속으로 숨어버림. 깍쟁이 같으니라구.


웅장한 뉴 카멜리아와 휘황찬란한 북항대교으 미경을 아랑곳않고 선원들이 선상반란... 아니 출항을 준비하는 모습.


또 한번 츄라이.


잘 있거라 부산항아 다시보자 부산역아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저는 헬조센에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일본을 찾아 떠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오오~~~

https://www.youtube.com/watch?v=0n2ItsCmLtw


진짜 떠난다 으아, 글 쓰고 있는 지금도 코끝이 찡해진다...


드론이란게 이래서 획기적인 발명품 같다. 드론 하나 있었다믄 나가 타고 있는 하마유가 떠나는 모습을 찍을 수 있었을텡게. 카멜리아쨩 우리는 먼저 갑니다. 카멜리아쨩도 후쿠오카까지 잘 가용~


같은 풍경이지만 출발한 배 위에서 찍었으니 다른 풍경임. 서 있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지는거야.


카멜리아호의 전체모습. 이제 더 이상은 카멜리아를 츄라이할 수 없다.



출항.avi 과질. 여초에서는 고화질을 과질이라 그러더라. 사스가 여초으 쏀쓰...


한국경제의 수호거신들의 모습. 신사하나 놓아드려야 하지 않을까.


자성대에서 감만부두에 이르는 모습. 이 휘황찬란한 모습이 붓싼항으 극히 일부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에서 그나마 붓싼과 비교할만한 항구는 고베항 정도였는데, 95년 고베 대 지진 이후 몰락하다시피 혔다. 지금 일본에는 붓싼과 비교할만한 물동량으 항구는 없다. 다만, 여러 항구가 나누어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긴 허다만. 경제가 3배인데 물동량 자체가 적을리는 읎지.


배가 출항허니 조선토인들이 우르르 몰려나온 모습. 이제 일본에 가서 일본토인들을 구경혀야제. 그 와중에 구름이 걷혀 달이 쫌금 보인다. 달님, 여행을 굽어 살피사, 배도 침몰시켜주고 일본가면 지진나게 해 주세요.


지금 글 쓰는 중에 쫌금 고민이 되는게... 이거 노무 긴거 아닌가 싶다... 근데 꼴랑 출항 갖고 짜르자니 그것두 애매허구... 어차피 나 꼴릴라고 쓰는 목적이 독자 편으성보다 우선인 고로 그냥 길게 가자. 말이 너무 많군.


선상에서 제대로 잡은 북항대교 모습인데 사진이 흔들렸... 흔들림 보정 카메라 같은 것두 있나보던디, 나는 거지라 그런거 몬산다.


달 좋고~


안녕~ 9일날 다시 만나용~


영도와 북항대교 모습. 이  북항대교야말로 부산항의 관문이 아닐까.




썸네일만봐도 꽤 꼴릴 거 같긴 허다만, 영상보는 거 안 좋아하시는 분들도 이 영상은 꼭 보시라. 이왕이면 풀 스크린으로.
이번화의 심장이자 핵심이자 이것만 보면 이번화는 다 보는거다. 한 밤중에 빛나는 북항대교를 여객선을 타고 지나는 거 이거 진짜 훌륭함. 여행에 대해 갖고 있던 일말의 주저함을 깨끗이 날리고, 온전히 여행의 즐거움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명백히 이 순간부터다.


아... 너무 잘 생겼다...


배의 갑판구조가 쫌금 꼬여있어서, 갑판 맨 앞에 나오는 방법을 몰라 가운데에서만 계속 사진을 찍었는디, 어케 길을 찾았다. 일단 이 녀석이 존재감을 발휘하기에 찍어 봄.


총원! 전속전진!

아쉽게도 막혀있어서 타이타닉으 그 장면은 찍지 못했다.혼자서 무슨 추한꼴을 연출할라고


부산항은 빛난다. 감만부두에서 신선대부두로 이어지는 모습


밤이 아니었다믄 사진 오른쪽에 오륙도가 보였을 듯. 반짝이는 불빛들이 오륙도 등대일 거 같긴 허다만.


우리배 북항대교 감만부두. 오늘의 모습들의 요약샷이랄까나.


하마유호의 대본영의 모습. 조타실은 원래 불을 안 키나보다. 그렇긴 혀야헐 게, 밖의 빛이 잘 보여야 할테니깐. 시모노세키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굽신굽신.


소형컨테이너선이 화물을 부리는 모습. 진짜 대형컨테이너선 들은 강서의 부산신항쪽에들 있겠지.


뵈는 것도 없는 사진을 올린 이유는 저 녹색과 적색의 점멸등 때문에. 꺼졌다 켜졌다, 허는디, 저게 붓싼항에서 외해로 나가는 수로의 안내등이 아닌가 싶어서다. 딱 저 가운데로 통과하더라. 그니까, 저그를 지나믄 그 때부터는 이제 진짜 부산항 밖으로 나간다는 말이 되는 것. 심미적으로는야 북항대교 밑을 지나는 순간이 붓싼을 떠나는 순간이지만, 기술적으로는 바로 저기부터가, 진짜 부산을 떠나는 순간인 것이랄까나.


달이... 아름답군요.

들어줄 사람은 없다. 흙흙...ㅜㅜ


이젠 북항대교도 멀리 보인다. 이 사진도 줌을 꽤 땡긴거임. 근데 저 녹색등 두 개는 뭐지... 그 때는 간파혔을것두 같은디 지금은 기억 안난다.


의도는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거함이 일으키는 물보라를 보여주는 것이었는디 조명과 화질과 스킬상 이게 한계. 그냥 참가... 아니 투고에 의의를.


줌 안 땡기고 보면 이 정도 거리다. 육지에서 멀어진다는 게 실감난다. 글구 이 쯤되니 파도도 외해의 파도인데다 배도 전속항주중이라 상당히 흔들리더라. 사진을 찍을라면 다리에 꽤나 힘 주고 서서 난간에 기대어야 찍을 수 있을 정도였다.


글구보면 붓싼에는 ~~대 이런 지명이 많다. 글구 그 곳들은 하나같이 바닷가의 돌출된 반도지역이다. 태종대, 신선대, 이기대, 해운대. 글구 그게 바로 이 붓싼항을 중심으로 쪼로록 늘어서 있구. 저러한 형태의 지형을 ~~臺라고 부르는 모양임. 여기부터 사진은 그걸 찍은건데, 캐머러가 파노라마 기능이 없는건지 쓸 줄 모르는건지 하튼 한 샷에 다 안 담겨서 나눠 찍었다. 이 사진으 맨 왼쪽 어두컴컴한강북부분이 태종대다. 인가도 공장도 부두도 근처에 없으니 이 시간엔 어두컴컴... 가운데의 시커먼 부분은 ~~대는 아니고 부산해양대학교가 있는 조도라는 섬이다. 그 바로 옆에 흐릿허게 북항대교가 보이고 사진 오른쪽이 대략 신선대다. 신선대는 지금은 완전히 부산 북항의 부두가 된지라, ~~대 로서으 면모는 많이 빛이 바래긴 했다만.


이 사진은 또 다른 가치가 있는 사진. 사진 맨 왼쪽에, 이 포스팅에서 뻔질나게 본 북항대교가 얼핏 보일 것이다. 글구 사진으 가운데에서 쫌금 오른쪽에 보이는 빛의 띠의 부분은... 그 등킨드나쓰로 유명한 강알리 강알대교... 광안대교이다. 붓싼을 상징하는 두 다리가 한 샷에 잡힌 것이랄까나. 물론 거가대교도 남항대교도 있다만, 붓싼으 관광뽀인뜨 스러운 것은 북항대교와 광안대교이긴 헌지라.


각설하고

사진의 중앙 왼쪽이 위에 말한 신선대이고 거으 한 가운데가 경관을 개 박살내고 있어 짜증나는 SK오륙도뷰아파트, 그 바로 오른쪽이 이기대이다. 이기대의 바로 오른쪽이 광안대교. 광안대교는 이기대에서부터 센틈시티... 센텀시티를 넘어 해운대로 이어지는 핵심교통로.


윗 사진과 많이 겹치는디, 이 사진으 한 가운데쯤이 광안대교라 보믄 된다. 오른쪽으로 치우친 부분이 해운대... 이면 좋겠지만 거기는 동백섬이다. 2001년 APEC 회의를 했던 곳의 유적도 남아있음.


강알대교... 아니 광안대교의 줌샷. 이빠이 줌을 땡긴데다 한밤중이고 흔들리는 선상이니 화질은 양해를. 선상에서 이렇게 잡는게 쉬운 일은 아니... 기는 개뿔 해운대 광안리 유람선 타고 찍으면 된다. 타본적은 읎다만. 원래 기대한 것은 하마유호가 강알리와 해운대 앞을 지나서 일본으로 향하길 바랬는디, 그러지는 않구 그대로 공해상으로 직진해 나가더라. 어디서 보니까, 그 앞으로 지나가는 이벤트항해를 하긴 한다고 하더라만, 그게 걸릴만큼 운이 좋진 몬혔음.


이 사진의 맨 오른쪽이 해운대다. 해운대라면 다들 해수욕장을 생각허는디, 정확히는 그 해운대 해수욕장 동쪽의 고개가 해운대인 것. 지금은 거기도 현대 아파트가 들어가서 경관을 다 망쳤다. 아파트 작작좀 쳐 지어대지.


하여튼 붓싼이 이렇게 거대허다. 야경으 규모로만 본다믄 이만한 항구는 세계에도 흔치 않지 않을까 싶기두.


이 사진으 강알대교는 쫌금 더 잘 나왔네 ㅎㅎ


원래는 이게 마지막 샷이 될 게 아니었다. 야경이 노무 인상깊어서, 붓싼이 보이지 않을 때 까지 갑판에서 야경을 구경하며 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안전상으 이유로 22시 이후로는 갑판에 나가 있을 수 읎다더라. 그랴서 여기까정 보고 선실로 들어가야 혔다. 그런 관계로 마지막 기념 풀샷 한방.


달님도 안녕~


이제 들어가 잘 시간이다. 이 뒤로야 드러누워 잤으니 찍고 자시고 할 것도 없... 는데 이게 잠을 못 이뤘다. 사실 당초 걱정혔던건 멀미였다. 전에 후쿠오카로 갈 때는 쾌속선이라 3시간이내에 도착이니 멀미가 나도 괜찮으려니, 하고 탔고 멀미 자체도 별로 나지 않았다. 이번엔 9시간이라는 장시간이지만 그랴두 큰배이니 쫌금 덜 흔들리겠지, 하고 그냥 탔는데... 이게 크게 흔들리지는 않는데 엄청 깊게 흔들리는거다. 그니까, 느리~~잇한 속도로 스으~~윽 가라앉았다가 같은 느낌으로 스으~윽 올라오기를 반복허는거다. 어라 이거 생각보다 흔들리네? 좆된거 아냐, 하고 긴장혔는디... 다행히 멀미가 나지는 않더라. 글구 멀미가 나지 않을거라는 안도감이 생기고 나니까, 그 리드미컬한 흔들림이 되게 재밌게 느껴졌다. 당연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이가 천천히 흔들리는 요람에 들어가 있으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하는 느낌? 그 우아하고 품위있는 흔들림을 느끼며 잠 들려 혔는디...


잠이 안온다! 갈증이 심한 것도 아니고 피로함이 없는 것도 아닌데, 잠이 안 오는거다... 그랴서 꼴랑 두 시간 밖에 몬 잤다. 글구 이 수면부족이 내지에서으 첫 날의 대파국... 까지는 아니고 소파국에 악영향을 미쳤달까나 싶다. 느긋한 흔들림이 잠을 촉진해줄 줄 알았는데, 그게 기분이 좋다보니 오히려 각성이라도 되어버린 것일지도... 라기엔 돌아올 때는 잘 잤는데... 그 때는 진짜 피곤해 죽을거 같은 상태였으니 당연한건가...


하여튼 이렇게 부산을 떠나 일본으로 향했다.


깊은 어둠속으로... 침잠해 간다...

Posted by 앙겔루스노부스
이전버튼 1 2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인간의 본질은 감각과 기억이다
앙겔루스노부스

공지사항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18.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